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전조
야근이라 늦는다던 형수는 모텔 화재로 죽었다. 유부남 팀장도 함께였다. 천벌을 받은 꼴이었지만, 두 사람이 죽어서 속이 후련하다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두 가정이 풍비박산 났다.
곧은 탑 같던 형은 하룻밤 만에 무너졌다.
불륜이 드러나지 않고 그냥 슬픈 사별이었다면 차라리 나았을까.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다. 앞으로도 의문으로 남을 일이다.
나는 형이랑 같이 살기로 했다. 형을 혼자 두면 안 될 것 같았다. 최악의 상황은 벌어지지 않으리라 확신하면서도, 그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더 줄이고 싶은 마음이었다.
형의 명의로 된 국평 아파트 대신 내가 사는 월세 옥탑방을 택한 이유야 뻔했다. 아파트에는 형수였던 여자의 흔적이 너무 많았으니까.
형이 돌싱이 된 지 벌써 3년.
형은 삼십대 중반이 됐고, 나도 곧 서른이다.
우리 형제는 여전히 옥탑방에 산다.
반쯤 누워서 티비를 보던 형이 씩 웃었다.
“잘 됐으면 좋겠다. 둘이 잘 어울리네.”
압도적 시청률 1위인 짝짓기 예능 프로그램 ‘우다사’를 보고 있었다. ‘우리 다시 사랑해도 될까요’를 줄여서 ‘우다사’다.
남자가 조잡한 아침상을 차린 뒤 여자를 불러낸 상황.
―나름대로 열심히 차려봤거든요?
식탁 위의 베이컨과 스크램블드 에그를 본 여자는 유달리 긴 송곳니를 자랑하듯 활짝 웃었다.
―너무 감동이에요. 고마워요.
―입에 맞으실지 모르겠네.
―다 제가 좋아하는 거예요.
―그래요? 다행이다. 혹시 제가 깨운 거예요?
포크를 집어 든 여자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방금 일어났어요.
방금 일어났다고 하기에는 풀메이크업에 드라이까지 마친 모습이었다.
“남자가 엄청 정성이지 않아?”
형의 물음에 나는 되물음으로 답했다.
“형 지난주 거 안 봤어?”
“보긴 봤는데 설거지하면서 봐가지고. 내가 뭐 놓쳤나?”
“제대로 안 봤네. 저 아저씨가 정성인 건 맞는데, 너무 정성이야. 모두한테 정성을 들이거든.”
“그게 무슨 말이야?”
“지난주 편에서는 다른 여자한테 아침 차려줬었어. 메뉴도 똑같네.”
나는 티비에 대고 삿대질을 했다.
“이따 봐라 한번, 데이트 코스도 비슷할걸?”
“에이이이, 설마아.”
“설마는 무슨, 지금 대화 흘러가는 것도 비슷해. 치는 멘트까지 정해져 있다니까? 머리에 스프레이 떡칠하면서 세팅할 때부터 알아봤는데, 너무 다 세팅이야.”
내가 짝짓기 예능 프로그램 얘기에 열을 올리게 될 줄이야.
남이 연애하는 걸 뭐하러 보나 싶었는데, 막상 보기 시작하니까 종종 과몰입까지 한다.
“알았으니까 목소리 좀 낮춰. 왜 화를 내고 그래.”
형이 웃으며 진정하라는 듯 손을 저었다.
“화를 내는 게 아니라, 진짜 그랬다니까. 아무튼 형은 지금 저거 보고 있을 때가 아니야.”
“그럼?”
“형은 저기 출연해야 되는 사람이지.”
“그렇게 생각해?”
“어. 그럼 평생 나랑 살게?”
“그것도 나쁘지 않지 않나? 어차피 몇 년 빼고는 평생 같이 살았는데.”
뭐가 그리 재밌는지 형은 계속 실실 웃었다.
“근데, 그거 알아?”
“뭔지 말해야 알지.”
“나가기로 했어.”
“갑자기 뭔 소리야?”
“나 저기 나간다고.”
형이 티비를 가리켰다.
나는 티비와 형을 번갈아 보고는 인상을 찡그렸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저기 출연한다고.”
“하, 이상한 거짓말 좀 하지 마.”
“내가 그런 거짓말을 왜 해.”
말끔한 인상. 훤칠한 키. 전문직(수의사). 자가 아파트 보유. 성격도 모난 구석이 없다.
형은 돌싱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음에도 선 자리가 많이 들어왔지만, 지난 3년 동안 철벽을 두르고 살았다.
“우다사에 출연한다고?”
“그래.”
형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애 피부병 때문에 병원 자주 오는 사람이 우다사 작가였더라고. 이번에 특집이 있는데 제발 꼭 좀 출연해달라고 해서.”
“그래서? 출연한다고 했어?”
“어.”
이제 새로운 사람을 만날 준비가 됐나?
드디어 스스로를 가두고 있던 철벽을 내리기 시작한 듯했다.
“볼 때마다 얘기하는데 매번 거절하는 것도 불편하고, 재밌게 보던 프로니까 나가면 재밌을 거 같기도 하고. 또 특집이라서 이런 기회가 또 없겠다 싶더라고.”
“특집? 무슨 특집?”
“안개지대 특집.”
안개지대(Fog Area).
이름 그대로 특정한 빛깔을 지닌 안개가 덮고 있는 지역을 뜻한다.
안개지대도 여러 종류가 있다.
대표적인 특징을 하나만 꼽는다면 마력을 지닌 생물 ‘마수’가 산다는 것.
“안개지대에서 찍는다고?”
“응.”
“그거 때문에 출연하기로 했구만?”
“그런 이유도 없지는 않지.”
“근데 안개지대에서 촬영을 어떻게 해? 전화도 안 터지는 데서? 카메라가 안 돌아갈 거 아냐.”
형은 대단한 비밀을 꺼내듯 낮춘 목소리에 바람 소리를 섞어 말했다.
“초인이 협력하기로 했대.”
마력과 특수한 능력을 지닌 ‘초인’일 가능성.
대한민국 기준 약 100만분의 1.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확률이다.
“초인이?”
나는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초인이길래 예능 찍는 걸 도와? 그리고 초인이어도 카메라 안 되는 건 마찬가질 텐데?”
“나도 몰라. 되니까 촬영하겠지.”
“촬영은 언제 시작인데?”
“다음 주.”
“그렇게 빨리?”
“초인 스케줄에 맞춰야 될 테니까.”
“그것도 그렇네.”
냉장고 안쪽을 뒤적이던 형이 구시렁거렸다.
“먹을 게 없네. 집에 라면 있나?”
“어, 있어. 나도 하나 먹을까?”
“그럴래? 그럼 오랜만에 밖에서 끓여먹을까? 버너에다가.”
“귀찮게 무슨.”
“낭만 있잖아.”
형이 버너와 냄비 그리고 빈 생수병에 수돗물을 받았다.
나는 라면, 달걀, 젓가락, 앞접시, 가위를 챙겼다.
평상에 자리를 잡고 앉은 형이 버너 위의 냄비를 가리켰다.
“대기야, 대기 중이다.”
연구원과 연대기. 평범하지는 않은 우리 형제의 이름이다.
“재미없거든? 잠깐 불 줄여줘.”
옥상 화단에서 기른 대파 하나를 잘라서 씻은 뒤 송송 썰어 넣었다. 화룡점정으로 달걀까지.
“파 송송 계란 탁, 끝내주네.”
형이 달걀 위로 젓가락을 뻗었다.
챙.
내가 젓가락을 뻗어서 막았다.
“왜.”
“국물에 퍼트리면 안 돼. 반숙으로 익혀서 면이랑 같이 후루룩 먹는 거야.”
“난 풀어서 먹어도 맛있던데.”
“하아아, 먹을 줄 모르네.”
“알았어, 오늘은 네 방식대로 먹자. 난 다 좋으니까.”
형이 냄비뚜껑 위에 면을 덜었다.
“왜 기껏 가져온 앞접시 안 쓰고 거기다 먹어?”
“낭만 있잖아.”
“별게 다 낭만이다.”
“파랑 계란 넣은 게 신의 한 수네.”
“그치?”
형이 화단을 훑어보다가 말했다.
“어떻게 저걸 다 키웠대. 하여튼 드루이드가 따로 없다니까. 농사지어도 되겠다.”
“옥상 화단에 우리 먹을 거 좀 키우는 걸로 무슨. 농사는 아무나 짓나. 그리고 나보다는 형이 드루이드에 가깝지 않아?”
“수의사라서?”
“응.”
“나는 그냥 치료만 하는 거지. 어릴 때부터 동물들이 잘 따르는 건 너였지. 부러운 능력이야.”
“별게 다 부럽다.”
“부럽지. 아픈 애들은 안 그래도 예민하니까. 너도 일할 때 더 편한 거 있지 않아?”
형이 내 뒤쪽을 쳐다보며 말했다.
“봐, 오늘도 네 친구 왔잖아.”
우유 비율이 높은 카페라떼처럼 밝은 빛깔의 치즈 고양이가 난간 위에 앉아 있었다.
“또 왔구나.”
잊을만하면 찾아와서 당당하게 먹을 것을 내놓으라는 눈빛을 쏘는 녀석.
“잠깐만 기다려.”
나는 미리 준비해둔 닭가슴살을 접시에 내줬다.
고양이는 기분이 좋은지 골골거리며 닭가슴살을 먹었다.
“본 지 1년은 된 거 같은데 한 번을 못 만지게 해.”
내가 구시렁거리자 형이 피식 웃었다.
“쟤가 워낙 유별나잖아. 나는 다가가지도 못해.”
“니야앙.”
다 먹었으니 치우라는 듯 발톱으로 접시를 톡톡 치고는 몸을 돌리는 고양이.
내 앞접시에는 형이 덜어준 라면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얼른 먹어. 다 불었다.”
“어, 형도.”
라면은 식었는데도 맛있었다.
* * *
강동구 소재의 상가건물 지하에 위치한 소형 마수 전문샵 ‘다주(Da Zoo)’.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수많은 사육장, 수족관, 케이지에 있는 각양각색의 소형 마수들이 눈에 들어온다.
머리가 아홉 개라서 미니 히드라라고 불리는 구두사(九頭蛇), 날지는 못하지만 작은 날개를 파닥거리는 플랩 마우스(flap mouse), 게코 도마뱀과 흡사한데 다리가 여섯 개라 육발 게코라 불리는 도마뱀 등.
나는 매장을 쭉 가로질러 창고 겸 사무실에 들어섰다.
모니터 뒤로 책상 위에 발을 걸치고 있는 사장의 모습이 보인다.
“여기 커피요.”
내가 커피를 들이밀자 책상 위의 구둣발이 내려가고 휴대폰에 고정돼 있던 시선은 올라왔다.
“땡큐.”
주다미가 휴대폰을 내려놓고 커피를 받아들었다. 언제나 칼각을 유지하여 헬멧 같은 단발머리가 짧게 흔들렸다. 타조처럼 작은 머리에 긴 목, 조금 부담스러울 정도로 큰 눈, 숱이 많고 긴 속눈썹은 쇠젓가락도 올릴 수 있을 것 같다.
“왜 오라고 하셨어요?”
오늘은 쉬는 날이었다.
주다미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잔을 들어 보였다.
“너 없으니까 커피 사다줄 사람이 없더라고.”
“아, 장난치지 말고요.”
“진짠데?”
“사장님.”
주다미는 커피를 마시며 웃었다.
“어차피 지나가는 길이었잖아.”
“쉬는 날까지 일터에 오고 싶지는 않아요.”
“애기들이 있잖아.”
주다미가 양쪽 손등을 턱 아래로 가져가 꽃받침을 하며 눈을 빠르게 깜빡거렸다.
“나도 있구.”
“갈게요.”
내가 바로 몸을 틀자 주다미가 다급히 목소리를 냈다.
“알았어 알았어! 성질은. 뭐 줄 거 있어서 불렀어.”
“줄 거요?”
“응, 잠깐만 있어봐?”
주다미가 꺼내든 것은 공기가 빵빵하게 차 있는 투명한 비닐봉지였다.
“짠!”
“어떤 부분에서 놀라야 되는 걸까요?”
“이게 뭔 줄 알아?”
“비닐이요.”
“아니, 이 안에 든 거.”
“······공기?”
“안개.”
“네?”
“내가 안개지대에서 가져온 안개야.”
뭔가 또 엉뚱한 소리를 하려는 것 같다.
“그걸 왜 가져왔어요?”
“너 주려고.”
“······왜요?”
“이거 일반인한테 개방되지 않은 곳에서 가져온 거야. 주변에 가잖아? 마력 농도부터가 달라.”
주다미가 내게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자, 들이마셔.”
“네?”
“안개지대에서 직접 가져온 거라니까? 얼마 전에 안개지대 관광 갔다가 초인으로 각성한 경우가 있었대. 아무래도 마력이 흐르는 안개의 영향 아니겠냐 이거지. 혹은 안개 자체에 특별한 힘이 있다거나. 실제로 그렇기도 하고.”
“그런 걸로 초인이 될 수 있으면 다 됐겠죠. 매일 안개지대에 드나드는 사람이 몇 명인데.”
“맞네?”
주다미는 마치 떠올린 생각을 바라보듯 시선을 올리더니 손에 들고 있던 비닐봉지 입구를 내 쪽으로 향했다.
바스락, 푸쉬익.
주다미가 비닐봉지를 꾹 눌러 내 얼굴을 향해 공기를 내뿜었다.
“뭐해요 진짜.”
“기껏 담아왔는데 아깝잖아.”
나는 한숨을 길게 내쉬고 말했다.
“이상한 민간요법 같은 거 관두시고, 얼른 가서 애들 밥이나 주세요.”
“너는?”
“전 쉬는 날이잖아요.”
“그냥 가게? 이따 맛있는 거 사줄게!”
“하아아아아······.”
주다미가 깔깔 웃으며 내 등을 가볍게 밀었다.
“자, 자. 둘이서 하면 더 빨리 끝나잖아. 그리고 애들이 나보다 널 더 좋아한단 말이야.”
나는 못 이기는 척 등을 떠밀리며 걸음을 옮겼다.
“애들만 아니었어도.”
차례차례 마수들에게 먹이를 줬다.
다주에 있는 마수들 대부분 안개지대에서 주다미가 직접 공수해왔다.
주다미는 ‘선천적 초인’은 아니지만, 후천적으로 힘을 얻어 위험한 안개지대를 드나들었다.
안개지대에 진입하는 이유는 대부분 마수 관찰 및 포획 혹은 사냥 때문이다.
“랄! 랄랄! 랄랄랄랄!”
새장 안에서 개 짖는 소리가 울렸다. 자세히 들어보면 왈왈 짖고 있는데 작은 몸집 때문인지 랄랄로 들린다.
개새(DogBird).
이름 그대로 개와 새를 합쳐놓은 모습인데, 개의 머리에 새의 몸을 가졌다.
개새는 어떤 종에 가까운지에 따라 생김새부터 크기, 성격까지 천차만별이라 반려마수로서 인기가 많다.
지금 매장에 남아 있는 개새는 작은 앵무새 몸에 믹스견 얼굴을 하고 있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말차 성분을 미세하게 더한 듯 은은한 초록빛 털에 구슬처럼 반짝이는 검은색 눈이 귀엽다.
“알았어, 알았어. 조금만 기다려. 밥 줄게.”
“랄랄랄! 랄랄랄랄!”
“성격 되게 급하네 진짜. 알았다니까, 조금만 기다려.”
개새도 주다미가 안개지대에서 데려온 마수다.
안개지대를 생각하니 촬영을 하러 간 형이 생각난다.
꼭 형수님 될 사람이랑 돌아오라는 말에 ‘빌런이나 안 되게 조심해야지’라며 웃던 형의 얼굴이 눈에 선하다.
―기분 좋아 보이네.
갑자기 들린 어린아이 같은 목소리.
“어?”
두리번거렸다. 주다미는 반대편에서 마수들에게 밥을 주는 중이었고, 다른 사람은 없었다.
‘잘못 들었나?’하고 생각하며 다시 사료를 푸는데 개새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 작가의말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여정을 끝까지 함께하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ᄒᴥ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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