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내 서재다.

신석기 제사장이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엄청난
작품등록일 :
2021.05.12 20:32
최근연재일 :
2021.08.04 19:07
연재수 :
69 회
조회수 :
46,522
추천수 :
1,474
글자수 :
463,058

작성
21.05.12 23:12
조회
2,428
추천
53
글자
12쪽

2. 부족의 신(2)

DUMMY

말을 내뱉는 순간에도 우레가람의 기억이 주는 수치심과, 원래 나로서의 생존본능이 내 심장을 더욱 거세게 박찼다.


주변에서 부족원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슬며시 고개를 들어 서슬뱀과 눈을 마주쳤다.


차가운 눈빛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젠장... 잘못한건가...'


'위대한 영'을 만났다 하고 서슬뱀을 띄워준다. 그가 내 헛소리를 인정하면 그는 말대로 위대한 족장이 되고, 부정하면 그는 민심을 잃는다. 그러니 나를 죽일 리 없단 생각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때 내 눈에 서슬뱀의 눈빛이 비춰졌다. 살가운 표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되려 그 표정에 머리가 식는 느낌이었다.


뭔가 잘못됐다.


"모두 들었는가!"


서슬뱀의 목청이 사방을 울렸다. 서슬뱀이 창을 들며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귀신굴에 서른 날간 들어갔던 우레가람이, 위대한 영과 통하는 주술사가 되었다!"


서슬뱀의 손이 내 팔을 잡고 우악스레 일으켜 세웠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직감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서슬뱀이 말을 이으며 내 손목을 잡고 양 팔을 치켜올렸다.


"나 서슬뱀은 새로운 주술사의 모든 권위를 인정하며, 또한 족장인 나 서슬뱀의 모든 권한을 우레가람에게 양도할 것이다!"


나는 순간 잘못 들었는가 서슬뱀을 쳐다보았다. 큰버루 부족의 주술사 지지자들도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우리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미친듯이 경종을 울리는 불길한 느낌에 서슬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새로운 주술사는 난지 고작 열두 해밖에 지나지 않았다!

세상물정도 모르고 가르칠 것이 많다!

전임 주술사는 늙어서 오늘내일하며 우레가람의 친부는 열두 해 전 사냥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하니 나 서슬뱀은 우레가람이 위대한 영의 의지를 완전히 받들 준비가 될 때까지,

그의 양부(養父)가 되어 보살필 것을 천명한다!"


머리를 세게 후려친 듯한 느낌에 입을 벌렸다.


"우레가람은 이제 나의 천막 안에서 지내게 될 것임이다! 양부인 나, 족장을 제외한 어떤 이도 우레가람을 건드릴 수 없을 것이다!"


역으로 말하면, 그는 나를 어떻게 건드려도 무방하다.


"위대한 영이 그를 믿지 않았던 내게 깨달음을 주시고, 주술사와 족장의 화합을 주도하셨도다!"


서슬뱀이 차고있던 이빨 목걸이 중 하나를 튿어 그 줄을 흔들었다.


그것이 무슨 선동 신호였는지 서슬뱀의 추종자들이 마구 환호를 지르기 시작했다.


나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X됐다.'


수많은 부족원의 환호 속에서, 나는 이 신석기 시대에 와 팔자에도 없는 의붓아버지를 맞이했다.


* * *


"팔자에도 없는 짓은 늘 고되지."


콰악!


서슬뱀이 내 목을 잡고 들어올렸다. 나는 끄륵거리며 그의 손에서 빠져나가려 발버둥쳤으나, 부족의 전사 중 최강인 서슬뱀의 손에서 벗어나기는 어불성설이었다. 그의 천막 안이라 보는 이도 없다.


"하지만 고된 사냥 후에는 늘 푸짐한 식량이 있었어.


네 꾀는 귀찮긴 해도 썩 도움이 됐다."


툭!


"커헉! 어억..."


서슬뱀이 손을 폈고, 나는 그의 손에서 떨어져 달콤한 공기를 빨아들였다.


"우레가람. 알고 있겠지만 나는 미신 같은 건 믿지 않는다."


"......"


숨을 천천히 들이쉬며 그의 말에 집중했다.


"위대한 영? 하하, 네 할아비만 아니었다면... 믿었을 수도 있다."


악령을 쫓는 무늬를 지우며 서슬뱀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늙은이의 수작을 겪고 보니 알겠더군. 주술이란 건 전부 다스림을 위한, 있어봬는 거짓말일 뿐이야.

귀신굴이 뭔가 기이한 장소긴 하다만 안에다 불을 지피면 충분히 사람이 지낼만한 곳이기도 하지.

우기때는 아예 그곳에 식량을 보관하기도 하니까. 하지만..."


서슬뱀이 나와 눈을 마주쳤다. 다시금 불길한 느낌이 도사렸다.


"그곳이 진짜 기이한 장소여도 사람이 서른날간 안 먹고 살 수는 없다.

건장한 전사도 아닌 네가 살아있는 건 말도안되는 일이지."


그가 물었다.


"지난 서른 날간 귀신굴에 음식을 넣어준 게 누구인지 밝혀라."


* * *


"큰바위. 너냐?"


큰버루 부족에서 두 번째로 강한 전사, 검은바위는 그의 아들 큰바위에게 물었다.


"족장만큼 주술을 불신하진 않는다만, 그래도 사람이 서른 날간 안 먹고 산다는 것은 들어본 적 없다.

누군가 분명히 먹을 걸 가져다주지 않고서는...

솔직히 말해야 한다. 부족에서 네가 우레가람과 가장 친한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야."


큰바위는 말없이 나무창을 깎기만 할 뿐이었다.


"큰바위!"


"... 서른 날 동안... 아버지가 쉴새없이 사냥만 데리고 다녔잖아요. 귀신굴 근처로는 심부름도 못 가게 하셨고요. 아버지뿐 아니라 부족 모두가 아는 것 아녜요?"


"그렇지. 물론 그렇지만..."


큰바위는 다 깎은 투창을 만져보았다. 원래대로라면 우레가람이 귀신굴에 들어가기 전 줄 선물이었으나, 일이 꼬여 주지 못한 선물이었다.


또래에게 창을 선물한다는 것은, 가장 친애하는 벗에게만 하는 일이라 하였다.


'우레가람한테... 이걸 줘도 될까?'


부족 내 파벌의 문제를 제하고서라도, 귀신굴에서 나온 우레가람은 뭔가 이상했다.


정확히 짚지는 못해도 어딘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귀신... 귀신이 들린 게 분명한데...'


다 깎인 나무창을 후 불어 먼지를 털며, 큰바위는 미간을 찌푸렸다.


'...확인해봐야겠어.'


"그리고, 꼭 제일 친한 게 저란 법은..."


"뭐라고 했느냐?"


"..아뇨, 아무것도..."


* * *


"모른다고?"


나는 서슬뱀에게 얻어맞아 멍든 부위를 부여잡으며 대답했다.


확실히 우레가람의 기억을 뒤지니 귀신굴에서 몰래 먹을 것을 가져다 준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바위틈으로 먹을 것만 건내고 간 터라 얼굴도 이름도 알 수 없었다.


"사방은 어두웠고, 배고프고 무서워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짐작가는 사람은 있다. 하지만 말할 순 없다.


"족장님 말씀대로, 어딘가 기이한 점은 확실히 있는 곳이 귀신굴이니까요."


서슬뱀도 내 설명에 일리가 있다고 느낀 건지 나를 때리는 것을 멈췄다.


“...그래, 배고프고 무섭다라, 그럴 듯 하군.”

“제가 어떻게 족장님 앞에서 거짓말을...”

“네 할아비는 거짓말쟁이였다.”

서슬뱀이 얼굴을 굳히며 나를 가리켰다.


“그러니 그 핏줄인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어찌 알지?”


그가 다시 손을 들어올렸다. 서슬뱀은 나를 상대로 화풀이라도 하는 듯했다. 이대로라면 정말 맞아죽을 수도 있겠다 생각한 나는, 발악하듯이 외쳤다.


“아버지! 아버지 앞에서 맹세하겠습니다! 저는 정말 모릅니다! 얼굴을 본 적이 없습니다!”

우뚝.


서슬뱀의 손이 멈췄다.


“아버지라...”


내게서 아버지 소리를 들은 것이 의외였는지, 그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각양각색의 알바를 한 경험으로 미뤄볼 때...’


저건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 하던 서슬뱀이 피식 웃으며 주먹을 거뒀다.


“제 애비는 얼굴도 본 적이 없을 텐데 무슨 아버지 앞에서 맹세한다는 거냐.”


‘응? 뭐지?’


양부인 서슬뱀 앞에서 맹세한다는 소리였는데, 서슬뱀은 죽은 내 아버지 앞에 맹세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좋다. 오늘은 이쯤하지. 뒤져봤자 네 절친밖에 더 나올 사람은 없을테니. 그리고 네 잠자리에 대해 말이다만..."


서슬뱀은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내 천막 옆에 따로 작은 천막을 쳐주마. 거기서 지내거라.


어차피 같이 자면 서로에게 불편할 뿐이겠지."


"...감사합니다."


인디언들의 천막을 연상케 하는 큰버루 부족의 천막은, 천막이라곤 했지만 사실상 물소 가죽 몇 개를 이어붙여 텐트처럼 세운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 지은 조악한 천막이라 해도 남들의 눈을 피해 쉬는 데엔 문제가 없었다.


"휴..."


서슬뱀이 쳐준 천막 내부로 들어가 숨을 골랐다.


눈을 뜬 순간부터 너무 정신없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털썩!


아직 아무것도 없는 천막 내부에 드러누우며 한숨을 쉬었다.


너무 머리가 아팠다.


"여긴 어디고 나는 누군지..."


나는 미쳐버린 우레가람인가, 꿈을 꾸는 상진인가.


우레가람이라면 상진으로 지낸 27년간의 기억은 뭐고, 상진이라면 이곳은 도대체 어디란 말인가.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일어났다.


"...일단 정리를 해보자."


이곳은 대략 신석기 시대쯤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지구는 아니었다.


큰버루나, 달다람쥐 같은 지구에서는 듣도보도 못한 동물들이 있는 곳이었다.


또한 우레가람으로서의 기억 속에서 주술사가 비를 부르고 불을 움직였던 것이 떠올랐다.


"주술... 주술이란 게 있어."


이 기억 속에서 주술이란 것은 확실히 존재하는 것이었다.


'다만, 주술사는 타인들 앞에서 자주 주술을 꺼내지 않았다.'


그래서 부족원들은 주술에 대한 불신이 생겼다.


그것이 족장과 주술사간 불화의 씨앗이 된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우레가람이든 상진이든, 나는 지금 족장파와 주술사파 간의 그 권력투쟁에 휘말린 상태였다.


"하아..."


머리가 아팠다.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너무 복잡했다.


잠시 머리를 감싸고 고민한 나는 우선 나를 '상진'이라 생각하고 움직이기로 했다.


'그냥 우레가람이 미쳐서 상진이라는 가상인물을 만들어냈다고 쳐도...'


우레가람은 12년. 상진은 27년.


살아온 생애의 시간이 다르다. 나 역시 기껏해야 20대 후반이긴 했지만 그래도 우레가람보다는 경험이 많은 것이다.


"나는 일단 상진. 상진이라 생각하자..."


내 정체성을 임의로나마 정해놓고 나니 머릿속이 한결 편해졌다.


"나는 상진이고, 그리고..."


내가 어째서 이곳에 떨어진 건지부터 고민해보기로 했다.


"우레가람은 주술사가 되기 위해 열흘간 들어가는 귀신굴에서... 서른 날을 버텼어."


그리고 나는 진상 손님이 때린 주먹을 맞고(?) 코피가 흐르더니 기절했다.


"우레가람의 마지막 기억은..."


배고픔과, 귀신굴에서 들리는 기이한 소리에 무서워 기절한 것이었다.


"우레가람이 죽고 내가 이 몸에 들어온 건가? 아니면 서로 몸이 바뀐 건가?"


이것저것 가설을 세워보고 나서 한숨을 쉬었다.


"시X... 전부 개소리 같잖아...'


너무 정신없는 현상황을 정리해 보려고 시작한 고민이었지만 내 상황을 정리해 보려다 오히려 꼬여버렸다.


"나한테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데..."


우레가람으로서도, 상진으로서도 미친 상황이다. 설령 둘 다 아니라 큰버루 부족의 평범한 족원이라고 해도 족장에게 밉보인채 잡혀사는 지금은 결코 안전한 상황이 아니었다.


'탈출이라도 해야 하나...'


미친 생각이었다. 신석기 시대에 어린아이 몸으로 부족을 탈출한단 건, 이등병 신분으로 중대장 뺨을 후려치는 격이다.


'...견뎌보자. 아무리 뭣같아도 내 군생활만큼 고되겠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내가 머리를 부여잡을 때였다.


"귀신들렸다는데, 소문이 진짜였구나..."


나는 흠칫하며 천막 입구를 바라보았다. 내 또래의 꼬마가 얼굴에 악령을 쫓는 무늬를 그린 채 입구에 서있었다.


"나와 우레가람."


언뜻 서슬뱀을 연상시키는 미소를 지으며, 녀석이 손짓했다.


"오랫만에 맞아야지."


우레가람의 기억 속에서, 항상 그를 공개적으로 구타했던 녀석.


서슬뱀의 자식인 서슬바람이었다.


녀석이 나와 비릿한 미소를 주고받았다.


"귀신굴에 나 대신 서른 날씩이나 들어갔다 오셨는데, 축하 좀 해줘야지?"


툭!


기다란 나무막대기가 내 앞으로 덩그르 굴러왔다. 자세히 보니 어린애들 용 단창이었다.


"뒷 바위산으로 나와라. 오늘 창 맛좀 보여주마."


서슬바람은 꼭 제 아버지처럼 손짓하며 나를 불렀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신석기 제사장이 되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7월 24(토)~7월 26(월) 휴재공지 21.07.24 758 0 -
공지 7월 15~18일 (목)~(일) 휴재공지 21.07.15 362 0 -
69 68. 현인신(14) +6 21.08.04 2,658 20 15쪽
68 67. 현인신(13) +1 21.08.03 262 7 13쪽
67 66. 현인신(12) +1 21.07.23 218 9 15쪽
66 65. 현인신(11) +1 21.07.22 214 9 18쪽
65 64. 현인신(10) +1 21.07.21 267 6 24쪽
64 63. 현인신(9) +1 21.07.20 220 6 22쪽
63 62. 현인신(8) +1 21.07.19 201 7 13쪽
62 61. 현인신(7) +1 21.07.14 195 7 13쪽
61 60. 현인신(6) +1 21.07.13 189 8 12쪽
60 59. 현인신(5) +1 21.07.12 191 8 13쪽
59 58. 현인신(4) +1 21.07.11 201 7 12쪽
58 57. 현인신(3) +1 21.07.10 200 5 17쪽
57 56. 현인신(2) +1 21.07.09 200 6 13쪽
56 55. 현인신(1) +2 21.07.08 274 8 13쪽
55 54. 조상신(27) +1 21.07.07 215 7 15쪽
54 53. 조상신(26) +1 21.07.06 208 9 19쪽
53 52. 조상신(25) +2 21.07.05 238 9 14쪽
52 51. 조상신(24) +2 21.06.21 236 10 18쪽
51 50. 조상신(23) +1 21.06.20 228 6 22쪽
50 49. 조상신(22) +1 21.06.20 201 5 17쪽
49 48. 조상신(21) +1 21.06.20 207 8 25쪽
48 47. 조상신(20) +2 21.06.19 229 9 23쪽
47 46. 조상신(19) +2 21.06.18 221 11 19쪽
46 45. 조상신(18) +1 21.06.17 255 10 21쪽
45 44. 조상신(17) +2 21.06.16 250 12 16쪽
44 43. 조상신(16) +2 21.06.15 251 11 18쪽
43 42. 조상신(15) +2 21.06.14 260 12 16쪽
42 41. 조상신(14) +2 21.06.13 283 11 1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