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 가요
어째서 나는 당연히 고양이는 고양이 화장실만 써야 된다고 생각했을까.
기억을 살펴보면 인터넷에서 변기를 쓰는 고양이를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우리집 고양이가 그런 행동을 해줄 거라는 기대는 없었다.
특별한 훈련 없이 변기를 쓸 줄 아는 고양이는 그야말로 유니콘 같은 존재니까.
먹구의 응가가 물에 떨어지는 귀여운 소리가 울렸다.
피식 웃음이 나오려는데, 먹꾸의 다음 행동에서 더 놀랐다.
“응냐.”
먹꾸는 앞발로 변기 뚜껑을 툭 쳤다.
변기 뚜껑이 내려오는 타이밍에 맞춰서 가볍게 뛰어 그 위에 올라섰다.
달칵.
앞발로 변기 레버를 당긴 먹꾸.
쿠르쿠르쿠륵, 쿠르르르르륵.
물까지 내렸다.
어떻게 변기 사용법을 완벽하게 숙지하고 있는지.
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앗.”
보라도 나를 따라 박수를 쳤다.
타탁.
먹꾸는 변기 위에서 슬리퍼로 사뿐히 착지했다.
물기가 있는 타일 바닥을 밟는 게 싫은 모양이다.
내 슬리퍼를 먹꾸가 신은 듯한 모습이 귀여웠다.
“때잉······.”
먹꾸는 지켜보고 있던 우리가 거슬렸다는 듯이 슥 한 번 쳐다보고 지나쳐갔다.
“혹시···?”
내가 하나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하나비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냐아아아아” 크게 울었다.
<뭐냐아아?>
“너도···?”
나는 슬쩍 화장실을 한 번 쳐다봤다.
하나비는 콧잔등을 찡그리며 인상을 썼다.
<그런 건 묻는 게 아니다냐아아아!>
“알았어, 미안해.”
<알면 됐다냐!>
하나비에게 한소리 들은 나는 피식 웃으면서 현관으로 향했다.
“보라야, 갈까?”
“좋아!”
내가 살짝 손을 내밀자 보라가 우다다다 달려와 새끼 손가락을 탁 잡았다. 자그마한 손에서 기분 좋은 온기가 전해졌다.
* * *
대형마트에 가는 길.
버스를 타기에는 가깝고, 천천히 걸으면 15분 정도.
오늘은 보라와 함께라서 조금 더 걸릴 듯했다.
“삼촌!”
내가 고개를 돌리자 보라가 눈을 반짝거렸다.
“카레!”
커리가 올바른 표현이지만, 나도 모르게 카레라고 해서 보라가 그새 배웠다.
“카레 왜?”
<맛있어!>
“그랬어?”
보라가 맛있게 먹었다니 뿌듯하다.
나도 맛있었다.
살면서 먹은 커리 중 최고였던 것 같다.
조금 전에 밥을 먹고 나왔는데, 지금 또 먹으라면 바로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다행히 커리는 넉넉하게 만들어뒀다.
“또 먹을 수 있어.”
내 말을 듣자마자 보라는 하얗고 조그마한 송곳니가 보일 정도로 활짝 미소 지었다.
“좋다아아아.”
“그치?”
희한하게도 커리랑 미역국, 김치찌개는 하루 지나고 나서 데웠을 때 더 맛있다.
“예쁘다!”
가는 길에 있는 아파트 화단의 꽃.
날이 갑자기 추워질 줄 모르고 꾸며놓은 듯했다.
“괜찮아?”
보라가 꽃을 가리키며 물었다.
“뭐가?”
나의 되물음에 보라는 걱정된다는 듯이 말했다.
“추워서.”
“꽃 추울까봐?”
보라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겨울에는 잠들고, 봄이 오면 다시 깨어날 거야.”
<따뜻해지면 괜찮아?>
“응. 그럴 거야.”
다시 보라와 손을 잡고 걸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형마트 앞에 다다랐다.
“크다아.”
보라는 어디를 가든 눈동자가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이리저리 계속 움직이며 세상을 눈에 담았다.
모든 게 신기하겠지.
“자, 들어가자.”
마트 앞 자동문에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스르르르륵.
자동문이 좌우로 열리자 보라가 멈춰 서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우와! 우와아아아아!”
보라가 목소리를 높이며 깡총깡총 뛰었다.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대단하지?”
<삼촌이 한 거야?>
“그럼.”
<또! 또 해봐.>
“잘 봐.”
나는 보라의 손을 잡고 천천히 뒤로 물러선 다음 손을 뻗었다.
“흐이얍!”
내가 이상하게 기합을 넣는 타이밍에 자동문이 스르륵 닫혔다.
“우와! 와아아!”
보라는 제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삼촌 멋지다아아! 마법도 쓸 수 있는 줄은 몰랐어!>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자, 들어갈까?”
“응!”
나는 걸음을 옮기면서 손을 슥 움직였다.
자동문이 스르르륵 열렸다.
“신기하다아.”
보라는 자동문 하나로도 함박웃음을 지었다.
마트에 들어서자마자 보라는 고개를 바삐 움직였다.
“삼촌.”
“응?”
보라가 양팔을 크게 벌리면서 “이마아아아안큼” 하고 말했다.
먹을 것들이 많다는 뜻이었다.
“그치? 장도 보긴 봐야 되는데······.”
우선 생필품들부터 챙기는 게 우선.
어제는 임시로 성인용 칫솔을 썼지만, 보라가 쓸 어린이용을 따로 챙겨야 될 듯했다.
옷은 주다미 덕분에 꽤 많았으나, 집에서 편하게 입을 잠옷을 사면 좋을 것 같았고.
“보라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봐.”
각종 캐릭터 상품들로 나온 귀여운 칫솔들.
고민하던 보라는 손잡이 부분에 고양이 캐릭터가 달린 것을 골랐다. 피규어가 아닌지라 디테일은 없었지만, 나름대로 귀여웠다.
“하나비!”
보라가 가리킨 칫솔에는 하나비와 닮은 날렵하고 예쁘게 생긴 치즈 고양이가 달려 있었다.
“먹꾸!”
이번에는 얼굴이 크고 찌그러진 회색 고양이는 꼭 먹꾸 같았다.
“하하하! 그러게, 진짜 하나비랑 먹꾸 같네.”
치약들을 훑어보는데 각종 캐릭터 상품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더 시선을 끄는 것은 맛.
초코, 바나나, 딸기, 파인애플, 사과, 멜론, 포도, 혼합과일 등등.
“양치하기에도 좋아진 세상이네.”
“양치?”
“양치질. 치카치카.”
“아!”
보라가 다소 두려운 듯이 나를 올려다봤다.
“엇? 왜 그래?”
“양치는 나빠.”
“나쁘다고?”
나는 쪼그려 앉아서 보라와 눈높이를 맞췄다.
“양치가 왜 나빠?”
보라는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훕하훕하’ 하고 크게 들숨날숨을 쉬었다.
처음에는 무슨 뜻인가 했는데 곧 이해했다.
“아···! 매워서?”
보라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건 괜찮을 거야.”
나는 어린이용 치약들을 가리키며 씩 웃었다.
“이건 맛있어.”
“맛있어?”
“응.”
“진짜?”
“응, 삼촌 믿어. 보라가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
보라는 강아지 그림이 그려진 초코맛 치약을 골랐다.
“그래, 이걸로 하자.”
초코맛 치약으로 양치질이 깨끗이 될지 은근히 걱정됐다.
요즘 기술이 좋으니 괜찮겠지.
웬만한 생필품들은 거의 다 담았다고 생각하던 때였다.
보라와 손을 잡고 걷는데 여기저기서 시선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왜들 그러나 싶다가 금세 이유를 알았다.
지나가던 사람들 모두 보라를 보면 잠시 시선이 멈췄다.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보라를 쳐다보는지는 굳이 묻지 않아도 됐다. 눈빛만 봐도 드러났지만, 웃음기가 가득한 목소리들이 서라운드로 울렸으니까.
“어머, 쟤 좀 봐. 너무 예쁘다.”
“천사네 천사.”
“진짜 귀엽다. 너무 예뻐.”
“나도 저런 딸 낳았으면······.”
사람들이 보라를 두고 예쁘다는데 왜 나의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지.
나는 입꼬리를 실룩거리며 보라와 손을 잡고 마트를 활보했다.
* * *
대형마트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내 머릿속에는 한 가지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드셔보시고 가세요오오오.”
“만두 신제품 원 플러스 원 행사 중입니다. 군만두랑 물만두랑 다 있어요.”
“동그랑땡입니다, 동그랑 땡입니다아아.”
“네, 드셔보시고 가세요. 지금 구입하시면 라면도 한 묶음 같이 드려요. ”
시식 코너.
대형마트에서 시식이 없다면 향기 없는 꽃이라 생각한다.
보라는 눈을 지그시 감고 킁킁거렸다.
“맛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보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맛있는 냄새난다고 해야지.”
“냄새?”
“응.”
작게 속삭이듯 으르렁거리며 설명하자 보라는 금세 알아들었다.
“냄새. 응, 맛있는 냄새가 나.”
그때 한 아주머니가 이쑤시개에 꽂은 비엔나 소시지 하나를 내밀었다.
“자, 하나 먹어보렴.”
보라는 눈앞의 비엔나 소시지를 한 번 쳐다보고는 아주머니에게로 시선을 옮겼다가 ‘어떡해?’ 라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감사합니다아아아아.”
나는 비엔나 소시지를 받아들고는 보라의 앞으로 가져갔다.
“먹어볼래?”
“먹어도 돼?”
“그럼.”
잠시 킁킁거리던 보라가 비엔나 소시지를 입에 쏙 넣더니 눈을 휘둥그레 떴다.
“또 먹자.”
보라가 눈을 반짝이자 아주머니가 웃으며 이쑤시개로 비엔나 소시지를 하나를 더 찍어서 줬다.
“자, 여기.”
나는 보라의 등에 가볍게 손을 얹었다.
“‘감사합니다’ 해야지.”
보라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주머니를 바라봤다.
“감사합니다!”
아주머니는 부드럽게 웃으면서 “맛있게 먹어” 하며 비엔나 소시지를 내밀었다.
보라는 고사리 같은 두 손을 나란히 뻗으며 비엔나 소시지가 꽂힌 이쑤시개를 소중하게 받아들고는 게눈 감추듯 비엔나 소시지를 해치웠다.
“이게 뭐야?”
보라의 물음에 내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소세지.”
“소세지는 굉장하다.”
“그래?”
“응, 맛이 강해.”
보라에게 ‘강함’은 중요한 요소이기에 맛이 좋다는 것을 표현한 듯했다.
“두 개 주세요.”
내가 말하자 아주머니는 싱글벙글 웃으며 카트에 비엔나 소시지 두 묶음을 넣어줬다. 원플러스원인 줄은 몰랐는데 횡재한 기분이었다.
“맛있게 드세요오오.”
“감사합니다.”
나는 보라의 등에 가볍게 손을 댔다.
보라는 인사하라는 뜻임을 알고는 아주머니에게 고개를 꾸벅였다.
“감사합니다!”
“응, 나도 고마워, 잘가요.”
그때 주다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보라야, 잠깐만 기다려?”
보라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전화를 받았다.
“네, 여보세요?”
―나야.
“알아요.”
―뭐 해?
“마트에 장 보러 왔어요.”
―그래? 다른 게 아니라, 출근은 어떻게 할지 결정했어?
“그게요······.”
보라를 봐줄 사람이 없었다. 형이 돌아온다고 해도 그랬다. 형도 병원으로 출근을 해야 됐으니까. 아직 출생등록도 안 돼 있는 보라를 어린이집에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그럼 내일 같이 나오는 건 어때?
주다미의 말에 나도 모르게 “아?” 하고 소리를 냈다.
“그래도 돼요?”
―난 상관없지. 우리 매장에 위험한 것도 없고, 괜찮지 않을까? 나도 지금 혼자 매장 보려니까 한계가 좀 있어서. 애를 보면서 그게 될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나와봐. 정 안 되면 다른 방법 찾아봐도 되니까.
“보라랑 함께 출근이라······.”
―나 좀 살려주라.
나는 피식 웃었다.
“일단 제가 지금 마트라서, 이따 다시 전화드릴게요.”
―그래 알았어. 나도 손님 왔다. 끊어.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보라의 손을 잡으며 다시 카트를 밀었다.
“가자.”
“아앗?”
보라가 깜짝 놀라며 걸음을 멈췄다.
“왜 그래 보라야?”
내가 놀라서 물었다.
보라는 내 소매를 당기며 어딘가를 가리켰다.
“음?”
보라가 가리키는 곳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사이좋게 장을 보는 젊은 부부가 보였다.
“저게 왜?”
나의 물음에 보라가 똑바로 보라는 듯 다시 소매를 당기면서 젊은 부부의 앞쪽을 가리켰다.
젊은 부부가 밀고 있는 카트에는 한 남자아이가 카트에 타고 있었다.
“나도 저거!”
보라의 말투와 눈빛에서 카트에 타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가 전해졌다.
“아···!”
지금 끌고 온 마트에는 장본 것들이 한가득 실려서 자리가 없었다.
다시 보라를 쳐다봤다.
무언가를 강하게 원하는 슬픈 강아지 눈.
“그래! 보라도 타야지!”
“좋아!”
나는 보라의 손을 잡고 카운터로 향했다.
보라는 어리둥절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작은 보폭의 걸음으로 나를 열심히 따라왔다.
물건들이 많아서 계산하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보라는 점점 비어가는 카트를 보면서 얼굴이 밝아졌다.
계산을 마치고 물건들을 쇼핑백에 가득 넣은 뒤, 빈 카트에 보라를 태웠다.
“출발! 붕붕!”
목소리는 요란하게 냈지만, 정작 카트는 조심히 밀었다.
보라는 그것만으로도 즐거운지 손을 들어 올리며 환하게 웃었다.
“붕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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