가장 따뜻한 계절, 겨울
음식만큼이나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고사성어가 들어맞는 게 또 있을까 싶다.
아무리 설명을 잘하는 사람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고 해도 입에 넣기 전에는 그 맛을 절대로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는 법이다.
<먐먀! 먐먀아아! 먐먀, 먐먀!>
와플을 처음으로 맛보게 된 포는 꿈에 그리던 세계를 만난 것처럼 보였다.
시나몬 파우더와 메이플 시럽으로 범벅이 된 입을 하고 검은 깨 같은 눈을 반짝였다.
“포 꾹꾸기 해! 삼촌!”
정말 그랬다.
포는 하나비가 꾹꾹이를 할 때처럼 앞발을 제자리에서 번갈아 움직였다.
시선은 여전히 와플에 향해 있었다.
“조금··· 더 줄까?”
형이 조심스레 내게 물었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이렇게 달라는 대로 다 주다가 편식을 하기라도 하면 어쩌나.
그러면 정말 난감하다.
“이거 먹는다고 다른 걸 안 먹고 그러지는 않을 거야. 포는 당장 쌀밥 줘도 또 먹을 애 같거든.”
얼굴에 생각이 그대로 드러난 모양인지 형은 내가 생각한 것에 대해 정확하게 답변해주었다. 맞는 말이기는 했다.
마수에 대해서는 나도 많이 알고 있다.
하지만 솜털 곰구리는 처음이기도 하고, 그렇다 보니 더 조심스러운 게 사실이니까.
그래도 형 말대로 해보기로 했다.
무엇보다 계속 와플에 시선을 고정한 채 침을 똑똑 떨어트리고만 있는 포가 가엽기도 했다. 그렇게나 간절하게 원하면서 줄 때까지 참을성을 보이는 모습이 기특하기도 했고.
“삼촌, 포 와플 먹게 해주자아···.”
보라가 팔을 뻗어 포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 주었다.
포는 그런 와중에도 계속 와플만 바라봤다.
“그래. 대신 조금만 주자. 포 줄 피자도 만들 거거든. 분명히 이따 피자 구우면 포가 또 달라고 할 거야.”
형이 와플 끄트머리를 뜯어내 포에게 건넸다.
포는 와플을 한입에 넣더니 처음 먹었을 때보다 좀 더 오래 씹었다.
녀석은 눈을 감기까지 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맛을 제대로 음미하는 것처럼 보였다.
<마시땨! 먐먀! 먀시땨!>
이번에도 거의 천장에 머리가 닿을 정도로 높이 점프하는 포를 보며 형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헬멧 사줘야 하는 거 아닐까?”
“포, 포! 그만, 점프 그만!”
내가 말하자 포가 웃는 듯한 얼굴로 혀를 내밀더니 헥헥 소리 내 웃었다.
“웃는 것 같기도 하고, 메롱 하는 것 같기도 하고.”
형은 그런 포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포가 형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엉거주춤 자리에서 우뚝 일어섰다.
“설마···?”
와플을 얻기 위해 또 다른 재롱을 부리려는 게 아닐까 긴장이 되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포는 와플을 지나쳐 형에게 느린 걸음으로 다가갔다.
<땨땨 죠아···, 땨땨···.>
두툼한 발로 형의 팔을 소중히 감싸안은 포.
보라와 나, 하나비는 시간이 멈춘 것처럼 잠시 아무 말 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형은 약간 놀란 것 같아 보였다.
“이, 이렇게 귀여울 수 있는 건가···.”
그러고는 포를 빤히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나 여기 있다옹···.>
소리도 없이 다가온 먹꾸는 능청스럽게 형의 다리에 앞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눈빛을 보냈다. 아무래도 형의 관심이 포에게 쏠리는 게 영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형, 먹꾸 질투한다.”
내가 피식 웃으며 말하자, 보라도 키득키득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정말? 어유, 우리 먹꾸가 최고지. 포는 아기라서 예뻐해 주는 거야.”
그러자 먹꾸는 꽤 안도하는 듯한 얼굴로 형의 무릎에 뺨을 스쳤다.
그러고는 다섯 발자국 정도 떨어진 거리인 냉장고 앞에 몸을 웅크리고는 형을 계속 빤히 바라봤다. 아무래도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한 감시인 듯했다.
형은 그런 먹꾸 때문에, 그리고 팔목을 감싸 안고 잠든 포 때문에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근데 포 혈당 튀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내가 물었다.
“삼촌, 혈땅이 뛰는 게 모야아?”
“음, 뭐라고 해야 할까···. 까까를 너무 많이 먹으면 졸려지는 그런 거야.”
“까까를 많이 먹으면 졸린 거구나아···.”
보라는 내 말을 다시 되새기며 나름대로 이해해 보려고 애쓰고 있었다.
“혈당 문제는 아닐 거야. 내가 보기엔 그래. 나도 솜털 곰구리에 대해 정보가 없어서 ‘이게 맞다’라고 확실하게 진단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대부분 이 시기의 어린 동물들을 생각하면 수면 시간이 기니까. 식사 후에 노곤해져서 자는 건 흔히 보이는 모습이잖아.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내일 혈당 측정기 하나 가지고 올게.”
“피 뽑는 거 아니야? 그건 싫은데. 스트레스 줄 것 같아서.”
형은 미소 짓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 새로 나왔어. 그냥 체중계처럼 올라가면 측정이 돼. 옛날에는 채혈해야 알 수 있었는데 그래도 세상이 많이 좋아졌지? 당뇨환자 대상으로 한 1년 전쯤 개발됐다고 하는데, 최근에 동물용으로도 나왔어.”
“좋다. 부탁 좀 할게. 형.”
보라는 입술을 쭉 내밀고 새초롬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렵따! 삼촌들은 너무 어려운 말을 많이 알아! 나도 어른되면 어려운 말 많이 알 수 있어?”
“그러엄. 우리 보라는 더 많이 알 수도 있지.”
내가 피식 웃으며 말하자 보라가 해맑게 미소 지었다.
“우아아아! 근데 어른 되기는 시러. 그냥 지금이 좋은 것 같아!”
“맞아. 항상 지금이 좋은 걸 알고 살아야 돼. 좋은 마음가짐이야.”
형이 다정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대기야, 나 좀 도와줘.”
“응?”
“잠깐 팔 좀. 이리 와봐.”
내가 곁으로 다가가자 형이 팔목에 있는 포를 조심스레 내 팔로 옮겼다.
“나 요리해야 되는데···.”
“잠깐만 있어 봐.”
형은 대충 대답하더니 입고있던 후드 티의 모자가 앞으로 오게 반대로 돌려 입었다.
“뭐 해?”
“포 여기 넣어줘.”
형이 모자를 가리켰다.
그제야 형의 의도를 파악한 내가 활짝 웃었다.
포는 모자 안에 옮겨지는 중에도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 * *
“자, 보라야. 천천히, 조심조심. 알겠지?”
나는 형이 와플을 자르는 데 쓴 하얀 플라스틱 칼을 깨끗이 씻어 보라에게 건넸다.
날이 무디기도 하고, 내가 지켜보고 있으니 이 정도면 괜찮겠다 싶었다.
“고마워, 삼촌!”
보라는 두 손으로 칼을 건네받고 기쁘게 웃었다.
“같이 하는 거야? 삼촌이 하면 보라도 하고.”
“응!”
톡, 톡톡, 톡톡톡, 톡톡.
나는 원래 쓰고 있던 원목 도마를 보라에게 양보하고, 임시로 가지고 있던 플라스틱 도마를 사용했다.
혹시나 플라스틱 도마에서 썼다가 칼이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여린 피부를 다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촌! 나 잘해찌!”
“보라 진짜 잘한다!”
크기가 일정하지는 못하지만 보라가 했다는 게 티가 나서 더 좋았다.
나는 마음속으로 보라가 썬 피망은 내가 제일 많이 먹어야겠다 생각했다.
“톡! 톡톡! 톡톡톡! 톡톡!”
그때 곁으로 다가온 랄이가 원목에 칼이 닿는 소리를 완벽하게 따라 했다.
랄이의 새로운 재주였다.
“우아아아아!”
“랄이야, 뭐야? 그런 것도 할 줄 아는 거야?”
“아이, 잘한다! 아이, 잘한다!”
랄이는 얼른 쓰다듬어 달라고 재촉하듯 머리를 숙이고 헥헥 소리 내며 해맑게 웃었다.
“응. 우리 랄이 아이구, 잘한다! 아이고, 잘해!”
“톡! 톡톡! 톡톡톡! 톡톡!”
앵콜 공연이 몇 번 이어지고 나서야 우리는 재료를 다시 다듬을 수 있었다.
도우를 펼치는 건 내가,
포크로 여러 번 찍어 구멍을 내고, 소스를 바르는 건 보라가,
그리고 치즈와 각종 재료들을 올리는 건 함께 했다.
미리 예열해둔 오븐 앞에는 이미 하나비와 먹꾸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잠깐만 비켜주십쇼.”
내가 장난기를 섞어 공손하게 말하자 하나비와 먹꾸가 단숨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의 바른 태도는 사람이든 동물이든 모두에게 통하는 법.
“띵! 소리 나면 다 구워지는 거야. 그때 꺼내서 먹을 수 있어.”
굽는 시간은 15분.
<나도 먹을 수 있는 거냐아?>
하나비가 가늘게 울음소리를 내며 물었다.
“음, 먹고 싶다면 줄 수는 있는데 하나비 네 취향은 아닐 거야. 대신 너랑 먹꾸는 닭가슴살 야채볶음 해줄게.”
내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하나비와 먹꾸는 갸르릉갸르릉 골골송을 불렀다.
오븐 앞에 보라가 털썩 앉았다.
“피자 되는 거 구경할래!”
<나도 궁금하다냐.>
<같이 보자옹···.>
하나비, 보라, 먹꾸는 나란히 오븐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천천히 모습을 바꾸는 피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하나비와 먹꾸는 완벽한 식빵자세를 하고 있었는데 이러다 혹시 피자가 다 구워졌을 즈음에 정말 식빵이 되면 어쩌나 하는 상상을 했다.
아마 세상에서 가장 귀엽고 빵빵한 식빵이겠지.
통통하고 귀여운 치즈식빵과 먹꾸를 빼닮은 먹물식빵을 떠올리며 몰래 씨익 미소 지었다.
식탁 의자에 앉아 아이들의 사랑스러운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겨울은 1년 중 가장 따뜻한 계절이 아닐까 하고.
그 어떤 계절보다 따뜻하게 지내고, 따뜻한 음식을 먹고, 따뜻한 말을 건네게 된다.
겨울은 여름보다 뜨거운 계절일 수도 있겠다.
* * *
띵!
오븐이 피자의 완성을 알렸다.
“띵!”
랄이는 소리를 따라 하는 것에 재미가 붙었는지 계속해서 오븐 타이머 소리를 따라 했다.
“띵! 띵! 띵! 띵! 띵! 띵!”
“랄이 그만. 너무 잘하는데 이제 그만. 내일 연습하자!”
“아이 잘한다! 아이 잘한다!”
아까처럼 또다시 머리를 숙이고 다가오는 랄이 때문에 웃음이 터져버렸다.
“응. 너무 잘해! 랄이 진짜 못하는 게 없어!”
“못하는 게 없는 랄이! 띵! 띵!”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피식 웃었다.
각자에게 어울리는 접시를 꺼내 피자를 담았다.
우리는 거실에 펼친 상에 모여 앉았다.
“피자 지쨔 이뿌다! 맛있게따아아아!”
피자를 처음 먹어보는 보라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이번에 진짜 맛있게 된 것 같은데? 어? 도우도 치즈 크러스트로 한 거야?”
“그러엄. 보라가 인생 첫 피자를 먹는데 치즈 크러스트를 안 먹으면 쓰나.”
내 말에 보라와 형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먐먀! 먐먀!>
잠에서 깬 지 얼마 안 된 포는 형의 후드티 모자 밖으로 앞발을 빼꼼 내밀고는 자기 몫을 찾았다. 꼭 새끼 캥거루 같은 모습이다.
그나저나 형 말이 맞았다. 포의 먹성은 끝이 없었다.
이제는 포의 앞접시가 된 간장 종지에 쌀밥 대신 자그마한 미니 피자를 올렸다.
도우에 당분이 미량 첨가된 토마토소스, 그리고 파인애플을 작게 조각내어 올렸다.
포의 취향을 고려한 미니피자였다.
“이야아···. 포 것도 맛있어 보인다.”
형이 감탄하자 보라가 힐끗 포의 앞접시를 살폈다.
그러고는 다시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나는 큰 피자가 조아!”
“맞아. 피자는 크게 먹어야 맛이지. 근데 저거 포한테는 큰 피자야, 보라야.”
“그러네! 포한테는 큰 피자네에!”
그때 내 옆에 다가온 하나비가 시무룩한 표정을 하고 앞발로 무릎을 꾹꾹 눌렀다.
<잊은 거 없는 거냐아아아.>
“아, 아! 미안, 하나비.”
정신없이 준비하는 통에 고양이들과 랄이 것을 덜지 않았다.
뜨거우면 안 되니까 식히고 있는 중이기도 했고.
주방에 가서 살짝 손끝을 대보니 먹기 알맞게 식어 있었다.
“하나비, 먹꾸, 랄이도 맛있게 먹어.”
<고맙다냐아아아!>
<잘먹겠습니다옹···>
“랄이 꺼! 랄이 꺼! 띵! 띵!”
형과 나, 보라는 거의 동시에 피자를 들고 앙 물었다.
“삼촌! 이거 봐! 이것 좀 봐아아!”
보라는 치즈가 쭈욱 늘어나는 게 그렇게 좋은지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맛있어?”
“응! 체고! 햄버거 보다, 돈까스 보다, 와플보다 더어어어 마시써!”
“짜장면은?”
“짜장면 보다 더어어어어어 마시써!”
즐겁게 먹던 중 형이 티비를 틀었다.
“삼촌, 삼촌! 포 나오는 거 보자! 포!”
“응, 보라야. 삼촌이 한 번 확인해 볼게?”
어린이 채널을 틀었는데 안타깝게도 텔로토비는 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애니메이션을 방영하고 있었는데 취향이 아닌지 보라는 외면했다.
“지금 우다사 할 시간 아니야?”
내가 물었다.
“그런가?”
채널을 돌리자 내 말대로 우다사를 방영하고 있었다.
아쉽게도 형이 나오는 편은 아니었다.
“형 찍은 편은 언제 나와? 안개지대 특집 궁금한데.”
“인마, 너는 안개지대가 궁금한 거야? 내가 나온 게 궁금한 거냐?”
“둘 다지 뭐. 가서 잘 된 사람 없지?”
없는 것 같았다.
있었으면 티가 났겠지.
누가 있다기엔 형은 너무 일, 집, 일, 집이다.
“나 나온 기수가 20기니까 몇 달은 있어야 할 거야. 지금 15기 하고 있으니까.”
그때 피자를 가득 입에 넣어 볼이 볼록해진 얼굴로 보라가 물었다.
“저기에 있는 사람들은 모 하구 있는 거야아아?”
- 작가의말
즐거운 크리스마스 이브 되세요★
ʕु•̫͡ㅅ•ʔु☂
Merry Christmas E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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