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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의 연금술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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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1.10.08 16:53
최근연재일 :
2022.01.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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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0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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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2쪽

58화

DUMMY

서쪽의 낯설고 신비로운 풍광이 이제는 익숙하게 느껴질 즈음에, 도로 저쪽으로 커다란 도시가 그 모습을 드러내 보였다.


“저긴 뭔가요?” 실비아가 마부에게 물어보았다.


“오르투스라고 합니다.”


“오르투스?”


“동쪽이라는 뜻입니다.”


“여긴, 서쪽이잖아요?”


“왕국 수도 기준으론 그렇지만, 저쪽 사람들 입장에서는 동쪽의 대도시니, 오르투스입니다.”


“아, 그렇네요.” 실비아는 납득이 간다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서쪽의 대도시라곤 해도, 동쪽에서 흔히 보던 성들과 비슷하게 생겼네요?”


“사실, 저것도 다 사정이 있습니다.” 마부가 말했다.


“뭔데요?”


“그러니까, 원래는 저곳도 제대로 된 울타리도 없는, 그저 크기만 한 도시였답니다. 하지만, 동쪽과 전쟁을 하게 되면, 아무래도 국경 근처의 대도시가 되는 꼴 아닙니까? 그래서 동쪽의 축성 기술을 배워왔는지, 훔쳐왔는지 해서 비슷하게 지었다고 합니다.”


“서쪽에는 성을 안 짓나요?”


“대부분 나무로 건물을 올리기도 하고. 서쪽 사람들은 울타리를 세워 들짐승을 막기보다는, 그것들과 부대껴 살아가기로 했답니다.”


“위험하잖아요.”


“서쪽 사람들은, 동쪽 사람들 보다 훨씬 강인하거든요. 뭐, 그것도 이젠 옛 말이지만.”


실비아는 점점 가까워지는 오르투스의 성을 보며, 익숙함과 낯섦이 희미한 경계를 가지고 섞인 도시에 호기심을 느꼈다.




마차는 오르투스의 성 입구 검문소를 지나, 마침내 성 안으로 들어갔다. 다른 마차들이 모여있는 마차 대여소에 도착한 뒤, 펠릭스와 올리버, 실비아는 마차에서 내려 삯을 지불했다.


“여기가 서쪽이군요!”


괜히 실비아가 심호흡을 하며 말했다. 하지만, 오르투스의 공기는 동쪽에서 계속 맡아오던 공기와 어딘가 비슷하게 느껴졌다.


“여긴, 그렇게 새롭지는 않네요.”


“그럴만도 하지. 동쪽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제일 많이 머무는 곳들 중 한 군데야.” 올리버가 설명해 주었다.


“그래요?”


“그래. 전쟁에서 승리한 건 우리 왕국이긴 하지만, 서쪽의 점령지를 어떻게 다룰지는 꽤 골치아픈 문제기도 했거든. 거대한 산맥이 중간에 떡하니 가로막고 있으니, 무슨 수를 쓰던지 간에 서쪽 점령지에서 탈이 날 가능성이 컸어.”


“그런데, 동쪽 사람들이 이리로 올 이유가 있나요?”


“바로 그 이유 때문이지. 전쟁으로 나같은 병사들은 손해밖에 안 봤지만, 뒤에서 돈놀이를 하는 귀족들 중에는 크게 이득을 본 사람들이 많아. 그 사람들은, 왕국령에 속해 있으면서도, 왕권의 힘이 잘 미치지 못하는 서쪽의 점령지를 매력적으로 평가했어.”


“그렇군요.”


“그래. 그래서, 그들의 입김이 닿은 사람들과, 왕국 안에서도 별 볼일 없던 사람들이 부푼 꿈을 안고 서쪽으로 건너와, 동쪽과 닮은 이 도시에 스물스물 모여든거야.”


“자, 올리버. 역사 설명은 그쯤하죠.”


펠릭스가 올리버의 말을 정리하며 끼어들었다.


“왜요? 한창 재밌었는데.” 실비아가 입을 비죽였다.


“정보를 모아야 해요.”


“무슨 정보요?”


“호수뿌리에 관한 정보도 얻어야 하고, 그리고 여기서 더 서쪽으로 갈만한 경로도 어디가 좋을지 알아봐야 해요.”


“호수뿌리가, 이 근처에 있나요?” 실비아가 물었다.


“당신 언니가 제게 알려준 바에 의하면, 여기서 서쪽으로 가는 길에 커다란 숲이 나오는데, 그 숲 어딘가에서 본 것 같다던데요.”


“대단히 정확한 정보네요.”


“호수라는건, 그렇게 흔하게 숲 속 곳곳에 박혀있지 않아요. 그러니, 아마 수소문을 해 보면 후보를 꽤 줄일 수 있을 테죠.”


“잘 된 일이네요. 저기, 펠릭스. 그런데요. 제가 하나 제안해도 될까요?”


“오, 뭐죠?” 펠릭스는 조금 의외라는듯, 실비아를 돌아보며 말했다.


“식사부터 하죠.”


“아.” 펠릭스는 잠시 가만히 얼어있다가, 갑자기 허탈하게 웃었다.


“왜 웃어요?”


“아니, 나는 또. 당신이 나 몰래 무슨 공부라도 해 온줄 알았죠. 하긴, 바랄 걸 바라야지.”


“아니, 식사도 중요한 일이거든요!” 실비아가 얼굴을 붉히며 항의하자, 옆에서 올리버도 고개를 끄덕이며 끼어들었다.


“맞아. 중요한 일이지. 모처럼 새로운 땅에 발을 디딘 만큼, 서쪽의 식사라는 것을 한번 체험해 보자고.”


“내 참. 알았어요. 자, 그럼, 쓸만한 식당을 찾아보죠!”




세 사람은 오르투스의 어딘가 익숙한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그들은 누구에게 묻지도 않고, 표지판을 보지도 않았지만, 시장 거리가 어디인지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그곳을 거닐며 잠시 어딘가 동쪽에서 봤던 것과 비슷한 상품들을 둘러본 다음, 그들은 마침내 여관이 딸려있지 않은 식당으로 들어갔다.


“실망했나요?”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는동안, 펠릭스가 실비아에게 물었다.


“사실, 조금요.”


“여긴 동쪽에서 온 사람들이 많아. 어쩔 수 없는 노릇이긴 하지.” 올리버가 테이블 위를 손가락으로 톡톡 리듬감있게 두드리며 말했다.


“그래도, 터널을 막 빠져 나왔을 때는, 모든 것이 새롭게만 느껴졌는걸요. 들판에 핀 들꽃의 색깔부터 해서······.”


“뭐, 결국 사람 사는 동네는 다 똑같다는 뜻인지도 모르죠.”


“그렇기야 하겠어요? 어디, 서쪽 음식을 먹고 나서도 그렇게 말 할수 있는지 한번 보자고요.”


마침, 따끈따끈한 음식이 담긴 접시들이 세 사람의 테이블 위로 올라왔다.


“양고기군.” 올리버가 코를 킁킁거리며 말했다. “보자. 달콤한 소스에, 딱 적당하게 익었어. 요리사가 꽤 솜씨가 좋은가본데. 어린 양을 잡았군. 꽤 호화스러운걸?”


“올리버. 무슨 미식가라도 된 마냥 그렇게 말 안해줘 돼요.” 대충 나이프로 양고기를 크게 잘라, 입 안에 넣고 우물거리며 펠릭스가 말했다.


“별로, 서쪽 음식이라는 느낌은 안 드네요.” 실비아도 고기를 작게 한조각 잘라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동쪽 사람들이 많은 도시니까.”


“좀 더 나이든 양을 잡았다면 또 모르겠죠. 양고기는 아주 독특한 풍미가 있다는데, 이건 그런 풍미도 없고. 적당히 부드럽고, 소스는 짜고 달죠. 그러니 그냥 소고기나 닭고기나 칠면조랑 비슷하니 원.”


“미식가 납셨군 아주.” 올리버가 툴툴거렸다.


“그러게요. 펠릭스. 아까 당신이 한 말 그대로 돌려주죠. 그렇게 무슨 미식가라도 된 마냥, 말 안 해줘도 돼요.”


펠릭스는 그러자 씩 웃으며 다시 고기를 크게 한 입 잘라 입 안에 넣고 우물거렸다.


“맛은 좋네요.”


실비아도, 고기를 먹으며 작게나마 한 소감 말했다.




들뜬 마음으로, 조금 호화스런 식사를 마친 세 사람은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식당을 빠져나왔다.


“휴! 이제 뭐하죠?”


“정보를 긁어모으러 가야죠.”


“어디로요?”


“마을 회관이 좋겠죠. 포고꾼도 근처에 있을테고, 소식지도 안에 가득 있을테고, 또 게시판에는 공고문이 이것저것 붙어있을테니까.”


“거긴, 좀 지루한데.” 실비아는 벌써 식곤증이 오는지, 입을 가리고 작게 하품을 하며 말했다.


“달리 방법이 있나요. 하긴, 올리버라면 술집으로 들어갔을지도.”


“술집은 왜요?”


“낭만 소설을 읽으면서, 제게 그 이유를 묻나요?”


“제가 읽는 낭만 소설에, 술집 이야기는 거의 안 나오거든요?” 실비아가 다시 항의를 하자, 펠릭스는 올리버를 불렀다.


“올리버. 설명해줘요.”


“아, 뭐. 고전적인 이야기긴 한데. 뭐 그런거 있잖아. 선원이라든가, 밀수꾼이라든가, 군인이라든가, 달리 누가 됐든 간에, 술에 취해 그만 자기도 모르게 실언을 내뱉는거지. 아주 중요한 정보를, 실수로 흘려버리는 거야. 그럼 나는 그 근처에서 술마시는 척만 하며 흘린 정보를 주워담고.”


“그런 일이 일어나나요?”


“우연히 일어나진 않지. 보통 그런 일은, 작정하고 술꾼인척 위장한 사람들이 목표에 집요하게 달라붙어야 가능한 일이니까. 어지간히 중요한 정보를 아는 사람들은 입이 무겁기 마련이야. 술 몇 잔 마신다고 술술 부는 놈들은 거의 없어.”


“자, 올리버. 강의는 여기까지 하고. 그래서 이제 슬슬 마을 회관으로 가 보죠?”


“저도 같이 가야겠죠?”


“싫음 여기 길바닥에서 돌아다니고 있던가요.”


“그건, 좀 무서워요.”


“그럼 따라와요. 그리고, 생각보다 지루하지도 않을 걸요.”


“그런가요?”


실비아의 물음에, 펠릭스는 웃음으로 대답해 주고는, 자기도 똑같이 길도 모르면서 무턱대고 앞장서기 시작했다.




오르투스의 마을회관은 찾기 쉬웠다. 광장 한 가운데에 있기도 했고, 서로다른 두 가지 문자로 두 개의 팻말을 세워둬서 그런 것도 있었다.


“봐요! 서쪽 문자네요.” 실비아가 팻말을 쳐다보며 말했다.


“읽을줄 알아요?”


“조금은요. 저는, 귀족으로 이런저런 지식을 배웠으니까요.”


“내 참. 그럼 읽어봐요. 이게 무슨 뜻인데요?”


펠릭스가 서쪽의 낯선 문자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민중 회관이요.”


“제대로 읽은 것 맞죠?”


“맞아요! 그리고, 제가 뭐 잘못 읽었다고 해서 펠릭스 당신이 알아볼 수나 있어요?”


“올리버라면 알지도.” 펠릭스는 올리버를 힐끔 돌아보았다. “올리버. 서쪽 문자 읽을줄 알아요?”


“몰라. 나는, 암호 해독가도 아니었고, 일개 병사였을 뿐이니까.”


“아쉽게 됐군요. 그럼 실비아가 맞다 치고, 안으로 들어가보죠.”


“맞다 치다니! 맞거든요!”


“네네. 어련하겠어요.” 실비아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들으며, 펠릭스는 마을 회관의 문을 잡아당기고 안으로 들어갔다.




마을회관 안은 적당히 조용했다. 도서관 만큼은 아니었고, 시장 거리보다는 훨씬 조용했다. 마을 광장 정도, 귀에 거슬리지 않을 정도의 소음이 간간이 들려올 정도로만 조용했다.


“올리버. 어디 가요?” 들어오자마자 어디론가 걸어가는 올리버에게 실비아가 물었다.


“소식지 좀 보러.” 실비아는 올리버의 뒤에 쌓여있는 소식지의 무더기를 힐끗 보았다. 서쪽 글자로 쓰인 서쪽 소식지와, 동쪽 글자로 쓰인 동쪽 소식지 말고도, 동쪽 글자로 쓰인 서쪽 소식지도 있었다.


“동쪽 말을 못 읽는 사람들은, 동쪽 소식은 모르겠네요.”


실비아가 소식지 하나를 팔랑 펼쳐보며 말했다.


“서쪽 언어를 천천히 잊히게 만들 속셈인거지.”


“에이, 설마 그렇게까지 대단한 이유가 있겠어요?”


“있어. 실비아. 소식지에는, 쓸데없는 잡다한 이야기 말고 진짜 쓸모있는 정보도 섞여있다. 그리고, 장사꾼이 아니더라도 평범한 농부나 어부, 목수, 나무꾼, 대장장이도 그런 정보를 필요로 할 때가 있고.


그런데, 동쪽 언어로만 그런 중요한 정보를 알려준다면? 서쪽 언어만 쓰던 사람들이 동쪽 언어를 배운 사람과 싸워봤자 질게 뻔하겠지? 그럼, 좋든싫든 서쪽 사람들도 동쪽의 언어를 배울 수밖에 없는거야. 그러다보면, 차차 서쪽 언어는 잊히겠지. 결국, 중요한 이야기는 동쪽의 언어로만 이뤄지니까.”


“씁쓸하네요.”


“무작정 때려잡는것보다는, 훨씬 신사적인 방법이지만, 훨씬 잔인하기도 하지. 스스로 써 오던 말을, 포기하게 만드는 거니까.”


실비아는 가볍게 오한을 느꼈는지, 몸을 살짝 부르르 떨며 자기 팔을 감싸안았다.


“쓸데없는 말을 너무 많이 했군.”


“아, 아녜요. 그럼, 올리버. 펠릭스 쪽으로 가 볼게요.”


“그래.” 실비아가 게시판 쪽으로 걸어가자, 올리버는 소식지 하나를 펼쳐들고 천천히 읽어보기 시작했다.




펠릭스와 다른 몇몇 사람들은 마을회관 게시판 앞에 옹기종기 모여있었다.게시판 위에는 정말 별의 별 정보가 다 붙어 있었다. 지명 수배범, 왕의 칙령, 오늘의 연설, 시세표, 시장거리에서 싸게 판매하는 상품의 광고도 붙어있었다. 그리고 그 게시판의 구석진 자리에 펠릭스가 멀뚱히 서서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펠릭스. 뭐 있나요?”


실비아는 펠릭스 쪽으로 다가가다, 저쪽에 붙어있는 왕국 전체 지도를 발견했다.


“아니, 저기 지도가 있는데요. 뭘 보고 있는 거에요?”


“아, 실비아. 이것좀 봐요.” 펠릭스는 게시판에 붙어있는 종이를 가리켰다.


“수배서네요? 그런데······.”


“짐승이죠.” 펠릭스는 종이 안에 그려진 도마뱀의 그림을 가리키며 말했다.


“짐승에도 수배가 붙나요?”


“가끔 붙어요. 뭐, 소나 돼지를 물어갔다든가, 양떼를 잡아먹는 늑대라든가. 그런 것들한테 붙곤 하죠. 저는 농장을 어지럽히는 두더지의 수배서가 붙은 것도 봤어요.”


“별일이네요. 그래서, 저 도마뱀은 뭐죠?”


“글자 읽어봐요.”


실비아는 그림 아래에 적힌 큼직한 글자를 읽어보았다.


“파란 도마뱀. 사람을 잡아먹으며, 이미 두 명이 잡아 먹혔다······. 세상에, 위험천만한 짐승이네요!”


“그래요!” 갑자기 펠릭스가 손뼉을 짝 하고 치는 바람에,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아주, 아주 위험천만한 짐승이죠.”


“가급적이면 안 만났으면 좋겠어요.”


“저는 이놈을 붙잡고 싶어요.” 실비아의 말따위는 듣지도 않은 것처럼, 펠릭스가 말했다.


“내 말 못 들었어요? 사람 잡아먹는 괴물이라잖아요.”


“저는 저놈 잡고 싶어요.” 다시 펠릭스가 말했다.


“전 싫어요! 제 약이랑은 상관도 없는 일이고, 위험천만한 괴물이잖아요!”


“올리버라면 가능하겠죠. 그리고, 당신 약과 아주 상관없는 일도 아니에요. 봐요.”


펠릭스는 수배서 아래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그건, 조그맣게 그려진 지도였다.


“그게 뭔데요?”


“저도 지도 쯤은 진작 봤어요. 호수뿌리가 있을 만 한 곳의 후보지를 꽤 좁혀뒀죠. 그런데, 이 무슨 우연의 일치인지, 이 도마뱀이 그 호수 근처에서 나타났다잖아요?”


“네? 당신, 혼자만 알고 있다고 절 속이려는거 아니에요?”


“속이는지 아닌지, 알아볼 방도나 있고요?”


실비아는 머뭇거리며 생각했다.


“없네요.”


“그럼, 그냥 제 말 따라주면 안 될까요?”


“하지만, 싫어요! 무섭잖아요. 당신은 겁도 안 나요? 사람 잡아먹는 괴물이라는데······.”


돌연, 펠릭스가 웃음을 터트렸다. 다른 사람들은 조용히 있는 곳에서, 혼자서만 유난을 떨어가며, 어색하고 부끄럽지도 않은지 그는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더 부끄러워 질만큼이나 웃어제꼈다.


“뭘 그렇게 웃어요!”


“내 참. 실비아. 이 이야기는 이따 올리버가 오면 다시 해 보죠.”


“올리버도 저랑 비슷한 생각일걸요?”


“그건, 두고볼 일이죠.” 펠릭스는 저쪽에서 한창 소식지를 읽는데 여념이 없는 올리버를 힐끗 보았다.




한참동안 소식지를 읽던 올리버는 이제서야 펠릭스가 보고 있던 그 도마뱀의 수배서를 살피기 시작했다.


“소식지가 그렇게 재밌어요?” 실비아가 물었다.


“그렇게 막 재밌는건 아닌데, 뭐랄까. 보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할까? 그런 느낌이지.”


“대단히 재밌나보네요.” 입을 비죽이며 실비아가 말했다. “그래서, 올리버. 저렇게 위험한 괴물은, 피해가는게 상책 아니에요?”


“뭐, 위험한 괴물은 피하는게 상책 맞지.” 여전히 수배서를 살펴보며 올리버가 말했다.


“것 봐요 펠릭스. 피해가자니까요.” 실비아는 의기양양하게 펠릭스를 돌아보았다.


“아니, 그렇지만. 이놈은 글쎄. 그렇게 위험한 생물은 아냐.”


“사람 둘이나 잡아먹었다는 데도요?”


“그게 좀 이상하긴 해. 펠릭스. 네가 보기에는, 이 도마뱀. 뭔 것 같아?”


펠릭스는 실쭉 웃으며 대답했다.


“블루드래곤.”


“그렇지? 그것들은, 사람 잘 공격 안해. 멀리서 눈이라도 마주치면, 슬금슬금 피해가는 순한 놈들이야.”


“사람 둘이나 잡아먹었다는데요.”


“알 깐 둥지를 건드렸나보지. 아무튼, 초식 동물이야. 사람을 잡아먹지는 않는다고.” 올리버가 말했다.


“그런데, 왜 이런 수배서가 붙은 건데요?”


“아하, 그건, 제가 더 잘 설명할 수 있을것 같군요.” 줄곧 입이 근질거렸는지, 펠릭스가 말했다.


“뭔데요?”


“블루드래곤은, 그야말로 걸어다니는 보물창고거든요.”


“네? 어째서요?”


“그 눈동자는 독특한 빛이 나서 보존 용액에 담가 장식품으로 만들고, 가죽은 신비한 푸른빛으로 빛나는데다가 칼을 튕겨낼 정도로 질기고, 발톱은 보약으로 쓰이고, 근육 덩어리인 꼬리는 자양강장제로 쓰이고, 독샘은 도둑과 암살자와 사냥꾼의 무기로 팔리고, 고기는 무게를 달아 푸줏간에 팔리죠. 내장 말고는, 다 써요.”


“그 내장도.” 올리버가 헛기침을 하며 끼어들었다. “몇몇 숲 사람들에게는 정력제라는 이름으로 팔리곤 하지. 별로 먹을 만 한 물건은 아니지만.”


“그래요! 그렇게 대단한 동물이거든요. 아마 저 사람 두 명이 죽었다는것도, 거짓말일걸요. 죽은 사람 이름이랑 장례식 날짜도 안 적혀있잖아요?”


실비아는 그래도 영 못마땅한듯 표정을 지었다.


“펠릭스. 당신, 그 도마뱀 붙잡고 싶다고 했죠?”


“네.” 펠릭스가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붙잡아서, 죽이려고요?”


“아니오.” 여전히 입맛을 다시며, 펠릭스가 말했다.


“네? 그럼, 왜 붙잡아요?”


“키우고 싶었거든요.”


“뭘, 저걸, 키운다고요?” 거의 경악한 얼굴로, 실비아가 말했다.


“네. 키우고 싶었거든요. 사실, 어릴 때부터 꿈이었어요. 대스승님은 온갖 재미나고 신기한 이야기를 많이 들려줬는데, 만나본 사람중에 블루드래곤을 키우는 사람도 있었댔어요.”


실비아는 두 눈을 끔뻑였다.


“저걸, 키운다고요? 제가 잘못 들은거 아니죠? 그게 가능해요? 왕국 법을 어기지 않아요?”


“뭐 어때요? 서커스 극단에서는 곰도 키우고, 잘나가는 귀족은 호랑이도 마당에 풀어 키운다는데. 좀 큰 도마뱀 한 마리를, 그것도 숲 속 연금술 가게에서 키운다고 누가 뭐라 그러겠어요? 쟤들은 성격도 순한데.”


실비아는 당황하여 말이 제대로 나오지도 않는 듯했다. 그러다가, 그는 도와달라는 눈빛으로 올리버를 돌아보았다.


“블루드래곤은, 키우기 힘들지.” 올리버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그래요. 허황된 꿈이라고요.” 실비아도 거들었다.


“내 참. 올리버. 당신은 제게 고용된 채집꾼이잖아요? 제가 잡아달라 하면 잡아주는게 당신 일 아녜요?”


“그렇기야 하지만, 불가능한 일을 할 수는 없어.”


“포획만 해 줘요. 길들이는건 제가 할 테니까.”


“내 주인을 위험하게 만들 수는 없지.”


“내가 실패할 것 같나요?”


“넌, 동물들이 싫어하잖아.” 올리버가 말했다. “코튼도, 너는 싫어한다고.”


“그러고보니, 메를린네 집 동물들도 당신은 영 싫어하는 티를 냈죠.”


펠릭스의 얼굴이 조금 일그러졌다.


“그래, 펠릭스. 키우는건 포기해. 차라리, 포획해서 내다 판다는거면 모를까.”


“오, 올리버. 포획은 가능하다는 뜻인가요?”


“불가능할건 없지. 다만, 쉽지는 않겠지만.” 그러자, 다시 실비아가 올리버를 돌아보았다.


“올리버! 그렇게 말 하지 말아요. 그냥 피해 가자니까요? 그리고, 제 약 하고도 별 상관도 없는 일인데.”


“상관이 아주 없지는 않다니까 그러네. 호숫가에 사는 도마뱀인데, 당신 약에 쓸 재료를 먹어치워버리면 어떡해요?”


그 말을 들은 실비아는 가만히 생각해 보다가, 그래도 못참겠다는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튼요! 저는 싫다고요.”


“왜 그렇게 싫어요?”


실비아는 잠시 우물쭈물하며 대답했다.


“징그러워요. 무섭기도 하고”


“그게 단가요?”


“네.” 실비아가 대답했다. 그러자 펠릭스와 올리버는 서로의 얼굴을 슬쩍 살펴보았다.


“그럼 이렇게 하죠. 실비아. 우리들이 일을 처리하는 동안, 당신은 여기 오르투스에 머물러요.”


“네?”


“그러면 되잖아요? 저랑 올리버가 도마뱀을 잡아서 알아서 처리할 때까지, 당신은 마을에서 쉬고 있어요. 어디 딴길로 새지만 말고.”


실비아는 당황한 듯, 눈동자를 떨었다.


“그건, 조금······.”


“아니면 우리랑 같이 사냥하러 가든가요.”


“그건 싫어요.”


“그럼, 저를 설득해 보겠어요? 쉽지 않은 일일 테지만.”


실비아는 다시 입을 다물고 생각했다. 일분, 이분. 오 분 정도 생각한 끝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따라가겠어요.”


“그렇다면야. 그럼, 올리버······.”


“잠깐만요!” 실비아가 펠릭스의 말을 자르고 끼어들었다. “당신들도, 정보를 모으는데 시간이 필요하긴 하죠?”


“그렇기야 하죠. 사냥은 정보싸움이니까.”


“맞아.”


“그래요. 그럼, 언제 어디서 모일지 우선 정하도록 하죠.”


펠릭스는 뜻밖에 의욕적으로 나오는 실비아를 조금 의아하다는 시선으로 보았다.


“올리버. 밤에 나가는건 무리겠죠?”


“당연한 말을. 블루드래곤은 순하지만, 약한 생물은 아냐. 어느쪽이냐면, 굉장히 강한 생물이지. 갑옷을 입고 말을 탄 기병과 싸워도 이길걸. 그런 놈과 한 밤중에 마주치는건 굉장히 위험해.”


“좋아요. 그럼, 실비아. 오늘은 마을에서 계속 정보를 모으도록 하죠. 그 블루드래곤이든, 아니면 당신 약이든 뭐든 간에.”


“알았어요.” 실비아는 고개를 뻣뻣이 들고, 어디 한번 두고보라는듯 말했다. “그럼, 내일.”


“그래요. 그럼, 내일.”


그리고 실비아는 당당한 귀족의 걸음걸이로 마을 회관을 빠져나갔다.


“무슨 꿍꿍일까?”


“모르죠. 그리고, 별 시답잖은 꿍꿍이일테고요.”


“그래? 저렇게 마음을 다잡은 모습을 보는건, 좀 오랜만인데.”


그 때, 마을 회관의 문이 다시 열리고, 조금 얼굴이 붉게 상기된 실비아가 이쪽으로 쪼르르 돌아왔다.


“벌써 왔나요?”


“저기, 여관은 어디서 묵을 거예요?”


그 소리를 듣더니, 올리버가 피식 웃어버렸다.


“중요한 문제에요!”


“아무데나 묵으면 그만이지 뭘. 아무튼, 알았어요. 그럼 지금 가서 체크인 해 두고 가죠.”


“그래, 그렇게 해요. 자, 빨리요. 빨리.” 펠릭스를 재촉하며 실비아가 말했다. 등을 떠밀려 마을 회관에서 밀려나다시피 하여 빠져나오며 펠릭스는, 대체 실비아가 무슨 꿍꿍이일지 이런저런 가능성을 떠올려 보았다. 하나같이, 하찮고 우스운 것들 뿐이라, 그는 실비아에게 보이지 않도록 슬쩍 실소를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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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연금술 가게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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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83화 21.11.18 26 1 20쪽
82 82화 21.11.17 28 1 24쪽
81 81화 21.11.17 26 1 18쪽
80 80화 21.11.16 26 1 21쪽
79 79화 21.11.16 22 1 22쪽
78 78화 21.11.15 25 1 22쪽
77 77화 21.11.15 25 1 25쪽
76 76화 21.11.14 29 1 20쪽
75 75화 21.11.14 29 1 23쪽
74 74화 21.11.13 28 1 23쪽
73 73화 21.11.13 26 1 20쪽
72 72화 21.11.12 25 1 19쪽
71 71화 21.11.12 24 1 21쪽
70 70화 21.11.11 28 1 19쪽
69 69화 21.11.11 25 1 20쪽
68 68화 21.11.10 22 1 21쪽
67 67화 21.11.10 21 1 20쪽
66 66화 21.11.09 25 1 23쪽
65 65화 21.11.09 24 1 20쪽
64 64화 21.11.08 24 1 22쪽
63 63화 21.11.08 23 1 24쪽
62 62화 21.11.07 22 1 28쪽
61 61화 21.11.07 27 1 21쪽
60 60화 21.11.06 22 1 26쪽
59 59화 21.11.06 24 1 20쪽
» 58화 21.11.05 24 1 22쪽
57 57화 21.11.05 23 1 24쪽
56 56화 21.11.04 25 1 25쪽
55 55화 21.11.04 19 1 24쪽
54 54화 21.11.03 28 1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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