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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의 연금술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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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1.10.08 16:53
최근연재일 :
2022.01.13 18: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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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17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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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82화

DUMMY

펠릭스는 약을 먹고 겨우 침대에 등을 기댔다. 그는 사라져버린 오른 다리의 통증과, 지난 밤에 꾸었던 괴상한 꿈을 분석하려 했지만, 가려움증 때문에 도저히 주의를 집중할 수가 없었다.


“나 왔어요!”


펠릭스의 방문을 벌컥 열고 실비아가 들어왔다. 그녀의 두 손에는 물이 담긴 큼직한 양동이가 들려있었고, 그 양동이에는 그나마 깨끗해 보이는 수건이 걸쳐져 있었다.


“됐어요. 필요 없으니까······.”


펠릭스가 거절했지만, 실비아는 물러서지 않았다.


“어휴. 되기는 뭐가 돼요! 당신 꼴 좀 봐요. 무슨, 비에 홀딱 젖은 강아지처럼 돼버렸다고요. 알아요?”


실비아는 수건에 물을 적혀 펠릭스의 얼굴을 닦아주기 시작했다. 그러자 펠릭스는 그녀의 손을 붙잡고, 그녀의 손에서 수건을 뺏은 다음, 자기 손으로 직접 얼굴을 닦기 시작했다.


“뭐, 아무튼 고마워요.”


수건으로 얼굴을 닦은 펠릭스가 말했다. 그러자 실비아는 잠시 그의 얼굴을 빤히 보다가 피식 웃었다.


“하여튼, 펠릭스. 얼굴 보니 그새 괜찮아졌나봐요?”


“내 얼굴이 어때서요?” 펠릭스가 말했다.


“평소처럼 개구쟁이 같은 얼굴이라서요. 난 또, 당신한테 무슨 큰 일이라도 난 줄 알았는데.”


“큰 일이긴 했죠. 오른 다리가 가려워 미칠 것 같았으니까.”


실비아의 시선이 그의 오른 다리로 향했다.


“당신 오른 다리는, 그, 가짜잖아요?” 실비아가 조금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니 미칠 것 같다는 거죠. 있지도 않은 오른 다리가 가려운데, 긁을 수도 없고, 가려움증은 점점 더 심해지고. 어휴. 정말이지. 이런 적은 거의 없었는데.”


펠릭스가 투덜거리자 실비아는 그의 손에서 슬쩍 수건을 다시 빼앗아 그의 이마를 한벅 슥 닦아주었다.


“내가 알아서 한다니까요.”


펠릭스는 다시 실비아의 손에서 수건을 빼앗았다.


“뭐 구경났어요?”


그리고 펠릭스는 자기를 빤히 보고있는 실비아를 향해 조금 퉁명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실비아가 또 피식 웃었다.


“아니, 당신이 이렇게 약해 보이는건 또 오랜만이라. 신기해서요. 당신도 아플 때는 평범한 사람이랑 비슷하네요.”


“나 정도면 꽤 평범한 편이죠.” 펠릭스가 말했다.


“지금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줄은 알고요?”


실비아가 히죽거리자 펠릭스는 입을 다물었다.


“아무튼, 그만 나가 봐요. 옷이라도 좀 갈아 입을 테니까.”


펠릭스가 수건을 도로 양동이에 걸치며 말했다.


“괜찮아요? 당신, 아까 많이 아파 보였는데.”


실비아가 조금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안 괜찮겠어요? 이 연금술사가,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비약과 고약, 치료약의 비법을 아는 내가, 설마 아파서 문제겠어요?”


“전에, 감기 걸렸을때도 골골댔잖아요. 같이 있어 줄까요?”


“됐네요. 그만 가 보세요, 아가씨. 올리버랑 가서 같이 서쪽의 축제나 즐기든지.”


펠릭스는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밑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나으면 내려와요.” 그리고 실비아는 양동이를 들고 도로 내려가려다가, 도로 방에 놔 두었다.


“세수라도 하고 싶어지면 이거 쓰고요. 나중에 올리버한테 부탁해서 치워달라 하면 되니까, 부담갖진 말아요. 그럼, 무리하지 마요 펠릭스.”


그리고 실비아는 문간에 서서 잠시 펠릭스를 보다가, 조심스레 문을 닫고 나갔다.




여관 일 층 식당에 앉아 초조하게 기다리던 올리버는 계단 근처에서 인기척이 날 때마다 그곳을 휙 돌아봤다. 성당이나 성벽을 지키는 가고일같은 그 모습에, 몇몇 손님들은 깜짝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올리버는 멈추지 않았다.


또다시 계단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올리버는 이번에도 고개를 휙 돌려 계단을 보았다. 실비아가 빈 손으로 혼자 계단을 내려오다가, 올리버와 눈을 마주치며 조금 어색하게 웃으면서 다가왔다.


“펠릭스는?” 올리버가 물었다.


“괜찮아 진 것 같아요. 우리들보고 둘이 축제라도 즐기든가 하라던데요.”


“속 편한 소리 하고 있군. 거 참. 즐기긴 뭘 즐겨. 제 몸이나 똑바로 간수하지.”


그 말을 들은 올리버는 공연히 투덜거렸다.


“그래서, 뭐라고 대답해줬어?”


“밑에서 기다릴 테니까, 몸 나으면 내려오라고요. 그래도, 혼자 버려두고 우리끼리 놀기에는 미안하잖아요?”


실비아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참 착하구만.” 올리버가 중얼거렸다.


“뭘요.” 그러자 실비아가 쑥스럽다는듯 말했다.




실비아가 방에서 빠져나간 뒤로, 펠릭스는 슬슬 약효가 도는 것이 느껴졌다. 늑대의 아가리 속으로 사라진 진짜 오른 다리의 비명과 몸부림도 이제는 서서히 잦아들어 더이상 고통스럽지 않았다. 고통이 사라지자 펠릭스는 의식을 한 곳에 집중할 수 있었고, 그래서 그는 지금 자신에게 일어난 이 이상하고 낯선 일에 대해 분석하기 시작했다.




펠릭스는 자신이 느낀 증상을 하나하나 나열했고, 나열된 증상들을 살펴보며 그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태엽을 거꾸로 감듯이, 기억을 천천히 과거로 돌리다가, 펠릭스는 어렵잖게 원인을 파악했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겠답시고 광장에서 벌이던 그 쓸데없이 화려한 연금술. 펠릭스는 헛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목이 타서 물이 마시고 싶었기에 그는 천천히 휘청이며 방을 나섰다.




계단에서 인기척이 느껴지자, 이번에는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휙 돌려 그곳을 보았다. 누가 봤다면, 아마 가고일이 하나에서 둘로 늘었다고 생각했을지도 몰랐다.


실비아와 올리버는 계단을 내려오는 펠릭스를 발견하고 퍽 반갑게 웃으며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펠릭스! 여기에요!” 실비아가 말했다.


“내 참. 나도 눈 있어요. 척 보면 알아요. 그렇게, 티 안 내도.” 펠릭스가 털레털레 다가오며 중얼거렸다.


“어때? 몸은 좀 괜찮아?” 올리버가 조금 걱정스럽게 말하자, 펠릭스는 씩 웃었다.


“괜찮고 말고요. 제가 만든 약이 얼마나 잘 듣는지는 당신들도 충분히 봐서 알잖아요?”


“하긴. 그건 그렇네요.” 실비아는 그 말이 퍽 안심된다는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솜씨좋은 연금술사라서 다행이에요.”


“그래서, 무슨 일이었던거야?” 올리버가 물었다.


“아, 사실 별 일은 아니었어요. 구름을 만든다고 솥에 조금 위험한 약을 자꾸 섞어서 끓이다보니. 거기 중독된 거였어요.” 펠릭스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듯 태연하게 설명했다.


“중독이요?” 실비아가 깜짝 놀랐다. “펠릭스. 괜찮은것 맞아요? 해독제라도 먹어야 하는거 아니에요?”


“가벼운 중독 증상이었어요. 원래, 그런 약재를 쓸 때는 환기가 잘 되는 곳에서 했어야 하는데. 신비로운 분위기를 낸답시고 검은 천으로 솥 근처를 둘러싸버렸더니, 환기가 안 돼서 탈이 나고 만 거죠.”


펠릭스가 투덜거리며 테이블에 털썩 주저앉았다.


“내 참. 그런 초보적인 실수를 하다니. 실비아. 이 기회에, 알아둬요. 연금술로 약을 만들 때는 반드시 굴뚝이 있고, 환기가 잘 되는 곳에서 만들어야 한다고요.”


“알았어요. 뭐, 제가 가게를 차리거나 할 건 아니지만요.” 실비아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알아두라니, 알아는 둘게요. 혹시나 나중에 또 당신같은 사람 만나면 알려줘야 하니까.”


“대단히 고맙군요. 왠일로 이렇게 고분고분할까.”




펠릭스가 물잔을 가져와 물을 한모금 입에 머금고 있을 때, 올리버가 그에게 슬며시 물어보았다.


“그래서, 펠릭스. 이제 어쩔거야? 아직 잠들기엔 조금 이른 시간이고, 축제는 여전히 한창인데.” 올리버가 여관 창 밖을 힐끗 보며 말했다.


“가서 축제라도 조금 즐기죠 뭐.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원래 이 마을은 금방 통과할 생각이었지만, 뭐. 이렇게 돼버렸네요. 도둑질을 당하고, 그 도둑을 잡겠답시고 가판대를 열고, 기껏 잡은 도둑은 또 귀찮은 사연 투성이에다가, 어휴. 의족은 뜬금없이 또 말썽이고······.”


“아, 맞아요 펠릭스.” 실비아가 막 생각났다는듯 말했다. “그래서, 솔레루스랑 무슨 이야기를 나눈 거예요? 약값이라든가, 어떻게 처리했어요?”


펠릭스는 별로 대답하고 싶지 않아 잠시 생각하는 척을 했다. 하지만 실비아도 이번에는 반드시 대답을 듣고야 말겠다는듯, 반짝이는 두 눈을 깜빡이며 펠릭스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잘 해결했어요. 당신이 좋아할 만한 방식으로.” 펠릭스가 말했다.


“그러니까, 어떻게요?” 실비아가 다시 물었다.


“있어요. 아무튼, 약은 잊어요. 어휴. 엘릭서를, 그런데 써 버리다니. 내 참. 어휴. 아깝다 아까워.”


“그래도, 뭐. 그 꼬마는 덕분에 사랑하는 할머니와 같이 오래 살 수 있겠군.” 올리버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러게요. 메를린도 아까워하진 않을 거예요.” 실비아도 웃으며 말했다.


“글쎄요. 아무튼, 엘릭서는 그만 잊자고요.” 그리고 올리버 말대로 아직 밤이 깊지 않았으니, 온 김에 축제 구경이나 하고 가죠.”


마침내, 펠릭스가 말하자 실비아는 대단히 기쁜 얼굴로 손뼉을 쳤다.


“좋아요!” 실비아가 말했다.




걱정거리를 덜고 나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밤이 찾아와서 그런 것인지, 오르데움의 축제는 낮에 봤을 때 보다 조금 더 즐겁고 활기차 보였다. 저쪽에서는 한창 이국적인 옷을 입고 행진하는 무리가 있었는데, 그들은 단지 웃으며 관객들에게 손을 흔들어 줄 뿐만 아니라 악기 하나씩을 입에 물고 어떤 곡조를 연주하며 행진하고 있었다.


“펠릭스! 동쪽보다 훨씬 더 보기 좋은 행렬이네요!”


그리고 실비아는 인파 사이에서 까치발을 들고 행렬을 구경하다가, 올리버에 의해 불쑥 들어올려졌다.


“잘 보여?” 올리버가 실비아를 목마태워주며 말했다.


“네! 엄청 잘 보이네요. 우와. 서쪽 전통 의상이네. 동쪽은 전통 의상하면 이제 가난한 사람들만 입는 옷이라는 편견이 팽배한데, 서쪽은 아닌가봐요. 펠릭스, 당신도 보여요?”


실비아는 그제서야 펠릭스 생각이 나, 고개를 힐끗 내렸다.


“잘 보이는군요.”


그리고 펠릭스는 까치발을 하고 오페라 글래스로 인파를 뚫고 행렬을 살펴보았다.


“올리버. 고마워요. 이제 내려 줘요. 아, 무겁지는 않았어요?”


실비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답하지 않으마.” 올리버가 말했다.


“올리버. 그럴 때는 가볍다고 해야죠. ‘아가씨, 솜털처럼 가벼웠습니다.’ 하고요.”


실비아가 웃으며 말하자, 옆에서 펠릭스가 중얼거렸다.


“물 먹은 솜털이겠군요.” 펠릭스가 히죽거리며 말했다.


“펠릭스!”


실비아는 그의 등을 가볍게 찰싹 때려주었지만, 그럼에도 펠릭스가 평소같이 기운을 차린 것에 대해서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행렬을 따라 슬슬 걷다보니, 커다란 맥주통을 앞에 세워두고 손님몰이에 한창인 노점상들이 곳곳에 보였다. 피크닉 테이블을 앞에 놓고 맥주통에서 바로 맥주를 따라 불에 구운 기다란 소시지 한 접시와 같이 대접해주는 그런 가게가, 이 축제의 거리에는 정말 많았다.


“우와. 온통 맥주에요.” 실비아가 말했다.


“내가 말 했잖아요. 이쪽 땅은 석회질이 많아서······.” 펠릭스가 말했다.


“어휴, 펠릭스. 강의는 그만두고 구경이나 해요. 동쪽 축제는 너무 고상한척, 우아한 척을 하잖아요? 저 사람들좀 봐요. 방금까지 농사짓다 온 사람도 있네요! 옷에 땀이 절었는데도, 아무도 신경 안쓰고 같이 껄껄 웃으며 넘어가잖아요. 정말 보기좋은걸요. 저는 무슨 축제 가고싶다 그러면 정오부터 하녀 다섯이 달라붙어 화장을 해 주고, 옷을 입혀주고······어휴. 생각만해도 피곤해요.”


실비아는 조잘조잘 말하기 시작했다.


“축제가 꽤 즐거운가봐.” 올리버가 펠릭스를 힐끗 보며 말했다.


“내 참. 무슨, 죽음의 약을 만들어 달라더만. 저렇게 즐거워 해서야.”


그저 신난 실비아를 보고 펠릭스도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의 말에 악의는 없었으며, 마찬가지로 실비아의 말에도 거짓은 없었다. 죽음의 약을 마음먹었다고 해서, 축제를 즐기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니니까.




기왕 온 김에 제대로 축제를 즐기기 위해 그들은 어느 테이블에 앉아 맥주 한 잔과 음료 두 잔을 주문했다. 그러자 조그만 잔에 담긴 오렌지 주스 두 잔과, 커다란 맥주 한 잔, 그리고 구운 소세지와 감자가 담긴 접시 한 개가 테이블 위에 올라왔다.


“건배라도 할래?”


올리버가 아직 거품을 뿜어내고 있는 커다란 맥주잔을 집어들고 말했다.


“온 김에 해 봐요.”


실비아가 조그만 주스 잔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막 주스를 입에 가져다대던 펠릭스도 조금 못마땅한듯 잔을 들어올렸다. 세 개의 잔이 부딪혔고, 그 잔들은 각자 주인의 입을 향해 서서히 움직였다.


“그거 아나?”


시원하게 맥주를 한 모금 마신 올리버가 말했다. 그의 입가에 거품이 묻어, 꼭 콧수염같은 모양이 되었다. 실비아는 그 모습을 보고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뭐가요?”


“건배는, 원래 거친 북쪽에서 내려온 전통이라는거.” 올리버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거긴 모략과 암살이 판을 치는 곳이었대. 두 사람이 같이 술을 마시면, 내 앞에 앉은 사람이 내 잔에 몰래 독을 탄 건 아닐까 걱정해야 할 정도로.”


“그래서요, 그래서요?”


실비아가 보채듯이 말했다. 그녀는 술은 한 방울도 안 마셨으면서, 벌써 그 분위기에 아주 흠뻑 취해버린 것처럼, 얼굴은 조금 붉게 상기되었고 표정에는 긴장이 풀려 있었다.


“그래서, 술을 가득 채운 잔을 상대방의 잔에 대고 덥썩 부딪히는 거야. 내 잔의 술이, 상대방의 잔으로 넘쳐 흘러들어가도록.” 올리버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만약 내 잔에 독을 탔다면, 그도 같이 중독되도록.”


“세상에. 똑똑하네요!”


실비아가 신기하다는듯 말했다. 물론,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펠릭스는 전혀 그녀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당장에, 펠릭스는 독의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서로다른 세 가지의 방법이 떠올랐지만, 그는 굳이 올리버의 이야기에 초를 치지는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래. 그리고, 그 방법으로 암살자를 잡아낸 무슨 유명한 왕이 있었다더라고. 그래서, 그 뒤로 잔과 잔을 힘껏 부딪히는 풍습이 생겼고, 그 풍습이 점점 아래로 내려온 거래. 어때, 재밌지 않아?”


말을 마친 올리버는 다시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러게요! 신기하네요. 올리버. 당신은 어디서 그런 이야기를 알아내는 거예요?”


“아, 뭐. 음······.”


“보나마나 왕국에서 간행하는 소식지나 아니면 술집에서 주워들었겠죠.”


펠릭스가 끼어들어 한 마디 했다.


“뭐, 그렇기는 하지.”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이며 슬쩍 실비아의 눈치를 보았다. 그러나, 지금의 그녀에게 그 재미난 이야기의 출처가 어떻고 하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듯 보였다.




“그나저나, 펠릭스.”


주스 잔을 한 반쯤 비웠을 때, 자른 소시지 한 조각을 집어들며 실비아가 말했다.


“왜요?”


“축제는, 결국 먹고 마시는게 전부네요.”


실비아는 소시지 조각을 오물거리며 근처를 둘러보았다.


“달리 할게 있겠어요? 다들 농사짓고 수확하느라 바쁜데, 놀 새도 없죠. 수확이 끝나면 밭을 갈고, 농기구를 손질하고, 내년에 쓸 종자를 골라내고······그야말로, 눈코 뜰새 없죠.”


“그 사람들은, 사는게 별로 재미가 없겠어요.” 실비아가 말했다.


“재밌으려고 사는건 아니니까.” 옆에서 올리버가 끼어들어 말했다. “그리고, 저 사람들도 그들 나름의 삶의 재미는 있겠지. 우리가 모를 뿐일 테고.”


“올리버.” 실비아가 올리버를 돌아보았다. “그럼, 사람은 왜 사는 건데요?”


“응?”


올리버는 뜻밖의 철학적인 질문에 당황했다.


“그러면, 왜 사는 건데요? 재미도 없이, 평생 똑같은거나 반복하면, 그게 짐승이나 태엽인형하고 다를게 뭐가 있어요?”


실비아가, 조금 눈에 힘이 풀린채 말했다.


“아이쿠, 이 아가씨가. 분위기에 취했나? 실비아. 진정해요.”


펠릭스가 난처한 얼굴로 허둥대는 올리버 대신 대답했다.


“펠릭스.” 그러자 실비아는 대신 이번에는 펠릭스 쪽을 돌아보고 물었다. “그렇잖아요? 그럼, 사람들은 왜 사는 거죠? 당신은 어떤 이유로 살고 있어요?”


“내 참. 올리버. 취했나본데요? 아니,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


펠릭스는 아주 당황스럽고 난처하다는듯 중얼거렸다.


“실비아. 혹시 술 마셨어?”


올리버는 실비아의 잔을 들고 냄새를 킁킁 맡았다가, 당황하며 펠릭스의 잔도 들어 냄새를 맡아 보았다.


“왜그래요?”


“아니, 술 섞인거였어, 이거!” 올리버가 당황하여 말했다.


“펠릭스. 대답 안 해 줄 거예요?” 눈에 힘이 풀린 실비아가 말했다.


“무슨 이유로 살아가냐고요? 그게 궁금한가요? 실비아. 내가, 무슨 이유로 살아가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어요?”


펠릭스가 말하자, 실비아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보나마나 시원찮은 이유겠죠? 사람들을 놀려주려고. 비웃어주려고. 자기 잘난 척을 하려고. 펠릭스. 참 부럽네요. 당신은, 살면서 거리끼는 것도 없고, 걱정거리도 없고, 아쉬운 것도 없고. 하고싶은대로 다 하잖아요? 부러워요. 당신이, 부러워요.”


실비아의 발음도 서서히 뭉개지기 시작했고, 그에따라 올리버의 얼굴 위에는 난처한 기색이 드리웠다.


“뭐, 좋아요. 가르쳐 드리죠, 실비아. 내가 살아가는 이유. 자, 한 번만 말 할 거예요. 귀 똑바로 열고, 눈 크게 뜨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잘 들어요, 실비아.”


그리고 펠릭스는 실비아의 장단에 맞춰주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최고의 죽음의 약을 만들기 위해서 살아가고 있는 거예요, 실비아.”




펠릭스가 한 말을 실비아가 들었을지 어땠을지는 알 수 없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실비아는 펠릭스가 비밀스러운 말을 속삭여 줄 때는 이미 비몽사몽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곧 그녀는 힘없이 테이블 위에 축 쳐져버렸고, 그에 따라 펠릭스와 올리버의 축제 구경도 거기서 끝이 났다.




무슨 짐짝 싣듯, 올리버는 실비아를 번쩍 들어 어깨에 둘러맸다. 펠릭스는 혹여나 주머니에서 뭔가 떨어지지 않는지 확인한 다음 올리버와 함께 여관으로 돌아갔다.




여관에 가까이 갈 수록 축제의 함성과 요란스러운 웃음소리, 정체불명의 악기들이 연주하는 알 수 없는 곡조들이 점점 멀어졌다. 그래서, 여관의 문 앞에 다다랐을 때는, 이 오르데움의 도시에서 축제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꿈처럼 느껴질 정도로, 모든 것이 희미해졌다.




“여긴 조용하군.” 여관 입구에 다가올 즈음 올리버가 말했다.


“그러게요. 아마, 저곳에서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이 정도를 알아서 그렇겠죠. 어딜 가나 꼭 난리법석을 떠는 사람이 있는데, 다행히 여긴 없네요.” 펠릭스가 말했다.


“그래서, 축제는 재밌었나, 펠릭스?”


올리버가 묻자 펠릭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실비아 좋으라고 한 일이니, 저 아가씨 깨어나면 다시 물어봐요.”


펠릭스는 올리버의 어깨에 실려있는 실비아를 가리켰다.


“뭐, 적당히 즐겼겠지.”


올리버는 실비아를 힐끗 돌아보았다. 벌써 새근새근 소리가 나는 것을 보면, 아마 푹 잠든 모양이었다.


“그래서, 올리버. 거기 계속 있으면 찬바람을 맞아서 실비아 감기 걸릴걸요. 그만 방으로 데려가죠.”


펠릭스는 조금 아쉽다는 눈으로 축제가 한창인 거리를 힐끗힐끗 보고있는 올리버에게 말했다.


“아직 맥주에 거품이 남아 있었는데.”


조금 아쉽다는듯 올리버가 말했다.


“나중에 실컷 마셔요. 원, 걱정도. 그만 가죠. 이 손 많이 가는 아가씨의 시중을 들어주러.”


“그래. 하여튼. 나는 이번 일이 끝나면, 두 번 다시 귀족과는 안 얽히겠어.”


올리버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하자, 펠릭스는 빙긋 웃으며 여관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실비아를 방에 뉘여주고, 방문을 제대로 잠근 다음 쪽지 하나를 남겨두고 나서야 펠릭스와 올리버는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방 안에 불을 끄고 침대 위에 가만히 앉아있던 펠릭스는 자신이 꾸었던 꿈의 의미를 해석하기 위해 잠시 눈쌀을 찌푸리고 앉아 있었다. 그는 꿈을 꾸는 일이 적었기에, 그 작업은 쉽지 않았다.




펠릭스는 금새 포기하고 침대에 드러누워 잠을 청했다. 언제나처럼, 그는 아무런 걱정도 의심도 위협도 불안도 없이 금새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다시 그 꿈이 떠올랐다. 피어올라가는 향의 연기처럼 모든것이 일렁거리는 이상하고 뒤죽박죽인 세상에서, 그의 스승이 서서히 솟아났다.


“펠릭스.” 스승이 엄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펠릭스. 그래서는 안 된다. 너는 연금술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하. 또 이 꿈이군. 오늘은 뭐지? 약 부작용인가?”


펠릭스는 의도적으로 스승을 무시하며 짜증스레 혼잣말을 했다.


“다음 번에는 농도를 줄여야 하나? 하지만, 그러면 약효가 도는데까지 시간이 걸리는 데다가, 어쩌면 가려움증이 사라지지 않을지도 몰라.”


“펠릭스. 약재를 얻겠답시고, 늑대의 아가리로 다리를 집어넣는 사람이 어디있나?” 펠릭스가 하는 말을 무시하며 스승의 환영이 말했다. “그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네게는, 인간의 마음이 없다!”


“닥쳐요, 스승님. 당신은, 그딴 헛된 꿈에 빠져있는 주제에 그 재료를 구하러 갈 용기도 없었으면서. 오죽 급했으면, 그딴 동화같은 이야기에 빠져버린겁니까? 네? 어디, 대답이라도 해 보시지요 스승님.”


펠릭스는 그의 스승의 환영을 향해 아주 신랄하게 내뱉었다.


"한 때나마, 연금술사들의 숲 속에서 걸어다니는 사전이니, 살아있는 지식의 보고니, 움직이는 대도서관이니 따위의 말을 듣던 당신이 그런 허황된 약을 찾다니. 그것 참, 웃기는······.”


갑자기, 펠릭스의 얼굴이 굳으며 그는 말을 멈추었다. 그의 스승도 그에게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아니, 펠릭스의 연기처럼 일렁이던 꿈 전체가 일순간에 멈췄다.




“뭔가 이상하군.”


멈춰버린 꿈 속에서 펠릭스는 초조하게 걷기 시작했다.


“이상해. 이상한 일이야. 어째서, 스승님은 그런 꿈같은 약을 말한거지?”


펠릭스가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붉은 가루 약의 치료제에 대해 한창 토론을 하고 있는 연금술사들이 있었다. 누군가는 분노하고, 누군가는 절망하며, 누군가는 어쩔줄 몰라 하고 있었다.


“이상해. 스승님. 지금 당신이 보이는 반응이, 내 눈에만 이상해 보이는건가?”


그리고 펠릭스는 그 정지한 기억의 단면을 천천히 걸어가며 무표정하게 가만히 서 있는 스승을 보았다.


“왜 당신은 당황하지도 않고, 분노하지도 않고, 슬퍼하지도 않고, 그렇게 가만히 있는거지?”


펠릭스가 중얼거리자 모래바람 같은 것이 일며 기억의 단면이 산산히 부서졌다.


“스승님. 당신은 똑똑한 사람이야. 창조하는 힘은 없어도, 기억하고 실천하는 능력은 누구 못지 않게 뛰어난 사람이야. 그런 당신이, 어째서, 다른 모든 치료의 가능성을 닫아두고 곧바로 그런 꿈과 같은 약의 이야기를 꺼낸 것이지?”


펠릭스가 말하자, 그의 대스승과 스승, 원로 연금술사들이 모인 둥근 회의 테이블이 떠올랐다.


“대스승님.”


펠릭스는 기억 속의 대스승 앞으로 가, 그에게 살짝 허리를 숙였다.


“왜, 당신은, 우리들 중 가장 뛰어난 당신은, 아무런 약도 만들지 않은 겁니까?”


그리고 펠릭스는 허리를 들며 조금 반항적으로 말했다.


“이상해. 이상한일 투성이야. 그리고 가장 이상한건, 그 때의 기억이 부족하다는거야!”


펠릭스가 고함을 치자 찰나의 순간동안, 무수히 많은 기억의 조각들의 그의 눈앞에서 소용돌이치며 사라졌다.




두 눈을 번쩍 뜬 펠릭스는 침대 위에 누워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는 잠시 숨을 고르며 근처를 둘러보다가, 헛웃음을 지으며 주먹을 꽉 쥐었다.


“그래, 대강 알겠어. 누군가, 망각의 약을 먹였군. 내게, 아니, 우리들 모두에게. 그리고 그런 짓을 벌일 수 있는 사람이라면······.”


펠릭스는 창 밖에 떠오른 보름달을 힐끗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대스승님. 대체, 무슨 꿍꿍이인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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