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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의 연금술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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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1.10.08 16:53
최근연재일 :
2022.01.13 18:00
연재수 :
17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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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53
추천수 :
188
글자수 :
1,774,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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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13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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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쪽

73화

DUMMY

동굴 안으로 몇 발자국 걸어들어갔을 뿐인데도, 바깥 세상에서 새어 들어오던 빛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두 눈 앞이 암흑천지가 되어버렸다.


“펠릭스?”


동굴 안을 걷던 실비아는 한 줌 빛도 없는 어둠 속으로 들어오자, 걸음을 멈추고 펠릭스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펠릭스. 어두운데, 조명이 될 만한게 있어요?”


불안한 눈으로 실비아가 말했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반향도 들려오지 않았다.


“펠릭스. 대답 좀 해 봐요. 네?”


긴장하여, 그리고 조금은 두려움에 휩싸여 실비아가 다시 말했다.


“펠릭스! 거기 있냐니까요!”


실비아가 다시 소리치자, 바로 옆에서 펠릭스의 짜증스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시끄러워. 제가 여기있지, 뭐 달리 어디로 사라지겠어요? 하늘로 솟겠어요? 땅 속으로 꺼지겠어요?”


펠릭스의 목소리가 들리자, 실비아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뭐, 땅 속으로 꺼지는건 가능할지도 모르겠군. 동굴중에, 그런 곳도 있으니까 말이야.”


그리고 전혀 농담으로 받아 칠 수 없는 말을 하는 올리버도, 그녀의 바로 근처에 있었다.


“아니, 갑자기 인기척도 안 내면 어떡해요. 놀랐잖아요.”


잠깐이었지만 크게 놀랐는지, 실비아는 눈가에서 눈물이 맺히는 것까지 느낄 정도였다.


“평소처럼 있었는데.” 올리버가 말했다.


“긴장해서 못 들었나보죠. 아니면 동굴 속에서 들려오는 저 소리 때문이던가.”


펠릭스가 그렇게 말을 하고 나서야, 실비아의 두 귀에 동굴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물방울이 똑 떨어지는 소리, 돌의 틈새에 바람이 이는 소리.


“아무튼, 그래서 펠릭스. 우리 불 안 켜요? 이 어둠 속을 맨몸으로 그냥 뚫고가요?” 실비아가 보채듯이 말했다.


“그럴리가요. 자, 됐다! 봐요.”


그러더니, 펠릭스의 손에서 연녹색의 조금 침침한 불빛이 반짝이더니, 곧 반딧불의 불빛처럼 빛나기 시작했다. 그는 그 빛의 공을 허리춤에 매달았다. 펠릭스의 허리춤에 매달린 공은, 태양처럼 밝지는 않았지만, 여느 횃불 정도의 밝기는 되었다.


“좋은데.” 올리버가 조용히 소감을 말했다. “횃불은, 자꾸 일렁여서 그림자 때문에 잘 안 보이거든. 사물의 윤곽도 흐릿하게 보이고.”


“어쨌든, 다행이네요.”


실비아도, 어둠 속을 밝혀줄 불빛이 있다는 데에 크게 안심하며 말했다.


“자, 당신들 몫도 만들었어요. 적당한 물건이 없어서 제 약병에 만든거긴 한데, 어둠 속에서 길을 잃거나 하면 찾아볼 정도는 되겠죠.”


그리고 펠릭스는 야광 병 두 개를 꺼내, 올리버와 실비아에게 각각 하나씩 건네주었다. 그 병은, 확실히 성냥보다 조금 밝은 정도로밖에 빛나지 않았지만, 이 캄캄한 어둠 속에서는 그나마도 다행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좋군. 그런데, 왜 횃불을 안 켜는거야, 펠릭스?” 올리버가 말했다. “횃불 쪽이 편하고, 값싸고, 그러면서 밝기도 적당하잖아.”


“기름 타는 냄새라든가, 불의 연기를 싫어해서 내 귀중한 재료들이 도망갈지도 모르니까요.” 펠릭스가 대답했다. “그리고, 그렇게 위험한 동굴도 아닐 테니까요. 뭐, 정 안되면 그때 다시 횃불 이야기를 해 보자고요.”


“그래. 뭐, 알았어. 이것도 이것나름 쓸만하긴 하니까. 그럼, 슬슬 출발하지.”


올리버가 말하자, 펠릭스는 고개를 끄덕이고 슬슬 안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펠릭스의 허리춤에 매달린 연녹색의 신비로운 불빛의 도움을 받아, 실비아는 마침내 그 동굴의 모습을 찬찬히 살펴볼 수 있었다. 천장에서 물이 한두 방울씩 똑 똑 떨어지고, 종유석과 석순이 곳곳에 자라난, 그런 석회 동굴이었다. 가끔씩 다리가 많은 벌레나 쥐 같은 것이 불빛과 인기척에 깜짝 놀라 도망갈 때면, 실비아도 흠칫흠칫 놀라곤 했다.


“축축해.”


펠릭스가, 조금 짜증난다는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횃불을 켜면, 덜 축축할지도 모르지만.”


올리버가 말했다.


“안 된다니까요.”


펠릭스가 다시 말했다.


“나도 알아. 그냥, 해 본 소리라고.”


“저기, 그런데. 펠릭스, 올리버. 길은 알고 가고있는건가요?”


그리고 실비아가, 줄곧 걱정되던 것을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쭉 가면 되겠죠. 산을 관통하는 동굴이라고 했으니까.”


펠릭스가 대수롭잖다는듯 말했다.


“그래. 그리고, 저 마을에서 이 동굴을 관광 상품으로 팔아먹네마네 하는 것을 보면, 아마 그렇게 복잡한 구조는 아닐 거야.”


그리고 올리버도 조금은 태연한 태도로 말했다.


“별 일 없었으면 좋겠네요.”


실비아가 말했다.


“저도, 진심으로 그러길 바랍니다. 동굴 속에서 뭔 일이라도 나면 아주, 아주 골치가 아프니까요.”




동굴에 들어서며, 실비아는 크게 두 가지가 걱정이 되었다. 하나는 당연히 어둠이고, 다른 하나는 안에서 길을 잃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하지만 펠릭스가 만든 그 오묘한 조명 덕분에 어둠의 문제는 해결이 되었고, 남은 문제는 길 뿐이었다.


“이것 봐.” 바닥에서 누가 쓰다 버리고 간 밧줄과 건조 식량의 흰 포장지를 집어들며 올리버가 말했다. “봐. 우리 말고도, 여길 지나가는 사람이 있다는 뜻이지.”


“그러게요.”


그리고 이런 식으로, 올리버는 가끔 먼저 이곳을 지나간 여행객들이 남긴 흔적을 일일이 포착하여, 실비아에게 말해주었다.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실비아는 이것이 올리버 나름의 배려라고 생각하여 그에게 고마운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한동안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그들은 동굴 안으로 점점 더 깊숙히 걸어들어갔다.


“그러고보니까요. 이 동굴, 이름이 뭐랬죠?”


실비아가, 긴장을 떨쳐내려는듯 말을 꺼냈다.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이 조용한 동굴 속에서는 그 정도의 목소리도 크게 들려 실비아는 잠시 깜짝 놀랐다.


“뭐, 심연의 아가리나 그 비슷한 이름이겠죠.” 펠릭스가 말했다. “사람들 상상력이란 다 거기서 거기니까요. 무슨 악아믜 입이니, 아가리니, 좀 더 현실적인 사람은 틈새라고 부르고, 낭만이 없는 사람은 그냥 동굴이라고 부르겠죠.”


“나도 이름은 모르겠는걸.” 올리버도 말했다.


“음. 그러면, 나중에 어디 가서 자랑은 못 하겠네요. 이름도 모르는 동굴에 다녀왔다고 말 하기는 그러니까요.”


긴장을 풀기 위한 실비아의 농담은, 그러나 그 누구의 반향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그래서 실비아는 이곳에 들어온 뒤로, 처음으로 동굴의 어둠이 고마웠다. 부끄러움으로 붉어진 얼굴을 숨길 수 있었으니까.


“똑.”


물방울 한 방울이, 실비아의 정수리에 똑 떨어졌다. 마치, 동굴이 나는 네가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고 알려주기라도 하듯. 실비아는 물방울이 떨어진 곳으로 고개를 들어올려 보았고, 그리고 그 곳에서, 밤하늘의 은하수가 보였다.


“펠릭스, 저거, 저거요!”


실비아는 재빨리 펠릭스를 붙잡고 동굴 천장을 가리켰다.


“저것 봐요! 여기, 꼭 별처럼······.”


“오, 이건 꽤 볼거리네요.”


펠릭스도 별이 반짝이듯 반짝반짝 빛나는 동굴의 천장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런데, 실비아. 저 빛의 정체가 뭔지 아나요?”


갑자기 음흉하게 웃으며 펠릭스가 실비아에게 물었다.


“저야 당연히 모르죠. 무슨, 금속 광맥 아닐까요?”


실비아가 조심스럽게 대답하자, 펠릭스는 허리춤의 등불을 집어들고 천장을 향해 손을 쭉 뻗었다. 그리고 그 등불의 빛을 받아, 수없이 많은 벌레들이 천장에서 바글거렸다.


“꺄악!” 깜짝 놀란 실비아는, 재빨리 바닥에 웅크리며 두 손으로 머리를 보호하듯 감쌌다. “저게, 저게 다 뭐에요?”


“야광 벌레요. 거미처럼 실을 뽑아 천장에 집을 짓고 사는 놈들이죠. 저 벌레들이 뿜어내는 끈끈한 액이, 꼭 반딧불 꽁무니처럼 반짝반짝 빛이 나서 벌레들을 유혹하거든요. 어때요? 신기하죠?”


“신기는 무슨, 제 머리위로 떨어지는거 아니에요? 아니죠? 제발, 아니라고 해 줘요!”


“걱정은. 안 떨어져요. 쟤들이 저기서 안 떨어지려고 얼마나 집을 튼튼하게 짓는데.”


그 말을 듣고서야 실비아는 조심조심 자리에서 일어나, 빨리 가자는 뜻으로 펠릭스의 등을 말없이 쿡쿡 밀었다.


“아야, 아야. 밀지 마요. 내 참. 사람 해치는 벌레도 아닌데······.”


“쓸데없는 소리 말고, 빨리 가요. 가기나 해요 펠릭스!”


실비아는 다시금 밤하늘의 별빛처럼 신비롭고 아름답게 반짝이는 천장을 바라보았지만, 그 빛의 정체를 알아버린 뒤로, 동굴의 천장은 아까처럼 아름답게 보이지만은 않았다.




석회석 동굴 안을 걸어가는 것은, 사실 그렇게 즐거운 여행은 아니었다. 축축한 공기에, 시도때도 없이 떨어지는 물방울들. 머리나 피부 위에 물방울이 떨어지면 괜히 간지러운 느낌이 드는것 같기도 했다.


“얼마쯤 왔을까요?”


물방울을 똑 똑 떨어뜨리고 있는 기다란 종유석을 구경하며 실비아가 말했다.


“아직 반도 못 갔겠죠.” 펠릭스가 말했다.


“반은 무슨. 들어온지 얼마나 됐다고.”


올리버도 말했다. 그러자 실비아는 회중시계를 꺼내 살펴보았고, 곧 작게 한숨을 쉬었다.


“벌써 질렸나요?” 펠릭스가 말했다.


“솔직히, 별로 오래 있고싶은 곳은 아니에요.”


실비아가 시무룩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긴. 그러고보니, 실비아. 전에도 한번 가벼운 발작을 일으킨 적이 있었잖아? 이런 어둡고 좁은 공간에 오래 있기 싫을 만도 하지.” 올리버가 말했다.


“아, 그랬던가. 실비아. 혹시나 몸 이상하면 바로 말 해요. 그럴 때 쓰는 약은 아직 갖고 있으니까.”


“아, 네. 고마워요 펠릭스.”


실비아는 잠깐이었지만, 펠릭스가 듬직하게 느껴졌다.


“고맙기는요. 당신이 여기서 기절하기라도 하면 우리가 곤란하니 당연히 도와야죠.”


그리고 그 듬직한 기분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동굴 안을 걸어가던 펠릭스는, 갑자기 일행들을 멈춰 세우고 쉿 하는 소리를 냈다. 그는 조심스럽게 등불을 들어올려 몇 미터 앞의 동굴 천장을 비추었다. 거기에는 꽤 큰 공동이 있었는데, 천장에는 잠을 자던 박쥐들이 잔뜩 붙어 있었으며, 그 아래에는 구아노의 산과 그 산 위를 기어다니던 조그만 쥐, 벌레들이 등불의 빛을 피해 달아나고 있었다.


“박쥐 둥지로군.” 올리버가 말했다.


“직접 보는건, 처음이에요.”


실비아가 조금은 신기하다는 눈으로, 그리고 조금은 역겹다는 눈으로 그곳을 보며 말했다.


“그렇겠죠. 한창 꿈나라에 가 있을 박쥐들을 방해하고 싶지도 않고, 재수없게 박쥐 똥을 머리에 맞기도 싫으니까, 피해갈 수 있으면 피해가고 싶은데.”


펠릭스는 등불을 이리저리 비추며 다른 길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머지 않아 괜찮아 보이는 통로를 찾았다.


“저쪽으로 가죠.” 펠릭스가 말했다. “아마, 길을 조금 잘못 들었나봐요. 아까 웅덩이를 건너오지 말고 돌아갔어야 하나?”


“펠릭스. 잘 좀 봐요. 나는, 지금 당신밖에 믿을 구석이 없단 말이에요.” 실비아가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있잖아.” 올리버가 말했다.


“올리버. 당신은, 등불 없잖아요.”


“횃불이라면 있는데.”


“그래요. 그럼 올리버 당신도 믿어볼게요. 아무튼, 펠릭스. 잘 좀 찾아가 봐요.”


“내 참. 업혀가는 주제에 말은 많아서.”


펠릭스가 투덜거리자, 실비아가 그에게 짜증을 냈다.


“당신이, 처음에, 저보고 같이 약 재료 구하러 떠나자고 했잖아요. 그래서 도와주겠다고 따라온건데, 당신이야말로 말 많은거 아닌가요? 제가 뭐만 하면 ‘하여튼 이래서 귀족들이란······.’ 따위의 말이나 하고.”


“미안하게 됐군요.”


펠릭스는 그렇게 말을 하고서는, 어느새 웅덩이를 건너기 시작하고 있었다.




다시 다른 길로 들어가 펠릭스의 뒤를 따라 계속 걷던 실비아는, 어느 순간 마음 한 켠에서 불안감이 스물스물 올라왔다. 그건 이 동굴에 대한 불안감은 아니었다. 동굴 안에서 길을 잃지 않을까 라든가, 안에서 무시무시한 괴물을 만나지는 않을까 따위의 것이 아니라, 좀 더 근본적이고 원초적인 불안감이었다.


불안감이 실비아의 정신을 점점 잠식해갔다. 내가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 이게 바른 길인가? 내가 제대로 된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일까? 실비아는 자신이 처음에 그 약을 원하게 된 계기를 떠올려 보려고 했지만, 아무것도 머릿속에서 떠오르지 않았다. 떠올려야 하는데. 그럴리가 없는데. 내가, 이유 없이 이런 약을 찾아 모험을 떠났을 리가 없는데. 그녀의 숨이 가빠졌고, 그녀의 손끝이 차가워지며 감각이 흐려졌다. 입술이 새파랗게 질려가고, 발에 피가 통하지 않는 것처럼 발도 차가워졌다. 심장이 뛰는 것이 스스로 느껴지지 않았으며, 숨을 아무리 크게 들이쉬어도 질식할 것처럼 숨이 쉬어지질 않아 그녀의 호흡이 점점 더 가빠져갔다-


“펠릭스! 약!”


심장이 멈춰버린듯한 통증을 느끼며, 의식이 희미해져 가던 와중 실비아는 올리버의 목소리를 들었고, 곧 그녀의 눈앞에 펠릭스와 올리버의 얼굴이 나타났다 사라지더니, 그녀의 입에 무언가가 불쑥 물려졌다. 병에서 흘러나온 약에서는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았고, 다만 벌꿀처럼 조금 끈끈한 느낌이 들 뿐이었다.


“실비아. 내 말 들려요? 이거 보여요? 이거 몇 개죠?”


펠릭스가 실비아의 눈앞에서 꼭 날파리처럼 정신사납게 손가락을 움직이며 물었다.


“펠릭스. 입에 물린 약병을 치워야 뭐 대답을 하든 말든 하겠지.”


올리버가 말하자, 그제서야 펠릭스는 약병을 실비아의 입에서 빼 냈다.


“실비아. 내 말 들려요?”


“들려요.”


목이 막혀 말이 잘 나오지 않는 것을, 억지로 쥐어짜다시피 하여 실비아가 대답했다.


“이거 몇 개죠?” 펠릭스가 손가락 세 개를 들어보이며 말했다.


“세 개요.”


“네 갠데. 올리버. 상태가 안 좋은가본데요.”


펠릭스가 올리버를 돌아보자, 올리버가 어이없다는듯 대답했다.


“세 개 맞잖아.”


그러자 펠릭스는 자기 손을 돌아보고, 세 개 들어올린 손가락을 이상하다는 눈으로 다시 보았다.


“어, 그렇네. 이런. 내가 착각했구나. 아무튼, 실비아. 괜찮아요? 멀쩡해 졌나요? 걸을 수 있겠어요?”


“하나씩 물어, 펠릭스. 원, 호들갑은.”


그렇게 말하는 올리버도, 딱히 침착해 보이지는 않았다. 안절부절 못하며 계속 시선을 이리저리 옮기면서, 두 손을 가만히 놔 두질 못하고 뭘 만졌다가 주머니에 넣었다 뺐다가 이리저리 옮겼다가를 반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잠시만 쉬어가요. 이제 아프지도 않고, 숨은 쉬어 지는데, 손발이 차가워요.”


“주물러요.” 퍽 안심된다는 목소리로, 펠릭스가 말했다.


“싫어요. 여기서는 좀 부끄러운걸. 조금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질 거에요.”


실비아는 일어서려 하다가,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잠시 휘청였다. 그녀가 휘청거리자 올리버와 펠릭스가 동시에 그녀를 부축해주려 팔을 뻗었다.


“내 참.”


두 사람의 부축을 받아 일어난 실비아는 어이없다는듯,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왜요?”


실비아는 펠릭스의 얼빵한 얼굴을 보고, 다시 헛웃음이 났다.


“왜 자꾸 웃냐니까요?”


펠릭스가 다시 물었다.


“남자 두 명 한테 동시에 에스코트를 받다니. 꽤 호화롭네요. 무도회에서도 이런 적은 없었는데.” 실비아가 웃으며 말했다.


“내 참. 무도회 가 본 적이나 있어요? 나랑 나이차이도 안 나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러자 펠릭스가 놀리듯이 말했다.


“가 봤거든요? 그리고, 나이 이야기가 왜 나와요? 숙녀한테 나이를 묻는 것은 조금 실례라구요.”


“다 자라지도 못한 어린애가 무도회에 가진 않을테니까 그렇죠. 내 나이랑 당신 나이가 비슷하다고 치면, 나이 제한에 걸려서 못 가는 무도회도 있을거라고요. 그리고, 나이 묻지 말라는것도 어느정도 나이가 찬 부인들 이야기지, 당신한테는 해당사항 없잖아요.” 펠릭스가 말했다.


“어쨌든, 전 무도회 가 봤어요. 그리고, 거기서도 이렇게 남자 둘한테 동시에 호위받는 사람은 거의 없고요.”


“몇 번이나 가 봤는데요?” 펠릭스가 묻자, 실비아가 조용해졌다.


“···한번요.”


“내 참. 올리버. 당신이 실비아보다 무도회에 대해서는 더 잘 알겠네요. 안 그런가요?”


“나는, 아무 말도 안 하련다.”


어느덧 기운을 차린 실비아가 펠릭스와 투닥거리는 꼴을 보고, 올리버는 그제서야 안심했다는듯 웃으며 말했다.




실비아가 기운을 잃은 김에, 그들은 잠시 쉬어갈 곳을 찾기로 했다. 축축한 석회동굴 안에 쉬어갈 곳이 마땅찮은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어떻게 잘 찾아보면 마른 땅 정도는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아하. 저기가 좀 괜찮아 보이는데.”


올리버가 동굴 저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나 펠릭스는 전혀 딴데를 쳐다보고 있었다.


“제가 보기에는, 저쪽이 나아보이는데요.”


펠릭스가 가리킨 손가락 끄트머리에서는, 동굴 안의 어둠과 어울리지 않게 새하얀 빛이 비치는 공간이 있었다.


“뚫린 곳이 있었군. 좋아, 저쪽으로 가자고. 볕이 드니 벌레도 없을 테고, 그리고 바닥도 마른 바닥이겠지.”


“그러길 바라요, 올리버.”




중간에 조그마한 강이라고 해야할지, 웅덩이라고 해야할지, 발목깊이 정도 되는 물을 첨벙거리며 지나가야 한다는 것만 빼면, 그곳은 쉬어가기 좋은 땅이었다. 햇볕 덕분에 땅이 건조했고, 그리고 뚫린 구멍으로 식물의 씨앗이나 흙이 새어들어와 조그마한 풀밭을 만들고 있었다.


“이런것도, 꽤 정취가 있죠?” 펠릭스가 배낭을 풀며 말했다.


“그러게요. 그나저나, 발이 젖어버렸어요.”


실비아가 신발을 벗으려다, 펠릭스와 올리버의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저쪽으로 갔다.


“목이 긴 장화를 신든가 해야지 원. 챙겨둔거 없어?” 올리버가 말했다.


“있어요. 한 켤레.”


“다행이군. 펠릭스, 넌 어때?”


“아, 저는 얕은데로 알아서 잘 피했거든요.” 펠릭스가 말했다.


“혼자만 알지말고, 좀 가르쳐주지 그랬냐 펠릭스.”


“올리버. 언제까지 남이 떠먹여 주기만 바라면 안 돼죠. 안 그래요, 실비아?”


신발을 벗어 젖은 발을 닦고 있던 실비아는, 갑자기 자기 이름이 불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네? 뭐라 그랬어요?”


“봐요. 별 생각 없어 보이잖아요.”


“뭐에요. 또 내 뒷담이라도 하던건가요?” 실비아가 말했다.


“별 이야기 안 했으니 신경꺼요. 장화로 갈아신기 전에 젖은 양말은 바로 갈아신고, 아무튼 최대한 건조하게 만들고요.”


“그 정도는 알거든요!”


“귀족치고는, 제법이군요.”




신발을 갈아신고 실비아가 돌아오자, 조그맣게 뚫린 천장의 구멍을 통해 새어나오는 빛을 구경하며 페미컨 한 블록씩을 꺼내 말없이 씹기 시작했다.


“딱딱해요.” 열심히 입을 오물거리며, 실비아가 말했다.


“내 입에는 무른걸.” 크게 한입 베어물며 올리버가 말했다.


“올리버. 당신은 턱힘이 좋은가보죠.”


그런대로 평범하게 입을 우물거리며 펠릭스가 말했다.


“내 턱힘은 보통이야. 이 페미컨은, 장기 저장용으로 만든게 아닌가봐. 생각보다 촉촉한 편이야.”


“제 입에는, 마른 사막의 모래처럼 느껴지는데요?” 실비아가 말했다.


“실비아. 진짜 사막에서 마른 모래를 보면, 아마 농담으로라도 그렇게 말 못 할거다.”


어딘가 애처로워보이는 얼굴을 하고서는 올리버가 그렇게 말하여, 실비아는 차마 대꾸를 할 수가 없었다.


“아무튼. 펠릭스. 우리 얼마나 안으로 들어왔을까요?”


“자꾸 보채지 말아요 실비아. 적당히 들어왔겠죠.” 펠릭스가 대답했다.


“너무 오래 여기 머물고 싶지는 않아서요.” 실비아가 말했다.


“뭐, 길어봤자 하루겠죠. 금방 빠져나갈 방법이 있을 거예요. 안 그런가요, 올리버?”


“모르지. 동굴은 터널이 아니니까. 직선으로 길이 쭉 뻗었을지, 구불구불 복잡하게 겨우 이어져 있을지는, 나도 모르지.”


“원. 아무튼, 슬슬 먹을만큼 먹었으니 가 볼까요? 실비아도 자꾸 재촉하고 있으니까.”


“그래요. 슬슬 일어서자고요.”


펠릭스와 올리버가 자리에서 주섬주섬 일어서며 베낭을 매는 동안에, 실비아는 천장의 틈새로 새어드는 태양빛을 그리운 눈으로 잠시 구경했다.


“안 가요?”


“가요!”


그리고 펠릭스가 재촉할 때가 되어서야, 그녀는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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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67화 21.11.10 21 1 20쪽
66 66화 21.11.09 25 1 23쪽
65 65화 21.11.09 24 1 20쪽
64 64화 21.11.08 24 1 22쪽
63 63화 21.11.08 23 1 24쪽
62 62화 21.11.07 22 1 28쪽
61 61화 21.11.07 27 1 21쪽
60 60화 21.11.06 22 1 26쪽
59 59화 21.11.06 24 1 20쪽
58 58화 21.11.05 24 1 22쪽
57 57화 21.11.05 23 1 24쪽
56 56화 21.11.04 25 1 25쪽
55 55화 21.11.04 19 1 24쪽
54 54화 21.11.03 28 1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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