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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서재다.

신석기 제사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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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작품등록일 :
2021.05.12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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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3,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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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13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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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60. 현인신(6)

DUMMY

“공손은 제게 말해주었습니다. 자신은 칠 대 공손이기도 하지만, 초대 공손과 같은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대대로 모든 공손은 초대 공손의 의지를 물려받고 있다고... 하지만 제가 볼 때, 공손에게 이어지는 것은 의지가 아닌 광기(狂氣)입니다.”


“광기?”


“그는 기이한 광기를 가지고 있었지요. 입으로는, 자기 자신이 이 땅의 수호자라고 하지만... 저와, 다른 첩들이 볼 때는 달랐습니다. 그는 이 땅에 [집착]하고 있지요. 잘은 모르겠지만, 공손은 이 땅에서 ‘뭔가’를 찾아내려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뭔가를 찾아내려고...”


나는 센유엔 부족 주변에 잔뜩 널린 무수한 땅굴과, 공손의 집 밑에 있던 깊은 땅굴을 떠올렸다.


‘센유엔의 물길을 막은 것은 지네 괴물. 그리고, 그 지네 괴물은 공손의 명을 따르는 놈이다.’


공손이 물길을 막았고, 그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물을 찾아야 한다며 마을 사람들을 동원해 우물을 파게 시켰다.


‘그렇군.’


물길을 막음으로써, ‘땅을 파서 물을 찾는다’라는 명분으로 땅을 파게 만든다. 그리고 자신이 찾으려는 ‘뭔가’를 찾으려고 했던 것이었다.

이 땅에 즐비한 구덩이들의 정체에 대해 알게 된 순간이었다.

누조가 말을 이었다.


“저희 부족에 이어지는, 5년에 한 번씩 거행되는 인신공양의 풍습... 신인께선 그 제물을 받는 ‘대상’이 누구인지 궁금하시지 않습니까?”


“확실히...”


공손은 일반인이고, 이 근방에는 어떤 신의 기척도 찾을 수 없다. 그는 누구에게 제물을 바치는 것일까.

이어진 누조의 말에 나는 흠칫 놀랐다.


“인신공양의 제례를 받는 이는, 현인신인 공손 그 자체입니다.”


“....!?”


나는 이해할 수가 없어서 되물었다.


“공손이... 자기 자신한테 제물을 바친.. 아니 바치게 한다는 겁니까?”


“예.”


나는 어이가 없어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간혹 신에게 인신공양을 바치는 것은, 비윤리적이긴 해도 이해는 할 수 있었다. 물론 납득이 가지는 않았지만, 어찌되었든 시대의 특성상 이해의 범주에 들어가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인신공양을 자기 자신한테 바친다고?

아니, 공양도 아니다. 이 경우엔 그냥 식인(食人)이 아닌가?


제사장이 인신공양을 받았을 때 제물의 내장을 먹는 제례의 경우도 있긴 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제사장이 ‘신을 대리하여’ 제물을 받는 것이지, 인간인 제사장이 제물을 받는 것이 아니다.

그나마도 주술적 효율이 좋지 않은 방법이라 쓰이지 않는다.


“다시 묻겠습니다. 정말 제물을 바치는 주체가 ‘공손’ 본인이 맞습니까?”


“한 치도 거짓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누조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말하기 좋은 기억은 아니었는지, 얼굴이 굳어있었지만 눈빛은 진실했다.


“공손은 제물을 바침으로써, 이 근방의 수기(水氣)를 증폭시켜, 우물을 팠을 시에 물이 솟을 확률이 높다고 선전했습니다. 그리고 제물을 받아먹은 후엔 신비한 이적을 선보이며 사람들을 이끌고 땅을 파도록 장려하였지요.”


“.....”


“사람들은 멀찍이서 공손을 바라보며 환호하느라 인지하지 못한 것 같았지만.. 저와 그의 첩들은 전부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공손의 눈빛은, 제물을 바라볼 때와 부족원들을 바라볼 때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녀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어쩌면... 우리 부족은, 전원이 그에게 잠재적인 제물로 보이는 것일수도 있겠지요.”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미친 놈인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로 광인이었단 말인가.


“이것이, 제가 느껴온 공손의 광기.. 그 일부입니다.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그에게는 저것 말고도 또 다른 광기가 존재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무거운 정보, 잘 들었습니다.”


누조는 인신공양의 사실을 말한 후, 얼마간 침묵을 지켰다. 이 사실을 말하는 것은 그녀로서도 꽤 힘든 결정이었을 것이다. 얼마간 말이 없던 누조는 내 허리춤의 범 조각상을 가리켰다.


“잠시 줘 보시겠습니까.”


나는 범 조각상을 건냈다. 그녀는 조각상을 둘러보더니, 조각상의 바닥 부분. 범의 다리가 있는 나무판자를 가리켰다.


“보이십니까?”


밑바닥의 판자에는, 작은 홈 같은 것이 두 줄 그어져 있었다.


“이 조각상은 센유엔 부족의 신 중 하나인, ‘범바람’을 조각한 것으로써, 원래 센유엔에서도 자주 만드는 조각상입니다.”


“샤오허에게 들었을 땐 조각상을 동쪽에서 받아온 것인줄 알았는데...”


“최근에는 한물 지난 유행이니 그냥 그런 식으로 말한 모양입니다만... 제 아버지 세대까지만 해도 범바람과, 그 짝인 미르바람. 두 신의 조각상을 쌍으로 맞추어 부부가 가지는 것이 유행이었습니다.”


“...그 말은.”


“범바람의 조각상은 한 쌍으로 만들어진 조각상이지요.”


그녀는 두 줄의 홈을 톡톡 건드렸다. 저 조각상과 이어지게 만들어진 조각상이 하나 더 있다는 뜻이었다.


“제가 공손과 자며 듣기로, 초대 공손께서는 예전 동쪽으로 여정을 떠났다고 했지요. 그 분께선 동쪽에서 한 분의 귀인(貴人)을 만났다고 했습니다. 그 귀인을 만나고, 공손은 징표로써 이 낙인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증표?”


“공손은 ‘시련을 통과했다는 징표’라고 했습니다.”


“시련의 증표...”


문뜩, 서슬뱀의 말이 떠올랐다.


-동쪽 끝의 현자는, ‘세 가지 시련’이란 것을 낸다오. 그가 내는 시련에 도전하여 완수하면 현자에게 소원을 빌 자격이 생기지.


‘공손이, 동쪽 끝의 현자를 찾아가 ‘시련’을 받았다?’


세 가지 시련. 그것을 통과하면, 동쪽 끝의 현자에게 소원을 빌 자격이 생긴다. 초대 공손이란 자는, 동쪽 끝의 현자에게 찾아가서 세 가지 시련을 받았다. 그리고 시련을 통과했다는 증표를 받았다면.


그는 소원으로 무엇을 빌었을까.


“다른 이야기는 없었습니까?”


“초대 공손은 이 징표를 받아오고, 자신이 진정한 현인신임을 깨달아, 스스로가 신이라 선포하였습니다. 전설로는 공손이 신이라 선포한 그 날. 대지가 황금빛으로 물들고, 강철의 산의 수호신이 내려와 공손을 축하해주었다고 하더군요.”


한 마디로, 동쪽 끝의 현자에게서 ‘신이라고 불리워도 될 만큼의 무언가’를 받았다는 것이다.

내가 고민하는 사이, 누조가 조각상을 보며 말했다.


“저와 다른 첩들은, 이 조각상의 ‘다른 한쌍’이 동쪽에서 만난 귀인에게 있지 않을까... 그리 생각합니다.”


“흐음...”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 낙인에서는 사악한 힘은 느껴지지 않는다. 하면, 동쪽 끝의 현자가 사악한 힘을 전송하는 일종의 ‘단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 쌍으로 만들어진 조각상. 그 한 쪽을 동쪽 끝의 현자가 가지고 있다면, 그 조각상을 통해 녀석의 힘을 전송하는 것 역시 가능할 것이다.


나는 순간 소름이 오소소 돋는 것을 느꼈다.


내가 이 조각상이 한 쌍으로 만들어졌고, 그 한쌍이 동쪽 끝 현자에게 있을지 모르는 추측을 듣지 못했더라면 어땠을까.

어쩌면 불시에 동쪽 끝의 현자가 사악한 힘으로 나를 기습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정보 고맙습니다. 제게는 아주 귀한 정보였습니다.”


나는 말을 하며 조각상을 받아들고, 무수한 봉인주술로 조각상을 뒤덮었다. 일단 이대로는 두면 안 될 것 같았다.



* * *



깊은 굴 속, 어두운 구조물 안쪽.

그곳에서, 한 남성이 당혹해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뭣... 이건, 그, 그놈이 내 징표에 손을... 이 놈, 죽여버리겠다...!”


그는 이를 부득부득 갈며 주술을 짜내기 시작했다.



* * *



파앗...!


수많은 봉인문양으로 뒤덮힌 조각상은 은은한 붉은빛을 내뿜고 있었다. 나는 그제서야 조금 안심이 되어, 조각상을 허리춤에 찰 수 있었다.


“신인께서도 뭔가 이 조각상에 대해 아시는 바가 있으신 겁니까?”


“조각상에 대해선 모릅니다만, 여기에 찍힌 낙인의 주인은 조금 아는 편이지요. 제가 보건데, 공손이 만났다는 동쪽의 귀인이라는 이 역시... 정상인은 아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공손의 광기와 센유엔의 인신공양 역시, 동쪽 끝의 현자와 관련이 있는 것일까.

내가 고민하던 찰나, 누조가 아이를 불러왔다.


“신인께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신인이라 부르지 말고, 제사장이라 부르시지요.”


“예, 공손은 이 아이를...”


그때였다.


달그락.


허리춤에 찬, 원령들이 봉인된 위패가 움직였다.


달그락, 달그락.


원혼들이 갑자기 날뛰기 시작한다. 그리고 내가 이 집에 덧씌운 결계. 그 너머로 혼란스러운 마을의 상황이 느껴졌다.


“잠시, 바깥 좀 확인해보겠습니다.”


파앗!


결계를 풀고 집 바깥으로 나가자, 센유엔 부족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


목책 너머로, 황금빛 기운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나는 황급히 달려가 목책 위로 올라갔다. 센유엔 부족 주변, 수많은 땅굴에서 황금빛 휘광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오오... [징조]다..”

“새 공손이 정해질 거야...”


마을사람들은 감격에 찬 눈으로 너도나도 목책에 올라, 땅굴에서 뿜어지는 황금빛 기운을 쳐다보았다.

저것이 새로운 공손이 정해질 때에 나타난다는 징조인 모양이었다.


우우우웅!


땅굴들에서 뿜어지는 황금빛은, 허공으로 올라가더니 마을 위에서 뭉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대한 황금빛의 얼굴로 화한다. 그것은 어느 중년인의 얼굴이었다.


‘공손?’


내가 일전 보았던 공손의 얼굴인가 했지만, 그것과는 다른 얼굴이었다. 다만 조금 비슷한 인상을 가진 것 같았다.

황금빛의 얼굴이 천천히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그리고, 그것이 입을 열었다.


[모두 들어라.]


센유엔의 모든 이들이 얼굴을 향해 절을 올렸다. 오로지 나만이 그를 보며 서있는 중이었다.


[저 이방 주술사가 신성함을 쫓아내는 결계를 이 마을에 둘렀다.]


구웅!


녀석이 큰 눈을 깜빡이자, 내가 짜놓은 결계가 충격을 받으며 육안으로 보이도록 유형화되었다.


[사악한 이방 주술사를 죽여라, 나의 자손들아.]


그것의 말은, 힘을 가진 언령(言令)이 되어 센유엔 부족원들에게 명을 내렸다. 그 명을 들은 그들의 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센유엔을 위하여, 저자에게 달려들어라, 이것은 전부 센유엔의 신, 공손의 영이니라!]


공손의 명이 센유엔 부족을 뒤덮었다.

그리고, 부족원들이 나를 쳐다본다. 그들의 눈에 기이한 살기가 깃들었다. 명백히 내게 달려들려는 눈빛이다.


그때였다.


달그락, 달그락, 달그락!


내 허리춤에 매달린 위패들이, 미친 듯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덜그럭 덜그럭!


파앙!


결국 내 허리춤에 묶여있던 위패들은 흔들리다 못해 줄이 끊어져 버렸고, 시커먼 원력이 줄기차게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봉인이 깨져버렸다.


동시에 위패들에서 찢어질듯한 비명소리가 울렸다.


-끄아아아아

-끼야아아아

-냄새가 난다! 냄새가!

-공손의 냄새야!


그 끔찍한 귀곡성에 센유엔 부족원들의 눈에 떠오른 기이한 살기가 풀려버렸다. 그들의 심령을 지배하던 공손의 영이, 깨져나간다.


[공손! 공손!]


한 원령이 형체를 갖춘다. 피눈물을 흘리며, 햇빛 아래 우뚝 선 원령은 허공에 떠있던 황금빛 얼굴을 쳐다보았다.


저 자는 우두머리 령. 센유엔의 족장이었던 자였다.


[공손!!!]


하늘을 찌를 듯한 한(恨)을 뿜어내며, 센유엔의 옛 족장이 비통한 고함을 질렀다.


[왜!!! 우리를 가두었소!!!]


그가 피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공손에게 고함친다.


[왜 우리를, 죽게 하였소, 왜! 왜!!!]


원한이 절절하게 묻어나오는 목소리로, 그는 자신들의 신에게 소리쳤다.


[왜 우리를! 반얀의 숲에서! 수십 년이나 썩게 만들었냔 말이다! 공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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