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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의 연금술 가게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1.10.08 16:53
최근연재일 :
2022.01.13 18:00
연재수 :
17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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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06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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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59화

DUMMY

여관 방에 가볍게 짐을 푼 실비아는, 바로 오르투스 마을의 도서관을 찾기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도서관을 찾은 실비아는 그 블루드래곤이라는 생물에 대한 내용이 있을 법한 책들을 모조리 찾아보았다. 신비 동물학, 연금술 재료도감, 숲과 호수의 생태학, 마녀가 들려주는 동화집과 서부 민담 전승까지. 책상에 앉아, 책더미를 옆에 쌓아두고 실비아는 재빨리 책들을 읽어내려갔다.




한편, 올리버와 펠릭스는 오르투스 마을의 시장 거리를 이리저리 돌아다녀보았다. 철물점이나 대장간에서 이런저런 물건들을, 영 시원찮다는 눈으로 둘러보던 펠릭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올리버. 정보가 필요해요.”


“동감이야.”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블루 드래곤은 사람 잡는 짐승이 아니에요. 기본적으로는 그렇죠.”


“맞아. 그리고 내가 알기로, 지금은 산란기도 아니야.” 올리버가 중얼거렸다.


“그래요. 보나마나, 사람 둘이 죽었다는 이야기는 거짓말이 틀림없어요. 헌데, 그래도 좀 이상하단 말이죠.”


“뭐가?”


“그렇잖아요?” 걸음을 멈추고, 펠릭스는 올리버를 돌아보았다. “올리버. 당신도 아다시피, 블루드래곤은 손질하기 여간 힘든게 아니에요. 어지간한 칼날로는 그 가죽에 상처는커녕 흠집조차 못 내죠. 눈알을 장식품으로 만들 정도로 질좋은 용액을 만드는것도, 꽤 실력이 뛰어난 연금술사가 아니면 무리고요.”


“맞아. 어지간한 사람들은, 저걸 붙잡아도 써먹을 데가 없지.”


“그리고, 블루드래곤의 시체는 엄청난 속도로 부패해요. 입안의 독샘과, 내장에 사는 잡균들과 기생충들 때문에. 애초에, 그런 이유 때문에 외뿔소와 달리 사냥당하는 일이 잘 없는 거고요.”


“그래. 그런데, 누군가가 이 블루드래곤에게 현상금을 걸었어. 너도 봤지? 생포 조건이 붙어있는것.”


펠릭스는 조금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저랑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이곳 오르투스에 있나본데요.”


“그러게말야. 그러면, 빨리 움직여야 하지 않아? 선수를 뺏기면, 끝이잖아.”


그러나, 펠릭스는 조급해 하지 않고 차분히 생각한다음, 올리버에게 이렇게 말했다.


“올리버. 정보가 필요해요. 술집에가서 소문이라도 좀 듣고 와요.”


“내 참. 결국 술집이야?” 올리버가 빈정거리듯 말했다. “펠릭스. 좀 더 상상력을 발휘할 수는 없어?”


“그정도면 충분하죠. 저는, 다른 곳을 찾아볼 테니까. 오늘 밤에 여관에서 다시 만나요. 그럼, 수고해줘요 올리버.”


말을 마친 펠릭스는 시장 거리를 벗어나, 어딘가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리고 올리버는 잠시 펠릭스의 뒤를 보다가 술집을 찾아 걸음을 옮겼다.




펠릭스가 도착한 곳은, 오르투스의 우편국이었다. 동쪽에서 건너오는 편지와 소포, 우편들이 모두 여기에 모이기라도 하는 것인지, 오르투스의 우편국은 성 내의 한 구획을 거의 혼자 통째로 쓰다시피 하고 있었다.


그리고 펠릭스는 그 구획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우편 검문소, 분류소, 화물 집하장을 거쳐 마침내 우편국 사무소를 찾아 안으로 들어갔다.


펠릭스는 편지지를 하나 사서 몇 자 휘갈겨 쓴 다음, 가장 빨리 도착하는 속달 우편으로 어딘가에 부쳤다. 비용으로 은화 세 닢이나 내야 할 정도로 비싼 서비스였지만, 그만큼 빨리 도착할 것이라 믿으며, 펠릭스는 흔쾌히 비용을 지불하고 우편국 구획에서 다시 시장 거리로 나섰다.




한편, 올리버는 우선 오르투스의 술집들이 어디에 모이는지 살펴 보았다. 별 볼일 없는 농부들이 모이는 곳 보다는, 가급적이면 저 블루드래곤을 노리는 사냥꾼들이 올 법한 술집이 어디일지 그는 찬찬히 살펴보았다. 블루드래곤의 독특한 성질을 고려한다면, 아마 그 사냥꾼들은 누군가에게 고용되어 있을 것이다. 저런 쓸데없는 일로 사냥꾼을 고용할 만큼 여유있는 고용주라면, 어쩌면 돈을 팍팍 쥐어줄 지도 몰랐다.


그래서 생각 끝에 올리버는, 겉만 번지르르하고 쓸데없이 술값이 비싼 술집 근처를 어정이며 주위를 살폈다. 해가 저무는 때, 이곳으로 사냥꾼들이 몰려오길 기다리면서.




올리버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과연, 해가 저물고 한 십 분이나 지났을까, 거리 저쪽에서 한 무리의 사냥꾼들이, 마치 나 사냥꾼이오-하고 사방에 광고라도 하려는듯 판에 박힌 차림새를 하고 술집으로 들어갔다. 올리버는 그들이 들어간 다음, 잠시 기다렸다가 그도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술집 안은 그야말로 조그마한 혼돈이었다. 번쩍거리는 금관악기를 연주하는 악단들이 거슬리는 연주를 하고 있었고, 그 답답한 화려함에 비해 한없이 초라하고 시골 느낌이 물씬 나는 거친 술이 테이블 위에서 이리저리 돌고 있었다.




올리버는 그 사냥꾼들이 모여있는 테이블 근처로 가서, 술집 주인에게 곧 동료가 올 거라는 뻔한 거짓말을 하며 테이블에 앉았다. 주인은 당연히 그리 얼굴이 밝지 않았지만, 올리버가 은화 한닢을 물려주자 이내 얌전하게 테이블 위에 술잔을 내려놓았다.




취하지 않도록 슬렁슬렁 술을 마시는 척만 하며, 올리버는 근처에서 들려오는 소음에 귀를 기울였다.


“······해서 말이야. 오늘도 또 허탕이라니까.” 사냥꾼 애송이중 한 명이 중얼거렸다. 이제보니 그들은 모두 젊고 경험이 부족해 보였는데, 그야말로 이런 허무맹랑한 의뢰를 맡기기에 더할나위 없어보였다.


“진짜 있기는 하대?”


“있다는데. 얼마 전에도, 숲에서 놀던 어린애가 봤다잖아.”


“거짓말이겠지. 애들은, 남의 이목을 끌려고 택도 없는 거짓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잖아.”


“그럴지도. 하지만, 있다는 것 자체는 맞다고 봐. 부러진 나뭇가지나 뿌리, 쥐 파먹은 것처럼 패인 덤불, 자라다 말고 허리가 뚝 부러진 나무. 분명, 어디 도마뱀이 있기는 해.”


“글쎄말야. 아, 그보다도. 누가 자꾸 우리 덫을 죄다 망가뜨리는데. 대체, 어떤 놈 짓이래?”


“모르지. 나무꾼이 장난으로 그랬을지도.”


“하여튼, 시골 촌놈이란······.” 올리버는 그 말을 듣고 자기도 모르게 주변의 눈치를 보았다. 다행히, 그 사냥꾼의 말을 들은 오르투스 사람은 없는듯했다.




올리버는 그 뒤로도 사냥꾼들의 시답잖은 잡담을 계속해서 들었다. 그러나 결국, 올리버는 그들의 고용주가 누구라든가, 또는 도마뱀을 포획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썼다든가 하는 중요한 정보는 거의 얻지 못했다. 다만, 쇠사슬로 만든 그물로 놈을 겨우 잡았는데, 그것을 느긋하게 찢고 도망치는 모습을 보았다는것. 그것이, 올리버가 네 잔의 술잔을 비울 동안 알아낸 사실의 전부였다.




해가 저물고 달이 뜨자, 펠릭스와 올리버, 실비아는 저마다의 일을 마치고 여관으로 비슷한 시간에 돌아왔다. 그러나 간발의 차로, 그들은 여관에서 서로 마주치지는 않고 각자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미리 말을 맞춰둔 대로, 펠릭스는 올리버의 방으로 가 그가 새롭게 알아온 정보를 들었다. 쓸모 있는 정보라고는 단 하나도 없었지만, 그는 올리버에게 수고했다고 말 해주고는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방으로 돌아온 펠릭스는, 가만히 천장을 올려다보며 어떻게 그 도마뱀을 붙잡을지 몇 가지 생각하다가, 금새 아주 푹 잠이 들었다.




새 아침이 밝아, 세 사람은 저마다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 여관 일층에 모였다.


“좋은 아침.”


실비아가 계단을 내려오는 펠릭스를 향해 말했다.


“좋은 아침. 올리버는요?”


“아직 안 내려왔어요.” 실비아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찾아보고 오죠.” 펠릭스가 계단을 도로 올라가며 말했다.




올리버는 여전히 쿨쿨 자고 있었다. 아마, 그 정보를 모은다고 술을 혼자 넉 잔이나 마셔서 그런 모양이었다.


“올리버. 일어나요, 이 잠꾸러기 같으니.”


“아, 펠릭스. 술 깨는 약 좀 만들어 줘.” 침대에 누워 있는대로 인상을 쓰고, 여전히 두 눈을 감은채 올리버가 말했다.


“물 마시라니까. 하여튼, 전에도 그러더니······.”


“그럼, 물이라도 좀 줘.”


펠릭스는 굳이 여관 일층으로 내려가, 의아한 눈으로 그를 보는 실비아의 시선을 외면하며, 물을 한 잔 구해서 올리버에게 가지고 돌아왔다.


“그렇게 술이 약해졌어요?”


“여기 술이 세.” 겨우 일어나, 물로 목을 축이며 올리버가 말했다. “왜 이렇게 센거야?”


“서쪽에는 뭐든 거칠고 험하죠. 땅도, 사람도, 짐승도.”


“그렇다고, 술까지 거칠고 험하게 만들 필요는 없잖아?”


올리버가 하소연을 했지만, 펠릭스는 딱히 할 말이 없어 그에게 대꾸하지 않았다.


“아무튼, 슬슬 가 보자고요. 그 문제의 블루드래곤을 잡으러.”


“알았어. 보채지좀 마. 무슨, 겨울 축제 소나무 밑에서 선물 기다리는 어린 애도 아니고.” 그러면서 올리버는 툴툴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슬슬 나갈 채비를 갖추기 시작했다.


채비를 갖춘 올리버는 펠릭스와 같이 계단을 내려오며 밑에서 기다리던 실비아에게 말했다.


“좋은 아침.”


“그래요. 좋은아침, 올리버.”


올리버는 하품을 하다가, 실비아의 의기양양한 얼굴을 보고 잠시 그녀를 멍하니 쳐다봤다.


“왜요?”


“아니.” 시선을 피하며, 올리버는 입맛을 다셨다. 그러자 실비아는 눈을 깜빡이며 그를 보다가, 생긋 웃었다.


“자, 그럼. 이제 가 보죠. 그 숲 속으로.” 그리고, 그 누구보다 의기양양하게 앞장서서 걸어나가며 펠릭스가 말했다.




오르투스 마을의 서쪽 관문을 지나자마자, 길 저쪽으로 짙고 빽빽한 숲을 향해 뻗어있는 오솔길이 보였다.


“저기군요.”


펠릭스가 오솔길 쪽으로 접어들며 말했다.


“올리버. 오늘은 앞장서지 않아요?” 실비아가 뒤에서 묻자, 펠릭스의 뒤를 생각없이 따라가던 올리버가 뒤늦게 앞장섰다.


“아, 참.” 그리고 올리버는, 여전히 잠이 덜 깬 얼굴이었지만, 몸에 익은 행동대로 능숙하게 길을 터 나가기 시작했다.




숲을 좋아하는 실비아는, 어느새 도마뱀도 잊은 것처럼 호기심으로 눈을 반짝이며 서쪽의 숲을 둘러보았다. 직선으로 곧게 자란 나무가 많은 동쪽과 달리, 서쪽의 숲은 제멋대로 구불구불 자라난 나무가 다른 나무가 얽히고, 그 아래에서 다시 거친 덤불들이 두서없이 피어나 그야말로 무질서하기 짝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 덕분이랄까. 훨씬 낭만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가령, 저 나무에는 무슨 사연이 있어 두 나무가 하나로 엮인 것일까? 하는 점이나, 또는 이 덤불 속에 어쩌면 요정이 숨어있는건 아닐까 하는 식으로.


“대단히 숲이 마음에 드나보죠?” 뒤를 힐끗 돌아보더니, 펠릭스가 실비아에게 말했다.


“맞아요. 아 참!” 그리고 실비아가 멈춰서자, 펠릭스와 올리버도 그 자리에 곧 멈춰섰다.


“왜요?”


실비아는 펠릭스에게 대답하지 않고, 주머니에서 조그만 향수병을 꺼내 자기 손목에 펴발라, 귀 뒤나 목, 드러난 피부 여기저기에 치덕치덕 바르기 시작했다.


“아니, 향수를 왜 뿌려요?”


펠릭스가 항의하자, 실비아는 씩 웃었다.


“귀족이니까요.”


“도마뱀이 싫어한다고요, 그런 강한 냄새.” 펠릭스가 투덜거리며 주머니를 뒤지더니, 약병 하나를 꺼내 실비아에게 내밀었다.


“뭐에요?”


“뿌려요. 향수 냄새를 잡아 줄 거예요.”


“싫은데요.” 실비아가 말했다.


“뿌리라니까요?”


“싫어요. 향수 냄새가 없어지면, 도마뱀이 튀어나올지도 모르잖아요? 전 무섭다고요.”


“아니, 무서우면 그냥 마을에 가만 있든가······.” 펠릭스가 툴툴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올리버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그래, 그렇게 된 거로군, 실비아?”


실비아는 모른체 하며 시선을 슬쩍 피했다.


“뭐가요, 올리버?”


“펠릭스. 실비아가 네게 싸움을 건 거라고.” 올리버가 웃으며 중얼거렸다. “실비아는 네가 도마뱀을 잡지 못하도록 할 셈이고, 너는 도마뱀을 어떻게든 잡을 생각이지. 하여튼, 열심히 해봐 펠릭스.”


“실비아. 치사하게, 이렇게 나오기에요?”


“뭐가요? 저는, 그냥 도마뱀이 무서워서 그러는 것 뿐이에요.”


“그럼, 왜 따라 왔어요?”


“제 약에 쓸 재료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얄밉게도, 실비아가 말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펠릭스 자기가 직접 그녀에게 했던 말이라, 그는 거기에 대고 뭐라 할 수가 없었다.


“올리버! 당신은 제 편 아니에요?” 그래서 펠릭스는 대신 올리버에게 항의했다.


“걱정마, 펠릭스. 나도 채집꾼으로서 최선을 다하기는 할 테니까. 하지만, 그 향수 냄새. 향이 어마어마하게 강렬한데, 과연 도마뱀이 가만히 있을런지.”


펠릭스는 혼자 씩씩거리더니, 이렇게 내뱉었다.


“내 참. 하나만 알아둬요, 실비아. 그렇게 단내가 나는 향수를 뿌리면, 꿀벌, 말벌, 개미, 온갖 잡벌레들이 꼬여요.”


“네? 진짜요?” 갑자기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실비아가 말했다.


“당연하죠! 그 꼴 보기 싫으면, 지금이라도 이 약 뿌려요!” 펠릭스가 다시 약병을 내밀었다. 그러자 실비아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비죽이며 약병을 받아들고 자기 몸에 뿌려댔다.


“시도는 좋았지만, 실패했어요, 실비아.”


“이걸로 끝일거라 생각하지 말아요, 펠릭스.”


여전히 포기하지 않는 눈으로, 실비아가 말했다.




앞장서서 걸어가던 올리버는, 생각지도 못하게 상황이 재밌게 흘러가 실실 웃으면서 길을 텄다. 그리고 펠릭스는, 이번에는 실비아가 또 무슨 수작을 부려올지 신경이 쓰여 도저히 집중이 되질 않았다. 그는 걷다가도 몇 번씩 뒤를 힐끔힐끔 돌아보았다.


“왜요?”


그러면 실비아는 무슨 문제라도 있냐는듯, 쓸데없이 똘망똘망한 눈으로 펠릭스를 쳐다봤다.


“아녜요.”


그러면 펠릭스는, 영 못미덥다는 투로 대충 대답하고는 괜히 짜증난 눈으로 블루드래곤의 흔적을 찾아 시선을 이리저리 휙휙 돌렸다.




한참을 조용하게 걸어가다가, 올리버가 일행들을 멈춰세웠다. 그는 어느새 주워든 나무 지팡이 끝으로 짓뭉개진 나무 뿌리를 가리켰다.


“있나본데.” 올리버가 말하가기 무섭게, 펠릭스는 사냥개처럼 그 뿌리가 짓뭉개진 자리에 얼굴을 처박고 살펴보기 시작했다.


“어때요?” 뒤에서 실비아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진짜 있나본데요.” 가만히 그 근처를 살피다가, 코를 킁킁거리며 펠릭스가 일어섰다.


“사냥개같네요. 꼭.” 실비아가 놀리듯 말했다.


“비슷하다고 볼 수 있죠.” 그러자 펠릭스는 전혀 개의치 않고 당당하게 대답했다. “올리버. 방향을 알수는 없겠죠?”


“그것까지는 무리야. 여긴 바닥 여기저기에 풀이 자라있잖아. 풀 위를 밟고 지나간거면, 알기 힘들겠지.”


“저것들은요?” 펠릭스가 손가락으로 저쪽 풀숲을 가리켰다. 누가 밟고 지나간 것처럼, 풀들이 한 방향으로 누워 있었다.


“방금 지나간건가.” 올리버는 중얼거리며 그쪽으로 다가가 발자국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살펴보았다.


“올리버. 술 좀 깨요.”


“약 주던가. 서쪽 술은 몸에 영 안 받는걸.” 올리버가 툴툴거리며 괜히 뻑적지근한 어깨를 빙빙 돌려 풀었다.


“약은 비싸요.”


“그럼 말을 말든가.”


그리고 올리버는, 두 눈을 빛내며 칼을 뽑아들고, 앞을 가로막는 덤불과 나뭇가지를 베어내며 발자국이 이어지는 수풀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수풀 속을 걷다보니, 당연하게도, 그들은 길을 벗어나 숲 속 어딘가에 졸지에 뚝 떨어지게 되었다.


“여기서 끊겼어.”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바닥을 살피던 올리버가 일어서며 말했다.


“쳇.” 펠릭스가 혀를 차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럴 만은 해. 여긴, 잡초가 너무 우거졌어. 발자국을 찾기는 더이상 무리야.”


“그럼 길로 돌아가죠.” 실비아가 살짝 웃으며 말하자, 펠릭스는 왜인지 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더욱 인상이 찡그려졌다.


“실비아. 이번에는 운이 나빴을 뿐이에요.”


“아, 물론이죠. 그런 날도 있는거 아니에요, 펠릭스? 원하는대로 다 되는 인생이란 없는 법이에요.” 실비아가 괜히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말했다.


“내 참. 대체누구 편인지. 까짓 도마뱀 하나 잡는것도 못 도와주고.”


“까짓 도마뱀이 아니니까 그렇죠!” 대뜸 멈춰서며, 실비아가 말했다. “영물이라잖아요.”


“영물이긴하죠.”


“그렇긴 해.”


“그 영물을, 뭐요? 붙잡아 키우고 싶다고요? 참 대단하군요 펠릭스.”


“뭐가 어때서요? 그러는 당신은, 마찬가지로 영물 취급받는 외뿔소의 뿔을 경매장에서 살 때는 입 하나 벙긋 안 했으면서.”


“그 때는, 몰랐어요.” 꼬리를 내리며 실비아가 말했다.


“하여튼, 제멋대로. 외뿔소한테도 미안하다고 뿔 돌려주든가, 아니면 도마뱀한테도 영물취급 해주지 말든가. 사람이 일관성이 있어야죠.”


그러자 실비아는 삐쳤다는 뜻으로, 입을 비죽거리며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뭐라 투덜거렸다.




다시 길로 돌아와, 도마뱀의 흔적을 찾아 세 사람은 이리저리 숲을 둘러보며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실비아는 허리춤에서 무언가를 꺼내었다. 그건, 오카리나였다. 그녀는 오카리나에 부드럽게 입을 갖다 대고, 숨을 불어넣어 소리를 냈다.


“으악!” 예상치 못한 소리에, 펠릭스가 용수철처럼 펄쩍 뛰어올라 뒤에서 걷던 실비아가 더 놀랄 지경이었다.


“뭐해요?” 펠릭스가 실비아에게 항의했다.


“새로 악기를 샀어요.”


“악기?” 펠릭스는 실비아의 손에 들린 오카리나를, 당혹스런 얼굴로 보았다. “지금? 여기서? 이 상황에, 악기 자랑을 하겠다고요?”


“자랑이 아니라, 연습이에요 연습.” 실비아는 그러고는 다시 오카리나에 입술을 갖다대었다.


“멈춰요, 멈춰! 도마뱀 도망간다고요!”


“그래요? 하지만, 숲 속에서 악기 연주 해 보는게 제 소원이었는걸요.” 그러면서 다시 실비아가 오카리나에 숨을 불어넣자, 펠릭스가 펄펄 뛰어, 뒤에서 보던 올리버가 다 웃을 정도였다.


“관두라니까!”


“꽤 잘 부네.” 펠릭스의 속이 타는 것을 뻔히 알면서, 올리버가 히죽거리며 말했다. “그런데, 실비아.”


“왜요?” 오카리나에서 입을 떼고, 실비아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진짜로, 악기 소리에 반응하는 뱀이 있어.”


“네에?!” 실비아의 얼굴이 한 순간에 사색이 되었고, 반대로 펠릭스의 얼굴은 단번에 득의양양 해졌다.


“그래요. 맞아, 맞아요 실비아. 뱀과 만나기 싫으면 그 오카리나는, 나중에 천천히 연습하는게 좋을걸요?”


“진짜, 있어요?” 반신반의한 표정으로 실비아가 물었다.


“있어요. 진짜로.”


“그럼, 어쩔수 없죠.” 실비아는 뱀과 만나고 싶지는 않았는지, 금새 포기하고 오카리나를 도로 집어넣었다.


“내 참. 어디까지 방해할 심산인지. 아주, 대단히 기대가 되네요.” 실비아가 오카리나를 도로 넣는 것을 확인한 다음, 다시 앞으로 걸어가며 펠릭스가 말하는데, 갑자기 올리버가 그를 멈춰세웠다.


“올리버. 왜요?”


올리버는 말없이 칼을 뽑아들고, 앞에서 부스럭거리는 수풀을 노려보았다.


“쉿.”


숲 속에서, 갑자기 바람이 불어왔다. 어딘가 조금 서늘하고 오싹한 바람이. 실비아는 오한을 느끼며 온 몸을 부르르 떨며, 자기도 모르게 어느새 공포에 조금 물든 눈동자로, 들썩거리는 수풀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수풀은 계속 들썩이고, 들썩이다가, 갑자기 움직임을 멈췄다.


“뭘까요?”


올리버는 천천히 수풀로 슬쩍 걸어가, 지팡이로 수풀을 쿡쿡 찔러보았다. 여전히, 수풀은 움직이지 않았다.


“갔나?”


올리버는 이번에는 지팡이로 수풀을 가볍게 때려보았다. 살짝 흔들렸을 뿐, 수풀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간 건가?”


그리고 올리버가 수풀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자, 수풀 속에서 푸른 덩어리가 번개같은 속도로 튀어나와 올리버에게 달려들었다.


“올리버!”


“꺅!”


바닥에 나동그라진 올리버의 바로 앞에, 푸른 도마뱀이 눈을 번뜩이고 있었다.


“블루드래곤이다!” 펠릭스가 외쳤다. 그러자 도마뱀은, 고개를 돌려 금색 눈동자를 껌뻑이곤 그 커다란 주둥이에서 혀를 낼름거리며 펠릭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순식간에 새파란 아가리를 벌려 펠릭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펠릭스!”


실비아의 비명 소리에, 숲 속 나무 위에 모여있던 새 떼가 일제히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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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66화 21.11.09 25 1 23쪽
65 65화 21.11.09 24 1 20쪽
64 64화 21.11.08 24 1 22쪽
63 63화 21.11.08 23 1 24쪽
62 62화 21.11.07 22 1 28쪽
61 61화 21.11.07 27 1 21쪽
60 60화 21.11.06 22 1 26쪽
» 59화 21.11.06 25 1 20쪽
58 58화 21.11.05 24 1 22쪽
57 57화 21.11.05 23 1 24쪽
56 56화 21.11.04 25 1 25쪽
55 55화 21.11.04 19 1 24쪽
54 54화 21.11.03 28 1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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