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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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는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삼촌, 아저씨한테 안경 삼촌 것도 하나 만들어 달라고 하면 안 돼?”
나는 보라를 향해 미소 지었다.
예쁜 마음 때문이기도 했지만, 코코아가 양쪽 입꼬리에 남긴 자국 때문에 보라가 개구지게 웃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웃음이 실실 새어 나왔다.
“응, 그래. 그러자.”
내 대답에 보라가 만족스럽다는 듯이 앞니가 보일 정도로 해맑게 웃었다.
“보라 착하네.”
“왜애애?”
“맛있는 거 먹으면서 안경 삼촌도 주고 싶다고 생각했잖아.”
“그러면 삼촌이랑 안경 삼촌이 더 착해!”
“응?”
“삼촌이랑 안경 삼촌은 매일 나한테 뭐 먹고 싶냐고 물어보구, 요리도 해죠! 그러니까 삼촌들이 더 착해!”
보라는 마지막으로 남은 와플 조각을 포크로 폭 찍더니 뭔가 하고 싶은 듯이 제자리에서 옴싹옴싹 움직였다.
“이휴···.”
그러고는 의자에서 내려오더니 내게로 두 걸음 걸어왔다.
“응?”
“삼촌 아아아아!”
“마지막으로 남은 거잖아. 보라 먹지.”
“삼촌 아아아아아아!”
내 입에 와플 넣기를 성공한 보라는 그렇게나 뿌듯할 수가 없다는 표정으로 돌아가 앉았다.
“근데 왜 아까처럼 안 줬어?”
“옷에 묻으면 삼촌이 또 닦아줄 거잖아. 그러면 삼촌이 힘드러.”
보라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말했다.
고개를 저을 때마다 모자 끝에 달린 하얀 방울이 경쾌하게 움직였다.
“안경 삼촌 와플은 이따 우리 살 거 다 산 다음에 마지막에 집에 가기 전에 사자.”
“왜애애애?”
“막 만들어야 제일 맛있잖아. 계속 들고 다니면 맛이 없어져.”
“응! 그럼 삼촌이 알아서 해줘! 나는 몰라! 제일 맛있게 해서 안경 삼촌도 주자!”
나는 활짝 웃으며 끄덕였다.
보라의 입꼬리에 묻은 코코아 자국이 너무 귀여워서 그대로 내버려둘까 잠시 고민했지만, 아이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덜렁대는 삼촌처럼 보일까 싶어서 결국은 티슈로 깨끗하게 닦아주었다.
다 닦고 나서야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둘걸 하는 작은 후회가 마음속에 떠올랐다.
“보라야 ‘잘 먹었습니다’하고 아저씨한테 인사드려.”
식당을 나서기 직전이었다.
마침 손님이 없기도 해서 조금 더 표현이 더해진 인사를 건네기에도 좋은 타이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응!”
뒤를 돌아보니 우리에게 음식을 만들어주고 갖다 준 직원과 눈이 마주쳤다.
“나 아저씨한테 갔다 올게 삼촌!”
보라는 병아리 같은 걸음으로 총총히 직원에게 다가갔다.
“이이이이만큼 맛있었어요!”
“하하하하, 고마워요. 다음에 오면 더 맛있게 만들어줄게요!”
직원은 단 것을 입에 넣은 사람처럼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네! 이따 안경 삼촌 줄 거 맛있게 만들어주세요!”
멀찌감치서 보던 나도 보라 곁으로 걸음을 옮겼다.
“너무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이따 볼일 다 보고 가기 전에 한 번 더 들르려고 해요. 포장도 가능하죠?”
“네, 그럼요. 감사합니다.”
식당을 벗어나고 나서 보라가 내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물었다.
“삼촌, 나 잘해써?”
“응. 잘했어. 아저씨가 분명히 기분 좋았을 거야.”
아마 예전이라면 ‘잘 먹었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정도로 담백하게 인사가 끝나지 않았을까 싶다.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맛있었다는 표현의 한마디가 서로의 하루에 미칠 영향을 생각해 보니 좋은 마음은 아낌없이 표현하는 게 더 행복한 일상의 비결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원의 미소, 그리고 내 손을 잡고 배시시 웃는 보라의 얼굴을 보면 정말 그랬다.
* * *
옥탑방.
청소를 마친 아이들이 쓰레기통 앞에 나란하게 줄을 서 있다.
하나비, 먹꾸 앞엔 각자 쓴 물티슈가 놓여 있었다.
포는 물티슈를 양탄자 삼아 앉아버렸다. 엉덩이가 물티슈 때문에 조금 젖는 것 같았지만 오히려 좋았다. 엉덩이로 바닥을 쓰는 바람에 약간의 차가운 찜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순서대로 하는 거다냐아아.>
교통정리는 다름 아닌 하나비.
하나비는 맨 앞에 서서 날카로운 눈으로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래봤자 뒤에는 먹꾸, 포. 둘뿐이었지만.
호기롭게 청소하자고 말해놓고 온통 랄이에게 도움받은 게 미안해서 자기도 나름의 역할을 해내고 싶었다.
“아이 잘한다. 아이 잘한다.”
랄이는 하나비를 칭찬해주고 싶어서 양 날개를 펼치고 왼쪽 오른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오뚜기처럼 춤을 췄다.
“아오오오오오.”
먹꾸는 ‘얼른 쓰레기를 버리자’라며 항의하는 울음소리를 냈다.
빨리 이걸 저 안에 넣고 연구원의 침대에 눕고 싶은 마음이었다.
“삐?”
포는 먹꾸가 불만스러운 울음소리를 내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정확히는 먹꾸의 울음소리에 담긴 섬세한 의미를 읽어내기엔 포가 너무 아기였다.
<기분이가 죠아지게 해쥬께!>
아무도 모르는 포의 능력.
포는 눈을 살포시 감고 발바닥에 힘을 주었다.
푝, 표표표표푝.
핑크색 젤리 발바닥 사이사이에서 목화솜처럼 흰 솜털이 빵빵하게 부풀었다.
졸지에 포의 발은 산타클로스 모자에 달린 하얀 방울만큼 동그래졌다.
솜털 곰구리의 습성.
치유해 주고 싶어 하는 본능이 있다.
단, 소중한 존재에게만.
발바닥에서 나오는 솜털은 치유 능력의 근원이라고 볼 수 있다.
스트레스를 완화시켜주는 향기가 나고, 무엇보다 보드라운 솜털 발로 상대의 등을 두드리면 안 좋은 마음들이 씻은 듯이 빠져나간다.
“아오?”
등에 스친 느낌 때문에 화들짝 놀란 먹꾸.
하지만 왜인지 모르게 짜증스런 기분이 달아났다.
뒤를 돌아보니 포가 검은 코를 반짝이며 자신의 등을 쓰다듬어주고 있었다.
“아오오오오.”
마음에 사랑이 샘솟는 걸 느낀 먹꾸는 뒤돌아 포의 머리를 그루밍해 주었다.
포는 난생처음 꺼낸 발바닥 솜털로 먹꾸의 기분을 나아지게 해준 것이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행복했다.
“삐이!”
그때 랄이가 쓰레기 버리기를 시작했다.
쓰레기통은 자동 센서방식.
랄이가 물티슈를 물고 날아오르면 쓰레기통이 열린다.
뚜껑이 열렸을 때 골인하면 성공.
“쓰레기! 쓰레기!”
<여기 있다냐아. 잘 부탁한다냐.>
하나비가 앞발로 쓱 물티슈를 밀자, 랄이가 곧장 입으로 물고 푸드덕 날아올랐다.
위이잉.
양문으로 쓰레기통 뚜껑이 열렸다.
툭.
“아이 잘했다! 아이 잘했다!”
랄이가 기쁘게 날갯짓하며 내려오자 하나비는 미어캣처럼 몸을 일으키고 앞발을 연신 마주 댔다. 딱히 소리는 울리지 않았지만 분명히 박수였다.
<대단하다냐. 잘했다냐아아.>
다음 차례 먹꾸.
“아옹.”
먹꾸는 좀 더 공손하게 두 앞발로 물티슈를 내밀었다.
“잘해구 와! 잘해구 와!”
잘했다는 칭찬이었다.
이번에도 물티슈 버리기 성공.
“아오오오오오오오오오옹! 아옹!”
먹꾸는 하나비처럼 소리 없는 박수를 칠 바엔 목청 높여 울음소리를 내는 편이 마음 표현에 효과적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열심히, 최대한 길게 울었다.
“아이 시끄러! 쉿! 아이 시끄러! 쉿!”
다만 랄이에게는 시끄러운 소리였으니 안타까운 일이었다.
마지막 차례는 포.
랄이는 난감했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티슈를 깔고 앉아 있는 포를 보며 어떻게 저걸 꺼내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그래서 안절부절 주변을 맴돌았다.
“삐이?”
눈치챈 하나비가 포의 목덜미를 물었다.
<비켜라냐아아.>
하나비가 포를 새끼 고양이쯤으로 생각해서 한 행동이었지만 암만 애를 써도 포를 움직이기란 불가능이었다.
<포기다냐아아아아아아아.>
포기를 선언하고 널브러진 하나비.
“삐?”
그제야 포는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하나비에게 다가갔다. 녀석은 아직 완전히 들어가지 않은 발바닥 솜털로 하나비를 쓰다듬었다.
마음이 편안해진 하나비는 아까 물었던 포의 목덜미를 핥아주었다.
“잘해구 와!”
랄이는 잘했다는 칭찬을 툭 던지고 마지막 물티슈도 골인에 성공했다.
그리고 하나비, 먹꾸, 포에게 순서대로 다가가 “잘해구 와”를 외치며 날개로 모두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성공적으로 청소를 마친 친구들이 자랑스러웠다.
<분명히 아빠가 좋아할 거다냐아아. 잘했다고 칭찬해줄 거다냐아.>
하나비는 반짝반짝 빛나는 바닥을 보고 뿌듯한 마음을 느꼈다.
연대기가 칭찬해주는 모습을 상상하며 한껏 행복해져버린 하나비는 사뿐한 몸짓으로 소파에 올라가 담요를 입에 물고 꾹꾹이를 시작했다.
시선은 현관문으로 향해 있었다.
<아빠 얼른 와라냐아, 얼른 와라냐아!>
그 모습을 지켜보던 포는 덩달아 담요 끄트머리에 어설프게 꾹꾹이를 함께했다.
반면 먹꾸는 연구원을 떠올렸다.
저번에 맛있는 걸 만들어줘서 고마웠는데 자신도 뭔가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랬다. 먹꾸는 보은하길 원했다.
녀석은 마치 포물선을 그리듯 고개를 움직이며 집 이곳저곳을 눈에 담았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식탁 위에 츄르.
“아옹.”
먹꾸는 식탁으로 다가가 준비 자세를 하고 앞발을 몇 번 옴싹거리더니 의자를 거쳐 식탁 위에 올랐다.
츄르 하나, 츄르 둘, 츄르 셋.
한 입에 츄르 세 개를 물고 식탁에 내려와서 춤을 추듯 덩실거리는 발걸음으로 연구원 방으로 향했다.
“아오옹.”
의자 위에 놓인 츄르 세 개.
연구원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떠올리며 먹꾸는 마음속에 행복이 밀려오는 걸 느꼈다.
* * *
가구 코너는 한층 아래.
가는 길에도 화려한 디저트 가게들이 많았는데 그 중 눈에 띄는 곳이 있었다.
보기만 해도 미소가 지어질 만큼 예쁜 케이크들이 쇼케이스 안에 진열되어 있는 케이크 가게였다.
“삼촌! 저게 모야아아?”
보라도 같은 마음이었는지 짧다란 검지를 힘있게 뻗으며 케이크를 가리켰다.
손끝을 따라 고개를 움직이니 탐스럽게 빨간 딸기가 듬뿍 올라간 케이크가 보였다.
“딸기 케이크네? 보라 저것도 먹어보고 싶어?”
“응! 근데 저거는 하나비랑 먹꾸, 랄이, 포랑 다 같이 먹고 싶어!”
나는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나비랑 먹꾸는 저거 싫어해. 랄이랑 포는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그치만 저렇게 이쁜데? 근데 시러해?”
“하나비랑 먹꾸 같은 고양이 친구들은 보기에 예쁜 것보다 맛이 더 중요해.”
“그래애?”
“응.”
“고양이들은 다른 거 맛있는 거 사주면 돼. 보라 케이크 먹어볼래?”
“응!”
보라가 힘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삼촌, 집에 갈 때 가져가야 되는 거 아니야?”
“그건 맞는데, 미리 우리 거라고 표시 해두려고. 하나밖에 없는데 뺏기면 속상하잖아.”
“맞아! 뺏기면 안 돼!”
케이크 가게에서 미리 계산을 마치고 쇼핑이 끝난 뒤에 찾아가기로 예약해두었다.
“혹시 초도 필요하실까요?”
직원이 상냥한 말투로 물었다.
“네. 초 다섯 개 부탁드릴게요.”
보라, 하나비, 먹꾸, 랄이, 포.
다섯 아이들이 가족이 된 것을 기념하며 초를 불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뿌듯한 발걸음으로 드디어 밑으로 내려가려던 찰나였다.
“우아아아아아아!”
에스컬레이터를 처음 본 보라가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미지의 생명체라도 발견한 듯이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삼촌! 계단이 마구 움직여!”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보라의 말에 쿡쿡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보라는 아랑곳하지 않고 제자리에서 발을 구르며 내게 말했다.
“삼촌! 만능 아저씨한테 우리 집도 이렇게 해달라고 하자!”
“응?”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만능 아저씨는 무엇이든지 다 만들잖아! 우리 집도 움직이는 계단 만들어 달라고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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