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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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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1.10.08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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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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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18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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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화

DUMMY

펠릭스는 오르데움 서쪽 관문 근처의 마차 대여소 앞을 서성거렸다. 축제 때문인지 뭐때문인지, 대여소에는 빌릴수 있는 마차가 남아있지 않았다.


“아니, 저렇게 마차가 많은데, 하나도 못 빌려준다는게 말이나 됩니까?”


펠릭스는 공연히 대여소 직원에게 짜증을 냈다.


“죄송합니다만, 손님. 모두 예약이 되어있는 것들 뿐입니다.”


직원은 최대한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내 참. 누가, 대체 무슨 목적으로 빌린 건데요? 저 많은 마차들에 전부 주인이 있다니, 웃기는 일이로군.”


펠릭스가 툴툴거렸다.


“죄송합니다, 손님. 축제 기간에는 마차를 타고 느긋하게 거리를 돌아보고싶어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아마, 그런 분들이 예약한 것 같습니다만······.”


“내 참.” 펠릭스가 투덜거렸다. “우린 서쪽으로 가야한단 말이에요. 서쪽! 알아요? 산맥 하나를 더 넘어서, 산맥 너머의 붉은 사막까지 가야한다고요. 그런데, 거길 두 다리로 걸어가라고? 그 먼 길을?”


“손님. 죄송하지만, 그렇게 말씀하셔도······.”


직원이 눈치를 살피며 대답하자 펠릭스는 한숨을 푹 쉬며 나가버렸다.




대여소 건물 밖으로 나온 펠릭스는 마구간 앞을 서성이며 말들을 살펴보고 있던 올리버와 실비아를 발견했다.


“어때? 빌렸어?”


올리버가 인기척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죄다 주인 있는 마차라네요.” 펠릭스가 말했다.


“그럼, 우리 어떡해요?” 실비아가 물었다.


“첫 번째. 축제가 끝나고, 사람들이 마차를 반납할 때까지 기다린다.”


펠릭스가 손가락 하나를 쭉 뻗으며 말했다.


“언제 끝날줄 알고? 여기 하염없이 머무를수도 없잖아.”


그러자 올리버가 난색을 표했다.


“두 번째. 어느 재수없는 사람이 마차 예약을 취소할 때까지 여기서 버틴다.”


펠릭스가 두 번째 손가락을 쭉 뻗으며 말했다.


“마차 예약을 이제와서 갑자기 취소하는 사람이 있겠어요?”


실비아가 말했다.


“세 번째. 걸어간다.”


펠릭스가 세 번째 손가락을 쭉 뻗었다.


“터무니없군.” 올리버가 중얼거렸다.


“맞아요. 터무니없는 일이에요.”


그리고 실비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그러자 펠릭스는 한숨을 푹 쉬며, 마지막으로 네 번째 손가락을 쭉 뻗었다.


“네 번째. 다른 마차를 찾는다.”


펠릭스가 입을 다물었지만, 두 사람 모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있을까요?”


실비아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자, 펠릭스와 올리버는 조용히 그녀를 외면했다.




그 때, 마침 마부 한 명이 마차를 몰고 대여소 안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말발굽이 다그닥거리는 소리와 마차의 바퀴가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펠릭스와 실비아, 그리고 올리버는 구세주라도 만난 양 환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막상 그 마차는, 한 눈에 보기에도 어딘가 이상한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조금 낡고 고풍스러운 외관 때문만은 아니었고, 그렇다고 모자를 푹 눌러쓴 음울한 얼굴의 마부 때문만도 아니었다. 마차를 본 펠릭스는, 남들에게 말 못할 비밀스러운 사연들이 얇은 베일처럼 마차 위에 몇 겹은 드리워진것 같은 그런 착각을 얼핏 본듯 했다.




펠릭스의 일행들만이 마차에서 이상한 낌새를 느낀 것 같지는 않았다. 대여소의 직원들과 잡부들도, 그 마차의 덜컹거리는 소리를 듣자 다들 뭐에 홀린듯 하던 일을 멈추고 마차를 돌아보았다. 마부가 마차를 대여소 안으로 끌고 들어와 마차에서 내려 직원에게 뭐라고 말을 하자, 직원은 난색을 표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쩌면.”


펠릭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대뜸 마부를 향해 직진했다. 펠릭스가 대화에 난입하자, 직원은 재빨리 뒤로 사라졌고, 마부는 대신 펠릭스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 마차.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네요.”


실비아가 불안한 눈으로 마차를 살펴보며 말했다.


“낡아서 그래. 만든 양식도, 꽤 옛날 양식이고.” 옆에서 올리버가 말했다. “이십년쯤 전에 유행하던 스타일이지. 저기, 지붕을 뺄 수 있게 만든 것이나, 싸구려 금박으로 잎사귀가 달린 줄기 모양의 장식을 붙인 것이나. 요즘은 저런 장식은 안 쓰니까.”


“아니, 그런게 아닌 것 같아요. 그것 보다는, 조금 더 뭔가가 서려있다고 할까. 음. 잘 모르겠네요. 아무튼, 그렇게 기분좋은 마차는 아닌데······.”


“됐어요! 다들 타요!” 그런 실비아의 마음도 모르고, 펠릭스는 그저 헤실거리고 웃으며 일행들을 향해 외쳤다. “빌렸어요. 가죠, 서쪽으로! 무궁무진한 황무지를 향해, 붉은 사막을 향해!”


“이걸 타자는데.” 올리버가 실비아에게 말했다.


“저도 귀 있어요. 아무튼, 뭔가 영 내키지가 않는데······.”


“하지만, 실비아. 이걸 놓치면, 다음 번 기회가 언제 올지는 아무도 모르잖아.”


올리버가 실비아를 타이르듯 말했다.


“안 타요?” 펠릭스가 그의 동료들에게 걸어와 물었다.


“실비아가 이 마차에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다는데.” 올리버가 말했다.


“분위기가 조금 이상하잖아요. 꼭 무슨, 사건이라도 날 것 같은 마차에요. 안 그래요, 펠릭스?” 실비아가 말했다.


“그런가요? 흠.” 펠릭스는 마차를 한바퀴 빙 둘러보더니, 실비아에게 돌아와 대답했다. “저는 전혀 못 느끼겠군요. 정 싫다면, 다른 마차를 찾아보겠지만. 하지만, 실비아. 다음 번 기회가 언제 올 지는······.”


“올리버가 벌써 똑같은 말 했거든요.” 실비아가 말했다. “알았어요. 타요. 어쩔 수 없죠.”


실비아가 대답 하자마자 펠릭스는 마차 안으로 폴짝 뛰어올라갔고, 올리버도 성큼성큼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그리고 실비아는 영 불안하게 떨리는 눈을 깜빡이며 마차를 잠시 살펴보다가, 안에서 펠릭스가 채근하자 작게 한숨을 쉬며 안으로 조심스레 들어갔다.




마부는 솜씨좋게 채찍을 휘두르며 마차를 서쪽으로 몰기 시작했다. 벽돌로 만든 잘 닦인 도로는 오르데움을 벗어난지 채 1km도 되지 않아 사라져버렸고, 대신 거기는 오랜 세월동안 사람들과 말들이 땅을 밟아가며 다져낸 불그레한 흙길이 펼쳐져 있었다.


“오르데움에서는 꽤 지루했어.” 올리버가 하품을 하며 말했다. “사실, 나는 물 양동이 떠 나르고 네 잔심부름 한 것 밖에 없었으니까.”


“서쪽으로 가면 또 다를걸요, 올리버?” 펠릭스가 기대하라는듯 말했다.


“난 숲에서 사는 채집꾼이지, 사막에서 사는 채집꾼은 아니야.” 올리버가 말했다.


“하긴. 그렇기는 하네요.” 그러자 펠릭스도 이해한다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실비아. 아직도 뭐가 신경쓰여요?”


펠릭스는 마차 내부를 조심스럽게 둘러보고있는 실비아에게 물었다.


“아, 네. 뭐······.” 실비아는 얼버무리듯 말했다.


“뭐가 그렇게 신경쓰여요?” 펠릭스가 물었다.


“이 마차. 어딘가, 사연 있는 물건 같아서요. 안에서 무슨 사건이라도 터졌던 것처럼······.”


“사건이야 어디서든 일어나곤 하지.” 올리버가 말했다. “하지만, 마차 안은 의외로 꽤 안전한 편일걸? 칼을 들고 밖에서 달려들어봤자 문을 잠그면 그만이니까.”


“마부가 한통속이면요?” 실비아가 말했다.


“에이, 그건 너무 낭만 소설을 많이 본 거죠.”


펠릭스가 말도 안 된다는듯 중얼거렸다. 그러나 실비아가 그를 째릿 노려보자, 펠릭스는 재빨리 설명을 덧붙였다.


“대부분의 마차나 마부들은 전부 어딘가에는 소속되어 있는 사람들이라고요. 마부 조합 같은 곳에. 어쨌든 마부 일은 신용이 생명이니까. 그런데, 그런 마부가 뭐가 아쉬워서 범죄자들이랑 한 패를 먹겠어요? 그랬다가는, 재수없으면 재판소행에 운 좋아도 신용이 바닥을 쳐서 앞으로 일감이 없을텐데.”


“그렇기는 하지만, 그래도 좀······.”


실비아는 정면의 차창 밖으로 얼핏 보이는 마부의 뒷모습을 힐끔 보았다.


“원. 걱정도. 보나마나 마차가 낡아서 그런거죠? 뭐, 이해해요. 예로부터 사람의 손때가 묻은 낡은 물건들에는 귀신이든 뭐든 서린다고 하니까.”


“그런거 아니거든요!” 실비아가 공연히 짜증을 내며 말했다. “그런 미신적인게 아니란 말이에요. 뭔가······.”


“뭐, 일을지도 모르지. 실비아 말처럼.” 올리버가 다시 하품을 하며 말했다. “때로, 소녀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날카로운 직감을 갖곤 하니까.”


“글쎄요. 뭐가 됐든, 두고 보면 알겠죠.”


펠릭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는 실비아를 보고 씩 웃어준 다음, 슬쩍 차창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흙길 위를 달려가다 실력없는 목동이 길 위에서 멈춰버린 하얀 양떼를 몰고 가기를 기다리는 동안, 멈춰선 마차 안에서 실비아가 펠릭스에게 물었다.


“펠릭스. 우리, 사막으로 간다고 했었죠?”


“네.” 펠릭스가 대답했다.


“그, 뭘 찾으러 간다고 했었죠?” 실비아가 조금 주저하며 물었다.


“흑살구요. 사실, 살구랑은 아마 거리가 먼 친구일걸요. 굉장히 농후한 단맛이 나요. 설탕을 녹여 만튼 검은 공 같다고나 할까.”


“그것도, 안에 벌레가 살고 있는건 아니죠? 그, 적율 처럼······.”


“걱정 마요. 벌레도 그 열매 안에서는 녹아버릴걸요? 그만큼 달콤한 열매죠. 달아서 못 먹을 정도로.”


“으, 꼭 말을 해도 그렇게 징그러운 말만 골라서 해요!”


실비아가 항의하자, 펠릭스는 웃어넘겼다.


“아무튼, 사막에 가는건 처음이네요. 괜찮나요? 모래라든가, 신기루라든가······.”


“모래사막이 아니에요.” 펠릭스가 말했다. “따지고보면, 시뻘건 황무지에 가깝죠.”


“네? 그럼, 황무지라고 부르지, 왜 사막이라고 불러요?”


그러자 옆에서 올리버가 헛기침을 하며 끼어들었다.


“사막은, 모래가 많다 적다가 아니라 비가 얼마나 오느냐 마느냐에 따라 붙이는 이름이거든.”


“그래요?”


실비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올리버에게 물었다.


“그래. 학교나, 가정교사가 알려주지 않았어?”


올리버가 되물었다.


“전혀요.” 실비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긴. 그치들이 귀족 자제한테 뭘 가르치겠어요? 우아하고 고상하게 옷 입는 법, 예뻐 보이게 걷는 법, 소리내지않고 차 마시는 법이나, 아니면 뭐······.”


“펠릭스! 그런 쓸데없는건, 안 가르치거든요!” 실비아가 펠릭스에게 항의하자, 펠릭스는 잽싸게 고개를 돌려버렸다. “하여튼,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렇게 함부로 말 하지좀 말아요.”


“뭐, 그렇다면야. 제가 아는 곳이랑은 다른가보죠.” 펠릭스는 미안한 기색도 없이 괜히 벽쪽으로 하품을 하며 대답했다.




마차는 한참 더 서쪽으로 달려가다가 어느 자그마한 역참에 멈춰섰다.


“쉬어가나봐요.” 마차가 서서히 느려지자 실비아가 말했다.


“그럴 만 하지. 벌써 네 시간이나 달렸으니까. 말들도 쉬어야 할 것 아냐.” 올리버가 말했다.


“뭐, 우리도 잠시 내리자고요. 여기 계속 앉아있다가는 온 몸이 딱딱하게 굳어버릴지도 모르니까.”


마차가 완전히 멈춰서고, 마부가 문을 열어주자 펠릭스는 가장 먼저 마차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마차에서 내린 실비아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기지개를 켜는 올리버와 그런 올리버 옆에서 마찬가지로 기지개를 켜는 펠릭스를 외면하고 지나갔다. 그녀는 가볍게 산책을 하며 역참을 돌아보았다. 작고 조용한 곳이었다. 그러다가 실비아는 뒷마당에서 밭을 갈던 역참 관리자와 마주쳤다.


“응? 손님이요?” 인기척을 느끼고 관리자가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서쪽으로 가는 길에 잠시 쉬어가려고요.” 실비아가 공손하게 대답했다.


“서쪽? 지금 시기에?” 관리자가 의아한듯 물었다.


“네. 서쪽이요. 서쪽에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마적들이 기승을 부린다는데.” 관리자가 말했다.


“마적이요?” 실비아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마적이요, 마적. 말 타고 돌아다니면서 약탈을 일삼는 패거리들. 한동안 잠잠하다가, 얼마 전부터 다시 기승을 부린다는데, 뭐 솔직히 저도 잘 모르기는 합니다.” 관리자가 말했다. “보면 알겠지만, 밭을 갈던 중이라. 딱히 대접해 드릴건 없습니다. 장부에 이름을 적고 편히 쉬다 가십시오.”


“아, 네. 그럼, 수고하세요.”


실비아는 밭일에 열중하는 그를 더이상 방해하지 않고, 종종걸음으로 앞마당으로 돌아왔다.




역참 안으로 들어가, 장부에 이름을 적고 요금을 카운터 위에 올려둔 뒤, 펠릭스의 일행들은 좁은 식당으로 들어가 빵 쪼가리를 우물거리고 있었다.


“마부요. 정말 조용한 사람이네요.”


그리고 실비아는 식당으로 들어오지도 않고, 여전히 마당에 서서 서쪽을 바라보고있는 마부를 창문 밖으로 힐끔 내다보았다.


“그러게. 직업 정신이 투철한 사람인 모양인데.” 올리버가 말했다.


“직업 정신 이랄게 있나요?” 실비아가 말했다.


“있지. 입이 무거운건, 마부나 하인들에게는 중요한 미덕이니까. 그들은 의도치 않게 온갖 이야기를 다 듣곤 하잖아? 그런데, 함부로 입을 나불거리면 누가 그들을 믿고 계속 써 주겠어?” 올리버가 말했다.


“맞아요. 실비아. 당신도 귀족이니 알 만큼 알지 않나요? 하인들 입단속이라든가. 당신 언니는 그 부분은 아주 철저하게 지키던데요.”


“요리사만 빼고.” 올리버가 중얼거렸다.


“아무튼!” 실비아는 언니 이야기가 언급되자 재빨리 화제를 바꾸었다. “저 마부, 뭔가 숨기는 사람 처럼 보인다고요. 어딘가, 좀 이상한 분위기에요.”


“원. 걱정도. 내가 보기에는, 그냥 평범한 마부인걸.” 올리버가 말했다. “그리고, 실비아. 범죄자는 마부가 될 수 없어. 개인 마차를 몰려면 아주 깨끗하고 성실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마부 자격은 아무에게나 턱턱 발급해 주는게 아냐.”


“아니면, 재주가 엄청 좋거나요. 무시무시한 짓을 벌여도 들키지만 않으면 그만이니까.” 펠릭스의 말을 듣더니 실비아는 다시 흠칙 놀라며 그 마부를 돌아보았다. 마부는 여전히 음울한 얼굴로 서쪽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곳에, 아주 중요한 무언가를 남겨두고 온 사람처럼.




펠릭스의 일행들이 다시 마차위로 슬금슬금 올라타기 시작할 즈음에, 뒷마당에서 밭일을 하던 관리자가 이쪽으로 털레털레 걸어왔다.


“서쪽으로 간다고 했죠?” 관리자가 막 마차에 올라타려던 실비아에게 말했다.


“아, 네. 그런데요?”


“남쪽으로 가서 배를 타는게 나을걸요.” 관리자가 말했다. “방금 생각났는데, 서쪽에 역참 하나도 마적한테 당했다고 하는것 같던데요.”


“그래요?”


“그래요. 조금있으면 해가 저물기 시작할텐데, 오늘 밤에 머물 데가 있겠나요? 아무튼, 나는 전해줬으니 알아서 하세요.”


“아, 네. 알았어요. 그럼, 수고하세요.” 실비아가 대답하자 관리자는 다시 뒷마당으로 털레털레 걸어갔다.


“뭐래?” 실비아가 마차위에 올라타자 올리버가 물었다.


“남쪽으로 가라던데요. 서쪽은 마적들이 많고, 마적들이 역참 하나를 털었대요.” 실비아가 말했다.


“그래요? 하지만, 남쪽으로 가면 시간을 너무 낭비하게 되는데.” 펠릭스가 말했다.


“하지만, 펠릭스. 마적들은 꽤 위험하잖아?”


“그렇기야 한데······.”


갑자기, 마부와 연결되어 있는 차창이 드륵 열리더니 마부가 조금 소름끼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할 것 없습니다, 손님들.”


“네?” 펠릭스가 되물었다. “뭐 아는거라도 있나요? 아니면, 뾰족한 수라도?”


“있습니다. 안전한 곳을 알고 있는데다가, 손님들의 안전은 제가 책임지고 보증하겠습니다.”


마부는 제 할 말을 마친 다음, 도로 차창을 닫아버렸다.


“저 사람, 위험한것 같아요!” 재빨리 목소리를 죽여 실비아가 말했다. “세상에. 지금까지 우리들이 하는 말 다 엿듣고 있었다는거 아녜요?”


“진정해, 실비아.” 올리버가 말했다. “마부가 손님들 이야기 듣는것 자체는 별로 이상한 일도 아니니까. 그것보다는, 안전한 곳을 안다는데. 어때, 펠릭스?”


“여기서 남쪽으로 방향을 돌려도, 바로 서쪽으로 갈 수는 없어요.” 펠릭스가 말했다.


“왜요?” 실비아가 말했다.


“이쪽 바다를 오가는 배들은 죄다 화물선인데, 화물선은 타고싶다고해서 마음대로 얻어 탈 수가 없다고요. 시간을 너무 지체하게 돼요.”


“그래도, 위험할지도 모르잖아요? 마적이라니······.”


“하, 실비아. 마적 이야기를 믿어요?” 펠릭스가 말했다.


“그럼, 거짓말이에요?” 실비아가 되물었다.


“소문이죠. 황무지에 마적이 있을 지는 몰라도, 역참을 털어버렸다니. 왜 그러겠어요? 뭐가 아쉬워서? 역참에 보물이라도 숨겼을 리도 없고.”


“그래. 그리고, 서쪽 황무지에도 도시는 있어. 도시에서는 주기적으로 길목을 순찰하고.” 올리버도 거들었다. “마적을 그렇게 무서워 할 필요는 없을거다, 실비아.”


“그러면 다행이고요. 그렇다고, 불안한게 사라진 건 아니지만······.”


“이봐요! 서쪽으로 가 줘요.”


펠릭스는 줄곧 참을성있게 마차를 출발시키지 않고 기다리던 마부에게 명령했다. 마부가 가볍게 채찍을 휘두르자, 마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쪽으로 달려가며 실비아는 여전히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처음에 그녀는 그저 창 밖을 내다보기만 하다가,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수첩을 꺼내 그림을 그리다가, 그림이 영 그려지지 않아 그것도 금새 포기해버렸다.


“서쪽은 황무지라면서요?” 실비아가 말하자, 펠릭스가 그녀를 돌아보았다.


“네.”


“황무지에 어떻게 사람이 살죠?” 실비아가 물었다.


“뭐, 저도 모르죠. 올리버, 올리버? 그만 자고 일어나봐요.” 펠릭스가 올리버의 옆구리를 찌르며 말했다.


“왜 또.” 올리버가 대답했다.


“실비아가 궁금하다잖아요. 황무지에 왜 사람들이 사는지.”


“낸들 알아? 뭐, 물이 있으니 살만해서 사는거 아니겠어? 아니면, 바닷가 마을이라든가. 바다로 나가면 여기저기 돌아다닐 수 있잖아. 물고기도 잡아먹을 수 있고. 대충 그런거 아니야?” 올리버는 하품을 하며 대답했다.


“그러고보니, 펠릭스.” 실비아가 다시 말을 꺼냈다.


“이번에는 왜요?”


“문득 떠올랐는데요. 마적들은 어떻게 살아가는거죠?”


“어려운 질문이네요. 철학적인 대답을 원하나요?” 펠릭스가 말했다.


“아니, 아니요! 그러니까, 제 말 뜻은 그런게 아니에요. 마적들이라면, 어쨌든 범죄자잖아요? 범죄자들을 마을에서 같이 살도록 내버려 둘까요?”


“뭐, 목에 칼을 들이밀면 싫어도 허락하게 되겠죠. 아니면, 마적들끼리 마을 근처나 산골짝 어딘가에 조그마한 마을을 따로 차릴수도 있는거고.” 펠릭스가 대답했다.


“어느쪽이든, 불편할것 같네요.”


“그 사람들 생각을 내가 어찌 알겠어요.” 펠릭스가 말했다.


“그렇게 불편하게 살아가는 이유가 있을까요?”


“없지야 않겠죠. 별로 궁금하지도 않지만. 그나저나, 마적에 대해 관심이 많은가봐요? 그렇게 무서워요?”


“아니, 꼭 그런 것은 아니고······.”


실비아는 말끝을 흐렸지만, 펠릭스는 더이상 그 주제에는 관심이 없다는듯 크게 하품을 했다.


“펠릭스.”


“왜 그래요? 이번에는 또 뭐죠?” 펠릭스가 귀찮다는듯 말했다.


“저 마부요. 안전한 길을 안다고 했잖아요.” 실비아가 물었다.


“그랬죠.” 펠릭스가 대답했다.


“서쪽에 자주 가는 걸까요? 안전한 길을 안다면······.”


“물어보면 되죠. 어이, 이봐요!” 펠릭스는 차창을 열고 마부에게 말했다. “당신, 서쪽에 자주 가나요?”


실비아는 펠릭스가 마부의 대답을 듣고, 다시 차창을 닫을 때까지 기다렸다.


“뭐래요?”


“자주 간다네요.” 펠릭스가 말했다. “이제 더 궁금한건 없나요?”


“글쎄요. 일단은요.”


실비아의 대답을 들은 펠릭스는 다시 차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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