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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서재다.

신석기 제사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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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작품등록일 :
2021.05.12 20:32
최근연재일 :
2021.08.04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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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21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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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64. 현인신(10)

DUMMY

날이 밝았다. 나는 센유엔 안으로 들어가, 마을 입구에서 소리쳤다.


“모두 들어라!”


센유엔의 부족원들이 하나 둘 내 앞에 모여들었다.


“나 제사장 우레가람은, 하늘의 뜻을 받들어 스스로를 현인신이라 사칭하는 공손을 처단할 것이다!”


웅성웅성...


내 선언에, 많은 이들이 충격을 받았는지 불안한 눈빛으로 웅성였다. 난 큰 소리로 외쳤다.


“그간 알아본 바. 거짓 신 공손의 죄목을 읊겠다!”


쿠르릉!


내가 손짓하자, 우레미르의 신력이 허공에 응집되며 벼락의 창을 만들어냈다.


“첫째, 오가는 길손은 물론 같은 족원을 잔인하게 살해하여 먹은 죄!”


쿠웅!


한 자루 벼락의 창을 땅에 박았다. 내 선언에 족원들 사이로 몸을 드러낸 서릉이 몸을 움찔거렸다. 그녀의 눈에는 은근한 흥분의 기색이 깃들어 있었다.


“둘째, 사악한 괴물을 부려 이 마을의 물길을 막은 죄!”


쿠웅!


두 번째 벼락이 땅에 박혔다.


“셋째, 족원들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고, 물이 없다는 거짓말로 마을 사람들을 동원해 땅을 파게 만든 죄!”


계속해서 번개의 창을 소환해 땅에 박아가며, 나는 계속 공손의 죄를 까발렸다.


“넷째, 괴물을 부려 마을의 아이를 납치해간 죄!”


“다섯째, 다른 부족을 침략한 죄!”


“여섯째, 다른 부족에게 같은 족원을 자살돌격시킨 죄!”

“일곱째, 신적인 권능으로 부족을 돌보지 않고, 자신의 생명만 보전한 죄!”

“여덟째...”


줄줄이 공손의 죄목을 읊은 후, 나는 내 앞에 꽂힌 열두개의 벼락의 창을 손으로 가리켰다.


“이 열두가지의 죄목으로, 나 제사장 우레가람은 센유엔의 거짓 현인신 공손을 처단할 것이다!”


술렁술렁...


열두가지의 죄.


그 하나하나가 무겁기 그지없는 죄였고, 부족원들도 납득할만한 죄목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혼란스러운 기색을 벗어나지 못했다.

센유엔의 청년 한 명이 앞으로 걸어나왔다.


“신인이시여... 외람된 말씀이지만, 말씀하신 열두가지의 죄목은... 현인신으로서 마을을 위해 그런 것이 아니옵니까?”


나는 그 청년을 바라보았다. 이 시대에는 결국 힘이 진리. 공손이 센유엔을 쥐락펴락 할 수 있던 이유 역시 나름대로의 힘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 천벌을 쏟아내리며 내 힘을 보여주고, 강제한다면 아주 쉽게 이들을 설득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공손이 마을을 위했다 했느냐?”


센유엔 부족이 반얀 부족을 침략하고, 사람을 인신공양하는 사악한 부족이라고 알았을 적에는 그들을 힘으로 짓눌렀다.

하지만 이 부족에서 사흘을 지내며 나 역시 알게 되었다. 이들 역시 아이가 있고, 전사가 있고, 아낙이 있다. 이들 역시 웃고, 울고, 일하고, 논다.


“그럼 묻겠다. 그는 이 마을을 위해 무슨 일을 했느냐?”


이전이었다면 천벌을 쏟아내려 힘으로 짓눌렀을 것이다. 그러나 반얀 부족을 지나며 전사의 의지를 배운 이상.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상.

제사장의 방식대로만 대할 수는 없게 되었다.


제사장은 명령하는 자이고, 전사는 투쟁하는 자이다. 나는 청년에게 투쟁할 기회를 주기로 했다.

청년이 대답했다.


“우리를 위해 제사를 지냈고, 제사를 지내 물길을 틔워주셨습니다. 공손이 제사를 지내면 항상 우리가 먹을 만큼의 물이 솟아났습니다.”


여기서 ‘제사’란 일반적인 제사가 아닌, 인신공양일 터였다.


“그럼 묻겠다. 공손이 제사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면. 왜 서슬뱀이 이 마을에 오기 전에는 물길을 막고 있던 괴물을 퇴치하지 못했지?”


“그건...”


“서슬뱀은 제사도 받지 않고 괴물을 퇴치해주었으니, 놈은 공손보다 대단한 존재인가?”


“하, 하지만 그 자는 일전 공손의 은혜를 입어 센유엔에서 몇 달을 먹고자고 했습니다. 그 은혜를 갚기 위해 공손을 도와 괴물을 퇴치한 것이니...”


“은혜? 서슬뱀은 공손에게 ‘노란 끈’을 받았지. 노란 끈이 너희가 말하는 은혜인가?”

공손은 이 마을을 들른 길손에게 세 가지 끈을 준다.


푸른 끈, 노란 끈, 붉은 끈.


푸른 끈을 준 자는 길손으로 대접하고. 노란 끈을 준 이는 마을에 머무르게 하여 필요한 때에 제물로 바치고, 붉은 끈을 받은 이는 그날 밤 죽여 바로 공양한다.

내 말에 청년을 입을 다물로 물러갔다.

그러나 청년이 물러가자 한 노인이 튀어나왔다.


“이러나 저러나... 공손은 우리 부족의 화현한 신이십니다. 현인신께서 이 마을에 있어야지만 우리가 죽은 후에 평안하다고 배웠습니다.”


사후 세계는 중요하다.

인간은 공포로 움직이고, 공포는 미지에서 나오며, 죽음은 가장 큰 미지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에게 되물었다.


“그대는 나이가 많아 보이는군. 샤오허보다도... 어릴 적 그대는 이 땅이 아닌 다른 땅에서 이주해 온 것을 기억 하는가?”


“아, 예... 제가 열 살 무렵 가뭄이 일어 이 땅으로 어른들과 이주를 하였지요.”


“그런데 왜 이땅에서도 물이 부족해 같은 인간을 제물로 바치지?”


“으음...”


“그대는 사후 세계에 관한 것을 누구에게 배웠나?”


“...공손에게 배웠습니다.”


“공손이 그 당시에 가뭄을 가지고 거짓을 말했다면, 죽음에 대해서도 거짓을 말한 건지 어찌 아느냐?”


“.....”

나는 좌중을 둘러보며 외쳤다.


“들어라, 너희는 지금껏 공손에게 많은 것을 들었고, 많은 것을 배웠다. 서쪽 숲에는 귀신 무리가 사니 들어가면 아니된다거나, 물길을 괴물이 막고 있다거나, 자신을 따라야지만 사후에 평안하다는 둥. 아주 많은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보아라! 나는 서쪽 숲을 지나오며 숲 속 부족의 조상신을 만났지만 그들은 친절한 어른들이었다. 물길을 괴물이 막고 있었다지만 정작 그것은 서슬뱀이 온 후에야 사라졌다. 공손을 따라야지만 사후에 평안하다고 했지만, 어제 내가 데려온 공손을 향해 달려든 원령 무리를 기억하라!”


어제 원혼들의 귀곡성을 들었던 부족원들의 눈빛에 기이한 빛이 돌았다.


“그들은 예전 공손을 따랐던 센유엔 부족의 조상들이었다! 생전 공손을 따라 숲 속 부족을 점령하러 갔던 그들이 왜 공손에게 피눈물을 흘리며 달려들었는가! 그들이 평안해 보였는가?

너희는 그동안 현인신의 명이니 어쩔 수 없다 여기며, 자신의 가족을, 벗을, 형제를 공손에게 바쳐왔다. 그들이 바쳐질 때에 너희는 울었겠지만, 공손은 울었는가?”


내 말에 서릉을 포함한 몇몇 부족원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너희가 웃을 때에 공손이 함께 웃은 적이 있느냐? 너희가 땅을 팔 때에 공손이 팔을 걷어붙이고 함께 일한 적이 있느냐? 공손이 너희와 뒤섞여 함께 놀아본 적이 있느냐?”


어느새 센유엔의 모두가 내 앞에 모여들어있었다. 그러나 그 많은 이들이 모여있었어도, 주변은 조용했다.


“그 자가 정말 너희의 신이 맞느냐?”


촤르륵!


나는 열두 벼락의 창을 일렬로 땅에 세운 후 그것을 가리켰다.


“만약 공손을 현인신이라 여겨 살리고자 하는 이들은 창의 왼편에, 그를 더 이상 믿기 힘든 이들은 창의 오른편에 서라! 나는 그대들의 뜻을 존중해, 어느 한쪽이 더 많다면 그쪽의 편을 들어주마.”


내 말이 끝났고, 좌중은 침묵했다.

그리고, 침묵을 깨며 한 여인이 앞으로 걸어나왔다.

서릉이었다. 그녀는 붉어진 눈시울로 창의 오른편에 걸어가 섰다.


“서릉님이다!”


“아니, 공손님의 두 번째 첩이 아니신가?”


“쉿, 저 분은 그럴만도 하시지.”


부족은 술렁였으나, 서릉을 제외한 다른 이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직후 무모가 천천히 서릉에게 다가가 그 옆에 섰다. 다시 한번 좌중이 술렁였다.


“무모님도!”


“저 분은 서릉님과 자매이니...”


부족원들은 그렇게 이해하는 듯 했지만, 직후 공손의 다른 첩들 역시 무모와 서릉에게 다가갔다. 부족원들의 술렁임은 점차 커졌다.

이윽고, 공손의 여덟 첩 중 일곱명이 오른편으로 넘어갔다. 오직 누조만이 차분히 아이의 손을 잡고 가만히 있는 중이었다. 센유엔 부족은 상당히 혼란스러운 듯 했고, 혼란스러운 와중, 서릉이 외쳤다.


“나, 공손의 첩 서릉은 신인의 말씀이 전부 사실임을 보증한다!”

“나, 무모는...”

“나..”


이어서, 다른 일곱명의 첩들 역시 내 말을 보증해 주었다. 센유엔의 공터는 상당히 시끄러워졌다. 그러던 와중, 다시 한 명이 그들에게 가서 섰다.

샤오허였다.


“나, 샤오허는 더 이상 현인신의 명에 따르지 않겠소!”


“무, 무슨...”


“장로님마저...”


부족원들은 상당히 충격받은 듯 술렁였다. 샤오허는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껏 공손님의 명에 따라... 수많은 이들을 데려가 바치는 역할을 맡아왔소. 지금껏 오로지 공손께서 사후에 내 죄를 덜어주시리라 믿고 움직인 것이오만, 어제 나타났던 그 거대한 원혼 속에서... 나는 내 조상님 중 한 분의 영혼을 느꼈다오.

지금껏 말하고 다닌 적은 없소만... 내 아버지께, 조상님들 중 공손의 명을 따라 숲 속을 정벌하러 가신 조상님이 있다고 들었지...

내 조상님의 성함은 잔수. 한때 센유엔의 족장을 맡은 적도 있는 분이라 들었소...”


잔수. 원혼들의 우두머리이자, 반얀 부족의 침략을 이끌었던 센유엔의 족장. 그 당시의 최고 전사였던 이였다.


“내 공손의 뜻을 따르셨던 내 조상께서 그런 원혼이 되신 것을 보니, 지금껏 공손을 따랐던 것이 옳은가, 하고 어젯밤 잠에 이르지 못하고 고민했소.

그리고 오늘. 공손님과 가장 가까이 지내셨던, 그분의 첩실들께서 그분의 죄목을 보증까지 하셨으니... 나 샤오허는 더 이상 공손님의 명은 듣지 않겠소이다.”


웅성웅성...


센유엔의 혼란함은 더욱 커졌다. 그러나, 샤오허를 기점으로 다른 몇몇 사람들이 오른편에 섰다. 아까 전 공손을 위해 가족을 바치며 울었느냐는 대목에서 눈시울을 붉힌 이들이었다. 수많은 이들이 창의 오른편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창의 왼편으로 가는 이들 역시 있었다. 내게 질문했던 청년이나, 내 목을 치려고 도끼를 들었던 전사. 호양 등이었다.

호양이 외쳤다.


“아무리 그래도 공손께서 있어서 센유엔 사람들이 물을 마셨고, 평화롭게 지냈소! 그런데 어찌 단기간에 외지인...님의 말만 듣고 공손님을 배신한단 말이오!”


호양은 나를 외지인이라고 힐난하려다가 내가 소환해둔 번개의 창을 보고는 조심스레 님 자를 붙여 소리쳤다.


“당신들은 신의도 없소이까! 당신들이 현인신을 배반하면, 지난날 현인신을 뫼셔왔던 그 많은 날들을 전부 부정하는 것이오?

공손님이 아픈 이들을 치료해주셨던 날들은 기억나지 않소? 귀신들린 이들을 낫게 하셨던 날들은 기억나지 않소? 여기서 공손님이 끌어올린 물을 먹지 않은 사람이 있소?”


이내 센유엔 부족은 세 무리로 나뉘었다.

공손을 믿지 못하겠다 나선 무리. 공손을 배반하면 아니된다는 무리. 그리고 아직 선택을 하지 못한 무리.


샤오허를 중심으로 불신자들의 무리가. 호양을 중심으로 광신자들의 무리가. 누조를 중심으로 선택하지 못한 이들의 무리가 생겨났다.

그들은 각자의 무리 속에서 서로에게 고함을 질러댔고, 누조는 자신의 무리 속에서 아이를 다독여주며 전전긍긍할 뿐이었다.


그러던 누조와 내 눈빛이 맞부딪혔다. 그녀가 나를 향해서 무어라 말을 내뱉었다.

주변은 시끄러웠고, 거리는 멀었지만 그녀가 하려는 말은 알 것 같았다. 난 그녀에게만 들리도록 영력을 담아 말을 건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공손이 뿌릴 저주는 결코 당신의 아이에게 닿지 않을 것입니다.]


땅 밑에서 땅굴 속을 휘젓고 다니는 이들이 느껴진다.


[다시는 후손이 고통받지 않으리라 맹세한 이들이 대신 맞아줄 터이니...]


순간, 민들레의 뿌리가 땅 속 어느 부분까지 자라났다. 땅 속에 커다란 공동이 있었다.


동시에 한 무리의 원령들이 불규칙한 땅굴들 속에서, 잘 다듬어진 통로와 같은 땅굴을 하나 발견했다.


‘찾았다, 공손.’


나는 영력을 담아, 시끄러운 센유엔 부족에게 소리쳤다.


[우선 땅속에 머무는 공손을 데려오겠다! 그를 어찌할지는 그가 온 이후, 그의 말을 듣고 결정하여도 된다!]


나는 그 말을 한 후, 등을 돌리고 손을 뻗었다.


“초원에 뿌리내린 초목이여. 숲의 신의 신력으로 명한다.”


녹빛의 신력이 일부 소모된다. 초원 곳곳에 뿌리내린 잡초들. 내가 흩뿌린 민들레 뿌리들. 뿌리들이 움직였다.


“길을 열어라.”


쿠드드드드!


식물의 뿌리들이 땅을 열었다. 땅속으로 향하는 길이 열렸다.

창을 등에 매고, 지팡이를 단단히 쥔 채 땅 밑으로 내려갔다. 공손의 비밀을 알아볼 시간이었다.



* * *



땅 밑은 어두웠다. 주술을 하나 엮어, 제사자의 지팡이 끝단에 불빛을 깃들게 하였다. 뿌리들이 열어낸 땅속 길. 흙으로 된 벽면에는 지렁이나 지네 등. 땅 속에서 사는 많은 벌레들이 꿈틀거렸다.


얼마나 어두운 땅속으로 내려갔을까. 지상에서 들어오던 햇살도 희미해졌고, 식물들의 뿌리도 더 닿지 못하는 곳에 이르렀다. 이제부터는 뿌리들의 도움을 받기 힘드니, 내 힘으로 굴을 바야 했다.


나는 가져온 위패를 흔들었다.


“돌아와라.”


휘이이이-


잠시 음산한 소리가 들리더니, 시커먼 원혼들이 내 앞에 모여들었다.


“통로를 하나 찾은 모양이군.”


-그렇다, 우리를 보내라!

-우리가 공손에게 할 말이 있다!


원혼들이 울부짖었다. 나는 담담하게 앞을 막은 흙벽을 가리켰다.


“나도 너희와 함께하겠다. 너희가 발견한 통로까지 길을 뚫어라.”


원혼들은 잠시 두런거리는 듯 하더니, 몰려들었다.


휘리리릭!


수많은 원혼이 땅속 곳곳에서 튀어나왔다. 놈들이 한데 뭉친다. 시커먼 원력이 땅속을 메웠다. 나는 주술로 몸을 보호하며, 눈 앞에 뭉친 악령체를 바라보았다.


익숙한 모습이었다. 시커먼 몸체, 단단한 근육, 시뻘건 안광. 그리고 전신을 뒤덮은 범의 줄무늬. 한창을 나와 치고받았던 악령체였다.


다만 이전과는 달리 보통의 인간 정도의 크기로 몸을 줄인 상태였다.


[물러서라. 길을 뚫겠다.]


놈의 음성이 귀곡성이 되어 땅 밑을 울렸다. 나는 정신을 보호하는 주술을 쓰며 뒤로 물러났다. 놈이 들고있던 창을 들고, 자세를 잡았다.

원혼들의 숫자는 모두 합해 145체. 우두머리 령 잔수를 중심으로 뭉친 144명의 무기와 하나된 전사의 원혼들이, 영력을 뿜어냈다.


[우오오오오오오!]


수많은 이들의 음성이 겹친 악령체의 귀곡성이 울린다. 동시에, 원혼이 창을 뻗었다.


쿠구구구구구!


반얀 부족에서, 수십 번을 보았던 놈의 공격이 흙벽을 향해 뿜어졌다. 창의 궤적에 따라 나오는 날카로운 강철의 산봉우리.

원력으로 이뤄진 시커먼 강철의 산봉우리가 흙벽을 그대로 밀고들어갔다.


구구구구구!


얼마간 굴을 뚫던 강철의 산봉우리는, 잠시 후 원력으로 변해 흩어지더니 악령체에게 도로 흡수된다.

눈앞으론 원력이 잔뜩 서린 거대한 굴이 생겨나 있었다.


[따라와라.]


악령체가 굴을 향해 걸어들어가며 나를 불렀다. 나는 원력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주술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얼마간 걷자 다시 흙으로 막힌 부분이 나타났고, 그때마다 악령체는 다시 강철의 산봉우리를 소환해 길을 뚫었다.


그렇게 하기를 세 번쯤 했을까.


후두둑.


눈 앞의 흙벽을 넘어섰다.


“음...!”


굴이다. 악령체가 만들어낸 통로가 아닌,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듯한 동굴.


‘아니, 아니군.’


자세히 보니 종유석은커녕 석순도 없다. 거기에다가 동굴의 결이 지나칠 정도로 깔끔했다. 누군가가 인공적으로 만든 ‘통로’다.


[저 앞에서 거대한 공동을 발견했다. 따라와라.]


확실히 저 굴 너머로, 신력으로 뿌리내린 민들레의 뿌리가 느껴졌다. 내가 아까 느꼈던 공동이었다.

나는 악령체와 함께 통로를 넘었다. 고요하다.


얼마간 걸었을까.


“....!”


우우웅...


나는 화들짝 놀라 걸음을 멈췄다. 악령체 역시 이 기운을 느꼈는지, 잠시 멈춰서 숨을 들이쉬었다.

반얀숲을 벗어나, 센유엔 부족이 있던 땅으로 들어와서 느꼈던 위화감 중 하나.


그것은 기이할 정도로 메마른 영력이었다. 천지간에 영력이 메마른 듯 영력을 보충하기 힘들었고, 지기 역시 평균보다 조금 낮은 수준이었다.

그러나, 통로를 벗어나 공동에 들어선 순간. 나는 대기를 꽉 채운 어마어마한 영력을 느낄 수 있었다.


“이건...”


반얀 숲의 조상신들이 깃들었던 조상목들도 이 정도의 영력은 아니었다. 큰버루산의 정상 역시 이 정도로 웅혼한 영기는 없었다.


나는 경악하며 주변의 영기를 들이마셨다.


마치 신전(神殿)을 연상케하는 가공할 영기!

지금껏 보아왔던 그 어느 장소와도 비할 바가 아니었다.


“후우우우...”


나는 주변의 영기를 흡수하며, 그동안 센유엔에서 사용했던 영력을 보충했다. 센유엔에서는 영력을 대기중에서 보충하지 못해 자체적으로 명상을 통해 보충하는 수밖에 없었다.

악령체 역시 가만히 서서, 나와의 일전에서 한창 소모했던 영력을 보충했다. 이전보다 몇 배는 깊어진 한에, 반얀 숲에서 한창을 축적했던 영력을 전성기 수준으로 회복했다. 악령체는 예전보다도 한참 더 강해질 것이다.


‘그나저나 이상하군.’


이 지하 깊은 곳에 이렇게 많은 영기와 지기가 뭉쳐있다. 그런데 왜 지상은 그토록 메말랐던 것인가?


‘용맥과 관련된 건가?’


그렇게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나는 전신을 만전의 상태로 회복한 후, 지팡이에 걸어둔 빛의 주술을 더욱 강화시켰다.


파앗!


공동이 환해졌다. 어둠 속에 가려져, 자세히 보지 못했던 공동이 드러난다.


“이곳은...”


쿠우우우...


명백히 인위적으로 만들어 진듯한 공동이었다. 공동의 천장은 주술문양으로 뒤덮여 흙이 쏟아지지 않게 되어있었고, 주술문양들은 대기중의 어마어마한 영력을 흡수하여 흙벽을 마치 강철처럼 단단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공동에 벽에는 딱히 유지주술 외에는 걸린 것이 없었다. 그러나 공동의 한쪽 벽면. 기이한 것이 있었다.


‘문?’


그것은 문이었다. 단단한 석재로 이뤄진듯한 석문이 공동의 한쪽 벽을 차지했다. 기이한 석문은 사람 하나가 간신히 들어갈 정도로 조금 열려있었고, 문의 주변으론 어린아이들의 것으로 보이는 뼈와 두개골이 즐비했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곳으로 다가가 그곳에서 쓰인 주술의 흔적을 짚었다.


‘오래전에 쓰였던 제례군. 제례의 목적은...’


주술의 흔적을 읽어내며, 나는 이 인신공양이 행해진 목적을 읽어내는데에 성공했다.


‘접속, 가동, 개방.’


제례에 남아있는 목적의식에 남아있는 세 개의 의념이었다.


‘공손은 이 문에 접속해서, 인신공양을 통해 문을 열었다. 놈이 원하는 건 이 문을 여는 것이었나?’


슈우우우...


고민을 하던 중, 음산한 원력이 공동을 가득 메웠다.


저벅, 저벅...


영력을 흡수한 악령체가 천천히 다가와, 문 옆에 즐비한 두개골들에 손을 뻗었다. 잠시 한 아이의 두개골을 보던 악령체는 원력으로 뼛조각들을 들어올렸다.


오랜 시간이 지나 훼손된 조각들도, 사라진 조각들도 있었지만 이내 뼛조각들은 열여섯 주 정도의 작은 시체들도 맞춰졌다. 악령체는 조용히 뼛조각들을 일렬로 바닥에 정리한 후, 내게 말했다.


[저 너머에서 공손의 냄새가 난다. 영력이 너무 진해 흐릿하게 느껴지지만, 분명히 저 너머에 있다.]


이전처럼 한을 쏟아내지도, 줄기줄기 원력을 증폭시키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 어느때보다 악령체가 위험하게 느껴졌다.


한(恨)이 극에 달해 있었다.


“...너희는 이것이 뭔지 아는가?”


나는 석문을 바라보며 물었다. 악령체가 덤덤하게 말했다.


[예전, 저 땅 위에 있었던 공손의 제단이로군. 그가 이 제단 위에서 반얀 부족으로 떠나는 우리를 축복해주었던 것을 기억한다.]


“.....”


[그날 제단 위에 떠올랐던... 거대한 강철의 산. 그 허상을 아직도 기억한다.]


“...이 제단이 강철의 산의 근원이란 말인가?”


[그래. 공손은 항상 이곳에서 강철의 산의 허상을 소환했고, 그것을 자신의 의지라고 천명했다.]


“제단...이라.”


나는 석문을 손으로 쓸었다. 제사장인 내 역량으로도 파악되지 않을, 어마어마한 주술의 힘이 느껴진다. 이 웅장함은 바얏크에게 반얀 숲의 진실을 들었을 때, 숲 자체가 조상신이란 사실을 들었을 때 들었던 웅장함과도 흡사했다.


이게 단순한 제단이라고?


나는 어쩌면, 공손이 그리 만만한 자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일단 들어가보지.”


나는 작게 열린 틈으로 들어갔고, 악령체 역시 나를 따라 들어왔다.


휘이이이...


제사자의 지팡이 끝으로 빛을 비췄다. 제단 내부 역시 단단한 돌로 이뤄져 있었다. 내부 곳곳에는 수많은 석벽이 있었으며, 그것들은 몇 개의 길을 형성하고 있었다.


마치 미로 같았다.


“공손은 어디에 있지?”


나는 악령체에게 질문했다. 녀석은 잠시 공손의 파동을 느끼는 듯 하더니 얼굴을 찌푸렸다.


[영력이 너무 진해서 찾기 힘들군...]


그 말대로였다. 제단 내부는 공동보다도 훨씬 영력이 진했다. 편안한 것이 아니라 차라리 압박이 느껴질 정도의 영력이었다.


“좋아. 흩어져서 찾아보는 건 어떤가?”


[그러도록 하지.]


악령체는 그 말과 함께 석벽 중 하나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는 그대로 튕겨져 나왔다.


파지직!


[크윽...!]


“아무래도 영체가 함부로 투과할 수는 없는 모양이군.”


악령체는 얼굴을 찌푸리더니 눈을 감았다. 악령체의 몸이 무너져내렸다. 무너져내린 악령체의 육신은 이내 수많은 원혼들로 흩어져내린다. 시커먼 원력이 주변을 메우는 듯했다.


[공손을 찾겠다!]


[반드시, 녀석의 죗값을 물을 것이다!]


수십마리의 원령들이 미로 곳곳으로 흩어지며 공손을 찾아헤멘다. 나는 그 모습을 본 후, 입구를 틀어막았다. 혹시라도 녀석이 도망치면 곤란하니.


콰득!


그리고 직후 엄지를 깨물어 핏방울을 떨어뜨렸다.


촤르르륵!


핏방울은 허공에서 눈알 형태의 주술문양으로 응집되었다. 허공의 가공할 영력을 흡수한 주술문양은 이내 수백을 넘어 수천개의 주술문양으로 쪼개졌다.


“공손을 찾아라!”


촤르르르륵!


추적주술이 미로 곳곳으로 흩어졌다. 나는 가만히 자리에 앉아 영력을 갈무리하며 추적주술들의 신호를 기다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감고있던 눈을 떴다.


어느새, 내 눈앞에는 시커먼 그림자가 하나 서 있었다. 사람의 윤곽만을 형성한 그림자는 얼굴이 없었다.


“네 쪽에서 찾아올 줄은 몰랐는데... 공손.”


녀석이 말했다.


[이쯤에서 물러간다면 없던 일로 하지. 내 땅에서 이방 신의 힘을 쓴 것도. 내 족원들에게 헛된 사상을 주입한 것도. 내 제단에 침입한 것도.]


나는 얼마간 그림자를 바라보다가 큭큭 웃었다.


“한 부족의 장을 맡았던 녀석이 예의를 밥말아 쳐먹었나? 그런 말을 하고 싶으면 그림자 주술이 아니라 직접 와서 말하지 그랬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뭘 없던 일로 한다는 거냐. 네가 네 족원을 식인한 일? 반얀족을 침략한 일? 자기 전사들을 반얀족에 내던져 수 년동안이나 원혼으로 썩게 한 일?”


영력을 일으켰다. 주변의 무시무시한 영력이 나를 중심으로 엮여진다.


“어떤 일도 없던 일로 만들 순 없다. 내가 제안하지. 이쯤에서 내 앞에 온다면, 명예롭게 죽을 기회를 주지.”


촤륵!


주술로 공손이 보낸 그림자를 묶었다. 주술의 흔적을 쫓아 역추적할 계획이었다.

공손의 그림자는 나를 보며 말했다.


[처음 나를 보았을 때. 너는 스스로를 우레가람이라고 소개했지. 우레가람...]


이어진 녀석의 말에 나는 흠칫 놀랐다.


[우레노을과는 어떤 관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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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 현인신(10) +1 21.07.21 262 6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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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61. 현인신(7) +1 21.07.14 193 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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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52. 조상신(25) +2 21.07.05 236 9 14쪽
52 51. 조상신(24) +2 21.06.21 232 10 18쪽
51 50. 조상신(23) +1 21.06.20 224 6 22쪽
50 49. 조상신(22) +1 21.06.20 197 5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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