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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서재다.

신석기 제사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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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작품등록일 :
2021.05.12 20:32
최근연재일 :
2021.08.04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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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20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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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2쪽

63. 현인신(9)

DUMMY

여기가 센유엔이 아니다?

원혼은 붉은 눈으로 마을을 둘러보았다.


-그래, 이곳은 센유엔이 아니야.


“...하지만, 이 자들은 분명 자신들을 센유엔 부족이라고 한다. 너희가 모셨던 공손 역시 동일인이 아닌가?”


한동안 주변을 멍하니 보던 원혼이 손을 들어 초원 한 구석을 가리켰다.


-틀려, 센유엔 부족은 본디 조금 더 동쪽에 있었다. 반얀족의 숲과 이리 가까이 붙어있지도 않았지. 이곳은 예전 공손이 우리를 이끌고 신들 앞에서 제사를 지냈던 자리이다. 본래 센유엔 부족의 자리가 아니야.


“음, 이상하군. 주술사가 제사를 지내면, 거기가 곧 부족이 아닌가?”


-모르겠군. 다른 부족은 어떨지 모르지만, 센유엔 부족은 본래 공손이 제사를 지내는 공간과, 부족의 마을이 있는 공간이 떨어져 있었다. 본래 이 즈음에는... 공손이 하늘에서 내려받았다는 제단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형이 상당히 많이 바뀌어서 확신은 못하겠군. 본래 낮은 언덕들이 꽤 많았다만, 지금은 몇 개를 제외하고는 전부 평원으로 바뀌었으니.-


‘제단이 있었던 곳...’


원혼이 동쪽 평원 너머를 바라보며 말했다.


-여하튼, 우리가 한을 풀지 못하는 것은 아주 당연하다. 본디 이곳은 우리가 살던 마을이 아니었으며, 공손의 제단이 있었었던 곳... 일 것 같다. 어쩌면 아예 다른 곳일 수도 있지. 우리의 고향이 아니니, 우리가 이곳에서 잠들 수 없는 것이다.


“흐음.. 이곳이 센유엔이 아니라면, 너희가 아까 달려들었던 공손은 너희가 아는 공손이 맞나?”


내 말에 원혼은 눈에서 시뻘건 안광을 뿜어내며 이를 갈았다.


-분명하다. 그는 공손이었다. 우리가 반얀족으로 가기 전, 그가 뿌렸던 축복의 기운을 똑똑히 기억한다. 반얀의 숲에서 수십년간을 묶여지내며, 우리를 묶어두었던 그 주술의 냄새를 똑똑히 기억한다. 그 목소리를, 그 얼굴을 잊을 수 없다. 그는 공손이 맞다.


“그렇군. 너희를 반얀족으로 출정보냈던 공손은 몇 대의 공손이지?”


-초대 공손 이후, 2대째 공손이었다.


“그럼 너희는 초대 공손을 본 적이 있나?”


-내가 어릴 적에 보았지. 한 손으로 태풍을 부르고 한 손으로 황금빛 힘을 부려 대지를 놀라게 했던 그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한 손으론 태풍을 부렸다고?’


지금껏 보인 공손의 행보는 용맥의 힘을 손에 넣은 일반인 내지는 괴물 정도였다. 그러나 태풍을 부렸다니?


‘아니, 섣부른 추측은 금물이지.’


용맥의 힘이 무슨 작용을 하는지도 정확히 모른다. 나는 원혼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초대 공손 사후, 갑자기 어떤 남자가 공손이 됐었던 걸로 기억하는군. 어려서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남자는 초대 공손이 부리던 권능을 그대로 부리며, 마치 초대 공손과 같이 말하였기에 모두가 그를 다음 대의 공손이라 믿었다.


‘다음 대의 공손...’


초대 공손은 인간이다.


‘바얏크가 그랬지.’


‘용맥의 힘을 일반인이 얻었다’고.

초대 공손이 인간이 아니었다면, 왜 ‘일반인’이라는 표현을 썼겠는가.

초대 공손이 일반인이라면, 2대 공손은 괴물일까, 인간일까.


“너희는 생전 이런 것을 본 적이 있나?”


환상 주술로 시커먼 지네의 형상을 허공에 그렸다. 원혼은 잠시 그 형상을 쳐다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본 적 없군. 처음 본다.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정말 본 적이 없나?”


-그래, 낮에 보았던 것을 제외하고, 우리가 생전에 저런 것을 본 적은 없다.


“흐음...”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해보며, 원혼에게 다른 질문을 던졌다.


“ ‘동쪽’에 대해 특별한 것을 알고있는 것이 있나?”


-동쪽?


원혼은 고민하는 듯 하더니 바로 대답했다.


-해가 뜨는 방향이지.


“...아니, 그런 것 말고. 초대 공손이 동쪽 끝으로 여정을 갔다는 이야기나...”


-아, 그걸 말하는 건가? 별 것 없다. 초대 공손이 먼 옛날의 대홍수 이후, 해가 뜨는 곳으로 가서 생명의 비밀을 알아내고 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더군. 어릴 적에 들었던 이야기인지라 잘은 모르겠지만...


공손이 동쪽으로 가서 생명의 비밀을 알아냈다.


‘바얏크가 그랬지.’


동쪽 끝의 현자는 생명에 대한 이해도가 아주 깊었다고.

동쪽 끝으로 가서 생명에 관한 무언가를 얻어온 모양이다.


“그 외에는 아는 게 없는거냐?”


-가보지도 않은 곳을 어찌 아나?


하기사 그도 그렇다.


나는 질문을 바꿨다.


“한 가지 더 물어보지, 너희는 거대한 악령체로 변화했을 때, 거대한 범의 모습으로 변하고, 강철의 산을 소환했었지.”


천공에서 이 녀석들과 싸웠을 때, 이 녀석들이 구름 위에 소환했던 강철산의 허상을 떠올렸다. 주로 강철의 산을 소환해서 싸우긴 했었지만, 그때 소환했던 강철의 산은 그야말로 묵직한 위압감을 가지고 있었었다.


“그것들은 뭐지?”


그것은, 주술적으로 상당히 무시무시한 무언가였다.


내 물음에, 원혼은 눈을 감았다.

잠시 고민하는 모습. 얼마 후, 녀석은 입을 열었다.


-신... 이다.


“신? 센유엔의 신 범바람과 미르바람. 그 중 범바람을 말하는 건가?”


흑호의 모습을 떠올리며 물었고, 원혼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범바람의 축복을 받기 위해, 그런 모습으로 변하는 주술이 우리 영혼에 새겨졌었지. 그리고... 강철의 산은.


이어진 원혼의 말에, 나는 상당히 놀랐다.


-‘공손’이다.


“뭐?”


-강철의 산은, 센유엔의 현인신, ‘공손’을 상징화한 형상이며, 우리가 강철의 허상을 소환하였던 것은 공손의 힘을 빌기 위함이었다.


“...!”


-우리가 살아있을 적, 공손은 이 인근 제단에서 항상 그 강철의 산을 소환하여 축복을 내렸다. 그가 권능과 이적을 보이는 자리에는, 항상 강철의 산이 자리했어. 공손은 그 산을 ‘자신의 의지’라고 표현하였다.


강철의 산!


“단순히 서쪽 끝을 떠받친다는 전설이 아니었나...?”


-글세, 그건 모르지... 우리가 어릴 적에도 그 전설은 있긴 했으니까. 어쩌면 정말로 공손이 서쪽 끝을 떠받친다는 전설의 존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주변으로 흉험한 원독이 뿜어졌다.


-전설의 존재라도, 신적 존재라도, 우리를 이리 만든 죗값은 반드시 치러야 할 것이다!


의지를 다지는 원혼을 보며, 나는 살짝 복잡해졌다.

공손은 곧 지네.

공손은 곧 강철의 산.

그렇다면 강철의 산과 지네는 같은 존재인가?

공손이 동쪽으로 가서 얻은 생명의 힘은 무엇인가?

용맥은 무엇인가?

이것들은 서로 관계가 있을까?


무엇보다도...


‘공손은, 그토록 땅을 파서 무엇을 하려 하고... 왜 아이들을 납치하는 거지?’


누조의 아이, 내 처남이 된 그 녀석을 데려가는 게 맞는가.

공손을 찾아 퇴치하는 것이 맞는가.


“... 너희는 그 당시... 왜 반얀 부족을 침략했던 거냐.”


달을 보며 원혼에게 질문했다.


-그건...


녀석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단순히 공손의 명령이었다. 당시 공손은, 그야말로 진정한 현인신으로 추앙받았으니까. 그는 어떤 이유도 대지 않았고, 누구도 거기에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아니, 가지지 못했던 거지.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모양이었다.


“... 왜 동쪽에 있던 부족이 이곳으로 왔는지는... 아는가?”


-글쎄. 짐작도 안 가는군.


원혼의 대답에, 다시 궁금한 걸 물으려 할 때였다.


“제가 어릴 적, 그런 말을 들은 적도 있는 것 같군요.”


버루가 자는 외양간 옆으로 샤오허가 다가왔다. 녀석의 눈에는 원혼이 보이지 않으니, 내가 자신에게 한 줄알고 대답한 모양이었다.


“아주 어릴 적... 제가 걷지도 못할 무렵, 어렴풋이 기억이 납니다. 어른들의 등에 업혀, 아주 먼 거리를 이동했던 기억이...”


예상치 못했던 정보였다.


“그 말은, 센유엔 부족은 네가 어릴 적에 이 땅으로 이주해온 부족이라는 건가?”


“그런 셈이지요.”


“왜 이곳으로 이주해왔는지는 아는가?”


“글쎼요... 그것까진 잘...”


말꼬리를 흐린 샤오허는 공손하게 가죽 옷을 건냈다.


“밤바람이 찹니다. 이것이라도 두르시지요.”


“.....”


난 그 옷을 빤히 바라본 후 물었다.


“왜 이런 걸 주는거지?”


“음... 그냥 추울 것 같으시기에...”


또 뭔가 꿍꿍이가 있는 건가. 아니면 그냥 나에게 잘 보이려 그러는 걸까. 난 미심쩍은 마음을 감추고 옷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낮의 일이 생각나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공손을 어찌 생각하나?”


“예?”


내 갑작스러운 질문에 놀란 것인지, 샤오허는 당황한 듯 날 멍하니 쳐다보았다. 얼마간 그러던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그는 고개를 저은 후 물러갔다. 하지만 내 뇌리엔 그의 눈에 떠올랐던 감정이 생생했다.


광신(狂信)이 깨진 후의 불신(不信)!



그것은 의심이었다.


‘공손을 의심하고 있다.’


이유는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원혼들의 귀곡성, 그것은 분명 원독을 품은 강력한 힘이다. 하지만 센유엔 부족은 고향 땅에서 이주해왔을 뿐, 이들의 후손.


원혼들이야말로, 이들의 조상이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핏줄만으로 정의될 수 없듯.

조상과 후손은 분명 영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니 이들이 한 서린 비명에 센유엔 부족이 각성하는 것은 놀랄 일은 아니었다. 아마 내일이면 많은 이들이 공손을 생각할 때에, 평소와는 다른 태도를 보이리라.


그 생각을 하며, 샤오허가 사라진 골목을 향해 소리쳤다.


“샤오허는 당신이 보냈소?”


내 목소리가 닿자, 골목을 밖으로 한 여인이 몸을 드러냈다.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공손의 세 번째 첩, 무모였다.


“신인께 인사 올립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십니까?”


“딱히 없군.”


“그렇습니까. 적적하게 밤을 즐기시는 듯 한데, 혹시 말동무를 해도 될런지요?”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달빛 아래 드러난 그녀의 얼굴은 깨끗했고, 고아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그녀가 입고 있는 새하얀 옷은 어쩐지 신비감을 드러내는 듯 했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툭 말을 던졌다.


“서릉과 누조는 모두 내게 공손에 대한 상반된 부탁을 하더군. 당신은 어떤 부탁을 하러 오셨나?”


“서릉과 누조라... 후후, 둘이 어떤 부탁을 했는지는 예상되는군요. 하지만 제가 온 이유는 다른 이유에서입니다.”


그녀가, 내 앞에 떠 있는 원혼을 향해 정확히 시선을 맞췄다.


“그곳에, 누군가가 계십니까?”


“.....”


“신인께서 그곳에 계신 분과 말씀을 나누는 바를 보고, 샤오허를 보냈습니다. 부디 모습을 드러내 주십시오.”


하지만 원혼은 그저 담담히 그녀를 쳐다볼 뿐이었다. 그녀는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저와 서릉은 아버지가 같습니다. 서릉은 어릴 적부터 느끼지 못하는 것을 잘 느끼는 편이었고, 저는 남들이 꾸지 않는 꿈을 잘 꾸는 편이었습니다.”

무모는 한층 초췌해진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저는 어릴적부터, 부족의 어른들이 나오는 꿈을 꾸었습니다. 제 꿈에 나오는 부족의 어른들은 모두... 힘들게 울부짖고 계셨죠. 그 중 가장 힘겹게 울부짖는 어른이 계셨습니다. 그 분은 꿈속에서, 항상 자신을 꺼내달라고 하셨죠.”


나는 그녀를 자세히 쳐다보았다. 서릉이 영력이 강한 편이라면, 그녀는 부족과의 연결이 강한 편이었다.


“서쪽 숲에서 억울하게 죽었다고, 부디 이 숲에서 꺼내달라고. 이 숲에 수십년을 묶여있었다고.”


부르르...


눈앞의 원혼이 영체를 떨었고, 녀석과 연결된 위패속 무수한 원혼들이 몸을 꿈틀거렸다.


“하지만 늘 슬프게 제 꿈속에서 말하셔도, 공손은 서쪽 숲에는 무시무시한 귀신들이 살고 있으니, 센유엔 부족원은 함부로 들어가면 아니된다며 절대 들어가지 못하게 하시었습니다.”


달그락, 달그락.


밤바람 탓인지, 원혼들의 움직임 탓인지. 위패가 달각소리를 내며 부딪혔다. 원혼들의 움직임이 잦아들었다. 녀석들에게서 원한 대신 다른 감정이 물밀듯 새어나오고 있었다.



익숙한 감정이다. 내가 내가 아니란 것을 들었을 때. 소슬바람의 낮을 내 손으로 바쳤을 때. 그때 느꼈던 감정들.


그 감정은 슬픔이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신인께서 저희 부족에 처음 오신 날 밤. 저는 처음으로 꿈을 꾸지 않고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신인께서 대화를 나누시는, 보이지 않는 분께서 느껴진 그 말할 수 없는 고통스러움이, 제가 익히 꿈에서 느꼈던 것과 같아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무모는 굳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감히 묻겠습니다. 신인과 대화를 나누시던 분께선, 저희 부족의 조상이십니까?”


휘이이...


밤바람이 센유엔을 뒤덮었다. 주변은 침묵으로 뒤덮혔다.


[제사장.]


원혼의 입에서 영언이 흘러나왔다. 무수한 이들의 목소리가 뒤섞인 목소리였다. 아마도 이 혼체가 다른 이들의 뜻을 대리하는 듯 했다.


[우리가 후손과 마주볼 수 있게 해주오.]


그 목소리들에는 슬픔이 배여 있었다.


“...그러지.”


나는 주술을 엮어 원혼에게 환영의 옷을 입혀주었다. 녀석은 이내, 살아있었을 적의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허공에 모습을 드러냈다.


[네가 우리를 보았다는 후손이냐?]


“그렇습니다.”


[우리에 대해 얼마나 아느냐?]


“부족의 역사에 대한 것은 공손만이 기억하셔, 저는 잘은 모릅니다.”


[...그런가.]


“다만, 어른들께서 저희들의 조상이란 것만은... 확실히 느꼈습니다.”


[그래, 그렇구나.]


허공에 둥실 떠서 달빛을 받는 원혼은 천상에서 내려온 사자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환영의 옷을 입혀준 내 눈에는 보였다. 원혼은 전에 없이 서럽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피눈물이 아니었다. 검은 눈물이었다.


[우리는 신인 우레가람의 도움으로 숲에서 나왔다. 너는 더 이상 악몽을 꾸지 않을 것인즉, 우리는 잘 지낼 것이니 더는 상관치 말라.]


“알겠습니다.”


[그리고...]


녀석이 무언가를 말하려했다. 그러나 원혼은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 하더니, 이내 등을 돌렸다.


[아니다. 신인을 잘 뫼셔라. 너희 후손들을 축복하겠다.]


“감사합니다.”


[다시는 너희가, 고통받지 않게 할 것이니라.]


그 말을 끝으로, 원혼은 스스로 환영의 옷을 흩어버렸다. 무모는 육안으로는 볼 수 없게 된 원혼을 한참 쳐다보았다.


검은 눈물을 흘리던 원혼은 다시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부족의 현인신이, 결코 부족을 고통받지 못하게 할 것이니라!]


내 주술을 흩어버린 후라 무모에겐 들리지 못한 말이었으나, 그녀는 원혼이 있던 자리로 절을 올렸다.


“감사합니다, 신인이시여. 제 오랜 꿈의 비밀을 푼 느낌입니다.”


“...별 것 아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건 무엇이든 드리겠습니다.”


나는 잠시 그녀를 보고는 물었다.


“내가 샤오허에게 했던 질문은 기억하겠지. 왜 너희 부족이 이곳으로 이주해왔는지 아느냐?”


별 기대는 않고 질문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뜻밖에도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공손과 같이 자며, 일전 왜 우리 부족이 이 땅에서 지내야 하는지를 물은 바 있습니다. 물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다른 땅으로 가면 되지 않냐고 물었지요.

공손은 그리 답했습니다. 서쪽 숲에는 무시무시한 귀신들이 모여살며, 나머지 다른 곳에는 물길이 완전히 막혀 있다고.

한때는 센유엔 부족이 동쪽 초원에서 군림하며 살았지만... 견딜 수 없는 가뭄을 피하고자 이곳으로 와서, 그나마 입에 풀이라도 칠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 본래 살던 곳이, 끔찍한 가뭄에 휩싸여 이곳으로 왔다고?”


“예, 그리 말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덜그럭, 덜그럭.


[거짓말. 거짓말이다.]


쩌적, 쩌저적!


위패에 걸린 봉인들이 다시금 깨질 기미를 보였다. 지금까지의 원혼들의 힘을 철저히 계산해 엮어낸 봉인이건만, 줄기줄기 균열이 가 있다.

이는 짧은 시간동안 원혼들의 원한이 크게 깊어졌다는 의미였다.


[내 어릴적 대홍수 이후, 천지아래 물이 부족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내가 있었을 때만 해도 초원 옆에 끝이 보이지 않는 호수가 있었고, 한 번도 마르는 일이 없었다...! 그 많은 물이 다 어디로 갔다는 말인가! 땅이 갈라져 꺼지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덜그럭, 덜그럭!


위패에 걸린 봉인이 깨질 듯 울려댄다.


[공손...! 우리를 숲에 묶고, 너는 우리의 후손을 학대했단 말인가! 이방 부족에서 조상신의 역할을 강제하고, 우리의 후손에게는 조상의 덕을 보지도 못하게 했단 말인가...!]


촤르륵!


나는 시커먼 기운을 뿜어내는 위패에, 또 다시 몇 겹의 봉인을 덧씌우고는 내 앞의 원혼 역시 위패로 다시 봉인했다.


“...좋은 정보 고맙다.”


나는 무모에게 감사를 표했다. 본래 물이 충분한 부족을 움직여 이곳으로 와 이 땅의 물길을 막았다. 그리고 그를 빌미로, 우물을 찾아낸답시고 땅을 파게 시켰다.


‘이 땅 밑에는 ’뭔가‘가 있다.’


그리고 그 행위는 서슬뱀이 돌아와 지네를 죽이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서슬뱀의 기억 속, 그는 사악한 신의 권능으로 낙인을 찍어, 지네를 터트려 죽였었다.

하지만 지네는 죽지 않았고, 그 이후로 공손은 더 이상 땅을 파게 시키지 않았다. 숲에서 시작된 개울줄기가 강이 되어 센유엔의 옆을 흐르게 되었다.


왜 공손은 더 이상 땅을 파게 시키지 않았을까.


그리고 지네를 보내 아이들을 납치했을까.


용맥. 강철의 산. 생명의 비밀...


수많은 정보가 뇌를 스쳤고, 나는 한 가지 답을 도출했다.


‘공손이 지금껏 발굴하던 ’뭔가‘를. 발굴하는데에 성공했기 때문에 더 이상 땅을 팔 필요가 없던 거지!’


난 황급히 무모에게 들어가라고 한 후, 목책 밖으로 달려나갔다. 그리고 땅 아래를 노려보았다.



‘원혼이 그랬었지. 지형이 바뀌어 알아보기는 어렵지만, 이 땅은 본래 공손이 제사를 지내던 곳이라고... 제사를 지내던 곳에서, 아이를 납치해간다... 왜지? 생명의 비밀? 아니, 아니다.’


어린아이를 흡수해서 수명을 늘이는 주술을 생각해 봤지만, 아닌 것 같았다. 지네 괴물이 공손의 본체라면 인간 어린아이의 생명만으로 수명을 늘일 수 없다.


강철의 산. 공손의 본체...


어린아이... 현인신...


“....!”


그렇군.


“알겠다. 공손...”


나는 기이한 기분이 들었다. 어쩐지 답에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강철의 산. 네 본체를 강철의 산이라 한다면, 네 지네는, 네 본체가 아니군.”


서슬뱀이 공손과 함께 지네를 사냥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공손이 주술로 지네의 발을 묶고, 서슬뱀이 기세로 지네를 꿰뚫었으며, 사악한 신의 낙인으로 지네를 터트려 죽였다.

그러나 사악한 신의 낙인을 맞은 지네는 서릉의 말에 의하면 ‘죽은 적이 없다고’하였다.

그리고 공손의 첩들은 공손의 본체가 지네가 아닐까 의심해왔다. 지네가 그동안 몸을 바꿔가며 공손의 역할을 한 것인지 의심한 것이다.


“동쪽 끝에 가서 얻어왔다는 생명의 비적... 그것이 그 지네로군? 네 본체는 강철의 산이고, 분신은 지네인 셈이야. 단순히 어린아이를 흡수해 수명을 늘리려는 게 아니었군. 너는 인신공양을 해왔던 거야.”


생명을 흡수하는 주술로는 어린아이를 흡수해 좋은 효율을 가질 수 없다. 덩치도 작고 다 자라지 않아 생기가 왕성하진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인신공양이라면, 어릴수록 그 가치는 커진다.


“너는 지금껏 땅 밑에 묻혀있던 네 본체, 강철의 산을 찾아왔던 것이었군. 그리고 강철의 산에게 어린아이를 인신공양해 왔지.”


신에게 인간을 공양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신의 힘을 빌리기 위해. 그렇다면 왜 신은 인간 제물을 받고 힘을 빌려줄까. 그것은 인간 제물이 신의 힘을 최대 효율로 증가시켜주기 때문이다.


그것을 토대로 추측해 보자면.

강철의 산은 모종의 이유로 땅 밑에 파묻혔고, 힘을 잃었다. 그 때문에 공손이 땅을 파서 분신으로 그를 찾아가 어린아이를 공양해왔던 것이다.


강철의 산이 힘을 잃었기에, 반얀 부족 하늘에서 원혼들이 강철의 산의 허상을 소환했을 때.

공손은 이들에게 아무런 힘도 빌려주지 못했던 것이리라.


‘강철의 산! 그 능력은 아마도.., 용맥과 관련된 존재겠지. 지네를 중계기로 용맥의 힘을 다루기도 했으니...’


공손의 정체가 짐작이 되니, 머리가 팽팽 돌아갔고, 나는 문뜩 한 가지를 깨달았다.


‘그러니까 이 땅 밑. 지저에서... 공손이 힘을 회복하고 있다는 건가?’


용맥을 다루는 공손의 의지. 강철의 산이 힘을 회복하는 중이다.


“...그래.”


나는 결심을 내렸다.


“강철의 산이 힘을 회복하기 전에, 너를 퇴치하겠다.”


소슬바람과 연결된 우레노을의 전승을 떠올렸다. 드넓은 대지를 아우르는 어마어마한 용맥의 힘! 신의 권능과 다를 바가 없으며, 그 범위는 그야말로 막대했다.


만약 공손이 힘을 회복한다면, 녀석이 다루는 용맥의 범위를 빠져나가기 전 공격을 당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놈이 힘을 되찾으면, 또 다시 반얀 부족을 침공하려 할 수 있지.’


반얀 부족은 이미 내 벗이었다.

내게 믿음을 준 이들을 다치게 할 수는 없다.


툭!


근처에 피어 있던 민들레를 꺾었다.


하얀 민들레씨앗이 밤바람에 흩날렸다.


“...숲의 신의 신력으로 명하노라.”


우우우웅!


환한 녹빛이 내게서 터져나왔다. 바얏크가 내게 선물한 숲의 신력이 민들레 씨앗에 깃들었다.


“굴 속에서 뿌리를 내려라.”


수많은 민들레 씨앗이 센유엔 인근 수많은 땅굴 속으로 들어갔다. 천천히 밑으로 내려가, 땅바닥에 닿은 민들레 씨앗은 신력을 흡수하며 순식간에 뿌리를 내렸다.


“뿌리들아, 땅을 헤집어라. 땅굴을 뒤져, 강철의 산을 찾아내라.”


명을 내린 나는 봉인이 터져버리려 하는 위패의 줄을 튿었다.


“너희를 믿기는 힘들지만. 함께 공손을 사냥할 수는 있겠지.”


파앙!


내가 걸어놓았던 수십 겹의 봉인주술을 흩어버렸다.


“공손을 찾아라! 놈이 힘을 회복하고 있다.”


[공손! 공손!!!]

[끼야아아아아!]

[죽여버리겠다!]


“놈이 힘을 되찾아, 너희의 후손을 학대하고, 다른 부족을 침략해, 너희와 같은 원혼들을 더 만들어내기 전에...”


내가 말을 끝마치기도 전. 원혼들은 산산이 흩어져 땅굴 속으로 내려갔다.


“놈을 찾아라!”


작가의말



반쯤 정신이 나가서 미친 듯이 분량을 늘리느라... 늦었습니다. 지각 죄송합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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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68. 현인신(14) +6 21.08.04 2,535 20 15쪽
68 67. 현인신(13) +1 21.08.03 257 7 13쪽
67 66. 현인신(12) +1 21.07.23 215 9 15쪽
66 65. 현인신(11) +1 21.07.22 211 9 18쪽
65 64. 현인신(10) +1 21.07.21 262 6 24쪽
» 63. 현인신(9) +1 21.07.20 215 6 22쪽
63 62. 현인신(8) +1 21.07.19 198 7 13쪽
62 61. 현인신(7) +1 21.07.14 193 7 13쪽
61 60. 현인신(6) +1 21.07.13 187 8 12쪽
60 59. 현인신(5) +1 21.07.12 187 8 13쪽
59 58. 현인신(4) +1 21.07.11 198 7 12쪽
58 57. 현인신(3) +1 21.07.10 195 5 17쪽
57 56. 현인신(2) +1 21.07.09 197 6 13쪽
56 55. 현인신(1) +2 21.07.08 269 8 13쪽
55 54. 조상신(27) +1 21.07.07 208 7 15쪽
54 53. 조상신(26) +1 21.07.06 206 9 19쪽
53 52. 조상신(25) +2 21.07.05 236 9 14쪽
52 51. 조상신(24) +2 21.06.21 232 10 18쪽
51 50. 조상신(23) +1 21.06.20 224 6 22쪽
50 49. 조상신(22) +1 21.06.20 197 5 17쪽
49 48. 조상신(21) +1 21.06.20 205 8 25쪽
48 47. 조상신(20) +2 21.06.19 226 9 23쪽
47 46. 조상신(19) +2 21.06.18 214 11 19쪽
46 45. 조상신(18) +1 21.06.17 251 10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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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43. 조상신(16) +2 21.06.15 248 11 18쪽
43 42. 조상신(15) +2 21.06.14 257 12 16쪽
42 41. 조상신(14) +2 21.06.13 279 11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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