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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객 님의 서재입니다.

한스의 그림자에 리치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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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객
작품등록일 :
2024.08.27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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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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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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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4화. 강요된 정사3

DUMMY

한스는 놀라서 가슴이 마구 뛰었지만,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


“하하, 잘도 따라 들어왔군요.”

“흥, 당신은 쥐새끼가 맞았어요. 살려둘 수가 없겠네요. 잔머리를 잘 굴리는 쥐새낀 피곤하거든요.”

“나 참, 사람의 목숨을 가볍게 여기는 것까지. 똑같네.”

“무슨 소리죠?”

“너나 일레인이나 똑같다고.”

“이익, 감히 그녀와 나를. 먼저 당신의 그 혓바닥을 뽑아놔야겠어요.”


한스는 어차피 일이 어그러졌다는 생각에 구차해지지 않기로 했다.


“큭큭, 어쩌면 그렇게 똑같은 거냐? 일레인도 먼저 내 몸에서 뭔가를 뽑겠다고 했었거든.”


헤스티나의 표정이 흉하게 일그러졌다. 곧 억지로 화를 억누르더니 말했다.


“분명히 말하는데 본 왕녀는 일레인이 아니에요. 그녀처럼 선량한 사람을 죽이진 않거든요.”

“웃기네. 내가 선량하지 않다는 거냐?”

“그래요. 당신은 선량하지 않아요.”

“어째서? 증거를 대라. 증거도 없이 그냥 느낌이나 감정으로 죽이겠다면 일레인과 다를 게 없잖아.”

“일레인이 당신을 살리려고 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어요.”

“그게 어떻게 증거란 말이냐?"

"그것보다 더 확실한 증거는 없지요."

"와, 정말 대단하네.”

“뭐가 대단하단 거죠?”

“일레인을 미워하는 네 마음 말이다. 얼마나 미우면 그녀가 나를 살리려고 했다는 이유가 증거라고 우기는 건지 말이다.”

“우기는 게 아니에요. 일레인처럼 사악한 인간이 살리려고 애를 쓴다면 당신도 사악한 것이니까요.”

“그게 바로 억지란 거다.”

“흥, 억지 아니네요. 일레인이 아니더라도 본 왕녀가 지금까지 지켜본 당신은 죽어 마땅했어요.”

“증거를 대라니까. 합당하면 인정하고 죽겠다.”

“일레인과 내가 싸우는 사이를 틈타 몰래 인드라퓨리에 잠입하려고 했어요.”

“하, 그게 어째서 내가 선량하지 않다는 증거인 거지?"

"당신은 자격이 없어요. 평범한 병사일 뿐이잖아요. 그렇게 과욕을 부리는 자는 절대 선량하지 않아요."

"시발, 귀족이 아니면 사람도 아닌 거냐? 아니 그러는 넌 자격이 있고? 인드라퓨리는 원래 네 것이 아니었잖아. 우리는 모두 남을 것을 훔치려는 도둑놈일 뿐이야.”

“흥, 시간 낭비를 했네요. 이만 당신의 혓바닥을 뽑아야겠어요.”


분노한 얼굴로 사뿐사뿐 다가들어 반쯤 누워있는 한스의 가슴을 발로 밟았다. 한스는 힘을 주어 보았지만, 마치 프레스로 가슴을 누르는 것 같은 압력이다. 컥컥거리며 다급하게 머릴 굴렸다.


'시발, 쉽게 포기하면 안 되는데 열 받아서 감정적으로 대응했었네.'


그는 어떻게 해야 이 난관을 극복할지 머릴 굴렸다. 그러다가 좋은 방법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바로 일레인이었다.


'바보처럼 흥분해서는 미리 생각하지 못했어.'


헤스티나가 어느새 검을 뽑아서 입 쪽으로 내밀고 있었다. 다급하게 소리쳤다.


“부, 부탁이 있다. 일레인이 깨어나면 날 살리려 한 거 조금도 고맙지 않았다고 전해 줘라.”


그녀가 막 한스에 입안으로 검을 밀어 넣으려다 멈칫하더니 곧 검을 거두고 발에서 힘을 뺐다. 한스는 겉으로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내심으론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일레인 카드가 너무도 잘 먹히고 있었다.

헤스티나가 말했다.


“혓바닥도 안 뽑고 죽이지도 않을게요.”

“가, 갑자기 무슨 이유냐?”


일부러 놀란 듯 소리쳤다. 헤스티나가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말했다.


“당신의 매끄러운 혓바닥 때문에 당신이 일레인에게 중요한 존재라는 걸 깜빡했었네요. 그 이유를 알아보는 것도 중요한 일인데 말이에요.”

“큭큭큭. 우습군.”

“뭐가 우습죠?”

“네가 말하라고 하면 내가 말할 것 같냐?”

“흥, 그럼 곱게 죽지 못할 것이네요.”

“곱게 죽지 않으면?”

“혓바닥을 뽑고 눈알을 파내고 팔과 다릴 뽑을 것이에요.”

“큭큭큭, 대단해. 왕족이나 귀족들은 하나같이 사람 목숨을 우습게 안다니까.”

“당신은 선량한 사람이 아니거든요?”

“증거를 대라니까.”

“조금 전 이미 말했네요.”


엄청난 신분에 엄청난 능력을 갖추고 있는데 생각하는 건 정말 편협했다. 한스만의 기억이 아니라 강한수의 기억을 되찾았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것이겠지만, 뭔가 언벨런스한 헤스티나 왕녀의 사고방식을 생각하자 그녀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아무튼 안 해. 말해도 어차피 죽일 거잖아?"

"난 한 말은 꼭 지켜요. 이유를 말해준다면 절대로 죽이지 않을 것이에요."


내려다보는 헤스티나의 눈에서 참을 수 없는 호기심이 엿보인다. 그것을 이용하면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었다.

한스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정말로 살려준다면 못 할 것도 없지."

"약속해요. 그러니 말하세요."

"알았다. 일레인이 나를 살리려는 건 나를 괴롭히려고 그러는 것이다. 너의 예상과는 달리 난 일레인의 적이다. 그녀는 아마 너보다 나를 더 미워할 거다.”

“적인데 전투 중 자신이 위험해질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살리려 했다고요?”

“지독하게 미우니까. 내가 죽으면 더는 날 괴롭힐 수 없으니까. 살려놓고 두고두고 괴롭히고 싶으니까.”


헤스티나가 멍한 표정으로 한스를 내려다보았다. 약간의 시간이 흘렀고 그녀의 얼굴엔 더욱더 강렬한 호기심이 떠올라 있었다.


“음, 아직 핵심을 말하지 않은 것 같네요? 그녀가 어째서 당신을 미워하게 된 거죠?”

"그것까진 말하기 싫다."

"분명히 살려드릴게요. 약속한다니까요."

"말해도 믿지 않을 거다. 아니 오히려 거짓말했다고 나를 죽이려 들겠지.”

“진실이라면 난 알 수 있어요."

"믿기 어렵다."

"난 코림트의 왕녀예요. 난 공정하고 정의로워요.”


한스는 코웃음이 나왔지만 잠시 고민하는 척했다. 사실 너무 쉽게 말하면 더욱더 믿지 않을 것이었기에 밑밥을 까는 중이었다.


'아직 뜸이 덜 들었어.'


한스는 갈등하는 척하다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솔직히 말로만 한 약속은 믿지 않는 편이라서 말이야.”

"감히. 코림트의 왕녀인 내 말을 믿지 않겠다는 건가요?"

"목숨이 달렸잖아."

“흥, 당신은 존중할 필요가 없군요."

"시발, 죽이겠다면 죽여라."

"고통을 자초하는군요? 때론 죽는 게 더 좋을 수도 있답니다.”

“무, 무슨 소릴 하는 거냐?”


그녀가 허릴 숙이더니 팔을 뻗어서 한스의 머리카락을 잡고 들어 올렸다. 마치 가벼운 솜뭉치처럼 들린 한스였다. 그녀가 한스의 얼굴을 자신에게로 돌린 후 말했다.


“좋게 말하니까 만만하게 보이나 보네요. 가볍게 눈알 하나를 파내고 시작할게요.”


너무 뻗댄 건 아닌지 걱정되었지만 한 번 더 내지르기로 했다.


“마음대로 해라.”

“흥, 어리석군요.”


헤스티나는 한스의 머리카락을 움켜잡고서 그의 머리를 뾰족한 장식이 돌출된 벽으로 가져갔다. 버둥거리며 반항해 보았지만, 그녀의 팔은 기중기 같았다. 벽의 뾰족한 부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헤스티나가 말했다.


“여기서 살짝만 힘을 줘도 저것이 당신의 눈을 꿰뚫겠지요. 마지막 기회를 주죠. 아직 말하고 싶지 않다면 그렇다고 하세요.”


한스는 곧바로 두 손을 들어 올리고는 소리쳤다.


“졌다. 항복.”

“내가 공정하고 선량한 코림트의 왕녀란 것에 감사하세요. 하지만 또다시 교활하게 머릴 굴리면 다신 멈추지 않을 것이에요?”

“눈알이 터지게 생겼는데 무슨 머릴 굴린다는 거냐? 너도 약속한 건 꼭 지켜야 해.”

“알았으니 말하세요.”

“아프다. 일단 머리카락 좀 놔줘.”

“먼저 얘기부터 하셔야 해요.”

“젠장할, 일레인이 나를 살리려는 건 내가 그녀와 잠자리를 가졌기 때문이야.”

“뭐? 무슨 소리죠?”


헤스티나가 당황한 듯 반문했다.


“그녀와 섹스했다고.”


섹스란 말에 잡고 있던 한스의 머리카락까지 놔 주고는 그대로 굳어버린 그녀였다. 한스는 생으로 뽑힐 것 같았던 덥수룩한 머리카락을 두 손으로 정리하며 그녀를 향해 돌아서서 소리쳤다.


“그래서 날 살려두려는 거다. 내가 죽어버리면 오래 괴롭힐 수 없으니까. 내가 지독히 미우니까.”

“지, 지금. 그 말도 안 되는 말을 나보고 믿으라는 것인가요?”

“역시 믿지 않는군. 뭐 예상했던 일이다."

"다, 당신이 지어낸 말일 수도 있잖아요?"

"그렇다면 과연 지어낸 이야긴지 들어보고 판단해라.”


한스는 공동에서 일어난 일을 하나하나 이야기했다. 코림트 병력이 공격해 온 사실까지 그럴듯하게 섞어서.

사실 한스가 이렇게까지 설명하는 건 헤스티나를 설득하려는 게 아니었다. 왜냐하면 지금 하는 이야기는 헤스티나가 아니라 일레인이 들으라고 하는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그랬다. 한스는 조금 전 일레인이 깨어났다는 걸 눈치챘다. 그래서 더욱 적나라하게 이야기해야겠다고 판단했다. 깨어난 일레인이 열 받는 만큼 다시 헤스티나와 싸우게 될 테니까. 둘이 싸운다면 아직 조종실을 차지할 기회가 있었다.

자신이 설명할 때마다 파르르 떨리는 일레인의 눈꺼풀을 본 한스는 더욱 신나서 떠들었다.


헤스티나 왕녀는 한스가 설명을 끝냈는데도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녀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럴듯하지만 믿을 수 없어요?”

"젠장, 지금까지 내가 한 말 중 개연성이 없거나 어색한 것이 있었더냐?”

“음, 당신 말이 사실이라면, 일레인이 당신을 살리려 한 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에요.”

“당연한 거라고?”

“그래요. 당신이 그냥 죽어버리면 평생 화가 나서 미쳐버릴 테니까요. 그런 것을 보면 당신 말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닌 것 같기도 하네요.”

“뭔 소리냐?”


한스가 알아들을 수 없다는 듯 소리치는데 갑자기 헤스티나의 얼굴이 묘하게 실룩거렸다. 그러다가 급기야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아하하, 깔깔깔. 통쾌하잖아. 아, 이렇게 통쾌할 줄이야. 큭큭큭. 그렇게 잘난 척하더니. 정말 웃겨. 깔깔깔깔 깔깔깔 어흐흑, 아이고, 아이고 배야. 너무 웃었더니 배가 다 아프네.”


한참을 정신 나간 듯이 웃는 헤스티나이였다. 얼마나 격하게 웃는지 몸을 가누지 못하고 휘청거릴 정도다. 순간적으로 그녀를 공격해서 제압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곧 그런 생각을 접었다. 현재 그녀는 그야말로 게임의 고인 물 같은 존재였다. 그에 비해서 자신은 뉴비였다. 그녀가 뒷짐 지고 가만히 있어도 그녀를 어쩌지 못할 것이었다.

한참을 웃어대던 그녀가 겨우 진정하더니 말했다.


“좋아요. 조종실로 올라갈 테니 앞장서세요.”

“분명히 살려주는 것으로 약속했다."

"난 코림트의 왕녀라고 했잖아요."

"알았다.”


한스는 순순히 조종실로 올라가는 계단을 걸었다.


‘젠장할. 일레인아. 깨어났으면 뭔가 해야 하잖아. 이야기가 다 끝나도록 그냥 눈꺼풀만 파르르 떨고 있으면 어쩌자는 거냐?’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일단 헤스티나의 말을 들으며 기회를 보는 수밖에.

계단을 오르자 다시 직선으로 난 복도가 20여 미터 이어졌다. 마침내 그 끝에 이르렀고 조종실이 있었다. 헤스티나가 말했다.


“여세요.”


예의 문양에 손을 가져다 대자, 조종실의 문이 좌우로 갈라졌다.


“신기하네? 진짜로 열리다니? 아무튼, 먼저 들어갈게요.”


헤스티나는 철저했다. 먼저 안으로 들어간 후 한스를 따라 들어오게 했다. 한스가 안으로 들어가자, 그녀가 들고 있던 일레인을 내밀었다.


“뭐, 뭐냐?”

“소중한 부인이잖아요. 꼭 안고 있도록 하세요.”


한스가 질겁하자 그녀가 차갑게 말했다.


“빨리 안으세요. 그리고 꼭 안은 후 절대로 팔을 풀지 마세요. 어긴다면 그땐 눈알을 하나씩 뽑을 것이에요.”

“살려 준다며?”

“눈알을 뽑는다고 죽진 않아요.”

“젠장할.”


한스가 욕을 했지만, 그녀는 무척이나 기분 좋은 표정이었다. 한스는 어쩔 수 없다는 일레인을 받아서 안았다.


“더욱 다정하게 안으세요.”


한스는 일레인을 바짝 끌어안았다.

헤스티나는 매우 즐거워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말했다.


“축 늘어진 일레인의 모습은 좀 그러네요. 저기 소파가 있군요. 저기로 가서 다정하게 안고 앉도록 하세요.”


한스는 순순히 소파로 가서 일레인을 마주 껴안고 앉았다, 헤스티나 왕녀는 그것으로도 모자란다고 생각했는지 다가와서 직접 한스와 일레인의 포즈를 만들어 주었다.

덕분에 소파에 비스듬히 누운 채 일레인을 정면으로 다정하게 안은 모습이었다.


“깔깔깔. 다정해 보이네요. 일레인도 행복해할 거예요. 처녀를 바친 사내에게 푹 안겨 있는 것이니까요.”


즐거워서 어쩔 줄 몰라 하는 헤스티나를 보면서 한스는 욕을 마구 퍼부었다.


‘어진 왕녀는 개뿔. 일레인과 하등 다를 것 없는 년이.’


헤스티나가 웃고 기뻐할 때마다 안고 있던 일레인의 몸이 잘게 떨리는 게 느껴졌다.

그것만으로 불안하고 오싹했다. 일레인이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한스는 정말 불안했다.


‘시발, 어째서 꼼짝 못 하는 거냐고? 제기랄, 아직 몸이 회복된 게 아니었어.’


그사이 헤스티나가 조종석으로 다가들고 있었다.

인드라퓨리의 조종실은 생각보다 컸다.

헤스티나가 걸어 나간 앞쪽엔 배의 방향을 조종하는 키륜이 있었고 휠 좌우로 수십 개의 수정 구슬들이 박혀 있었다. 그중 가장 큰 수정으로 다가간 헤스티나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침내 인드라퓨리가 내 것이 되는 거야.”


그녀가 은은하게 형광으로 빛나는 수정 구슬에 손바닥을 뻗었다. 그곳을 누르고 자기를 등록하면 인드라퓨리의 주인이 될 것이었다.


‘일레인아 일레인아. 어째서 결정적인 순간인데도 가만히 있는 거냐?’


한스는 안타까워서 내심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정말 실망스러웠다. 이대로라면 인드라퓨리는 헤스티나가 차지할 것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한스의 귀에 일레인의 목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조금만 시간을 끌어. 어떻게든.”


그녀는 다정하게 한스의 어깨에 머릴 얹고 있었기에 아주 작게 속삭여도 한스는 분명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시간을 끌라고? 역시 몸이 완전하지 않았구나.’


한스는 막 수정 구슬로 손을 가져가는 헤스티나를 향해 무작정 소리쳤다.


“젠장, 그런데 이건 아니잖아?”


막 수정 위에 손을 얹으려던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짜증이 어린 표정이다.


“뭐가 아니란 거죠?”

“여길 나가야겠어. 그러니 지금 풀어줘."

"불가해요."

"인드라퓨리를 얻고 나면 날 죽일 거지?”


헤스티나가 비웃음 어린 얼굴로 말했다.


“당신은 장수할 것이에요.”

“뭔 소리냐?”

“당신은 일레인의 남편이 되었잖아요. 그러니 장수해야죠. 그래야 오랫동안 그녀와 사랑을 나눌 것이 아니겠어요?”

“휴, 솔직히 이해가 안 돼? 너흰 동문수학한 사이인데 어째서 서로를 그토록 미워하는 거냐? 설마 서로 치정 따위로 엮인 거냐?”


헤스티나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일레인도 꿈틀한다. 그 순간 한스는 유명한 소문 하나를 떠올렸다. 그것은 그녀들이 신성 교국의 아카데미 유학 시절 한 남자를 사랑했었다는 소문이었다.

사실 일레인과 헤스티나는 어릴 때부터 코작크 왕국과 코림트 왕국의 마스코트 같은 존재였다. 그런 그녀들이 한 남자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대륙의 가십거리가 되기에 충분했다. 장벽에서 근무하는 한스가 들었을 정도로 말이다.


‘상대가 아스테리온 마르테인 이었다면 그녀들이라도 빠져들 만하지.’


아스테리온 마르테인 드 레디안. 최연소 소드마스터이자 성기사이며 빛의 수호자. 그야말로 대륙 최고의 미남이자 모두가 추앙하는 영웅이었다.

심지어 그의 신분은 무려 대륙 북부 룸 제국 황제의 외 조카였다. 제국 최고의 귀족 신분임에도 17세에 소드마스터 경지에 도달한 천제 검사. 20세엔 대륙 북방 백색 산맥 마족의 땅 고르고스의 결계를 방어했던 빛의 기사. 그리고 지금은 신성 교국을 대표하는 성기사 팔라딘이었다.

그가 갑자기 종교에 귀의하고 교국의 팔라딘이 된 것엔 여러 소문이 있었다.


‘역시 근거 없는 소문은 없는 것이구나.’


질투에 눈이 먼 일레인과 헤스티나가 아스테리온이 사랑한 여인을 죽게 했다는 소문을 들었었다. 장벽에서 하루하루 생존하기 바빴던 한스로서는 쓰잘데기없는 소문이었고 관심도 없었기에 자세한 내용은 몰랐지만 그런데도 알고 있을 정도의 이야기였다.

한스가 잠깐 그녀들 관계를 생각하는 사이 헤스티나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당신은 정말,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떠들어 대다간, 아무리 본 왕녀가 살려준다는 약속했지만 지키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걸 알아두세요.”


싸늘하게 소리친 헤스티나를 마주하니 오한이 들 정도였다. 그만큼 치정에 관한 이야기에 민감한 것이었다.

한스는 그것으로 소문이 진짜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잠시 한스를 노려보던 헤스티나가 고개를 돌리고 다시 수정 구슬로 손을 가져갔다. 한스는 다시 소리쳤다.


“잠깐.”


헤스티나가 고개를 돌리는데 더없이 싸늘한 표정이다.


“당신 설마? 내가 인드라퓨리를 얻는 걸 방해하려고 그러는 건가요?”

“하하, 눈치챘네. 맞아. 난 지금 네가 그 수정구에 손을 올리지 못하게 방해하는 거야.”

“깔깔깔, 웃기는 분이네. 그렇게 말로 방해한다고 방해가 될까요?”

“시간을 끌었잖아.”

“흥 시간을 끌어서 무엇을 한다는 거죠?”

“쯧쯧, 순진하네. 시간을 끈 게 나일 것 같아?”


헤스티나 왕녀의 표정이 묘하게 바뀐다. 내게 안겨 있는 일레인에게 눈빛이 고정되더니 급기야 눈을 부릅뜬다.


“설마. 그녀가 시킨 건가요?”

“이제 눈치챈 거야?”

“이익.”


헤스티나가 다급하게 몸을 날렸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한스에게 미치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크윽 큭.


고통에 겨운 신음이었다. 그 순간 일레인이 한스의 품에서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짝.


어정쩡한 자세로 올려다보는 한스의 뺨을 냅다 갈긴 일레인이 싸늘하게 말했다.


“잘했어. 나를 열받게 한 건 감점이었지만 말이야.”


얼굴을 마주하자 살벌하다.


‘시발. 잘한 건지 모르겠군.’


그래도 일레인보단 헤스티나가 낫지 않을까 싶었다. 적어도 헤스티나는 사악해 보이진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미 늦었다. 일레인이 쓰러진 헤스티나 왕녀에게 득의 한 표정으로 다가들고 있었다.


‘휴, 모르겠다.’


한스는 일단 인드라퓨리의 주인이 결정되는 걸 막은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그런데 얼마 후 그는 연신 일레인에게 욕을 내뱉으며 격렬하게 허릴 움직이고 있었다.

어째서냐고? 조종실의 소파에서 섹스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누구와 정사를 치르느냐고? 바로 헤스티나 왕녀였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일레인이 강제로 그에게 강요된 정사를 벌이도록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감사합니다.


작가의말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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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3화. 진짜 유물2 +3 24.09.04 422 28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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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2화. 어떤 복수1 +3 24.08.29 603 37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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