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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객 님의 서재입니다.

한스의 그림자에 리치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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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객
작품등록일 :
2024.08.27 07:33
최근연재일 :
2024.09.18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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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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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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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416

작성
24.08.27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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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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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글자
12쪽

1화. 던전3

DUMMY

한스는 막상 다급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놈. 절대 쉽게 죽지 못할 것이다. 약속하지.”


수정관에 금이 간 때문인지 분노한 일레인의 목소리가 작았지만, 귀에 들려왔다. 온몸에 소름이 마구 돋았다. 그녀의 분노가 생생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고위 전투 마법사라는 소문이 있더니 정말이었어.’


오싹하게 질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일레인 공녀에 관한 소문은 많았다. 그중 마법 천재란 소문도 있었다. 하지만 한스는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었다. 소문이란 늘 과장되기 마련이니까. 그런데 지금 마법을 퍼붓는 것을 보자 오히려 소문이 부족하단 생각이 들었다.

한순간 일레인의 손에 죽느니 빨리 미라가 되는 게 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으, 수정관아. 빨리 작동하지 않고 뭐 하는 거냐?’


그나마 다행인 건 수정관에 금이 가긴 했지만, 완전히 깨지진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런 것을 보면 대단히 튼튼한 수정관이었다.

미친 듯 마법을 난사하던 그녀가 갑자기 동작을 멈췄다.

잠시 수정관을 노려보던 그녀가 검지를 하나만을 뻗어서 수정관에 가져다 댔다. 그 손가락에서 희미하게 빛이 뿜어지더니 어느새 숯불에 달궈진 쇠처럼 하얗게 빛나기 시작했다.

곧 그녀의 손가락이 닿은 수정관이 붉게 달아오르더니 안으로 밀려들기 시작했다. 엿가락처럼 녹아내리며 그녀의 손가락 모양으로 밀려드는 것이었다. 한스는 석상처럼 굳어져서 침만 꿀꺽 삼켰다. 녹아내리다가 구멍이 조금이라도 뚫린다면 그 사이로 그녀의 전격 마법이 날아들 것이고 바로 통구이가 될 것이었다.


찌지지직.


수정관이 밀려 들어오며 듣기 거북한 소리가 연신 들려왔다. 금방이라도 구멍이 날 것 같았다. 한스는 버럭 소리쳤다.


“시발, 차라리 미라가 되고 싶다고.”


간절한 마음으로 소리쳤지만, 수정관은 여전히 작동하지 않았다.

정말이지 일레인 공녀의 손에 죽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 지는 것이었다. 기껏 욕을 실컷 퍼부었는데 그녀의 손에 죽으면 그녀가 통쾌해할 테니까.

그건 너무나 억울한 일이었다. 그래서 빌고 빌었다.

다행히 한스의 소원이 통했는지 어느 순간 수정관이 진동하더니 빛을 뿜기 시작했다. 그 순간 다급하게 수정관에서 손가락을 떼고 물러나는 일레인이었다.

한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뚜껑을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손가락 모양으로 밀려들어 오긴 했지만, 다행히 뚫리진 않은 것 같았다. 물러난 일레인은 약이 바짝 오른 표정으로 마구 마법을 난사했다. 하지만 그녀의 마법도 수정관이 내뿜는 빛에 닿자 힘없이 사그라들었다. 수정관에서 뿜어지는 빛이 그녀가 날리는 강력한 전격 마법을 흡수하는 것이었다.

수정관의 빛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밝아지고 강해졌다. 빛이 점점 더 강해지자, 그 빛에 가려져서 수정관 밖의 모습이 희미해지고 있었다. 물러나서 마법을 난사하던 일레인의 모습도 흐릿해졌다.

갑자기 우스웠다.

한스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젖히고 통쾌하게 웃어댔다.


“으하하, 시발, 네년의 손엔 절대로 안 죽어. 으하하.”


미친 듯 웃으며 소리치는데 뿜어지는 빛무리 너머로 흉악하게 일그러진 일레인의 표정이 더욱 일그러지는 것이 보였다. 한스는 그런 그녀를 보면서 친절하게 다시 한번 중지를 추켜세워 주었다. 그녀가 미친 듯 마법을 난사했지만, 뿜어지는 수정관의 빛 앞에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어느 순간 그녀의 모습이 완전히 흐릿해졌다. 그만큼 수정관에서 뿜어지는 빛이 강해진 것이었다. 한동안 통쾌하게 웃던 한스는 곧 허탈하게 무너졌다.

무력감과 허무함에 사로잡혔다.

눈을 감았다.


‘시발, 죽기 전에 오르가즘이나 한번 느껴보자.’


섹스한 기억은 하도 오래되어 기억도 나지 않는다.


‘처음엔 쾌락이었어. 나중엔 고통이었지만 그건 나중의 일이고.’


한스는 눈을 감고 쾌락의 순간을 기다렸다.


‘수정관아. 최고로 강렬한 쾌감을 선사하기를 바란다.’


눈을 감고 기다렸다. 그런데 웬걸. 쾌락이 아니라 고통이 찾아왔다.


“큭, 뭐지? 어째서 고통이 먼저냐고? 크으윽.”


끔찍한 고통이었다. 창날 여러 개가 생살을 쑤셔대고 헤집는 느낌이다.


‘크헉, 다, 다른 죄수병은 쾌락이 먼저였잖아. 난 왜? 어째서냐고?’


억울했다. 하지만 억울하단 생각도 이어갈 수가 없었다. 너무나 강렬한 고통이 끊임없이 밀려들었기 때문이었다.


크으윽.


그 고통은, 결코 상상해 본 적도, 단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던 그런 고통이었다.

무엇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가중되고 있었다. 그야말로 뼈를 모조리 조각내는 느낌이다. 아니 너무 진부한 표현이었다. 그런데 표현할 다른 말은 생각나지 않았다. 그야말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으니까.


‘크으윽. 뼈에다가 정말로 뭔가를 새기고 있어?’


문득 마법사가 마물이나 몬스터의 육체를 강화하는 수정관이라고 한 말이 생각났다. 하지만 곧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여전히 수정관 앞에서 분노한 채 바라보는 일레인의 존재조차도.

시간이 흐르며 고통으로 몸이 웅크려지다 못해 오그라들었다. 이를 악물고 버텼다. 하지만 파도처럼 밀려오는 고통은 인간의 의지력으로 참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으, 차라리 일레인에게 죽는 게 나았어.’


자존심이고 뭐고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그야말로 이 끔찍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스의 몸은 점점 더 쪼그라들었다.

어느 순간 한스는 비명을 내지르며 발버둥 쳤다. 하지만 끈적한 아교처럼 눌어붙은 고통은 조금도 약해지지 않고 그를 괴롭혔다.

다시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급기야 정신이 흐릿해진다. 정상적인 사고조차 할 수 없게 된 것이었다. 숨도 쉴 수 없었고 몸도 말을 듣지 않는다. 한스는 오직 끔찍한 고통 속에서 겨우 숨만 헐떡거렸다.

지옥 같은 시간이 흐르며 비몽사몽간 의식이 흐려졌다가 맑아지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잠깐 정신이 든 한스는 팔다리가 말라비틀어지는 것을 보았다.


‘정말로 미라가 되고 있어.’


다른 죄수병들은 쾌락이라도 경험했는데 자신만 고통뿐이란 생각에 새삼 억울하고 화가 났다.

온 힘을 다해 욕을 내뱉었다.


“시발. 시발. 시바알.”


그런데 목이 말라비틀어져서 욕도 시원하게 토해져 나오지 않는다.

오직 고통뿐이었다. 어느 순간 몸에 힘이 빠지며 의식이 흐릿해진다. 갑자기 과거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남작가의 사생아로 태어나 형제들의 난에 목숨을 잃을뻔한 후 가문을 도망쳐 나왔던 일. 세상을 떠돌다 도둑 길드에 들어가서 생활했던 일.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보스의 범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죄수병이 되었던 일.


‘병신, 아무리 세상이 싫었어도 죄를 대신 뒤집어쓰진 말았어야 했어. 멍청한 놈.’


죄수병으로 온갖 괴롭힘을 당하고 생존하기 위해 애를 쓰다 보니 이젠 알았다. 보스가 자신을 위한 건 진심이 아니었다는 걸.


‘진즉 알고 있었잖아. 그래도 돌아가서 보스의 면상을 확인해 보고 싶었는데···.’


어쨌든 의욕을 잃고 죽어갈 때 챙겨준 보스였다. 딱 한 번 그때뿐이었지만,

한스는 보스가 약속했던 것들을 지킬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런다면 그때 그는 진심일 것이었다.


'그걸 확인해 보지 않는다면 지난 15년의 삶이 너무나 허무하잖아.'


그리고 무엇보다 어머니의 무덤을 보고 싶었다. 유언을 들어 주긴 어렵다고 해도 어머니 묘석 앞에 꽃다발이라도 놓아 드리고 싶었으니까.

어머니의 유언은 어떻게든 남작가에 남아서 귀족의 신분을 유지하라는 것이었지만, 그러려고 했었다면 23년 전, 형들에게 죽었을 것이었다.


‘이대로 죽어버린다면 너무 큰 불효인데···.’


고통이 심해질수록 과거가 생각났다. 그러거나 말거나 고통은 끊임없었다.


‘으, 어떻게 이렇게 끝없이 고통스러울 수가 있지? 뼈가 아니라 영혼에다 뭔가를 새기고 있는 건가?’


너무나 고통스럽다. 과거의 일들이 끊임없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다가 의식이 점점 흐려지며 환영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뭐지?’


이해할 수 없는 환영들이었다.

검을 꽂아놓은 듯한 높은 건물들이 즐비하게 보였고 그 사이로 넓고 곧은 도로와 빠르게 이동하는 수많은 마차가 보였다. 놀랍게도 어떤 마차에도 말은 없었다. 또한 그 건물들 위로 드래곤보다도 더 큰 금속 새가 보였다.

한스는 너무나도 놀라운 광경에 잠시 고통을 잊고 그것을 지켜보았다.


‘다, 다른 세상이야.’


어느 순간 한스는 깨달았다. 눈에 보이는 환영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의 모습이란 걸. 갑자기 수많은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서울? 강한수?’


수많은 지식이 뇌로 쏟아져 들어왔다. 환영으로 본 세상에서 살았던 강한수란 자의 기억이었다.


강한수가 살던 세계는 정말 놀라운 곳이었다. 마법도 요정도 드래곤도 엘프도 없는 과학의 세상이었다.

과학의 힘은 엄청났다. 마법보다도 더 대단해 보이는 과학이었다. 그것의 힘으로 드래곤보다 더 거대한 비행기가 하늘을 날았고 온갖 로봇들과 무시무시한 무기들이 만들어졌으며 수백 미터의 빌딩들이 빽빽할 정도로 세워졌으니 말이다.

강한수란 자는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했었다. 그 지식은 놀라웠고 방대하였기에 그의 지식이 밀려들자 강렬한 두통과 함께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그야말로 지금까지 느꼈던 것과는 다른 부류의 고통이 더해졌다. 덕분에 더욱더 비참하게 비명을 토해낸 한스였다. 하지만 그 고통의 끝에서 강한수의 지식이 이해되기 시작하자 엄청난 지적인 환희를 느꼈다.

그것은 정말이지 지식이 가져다주는 깨달음과 감동의 환희였다. 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


'강한수란 자는 결국 나구나.'


한스는 환희 속에서 끝 모를 의식의 심연으로 가라앉았다. 그 가운데 점점 더 선명하게 강한수였던 자신을 느꼈다. 강한수의 의식을 기억하자 한스의 의식이 묘하게 이중적인 느낌이란 생각이 들긴 했지만, 강한수가 자신이었다는 건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전생의 기억이야.’


전생을 기억하다니 신기하고 놀라운 경험이었다. 하지만 한스는 결국 또다시 고통에 함몰되었다. 밀려오는 고통은 여전했으니까.

미칠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심해지더니 극한에 이르자 다시 의식이 흐려진다. 몸이 미라처럼 말라비틀어지는 것도 여전했다.


‘아쉽네. 전생의 기억을 떠올렸는데 연구도 해보지 못하고 허무하게 죽어야 한다니 말이야···.’


엄청난 기억이었다. 강한수의 과학적 지식으로 수많은 일들이 할 수 있을 것이었다.


‘쉽게 부자가 될 수도 있는데.’


생각할수록 아쉬웠다.

어느 순간 깜빡 정신을 잃었다가 눈을 뜬 한스였다.

그 순간 수정관에 뭔가가 날아와 강하게 부딪혔다.


텅.


충격으로 수정관이 한동안 진동했다.

한스는 흐릿한 의식을 부여잡고 힘겹게 눈을 부릅떴다. 몸이 굳어지고 있어서 눈을 뜨는 것마저 쉽지 않았다. 온 힘을 다하자, 눈동자가 천천히 돌아간다.

날아와 부딪힌 게 무엇인지 볼 수 있었다.

피떡이 된 병사의 시체였다. 수정관을 타고 핏물이 흘렀다. 병사의 시체가 기괴한 각도로 꺾인 채 수정관 벽에 눌어붙어서 아래로 미끄러진다. 그 너머로 밖이 보였다. 한스는 잘 움직여지지 않는 눈을 부릅떴다. 수정관 밖 동공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뭐지? 어째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거지?’


공동엔 이미 많은 사람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눈으로 좇기 어려울 만큼 빠르게 움직이는 기사들, 다양한 마법을 시전하는 마법사들이 서로를 죽이고 죽고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일레인의 등이 보였다.


‘침입자들? 코림트 왕국이잖아.’


침입한 병력의 갑옷을 보니 검과 백합 문양이 선명하다. 이웃 코림트 왕국의 문양이었다.




감사합니다.


작가의말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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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의 그림자에 리치가 산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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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6화. 그림자 속의 리치2 NEW +4 11시간 전 153 15 14쪽
20 6화. 그림자 속의 리치1 +4 24.09.15 304 21 16쪽
19 5화. 흙더미 속에서2 +5 24.09.14 315 22 17쪽
18 5화. 흙더미 속에서1 +5 24.09.13 308 20 16쪽
17 4화. 강요된 정사4 +1 24.09.12 336 18 15쪽
16 4화. 강요된 정사3 +6 24.09.11 332 21 19쪽
15 4화. 강요된 정사2 +5 24.09.10 342 18 13쪽
14 4화. 강요된 정사1 +2 24.09.09 368 20 12쪽
13 3화. 진짜 유물5 +6 24.09.07 387 26 16쪽
12 3화. 진짜 유물4 +1 24.09.06 386 27 15쪽
11 3화. 진짜 유물3 +2 24.09.05 400 32 16쪽
10 3화. 진짜 유물2 +3 24.09.04 422 28 17쪽
9 3화. 진짜 유물1 +2 24.09.03 484 29 16쪽
8 2화. 어떤 복수4 +3 24.09.02 497 32 13쪽
7 2화. 어떤 복수3 +1 24.08.31 505 33 12쪽
6 2화. 어떤 복수2 +2 24.08.30 539 32 12쪽
5 2화. 어떤 복수1 +3 24.08.29 603 37 14쪽
4 1화. 던전4 +2 24.08.28 594 39 12쪽
» 1화. 던전3 +2 24.08.27 606 43 12쪽
2 1화. 던전2 +4 24.08.27 635 41 12쪽
1 1화. 던전1 +10 24.08.27 812 45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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