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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서재다.

신석기 제사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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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작품등록일 :
2021.05.12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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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04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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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1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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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8. 현인신(4)

DUMMY

그것은 작은 범을 조각한 조각상이었다. 하늘을 향해 표효하는 범의 조각상은, 신석기 시대의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매끄러운 자태를 띄었다. 그런 범의 미간 정중앙에는 범무늬 대신 사악한 인장이 찍혀있었다.

물론 단순히 인장일 뿐, 사악한 힘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저것은 동쪽 끝 현자의 사악한 주술문양이었다.


“이건 어디서 낫지?”


“아, 예. 초대 공손께서 동쪽으로 여정을 갔다가 가져온 물건이라고 합니다. 기이하게도 썩지도 않고 관리하지 않아도 늘 윤이나는 물건입니다.”


나는 조각상을 받아들어 살펴보았다. 상태 보존주술이 은은하게 씌워져 있는 것을 제하고는, 특별한 것도 없었다. 그냥 조각상이었다.

이 조각상이 동쪽 끝의 현자에 대한 단초가 될까 싶어 챙겨보았다.


“좋다, 조금 도와주지.”


“감, 감사합...”


“단, 사흘씩이나 도와줄 필요는 없을 것 같군.”


“예...?”


“결계를 하나 짜주마.”



* * *



센유엔 부족의 목책을 경계로, 부족을 뒤덮는 주술진을 짜냈다.


우우웅!


거의 하루를 들여 짠 이 주술진은 완성되자 반투명한 구의 형태로 마을을 감싸안았다.

목책은 물론이고, 하늘, 심지어는 땅 밑에서라도 절대 뭔가가 침범하지 못하게 하는 결계였다.


스스스...


결계는 내가 손짓을 하자 그대로 허공에 녹아들었다. 이젠 육안으로는 결계를 확인하기 어렵게 되어버렸다.


“결계를 짜 두었다. 너희 부족원들이 허락하지 않는 자는 이 결계 내로 들어올 수 없으니 안심해라.”


“가, 감사합니다!”


샤오허와 부족원들은 내게 허리를 숙여 감사인사를 표했다.

결계를 짜는 데에 공을 들였더니, 벌써 해가 지고 있었다.


“이제 그 괴물이라는 게 나올 시간인가?”


“예, 해가 지고나면 얼마 후에 괴물이 마을로 들어오려 기회를 노립니다.”


“그래, 앞으론 그 괴물이 들어올 수 없을 거다.”


제사장이 무려 하루를 들여 짠 주술진이다. 신의 힘과 같은 것이 아니면 함부로 뚫을 수 없을 것이다.


“난 이제 가보마.”


“하, 하지만 이제 괴물이 나올 터인데...”


“괴물이 나온다라...”


나는 센유엔 부족원들을 흘긋 바라보았다. 차라리 괴물이 낫지, 나를 제물로 바치려고 했던 이 부족원들과는 같은 밤을 지새기 싫었다.


“상관없다. 난 이만 가보지.”


나는 빠르게 작별인사를 한 후, 부족원들이 챙겨주는 식량과 몇몇 짐들을 챙기고 우레버루에 올라탔다.


“가자!”


버어어어-


그리고 초원의 동쪽을 향해서 달렸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 * *



초원의 언덕 두어개를 넘고, 녹빛 지평선을 얼마나 가로질렀을까.

어느새 하늘은 어두워져 있었다.


‘...센유엔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올 것을 그랬나...’


하지만 함부로 그곳에서 잠을 잤다간 어떻게 될지, 괜히 불안하다.

차라리 마음 편하게 다음 부족을 향하는 게 나았다.


‘서슬뱀의 기억에 의하면, 센유엔 너머의 부족은 길손을 아주 귀하게 대접하는 부족이었으니...’


서슬뱀의 부하 중 셋은 저 너머 초원의 부족에서 데려온 이들이었다.

초원의 부족은 센유엔 부족과 같이 함부로 길손을 인신공양하거나 하지는 않는 부족이었다.


‘그쪽 부족에서 정비를 하고, 원혼들도 완전히 천도시켜버린 다음...’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생각할 때였다. 뒤통수가 따갑다.

어쩐지, ‘찌르르’하는 무언가가 내 감각에 잡혔다.


“...! 멈춰, 우레버루!”


탁탁!


녀석의 뒤통수를 황급히 두들겼다. 녀석은 급격히 자리에서 멈춰섰고,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내가 쳐 놓은 결계가, 깨졌다.


오라, 천둥의 힘이여.


녀석의 등에서 뛰어내림과 동시에 한줄기 벼락을 불러왔다.


번쩍!


즉시 몸이 벼락의 정령과 같이 변화했다.

나는 발을 굴러 센유엔 부족을 향해 쏘아져갔다. 우레버루가 한참을 달린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져왔다.


“...!”


부족에 도착하니, 내가 쳐놓은 구체형태의 결계. 그곳의 한 귀퉁기가 처참하게 깨져있었고, 마을은 아비규환이었다.

시커먼 ‘무언가’가 집과 집 사이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콰르릉!


허공을 박차고 결계를 통과해, 그 시커먼 것을 하늘에서 내리찍었다.


“이 놈!”


촤르륵!


그러나, 녀석은 내가 올 것을 알고있기라도 했는지 금세 피하고는, 그대로 아이 한명을 물어서 깨진 결계의 틈새로 달려갔다.


“안 돼!”


아이의 어머니로 보이는 센유엔의 여성 부족원이 비명을 질렀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순간 흠칫 놀랐으나, 이내 정신을 집중하고 녀석에게 따라붙었다.


파지직!


내 족적에 벼락이 꼬리처럼 늘어졌고, 녀석에게 거의 손이 닿았을 때였다.


파앗!


놈이 마치 액체처럼 내 손아귀를 벗어나, 목책을 넘어가버렸다. 나 역시 목책을 뛰어넘어 멀리 달라나는 괴물을 향해 손을 뻗었다.


천둥의 힘.

내.


쿠르릉!


번개의 창이 손에 쥐여진다. 나는 투창 자세를 잡고는, 멀리 달아나는 괴물에게 창을 던졌다.


번쩍!


저 멀리 괴물이 있던 곳에 벼락의 기둥이 솟아오른다. 창이 꽂힌 일대가 무수한 스파크로 뒤덮혔다. 하지만, 괴물은 멀쩡하다. 오히려 진로를 틀어서는 시커먼 몸체를 구불텅거리며 빠르게 어딘가로 기어간다.


천둥의 힘.

폭포.


콰르르르!


전신의 벼락이 빠르게 방전되었다. 몸 곳곳에서 빠져나온 수많은 번개의 창들이 괴물에게 날아갔다.


번쩍! 번쩍! 번쩍!


번개의 기둥 수 개가 지평선에서 치솟았지만, 괴물은 어둠속을 유영하듯이 요리조리 창들을 피한다. 그러던 중, 마지막 창이 괴물이 향하는 진로의 앞을 틀어막았다.

괴물의 앞에서 거대한 스파크의 기둥이 치솟는다.


번쩍!


괴물이 화들짝 놀란 듯 상반신을 들어올리며 꿈틀거렸다. 나는 때를 놓치지 않고 놈에게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놈과 내 거리가 좁혀졌고, 나는 손을 펼쳤다.


천둥의 힘.

개울.


손끝에서 뻗어나간 전류가 개울처럼 괴물의 주위를 감싸안았고, 빠져나갈 틈을 메운다.


“잡았다, 이 놈.”


그때였다. 괴물이 쿨럭거리며 뭔가를 내게 토해냈다.


“...!”


녀석이 물어갔던 어린아이였다. 난 황급히 아이를 받아들었고, 괴물은 그 틈을 타서 황금빛 기운으로 몸을 뒤덮더니 번개의 우리를 빠져나갔다.


“어딜!”


나는 아이를 내려놓고 황급히 녀석을 쫓아갔다. 그리고 놈의 몸체를 잡았을 때였다.


콰득!


놈은 내게 잡힌 몸체를 마치 도마뱀이 꼬리 자르듯 떼어버리고는, 그대로 센유엔 부족 인근 땅굴 중 하나로 기어들어가버렸다.


촤르륵!


땅굴 속으로 들어간 녀석의 기척은 찾을 수 없었다. 나는 우선 놈이 기어들어간 땅굴 안으로 번개의 창을 몇 자루 던져넣었다.

하지만 땅 속이라서 그런지 별 효과도 보지 못하고 금세 방전되었다.


파지직!


그리고, 마침내 전신의 번개가 방전되었다. 내 몸이 인간의 것으로 돌아왔다. 몸에 힘이 빠졌다.


“뭐지, 저놈?”


나는 괴물이 뗴어놓고 간 몸체 한 부분을 들어보았다. 몸체 한 부분에는 몇 개의 다리가 붙어있었다. 지네의 다리였다.


달그락, 달그락!


“...?”


그리고 어째서인지 위패에 봉인한 원혼들이 이리저리 날뛰었다.


-익숙한, 익숙한 냄새가 난다!

-누구였지, 익숙한 자다!

-잊을 수 없다, 이 냄새를 잊을 수 없어...!


허리춤에 걸어놓은 위패들은 얼마간 달그락거리다가 지쳤는지 원상태로 되돌아갔다. 지네 다리를 보고 이러는 것일까?

나는 일단 엉엉 울어대는 아이를 안아들고, 센유엔 부족으로 돌아갔다.



* * *



“미안하군. 설마 이것이 내 결계를 뚫을 줄은 몰랐네.”


나는 뜯어온 지네의 다리를 샤오허의 앞에 놔두며 말했다.

샤오허는 지네 다리를 보며 침음성을 흘렸다.


“이 다리는... 설마 그것이 아직도 죽지 않았다는 건가...”


“아는 다리인가?”


“물길을 막았던 괴물과 똑같이 생겼습니다.”


확실히, 서슬뱀의 기억 속 지네의 다리와 비슷하게 생겼다. 기묘한 무늬가 있는 것 역시 비슷했다.


“같은 괴물이거나, 혹은... 그때 그 괴물이 완전히 죽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무슨 괴물인가. 나는 그 지네가 내 번개의 그물을 빠져나가기 전 내뿜었던 황금빛 기운을 생각했다. 서슬뱀의 기억 속 지네는 그런 건 뿜어내지 못했다. 그저 기세를 쏘아내는 경지에 이른 서슬뱀의 기세를 맞다가 그의 창에 죽었다.


‘그 황금빛 기운...’


그것은 분명, 우레노을이 소슬바람에게 내려준 전승과 같은 기운이었다.

그리고, 바얏크의 기억 속. 센유엔 부족의 전사들이 사용했던 황금빛 기운과도 같은 힘이었었다.


-자세히는 잘 모르네. 나 역시 거센바람에게 들어서 대략 알기만 하는 것이니...

대지를 흐르는 이 땅의 생명력으로, 신의 힘에 버금가는 권능이라 알려주더군. 그리고 센유엔 부족의 ‘공손’이라는 주술사가, 제사장이 아닌 일반인의 몸으로 용맥의 힘을 얻었다고 들었네.


바얏크의 설명을 떠올렸다.


“용맥...”


지네가 썼던 것은, 용맥(龍脈)의 기운이다.

그리고, 지네는 땅굴로 들어갔다.


‘공손 역시 땅굴로 떨어져 죽었지.’


나는 몇 가지 정보를 취합하며, 한 가지 가정을 내렸다.


‘공손 그 놈은 추락사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네의 다리를 영안으로 보았다.


‘이 지네를 통해서 아이를 납치하는 것 역시 공손 그 놈이다.’


지네의 다리는, 실존하는 물질이 아니었다. 난생 처음보는 기이한 물질.

기이한 주술파동을 내뿜는 그 지네의 몸체는 술력(術力)으로 이뤄진 주술물질이었다.


우웅!


내가 지네의 다리에 영력을 집어넣자, 지네의 다리는 꿈틀거리며 살아있는 것처럼 저절로 움직였다.


“으, 으헉!”


샤오허는 기겁하며 뒷걸음질을 쳤고, 나는 주술을 짜서 지네의 몸체를 내 손바닥에 봉인해놓았다.

지네의 몸체 일부분은 내 오른손 손바닥 정중앙. 마치 점과 같은 형태로 그곳에 봉인되었다.


‘정상적인 물질이면, 주술로 손바닥에 봉인할 수 없지.’


이것은 추후에 그 지네를 상대할 때 쓰면 될 것이다. 나는 봉인된 점을 보며, 한 가지 사실 역시 더 알 수 있었다.


‘잠깐...‘


“이봐, 샤오허.”


“예.”


“그 지네 다리 말인데, 서슬뱀과 공손이 죽였던 지네 다리와 비슷하다고 했지?”


“그렇습니다만...”


“.....”


센유엔 부족의 물길을 막았던 것 역시.

공손 그 놈이다.

강철의 산. 용맥. 땅굴. 인신공양. 원혼들. 공손. 동쪽 끝의 현자의 낙인.. 이것들은 대체 어떤 연관이 있을까.

머리가 팽팽 돌아갈 것 같았다. 내가 정보들을 취합해볼 때였다.


“센유엔의 누조가 신인께 감사 인사를 올리옵니다.”


“아...”


납치되었던 아이의 어머니였다. 센유엔 부족원답지 않게, 피부가 조금 하얀 편이었고, 눈은 크고 아름다웠다. 아이의 어머니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서슬뱀의 기억 속.

공손의 첩이자, 서슬뱀에게 센유엔 마을의 실체를 알려주고 도망치라는 경고를 해 주었던 여인이었으며,

서슬뱀이 노란 끈을 받고, 센유엔에서 아홉 달을 머물동안 서슬뱀과 묘한 감정을 주고받았던 여인이었다.


“아이를 잃을까 얼마나 노심초사 했었는지... 신인께서 구해주시어 정말 감사합니다.”


내가 그녀를 바라볼 때, 누조는 다시 내게 허리를 숙였다. 그녀의 옆에는 아까 납치되었었던 대여섯살 짜리 아이가 손가락을 빨며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니오. 내 결계가 부족했으니 내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겠지...”


“아닙니다. 그...”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구려. 빨리 말하시오.”


“...샤오허가 신인께 서슬뱀과 같은 부족이냐고 물었고, 신인께서는 그렇다고 답하셨습니다.”


“그랬지.”


나는 누조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 같았다.


“서슬뱀은,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그는...”


뭐라고 답해주어야 할까.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있는대로 말해주었다.


“하늘로 올라갔소.”


“.....”


누조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눈동자에 깊은 슬픔이 배여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답변, 감사합니다.”


그녀는 다시 한 번 내게 고개를 숙이고는 아이를 데리고 돌아갔다.


“왜 그리 됐는지는 묻지 않소?”


“... 무얼 했든 그의 선택이니 존중할 뿐입니다.”


나는 누조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깨진 결계로 시선을 돌렸다. 우선 결계를 보수해야 할 것 같았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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