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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크 님의 서재입니다.

머큐리 [추억편]

웹소설 > 자유연재 > 드라마, 판타지

완결

이루크
작품등록일 :
2019.12.26 20:08
최근연재일 :
2020.09.12 15:27
연재수 :
32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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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321
글자수 :
2,632,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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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23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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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제235화 - 트릭

DUMMY

영주가 구슬땀을 흘리며, 직접 경작한 싱싱한 배추를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해, 아침부터 몹시 분주하다. 벌써 귀농의 전문가가 다 되었다. 사람이 다니는 비닐하우스 안 좁은 길목 가장자리 비닐을 깔고 12포기씩 옆으로 가지런히 노란 쌀포대에 야무지게 묶어 쌓아뒀다.


올해 배추농사가 풍년이다. 마늘, 열무, 쪽파, 생강, 총300포기는 섬에서 가까운 속초 청호동 아바이 마을 중앙시장에 내다 판다.


나머지 배추는 영주가 이번에 120포기 정도 김치를 닮아서 대청도 섬마을에 사는 신분이 불투명한 피난민들, 함경도 출신 가운데서도 특히 생계가 곤란하고 외롭게 혼자 사는 독거노인들이 많이 거주하는데 그 주민들에게도 돌릴 예정이다.


해마다 월례행사처럼 품앗이를 그렇게 해왔다. 비싼 고춧가루와 야채 값도 절감하고 덕분에 김치 담그는 노하우도 옆에서 쉽게 전수 받으며 터득 할 수 있다.


“일이 이거 보통이 아닌데.."


선량하게 생긴 외국인 암부 용병 두 명이 영주가 매우 안쓰러웠는지 두 손, 두 발 걷어붙이고 옆에 거들어줬다. 김장철이 아주 가까워졌기에 이 시기가 성수기나 다름없기 때문에 어지간히 부지런하지 않으면 형편이 아주 곤란해진다.


어제부터 이틀 동안 배추를 뽑고 거의 마무리가 다 될 무렵이다 영주가 얼마 남지 않았기에 좀 더 분발하고 제법 노하우가 생겼는지 요령껏 배추를 획 던지고 용병이 받아서 차곡차곡 리어카에 가뿐하게 쌓아올린다.


영주가 두 번을 반복해 허리를 들어 올리는데 나이를 먹긴 먹었는지 한동안 쓰지 않던 근육을 사용하게 돼서 무리가 왔다. 어깨도 잘 안 올라가고 허리가 우지끈 거리기 시작한다.


“윽! 내 허리!”


영주가 컨디션이 매우 안 좋은지 눈을 찌푸린다.


“Où est dégueu?” (어디 안 좋아요?)


외국인 남자 용병이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걱정이 됐는지 큰 소리로 외쳤다.


영주가 해실하게 웃으며


“C'est d'accord (괜찮아요)


영주는 고학벌 출신이라 프랑스인과 불어도 자연스럽게 소통한다.


태연하게 웃고 상체를 숙이고 앉아 있다가 빠듯이 일어나는데 그새를 못 참고 조셉의 애완동물, 러시안블루 회색고양이 요리가 쓰윽 쪽문 밖으로 나가는 걸 영주가 보고 얼른 뛰어나간다.


“야! 너 거기서!”


영주가 재빨리 뛰어나가 요리를 붙잡으려고 해도 이미 열차는 지나갔고 소용없다.

요리는 매우 똑똑하고 스파이 또는 염탐 기질이 타고났다.


얼른 달려 나가 마루에 얌전히 걸터앉아 바람을 쐬고 있는 강우의 몸 위로 가볍게 폴짝 뛰어오른다. 조금 뒤 교감으로 알아차리고 강우가 천천히 지팡이를 바닥에 살포시 짚고 일어난다. 집에서 나와 싸리문 쪽에 서서 목소리를 높인다.


“형님! 제가 도수치료 해드릴까요!”


영주가 뜨끔하며 안색이 하얗게 질리며 몹시 당황한다.


“아니! 나 아무렇지도 않아.. 진짜 멀쩡해!”


강우가 천진난만하게 씩 웃으며


“피로는 제가 저녁때 한방에 풀어 드리죠. 그거 그대로 계속 놔두면 큰일 나요.”


엄살이 심한 영주가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안 해줘도 되는데..”


강우는 카이로프락틱 1급 교정 자격증을 취득했다.


어느새 영주와 같이 한집에서 지내다보니 금방 친해진 외국인 암부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며 씩 웃는다.

울상을 짓던 영주가 곁눈질을 하더니 왠지 바보가 된 기분 인데.. 무섭게 눈을 치켜뜨며 소리를 질렀다.


“Ne riez pas!” (아.. 웃지마)


영주가 다시 의욕이 생겼는지 잔잔하게 미소 짓고 진지해지며 뒷정리를 한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서둘러야 겠어.”


“나도 돕고 싶은데.. 뭐라도 제가 하게 해주세요.”


강우가 침울한 표정으로


영주가 애처롭고 씁쓸한 표정으로


“넌 그냥 내 옆에 가만히 있어주는 게.. 날 정말 도와주는 거라니까.”


“난.. 맹인이라도 손도 멀쩡하고 발도 멀쩡한데..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 나도 밥값해야지.”


영주가 한숨을 푹 내쉬며 강우의 손목을 잡고 끌고와서 비닐포장 걷고 뒷정리를 같이 하기로 했다.


“그럼 이리 와서 나랑 이것 좀 하자. 빨리 하고 밥 먹자..”


강우의 낯빛이 아주 밝아지며


“네!”


순간 시각장애인용 지팡이를 홈이 파인 바닥을 짚고 걸려서 몸이 앞으로 휘청이며 균형감각을 잃고 넘어질듯 쏠린다.


“헉.”


영주가 얼른 안전하게 강우를 붙잡았다.


“강우야 괜찮아?”


강우는 구차해지고 비굴해지는 기분이다. 초점을 잃은 강우의 눈이 반쯤 떠져 있는데 빛을 전혀 구별 할 수 없는 백색동공이다.


“이러려고 나온 게 아닌데.. 제가 있으면 민폐나 끼치고 짐짝밖에 안 되나 봐요.”


영주가 더 놀랬다. 사려 깊은 영주는 차분히 앉아서 강우를 위로 했다.


“네가 이토록 애쓰지 않아도 충분히 네 마음 다 안다니까... 나.. 사람 속마음 읽는 괴물이란 것 잊었어.. 이수씨와 맨 처음 런던에서 마주친 날.. 그 인연의 소용돌이.. 어느 정도 난 눈치는 채고 있었다. 언론에 내 신분은 철저하게 은폐되었지만 거긴 나에 대해 정보가 아주 빠삭했겠지.. 내가 누구의 철천지원수의 자식이니까.. 그런데도 난 도망치지 않았어. 나도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지금도 이해할 수 없지만 나도 모르게 마음이 끌려가더라. 어쩌면 새장 속에 갇힌 날 꺼내 줄 마법의 열쇠 같았어.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 하더라도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게 있어. 그건 바로 나야.. 다 버려도 본인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자기 자신 만큼 마음 닫히지 않게 보호하고 지키는 습관, 남들한테 어떤 비난을 받고 아쉬운 소리를 듣는다 해도 깨지고 짓밟혀도 나 자신은 잊어버려서는 안되.”


강우가 한쪽 눈에서 눈물이 치솟는다. 고개를 푹 숙이고 얼른 자기 손으로 훔치고 닦아낸다.


“강우야.. 괜찮다니까.. 나 도와주는 사람 벌써 두 명이나 있다.”


"그런데 제가 무엇에 걸려서 넘어진 거죠?”


강우의 눈을 볼 때 마다 영주는 심적으로 괴로울 수밖에 없다.


“내가 확인할게.”


영주가 지팡이를 빼내면서 뭔가 의구심이 생겨 옆에 있던 삽으로 땅을 파본다. 영주는 매우 당황하고 뒤에 있던 암부들의 표정도 바로 정색이다.


“군화잖아.”


누군가 아무도 모르게 이곳에 군화 10켤래 정도 땅속에 묻어 놓았다.

영주의 표정이 순간 불안해진다.


“예전에 북한군 워커를 신은 군사력이 이 섬마을에 야습했다고 안 그랬어. 그 이유 때문에 지금 우리 애들이랑 이수씨가 네 형제들이랑 안전한 곳에 가 있잖아.”


“네.. 그래요.”


영주 왠지 기분이 불길해지고


“뭐지.. 강우야? 왜, 난 갑자기 이런 기분이 들까? 이거 누가 일부러 장난친 것 같지?”


옆에 있던 암부들도 매우 당혹스러운 표정이다.


얼른 급하게 뛰어나가 이 소식을 상급암부 팀장급들에게 연통하려 한다.


“어디라고 했지?”


영주가 표정이 굳어지며 언성을 높였다.


“지금 무슨 생각하고 있는 거에요?”


강우가 난처한 표정으로


“우리 애들이랑 이수씨가 지금 어디에 있어! 그것만 말해.”


영주는 불길한 예감에 다급하게 물었다.


“선암사요."


그는 사리가 밝고 총명해서 몸 따로 마음 따로 놀지 않는다. 바로바로 실행에 옮기는 타입이라 생각을 한 뒤로 이미 계산이 끝났고 1분1초도 늦장을 피우지 않는다.


영주가 그 자리에서 뛰쳐나가 집으로 들어가 재킷을 걸치고 모자까지 푹 눌러 쓴다


“금방 다녀올게..."


영주의 마음이 서서히 조급해지며


“형님이 꼭 가셔야 되겠어요? 그곳에 정보부장이 계십니다. 제가 머큐리에 서신을 보내겠습니다. 형님.. 지금 판단 잘 하셔야 되요? 박영주는 이미 오래전에 장례식을 치른 고인이 된 사람입니다. 형님이 살아있다는 것을 누군가 알아 볼 수 있습니다. 형님이 이 대청도 섬에서 무려 6년간 정착하면서 이 부분에 대해서 오랫동안 많이 고민하고 심사숙고 했던 부분이잖아요?”


강우는 차분하게 그를 설득했다.


"그럴테지.. 하지만 상황이 지금은 달라... 무슨 꿍꿍인지 알 수 없지만.. 너희 암부들 중에 한 명이 윤태석에게 들러 붙은 것 같아.. 나 지금 이 상황에선 단 하나밖에 내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아. 너희 의형제들을 못 믿는 게 아니라.. 배신한 그 친구로부터 상처를 받아야 될 그 사람들 때문이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선암사로 지금 꼭 가야만 하는 근본적인 이유라고 볼 수 있어.”


영주는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더 이상 지체하면.. 이수씨는 이 섬마을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해!"


강우도 진지해지며


“솔직히 말할게요.. 로이님을 위해선 그러면 안 되는데 그냥 모른 척 하려고 바보 같은 생각도 해봤고 의심을 떨쳐내려고 다짐했는데.. 우리 중에 배신자가 있다는 것 자체가 몹시 혼란스러웠어요. 난 그 자가 누군지 알 것 같기도 하니까."


“그랬구나. 숨겨주고 싶었지. 이렇게 순한양처럼 어리버리하고 착한데... 암부로 길러 지다니.. 너 자격미달인 것 알고 있냐? 그 사람한테 자초지종을 들어보면 분명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을 거야.”


속마음이 여린 착한 강우가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끄덕이자 영주가 의젓하고 덤덤하게 미소 지으며 강우의 어깨를 손으로 토닥거렸다.


“그리고 강우 네가 생각하는 그 엄청난 혼란을 막기 위해서 내가 지금 가려고 하는 거야.”


영주는 그렇게 말하고 급하게 정신없이 집밖으로 뛰어나간다.


“이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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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 제260화 - 도시의 사냥꾼 +3 20.08.02 52 3 22쪽
260 제259화 - 따뜻한 선행 +3 20.08.02 60 2 17쪽
259 제258화 - 도플갱어 소동 +3 20.08.01 57 2 22쪽
258 제257화 - 하나된 마음 +2 20.08.01 48 2 8쪽
257 제256화 - 케인의 자존심 +2 20.07.31 42 2 15쪽
256 제255화 - 절교 +3 20.07.31 60 2 14쪽
255 제254화 - 형벌의 시간 +2 20.07.31 45 2 15쪽
254 제253화 - 음악의 별이 되다 +2 20.07.30 50 2 19쪽
253 제252화 - 선율 +2 20.07.30 55 2 19쪽
252 제251화 - 다시 부활한 하이에나 +2 20.07.29 56 2 12쪽
251 제250화 - 영주를 되찾다 +2 20.07.29 54 2 18쪽
250 제249화 - 오해를 풀다 +2 20.07.29 55 2 22쪽
249 제248화 - 6년만의 재회 +2 20.07.28 60 2 20쪽
248 제247화- 그리운 이름 +4 20.07.28 57 2 10쪽
247 제246화 - 교도소 탈옥 +2 20.07.27 50 2 21쪽
246 제245화 - 교도소 상륙작전 +4 20.07.27 60 3 20쪽
245 제244화 - 배신의 아픔 +2 20.07.27 44 2 13쪽
244 제243화 - 미카엘의 고충 +1 20.07.26 45 1 16쪽
243 제242화 - 선암사에서 총격전(5) +2 20.07.26 51 1 17쪽
242 제241화 - 선암사에서 총격전(4) 20.07.25 52 0 15쪽
241 제240화 - 선암사에서 총격전(3) 20.07.25 52 0 19쪽
240 제239화 - 선암사에서 총격전(2) +1 20.07.25 49 1 21쪽
239 제238화 - 선암사에서 총격전(1) +1 20.07.24 55 1 16쪽
238 제237화 - 하나의 소중함(하) +2 20.07.24 59 2 25쪽
237 제236화 - 하나의 소중함(상) +2 20.07.23 58 2 14쪽
» 제235화 - 트릭 +2 20.07.23 49 1 10쪽
235 제234화 - 영원한 믿음 +1 20.07.23 49 1 10쪽
234 제233화 - 창룡의 고백 +2 20.07.22 46 1 7쪽
233 제232화 - 뮤지션의 길 20.07.22 43 1 8쪽
232 제231화 - 제주도 푸른 밤(하) +1 20.07.22 50 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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