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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의 연금술 가게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1.10.08 16:53
최근연재일 :
2022.01.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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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1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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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쪽

77화

DUMMY

펠릭스의 연금술 가판대 근처를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이제 제법 불어나 있었다. 계속해서 오색찬란한 구름을 뿜어내는 그 신비한 가마솥과, 누구나 한번쯤은 겪어봤을 법한 사연을 늘어놓고 신기하게 생긴 약병을 받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별 생각없이 거리를 지나가던 사람도 한번쯤은 발걸음을 돌려보기 마련이었다.


“펠릭스. 이대로, 괜찮은걸까요?”


실비아는 어느새 가판대 앞에서 무질서하게 웅성거리기 시작한 사람들의 덩어리를 힐끗 보며 말했다.


“아주 잘 돼 가고 있어요.” 펠릭스는 내용물을 비운 솥을 씻어내며 말했다.


“뭘 하려고요?” 실비아가 물었다. “저 사람들, 엄청 기대하는 눈치인데.”


“진짜 연금술을 한번 보여주도록 하죠.” 펠릭스가 손을 멈추고 실비아를 돌아보며 조용히 말했다.


“진짜 연금술이요? 그러니까, 금으로 만드는 그거 말이에요?”


“쉿!” 펠릭스는 재빨리 손님들을 한바퀴 휙 돌아봤다. “실비아. 당신은 돈바구니만 가만히 보고있어요. 누구든지 거기에 손 뻗는 사람이 있으면 바로 붙잡아요. 알았죠?”


“알았어요. 하지만, 펠릭스. 그 사람을 붙잡는다고 해서, 당신 주머니를 훔친 도둑을 잡을 수나 있겠어요?” 실비아가 말했다.


“잡아 보면 알 일이죠. 아무튼, 한눈팔지 말아요! 두 번 다시 없을 기회니까.”




깨끗하게 씻고 마른 행주로 물기를 닦아낸 솥을 걸고, 펠릭스는 몰려든 손님들을 향해 이렇게 선언했다.


“자, 누구 약이 필요하신 분 있습니까?”


“저요!” 그러자 손님들의 무리 중간 즈음에 서 있던 노인이 손을 번쩍 들어올리며 말했다.


“아하, 있군요. 좋아요. 이쪽으로 걸어나와 보세요. 어떤 약을 원하시는지?”


노인은 비척거리며 사람들의 물결을 파헤치고 솥 앞으로 걸어나와 말했다.


“황금의 약을 원해.”


노인이 말하자, 사람들의 얼굴 위로 한순간 경악의 빛이 스쳐지나갔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말을 들었기에.


“아주 좋습니다. 하지만, 눈 크게 뜨고 잘 보셔야 할 겁니다. 굉장히 순식간에 벌어지는 일이니까요.” 그리고 펠릭스는 손님들의 낯빛을 재빨리 살피며 말했다. “이번에 놓치면, 평생 두번 다시 못 볼 테니까요. 그래서, 노익장. 값은 얼마나 지불할 수 있으신지?


노인은 반짝이는 금화 한닢을 꺼내, 돈 바구니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다시, 사람들의 얼굴 위에 경악의 빛이 스쳐지나갔다.


“좋습니다. 그럼, 보여드리도록 하죠. 제 황금의 연금술을.”


그리고 펠릭스는 실비아에게 눈짓을 보냈다. 실비아는, 꼭 보고 싶었지만, 애써 호기심을 참으며 돈바구니에 시선을 고정했다.




펠릭스는 솥 안에다 마법을 부리기 시작했다. 아니, 그것은 마법이 아니라 연금술이었다. 그는 이름모를 약재나, 또는 흔해빠진 약재를 솥 안에다 풍덩 빠뜨리고 나무 국자로 솥을 저었다. 금속, 쇠붙이, 돌, 다리가 많은 지네와 살아있는 두꺼비. 징그러운 재료가 솥 안으로 빠져들어갈 때마다 사람들은 가볍게 비명을 지르거나, 가볍게 구역질을 했지만, 아무도 솥에서 눈을 떼지는 못했다.




펠릭스가 재료를 조금 바꾸어, 반짝이는 모래알, 수정의 조각, 정체불명의 결정체를 솥 안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그러자 솥에서 펑펑 소리가 나며 연기의 덩어리를 뭉게뭉게 뱉어내기 시작했다. 구름에 사람들의 모습이 조금 가렸고, 실비아는 바로 지금이야말로 그 도둑이 바구니의 손을 훔쳐가기 적당한 때라는 것을 직감했다. 아니나다를까, 구름 속에서 손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고, 실비아는 재빨리 그 손을 붙잡았다.




구름 속에서 가벼운 씨름이 일었다. 실비아는 힘껏 그 손을 붙잡고 펠릭스의 이름을 외쳤다. 그러나, 그 손의 주인이 완강하게 뿌리친 탓에 실비아는 그것을 그만 놓쳐버렸고, 구름이 걷혔을 때는 이미 그 손은 사라진 뒤였다.


“자, 그럼. 어디 쇠붙이를 여기다가 풍덩 빠뜨려보고 싶으신 분?”


펠릭스는 실비아와 다시 시선을 교환하며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척 말했다. 그가 고용했을 것이 분명한 바람잡이 몇 명이 솥 안에다가 낡은 농기구, 길에서 주운 쇠붙이 따위를 솥에 풍덩 빠뜨렸더니, 펠릭스는 금빛찬란 모습으로 바뀐 물건들을 솥 안에서 건져냈다.




“자, 여러분! 황금의 약이었습니다. 노익장, 부디, 이 약이 당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켜주길 바랍니다.”


그리고 펠릭스의 연극도 끝났고, 실비아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미안해요. 놓쳤어요.”


손님들이 좀 빠지고 난 뒤에야 실비아가 펠릭스에게 말했다.


“걱정말아요.” 펠릭스는 오히려 태연하게 다시 솥을 슥슥 닦기 시작했다.


“놓쳐버린걸요. 붙잡았는데, 힘이 모자랐어요.”


“힘 쓰는걸 잘하는 사람은 따로 있잖아요.” 펠릭스는 실비아를 향해 싱긋 웃고는 다시 솥을 닦기 시작했다.


“누구요? 올리버 말이에요? 올리버는 우물물 뜨러 간 것 아니었나요?”


펠릭스는 가판대 뒤쪽으로 눈짓을 했다. 실비아는 머뭇거리며 슬쩍 자리를 벗어나 가판대 뒤쪽으로 갔다.


가려진 천막 아래에, 올리버와 낯선 남자가 천막 천장에 걸어둔 등불의 불빛 아래 나란히 앉아 있었다. 다만, 그 낯선 남자는 의자에 몸이 꽁꽁 묶여있었으며 입에는 재갈까지 물려진 채였다.


“실비아. 장사 끝났어?” 올리버가 여유롭게 웃으며 실비아에게 말했다.


“저기, 올리버. 이 사람은······?”


“네가 놓친 도둑놈. 내가 붙잡았지. 어때? 너도 한방 먹여줄래?”


올리버가 도둑을 힐끗 보며 말하자, 도둑은 재빨리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잠깐 사이에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실비아는 굳이 알고싶지 않았다.


“아무튼, 잡기는 잡았네요. 그런데, 그래서 이 사람이 펠릭스의 잃어버린 주머니를 찾는데 도움이 될까요?”


“도둑맞은거지, 정확하게는.” 올리버가 말을 정정했다. “뭐, 도움 안되면 경비대에 넘겨버리면 그만이니까. 뭐? 뭔가 할 말이 있나?”


입에 재갈이 물린 채 그가 뭐라고 읍읍거리는 소리를 내자 올리버는 그의 입에서 재갈을 슬쩍 벗겨냈다.


“난! 도둑 아니라니까!”


올리버는 다시 그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고 했다. 그러자 그는 거세게 저항하며 바로 말을 바꾸었다.


“아, 하지마! 미안, 미안! 다시는 안그럴테니까. 그리고, 돈을 그렇게 뻔히 보이는데 놔둔 너희들 잘못도 있잖아? 안그래? 그리고, 어? 내가 훔쳐가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날 꽁꽁 묶어두는건 그, 뭐냐. 지나친 처사 아냐?”


올리버는 실비아를 힐끗 보며 말했다.


“귀족들에게는 아직 즉결 처형의 권한이 있지.”


“그래서 뭐 어쩌라고? 너 귀족이야? 그리고 재갈은 자꾸 왜 채우는거야? 내가 뭐라도 할까봐······읍!”


올리버는 다시 그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실비아를 힐끗 보았다.


“마침 귀족이 있거든. 다시말해, 언제든지 네놈을 우리 손으로 처형해도 된다고. 알아? 너, 도둑질 하다가 그 장면을 딱 걸린거라고.”


남자는 공포에 질린 눈으로 올리버를 보았다.


“하지만, 뭐. 사실 네 목숨에는 별 관심없어. 대신 조금 궁금한게 있거든. 네가 알려줬으면 좋겠는데 말야. 이놈이 사실대로 술술 불었으면 좋겠는데. 실비아. 뭐 좋은 생각 없어?”


실비아는 잠시 주저했다.


“글쎄요······.”


“응? 뭐라고? 아니, 실비아. 고문이라니. 그렇게 끔찍한 말을 소녀가 하면 쓰나.”


그리고 올리버는 놀리는듯한 말투로, 그 남자에게 시선을 고정한채 말했다.


“응? 손톱을 뽑자고? 에이, 그랬다가는, 앞으로 평생 곡괭이 하나도 못 들 텐데? 손톱이 뽑혀나간 손끝이 아려서. 뭐라고, 실비아? 손톱을 뽑고, 바늘로 그 자리를 콕콕 찌르자고? 너, 태연한 얼굴로 그런 끔찍한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읍!! 읍읍!! 읍!” 남자가 거세게 저항하며 무언가를 외치려 애썼다.


“아, 뭐. 손톱은 그만두자고? 그럼 어쩌지, 실비아. 이놈이 사실대로 술술 불게 만들 만 한 좋은 고문이 없을까? 코에 물을 넣으라고? 아, 하긴. 그것도 꽤나······”


“읍!!!” 남자가 거의 비명을 지르려는듯 애썼다. 그제서야 올리버는 그의 입에 물려둔 재갈을 슥 벗겨냈다.


“제대로 불어. 너, 혼자 일하는 도둑은 아닐거 아냐.”


“미친놈!” 그가 외쳤다. “날 고문하려고? 내가 불거같냐! 너, 내가 당장 경비대에······읍!”


올리버는 다시 그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잠시 천막 밖으로 사라졌다 금새 돌아왔다. 그의 손에는, 대장간에서나 쓸법한 흉흉한 집게 하나가 들려있었다. 그것을 보더니 남자의 두 눈이 거의 튀어나오려 했다.


“읍!! 읍!!”


“어디, 우선, 하나······.”


“읍!!” 남자가 거세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자, 올리버는 다시 그의 입에 물려둔 재갈을 뺐다.


“말할게! 말 한다고! 집게 치워! 당장! 건드리기만 해 봐!”


“아직 자기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잘 모르나본데.” 올리버가 조용히 말했다. “밖에서 황금의 약 만드는거 봤지? 네놈을 그 약에다가 풍덩 빠뜨리면 어떻게 될까? 아니, 하반신만 잠기게 빠뜨리면 어떻게 될까? 아니면, 몸의 오른쪽 절반만 빠뜨리면······.”


“알았어! 그만, 그만 해 제발. 무서운 이야기 그만 하라고. 말 할게, 하면 될거 아냐! 젠장, 수상쩍은 가게처럼 보였을 때 바로 발뺐어야 하는데. 재수 옴붙었군.”


“말이 많다.”


올리버가 집게를 슬쩍 들이밀자 남자는 바로 집게를 피해 몸을 움츠렸다.




올리버는 천막 천장에 달린 등불을 조금 조정하여 그 남자의 머리위로 빛이 쏟아지도록 만들었다. 그는 눈이 부신지 계속 머리를 이리저리 움직였지만, 의자에 꽁꽁 묶인 채로는 거기서 움직여봤자 빛을 피할 수는 없었다.




“자, 그래서.” 올리버는 두 손을 비비며 말했다. “나는 사실 너한테는 별 관심없어. 다른 도둑들한테 관심이 있지. 우선 묻지. 오르데움에, 도둑이 얼마나 있나?”


“내가 어떻게 알아?” 그가 반항적으로 외치자, 올리버는 어디선가 용도불명의 기다란 바늘을 하나 꺼내들었다. “아, 알았어! 한, 열 두명인가. 그럴 거야.”


“애매하군.”


“도둑이 뭐 왕국 관리도 아니고, 몇 명인지 아닌지 내가 어떻게 알아?” 그가 말했다.


“그래. 그러면, 그중에 소매치기는 얼마나 되지?”


“이 시기에는 죄다 소매치기지 뭐.” 다시 올리버가 바늘을 들이밀자 그가 재빨리 말을 바꿨다. “네 명! 네 명 뿐이야! 젠장, 바늘좀 치워. 대체 그딴 흉흉한 물건은 어디서 구해오는거야?”


“그놈들 모조리 불어. 이름, 사는 곳, 활동 반경,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도.”


“거기까지는, 아! 치우라고!” 올리버가 슬쩍 움직이기만 했을 뿐인데도 그는 재빨리 말했다.


“거리마다 한 놈씩 있어! 동서남북에 한 놈씩. 그리고 광장에는 없고.”


“왜? 광장이야말로 가장 번잡한 곳이잖아.” 올리버가 말했다.


“그야, 관문 가까운 거리에서 돈 많아 보이는 놈들은 벌써 턴 뒤니까, 광장에 모이는 놈들은 별 돈도 없다고. 그리고 말야. 광장에는 경비대가 상주하고, 우리 길드에 가입도 안한 애송이 소매치기도 많아서······.”


“길드? 꼴에, 길드까지 만들었나? 세금을 낼 여력은 되나보군?” 올리버가 조소하며 말했다.


“아니, 아니야! 방금 한 말은 취소야.”


“그 길드에 관심이 아주 많은데.” 올리버가 말했다.


“나는 몰라.”


“그래?”


“몰라. 모른다고. 아니, 뭐야그거. 야, 오지마. 잠깐, 잠깐만······읍!”


올리버는 종이 하나를 꺼내 수통을 열어 물에 적시더니, 그것을 남자의 얼굴 위에 얇게 펼쳐 덮었다.


“읍! 읍!!! 읍!!!” 남자가 고통스럽게 몸을 비틀며 비명을 질렀다. 그건 실비아가 옆에서 보고있기도 끔찍한 모습이었다.


“올리버! 저러다 죽겠어요!”


실비아가 외치자, 올리버는 그의 얼굴에서 종이를 뗐다. 남자는 순식간에 한 오년은 늙은듯 거친숨을 몰아쉬었다.


“말 할게! 한다고! 젠장, 진짜로 죽을 뻔 했잖아! 숨이 전혀 안 쉬어졌다고. 진짜, 진짜로 죽는 줄 알았네. 미친놈 같으니라고······.”


올리버가 그를 힐끗 노려보자 그는 재빨리 입을 나불거렸다.


“그러니까, 총 열 다섯명이 있어. 딱히 두목이랄건 없고, 그냥 항상 뒷골목 술집에 모이던 우리들이 반쯤 장난으로 만든거야. 그것도 길드랍시고 아직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 도둑놈들이 자기들도 끼워달라고 설칠 때도 있었지. 뭐, 그게 전부야.”


“명단 불어. 회합 장소도.”


“어디 쓰려고?” 남자가 불안한 눈으로 물었다.


“어허.” 올리버가 다시 슬쩍 움직이자 그는 재빨리 사람들의 이름을 술술 불기 시작했다.




“좋아.” 올리버는 그가 불러주는 이름들을 모두 종이에 적은 다음 종이를 둘둘 말며 말했다. “이 중에서, 동쪽 관문에서 소매치기 하던놈은 누구지?”


“오늘은 없었어.” 그가 말했다. “아니, 진짜야. 진짜라고! 야, 내 말좀 들어! 아니라고!” 올리버가 의자에서 일어서자마자 그가 애처롭게 매달렸다. “진짜! 진짜야! 제발, 좀 믿어줘. 하지마, 하지마! 그거 진짜 죽는다고!”


“올리버. 일단 들어봐요.” 실비아가 말하자 올리버는 도로 자리에 앉았다.


“이 대목에 왜 비워뒀는데? 사람들 주머니 털기에 축제때만큼 좋을 때가 있나?”


“몰라. 무슨, 몸이 안좋다나 뭐라나. 나도 자세한건 몰라.” 그가 말했다.


“그딴 말을 믿나?”


“아니면 뭐 어쩌겠어? 자기가 아프다는데, 믿어줘야지. 어쨌든, 우리들도 다 나름의 규칙이 있다고. 자기 구역은 자기가 알아서 관리하기. 남의 구역에 멋대로 침바르지 말기. 뭐 그런거. 젠장. 나도 그냥 얌전히 남쪽에서 머무는건데. 희한한 가게가 아주 훔쳐가라고 작정이나 한 것처럼 돈바구니를 올려뒀대서 왔더니, 이게 대체 뭔 꼴이야. 이래서 규칙은 잘 지켜야 한다니까.”


남자가 넋두리를 하자, 실비아는 어이없다는듯 그를 보았다.




“그럼, 동쪽에서 오늘 어떤 도둑놈이 사람들의 주머니를 털어갔는지는 알 방법이 없나?”


“없겠지.”


올리버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른다고! 내가 어떻게 아는데!”


올리버가 다시 그 집게를 들고왔다.


“진짜 몰라! 야, 하지마! 진짜, 그만두라니까!”


그 커다랗고 차가운 집게가 남자의 손끝에 닿자, 그가 애처롭게 매달렸다.


“꼬맹이가있어!” 그가 살려달라고 애원하듯 말했다.


“꼬맹이?”


“그래! 꼬맹이가 있다고. 돈 벌고 싶다고, 자기도 끼워달라고 하던 꼬맹이가 하나 있어. 동쪽 근처 골목에 사는 놈인데, 아마 그놈 짓이겠지. 아까 내가 말했지? 우리들도 구역이 있고, 구역 안에서 딴놈들이 설치지 못하게 관리한다고. 근데 그 꼬맹이는 계속 동쪽 거리에서 멋대로 소매치기를 하다가 붙잡히고, 들키고, 툭하면 경비대로 끌려가고 그런단 말이야. 그래서 우리 사업에 크게 방해가 되거든. 애새끼라 때릴수도 없고, 골치아픈 놈인데, 아무튼, 그놈 짓이겠지. 그놈 찾아봐! 그리고, 내 손은 제발 놔 둬!”


남자가 거의 울것같은 표정으로 매달리며 말했다.


“손이 그렇게 소중하나?”


“소중하지! 자기 몸이 안 소중한 사람이 어딨는데?” 남자가 외쳤다. “자기 몸이 제일 소중한거 아냐?”


“참 대단하군. 그래, 알았다. 더이상 하고싶은 말은 없고?”


“살려줘.” 남자가 말했다. “제발, 더 할 말 없다고. 이제 진짜 없어.”


“아까도 그렇게 말 해놓고, 내가 집게를 들이밀었더니 술술 불었잖아.”


올리버가 위협적으로 그를 향해 상체를 기울이자, 등불의 불빛 때문에 올리버의 얼굴과 몸 위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아니, 뭘 더 말하라고?”


“장물아비. 있겠지? 열다섯씩이나 되는 좀도둑이 길드 흉내까지 낼 정도면.”


올리버가 말하자, 남자는 침을 꿀꺽 삼켰다.


“야, 그건 좀 봐줘. 그건, 진짜 장난으로 못 넘어간단 말이야.”


“내가 지금 장난하는것 같나? 아직도 자기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이해가 안 가나?”




“아니, 그건 아닌데······읍, 읍!” 올리버가 다시 그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천장을 향해 위협적으로 집게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는 집게를 남자의 오른손 검지손가락에 갖다대었다.


“읍!!! 읍!!! 읍!!!”


집게가 찰칵 소리를 냈고, 그는 검지손가락에서 차가운 금속의 감촉을 느꼈다. 그는 온 몸을 바둥거리며 비명이라도 지르려 했지만, 재갈이 물려 그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읍!!! 읍!!!”


“올리버. 그만, 그만 풀어줘요.” 실비아가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왜? 펠릭스가 잃어버린 주머니가 결국 어디로 가겠어? 장물아비 손으로 떨어지겠지. 바로 어젯밤까지만 해도 돈이 없어 굶으며 밤을 지새운 사람이, 다음날 아침에 갑자기 떵떵거리며 식당으로 뛰어가서 풀코스 요리를 시키면, 사람들이 그를 뭐라고 생각하겠어? 경비대에 당장 신고하겠지. 수상하다고.”


실비아는 올리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돈을 수상하지 않을 정도로만 쓸 수 있도록 도와주는게 장물아비들이란 말야. 금화를 은화와 동화로 바꾸어주고, 금붙이나 귀중품, 보석을 쓸 수 있는 돈으로 바꾸어주는 놈들. 결국, 도둑놈들의 장물은 다 장물아비 손을 거쳐. 그런데 말야.”


올리버는 집게로 남자의 손가락을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그 장물아비 짓이라는게,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니거든. 이렇게 큰 도시인 오르데움에서도 장물아비 노릇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기껏해야 한둘 쯤 있을까? 그러니, 그놈들을 잡아서 장부를 들춰내면 어떤놈이 펠릭스의 주머니를 털었는지 바로 알수 있다, 이 말이지.”


“읍!!!” 남자가 외쳤다. “읍!!!”


“그렇지만, 올리버. 그러면 경비대에서는 왜 장물아비들을 안 잡는건데요?”


“숨어있으니까. 그리고, 대부분은 도둑들도 누가 장물아빈지 잘 모르거든. 도둑들은 희한하게 꼭 길드나 그 비슷한걸 만들거든. 바로 이놈처럼.” 다시 올리버가 집게로 그의 손가락을 툭툭 쳤다.


“읍!!”


“그래서요?” 실비아가 물었다.


“그래서, 그놈들은 기껏해야 자기 상사한테 훔쳐온 장물을 넘기는게 전부니까, 말단 도둑을 잡아봤자 장물아비가 누군지는 몰라. 그리고 그 상사라는 놈들은, 부하가 잡히면 가장먼저 가지고 있던 장물을 처분하고 쏙 숨어버리거든. 그러니 잡기 여간 힘든게 아니지. 그런데 실비아. 오늘 우리는 운 좋게도, 그 장물아비의 정보를 아는 도둑놈을 하나 잡았단 말야. 이놈을 그냥 풀어줄 수는 없잖아?”


“그렇지만, 저 사람. 저러다가 죽을 것 같아요.” 실비아가 말하자 남자는 재빨리 고개를 위아래로 크게 끄덕거렸다.


“안 죽어, 실비아.” 올리버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전에 전쟁에 참전했거든. 그런데, 그 때 보니까 사람들은 생각보다 잘 안 죽더라. 아! 맞아. 그런데, 이 말도 해야겠어.” 올리버는 다시 그 남자를 향해 위협적으로 상체를 기울였다. “하지만, 가끔 굉장히 어이없게 죽기도 하는게 사람이야. 정말이지. 나는 그럴 의도가 없었는데, 픽 죽어버리더라고. 그냥 살짝 따끔하게 해줄 생각이었는데 말야.”


“읍!!” 올리버가 그의 입에 물린 재갈을 풀자마자 남자가 외쳤다. “살려줘!”


“말 안할건가?” 올리버가 말했다.


“모르는걸 어떻게 말해!”


“이번이 마지막 기회야. 말 안 할건가?”


“몰라!”


올리버는 남자의 입에 다시 재갈을 물리고, 집게를 집어들어 그의 손가락을 잡았다.


“읍!!”


올리버는 집게를 조심스럽게 움직여 무언가를 붙잡는 시늉을 했다.


“옳지, 잡았다. 자, 네 오른 손의 검지손가락 손톱을 단단히 잡고있어. 이제, 작별인사라도 해 주지 그래.”


“읍!”


“올리버. 그만둬요.” 보다 못한 실비아가 나섰다.


“왜? 실비아. 저놈이 왜 아직도 말 안하고 버티는지 모르겠어? 이놈은 진짜 아파본 적이 없어서 그래. 진짜 아프다는게 뭔 줄 알면, 인간이라면 두 번 다시 같은 고통을 느끼려 하지 않거든. 그래서, 왕국에서는 범죄자들을 고문하는 거라고.”


“하지만, 너무 잔인한 처사에요.”


실비아가 말했다. 남자도 실비아의 말에 동의한다는듯 고개를 크게 위아래로 흔들었다.


“이놈이 장물아비의 정보를 안 불면, 펠릭스의 주머니도 끝이야. 이 우스꽝스러운 쇼도 끝이고, 펠릭스는 헛돈만 쓴 꼴이 되겠지.” 올리버가 말했다.


“그래도, 고문을 한다고 해서, 이 사람이 사실대로 말 한다는 보장도 없잖아요.” 실비아가 말했다. “학교에서, 엄한 선생님들은 툭하면 회초리로 우릴 때렸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같이 배우던 친구들이 성실해진건 아니었어요. 걔네들은 대신 거짓말하고 얼버무리는 실력만 늘었다고요.”


“이놈은 성실한 고급학교 학생이 아니야. 봐. 아까 제 입으로 말 했잖아. 자기 몸이 제일 소중한 놈이라고. 그런 놈이 왜 아직도 버티겠어? 이놈은 지금 간을 보고 있는거야. 내가 진짜 손톱을 뽑을 수 있는지 없는지, 그걸 알아보고 있는 중이라고.”


“이런 상황에서도요?” 실비아가 물었다.


“더러운 골목에서 거칠게 자란 인간들은 짐승처럼 날카로운 본능을 가지고 있어. 바로 지금도, 저놈은 내가 진짜 손톱을 뽑지는 못할거라고 본능적으로 느꼈으니 끝까지 말 안하고 버티는 거라고. 본보기를 보여줘야 돼. 일단 하나 뽑히고 나면, 그 다음은 일사천리로 흘러갈거다.” 올리버가 조금 무시무시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저는······.”


“어때요? 좀 알아냈나요?” 그리고 그 때, 천막 사이로 펠릭스의 머리가 불쑥 들어왔다. 그는 올리버와, 실비아와, 의자에 묶인 남자와, 그 흉흉한 집게를 보더니 금새 웃으며 말했다.


“아직 한창이군요. 그래서, 뭐 좀 알아냈어요?”


“이놈이 무려 장물아비의 정보를 갖고 있는것 같아.”


올리버가 펠릭스를 향해 말했고, 그러자 펠릭스는 묶인 남자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러자 남자는 고개를 좌우로 마구 돌렸다.


“그런데 왜 아직도 못 들은거죠? 올리버. 당신은 충분한 지식과 기술을 가지지 않았나요? 인간과 동물의 해부학적인 구조라든가, 어디에 어떻게 상처를 입히면 죽고, 불구가 되거나, 또는 고통만 느끼거나······.”


“읍!!” 남자가 다시 몸을 비틀며 외쳤다.


“아, 뭐. 그렇기는 한데, 실비아와 가벼운 마찰이 있었거든. 실비아는 고문이 별로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나봐.” 올리버가 말했다.


“그래요?”


펠릭스가 실비아를 보자, 실비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펠릭스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요! 저는, 이게 잘못된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그럼 뭐가 제대로 된 방법인데요?” 펠릭스가 물었다.


“그가 스스로 말하도록 유도해야죠. 마치, 고해성사를 할 때처럼.”


“그래서, 어떻게 하면 그가 우리에게 자기의 죄를 고백해 줄까요?”


하지만 펠릭스의 물음에 실비아는 대답하지는 못했다.


“뭐, 그럼 이렇게 하죠. 제가 직접 처리할테니까, 둘 다 잠깐 나가있어요.” 펠릭스는 남자의 얼굴을 힐끗 살펴보며 말했다.


“뭐?”


“네?”


올리버와 실비아, 그리고 그 묶인 남자까지 모두 펠릭스를 돌아보았다.


“네가 직접 처리하게?”


“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요?”


올리버와 실비아가 그런 반응을 보이자, 남자의 얼굴 위에 다시 한 줄기 공포가 스쳤다.


“알아서 처리하도록 하죠. 그럼, 둘 다 그만 나가줘요.”


“펠릭스! 당신, 대체 무슨 짓을 벌이려고요? 당신은 후회도 못 느끼고, 동정심이라고는 요만큼도 없는데다가, 큰 상처가 나도 실실 웃으면서, 사람 갖고놀기를 아주 취미로 삼잖아요!”


실비아의 그 말은 거짓은 아니었다. 하지만, 의자에 꽁꽁 묶여 방금전까지 고문을 당하니마니 하던 사람이 듣기에, 그 말은 어떤 말보다도 무섭게 들렸을 것이다.


“뭐, 실비아. 알아서 처리하겠지. 우린 그만 비켜주자고.” 그리고 올리버는 슬며시 웃으며 실비아를 데리고 나가려 했다.


“펠릭스! 당신, 고문할거죠? 그렇죠? 또 무슨 이상한 약을 만들어서 술에 쩔어버린 사람처럼 정신을 날려버리고, 온 몸에서 벌레기어가는 듯한, 타들어가는 듯한 이상한 감각이 느껴지게······.”


“쉿. 그만 가자, 실비아.”


“펠릭스! 고문 하면 안 돼요!”


올리버에게 끌려나가며 실비아가 마지막으로 외쳤다. 그리고 그들이 천막을 빠져나가자 펠릭스는 남자의 얼굴을 히죽 웃으며 돌아보았다.


“이제 우리 둘 뿐이군요.” 펠릭스가 입을 열자 남자의 얼굴이 공포로 물들었다. “그럼, 어디 이야기를 좀 해 볼까요? 내가 찾는 사람이 하나 있는데······.”


펠릭스가 두 손을 비비며 그에게 다가가자 남자는 다시 외마디 비명을 질렀지만, 재갈에 막혀 그 비명은 입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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