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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의 연금술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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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1.10.08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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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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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1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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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70화

DUMMY

도미닉은 부엌의 조그맣고 불편한 의자에 앉아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 수도원을 보시면 알겠지만, 저 포도밭은 우리 수도사들이 모두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래보이더군요. 농노들이, 아차, 더이상 노예라는 말을 쓰면 안 되죠?”


“뜻만 통하면 됐습니다. 네. 지적하신 대로, 우리 수도원에는 일꾼들이 쓰는 숙소나 판자촌이 없습니다. 저 넓은 포도밭은 모두 수도사들이 수행을 대신하여 일궈낸 것이죠.”


“네. 거기까지는 알겠습니다. 그래서, 그 수도사들이 보이는 관심이란 뭡니까?”


“별 건 아닙니다.” 도미닉은 물잔에 물을 담아, 한 모금 마시고 마저 말했다. “이른 봄부터 시작해서, 계속 손에 흙과 물을 묻혀가며 포도를 길러냈으니, 수확철이 되어 포도송이를 따면 그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실로, 오묘한 기분이 들겠군요.”


펠릭스가 말하자, 도미닉이 웃었다.


“그 성취감과 해방감. 만족감. 그런 기분들은, 사실 수도사들이 느끼기에 좋은 것은 아니긴 합니다. 무릇 수도사란, 수행의 끝에 깨달음을 얻어 성취감과 해방감을 느껴야 하지, 다른 길로 그런 기분을 쫓다가는, 금새 타락하고 말 테지요.”


“농사는 꽤 좋은 일 아닙니까, 그래도?”


“뭐, 그렇기는 합니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일년 내내 자기손으로 애써 길러낸 포도를 마침내 수확하는 이 시기가 되면, 수도사들의 마음이 들뜨게 되고, 자꾸 포도밭 쪽으로 관심이 간다는 겁니다. 올해의 포도는 맛이 좋을까? 좋은 술을 빚어낼 수 있을까? 우리들의 노력의 결실이 얼마나 달콤했을까? 따위의 관심이요.”


“좋은 관심같습니다만.” 펠릭스가 말했다.


“수행에 방해가 되니, 그게 문제입니다. 성가도 자꾸 틀리고, 필사본의 글씨는 어딘가 균형이 맞지 않고.”


하지만 도미닉은 그게 못마땅하다는듯 말했다.


“인간적인 실수로군요.”


“뭐, 그렇긴 합니다.”


도미닉은 다시 물잔의 물을 한 모금 마신 다음, 입맛을 다시며 말하기 시작했다.


“보신대로, 글레이스 수도원은 사실 대단한 수도원은 아닙니다. 다른 이름난 수도원과 달리, 이곳에는 수도원의 이름을 드높일 성유물도 없고, 신화도 없으며, 전설도 없습니다. 수도원장님은 대학에서 신학을 배우신 분이 아니며, 수도사 대부분들도 대학에서 신학을 배우지 못한, 어찌보면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오호. 그건 몰랐군요”


“척 보면, 느껴지지 않습니까? 저는 수도원장님을 나름대로 존경합니다만, 그분께서 무한한 자애가 넘치는 눈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쯤은 압니다.”


“행동거지에서 기품과 위엄이 넘쳐흐르지도 않고요.” 펠릭스가 씩 웃으며 말했다.


“아무튼, 그렇습니다. 그런 평범한 사람들이 수도사가 되어 수행을 쌓고 있는데, 그 사람들에게 포도 농사라든가 포도주라든가 하는 것은, 너무 재미난 일입니다. 적어도, 이렇게 지루한 필사라든가, 미사라든가, 재미도 없는 성가라든가 하는 것 보다는 말이죠.”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헌데, 그 이야기를 갑자기 해주는 이유라도 있나요?”


도미닉은 조금 부럽다는 눈으로 펠릭스를 보았다.


“그냥, 왠지 하고싶어서 말입니다. 솔직히, 저는 이곳이 답답합니다.”


“갇혀있어서요?”


“아니오. 저는 좀 더 수행을 쌓고 싶은데, 이곳에서는 수행에 진심으로 임하는 사람도 적고, 제가 모범 삼을 만한 사람도 부족합니다. 경전들도 다들 조금씩 낡아있고······.아, 죄송합니다. 투정 부리려 한 것은 아닌데.”


“뭐, 이해합니다. 가끔 그럴 때가 있긴 하니까요. 그래서, 도미닉. 당신 의견은 잘 들었는데, 아직 묻고 싶은게 남아있습니다.”


“뭡니까?” 이제 물잔을 비우며, 도미닉이 물었다.


“수도원에 유령이 돌아다닌다는 이야기. 수도원장님도 유령이 있다고 했고, 실제로 저희들도 봤습니다만, 당신은 유령따윈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아, 저는 유령따윈 없다고 확신합니다. 그건 소문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든 허풍에 불과합니다.”


“수도원장님도 믿으시는데?” 펠릭스가 말했다.


“비유적인 말씀 아니시겠습니까.” 도미닉이 대답했다. “수도원장님은 유령이니 악마니 하는 단어를 자주 쓰십니다. 특히나······.”


“포도주 이야기를 할 때, 자주 하시더군요.”


펠릭스가 말하자, 도미닉은 침을 꿀꺽 삼켰다.


“해서, 도미닉. 당신은 유령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바가 없군요?”


“없습니다.” 도미닉이 대답했다. “저는, 밤에는 조용히 잠만 자거든요. 한 밤중에 수도원 복도를 유령이 아니라 멧돼지가 돌아다닌다 해도, 저는 아마 모를겁니다.”


“아하. 그건, 좀 재밌는 농담이었어요.” 펠릭스가 웃으며 말했다.


“별 말씀을. 그럼, 연금술사 선생님. 저는 이만 가 봐도 될까요? 아침에 필사하던 책을 도서관 책상 위에 그대로 올려놓고 내려온 참이라서 말입니다.”


“아, 도서관.” 무언가 돌연 떠오른듯, 펠릭스가 말했다. “도미닉. 삼 층 전체가 커다란 도서관인것은 알겠는데, 이층에도 간이 도서관이 있더군요. 우측 복도에.”


“그렇습니다.” 도미닉이 대답했다.


“거기, 혹시 무슨 비밀 방이나 통로 같은거라도 있습니까?” 펠릭스가 묻자, 도미닉은 눈쌀을 찌푸리고 생각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소문에는 별로 귀가 밝지 않아서.”


“아, 뭐 괜찮습니다. 그럼, 도미닉. 부디 수행에 정진하길 바랍니다.”


“수고해 주십시오, 연금술사 선생님.”


도미닉은 다시 한번 헝겊에 손을 깨끗이 닦은 다음, 부엌에서 빠져나갔다.




펠릭스가 방으로 돌아오자, 실비아와 올리버가 그를 맞이해 주었다.


“늦었군.” 올리버가 말했다.


“뭐 좀 알아냈어요, 펠릭스?” 실비아가 이층 침대위에 엎드린채, 펠릭스에게 물었다.


“나름대로요.” 사다리를 타고, 자기 몫의 침대 위로 올라가며 펠릭스가 대답했다.


“그래서, 유령이 있대요?” 실비아가 물었다.


“흠. 글쎄요. 정작 유령 이야기는 거의 못 해봤군요. 대신 다른 이야기는 제법 들었지만.”


“이를테면, 어떤 거요?” 실비아가 다시 물었다.


“이를테면, 이 수도원에서 아주 우스운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요.”


실비아는 두 눈을 깜빡였고, 올리버는 하품을 했다.


“그게 무슨 말이죠?” 올리버의 하품 소리가 사라지자, 실비아가 물었다.


“그런 이야기죠. 올리버. 자나요? 벌써 낮잠자려고요?” 그러더니, 펠릭스는 침대 밑으로 얼굴을 쑥 내밀며 물었다.


“안 자.” 올리버가 어둠 속에서 대답했다.


“올리버. 당신, 어릴 때 술 마셔 봤나요?”


“무슨 뜬금없는 질문이야, 그게?” 올리버가 어이없다는듯 대답했다.


“아니, 마셔봤냐고요. 남들 몰래 친구들끼리 모여서 술잔을 기울인 적이 있냐고 물었어요.”


“뭐, 없진 않지.” 올리버는 가만히 기억을 더듬으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래, 있어. 집에서 쓰던 그릇 하나 몰래 가져와서 술을 담았지. 그 와중에 그럴싸한 유리 잔을 가져온 놈도 있었는데, 어느쪽이든 거친 맥주를 담아마시기엔 별로였지.”


“재미난 추억이군요.” 펠릭스가 도로 침대 위로 고개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그런걸 왜 물어봐?”


“그냥요. 아, 실비아. 당신은 귀족인만큼 이런 일이 한번 쯤은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어떤 일이요?” 실비아가 물었다.


“하인이, 제때 양초를 사 놓지 않아서 저녁 식사시간에 식당을 밝힐 수가 없던 적이 있나요?”


“없어요. 저희 집 하인들은, 다들 일 잘했거든요.” 실비아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럼 이렇게 생각해보죠. 어느 하인이 물품을 주문하는걸 잊어버려서, 한 일 주일 동안 밤에 희미한 촛불 하나 겨우 켠 채 돌아다닌다고요. 어떻겠나요?”


“아주 불쾌하겠네요.” 실비아는 반사적으로 대답한 다음,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좀 재밌을지도.”


“당신이야 재밌을지도 모르지만, 그 하인은 어떻게 될까요?”


“쫓겨나겠죠 뭐.”


“그런데, 이곳 수도원의 재고 담당은 해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서도 왜 아직도 그 자리를 꿰차고 있을까요?”


“모르죠, 저야. 무슨 이유가 있지 않겠어요? 수도원장님이 너그럽다든가······.”


“참 그럴싸한 이유로군요.” 펠릭스가 비웃듯이 말하자, 실비아는 입을 비죽였다.


“그래서, 펠릭스. 대강 그림이 그려지는거야? 좀 알겠어?” 침대 밑에서 올리버가 묻자, 펠릭스는 입을 다물고 잠시 생각했다.


“오늘 밤, 다 같이 유령을 보러 가죠.”


“그리고?”


“그리고, 아주 재밌는 꼴을 보게 될지도 모르고요. 하지만! 그러려면 아직 알아야 하는 부분이 있어요.” 침대 위에서 풀쩍 내려오며 펠릭스가 말했다.


“뭔데요?”


“이층 간이 도서관의 그 빈 공간이랑, 실비아 당신이 풀어낸 그 암호요.”


“네? 이게, 갑자기 왜요?” 실비아가 종잇조각을 꺼내며 말했다.


“암호는, 혼자 알고 치우려고 만든게 아니에요. 적어도 두 사람 이상이, 남몰래 서로 소통하려고 만든 것이죠. 그렇죠?”


“그렇겠죠. 혼자 알고 말거면, 이렇게 종이에 끄적일 이유도 없잖아요? 기억력이 아주 떨어지는게 아니고서야······.”


“그러면, 이 암호가 그려진 종이 쪽지도 찾아보면 어딘가에 더 있겠죠?”


“뭐, 그럴지도요. 그렇게 소중하게 다루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으니까요.”


“그럼, 실비아. 올리버. 당신들은 도미닉한테 부탁해서 수도사들 침실이든 어디든 뒤져가며 저 암호 쪽지좀 찾아봐요.”


“그걸 어디 쓰게?” 올리버가 물었다.


“거기, 쓸만한 내용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넌 그동안 뭐하려고?”


“저는, 간이 도서관의 비밀 공간을 파헤칠 겁니다.”


“나도 너한테 붙으면 안 돼?”


“그럼, 저 혼자 수도사들한테 물어보고 다녀요?” 실비아가 묻자, 펠릭스는 그녀를 휙 돌아보며, 수도원장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올리버. 당신의 눈썰미나 기계 다루는 솜씨가 좋은 건 알지만, 실비아하고 같이 다녀줘요.”


“뭐, 그래. 알았어. 그래서? 바로 움직이면 되나?”


“빨리 움직이면 좋죠. 오늘 밤이 오기 전에, 재미난 구경을 해 보려면요.”


올리버는 침대를 박차고 나와 기지개를 켰다.


“그래. 그 도미닉이라는 수도사를 어디서 찾지?”


“삼 층 도서관 어딘가에 있을거에요. 그럼, 두 사람. 부탁해요.”


올리버와 실비아가 방을 나가자, 펠릭스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 역시 사다리를 내려와, 유령이 거닐었던 복도로 걸어갔다.




실비아와 올리버는 수도원의 커다랗고 조용한 도서관으로 갔다. 도서관의 문을 열며, 실비아는 무거운 침묵 속에서 종이 위에 펜을 움직일 때는 사각거리는 소리만이 들려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도서관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종이 위에 글씨를 적는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몇몇 수도사들이 도서관에 와 있기는 하였으나, 그들은 멍하니 글을 읽기만 하거나, 펜을 쓰고 글씨를 쓰다말다를 반복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 사이에, 도미닉은 총명하게 두 눈을 번쩍 뜨고 경전을 필사하고 있었다. 어찌나 집중하고 있는지, 방해하는것이 미안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실비아가 도미닉의 어깨를 가볍게 톡 건드리자, 도미닉이 힐끔 뒤를 돌아봤다. 그는 실비아와 올리버의 얼굴을 보더니, 대뜸 무슨 일인지 이해한듯 자리에서 일어나 도서관을 빠져나갔다.




다시 수도사들의 숙소를 뒤지며, 실비아가 도미닉에게 말했다.


“한창 집중하고 있는데, 미안해요.”


“아닙니다. 뭐, 잘은 모르겠지만, 연금술사 선생님이 시킨 일이라니까요.” 도미닉이 대답했다.


“아, 찾았다.” 올리버는 바닥을 나뒹구는 쓰레기 사이에서, 구겨진 종이를 하나 집어들었다.


“그걸 어디에 쓰시려고 찾으시는 겁니까?” 도미닉이 물었다.


“아, 이거, 수도사들이 암호를 적어 뒀더라고요.” 실비아가 말했다.


“암호요?”


“네. 모르셨나요?”


“아, 저는, 사실 친구가 별로 없습니다. 연금술사 선생님께는 말씀드렸는데, 사실 이곳 글레이스 수도원에 오는 수도사들은, 그리 뛰어난 자질도 순수한 신념도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거든요.”


“아, 네······.” 실비아는 그 말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 알 수 없어, 애매하게 웃으며 도미닉의 시선을 피했다.




간이 도서관에 들어온 펠릭스는, 안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다음 간이 도서관의 문을 살펴보았다. 문의 자물쇠는, 그가 예상한대로 고장이 나 있어, 자물쇠를 돌려도 문이 전혀 잠기지 않고 헛돌았다.


잠시 문을 만져보던 펠릭스는 문에서 떨어져, 이번에는 간이 도서관의 벽을 살피기 시작했다. 뚫어져라 벽을 살펴보던 펠릭스의 눈에, 책꽃이 하나가 들어왔다. 다른 것들에 비해서 책이 듬성듬성 꽂혀 있었으며, 대충 눈높이 근처에만 책들이 두서없이 꽂혀있었다. 펠릭스는 그 책꽂이를 옆으로 밀다가,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내 참. 올리버 데려올걸.”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펠릭스는 그 책꽂이에 꽂혀있던 책들을 뽑아, 대강 아무데나 빈 자리에 흩어놓았다.


책을 덜어내자, 책꽂이의 무게는 꽤 가벼워져서, 펠릭스 혼자서도 옆으로 밀 수 있을 정도였다. 문득, 그는 바닥에 납작 엎드려 바닥을 살펴보았다. 이미 몇 번 정도 이 책꽂이를 밀었던 적이 있는듯, 바닥에는 지우다 만 흔적 같은 것이 여전히 남아있어, 펠릭스는 웃음을 지었다.


다시 책꽂이로 돌아가, 책꽂이를 옆으로 밀자 벽 뒤에, 그저 평범한 또 하나의 벽이 보일 뿐이었다. 펠릭스는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다시 벽을 살펴보았고, 어렵지않게 나무 판자 사이에 난 이상한 틈새를 발견했다. 여기에도 손잡이가 없어 옆으로 밀어보자, 판자는 옆으로 스르륵 밀렸다. 판자 너머의 공간을 잠시 살펴본 펠릭스는, 웃으며 도로 판자를 닫았다.




각자 조사를 나섰던 세 사람은,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실비아. 잘 풀려요?” 그리고 펠릭스는, 자신이 본 것에 대해서는 전혀 말하지 않고, 침대 위에 납작 엎드려 이불을 뒤집어쓴 채, 입으로 무언가를 흥얼거리며 종이에 글씨를 쓰고 있는 실비아에게 물었다.


“뭐, 사실 방법만 알면 그 뒤로는 쉬우니까요.”


“뭐 좀 재미난 내용이라도 있어요?”


“딱히요.” 새 종이로 넘어가며, 실비아가 말했다. “그냥, 평범한 잡담 뿐인데요. 아, 이건 좀 다르네요. 어디, 보자. 시간이랑 장소를 묻는걸요.”


“흠. 비슷한걸 찾으면 알려줘요. 그리고, 특이한게 있어도 알려주고요.”


“알았어요. 펠릭스 당신은 뭐 좀 찾았나요?”


펠릭스는 크게 하품을 했다.


“네.”


“뭔데요?”


“이따가, 밤에 보면 알아요. 올리버, 할 일 없으면, 잠이나 자 둬요. 오늘 밤엔, 불침번이니까.”


“그래. 하기야, 밤에만 나타나는 유령이니. 밤에 말짱히 깨어 있으려면, 지금 나는 편이 낫기는 해.”


“나는요?”


“암호 풀어야죠.” 펠릭스가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좀 도와줘요.”


“전 풀줄 몰라서요”


“가르쳐 줄게요! 나한테만 떠맡겨놓고 팔자 좋게 벌써 낮잠이나 자려고요? 나도 낮잠 잘거라구요. 자, 봐요 펠릭스. 가르쳐 줄 테니까······.”


펠릭스가 장난으로 코 고는 소리를 내자, 실비아는 해독이 끝난 종이를 구겨 펠릭스의 침대 위로 던졌다.


“아야!”


“펠릭스. 당신 안 도와주면, 계속 방해할 거예요!”


“아, 던지지 말아요. 어휴, 솜씨도 좋지. 그걸, 어떻게 눈을 맞춰요 맞추기는 또.”


“내가 가르쳤어.” 반쯤 잠든 목소리로, 침대 아래에서 올리버가 말했다. “새총 잘 쏘지?”


“올리버는 벌써 자네. 아무튼, 알았어요. 도와줄 테니까, 그 종이부터 일단 내려놔요.”


다시 종이 하나를 구겨서 손에 쥐고 있던 실비아는, 건너편 침대 위에 있는 펠릭스에게 암호 보는법을 가르쳐 주기 시작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수도원은 평소와 같이 움직이고 있었다. 수도사들은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움직이며, 이제 저녁 시간이 되어 식당에 모이고 있었다. 수도원장역시 식당으로 와서 저녁을 먹으며, 이번에는 그 연금술사의 일행이 보이지 않아 조금 의아해했다. 아무 일도 없이, 그대로 평화롭게 또 하루가 지나갈 것처럼 보이는 수도원에는, 그러나, 곧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미묘한 전조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리고 밤이 되자, 줄곧 방 안에서 숨죽이고 기다리고 있던 세 사람은, 문틈으로 슬쩍 내민 망원경을 통하여 창문 건너편의 이층 복도를 살피고 있었다.


“너무 어두워.” 올리버가 툴툴거렸다.


“그러게요. 조금 예상 밖인걸. 어젯밤은 맑았는데.”


“구름 때문이겠죠. 구름이 달을 가린 걸거예요.” 실비아가 말했다.


“안다고 해서 딱히 도움되는 정보는 아니군요.”


“뭐 어쩌겠어요 달리. 지금이라도 직접 가서 매복하는 편이 더 낫지 않아요?”


“그건 안 돼.” 올리버가 말했다. “매복이라는 건, 지리에 능통한 사람이 하는 거지, 우리처럼 지리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해 봤자 의미없어. 오히려, 안 하느니만 못하지.”


“올리버가 그렇다는군요. 그러니, 실비아. 뭐가 나올 때까지는 계속 이러고 있자고요.”


“알았어요.” 실비아는 툴툴거리면서 다시 망원경에 눈을 갖다대고, 저쪽 창문 바깥의 빈 복도를 내다보았다.




더이상 밤이 깊어지지 않을 정도로 어둠이 가장 깊어진 그 시간에, 복도에서 무언가 움직임이 있었다. 실비아는 처음에는 자기가 잘못 본 줄 알았다. 긴장과 피로로 인해 헛것을 보았다고. 그러나, 어둠 속의 실루엣이 실수로 등불의 갓을 잘못 건드려 불빛이 확 일자, 실비아는 재빨리 펠릭스와 올리버를 불렀다.


“저쪽에 누가 있어요!”


“어디?” 침대에서 반쯤 졸던 펠릭스가, 실비아에게서 망원경을 받아들고 복도를 살펴보았다. 그는 어느 문 틈으로 빛이 새어나오다가, 문이 닫히며 빛이 사그라드는 모습을 보았다.


“봤어요?”


“좋아. 올리버. 일어나요. 가서 재미난 구경을 좀 해 보자고요.”


“드디어.” 올리버가, 진심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빨리 가자고. 몸이 근질거려서 참을 수가 없군 그래.”


“다음에는 올리버 당신을 위해 숲이라도 뚫고가든가 해야겠군요. 아무튼, 가죠!”


세 사람은, 망원경을 집어넣고 어둠 속을 소리없이 슬금슬금 걸어, 그 비밀이 숨겨진 간이 도서관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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