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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객 님의 서재입니다.

한스의 그림자에 리치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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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객
작품등록일 :
2024.08.27 07:33
최근연재일 :
2024.09.1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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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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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46,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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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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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7화. 호화로운 도망1

DUMMY

7화. 호화로운 도망



한스는 강을 따라서 드래고니아고원의 더욱 깊숙한 오지로 이동 중이었다. 던전 주변에서 얼쩡거리다간 일레인과 헤스티나가 만날 것만 같았으니까. 그런데 그가 이렇게 깊은 오지로 향하는 건 헤스티나가 준 아공간에서 기막힌 아이템을 얻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커다란 위장포였는데 놀랍게도 투명 망토였다. 그것을 뒤집어쓰면 그야말로 감쪽같이 모습을 감출 수 있었다.


철벅 철벅.


한스는 자갈이 가득한 냇가의 얕은 물 속을 걷다가 강 넘어 숲으로 들어가서 걷고는 했다. 투명 위장포를 뒤집어썼지만, 발자국을 지워줄 수는 없었기에 선택한 방법이었다. 아공간엔 최고급의 다양한 옷들과 특별히 마법까지 인첸트된 장화가 있었기에 차가운 물 속을 걸어서 발자국을 남기지 않을 수 있었다. 아쉬운 건 모두 여자 옷이라 입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다만 두터운 망토는 한스가 걸치기에 충분했다. 한스와 키가 비슷한 헤스티나 왕녀였기에 크기와 넓이도 잘 맞았다.

상류로 올라갈수록 날씨가 추워져서 강이 통으로 얼어붙었다. 발자국을 남기지 않으려면 얼어붙은 얼음 위를 계속 걷는 게 좋았겠지만, 마냥 얼음 위를 걷는 건 부담스럽기도 했다. 넓은 강으로 나가면 몸을 숨겨주는 숲에서 벗어나야 했기 때문이었다. 가끔 거대한 와이번이 강을 따라 낮게 날고는 했는데, 놈이 바람을 일으키면서 머리 위로 지나갈 때면 아무리 투명 위장포를 뒤집어썼다고 해도 오금이 저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얼음 위를 걷다가 숲으로 들어가서 걷기를 반복했다.

상류로 올라갈수록 눈이 덮인 곳이 많아지더니 어느 순간 강 위까지 온통 눈밭으로 변했다. 덕분에 더는 강 위를 걸을 수 없었다. 오히려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게 되니 말이다.

한스는 강을 따라 숲속을 걸었다. 적당한 나뭇가지를 꺾어서 허리에 묶었다. 그러면 가지가 바닥에 끌리며 발자국을 지워준다. 물론 완벽하게 지우진 못한다. 나무가 끌리며 만들어진 자국도 남으니까. 그래도 그냥 발자국을 남기는 것보단 나았다. 나뭇가지가 남긴 흔적은 움푹 팬 발자국의 흔적보다 훨씬 빨리 지워지니까.


어느 순간 이동을 멈추고 설피를 만들었다.

설피 만드는 기술은 드래고니아의 장벽에서 근무하는 병사들에겐 기본적인 능력이었다. 바르고 낭창낭창한 어린 노간주나무를 베어서 타원으로 구부려 묶은 후 적당한 간격으로 밧줄을 감기만 하면 되니 말이다. 강한수의 기억에도 설피 만드는 방법이 있었다. 죄수병 고참들에게 배운 것과 크게 다르진 않았다.

설피를 신으니 훨씬 이동이 편하다.

숲속에서 걸을 땐 굳이 투명 위장포를 쓰지 않았다. 두 손으로 계속 뒤집어쓰고 다니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어차피 끌리는 나뭇가지까진 숨길 수도 없었다.


'우거진 주변의 나무와 숲이 몸을 가려주니까.'


다시 눈송이가 날리기 시작했다. 지긋지긋했지만 나쁠 건 없었다. 눈은 모든 걸 덮어주니까.


설피를 신고 이동을 계속했다.

얼마나 이동했을까? 갑자기 앞쪽에 여러 개의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 있었다.


‘고블린들 발자국이군. 내리는 눈으로 희미해지긴 했지만, 지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았어.’


장벽의 병사들은 수색조를 만들어 수시로 드래고니아 고원 내부의 몬스터들 동향과 분포도 등등을 파악해야 했다. 그 짓을 무려 10년 넘게 해온 한스였기에 고블린 발자국은 익숙했다.


‘최소 스무 마리가 넘어.’


발자국들의 분포와 방향을 읽자, 놈들이 무리 지어 이동한 방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발자국은 강가로 이어져 있었다. 한스는 아공간에서 다시 투명 위장포를 소환해 뒤집어썼다. 그리고 놈들이 이동한 것을 참작하여 숲을 돌아서 이동했다. 한참 이동하자 앞쪽으로 강둑이 보인다. 끌던 나뭇가지를 끄르고 조심스럽게 다가간 후 언덕을 기어올라 고개를 내밀었다.

멀리 강 가장자리 얼음 위에 모인 고블린들이 보였다.

놈들은 각각 키가 작고 약간 굽은 몸매를 가졌다. 피부는 잿빛과 녹슨 녹색이 섞인 놈들이 주류였고 다른 색깔도 있었다. 얼굴은 두툼한 뼈와 길쭉한 코, 그리고 큰 귀가 전형적인 모습이다. 눈은 작고 노란색이 돌며 때때로 빨간 놈들도 있었다. 입술은 두꺼운데 갈라진 부분이 많았으며 그 사이로 흉한 이빨이 튀어나와 있다.


‘고블린 놈들. 한놈 한놈은 약하지만, 독침을 쏘고 민첩해서 무리를 지어 공격하면 무서운 놈들이지.’


장벽의 병사들은 고블린 무리보단 차라리 오크 몇 마리가 낫다고 생각했다.


한동안 언덕에서 고개를 빼고 고블린들을 지켜보았다. 놈들은 몇몇으로 무리를 지어서 얼음을 깨고 있었다. 다들 열심히 작업한다.


‘뭐 하는 거지? 얼음을 깨면 뭐가 있나? 설마 물고기를 잡으려는 건가?’


지금까지 고블린을 많이 보았지만 처음 보는 광경이었기에 호기심이 생겨서 계속 지켜보았다. 얼마 후 깬 얼음구덩이 안으로 뛰어든 몇 놈이 놀랍게도 커다란 물고기를 밖으로 던지고 있었다. 물고기들은 모두 꽁꽁 얼어 있었다.


‘뭐야! 창고에 보관해 놓았다는 듯 꺼내고 있잖아?’


이해할 수 없었다. 고블린들이 인간처럼 창고를 사용할 리 없었다. 고개를 갸우뚱하던 한스는 어느 순간 어떻게 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강물이 얼면 가끔 동면하던 물고기들이 갇혀서 함께 얼어 버리는 경우가 있었다. 놈들은 지금 그런 지형을 찾아서 얼음을 깬 것이었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오면 강물이 차가워지고 얼음이 언다. 자연히 물고기들은 동면할 장소를 찾게 되는데 좋아하는 장소로는 커다란 바위 속과 같은 곳이 일반적이지만 그릇처럼 움푹 들어간 지형은 유속이 약하고 그 위로 얼음이 얇게 얼면 햇볕도 따뜻하기에 물고기들이 모여든다. 그렇게 모여들어서 동면하다가 점점 더 추어지고 얼음이 두꺼워지면 그 지형에 갇혀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함께 얼어 버리는 것이다. 물론 얼어도 물고기는 죽지 않는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다시 정상적으로 살아서 움직이니까.

고블린들은 바로 그런 장소를 찾은 것이었다. 아마 오랜 세대를 거치며 깨닫게 된 것일 것이었다.


‘살다 살다 고블린에게 배울 줄이야.’


한스는 꽁꽁 얼었지만, 주변의 지형을 꼼꼼하게 살폈다. 대충 감이 왔다. 오랜 세월 장벽에서 근무하며 지형을 읽은 눈이 높아졌기 때문이었다. 주로 유속이 빠른 곳 근처로 갑자기 유속이 약해지는 지형이었다.


‘알아두면 언제가 써먹을 날이 있겠지.’


고블린들이 연신 팔뚝만 한 물고기를 얼음 위에 던져 놓았다. 몇몇 고블린이 망태기 같은 것에 주워 담았다.


우끼끼 키키키 끄르르 킥킥.


물고기가 쌓이기 시작하자 놈들이 신나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갑자기 거대한 그림자가 놈들에게로 내리꽂혔다.


쾅 콰지직.


끼아악 켁 켁켁 끄아악.


고블린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흩어지고 있었다.


‘헉, 와이번이야.’


20m가 넘는 거대한 박쥐 날개에 삐죽삐죽한 이빨이 가득한 긴 주둥이, 파충류의 그것처럼 두꺼운 가죽과 거대한 쇠스랑 같은 발톱이 무시무시했다. 놈은 이렇게 눈보라가 심한데도 고블린들을 정확하게 공격했다.


‘고블린들의 몸에서 발산하는 열기를 볼 줄 아는 거야.’


강한수의 기억이 있었기에 와이번이 적외선 파장을 본다는 걸 깨달았다. 놀랐지만 곧 안심했다. 자신이 뒤집어쓴 투명 위장포는 적외선 파장마저 가려줄 것이니 말이다. 가시광선을 투명하게 만드는 위장포였다. 적외선 정도는 당연히 가려준다.


‘강 위를 걸을 때 스칠 듯 날아서 지나갔지만 날 공격하지 않은 이유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지.’


고블린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쳤다. 하지만 이미 와이번의 발톱에 몇 마리의 고블린이 잡혀 있었다.


크라롹.


득의 한 포효를 내뱉은 와이번이 잡은 고블린 중 한 마리의 머릴 깨물더니 곧바로 통째로 삼켜버렸다. 그 후 나머지 고블린을 거대한 발톱으로 움켜쥔 채 날아올랐다. 놈의 거대한 날갯짓에 내리던 눈이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며 요동쳤다. 멀리서 보고 있지만 압도적인 피지컬에 오금이 다 저릴 정도다. 가끔 장벽까지 날아오는 와이번들이 있었지만, 발리스타의 사격에 도망가 버리곤 했었다.


‘가까이서 보니 정말 무시무시하네. 휴, 항상 조심해야 해.’


한스는 은신하고 있던 곳에서 조용히 물러 나왔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했다.


‘투명 위장포를 옷처럼 만들어 입으면 되잖아?’


그럼 훨씬 편하고 안전할 것이었다.


‘그래. 판초우의처럼 접어보자.’


문득 강한수의 기억 속에서 군인이었을 때 비닐로 입시 판초 우의를 만들어 입었던 기억이 생각난 것이었다.


‘두건을 크게 잘만 접으면 그냥 입고 다닐 수 있겠어.’


한스는 걸음을 멈추고 투명 위장포를 접기 시작했다. 마음에 안들어서 몇 번을 풀긴 했지만, 결국엔 만들 수 있었다.

입어보니 그럴듯했다.


‘진즉 이렇게 할걸.’


두건처럼 모자를 뒤집어쓰고도 무릎 아래까지 내려가는 비옷 형태였다. 옆에서 보면 장화가 얼마간 보이긴 했지만, 위에서 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일단 두 손이 자유롭다는 게 유익했다.


‘후후후, 어떤 가혹한 환경이라도 하나씩 극복하면 되는 거야.’


뿌듯한 마음으로 몇 시간을 내리 걸었다.

눈은 여전히 내리고 있었는데 설피를 신어도 이동하기가 만만찮았다. 하지만 장벽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면서 별일을 다 겪은 한스였다. 그는 꾸역꾸역 드레고니아의 깊은 지역으로 이동을 계속했다. 또 몇 시간을 더 걷자, 공기가 차가워지고 더 건조해졌다. 고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해가 지는군.’


눈보라 속 희뿌연 잿빛 하늘이었지만 한스는 해의 위치를 정확히 알았다. 장벽의 병사들에겐 기본 능력이었다. 늦기 전에 하룻밤 묵을 장소를 물색하며 이동을 계속했다. 주변은 온통 가문비나무 군락지였다.

가문비나무는 추운 지방 전역에 분포하는 침엽수였다. 원뿔 모양으로 자라며 높이가 20m 이상으로 자라는데 가지가 많아서 나무 아래쪽으로 들어가면 눈을 피해 하룻밤 묵을 수 있을 것이었다.

한동안 이동하다가 강가에서 적당히 떨어진 커다란 가문비나무로 접근했다.


‘나뭇가지가 바닥까지 푹 처져 있어서 눈과 찬바람을 잘 막아 주겠군.’


한스에겐 눈이 내리는 야생에서 비박하는 건 익숙한 일이었다.

가문비나무의 처진 나뭇가지를 젖히고 안으로 들어갔다. 나뭇가지가 원형으로 잘 감싸고 있었다. 축 처진 가지 너머로 쌓인 눈의 높이가 처진 나뭇가지보다 훨씬 높다. 그것만으로도 밖의 찬 바람을 막아 준다. 물론 상대적일 뿐이었지만 말이다.


‘훌륭해.’


한스는 폭이 넓은 야전 허리띠 사이에 꽂아두었던 도구들을 하나씩 꺼냈다.

작은 톱과 도끼 그리고 부싯돌과 비수였다. 야생에서 생존하는 데 꼭 필요한 도구들로 기사나 고위 간부까지 장벽 근무자라면 누구라도 허리에 차고 다닌다.

한스는 톱으로 걸리적거리는 가지들을 잘라내고 공간을 확보했다.

그 와중에도 눈은 계속 내리고 있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눈이 쌓일수록 오히려 하룻밤 묵기엔 더 좋을 것이었다. 원뿔 모양의 가문비나무 가지를 타고 눈이 내려 쌓이면서 내부는 그만큼 더 따뜻할 테니까.

무엇보다 한스에겐 헤스티나 왕녀가 준 아공간이 있었다. 그곳엔 야외에서 벌어질 비상시를 대비해서 텐트가 두 종류나 있었다.

여러 명이 쓸 수 있는 큰 것도 있었고 두 명이 누우면 딱 맞는 것도 있었다.

두 명이 누울 수 있는 텐트는 그네처럼 높은 곳에 매달 수 있었다. 직사각형 모양의 바닥엔 가볍고 튼튼한 금속이 촘촘한 그물 모양으로 얽혀 있어서 그 위에 양모 카펫을 깔고 침낭을 펴면 체온만으로도 편안하게 잘 수 있을 것이었다.

기능성이 좋아서 접을 땐 양쪽을 잡고 각도만 좁히면 격자 모양이 좁아지면서 금방 부피가 줄었다. 한스는 고개를 젖히고 텐트를 묶을 나뭇가지를 찾았다. 곧 적당한 가지를 찾을 수 있었다.

위로 기어 올라가 텐트를 걸고 아래로 내려와 카펫을 깐 다음 외부엔 판초 우의로 만들었던 투명 위장포를 펼쳐서 덮었다. 덮고 보니 투명 위장포가 원래 이런 용도로 쓰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젠장, 왕족은 왕족이군. 노숙을 해도 차원이 달라.’


새삼 감탄하며 텐트 바닥을 손으로 눌러보니 탄탄하다. 해먹은 바닥이 처져서 잠자기 불편했는데 이건 완벽했다. 곧바로 침낭을 소환해 펼쳤다.


“완벽하네.”


한스는 주변을 다시 한번 점검한 후 텐트 안으로 엉덩이를 걸쳤다. 그네처럼 매달린 텐트가 좌우로 조금씩 흔들린다. 한스는 장화와 망토 외투 등을 모조리 아공간으로 역 소환했다. 순식간에 내의만 입은 상태가 되었다. 아공간이 있으니 정말 편리했다.


“읏 춥다.”


옷을 벗자 엄청난 추위가 몰려든다. 얼른 침낭 속으로 들어가서 누웠다.


“아, 정말 좋네.”


침낭 안으로 들어가 누운 것만으로도 따뜻했다.

그 상태로 손만 뻗어서 텐트의 입구를 닫았다. 단추가 아니라 현대의 캠핑 장비처럼 지퍼로 되어 있었기에 어렵지 않게 닫을 수 있었다. 왕족의 물건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

편안하게 누워 있으니, 세상을 다 가진듯하다.


‘텐트를 아예 펼쳐서 아공간에 저장해 놓을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펼쳐서 저장하면 부피가 너무 컸다. 대신 접을 땐 억지로 접을 필요가 없었다. 역 소환하면 접힌 상태로 저장되니까.

누워있으니 침낭 안이 점점 더 따뜻해진다.

보통 지금과 같은 추위에서 노숙하려면 모닥불을 피워놓는다. 몬스터들도 이렇게 추운 밤은 움직이지 않기에 불을 피워도 문제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밤새 경계는 서야 했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큰 고통이다. 그런데 지금은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다.


‘감탄스럽네. 불을 피우지 않아도 이렇게 따뜻하다니.’


몸이 따뜻해지니 피로와 허기가 밀려왔다.

허릴 일으키고 앉아서 물주머니를 꺼내 한 모금 마셨다. 가슴이 시원할 정도로 상쾌하다.

강을 따라 오르다가 그동안 마신 빈 물주머니를 모두 채워 놓았다. 던전이 무너지고 지하에서 일주일 이상 있었다. 그동안 물을 많이 소비했었기에 맑은 물은 가득 채워 놓은 것이었다. 음식은 여전히 넉넉했다.

빵과 치즈와 염장한 고기 등등 브랜디와 와인까지. 한스는 먹고 싶은 대로 꺼내서 먹었다.

왕족이 먹는 빵은 정말로 맛있었다. 견과류와 말린 과일 그리고 각종 향신료가 잔뜩 들어간 빵을 처음 먹었을 땐 너무나 맛있어서 비명을 지를 뻔했었다. 그리고 케이크도 있었다. 그 비싸다는 설탕으로 만든 케이크가 말이다.

한스는 내친김에 브랜디를 꺼내서 곁들여 마셨다.

어느 순간 눈보라가 강해졌다.


‘폭풍이 부는군. 휴, 헤스티나의 아이템이 없었다면 끔찍했을 거야.’


정말 좋았다.

헤스티나 덕분에 그야말로 호화로운 도망자가 될 수 있었다.


'이건 뭐, 도망이 아니라 휴가라 해도 될 것 같아.”


배가 부르니 잠이 몰려온다.


드드렁 드드렁.


밖은 세찬 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몰아쳤지만, 텐트 안엔 코고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한스의 몸 위에서 어둠보다 더 어두운 그림자가 일어섰다.

잉크라트의 분체가 짜증 난다는 듯 소리쳤다.


“시불, 코 고는 소리가 너무 커.”

“상관없다. 이 텐트는 마법 인첸트가 되어 있어서 안의 소리가 밖으로 새지 않으니까.”

“후대의 인간들, 잔재주는 좋군.”

“퇴행한 거다. 모든 게 조잡한 수준이니까.”

“하긴. 인드라퓨리에 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는 일이지. 엔진의 코어는 그대로 두고 껍데기만 폭파한 것만 봐도 말이야.”

“인드라퓨리는 과거에도 최고의 마법 공학이 집약된 전함이었다. 그러니 지금의 인간들이 이해하긴 어려웠을 거다.”

“그건 그렇고 이놈에게 마나 호흡법을 알려주는 건 어떻게 되어 가고 있냐?”

“하나의 방법을 찾긴 했다.”

“오, 무슨 방법인데?”

“녀석이 잠들면 꿈의 형태로 간여할 수 있을 것 같다.”

“마나가 한 톨도 없어서 마법을 쓰지 못하는데도 가능한 거냐?”

“마나와 상관없이 녀석의 정신에 조금은 간여할 수 있다.”

“정신에 간섭이 가능하다고?”

“녀석은 우리와 라이프베슬로 연결되어 있다. 서로에게 조금씩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아무튼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거잖아?”

“그렇다.”

“시불, 그럼 빨리 녀석의 정신을 장악해야지.”

“조금씩이라고 했다.”

“아, 답답하네.”

“오히려 다행인 거다. 지금으로선 우리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 어디까지나 이 몸의 주인이 녀석이란 걸 잊지 마라.”

“무능한 놈.”

“단 녀석이 마나 호흡을 익히고 마나를 쌓게 된다면 우리가 우위에 설 수 있다. 그땐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되니까.”

“시불, 꿈속에 나타나든 뭐든 빨리 마나를 익히게 만들라고. 최고 효율을 자랑하는 마나 호흡법으로.”

“당연히 고금 최고의 호흡법인 스카론의 검공을 가르칠 것이다.”

“오, 그래야지. 그 정도는 되어야지. 우리의 몸이 될 놈인데.”


분체가 득의 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한스는 어느 때보다도 편안한 상태로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감사합니다.


작가의말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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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화. 호화로운 도망1 NEW +1 13시간 전 197 19 17쪽
21 6화. 그림자 속의 리치2 +5 24.09.18 307 24 14쪽
20 6화. 그림자 속의 리치1 +4 24.09.15 409 24 16쪽
19 5화. 흙더미 속에서2 +5 24.09.14 412 25 17쪽
18 5화. 흙더미 속에서1 +5 24.09.13 401 23 16쪽
17 4화. 강요된 정사4 +1 24.09.12 432 22 15쪽
16 4화. 강요된 정사3 +6 24.09.11 424 24 19쪽
15 4화. 강요된 정사2 +5 24.09.10 433 22 13쪽
14 4화. 강요된 정사1 +2 24.09.09 463 25 12쪽
13 3화. 진짜 유물5 +7 24.09.07 480 31 16쪽
12 3화. 진짜 유물4 +2 24.09.06 479 32 15쪽
11 3화. 진짜 유물3 +3 24.09.05 491 36 16쪽
10 3화. 진짜 유물2 +4 24.09.04 512 33 17쪽
9 3화. 진짜 유물1 +3 24.09.03 584 33 16쪽
8 2화. 어떤 복수4 +4 24.09.02 600 36 13쪽
7 2화. 어떤 복수3 +2 24.08.31 610 36 12쪽
6 2화. 어떤 복수2 +3 24.08.30 650 35 12쪽
5 2화. 어떤 복수1 +5 24.08.29 720 39 14쪽
4 1화. 던전4 +3 24.08.28 708 43 12쪽
3 1화. 던전3 +3 24.08.27 722 48 12쪽
2 1화. 던전2 +6 24.08.27 757 45 12쪽
1 1화. 던전1 +11 24.08.27 979 49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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