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
어린 시절에 형제가 있던 친구들을 떠올려 보면 그들은 대부분 자신의 혈육을 질색했다.
자기 것을 빼앗고, 성가시게 하고, 괴롭게 하는 존재쯤으로 묘사했던 것 같다.
나는 친구들이 부끄러워서 일부러 그렇게 말한다고 생각했다.
그 나이대 남자아이들이 으레 그러듯 자존심을 내세우느라 그런다고도 생각했고.
나는 우리 형이 좋다고 했다.
친구들은 내가 반어법을 쓰는 줄 알고 낄낄 웃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주변을 봤을 때 한 지붕 아래 같이 사는 형제들이 드물었다.
한쪽이 자취를 시작해서, 혹은 짝을 찾아서 그렇게 된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서로 가족 간 일이 있을 때나, 정말 필요할 때만 연락한다고 내게 말했었다.
몇몇은 어린 시절의 작은 다툼이 계기가 되어서 말을 섞기 어색한 관계로 그대로 나이를 먹었다고 했다.
내게 물었을 때 나는 우리 형은 참 좋은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그들은 내가 정말 복 받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쉬는 날 하루 종일 이것저것 보러 다니느라 고생했잖아. 보라 침대는 형이 할게.”
형은 미소 지으며 내 팔뚝을 두어 번 두드렸다.
형이 내게 입금한 금액은 보라의 침대 가격을 훌쩍 넘는 돈이었다.
“왜 그래, 진짜.”
나는 곧바로 형의 계좌를 입력해 돈을 돌려주려고 했다.
마음으로 준 돈이라는 것도 알고, 내가 아니라 보라를 위해 준 돈이라는 것도 알지만 그럼에도 내 마음은 또 그랬다.
형은 내 손에서 휴대폰을 사뿐하게 낚아채더니 자신의 주머니에 쏙 넣었다.
“진짜 화낸다.”
“웃기고 있어. 살면서 형이 화내는 거 한 번도 본 적 없다.”
“그런 사람이 화내면 진짜 무서운 거야.”
형은 일부러 무표정을 지으려 했지만 3초 만에 표정이 와르르 무너져 결국 우리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럼 딱 보라 침대 가격만 해주는 걸로 해. 너무 많아. 이건 아니야.”
누가 더 벌고, 덜 벌든 돈의 가치는 같다고 생각한다.
나한테도 큰돈은 형에게도 큰돈이다.
<싸우지 말라옹···.>
침대 위에 서서 우리 둘을 멀뚱멀뚱 번갈아보던 먹꾸.
먹꾸는 나에게 한 번, 형에게 한 번 머리를 부비더니 기어 들어가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냐, 아냐. 싸우는 거 아니야. 걱정하지 마, 먹꾸야.”
그제야 안심이 된 듯 먹꾸가 눈을 게슴츠레 감았다 뜨며 내게 애정표현을 했다.
“봐봐. 네가 자꾸 안 받는다 뭐다 그러니까 먹꾸가 우리 싸우는 줄 알고 오해하는 거 아니야. 누가 보면 엄청나게 큰돈 준 줄 알겠다. 자꾸 그러면 오히려 내가 민망해. 그냥 받아.”
형이 웃음을 머금은 목소리로 말하더니 침대에 앉아 먹꾸를 무릎 위에 올렸다.
“네가 다 말 안 해도 내 눈에는 다 보여. 얼마나 보라 열심히 챙기고 마음 쓰고 있는지. 나도 같이 그렇게 해주고 싶은데, 너만큼은 못 해주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좀 그렇더라고.”
형은 먹꾸의 등을 쓸며 시선을 내리깔았다.
“오늘도 일하면서 계속 보라 생각 나고. 다음에 한 번 너랑 휴무 날짜 같이 잡아서 보라 데리고 놀이공원이라도 한 번 가야겠다 생각했어.”
나는 입가에 힘을 주며 미소 지었다.
“좋지. 보라가 엄청 좋아하겠다.”
그리고 가볍게 숨을 몰아쉬고 형에게 말했다.
“형, 그래도 너무 많은데.”
“돈이 남으면 그걸로 보라 또 좋은 거 해줘. 그럼 되지. 아, 그리고 내일 저녁식사는 네가 해줘. 그럼 딱 좋네.”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한쪽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공격적인 눈빛으로 형을 노려봤다.
“어쭈, 부려먹으시겠다?”
“고등어 묵은지찜.”
“콜.”
이로써 보라의 침대는 형이 해준 게 되었다.
나는 잊지 않고 보라에게 이야기를 전했다.
“보라야 사실 안경 삼촌이 침대 사준 거야. 삼촌한테 고맙습니다! 해.”
“우아아아아, 삼촌! 삼촌 체고!”
보라는 곧장 형을 와락 안아줬다.
형은 기쁜 얼굴로 보라의 등을 토닥였다.
“삼촌도 안아줄게!”
한참 안겨 있던 보라가 이번에는 내게 달려와 안겼다.
어느 한쪽에게도 모자라지 않게 보라는 공평하게 포옹과 사랑을 나눠줬다.
“삼촌은 침대 같이 골라줬자나! 히히! 삼촌이랑 안경 삼촌이 같이 사줘써!”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보라가 작은 몸으로 온 힘을 다해 나를 끌어 안아준 순간, 우리가 보라를 만나지 않았다면 오늘 어떤 하루를 보냈을까 생각했다.
소름이 돋을 만큼 슬픈 감정이 밀려들 뻔했다.
나는 품에 안긴 보라가 너무도 소중하게 느껴져 더 꼬옥 안아주었다.
보라를 만나지 않았다면 평생 이런 행복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감상에 젖어서 보라를 꼭 안아주던 때 갑자기 하나비가 목소리를 높였다.
<나도냐아!>
녀석은 보라와 나 사이에 머리를 억지로 밀어 넣었고,
“랄이도! 랄이도!”
랄이 또한 뒤뚱뒤뚱 다가와 날개로 우리 등을 덮어주었다.
<나, 나도 같이 안자옹···.>
먹꾸는 같이 안자고 말해놓고 엉뚱하게 홀로 웃고 있는 형에게 다가가 폭 안겼다.
“포는 뭐해?”
형 방에서 왁자지껄 웃음을 터뜨리다가 모두 까치발을 들고 내 방으로 향했다.
정확히는 나와 형, 보라만 까치발이었다.
그야 고양이는 발소리가 안 나니까.
랄이는 중간중간 발톱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나긴 했다.
“히유우··· 히유웅···.”
포는 내가 사 온 자신의 맞춤 이불 안에서 두 눈을 꼭 감고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우리는 모두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한참 동안 포가 자는 모습을 지켜봤다.
<못 참겠다냐!>
이번에도 역시 하나비.
하나비는 포의 귀여움에 샘솟는 사랑을 주체하기 어려웠는지 위풍당당한 걸음으로 다가가 포의 머리를 사정없이 그루밍했다.
“야, 야아······.”
내가 안타까운 목소리를 냈지만 다행히 포는 깨지 않았다.
<어쩔 수 없다냐. 너무 귀엽다냠냐아아아···.>
그런 녀석들을 가만히 지켜보자니 어쩌면 형과 하나비의 성격이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어렸을 때 모습 말이다.
형은 내가 아주 어렸을 때 그렇게 안아주고 싶어 했다고 엄마가 입버릇처럼 말해줬었다.
지금은 세상 차분하고 진지한 성격의 형이지만, 그때는 형도 기운이 넘친 아이여서 동네에서 나를 조금이라도 괴롭히는 애가 있으면 놀이터 모래를 확 뿌려서 그 아이가 다시는 내 곁에 얼씬하지 못하게 했다.
그런 모습이 꼭 지금의 하나비 같다.
“형이랑 하나비 조금 닮은 것 같아.”
“그런가? 그래? 나는 나랑 먹꾸랑 비슷한 것 같은데. 안 그래? 먹꾸야아? 으구구, 우리 먹꾸!”
내 깊은 뜻을 알 리 없는 형은 발치에 와서 옆구리를 부비는 먹꾸를 안아 들더니 몸을 가볍게 흔들었다.
하나비도 좀 더 나이를 먹으면 형처럼 의사가 되려나.
보람 동물병원에 취직해 형 옆에서 조수로 일하는 하나비의 모습을 상상했다.
* * *
어젯밤 오늘 저녁을 위해 피자 도우를 미리 만들어놓았다.
한나절 정도 냉장고에서 저온 숙성을 해야 도우가 더 맛있어진다.
기다릴수록 맛이 깊어지는 나름의 비법이 있다.
“보라 이리 와서 삼촌 도와주세요!”
내가 도움을 요청하자 보라는 재빠르게 뛰어왔다. 그러고는 자신에게 어떤 역할이 주어질지 잔뜩 기대하는 얼굴로 초롱초롱 눈을 반짝였다.
“야채 받아주세요오.”
사실 바로 식탁에 놓으면 될 일이기는 했다.
그런데 보라를 부른 이유라면, 그냥 보라가 옆에 있으면 요리가 더 즐거우니까.
“첫 번째 선수우, 피망!”
“피망!”
보라가 내 말끝을 따라 하며 배시시 웃더니 피망을 받아들고 식탁에 올렸다.
“두 번째 선수, 블랙 올리브!”
“리브!”
“보라야, 따라 해봐. 블랙.”
“블랙!”
“올리브.”
“올리브!”
“블랙 올리브.”
“블리브!”
내가 웃음을 터뜨리자, 보라는 나를 따라 큰소리로 꺄르르 웃었다.
“보라는 왜 웃어?”
“삼촌이 웃으니까!”
“이뻐 죽겠네, 아주.”
“삼촌도 이뻐!”
보라의 볼을 살살 잡고 흔들자 보라도 나를 따라 손을 뻗었다.
“삼촌 볼 꼬집게?”
“응! 나도 삼촌 이뻐해 주게!”
나는 몸을 굽히고 얼굴을 가까이 대주었다.
“으악!”
어라, 살살 볼을 잡을 줄 알았건만 보라가 꽤 세게 내 볼을 잡았다.
“삼촌 이뿌다! 너무 이뿌다!”
“아아, 보라야, 삼촌 아프다아!”
그러자 보라가 곧바로 손을 놓고 약간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우와, 우리 보라 힘 완전 세다.”
“미안해, 삼촌. 나는 삼촌 이뻐해 주려구···.”
“그럼 호―해줘.”
“아라써!”
다시 몸을 굽히고 볼을 가까이 댔다.
“하아아아아! 입 냄새 공격이다아아아!”
“으아아악, 당했다아아아!”
내가 기절한 시늉을 하자, 보라는 뭐가 그렇게 웃긴지 바닥에 누워서 한참을 웃었다.
거실에 앉아 있던 형도 웃음을 터뜨렸다.
<보라냐아, 잠은 침대에서 자라냐. 여기에서 자지 말고냐아아아.>
하나비는 그런 보라가 걱정스러웠는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누워있는 보라의 얼굴을 내려 보았다.
우리는 다음 재료들을 꺼내면서도 계속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탁, 탁, 탁, 탁, 탁
식탁에 앉아 도마에서 피망을 작게 썰고 있는데 보라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도마 위를 빤히 바라보았다.
“삼촌, 나도 해보고 싶어.”
“음, 보라가 하기엔 위험한데.”
“한 번만 해보면 안 돼애?”
보라는 두 손을 모으기까지 했다.
그때 형을 위해 사 왔던 시나몬 와플이 떠올랐다. 직원이 플라스틱 칼을 함께 챙겨줬었던 것 같은데.
“음, 보라야 잠깐만? 형, 혀엉, 이리 와 봐.”
내가 부르자 형이 발뒤꿈치를 끌고 느릿느릿 주방으로 왔다.
“왜? 뭐 도와줄까?”
“아니, 그게 아니라. 이거.”
나는 종이봉투에서 시나몬 와플이 들어있는 포장 용기를 꺼냈다.
“어? 그게 뭐야? 와플 아니야?”
“아까 쇼핑하기 전에 보라 뭐 좀 먹인다고 거기 꼭대기 식당가를 갔었거든. 크리스마스라 시즌이라 되게 예쁘더라. 아무튼 거기서 먹는데 보라가 시나몬 와플 먹고 난리가 난 거야.”
형은 보라를 보며 미소 짓더니 내게 물었다.
“왜?”
“너무 맛있어서. 근데 한참 먹다가 보라가 나한테 뭐라고 그랬는 줄 알아?”
“뭐라고 했는데?”
“안경 삼촌 것도 아저씨한테 더 만들어달라고 하면 안 되냐고.”
보라가 부끄러운 듯 손가락 끝을 잘근잘근 깨물며 배시시 웃었다.
“와, 보라 최고다 진짜. 보라야, 삼촌 감동했어.”
형은 보라의 정수리에 마구마구 뽀뽀를 했다.
“다음에는 같이 놀러 가자, 삼촌!”
보라가 형에게 말했다.
“그래. 꼭! 꼭 다음에는 삼촌도 같이 놀러 가자.”
그때 하나비가 반달을 뒤집어 놓은 듯 심기가 불편한 눈빛을 하고 식탁 위에서 몸을 웅크렸다.
<보라냐, 내 생각은 안 났냐아아아아아?>
보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거기서는 안경 삼촌 생각해꾸 하나비는 다른 데서 생각나써!”
나는 하나비의 머리에 내 볼을 갖다 댔다.
“대신에 내가 하루 종일 생각했지. 우리 하나비는.”
<역시 연대기가 최고구냐.>
“아빠라고 해야지.”
<아빠가 최고다냐.>
하나비는 별다른 저항 없이 부드럽게 호칭을 정정했다.
“나 사실 오늘 한 끼도 못 먹었거든.”
“그래?”
“응. 지금 이거 먹어야겠다. 너무 배고파서.”
“삼촌 마니 머거!”
“고마워, 보라야.”
형은 보라 옆자리에 앉았다.
뚜껑을 열자 시나몬 와플 향이 솔솔 풍겼다.
그때 포가 잠에서 막 깬 얼굴로 식탁 근처로 다가왔다.
“데워줄까?”
내가 묻자 형이 손을 저었다.
“이 집 잘하네. 너무 맛있다.”
<먐먀······.>
왼쪽 볼털이 완전히 눌린 포가 앞발로 몇 번 눈을 비비더니 의자를 거쳐 식탁 위로 점프해 올라왔다.
녀석은 형의 와플 상자 앞에 앉아서 멀뚱멀뚱한 얼굴로 와플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음?”
형이 포크로 와플을 찍어 입에 넣었다.
포의 시선은 포크와 동기화된 것마냥 계속 함께 움직였다.
“미안해 포, 다음에는 포 것도 아저씨한테 만들어달라구 하께.”
보라가 머리를 긁적이며 난처한 얼굴로 포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래도 포 착하다.”
형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포는 아직 아기잖아. 어떤 아가가 이래. 먹고 싶으면 냅다 얼굴부터 들이대거나 손을 뻗지. 포처럼 이렇게 입맛 다시면서 착하게 기다리지 않아.”
<먐먀··· 뾰 먐먀···.>
식탁 위에 포의 침 한 방울이 똑 떨어졌다.
“보라야, 포 한 입 줘도 되지?”
“응!”
보라의 대답을 들은 형이 내게로 시선을 옮겼다.
“한 입 준다?”
괜찮을 것 같기도 했다.
현재까지 지켜봤을 때는 포가 유난히 힘을 내고 에너지를 얻는 음식이 당분이 높은 것들이었으니까.
“조금만. 조금만 줘.”
형은 아주 조금 와플을 떼서 포에게 건넸다.
“포, 아아아.”
<냠!>
와플이 한 번에 사라졌다.
“삐오오오오! 삐오!”
“우아!”
“어어어어?”
포가 여태까지 본 중 가장 높게 점프했다.
식탁 위에 있던 포가 천장에 머리를 박을 정도로 높이 뛰어올랐다.
<먐먀! 먐먀! 먐먀!>
콜라와는 비교도 안 되는 반응.
포가 와플에 눈을 떴다.
정확하게는 메이플 시럽에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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