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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의 연금술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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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1.10.08 16:53
최근연재일 :
2022.01.13 18:00
연재수 :
17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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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67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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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774,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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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16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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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1쪽

80화

DUMMY

식어버린 찻잔이 놓여있는 테이블에 마주 앉아있으니 실비아의 눈에 노파의 얼굴이 자꾸 밟혔다. 그리고 실비아는 그 노파의 얼굴을 보고있자니 마음이 아파왔다. 아까까지는 몰랐지만, 그의 손자가 자리에서 사라지자 노파의 얼굴 위에 드리운 근심걱정이 실비아의 두 눈에 너무나도 또렷하게 보였다.


“저기, 죄송해요.”


죄책감을 이기지 못한 실비아가 말했다. 그러자 노파는 의아하다는듯 실비아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으응?”


“제 일행이 너무 막무가내라서.” 실비아는 진심으로 미안하다는듯 말했다.


“아니야. 괜찮네. 그 젊은이가 하는 말에도 일리가 있었으니까.”


노파는 식어버린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정말 그 훔친 약에 담긴 것이 엘릭서였는듯 노파는 찬 음료를 갑자기 마셨는데도 전혀 기침하지 않았다.


“그래요?”


“그래. 솔레루스도, 이제 곧 어른이 될 나이니까.” 노파가 지그시 찻잔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불쌍한 아이라고 내가 너무 감싸안았던게지. 무리해서라도 학교에 보냈어야 하는건데. 다 내 잘못이지.”


노파는 쓸쓸하게 말했지만, 이미 말라버린 그녀의 두눈 위에는 더이상 눈물이 맺히지도 못했다.


“저기, 솔레루스의 어머니는 어쩌다가 죽게 된 거에요?” 실비아가 다시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응? 말 해 주지 않았니?” 노파가 말했다. “동쪽으로 갔단다. 돈을 벌려고.”


“저, 그러니까. 동쪽으로 간다고 돈이 되는 일은 없잖아요. 여자 홀몸으로 돈을 벌기는 힘들었을텐데······.”


“아. 약에 대해 배우러 간다고 했어.”


노파의 말을 들은 실비아는 살짝 놀라 물었다.


“약이요?”


“그래. 약. 서쪽에도 약사들이 많지만, 동쪽의 연금술사들과 비교하면 어딘가 한 군데씩 모자라거든. 그리고 잘 가르쳐 주려고 하지도 않고.” 노파가 웃으며 말했다. “어려서부터 약초에 관심이 많던 아이였어. 동쪽에 뛰어난 연금술사들이 모이는 숲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더니, 자기도 거기서 배우겠다고 집을 나선 거야.”


“그, 그래요?” 실비아는 그 연금술사들이 모이는 숲의 이야기가 어딘가 낯설지 않게 들렸다.


“그래. 그랬는데, 그만. 먼 타향에서 병으로 죽고 말았으니까.” 노파가 시선을 떨구며 말했다.


“저기, 그 병. 붉은 어쩌구 하는 병이라고 했죠?”


노파는 쓸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단다.”


“세상에.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노파가 실비아의 얼굴을 보자, 실비아는 웃으며 얼버무렸다. 방금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른 그 생각이 사실이 아닐 것이라 믿으면서.




솔레루스의 방은 더럽고 비좁았지만, 동시에 그 집 안에서 가장 따뜻하고 아늑한 곳이었다. 침대의 시트는 자주 세탁을 해서 그런지 조금 해진 대신 하얗고 깨끗했다. 방 구석에는 책상과 책꽂이가 있었는데, 책꽂이에 꽂힌 책들은 펠릭스도 이미 잘 아는 것들이었다. 약초학, 약재학, 약학······. 그리고 연금술 개론.


“저기, 아무데나 앉아요.”


시무룩한 목소리로 솔레루스가 말했지만, 펠릭스는 일그러진 얼굴로 아무데도 앉지 않고 방 한 가운데 가만히 서 있었다.


“솔레루스. 약에 대해 공부하고 있었나?"


솔레루스는 머뭇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어릴 때부터 관심이 많았거든요.”


“왜?” 펠릭스가 솔레루스에게 다짜고짜 물었다.


“왜냐고 하셔도······.”


“이유가 있을거 아냐. 뭐든 간에, 어떤 이유가.”


펠릭스는 뭔가 안절부절 못하면서 솔레루스의 방안을 계속 두리번거렸다. 꼭 무언가를 찾거나, 또는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려는 사람처럼.


“어머니가, 어릴 때에 직접 약을 달여주셨어요. 배탈이 났는데, 그 때 저한테 배탈 약과 감기약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셨어요.”


솔레루스가 말했지만, 정작 펠릭스는 그의 말을 듣고있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네 어머니는 동쪽으로 갔다고?”


펠릭스는 책꽂이 어딘가에 꽂힌 책을 하나 쑥 뽑으며 말했다. 그러나 책을 펼쳐보자마자, 펠릭스는 재빨리 책을 덮어버렸다.


“아, 네. 약을 공부하러 간댔는데. 그, 책은 왜 봐요?” 솔레루스가 묻자, 펠릭스는 책을 도로 책꽂이에 넣었다.


“이 책에 글씨. 네가 썼나?”


“어머니 글씨예요.” 솔레루스가 말했다. “그래서, 동쪽으로 약에 대해 배우러 가셨다는데, 돌아가셨대요. 병에 걸려서. 그러니까······.”


“어디로 갔는지 기억하나?”


“단풍마을이었던가, 뭔가 성의없는 이름이었어요. 재밌다고 생각해서, 그래서 아직 기억해요.” 솔레루스가 말했다.




“···솔레루스.”


펠릭스가 엄숙한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펠릭스는 솔레루스를 돌아보았는데, 그의 얼굴 표정은 지금껏 그가 지어온 그 어떤 표정과도 달랐다.


“네, 네?”


“네 어머니가 왜 죽었는지 알고 싶나?”


펠릭스가 말했다. 마치, 저승사자같은 얼굴과 목소리로.


“네? 그야, 알고 싶죠. 그런데, 당신이 어떻게 그걸 알아요?”


“네 어머니는 붉은 가루 병에 걸려 죽었다.” 펠릭스가 말했다.


“네? 처음 듣는 병이에요.”


“우리들중 누군가가 만든 병이니까.”


펠릭스의 말을 들은 솔레루스는 깜짝 놀라 두 눈을 크게 떴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 우리들이 만들었다고요? 당신들이, 당신들 연금술사들이 사람 죽이는 병을 만들었다고요?”


“솔레루스. 우리 연금술사들중 누군가 붉은 가루 병을 만들었고, 네 어머니는 병에 걸렸다. 가만히 놔 두면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며 죽게되고, 죽은 뒤에 그 시체가 역병의 핵이 되어 다시 병을 퍼뜨리도록 설계된 끔찍한 병이었다.”


“그, 그래서요? 그게, 아니, 그러니까, 대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솔레루스가 애처롭게 외쳤다.


“달리 방법이 없었어. 나는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지. 결과적으로 나는 옳았고, 나는 그 일에 대해 전혀 후회하지 않아.” 펠릭스가 다시 말했다.


“···뭘 했는데요?”


“네 어머니 포르투나는 내가 죽였다. 병에 걸려, 고통속에 더이상 몸부림치지 않도록.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병을 퍼뜨리지 않도록. 내가 약을 만들어 주었고, 포르투나는 고요하게 웃으며, 그대로 잠에 빠져 꿈꾸며 죽었다.”


말을 마친 펠릭스가 입을 다물었고, 솔레루스는 얼빠진 사람처럼 가만히 펠릭스를 쳐다보았다. 이제 다시 상황이 바뀌었다. 한쪽으로 크게 기울어 있던 양팔저울 위에 커다란 무게추가 떨어져내리자, 저울이 마구 요동치기 시작했다.


“당신이, 제 어머니를 죽였어요?”


솔레루스가 울먹이며 말하자 펠릭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죽였다. 붉은 가루 병에 걸린 포르투나는, 더이상 살아날 가망이 없었어. 새로운 병의 근원이 되지 못하도록 내가 그녀를 죽였다.”


“우리 엄마를 왜 죽였어요?”


“나는 그녀를 설득했고 그녀는 수긍했다. 행복하게 죽을 수 있는 약을 만들어 주었고, 그녀는 스스럼없이 약을 받아들였다.”


“살릴 수도 있었잖아! 최고의 연금술사라면서! 엘릭서를 알아볼 수도 있고, 세상에 자기가 못 만드는 약은 없다면서! 거짓말쟁이, 사기꾼! 우리 엄마 살려내! 망할 개자식아!”


솔레루스는 펠릭스에게 다짜고짜 달려들어 그 작고 약한 주먹으로 펠릭스를 마구 두들겼다. 그러나 펠릭스는 석상처럼 꼼짝않고 서 있었을 뿐이었다.


“솔레루스. 네가 나를 흠씬 때리든 말든 잠깐은 내버려두겠지만, 적당히 해라!”


펠릭스가 한 손으로 그의 머리를 붙잡고 뒤로 밀어내며 말했다.


“망할 자식이, 우리엄마 살려내, 살려내라고!”


“입 닥쳐! 멍청한놈이, 내 말뜻을 이해 못해?”


펠릭스가 소리치자, 솔레루스는 그 기세에 깜짝 놀라 움직임을 멈췄다.


“설계된 병이야. 기존에 존재하지 않는 완전히 새로운 병 앞에서, 우리 연금술사들이 뭘 할수 있었겠어? 망할 놈이, 나도 최선을 다했어!”


펠릭스가 꼬맹이 앞에서 바락바락 소리쳤다.


“우리 연금술사들은 과거로부터, 먼 과거의 마녀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지식을 그저 답습하는 존재일 뿐이었어, 이 망할 놈아. 내 말 알아 들어? 어느 정신나간놈이 새로이 개발해낸 병의 약은, 우리들 중 그 누구도 못 만들었다고. 나보다 뛰어난 유일한 사람인 내 대스승님조차도! 네 어머니는, 포르투나는, 그 때 내가 아닌 그 누가 와도 못 살릴 상황이었다고!”


“당신이 죽였잖아! 그 약을 안 줬어도 됐잖아. 어쩌면 살릴 수도 있었잖아. 약을, 만들 수도 있었잖아······.”


펠릭스는 엉엉 우는 솔레루스의 얼굴 위에서 해리어의 얼굴을 잠깐 본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때와 달리 왜 이렇게 스스로가 흥분하고 있는 건지 펠릭스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해리어의 약혼자를 죽인 일에 대해, 펠릭스는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그는 난생 처음으로 아주 이상한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위화감이 순식간에 그의 온 몸을 지배했으며, 그의 뛰어난 두뇌는 지금 온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이상한 상황을 해석하기 위해 마구 피를 뿜으며 팽팽 돌았다.




“방 안이 시끄럽군.”


줄곧 조용히 앉아있던 올리버가 중얼거리자 딴생각에 잠겨있던 실비아는 깜짝 놀랐다.


“왜그래?” 올리버가 실비아에게 물었다.


“아, 아니에요.” 실비아는 대충 얼버무렸다.


“저기, 차를 더 내어 올까?”


“아니, 아니에요.” 노파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실비아는 웃으며 거절했다. “저기, 그런데. 몸은 이제 괜찮으세요?”


“아. 그러게. 솔레루스가 가져온 약이 좋은 약이었나봐. 젊은이한테는, 조금 미안하게 됐네.”


노파의 말을 들은 실비아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래도, 잘 해결 될 거예요. 펠릭스는 저래뵈도 근본이 나쁜 사람은 아니니까요.”


“그래. 그렇기는 하지.” 옆에서 올리버도 고개를 끄덕였다.




방 안의 소란은 금새 대강 가라앉았다. 솔레루스는 마침내 울음을 멈추었고, 펠릭스는 알 수 없는 이상한 감각에 사로잡혀 혼란스러워 그저 입을 다물고 있었다..


“살인자.” 솔레루스가 말했다.


“나도 알아.” 펠릭스가 짜증스레 대꾸했다.


“우리엄마 살려내요.”


“죽은 사람은 절대 못살려. 그리고 나는 죽음의 약이 전공이지, 살리는 약은 내 전공이 아니야.”


펠릭스의 말을 들은 솔레루스는, 할 말이 없어진듯 입을 도로 다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엘릭서를 가지고 있었어요? 엘릭서는 사람 살리는 약 아니에요? 당신도 훔쳤어요? 다른 사람을 상대로······.”


“새끼 도둑이, 내가 너랑 똑같은 줄 알아? 그건 내 친구가 만들어서 내게 준 거야.”


“우리 두목도 친구 많아요. 그리고 항상 사람들에게서 빌려왔다고 하거나, 선물로 받았다고 하지만······.”


“말을 말자.” 펠릭스는 짜증스레 입을 다물었다.




펠릭스와 솔레루스는 어색하고 무거운 침묵 속에서 서로 딴 방향을 보고 있었다.


“우리엄마, 왜 죽였어요?” 다시 솔레루스가 말했다.


“아까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나?” 펠릭스가 대꾸했다.


“시신은 어떻게 했어요?”


“불에 태웠다. 흔적도 남지 않게. 조그만 병의 씨앗조차 남기지 못하도록. 뼛가루도 안남았다.” 펠릭스가 중얼거렸다.


“왜 우리한테 안 가르쳐 줬어요?” 솔레루스가 물었다.


“포르투나는 우리한테 자기 가족, 집, 고향, 그 무엇도 말해주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그 빈약한 소식이라도 전해진게 놀라울 지경이지. 그녀가 우리에게 해 주는 말에는 오로지 미래 뿐이었고, 그 미래는 태양이 내리쬐는 따뜻한 광선으로 으로 창창하게 빛나고 있었으니, 우리들은 그녀의 과거에는 관심을 주지 않았어.”


펠릭스는 침을 꿀꺽 삼켰다.


“서커스꾼 트로이가 그녀를 눈여겨봤지. 그리고, 재담꾼 게일도. 그만큼 말솜씨가 뛰어나고 밝은 사람이었는데.”


“그게 누군데요?” 솔레루스가 물었다.


“내 친구들. 뛰어난 연금술사의 자질을 가졌지만, 지금은 아닌 사람들.”


“왜 그만뒀는데요? 우리 엄마는, 그토록 배우고 싶어했던 건데. 그리고 결국 못 배우고 죽어버린 건데. 그런데, 그 사람들은 그걸 갖고 있으면서도 왜 포기했는데요?”


솔레루스가 따지듯이 물었다.


“붉은 가루 병이, 우리들 살아남은 자들의 마음을 산산히 부숴놔서.”


펠릭스가 솔레루스를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들이 멀쩡히 살아남은것 같아? 그 병은, 우리 숲의 연금술사들을 조각조각 잘라 찢어버리고, 우리들의 신뢰와 동료의식, 능력에 대한 믿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지근지근 짓밟아버렸어. 너 혼자 불행해진게 아니란 말이야, 이 짜증나는 꼬맹이가. 네 엄마가 유일한 희생자가 아니었어. 나는 백 명 가까운 병자들을 내 손으로 죽이고,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며 돌에 글씨를 새겨 묘비를 세웠어. 알아?”


“···알았어요. 미안해요.” 솔레루스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됐다. 내가 애 앞에서 무슨 말을 하는건지.”


그리고 솔레루스와 별로 나이 차이도 나지 않는 펠릭스는 그대로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다시 두 사람은 침묵 속에 잠겨버렸다.


“저기, 아까부터 계속 뭐해요?” 그리고 솔레루스는 허공에 대고 알 수 없는 손짓을 하며 소리없이 입을 움직이며 무언가 중얼거리는 펠릭스를 힐끗 보며 말했다.


“저울의 균형이 안 맞아.” 펠릭스가 짜증스레 말했다.


“네? 저울이요?”


“안 맞아. 잘못됐어. 고장나버린건가?” 펠릭스가 당혹스럽게 말했다.


“무슨 저울이요. 여긴, 저울 없어요.” 솔레루스는 이상하다는듯 말했다.


“나도 알아.” 펠릭스가 대꾸하자, 솔레루스는 눈을 깜빡이다가 말했다.


“부엌에 엄마가 쓰던 저울 있어요. 가져올까요?”


“뭐?” 펠릭스가 솔레루스를 돌아보았다.


“아니, 그냥. 저울을 찾길래······.”


“···가져와봐.” 펠릭스가 말했다. “아니, 갖다줘.”


“네. 그러면, 잠깐 있어요.” 그리고 솔레루스는 조심조심 방에서 나갔다.




솔레루스의 방문이 열리자, 거실에 모여있던 세 사람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어떻게 됐어요?” 가장 먼저 실비아가 물었다. 그러자 솔레루스는 멈칫거렸다.


“아, 잘 모르겠는데요.”


“아직 덜 끝났나본데. 조금더 기다리지 실비아.”


올리버는 솔레루스를 향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솔레루스는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할머니를 돌아보았다.


“할머니. 저울 어딨지?”


“저울?” 노파가 말했다.


“엄마가 쓰던거. 어릴 때, 나한테 약 만들어 줄 때 썼잖아.”


“아, 저울. 저기, 부엌 찬장에 있을게다.”


“고마워요, 할머니.” 솔레루스는 부엌으로 가서 그 먼지앉은 저울을 들어 후후 불고는 다시 방 안으로 돌아갔다.


“저울이 왜 필요하죠?” 실비아가 의아한듯 물었다.


“무게를 재야 하잖아.” 올리버가 당연하다는듯 말했다.


“그렇기는 하죠. 그런데, 펠릭스는 손재주도 좋고 머리도 좋아서 항상 저울 없이도 칼같이 약을 만들잖아요? 자로 잰듯 정확하고.”


“글쎄. 필요한가보지 뭐. 어쨌든, 저놈도 사람이니까. 가끔은 실수도 하고 그러지 않겠어?”


“뭐. 그럴지도요.” 닫힌 방문을 보며 실비아가 말했다.




저울을 가져온 솔레루스는 그것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가져왔어요.”


솔레루스가 펠릭스를 돌아보며 말하자, 펠릭스도 그 알수 없는 행동을 멈추고 저울로 다가갔다.


“아, 팔이 안 맞네요. 잠시만······.”


“아니, 멈춰.” 펠릭스가 말하자, 솔레루스는 저울에서 떨어졌다.


“팔의 균형이 안 맞는데요?”


솔레루스의 말대로, 양팔저울은 한쪽으로 조금 비스듬히 기울어 있었다. 그리고 펠릭스는 그것을 아주 불쾌하다는 눈으로 노려보았다.


“금방 맞춰요. 균형은······.”


“아냐, 됐다.”


펠릭스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의 숨이 닿자 잠깐 저울의 균형이 맞게 되었지만, 금새 저울은 다시 균형을 잃어버렸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그래. 알았어.”


“혼잣말해요?”


갑자기 펠릭스는 그를 휙 돌아봤다.


“솔레루스.”


“왜요?”


“약 만들줄 안다고 했지?”


“네. 왜요?”


솔레루스가 머뭇거리며 물었다.


“내게 약을 만들어줘. 네가 직접 만들어 먹었다던 감기약, 배탈약, 그리고 거기에 추가로 내가 시키는대로 하나 더 만들어 줘야겠다.”


“네?” 솔레루스가 물었다.


“만들라면 만들어. 그걸 보고, 네가 훔쳐간 약값을 어떻게 처리할지 결정할 테니까.”


“아, 진짜요? 말 했어요? 약속한거죠? 나중에 딴말하지 마요?”


“알았으니 가서 약이나 만들어.”


“진짜, 약속한 거예요?”


솔레루스는 방을 나가려다 말고 다시 뒤를 돌아보며 재차 물었고, 펠릭스가 고개를 끄덕인 뒤에야 방에서 나갔다.




거실에 앉아 의아한 눈으로 그들이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세 사람을 무시하고, 펠릭스와 솔레루스는 부엌으로 갔다. 펠릭스는 솔레루스가 아무 냄비를 하나 꺼내 찬장에 대충 닫아둔 재료들을 꺼내 약을 만드는 것을 잠자코 지켜보았다.


“얼마나 더 끓일 셈이야?” 펠릭스가 말했다.


“몰라요. 아직 농도가 안 맞는것 같아서요.”


솔레루스는 냄비를 젓던 나무 주걱을 위로 들어올렸다. 약은 맹물처럼 홀홀했다.


“거름종이에, 아니, 아니다. 계속 만들어.” 펠릭스가 말했다.




펠릭스는 솔레루스가 만든 두 가지 약을 번갈아 살펴보았다. 그는 종이를 한장 꺼내더니 순식간에 무언가를 써내려갔다.


“뭘 썼어요?”


“신경 꺼라.”


펠릭스가 냉랭하게 말하자, 솔레루스는 살짝 시무룩해졌다.


“이제 뭘 만들어요?”


“재료가 필요해. 올리버!”


펠릭스가 거실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외치자 올리버가 부엌으로 들어왔다.


“왜?”


“여기 적힌 재료좀 사 와요.”


펠릭스는 방금 그가 글씨를 쓴 종이를 올리버에게 내밀었다.


“왜?”


“사 오라면 좀 사 와요.”


“알았어. 그런데, 그래서 협상은 잘 돼 가고 있는거야? 벌써 이 집에 들어온지도 두 시간이나 지났어.” 올리버가 말했다. “가판대는 내버려두고 와도 돼?”


“돼요. 돈은 챙겨뒀고, 가판대 자리 주인한테도 충분히 돈을 먹여놨으니까.”


“축제 관리자가 싫어할텐데.” 올리버가 말했다.


“싫어하든가. 자기가 뭐 어쩔 건데요? 자기도 돈 받아먹고 나한테 권한을 판 주제에. 다들 부끄러운줄을 모른다니까.” 펠릭스가 투덜거렸다. “그래서, 안 가요?”


“알았어. 금방 올게.”


올리버는 종이를 힐끗거리며 부엌을 나섰다.




올리버가 사온 재료들을 한옆에 쌓아두고, 펠릭스는 솔레루스의 등 뒤에서 그에게 계속해서 지시를 내렸다. 솔레루스는 대체 이것이 무슨 상황인지 의아해 하면서도, 어쨌든 펠릭스의 지시를 따랐다. 그것 말고는 달리 금화 열 닢을 갚을 길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끝이에요?”


거름종이에 약을 한 국자씩 들어 걸러내며 솔레루스가 물었다. 걸러진 약은 자줏빛이 살짝 감돌았다.


“제가 훔친 약이랑 비슷하······아니, 아니에요! 난 안 훔쳤어요!”


“그딴 변명은 그만 관둬.” 펠릭스가 말했다.


“그래서, 이제 시킨대로 다 했어요. 이제 돈 안 갚아도 돼요?”


“하는걸 보고 결정한다고 했잖아?”


펠릭스가 짜증스레 대꾸하자 솔레루스는 다시 움츠러들었다.




펠릭스는 완성된 약들을 찬찬히 살펴보며 종이를 꺼내 무언가를 마구 휘갈겨쓰기 시작했다. 대체 뭘 쓰는가 궁금하여 솔레루스는 뒤에서 힐끗 종이를 훔쳐봤지만, 그럴듯한 필기체 글씨밖에 보이지 않았다.


“저기, 지금 뭐 하고 있어요?”


펠릭스는 고개를 휙 돌려 솔레루스를 노려보았다.


“꼬맹이. 이 근처에 네 가족, 친척, 동료, 친구, 하다못해 믿을 만 한 사람 누구 하나 없나?”


“할머니 있어요.” 솔레루스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말고. 네 할머니가 얼마나 더 살줄 알고?”


펠릭스가 짜증스레 말했는데, 갑자기 솔레루스의 두 눈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울지 마! 좀. 그래, 방금 그 말은 사과하마. 그래서, 아무튼 뭐 없어? 누구든지? 그 도둑놈들말고는 없는거야?”


“몰라요.” 솔레루스가 말하자, 펠릭스는 한숨을 쉬었다.


“좋다. 솔레루스. 이제, 네 방으로 돌아가서 그 약값을 어떻게 처리할지 의논하자.”


“네. 저, 다시 말씀 드리지만, 저는 금화 열 닢은 못 갚아요······.”


"난 돈 말고 다른 걸로도 값을 받아."


그리고 펠릭스는 그 말을 끝으로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그리하여 다시 두 사람은 그들을 향한 의아한 시선들을 무시하며 솔레루스의 방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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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69화 21.11.11 25 1 20쪽
68 68화 21.11.10 22 1 21쪽
67 67화 21.11.10 21 1 20쪽
66 66화 21.11.09 25 1 23쪽
65 65화 21.11.09 24 1 20쪽
64 64화 21.11.08 24 1 22쪽
63 63화 21.11.08 23 1 24쪽
62 62화 21.11.07 22 1 28쪽
61 61화 21.11.07 27 1 21쪽
60 60화 21.11.06 22 1 26쪽
59 59화 21.11.06 25 1 20쪽
58 58화 21.11.05 24 1 22쪽
57 57화 21.11.05 23 1 24쪽
56 56화 21.11.04 25 1 25쪽
55 55화 21.11.04 19 1 24쪽
54 54화 21.11.03 28 1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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