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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객 님의 서재입니다.

한스의 그림자에 리치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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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객
작품등록일 :
2024.08.27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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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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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4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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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5화. 흙더미 속에서2

DUMMY

주황색 포션이 소환되자 헤스티나 왕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야말로 간절한 갈망이 엿보였다.

그녀가 말했다.


“네가 입에 흘려줘. 난 팔이 떨려서 쏟을 수도 있다.”


한스는 고개를 끄덕이고 포션을 먹이려다가 멈칫한 후 말했다.


“생각해 보니 한가지가 더 필요하다.”

“뭐가 필요하다는 거지?”

“트와툰을 이렇게 매고 다닐 수는 없잖아. 나도 아공간이 있어야겠다.”

“욕심이 많군.”

“너 같은 사람이 아니면 트와툰 같은 물건은 오히려 위험을 초래할 뿐이다. 완벽하게 숨겨서 다닐 수 없다면 말이야. 보물을 가지고 지킬 수 없다면 가지지 않은 것보다 못하거든.”


그녀는 일방적으로 몰리는 일레인이 전투를 벌이는 조종실을 힐끗 바라보곤 말했다.


“좋아. 나의 왼 손목에 은색 팔찌가 있어. 그것을 끌러서 차.”

“뭔데?”

“비상시를 위해 보조로 가지고 다니는 아공간 아이템이다.”

“오, 그렇구나.”


한스는 두말하지 않고 그것을 끌러서 손목에 찼다. 마법의 팔찌답게 손목에 차는 순간 딱 맞게 조절이 되었다.


“주문은?”

“알브리스알브라카.”


곧장 주문을 외었다. 그러자 아공간 내부의 물건들이 느껴졌다. 신기했다. 손목에 찬 상태라 그런지 내용물들이 어떤 것인지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비상시를 대비한 아공간이라더니, 빵과 술과 같은 다양한 음식과 금화 그리고 야외에 치는 텐트 같은 것들이 들어 있었다.

한스는 곧바로 흙의 요정 트와툰을 아공간에 넣었다. 생각만 했는데 트와툰이 아공간으로 들어가서 자릴 잡았다.

만세라도 부르고 싶었지만, 짐짓 내색하지 않았다.

그녀가 말했다.


“이제 포션을 먹여줘.”

“알았다. 그냥 입에 붓기만 하면 되는 거냐?”

“그래.”


한스는 포션을 먹이기 전에 그녀를 바닥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그리고 포션의 뚜껑을 땄다. 정신을 맑게 하는 향기가 퍼졌다.

먼저 포션을 한 모금 마셨다. 온몸이 활성화되고 엄청난 기운이 퍼져나가는 것 같더니 순식간에 활력이 돋았다.

헤스티나의 눈매가 일그러진다. 한스가 자신을 속인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한스는 얼른 나머지 포션을 그녀의 입에 부었다.

그 후 재빨리 물러나 복도를 따라 달려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향했다.

곧 계단에 도착한 그는 얼마간 아래로 달려 내려간 후 걸음을 멈추었다가 최대한 몸은 낮춘 자세로 다시 조금씩 계단을 오른 후 고개만 빼꼼히 내밀고 헤스티나를 살폈다.

헤스티나가 어느새 일어나 있었다.

그녀의 붉은 머리카락이 폭포처럼 늘어져 있었다. 그 머리카락들 사이로 조각 같은 그녀의 몸매가 여기저기 드러나 있었다. 축 늘어져 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생동감이 넘친다.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그만 도망쳐야겠다고 생각한 후 엉덩이를 뒤로 빼는데 헤스티나의 몸이 금빛에 휩싸이더니 어느새 전신을 가리는 황금 갑옷을 입고 있었다.

그녀가 눈을 감은 채 천천히 호흡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그렇게 몇 번을 길게 호흡하던 그녀가 어느 순간 눈을 떴다. 그녀의 눈동자에서 금빛이 번쩍하고 뿜어져 나왔다. 곧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 본 그녀가 두 손을 들어 늘어진 자기 머리카락을 천천히 말아 올린 후 투구를 소환해서 썼다. 그러자 전신이 금빛 갑옷에 가려진 그녀였다. 투구 위쪽엔 왕관 장식이 선명하다. 어느 순간 폭발적인 투기가 뿜어져 나왔다.

한스는 침을 꿀꺽 삼키며 그것을 바라보다가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 그녀가 계단을 잠시 노려보았다. 한스로서는 몸이 오그라드는 것만 같았다.


‘젠장, 날 죽이진 않을 거야.’


키스까지 했으니 오히려 절대 죽이지 않을 것이었다. 두고두고 괴롭혀야 할 테니까.

헤스티나가 싸늘하게 말했다.


“우리의 빚은 나중에 따지도록 하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조종실로 뛰어들었다.


곧 조종실에선 더욱 큰 진동과 굉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소리만으로 전투의 양상이 바뀌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한스는 가슴을 쓸어내린 후 조용히 계단을 마저 내려갔다. 잠시 후 복도를 따라 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갑판으로 나가는 입구에 도착했다. 그 순간 문득 생각했다.


‘셋이 싸우는 동안 숨어 들어가서 내가 인드라퓨리의 주인이 될 수는 없을까?’


금방 고개를 가로저었다.

바보 같은 짓이었다. 셋이 조종실을 떠나지 않고 싸우는 이유가 바로 인드라퓨리를 차지하기 위함이었다.


‘내가 끼어들 자리는 어디에도 없어.’


깔끔하게 생각을 접고 마지막 문을 열고 나섰다. 그 순간 엄청난 굉음과 함께 인드라퓨리가 진동했다.


‘역시 돌아가는 건 자살행위야.’


한스는 미련 없이 갑판 위를 달렸다.

잠시 후 갑판의 끝에 도착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까마득한 높이다. 바닥까진 아파트 5층 높이였다. 지난번의 그 밧줄이 생각났다.


‘어디쯤 묶어 뒀더라.’


묶어둔 장소를 찾으려고 고개를 두리번거리는데 문득 헤스티나가 준 아공간이 떠올랐다.


‘밧줄도 있을 것 같은데?’


확인하니 역시 있다. 곧바로 밧줄을 소환했다. 어느새 밧줄이 손에 쥐여 져 있다. 난간에 묶은 후 아래로 내려갔다. 바닥에 도착한 후 스스로 자기 머릴 쥐어박았다.


“멍청이. 밧줄을 묶으면 안 되는 거였잖아.”


밧줄을 회수하자면 묶지 말고 두 줄로 걸기만 해야 했는데 말이다.


‘길이도 충분했는데.’


다시 올라가서 풀지 그냥 도망칠지 고민하는데 아공간이니 수납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스는 늘어진 밧줄을 잡고 밧줄이 아공간에 수납되도록 역 소환했다. 반갑게도 밧줄이 아공간에 수납되었다.


“멋지네. 한번 수납한 건 묶여 있어도 수납할 수 있구나.”


정말 편리한 기능이었다.

그제야 한스는 광장을 살폈다. 멀리 일레인과 들어왔던 입구가 보였다.


‘트와툰을 이용하려면 흙이 있는 암벽으로 가야 해.’


트와툰은 흙의 요정이었다. 그러니 흙이 있는 곳으로 가야 했다. 다행히 광장의 벽은 암석 상태였고 군데군데 흙이 노출된 곳도 많았다.

한스는 인드라퓨리의 아래쪽에서 입구 쪽으로 걸었다. 입구 근처 벽에서 흙이 노출된 곳을 본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배 위쪽에선 여전히 엄청난 전투 소리가 들려왔다.

살금살금 배에서 떨어져 나온 후 입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곧 멈춰 서고 말았다. 갑자기 두 명의 기사가 나타나 앞을 가로막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기사들의 표정도 갑작스러운 한스의 출현에 놀란 모습이었다.


“뭐냐?”


기사 중 하나가 소리쳤다. 말투로는 코작크 쪽도 코림트도 아니었다.

한스는 침착함을 유지하며 슬쩍 소리쳤다.


“안도르에서 왔나?”


왼쪽 기사가 고참인지 싸늘하게 말했다.


“낙오병 따위에 뺏길 시간 따윈 없다. 그냥 죽여라.”


고참 기사의 말에 우측에 선 기사가 검을 빼 들고 공격해 왔다. 마나가 주입된 것인지 검 주변이 아른거리고 있었다. 한스는 뒤로 펄쩍 뛰어서 물러났다. 기사가 거리를 좁혀 왔다. 곧장 등을 돌린 후 광장을 가로지르며 전력으로 도망쳤다. 기사가 무조건 도망치는 한스를 당황스럽다는 듯 바라보다가 놀라운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그의 뒤에서 고참 기사가 소리쳤다.


“돌아와. 시간 없다.”


쫓아오던 기사가 걸음을 멈추더니 되돌아갔다.

죽어라 도망치던 한스는 어느 순간 걸음을 멈추고 그들을 관찰했다.

대여섯 명의 기사들이 인드라퓨리의 몸통에 붙어 서서 뭔가 작업하고 있었다.


“뭘 하는 거지?”


한스는 눈에 힘을 주고 그들을 세심하게 관찰했다.


‘뭐야? 설마, 폭탄을 설치하는 건가?’


한스의 세상에선 화약 폭탄보단 마석을 이용한 마탄이 주로 사용된다. 화약으로 만든 폭탄보다 훨씬 강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비쌌다. 그것도 어마어마하게. 그런데 그 기사들은 여러 개의 폭탄을 배의 벽에 부착하고 있었다.


‘인드라퓨리를 폭파하려는군.’


잠시 후 공동의 천장에서 몇 명의 마법사가 떨어져 내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천장에도 폭탄을 설치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인드라퓨리 뿐만 아니라 거대한 동공까지 무너뜨리려는 것이었다.

비행 마법으로 바닥에 내려선 마법사가 빠르게 마법진을 그렸다. 잠시 후 작업하던 기사들이 모두 마법진 위에 올라섰다.

그중 한 기사와 눈이 마주쳤다. 거리가 멀어서 정확한 표정을 볼 수는 없었지만, 입이 일그러져 보이는 것을 보면 비웃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한스가 멍하니 바라보자 곧 바닥에 그려진 마법진이 빛났고 한순간 모두가 사라졌다. 공간이동으로 사라진 것이었다.


‘젠장, 싸한 기분인걸.’


제3의 세력이 인드라퓨리를 폭파하고 동공을 무너뜨리려 하고 있었다. 모든 걸 매장하려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니 그들의 의도를 알 것 같았다.

그들은 일레인이나 헤스티나 그리고 크레번 후작보다 약했다. 그래서 모든 것을 폭파하려는 것이었다. 아무도 인드라퓨리를 얻지 못하도록 말이다. 그들로서는 그것이 최선일 것이었다. 다만 그 덕에 자신도 매장당할 것이란 생각을 하면 암담할 뿐이었다.


‘아니지? 난 트와툰이 있잖아.’


동공이 무너지더라도 트와툰이 있으니 탈출할 수 있을 것이었다. 탈출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갈등이 생긴다.

폭탄이 설치되었다는 걸 일레인이나 헤스티나에게 알려야 할지 말이다.


“시발 무슨 상관이야. 그녀들은 나를 사람으로도 보지 않는데.”


하지만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쨌거나 그녀들과 몸을 섞었다. 모른 척 혼자만 도망치는 건 왠지 비겁한 것 같았다. 잠깐 갈등하다가 인드라퓨리를 향해 뛰었다. 그런데 그 순간 강렬한 폭발음이 들렸다. 움찔 놀라서 걸음을 멈추고 인드라퓨리를 보니 폭탄이 터진 게 아니라 인드라퓨리의 갑판 위에 일레인과 헤스티나 그리고 붉은 갑옷의 기사가 나타난 후 충돌하고 있었다.


‘방금 굉음은 조종실 벽이 터져나가는 소리였어.’


조종실 벽을 터뜨리고 밖으로 나온 그들은 갑판 위에서 치열하게 싸우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몇 번이나 충돌했다가 흩어졌다. 그리고 다시 충돌하더니 우뚝 동작을 멈추었다.


“크아아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붉은 갑옷의 기사가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기어이 합공으로 크레번을 죽였구나.’


놀라웠다. 크레번을 죽인 것보다 원수처럼 으르렁거리면서도 힘을 합쳤다는 것이 말이다.


‘그만큼 둘 다 비밀을 지키고 싶었던 것이겠지?’


아니나 다를까 크레번 후작이 죽자마자 둘이 마주 싸우기 시작했다.


‘미친년들, 폭탄이 터지기 직전인데···.’


잠깐 고민했지만, 한스는 곧 두 손을 입에 가져다 대고 크게 소리쳤다.


“폭탄이야. 폭탄이 설치되었다.”


격돌을 이어가던 그녀들이 거릴 벌리더니 한스가 있는 입구를 바라보았다.

한스가 다시 소리쳤다.


“알 수 없는 놈들이 폭탄을 장치했다. 곧 폭발할 거야.”


그런데 둘은 약속이나 한 듯 다시 붙어서 싸우기 시작했다.


“젠장할. 니들 맘대로 해라.”


소리친 한스는 입구 쪽으로 달렸다. 그런데 미쳐 입구에 도착하기도 전에 엄청난 빛이 뿜어지면서 인드라퓨리가 폭발했다.


콰앙 쾅 우르릉 쿠르르르.


거대한 폭발이었다. 무엇보다 천장에서도 연이어 빛이 폭발했다.

충격으로 휘청하는 사이 후폭풍이 일며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그러고는 엄청난 속도로 날려갔다. 벽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대로 부딪히면 뼈도 못 추릴 것 같았다. 그런데 다행히 한스가 날아간 곳은 벽이 아니라 광장 입구 쪽이었다.

한스는 그 입구 안으로 가랑잎처럼 날려갔다.


텅텅 데구르르르.


골렘들이 늘어선 긴 홀 가운데에 떨어진 한스는 한참을 구르다 멈춰 섰다.


“컥, 나 아직 안 죽은 거지?”


온몸에서 느껴지는 아픔을 깨닫기도 전에 광장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여기저기가 우그러지고 터져나간 인드라퓨리호가 죽은 고래의 사체처럼 기울어지는 게 보인다. 그런데 그 장면도 잠깐이었다. 곧장 천장이 무너지며 엄청난 흙덩이가 내려앉아 모든 것을 덮어버렸으니 말이다. 싸우던 일레인과 헤스티나는 흙더미에 깔렸는지 보이지 않았다.


“미친년들 죽어도 싸다.”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는데 세상이 마구 흔들렸다.


쿠르릉.

쿠르르르.


엄청난 진동이 이어지며 좌우로 늘어선 거대한 골렘들이 기우뚱했다. 땅이 연신 흔들렸다. 결국 거대한 골렘들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아니 그것만이 아니었다. 골렘들이 늘어선 긴 회랑 전부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시발, 그냥 나갔어야 했는데.”


한스는 떨어지는 흙무더기와 석재들 그리고 골렘들에 깔리지 않게 몸을 날리며 죽을힘을 다해 뛰었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했다. 곧 모든 게 무너졌으니까.


한스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눈을 떴다.


“휴, 살아남았군. 으하하, 난 정말 운이 좋다니까.”


칠흑처럼 어두웠지만, 묘하게도 한스의 눈엔 그렇게 어둡지 않았다.


‘확실히 수정관에 들어갔다가 나온 후 눈이 밝아졌어.’


완전히 무너진 흙더미 속인데도 사물이 어렴풋이 보였다. 하지만 등불이 있을 때와 비교할 수는 없었다.

한스는 곧 헤스티나가 준 아공간에서 등불을 찾았다. 잠시 후 빛을 내는 구슬을 꺼낼 수 있었다. 마법 등이었다. 달걀만 했는데 들거나 이마에 묶을 수 있게 끈까지 매어져 있었다.

한스는 그것을 머리에 묶고 주위를 살폈다. 지하 깊은 곳의 흙이라 습기가 많았다. 덕분에 모든 곳이 온통 무너졌는데 흙먼지가 거의 피어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시야가 멀리까지 보였다. 생각보다 상당히 큰 공간이었다.


“운 좋게 골렘들 사이에 위치해서 큰 공간이 만들어졌구나.”


거대한 골렘들이 쓰러지면서 서로 엉켰는데 운 좋게 그들의 몸통 사이에 있었던 것이었다.

한동안 주변을 살핀 한스는 쓰러진 골렘에 기대어 앉아서 생각을 정리했다.


‘죽진 않았겠지?’


이성적으로는 차라리 일레인과 헤스티나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쩐지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동안 생각을 거듭하던 한스는 일단 이곳을 빠져나가기로 했다.


‘트와툰을 소환하자.’


한스는 아공간에 넣어 두었던 트와툰을 소환했다.

검은 상자 한쪽 면에 드러난 기괴한 얼굴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써먹지? 말로 하면 되는 건가?’


잠시 트와툰을 바라보던 한스는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트와툰, 말할 수 있어?”

‘물-론-이-다.’


목소리가 묘했다. 어린아이처럼 어눌했는데 그래도 무슨 말인지 알아듣는 건 어렵지 않았다.


“반갑다 트와툰.”

‘나-도-다.’

“그런데 나를 이곳에서 꺼내줄 수 있어?”

‘가-능-하-다. 하-지-만-난-지-금-배가-고-프-다.’

“오, 역시 가능하구나.”

‘배-가-고-프-다.’

“알았다. 먹을 걸 주지.”


한스는 아공간에서 빵 하나를 소환했다.


꼬르륵.


빵 냄새를 맡자, 배가 먼저 반응했다. 한스는 침을 꿀꺽 삼켰지만 트와툰에게 먼저 내밀었다. 트와툰이 기괴한 표정으로 한스를 올려다보더니 말했다.


‘바-보-냐? 난-마-석-만-먹-는-다.’

“마, 마석이라고?”

‘그-렇-다.’


갑자기 싸한 기분이 든다. 마석 하나면 집을 몇 채나 살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걸 먹는 존재라니. 요정은 과연 헤스티나와 같은 왕족이 아니면 부릴 수 없는 존재였다. 물론 지금 그런 것을 걱정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기에, 한스는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길게 숨을 들이마신 후 천천히 말했다.


“혹시 마석을 먹지 못하면 날 꺼내줄 수 없는 건 아니겠지?”

‘난-마-석-을-먹-어-야-힘-을-쓸-수-있-다.’


절로 한숨이 터져 나온다.


‘젠장할. 꼼짝 없이 파묻혀서 죽어야 하는 상황이군.'


한스는 그제야 헤스티나가 선뜻 트와툰과 아공간을 내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어차피 이곳을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절로 욕이 터져 나왔다.


“교활한 년.”


하지만 욕을 해봐야 의미 없었다.

다시 아공간을 뒤졌다. 역시 마석은 없었다.

갑자기 비웃음이 걸린 헤스티나의 얼굴이 떠올랐다.


“제기랄 년. 폭탄에 휘말려 죽었길 바란다.”


악담을 퍼부었지만, 의미 없는 일이었다.

한스는 애타는 마음으로 몇 번이나 아공간을 샅샅이 뒤졌다. 상당한 금화와 보석 먹을 것들은 잔뜩 있었지만, 마석은 어디에도 없었다.

한스는 보석들 중 큼지막한 루비를 소환한 후 트와툰에게 내밀며 말했다.


“마석 대신 이 보석을 먹으면 안 될까?”

‘넌-정-말-바-보-로-구-나.’

“제엔장할. 으아아.”


욕을 내뱉고 주변이 떠나가라 소릴 질렀다. 하지만 그런다고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감사합니다.


작가의말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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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4화. 강요된 정사3 +6 24.09.11 332 21 19쪽
15 4화. 강요된 정사2 +5 24.09.10 342 18 13쪽
14 4화. 강요된 정사1 +2 24.09.09 368 20 12쪽
13 3화. 진짜 유물5 +6 24.09.07 387 26 16쪽
12 3화. 진짜 유물4 +1 24.09.06 386 27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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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2화. 어떤 복수1 +3 24.08.29 603 37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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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화. 던전3 +2 24.08.27 605 43 12쪽
2 1화. 던전2 +4 24.08.27 635 41 12쪽
1 1화. 던전1 +10 24.08.27 812 45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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