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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크 님의 서재입니다.

머큐리 [추억편]

웹소설 > 자유연재 > 드라마, 판타지

완결

이루크
작품등록일 :
2019.12.26 20:08
최근연재일 :
2020.09.12 15:27
연재수 :
32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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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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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2,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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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24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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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5쪽

제237화 - 하나의 소중함(하)

DUMMY

김여사는 침대 위에서 시름시름 앓고 있고 개인주치의 임과장이 직접 왕진을 왔다. 김여사 팔에 신경안정제를 투여했고 침대 봉 위에 링겔 수액이 한방울 씩 똑똑 떨어진다. 김여사는 몹시 아파 보인다. 민성이 실종이 된 후, 김여사에게 엄청난 쇼크를 불러일으켰다.


담당 경찰과 비서가 모여 앉아 CCTV를 주시하고 있다.


“이 학생이 장민성 학생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CCTV를 자세히 들여다 보며 리플레이 반복했다가 재생을 누르고 이동경로를 꼼꼼히 살핀다.


“특별이 의심나는 부분이나 수상한 사람은 안 보이는데...”


민성에 주위에 파티에 초대 된 사람들이 웅성웅성 거리며 한쪽에 몰려있고 양쪽에서 종횡무진하게 누비고 걸어 다니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민성에게 가까이 다가가 말이라도 건내 볼려고 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은 여성들이고 민성이 매너있게 거절하고 침착하게 양해를 구하는 모습을 보아도 어리지 않았다.


단번에 여심을 사로 잡은 것은 도저히 학생 신분이라고는 볼 수 없는 모델처럼 슬림하면서도 탄탄한 몸매, 훤칠한 신장에 품격을 과시했다. 상류층 레벨 신분을 가진 도련님, 정실이 낳은 적자(嫡子)답게 용모 뿐만 아니라 예절도 바르고 품행이 단정하다. 민성의 앞을 스쳐 지나간 사람이 한 두 사람이 아니니 식별이 쉽지 않다.


“장민성군이 휴대폰을 가지고 비상구로 나가는 군요.”


현비서의 표정이 어두워지며


“저 깁니다. 거기서 휴대폰이 발견 됐어요?”


“그럼 사람들이 드나들지 않는 저기서 범행을 계획했을 확률이 높겠네요."


형사가 씁쓸한 표정으로


“장민성군이 저기 들어가고 나서 호텔 내부에 있던 CCTV 감시카메라가 전부 마비가 됐습니다. 누군가 계획적으로 작정하고 벌이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쉽지 않죠. 이건 분명, 면식범의 소행입니다.”


“장민성군이 저기에 들어가기 전에 누가 있었는지도 확인이 불가피하다는 거 군요.”


“네.. 장민성군이 저기 들어오고 나서 전원 내부 CCTV 모두가 나가버렸습니다.”


“참 신기하네. 어떻게 이런 많은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호텔에서 이런 범죄를 저지를 생각을 다 했을까. 그리고 정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 시각에 범인이 장민성군을 호텔 밖으로 납치당하는 현장을 목격했거나 발견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겁니다.”


“어떻게서든 꼭 찾아야 됩니다. 언론에 떠들썩해지면 걷잡을 수 없게 됩니다. 상대측에서 몸값을 요구한다면 꼭 그것을 감안 해서라도.. 장민성군을 찾아야 합니다.”


현비서는 노심초사하는 표정으로 경찰들에게 끝까지 당부했다.


**


병원 3년차 레지던트가 의아한 표정으로 에드윈 병실 앞에서 간호사들과 수군거리는 것을 병문안을 온 승수가 조심스럽게 다가온다.


“무슨 일이시죠.”


“환자가 사라졌어요?”


“네?”


승수는 당황하며 얼른 뛰어가 병실 안을 살피면 정말 에드윈이 사라지고 없었다.


침대 위에 환자복을 벗고 옷장에서 다른 옷을 꺼내 입었는지 얼마 전에 여기 누워있다가 나간 흔적이 보인다. 에드윈은 인공호흡기를 떼고 자기 손으로 인위적으로 링거바늘을 뽑은 흔적이 보인다. 담요에 피가 몇 방울 떨어져 있다.


“제기랄... 이 자식.. 그 몸으로 나간 거야? 설마!”


눈치가 빠른 승수는 그대로 뛰어나가 펙시스에게 전화를 건다.


“어.. 나팀장? 잠시 1분만.. 나.. 지금 와인 써빙 중이라...”


“에드윈이 지금 병원에서 사라졌어?”


펙시스는 순간 당황하며 실수한다. 카트에서 와인을 꺼내다가 순간 와인병을 손에서 놓쳐 바닥에 깨트릴 뻔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에드윈이 병실에 없어! 그럼.. 에드윈이 여기에 있다는 뜻인데?”


펙시스는 눈빛이 민첩하게 동요하며


“뭐야? 짐작하고 있었던 거야?”


"병실에 입원하는 동안 에드윈이 미련을 계속 두고 있었어.. 하루라도 빨리 미카엘을 교도소에서 빼오자고 허구헌날 노래를 불렀지.”


"자네.. 무슨 일을 이딴 식으로 처리 해! 의심을 품고 있었다면 그 녀석이 어떻게 나올 지 답이 훤히 보이지 않아! 상부에도 보고 했어! 나한테라도 말을 해줬어야지! 나중에 뒷감당 어떻게 할려고!"


승수는 답답했는지 화를 벌컥 내며


펙시스는 곰곰이 어렴풋이 생각하다가 표정이 어둡게 변한다.


“에드윈한테 내가 예전에 한번 오늘 JK중공업 창립40주년 기념 파티가 있다고 전달해줬어.”


“그녀석이 다른 건 몰라도 미카엘 일이라면 눈에 불을 키고 덤벼들 건 당연한 거 아니야!”


펙시스도 에드윈이 무척 걱정되는지


“맞아? 안그래도 Jk그룹 분위기가 심상치 않더라고.. JK여사 아들이 행방불명 됐는지 실종이 되서 지금 여기 난리도 아니거든...”


“아들?”


“장민성이 호텔에서 사라졌어.”


승수는 표정이 어두워지며


“펙시스 팀장 잘 들어.. 에드윈이 대형사고를 치기 전에 우리가 먼저 그 녀석을 찾아내야 되! 그 친구가 아무래도 수술 안 받겠다고 아주 지랄을 떨고 있지만.. 자네도 알다시피 수술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야. 에드윈 지금 몸 상태가 많이 안 좋은 거 자네도 잘 알지! 시간을 너무 질질 끌면 끌수록 안 좋아..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에드윈을 병원으로 데리고 와야 되.”


“알았어.. 난 여기서 움직일게...”


펙시스가 낮게 한숨을 내쉬며 등을 돌리는데 발걸음을 멈춘다.


신사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선글라스를 낀 중년남자 강세종이 뚜벅뚜벅 걸어왔기 때문이다.


“오랜만이군.. 상급암부 펙시스 팀장?”


장성계급 중 제독 같은 위엄과 명철한 지성파가 물씬 느껴지는 중후한 포스로 무장한 강세종이 상냥하게 미소지었다.


“네.”


펙시스 겸손하게 예의를 차리며 허리를 숙인다.


“한국에 방문하길 정말 잘 한 것 같군. 여기 오자마자 오늘 여기서 흥미로운 일도 찾은 것 같고...”


펙시스가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이 일은 모른 척 해둬야 되겠지.”


눈썰미가 빠른 강세종은 덤덤한 표정으로


펙시스 옆을 지나칠 무렵 가만히 걸음을 멈추며 덤덤한 표정으로 앞을 보며


“혹시 내 도움이 필요하거든.. 불편해 하지 말고 언제든지 내게 찾아오게.. 난 한달 동안 여기 호텔에서 머물 예정이거든.”


“재무국장님.”


“우린 피를 나눈 동맹군이 아닌가...”


세종이 진지하면서 착잡한 표정으로


“기껏 한국에 위장취업 시켰더니.. 이 녀석들이 말썽만 피우고 다니는 군.. 제노바 머큐리당국 분위기가 심상치가 않네. 머큐리의 이 숙원 사업이 우리에게는 간절한 꿈이기도 하니까.. 그 첫 포커스가 어디를 향할지는 예상 할 수 없지만 그건 나도 알 수 없어. 폭풍전야처럼 고요하다고 볼 수 있지. 그들은 마음만 먹으면 아주 쉽게 개혁을 발휘하는 무서운 닌자들이거든.. 우리가 도발하면 세상의 기틀이 한바탕 심하게 뒤틀려질 테니까.. 마스터 생존에 계신이래로 박세혁 대군장님의 갑작스런 부고소식과 참모총관, 케인팀장, 미카엘까지 신변에 위협이 닥쳤으니 그 계기로 아마 더더욱 날 뛰어 폭동을 일으킬 수 있네.”


세종이 상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이럴 때 브레나님이 계시면 머큐리의 지반이 조금은 안정이 될 텐데.. 너무 안타까운 일이야.”


**


어느 어두컴컴한 동굴 안이다.


한쪽 외벽이 모두 까끌까끌한 암벽 같이 생겼는데 마치 천연 동굴 같다.

한쪽 모퉁이에 쓰러져 있던 민성이 정신을 차렸는지 손과 발은 묶여있고 조금씩 몸을 움직이며 뒤척이는 게 멀리서 보인다.


민성이 눈을 크게 뜨고 너무도 낯선 곳이라 당혹해서 벌떡 일어나 앉아 사방을 둘러본다.


“여기가 어디야! 내가 왜 여기에.. 윽.. 이...”


두 손과 두 발을 누군가 야무지에 밧줄로 꽁꽁 묶었다.


민성이 겁을 잔뜩 집어먹은 표정으로


“아무도 없어!"


민성이 소리를 지르며


“있으면.. 대답 좀 해봐!”


어디선가 자기를 향해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자 민성은 안색이 점점 사색이 되어 간다.


이미 에드윈은 눈동자는 선량한 눈빛은 사라진 지 오래다. 에드윈은 슬그머니 다가와 직접 만든 송이버섯죽 사발을 옆에 갖다 놓는다.


“현재 기온이 영하야. 여기서 얼어 죽거나 굶어죽기 싫으면 그거라도 먹고 배를 좀 채우는 게 좋을 걸.”


“내가 보기에는 사약 같은데...”


민성이 묶인 두발을 옆으로 움직여가며 에드윈이 가져온 김이 모락모락 나는 죽사발을 차버리자 바닥에 엎질러진다.


“요지가 그게 아닐 텐데.. 이유가 뭐야! 날 납치해서 당신이 정말 얻고자 하는 목적이 있을 거 아니야! 돈이야!”


에드윈이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아깝네.. 이게 오늘 첫 끼니였는데.. 오늘 밥 없다. 꼬맹아... 한국은 이래서 살기 좋은가봐.. 돈이 없어도 지천에 아주 깔렸어. 배고픔을 달랠 수 있는 것들이 은근히 많더라고 공부 잘 한다고 들었는데.. 내전에 아픔을 겪은 난민국인 소말리아나 콩고 안가봤지."


에드윈이 가만히 허리를 숙이고 바닥에 보이는 모래알을 주우며


“거긴.. 너 보다 어린 약1억여명의 아이들이 마치 냉동실에 얼린 얼음과자처럼 바삭 얼려서 이 흙사탕을 바삭바삭 깨물어 먹거든.. 하긴 네가 고생을 전혀 안 해보고 살아서 배가 부르니.. 이런 것도 같잖게 보이나봐. 내가 그랬어. 그 세계는 인종차별이 심한 곳이었어..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그 시절에는 동양인은 인정하지 않아.. 러시아계 남자들한테 강제로 납치 당해 햇볓 조차 안 들어오는 이런 동굴 안에 수일이었지. 대략 한 달 보름 동안 갇혀서 아주 지옥 같은 나날을 보냈지. 물은 커녕 아무것도 곡끼를 채우지 못했지. 하루도 쉬지 않고 구타를 당하고 특히 성대에 손상을 가장 많이 입었거든.. 그래도 살아야 하기 때문에 도망치긴 했는데.. 주변 일대 사람들이 낯선 이방인을 도와주려고 할 것 같아. 전혀 그렇지 않더라고.. 컨테이너 물류를 운송하는 여객선이 좌초 되면서 어떤 소중한 은인한 분을 만나 그분에게 은혜를 입고 다시 오늘날처럼 재기를 할 수 있었지."


에드윈은 과거를 회상하며 씁슬한 미소를 지었다.


“아까.. 납치한 이유가 뭐냐고 했지? 나중에 여기서 돌아가면 내 말 잘 기억하고 있다가 물어봐. 세상에서 너를 가장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 널 낳아준 엄마한테 가서 여쭤봐. 살아오면서 단 한순간도 양심의 가책이라는 것을 느껴보거나 죄를 지은 적이 없냐고.. 그럼 네 질문에 답이 좀 충분했나?"


에드윈은 다시 등을 돌리고 그를 혼자 두고 바람쐬러 나간다.


**


에드윈은 영혼을 울리는 소름끼치는 성대, 너무도 매력적이고 전율이 흐를정도로 뛰어난 가창력을 가지고 있다. 천부적인 그의 아름다운 보이스가 동굴 안팎까지 잔잔하게 아련하게 들려온다. 고음이 전혀 없고 베이스처럼 너무 굵지도 않다.


천천히 강약을 조절하며 자기 스타일대로 편곡했는지 한 옥타브 내려져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존레넌 Imagine 팝페라 버전으로 부르고 있다.


Imagine there's no heaven

It's easy if you try

No hell below us

Above us only sky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for today...


Imagine there's no countries

It isn't hard to do

Nothing to kill or die for

And no religion too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life in peace...


음악이 없어도 육성으로 정확하게 음감을 잡아 낼 수 있다. 양 손은 자연스럽게 밑으로 내려 뜨리고 눈을 감는 그의 표정이 무척이나 행복해보이며 안식을 가져오며 평온해 보인다.


민성은 에드윈은 자신에게 해를 입힐 사람이 아닌 어쩌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게 해준다. 민성도 어느새 에드윈은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런데 에드윈의 노래가 중간에 멈춘다.


민성이 고개를 갸우뚱하고 에드윈을 살피는데 안색이 창백해진 에드윈은 목이 아픈지 목을 부여잡으며 고통스러운 신음을 삼키며 상체를 엎드린 채로 두 무릎을 바닥에 대고 주저앉았다. 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상체를 부들부들 떨었다.


“허.. 으...”


에드윈은 중저음 부분에 힘이 들어갔던 모양이다. 목이 처음에는 따끔거리더니 점점 불로 지지는 느낌처럼 매우 화끈거리며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엄습했다. 에드윈은 눈물을 글썽이며 바닥에서 구른다.


“하아.. 하아..”


그는 애처롭게 숨을 거칠게 헐떡거렸다.


착한 민성이 당황했는지 멀리서 소리친다.


“아저씨! 왜 그래요! 어디 아파요!”


민성이 아까 엎어버린 사기로 된 사발이 보인다.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데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는지 옆으로 버둥거리며 사발을 손으로 잡으려고 애를 쓴다.


“제발....”


민성이 옆으로 기울어져 넘어지면서 결국 사발을 잡아 뒤집어 엎은 상태로 팔굼치로 있는 힘껏 때려 깨뜨린 다음 손으로 쥐고 자신의 손을 묶인 줄을 조금씩 긁어가며 끊기 시작했다. 손목에 피가 줄줄 세어 나와도 민성은 포기하지 않는다. 조금 힘이 주니 뚝 하고 줄이 끊어진다.


“아저씨!"


민성이 에드윈이 걱정되서 얼른 뛰어온다.


에드윈은 점점 숨이 가빠오며 상태가 안 좋아졌고 바닥에 쓰러진 체로 호흡곤란을 일으킨다.

민성이 에드윈의 손이며 몸을 만져 보면 굉장히 열이 높고 후끈 거렸다.


“날.. 납치 한 이유.. 그것은 나중에 따지지 않겠습니다. 일단 병원부터 가는 게 좋을 거 같아요.”


민성은 에드윈을 어깨에 들쳐매려 했다.


민성은 친부를 닮아 아주 영민했고 사리에 밝았다. 무엇이 순서인지 생각부터 하고 이치에 맞게 행동하려 했다. 완전범죄를 저지른 악마의 탈을 쓴 JK김여사를 닮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다. 개념이 제대로 박혀 있는 상식의 소유자다.


그때 갑자기 에드윈의 상의 옷 주머니에서 휴대폰 벨이 울리자 민성이 당황한다.


“이 사람하고 아는 사람인가?”


민성이 복잡한 표정으로 고민을 하는데 에드윈이 어느새 진정이 됐는지 차가운 눈빛으로 민성의 손목을 잡고 있었다.


"너 지금 뭐 하냐?”


에드윈이 태연한 표정으로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민성이 잔뜩 겁을 먹었는지 무서워서 발라당 뒤로 넘어진다.


승수는 입술을 자근자근 깨물며 자신의 승용차로 운전을 하고 어디를 가고 있는데 매우 초조해 하고 있다.


“받아! 제발.. 에드윈.. 내가 가기 전 까지 무모한 짓 절대 하지 말고 제발.. 전화 좀 받아!”


승수가 눈물을 글썽이며 속이 안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다.


**


한편, 선암사에서는 9명의 고아들이 둥글게 모여앉아 점심을 먹기 위해 기다린다. 절이라 그런지 종교적인 문화, 풍습들이 어쩐지 매우 낯설다. 고기반찬은 없는데 토끼도 아니고 온통 파랗고 노랗고 풀 반찬이다. 생전 한 번도 본적 없는 신기한 채식종류에 나물무침이 한 가득이다.


마리아 수녀는 어정한 표정으로


“자.. 그럼.. 우리 다같이 기도합시다."


아이들이 습관처럼 방에 둥그렇게 모여앉아 자연스럽게 손을 모아서 마음속으로 기도하고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머리를 삭발한 해원 동자승이 자기 또래친구들이 무척 많이 와서 신났는지 미소가 한가득이다. 천진난만하게 베시시 웃으며 무릎을 꿇고 있다가 맛있게 먹는 시범을 먼저 보여준다.


선암사 계곡은 예부터 깊기로 유명한 골짜기로 그곳에 오랜 세월 수행해 온 무진스님 처소에 누대 이어져 내려오는 음식문화가 있다.


한때 과거의 특전사 출신이며 호텔조리학과를 나온 유명한 요리연구가였던 한식요리 전문가다.


불가에서 금하는 오신채 불교에서 금하는 다섯 가지 채소를 일컫는다. 한국 사찰에서 특별히 먹지 못하게 하는 음식이다.


마늘[대산(大蒜)]·파[혁총(革蔥)]·부추[난총(蘭蔥)]·달래[자총(慈蔥)]·무릇[흥거(興蕖)]의 다섯 가지로, 대부분 자극이 강하고 냄새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현대 한국 사찰에서는 양파도 마찬가지로 금기시 한다.


오신채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눈과 입이 즐겁고 건강과 성품을 살리는 음식이 그것인데, 선암사는 옛 밥냄새를 간직한 사찰로 아직도 가마솥에 밥을 짓고 국을 끓이고, 채공간에서는 야채를 씻고 다듬고, 절 너른 텃밭에는 콩이며 감자며 고추며 배추며 옥수수와 토란을 직접 심어 거둔다. 그렇게 가꾼 야채와 직접 담근 장(醬)과 양념으로 만드는 음식을 어디에 비할 곳이 없다.


훌륭한 음식이라는 것이 꼭 비싼 재료를 쓴 음식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찰음식이 비록 입에 맛은 없지만 건강에 좋고, 몸에 맞는 자연음식으로 질병이 치료되고, 과격한 성격이 변화되어 인생관이 바뀌고,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변화하여 성품이 바뀐다면, 이야말로 훌륭한 음식이라 할 것이다.


해원은 조금 어설픈 손놀림으로 빈 사발그릇에 어른 숟가락으로 열심히 밥과 고사리, 건취나물, 호박말린 것, 무청된장무침, 토란대, 숙주나물을 한 되로 섞고 양념간장을 넣어서 비빈다. 산채나물 비빔밥은 별미 중에 별미다. 옆에 후식도 따로 마련됐다.


얼음을 동동 띄운 시원한 식혜 한사발 놓여져 있다. 조금이라도 밥 한알이나 음식을 남기면 큰스님한테 꾸중을 들을 수 있기에 이젠 편식도 안하고 골고루 잘 먹는 법을 알아서 터득했다.


그러면 아이들 중 유심히 지켜보던 우빈이 똑같이 따라하며 흉내를 내자 주위에 눈치를 살살보던 장군이랑 아이들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는지 어느새 숟가락을 들기 시작했다.


이수는 별도로 떨어진 방에서 식사를 하는데 마루 밑에 두 짝의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져 있다. 너무도 똑같이 닮은 두 모녀가 마주보며 앉아있다. 앨런이 눈물을 글썽이며 직접 엄마의 사랑이 듬뿍 담긴 반찬들로 따뜻한 밥 한술 떠 먹여주는 게 그토록 오매불망 기다려 왔기 때문이다.


“이젠 제 손으로 먹어도 되는데.. 계속 제가 도움만 받을 수 없잖아요."


타인의 손을 거치는 게 이수는 민망하고 쑥스러웠던 모양이다.


“한 번 해볼래요?”


앨런이 온화하게 미소 지으며


이수는 천천히 손을 움직여 그릇들의 높낮이를 구분하며 물컵을 손에 쥐고 한모금 마신다. 그러더니 밥 한술 뜨고 입에 들어가기도 전에 앨런이 젓가락으로 얼른 새콤달콤한 무말랭이무침이 올려준다.


이수는 입을 조금씩 오물오물거리며 눈을 감고 생긋 웃으며 맛있게 먹는다.


“조청하고 매실이 들어갔네요.”


“조청이 들어갔는지 어떻게 알았어요.”


“저도 요리할 때.. 꼭 물엿을 안 넣고 조청을 쓰거든요.”


이수가 웃자 앨런도 기분이 좋아서 활짝 웃고 어쩔 줄을 모른다.


“맛있어요.”


앨런은 한때 식약청에서 오랫동안 근무를 했고 아침마다 분주하고 출근 준비로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빵이나 씨리얼로 배를 채우지 않게 했고 밥을 꼭 먹여서 학교를 보냈다.


도일이와 이수에게 영양소 함양이 풍부한 안전하고 건강에 좋은 먹거리를 아낌없이 제공하기 위해 한번도 소홀히 한적 없는 알뜰한 주부다. 식품에 일가견이 있어 자연식재료와 천연조미료들은 가정에서 직접 연구하는 사람이다.


“콜록.. 콜록..”


이수가 음식물 삼키고 나서 잔 기침을 하기 시작하는데 도저히 진정이 되지 않는다.


앨런이 당황하며


얼른 가까이 다가와 옆에 놓인 주전자에서 따뜻한 물을 컵에 붓고 이수 입에 먹여준다.


“커억.. 콜록...”


이번에도 목에 사래가 걸려서 물을 입밖으로 쏟아내며 안색이 창백해지는데 점차 기진맥진해지며 이수가 진이 빠져버려 앨런의 몸으로 쏠리며 축 늘어진다. 이수가 몸이 안 좋은지 미간이 꿈틀거리며 식은땀을 흘리며 숨소리를 아주 가늘게 색색 거리며 힘겹게 내뱉는다.


앨런이 겁을 잔뜩 집어먹은 표정으로 울부짓고 이수를 들쳐 안고 소리친다.


“밖에 누구 없어요! 여기 좀 도와주세요..”


아인이 얼른 들어와 이수의 몸상태를 진맥을 하고 야무지게 의료도구를 꺼내 신속하고 빠르게 응급처치한다.


“식사를 처음 섭취한 시간을 기억 나십니까? 대략 어느 정도....”


“아직 10분도 안됐어요. 이제 겨우 세 스푼..”


아인은 움직임이 노련해진다. 그렇게 말하고 이수를 번쩍 들쳐 안고 침대에 눕히고 침통을 꺼내 어떤 혈자리에 침을 꽂는다. 이수가 조금 뒤 몸을 들썩이는데 가슴을 위로 올리며 아인이 반사적으로 자기 쪽으로 몸을 돌리게 하고 그릇을 대주며 편안하게 토할 수 있게 등을 살포시 슬어주듯 두드려준다. 머리 쪽에 오심과 구토를 유발하는 혈자리다.


“소화계 뿐만이나 위장계통이 몹시 헐어서 현재 유착이 심한상태입니다. 지금까지 로이님의 식이요법은 영양제를 투여받거나 두 끼를 전부 미음으로 때우셨죠. 열량이 너무 높아도 안되고 소화가 잘 안되는 음식은 각별히 조심하셔야 되거든요.”


그녀의 입안에 남아있는 이물질을 깨끗이 닦아내고 바르게 눕힌다. 이불을 펼쳐 제대로 덮어준다. 자신에 손이며 옷에 토사물이 묻었는데도 아인은 초지일관 표정이 바뀌지 않는다. 조금 뒤, 링거수액을 옷걸이에 걸어놓고 혼절한 그녀의 정맥에 링겔을 유지 시킨다.


“세상에...”


앨런이 더욱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아인이 그때서야 알아채고 머슥해서 살포시 웃는다.


“아.. 신경쓰지 마십시오. 괜찮습니다. 옷이야 새로 빨면 되죠.”


자신의 손수건으로 물을 조금 적셔 청결이 닦아준다.


“여사님? 아.. 안그러셔도 되는데.... 하~ 우리 대장님 나이를 점점 거꾸로 먹나 싶더니.. 이젠 완전히 땅꼬마가 되버렸네.. 하하.”


아인은 넉살좋게 조크도 던진다.


“우리 이수를 위해 이토록 애를 써줘서 고마워요.”


“아닙니다. 제가 이건 마땅히 해야할 책임과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의무부소속팀장이며 의료닌자다. 환자를 살리는 의사의 본분을 가지고 맡은바 그는 성실하게 임한다.


“밥 안 먹었죠.”


모성애가 지극한 앨런이 상냥하게 웃으며


“조금만 여기서 기다려줄래요. 미역국만 따뜻하게 대피면 되는데....”


아인이 뻘쭘해서 그대로 있었다. 그런데 문이 열리고 네오가 들어오더니 새로 차린 밥상을 앞에 내려놓는다.


“추운데... 나오실 필요 없습니다.”


네오가 아인에게 질투가 났는지 말은 안하고 있지만 표정이 조금 어둡다.

아니꼬운 표정으로 아인을 무섭게 노려보자 아인이 시선을 다른 곳에 둔다.


“여사님도 식사를 좀 하셔야죠.”


눈치가 빠른 네오가 고맙게도 아인의 밥과 국, 앨런의 밥과 국을 새로 차려왔다.


“제법이네? 자네가 이젠 이런 것도 할줄 알아? 아주 훌륭하네.”


온순하고 순진한 네오는 일본 19세기 막번체제를 종식시킨 메이지유신 시대 속에 산 증인들로 역대 사무라이가문의 명예와 신념, 무사도정신을 가진 순수 혈통으로 지금은 멸문지화를 당했지만 뿌리는 끊어지지 않았다. 그가 마지막 후손이다.


시종일관 과묵한 그는 인조인간처럼 차가운 네오는 앨런에게 칭찬 받아서 좋은건지 쑥스러운건지 자기도 모르게 뺨에 홍조가 올라온다.


“흠흠...”


네오가 난처한지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리는데 아까부터 실실 쪼개고 있는 아인 때문에 심기가 자꾸 거슬린다.


“필요한 게 있으시면 말씀하세요. 밖에 있을테니까...”


네오는 무뚝뚝하게 말하고 문밖으로 나간다.


“뭐해요? 어서 오지 않고?”


아인이 난처하지만 슬그머니 밥상머리 앞으로 온다.


“잘 먹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가정에서 흔히 볼수있는 평범한 반찬들인데 엄마가 해주는 따끗한 밥상을 태어나서 처음 일 것이다. 아인은 꾸역꾸역 먹는데.. 자기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진다. 왠만해서 안 보일려 해도 눈물샘이 터지기 일보직전이다.


“물도 마셔가며 천천히 먹게...”


인자한 앨런은 이제 눈까지 실명이 되어버린 이수 때문에 마음이 심란한지 밥맛이 없다. 네오의 착한 성의를 봐서 조금 먹는다. 자기 밥그릇에 있는 밥을 반절을 국에 퍼 올리고 아인의 밥그릇 옆 사이에 바짝 남은 밥그릇을 붙여 준다.


“조금 많네.. 부족하면 더 먹고 그거 가지고 되겠어요. 찬이 입에 잘 안 맞나?”


“아뇨. 제가 다 좋아하는 겁니다. 특히 전 이 미역국이 제일 맛있어서...”


앨런은 자연스럽게 이수에게 줄려고 했던 짭조름한 굴비 살을 발라 아인의 밥위에 올려준다.


“내가 더 가져올게...”


“아.. 아니.. 괜찮...”


아인이 매우 당황했는지 말을 더듬거리기 까지 한다.


앨런이 얼른 일어나 자연스럽게 이수 침대 맡으로 다가가 이부자리를 봐준다. 앨런은 다정다감하게 바라보며 잠든 이수 이마의 입을 살포시 맞추며 그대로 곧장 나가 미역국을 가지러 나간다.


그녀가 나가자마자 아인의 옅게 미소 짓고 밥을 억지로 꾸역꾸역 밀어넣는다. 아인은 어느 새 자기도 엄마가 보고 싶은지 두 눈에 멍울 진 눈물이 뺨 아래로 주르륵 떨어진다.


“엄마....”


작가의말

예전에 실종된 미아찾는 공고문을 많이 보게 되는데 

그 아이들이 무사히 가족들 품으로 돌아왔을지

걱정이 된 적이 있었어요. 

부모의 마음은 천갈래 만갈래 찢어지고 

오죽 애가 타지 않았을까 생각이 드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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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추억편]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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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 제260화 - 도시의 사냥꾼 +3 20.08.02 52 3 22쪽
260 제259화 - 따뜻한 선행 +3 20.08.02 60 2 17쪽
259 제258화 - 도플갱어 소동 +3 20.08.01 55 2 22쪽
258 제257화 - 하나된 마음 +2 20.08.01 48 2 8쪽
257 제256화 - 케인의 자존심 +2 20.07.31 42 2 15쪽
256 제255화 - 절교 +3 20.07.31 60 2 14쪽
255 제254화 - 형벌의 시간 +2 20.07.31 45 2 15쪽
254 제253화 - 음악의 별이 되다 +2 20.07.30 49 2 19쪽
253 제252화 - 선율 +2 20.07.30 55 2 19쪽
252 제251화 - 다시 부활한 하이에나 +2 20.07.29 56 2 12쪽
251 제250화 - 영주를 되찾다 +2 20.07.29 53 2 18쪽
250 제249화 - 오해를 풀다 +2 20.07.29 55 2 22쪽
249 제248화 - 6년만의 재회 +2 20.07.28 60 2 20쪽
248 제247화- 그리운 이름 +4 20.07.28 57 2 10쪽
247 제246화 - 교도소 탈옥 +2 20.07.27 49 2 21쪽
246 제245화 - 교도소 상륙작전 +4 20.07.27 60 3 20쪽
245 제244화 - 배신의 아픔 +2 20.07.27 43 2 13쪽
244 제243화 - 미카엘의 고충 +1 20.07.26 44 1 16쪽
243 제242화 - 선암사에서 총격전(5) +2 20.07.26 51 1 17쪽
242 제241화 - 선암사에서 총격전(4) 20.07.25 52 0 15쪽
241 제240화 - 선암사에서 총격전(3) 20.07.25 51 0 19쪽
240 제239화 - 선암사에서 총격전(2) +1 20.07.25 49 1 21쪽
239 제238화 - 선암사에서 총격전(1) +1 20.07.24 54 1 16쪽
» 제237화 - 하나의 소중함(하) +2 20.07.24 58 2 25쪽
237 제236화 - 하나의 소중함(상) +2 20.07.23 58 2 14쪽
236 제235화 - 트릭 +2 20.07.23 48 1 10쪽
235 제234화 - 영원한 믿음 +1 20.07.23 48 1 10쪽
234 제233화 - 창룡의 고백 +2 20.07.22 46 1 7쪽
233 제232화 - 뮤지션의 길 20.07.22 43 1 8쪽
232 제231화 - 제주도 푸른 밤(하) +1 20.07.22 50 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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