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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의 연금술 가게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1.10.08 16:53
최근연재일 :
2022.01.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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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1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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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78화

DUMMY

가판대 앞에는 펠릭스가 그 멋들어진 필체로 휘갈겨쓴 안내판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휴식 시간’


그리고 그 휴식이라는 단어가 실비아의 눈에는 더욱 섬뜩하게 보였다. 휴식 시간에 사람을 고문하는 연금술사라니.


“올리버. 펠릭스를 막았어야 했어요.”


실비아가 시무룩해져서 말했다. 그런데, 올리버는 뜬금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올리버! 왜 웃어요? 지금이 웃을 상황이에요?”


“아니, 실비아.” 올리버가 겨우 웃음을 멈추고 말했다. “네가 아까 나오기 직전에 한 말들 있잖아.”


“네. 맞잖아요. 제가 말한 그대로 아닌가요? 펠릭스는 늑대한테 오른다리를 물려줘놓고도 웃으면서 그 눈물을 채취했다면서요? 그래놓고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고 하고. 그리고 또 어떤 불쌍한 사연의 손님들이 와도 요만큼도 동정하지 않죠. 그는 그저 무슨 약을 만들어서 사람 깜짝 놀래켜줄까 머릿속에 온통 그 생각 뿐이지.”


“그래. 맞아. 그런데, 네 말을 들은 그 도둑놈은 너랑 전혀 다른 생각을 했을거다.” 그리고 올리버는 다시 웃었다.


“네?”


“그러니까, 그놈은 무시무시한 괴물 내지는 악마라도 눈앞에 나타난줄 알았겠지. 그렇잖아? 연금술사들은 오해가 많은 직업이거든. 그중에는 진짜 악마나 마녀, 또는 신이나 그 비슷한 것과 거래를 한 사람이 바로 연금술사라고 믿는 사람도 있거든.”


“터무니없군요.”


“어쨌든, 네가 막판에 그런 말을 해 준 덕분에, 일이 쉽게 흘러갈지도 모르겠다.” 올리버는 꽤 만족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요. 어쨌든 고문은 안 했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올리버! 당신, 그렇게 안 봤는데. 어떻게 그렇게 잔인하게 사람을 고문할 수가 있어요?”


실비아가 올리버를 휙 돌아보며, 그에게 새침하게 말했다.


“응? 왜?” 그리고 올리버는 별 생각 없다는듯 되물었다. “나름대로 신사적으로 했다고 생각하는데.”


“그 바늘은 대체 어디서 구한건데요? 집게는 또 뭐고. 얼굴에 종이를 덮은것도, 저는 처음 봤어요 그런거. 그런데, 그 사람 정말 죽으려고 했다고요!”


“아, 뭐. 바늘이랑 집게는 대장간에서 빌린거야. 바늘은 나도 어디쓰는지 몰라. 그리고 그 집게는, 이거 말하는건가?” 올리버는 아까 들고있던 집게로 실비아의 손가락을 콕 집었다.


“꺅! 올리버! 장난치지 말아요!” 실비아는 깜짝 놀라 말했다.


“아니, 진정해봐 실비아. 이 집게, 못 집어. 손가락처럼 자그마한건. 봐.”


올리버의 말을 들은 실비아는 그제서야 진정하고 자기 손가락을 보았다. 그 집게는 끝이 맞물리게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서, 그녀의 손가락은 아무것에도 잡혀있지 않았다.


“아니, 이게 뭐죠?”


“이건 뜨거운 쇠붙이를 잡으라고 만든거지, 쬐끄만 손가락이나 손톱따위를 집으라고 만든게 아니거든. 백날 집어봤자 아무것도 안 잡혀.”


“하지만, 아깐 잡았다면서요. 그 사람도 잔뜩 겁먹었고.” 실비아가 집게의 틈새로 손가락을 쑥 뽑아내며 말했다.


“그냥 말만 그렇게 한 거지. 그리고, 제정신도 아닌 상황에 손끝에 차가운 쇠붙이가 닿으면 그 정도 착각이야 할 만 하지. 아무튼, 나도 손톱 뽑을 생각은 없었어.”


“그래요. 그렇다니 다행이긴 한데······그 종이는 과했어요.” 실비아가 말했다.


“그래. 그건 좀 과했어. 예전에, 전쟁중에 우연히 알게 된 방법인데 나도 그정도로 치명적일 줄은 몰랐다. 미안하다, 실비아. 못 볼 꼴을 보여 줘서. 이제서라도, 네게 사과하마.” 올리버가 말했다.


“그 사람한테도 사과해요.”


“그건 안 돼.” 순식간에 낯빛을 바꾸어 올리버가 말했다.


“왜요?”


“아까 말 했잖아. 놈은 짐승같은 본능을 가지고 있어. 자기보다 약한 사람 앞에서는 한없이 강해지고, 강한 사람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지지만, 그러면서도 호시탐탐 기회를 노려 나를 잡아먹을 궁리를 할 테지. 그런 와중에 내가 무턱대고 사과를 해 버리면, 놈은 나를 만만하게 보고 영영 입을 다물어버릴거야.” 올리버가 말했다.


“펠릭스가 평화로운 방법으로 그의 입을 열게 하면 좋을텐데요.”


“하겠지. 놈은 약도 많이 가지고 있고, 머리도 꽤 돌아가니까.”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리고 돈도······아니, 올리버. 펠릭스가 그렇게 부자였나요? 왠지 요새 씀씀이가 엄청 헤프지 않아요?” 실비아는 문득 떠올랐다는듯 올리버에게 물었다.


“난 펠릭스의 자금 사정은 잘 몰라.” 올리버가 말했다. “내 급료만 제때 주면 그걸로 만족하거든.”


“돈이 많나봐요? 펠릭스는.”


“글쎄. 연금술 가게로 재산을 불리는것 같지는 않아.” 올리버가 말했다. “약값은 뻔하고, 오는 손님 숫자도 뻔하니까. 그렇다고, 여행중에 보물을 찾은 것도 아니지.”


“그러게요. 골든포트 대경매장에서도 그렇고, 갑자기 어디선가 돈을 가져와 펑펑 써대잖아요. 사실, 대부호의 숨겨둔 자식이라든가?”


실비아는 목소리를 살짝 낮추고 올리버에게 물었다.


“모를 일이지. 그보다도, 지금은 저 도둑놈이 사실대로 불어줄지 어떨지가 중요한 문제인데. 과연 잘 될까?”




올리버의 말이 무색하게 천막 사이에서 펠릭스가 그 남자와 함께 태연하게 걸어나왔다. 남자는 펠릭스와 악수를 하더니 순식간에 인파 사이로 사라졌고, 펠릭스는 씩 웃으며 이쪽을 향해 걸어왔다.


“뭐죠, 펠릭스?” 실비아가 방금 잘못 본 것은 아닌가 하며 펠릭스에게 물었다.


“뭐기는요. 봐요.” 펠릭스는 글자가 빽빽하게 적힌 종이 하나를 내밀었다. 거기에는 어느 도둑 길드의 이름과 구성, 범행 수법 등이 상세하게 적혀있었다.


“펠릭스. 놈이 불던가?” 올리버가 말했다.


“네. 아주 술술. 이제 저는 경비대원과 거래를 하러 갈게요. 그동안 둘은 좀 쉬고 있어요.” 펠릭스는 가판대 맞은 편에서 계속 이쪽을 힐끔거리던 경비대원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어떻게 불게 한거에요?” 실비아가 물었다.


“샀어요.” 펠릭스가 말했다.


“사다니요?” 실비아가 다시 물었다.


“샀다고요, 정보.” 펠릭스가 말했다. “도둑들은 의리없어요. 그런데 욕심은 많죠. 하지만 또 머리는 나쁘단 말이에요. 그래서, 저는 그놈을 살살 약올려봤죠. 그 조그만 길드에서 장물아비한테 돈 다 떼이면서 사는게 짜증나지 않냐고. 너처럼 도둑질 오래한 도둑이면, 돈을 좀 더 받아도 되는 것 아니냐고.”


“그래서요? 그런다고 사실대로 불어요?” 실비아가 말했다.


“동료들을 싸그리 배신하라고 했죠 뭐.” 펠릭스가 말했다.


“배신하라고 배신해요?” 실비아가 조금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설득했죠. 어차피 오르데움에 도둑들은 계속 나타날 텐데, 너희 도둑 길드는 나한테 꼬리를 잡혔으니 얼마 가지않아 모조리 체포되고 구금당할 것이다. 네가 여기서 입을 다물어도 경비대에서는 고문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니 한 일 주일은 버티겠느냐.”


“그래서요?” 실비아가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죠. 그런데, 나한테 동료들의 정보와 그 장물아비의 정보를 팔아치우면 너는 무사히 돌려보내 주겠다. 그리고 정보료도 지불하겠다. 그러면 ,너는 동료들과 장물아비가 잡혀가는걸 구경한 다음 이 돈으로 새로 네 길드를 만들어라. 그래서 장물아비 노릇이나 하면서 안전하게 돈 벌어라.”


“아니! 작은 도둑을, 큰 도둑으로 만들면 어떡해요 펠릭스! 당신은, 진짜 도덕 관념이라고는 전혀 없나요?” 실비아가 그에게 거세게 항의했다.


“그놈 머리로는 도둑 길드 따위 만들어봤자 하루이틀이면 도로 붙잡혀요. 장물아비는 아무나 하나요? 애초에, 자기가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이해할 머리도 안 돌아가는 멍청인데. 내 말만 듣고 멋모르고 설치다가 조금있으면 도로 경비대에 붙잡힐걸요. 그땐 지금처럼 빠져나가지 못할 테고.”


“아니, 그래도 그렇지······.” 실비아는 펠릭스의 사고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아, 저는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 가서 사업 이야기를 조금 하고 올게요.” 그리고 펠릭스는 실비아를 내버려두고 다시 경비대원쪽으로 털레털레 걸어갔다.




펠릭스는 경비대원에게 종이를 내밀며 뭐라 떠들었다. 경비대원은 그 종이를 보자마자 아주 만족한 표정으로 턱을 슬슬 쓰다듬으며 벌써부터 어떤 보상이 내릴지 기대하는듯 보였다.


“어쨌든, 잘 됐군 실비아.” 올리버가 말했다.


“뭐가요?”


“고문은 안 했잖아. 네 말대로. 안 그래?” 올리버가 말했다.


“아니, 딱히 제 말을 들어서 그런 건 아니겠죠.” 실비아가 투덜거렸다. “내 참. 기껏 잡은 작은 도둑을 큰 도둑으로 만드는 사람이 어딨어요? 세상에.”


“아니. 내가 보기에는, 네가 고문하지 말라고 해서 저런것 같은데.” 올리버는 저쪽에서 시답잖은 농담따먹기나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펠릭스를 힐끗 보았다.


“설마, 그렇겠어요? 펠릭스가 언제 제 말을 제대로 듣기나 했나요 뭐.” 실비아가 입이 부루퉁해진채 말했다.


“잘 들어 주잖아. 약 달라고 하면 약 주고, 싫다고 하면 안 하고. 안 그래?”


“항상 절 놀리는걸요!” 실비아가 말했다.


“그것도, 네가 정말 싫어할 만한 짓은 안 하잖아. 너랑 친해지고 싶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고.”


“글쎄요. 그것까지는 모르겠네요.” 실비아가 말했다.


“아무튼.” 올리버는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 “적어도, 이번에는 펠릭스가 네 말을 들어줬을 거야.”


“어째서요?”


“펠릭스가 사람 고문하는 방법을 모르겠어?” 올리버가, 다시 그 아까의 조금 무시무시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쟁 중에 연금술사들이 무슨 약을 만드는지 알아, 실비아?”


“상처 낫는 약 아니에요?”


“아니야.” 올리버가 말했다. “끔찍한 전염성 역병, 살에 닿기만 해도 피부가 썩어문드러지는 독, 정신을 파괴시켜 사람을 멍청이로 만드는 증기, 몸에 후유증을 남기지 않으면서 죽음보다 큰 고통을 느끼게 하는 고문약. 자백약 따위는, 그런 것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올리버! 자꾸, 그런 흉흉한 이야기 하지 말아요.” 실비아가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펠릭스는 그런 약들에 대한 지식을 당연히 갖고 있었을거야. 사람하나 고문하는것쯤 그에게는 일도 아니지. 하지만, 펠릭스는 굳이 돈을 들여서 놈에게서 정보를 샀어.”


“그러고 싶었나보죠.” 실비아가 말했다.


“펠릭스는 돈자랑하는 졸부가 아냐. 그놈은 저울질을 잘 해. 훨씬 값싸게 얻을 수 있었던 정보를, 펠릭스는 비싼 돈을 들여 산거야. 이유없이 그랬을 리는 없어. 네 말을 들어줘서 그런게 아닌 이상에야, 다른 이유는 떠오르지도 않는구나.”


올리버의 말을 잠자코 듣고있던 실비아는 조용히 그에게 반박했다.


“그 무시무시한 약들을 만드는데 비용이 들었을지도 모르죠. 위험부담이라든가, 그런 문제일수도 있고.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잡아먹는다는 말도 있잖아요? 전쟁이 끝난 지금 그런 흉흉한 약을 만들면 펠릭스는 자기 입장이 곤란해 지는 것 정도는 알겠죠.”


“뭐, 그럴지도.” 싱글거리고 웃으며 이쪽으로 돌아오는 펠릭스를 보며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어쨌든. 고문하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저는 그런건 질색이니까.”


“왜?”


“좀 더 좋은 방법으로 알아내면 좋잖아요?” 실비아가 말했다. “다들 평화롭게, 솔직하게 말 하면 좋을텐데.”


올리버는 실비아에게 무언가 몇 마디 말을 더 하려다가, 조금 시무룩해져서 바닥을 보고 있는 실비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었다.




축제가 한창인 광장과 거리에서 벗어나, 펠릭스는 거리 뒤쪽에 자리잡은 더러운 골목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어디 사는지는 알고 찾아가요?” 실비아가 시커멓게 변색된 벽돌로 대강 되는대로 쌓아올린 낡은 건물들 사이를 구경하며 말했다.


“그 도둑놈이 친절하게 알려줬어요.” 펠릭스는 거침없이 거리를 걸어갔다.


“만약에, 잡으면요.” 실비아가 말했다. “어떡할 거예요?”


“값을 받아내야죠. 내 주머니를 턴 죗값은 꽤 비쌀 걸요. 게다가, 그놈을 잡겠다고 벌린 일도 많으니까. 한두푼 받고 끝낼 생각은 없어요.”


“어떻게 받아 내려고요? 돈으로 받기는 힘들 것 같은데요.”


“뭐든 받아내야죠. 돈, 노동력, 지식, 기술, 보물, 물건이든 뭐든.” 펠릭스가 말했다.


“글쎄요. 받아낼 수나 있으련지.” 실비아가 말했다.


펠릭스는 어느 집 앞에서 멈춰서서,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돈 떼일 걱정은 말아요. 난,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값 받아내고 말 테니까.”




문을 두드렸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펠릭스는 다시 문을 두드렸고, 곧 그는 더이상은 못 기다려 주겠다는듯 신경질적으로 문을 마구 두들겼다.


곧, 문이 열리고 안에서 사람이 나타났다. 허리가 굽고, 얼굴에 주름이 졌으며, 연신 기침을 하는 병든 노인이, 조금 놀란 눈으로 펠릭스를 보고 있었다.


“누구······.”


“아, 안녕하세요 부인. 혹시, 안에 여덟 살에서 열 살 사이의 남자아이가 있습니까?” 펠릭스가 말했다.


“당신은 누구길래······.”


“그 꼬마한테 볼일이 있어서요. 안에 없습니까?”


“안으로 들어와요.” 노파가 기침을 하며 문에서 비켜주자, 펠릭스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집 안으로 들어갔다.




바깥에서 벌어지는 축제의 소음이 희미하게 들려올 뿐, 그 노파의 집은 허름하고 낡았으며 어디서 바람이 새는 건지 따뜻하지도 않았다. 노파는 그들도 손님이라고, 펠릭스의 일행들을 앉힌 다음 부엌으로 가서 주전자에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오래 머물 생각은 없습니다. 그래서, 그 소년은 어디있죠?” 펠릭스가 말했다.


“솔레루스는, 잠시 어디 나갔다오.” 노파가 기침을 하며 말했다.


“그 소년. 언제 나갔습니까?” 펠릭스가 물었다.


“한 시간쯤 전인가. 아마, 그쯤 됐을텐데.” 노파는 다시 기침을 쿨럭였다.


“혹시, 그 소년이 뭔가 가져온 물건 없었습니까?” 펠릭스가 재차 묻자, 노파는 잠시 생각했다.


“무슨, 약병을 하나 가져왔던데.”


“약병!” 펠릭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약병, 지금 어딨습니까?”


“나는, 모른다오. 도로 들고 나갔던가? 글쎄······.” 노파가 말하자, 펠릭스는 도로 자리에 앉았다.


“자, 차들 들어요.” 그리고 노파는 힘겹게 차를 가져와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펠릭스는 전혀 고맙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정작 차에 손을 댄 것은 펠릭스 뿐이었다. 실비아는 이 집에 사는 꼬마 도둑을 찾아왔다는 사실을, 노파가 알았다가는 까무러치지나 않을까 걱정이었다. 올리버는 다른 이유로 차에 손을 대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 솔레루스와는 어떻게 아는 사이요?” 노파가 물었다.


“아 뭐, 사실 아는 사이라고 부르기는 약간 미묘하군요. 일종의, 사업상의 관계라고 할까요?” 펠릭스는 태연하게 거짓말을 했다.


“그래? 드디어. 잘 됐군. 솔레루스에게도 마침내 운이 트인거야.” 노파가 그렇게 말하자, 가만히 듣고있던 실비아가 대신 죄책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솔레루스는 어떤 애죠?” 펠릭스가 물었다.


“똑똑하고 영리한 아이지.” 노파가 말했다. “학교에 보냈으면 좋으련만. 그럴 만한 형편이 안 됐거든.”


“당신 자식은 아니죠?” 펠릭스가 대뜸 무례한 질문을 했다.


“딸아이의 자식인데, 전쟁에 휘말려서.”


“저기, 죄송합니다만.” 올리버가 가볍게 헛기침을 하며 끼어들었다. “전쟁은 이십 년도 전에 끝났습니다. 하지만, 그 솔레루스라는 아이는 아까 여덟 살에서 열 살 사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 노파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 때 죽은건 아이 아버지였어. 내 딸아이는, 오 년쯤 전에 죽었던가. 아마 그랬을거야.”


“무슨 일로 죽었나요?” 실비아가 물었다.


“무슨, 병에 걸렸을걸. 돈을 벌어 오겠다고 산맥 너머, 동쪽으로 갔는데, 거기서 죽었다고 하더군. 시체도 못 받았지. 화장 증명서인가, 그게 같이 왔더라고.” 노파는 흐느끼지도 않고, 그렇다고 딱히 슬픈 기색도 없이 담담하게 말했다.


“무슨 병입니까?” 펠릭스가 물었다.”


“나는 잘 몰라. 붉은 어쩌구 하는 병이었어. 나는 그게 무슨 병인가 싶어서 마을 안에 똑똑한 사람들은 전부 붙잡고 물어봤는데, 시원하게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지.”


이번에 노파의 목소리에는, 조금 슬픈 기색이 있었다. 아마 그녀는 머나먼 타향에서 딸이 병으로 죽었다는 사실보다, 그 딸이 무슨 병으로 죽었는지조차 알 수 없다는 사실이 더 슬픈듯 했다.


“그렇군요.” 그리고 어느새 펠릭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져 있었다. “그래서, 그 솔레루스는?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죠? 누구를 만나고 있죠? 앞으로 뭘 할 계획이죠? 그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거죠?”


“펠릭스. 하나씩 물어.” 올리버가 말했다.


“아, 죄송해요. 잠시. 그래서, 그 솔레루스라는 꼬맹이는 지금 어딨죠?”


“나는, 몰라.” 노파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항상 밖으로 나다니는데, 잘 모르겠어. 어릴 때는 순진하고 착한 아이라서 어디에 가는지, 뭘 하는지, 가서 뭘 하고 돌아왔는지 귀에 딱지 앉을 정도로 말해주곤 했는데. 지금은, 숨기기만 하고 내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아.”


“흠.” 펠릭스가 말했다. “그러면 그 솔레루스가 언제 돌아올까요?”


“나야 모르지. 하지만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구나.” 노파가 말했다.


“그래요? 그럼 한번 불러볼까요?” 펠릭스가 말했다.


“부르다니?” 노파가 의아한 얼굴로 묻자 펠릭스는 씩 웃었다.


“하나만 묻죠. 그 솔레루스라는 아이, 효심이 깊은 편입니까?”


“착한 아이야.” 노파가 말했다. “아까 나한테도 어디서 찾은 귀한 거라면서 뭘 줬거든.”


“그렇다면 한번 불러보죠.” 펠릭스가 말했다.


“어떻게 부르려고요?” 실비아가 물었다.


“봐요. 아마, 금방 올 겁니다.”




펠릭스는 부엌 굴뚝 아래로 가서 축축한 풀 뭉치를 가져와 불을 붙여 억지로 태우기 시작했다.


“젖은 풀을 태워서 어쩌려고요?”


“봐요 좀.”


곧, 불의 열기에 풀이 타기 시작하며 시커먼 연기가 굴뚝 위로 스물스물 올라가기 시작했다.


“뭔데요?”


“이 시커먼 연기를 보면 무슨 생각이 나겠어요? 불이라도 났나보다 싶지 않겠어요?”


“뭐, 그럴지도 모르죠. 근데, 그것도 연기를 봐야 알지 이런다고 오겠어요?”


펠릭스는 씩 웃으며 주머니 하나를 열어 뭔가를 꺼냈다.


“뭐에요?”


“이걸로 한번 불러보죠.”


펠릭스는 손에 쥐고 있던 것을 그 불 속으로 넣었고, 그러자 연기에서 아주 기분나쁜 매캐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뭐에요 이게!” 실비아가 켈록거리며 재빨리 부엌을 벗어나며 말했다.


“이렇게 하면 당연히 오겠죠? 행여나 집에 불이라도 났아 싶어서라도 돌아올테지.”


펠릭스는 굴뚝 위로 올라가는 검은 연기를 보며 말했다.


“어디, 와 보라고. 내가 값을 반드시 받아낼테니까 말이야.”




펠릭스가 연기를 태우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노파의 집 문을 부서져라 두드리는 사람이 나타났다. 노파는 천천히 문으로 다가가 자물쇠를 열었고, 그러자마자 문을 열고 안으로 밀치고들어오는 소년은 부엌에서 펠릭스와 눈이 마주쳤다.


“솔레루스?”


정체불명의 덩어리를 굴뚝 아래에서 태우며 펠릭스가 소년의 두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당신은 누구죠?” 소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우리 집에 왜 왔어요? 나가요, 당장. 경비대를 부르겠어요.”


“네가 훔쳐간 주머니 주인이다.” 펠릭스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내 주머니 안에 들어있던 은화와 약병. 어떻게 했지?”


“저는, 몰라요.” 소년이 뒷걸음질 치자, 그는 올리버의 나무토막같은 다리에 부딪혔다.


“꼬맹아. 네 할머니가 이 일에 대해 알기를 바라지는 않지?” 펠릭스가 말했다. “그럼 조용히 사업 이야기를 해 볼까. 일을 저질렀으면, 그 값을 치러야지. 안 그래?”


솔레루스는 두려운 눈으로 펠릭스와, 그의 등뒤에서 버티고 있는 올리버를 힐끗 돌아보았다.


“저, 경비대를 부르겠어요!”


“불러 봐.” 펠릭스가 말했다. “과연, 도둑의 편을 들어주는 경비병이 있나 한번 볼까?”


“무슨 일이니?”


거실에 있던 노파가 부엌으로 돌아오며 말했다. 그녀는 펠릭스가 만든 연기가 가까이 다가오자마자 거칠게 기침을 했다.


“할머니! 오지 마요!” 그리고 솔레루스는 펠릭스를 죽일듯 노려보았다.


“사업이야기를 하자고. 네가 훔쳐간걸 그대로 돌려주면, 나도 이대로 불을 끄고 나가주지.”


“···못해요.”


“응? 뭐라고?” 펠릭스가 말했다.


“그 약. 할머니한테 벌써 먹였는걸. 못 해요.”


“뭐?”


펠릭스의 얼굴이 붉게 물들더니, 정말 뜻밖에도 그는 평범한 사람처럼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길길이 뛰었다.


“그걸, 먹였다고? 너 이 어린 도둑놈이, 그게 뭔줄 알아? 그게 무슨 약인지 아냐고!”


“펠릭스, 진정해 진정!” 펠릭스가 솔레루스에게 달려들자 올리버가 그를 말리기 시작했다.


“이 빌어먹을 꼬맹이가, 메를린이 만든 엘릭서를 써버렸다고? 너, 솔레루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네놈한테서 약값은 반드시 받아내야겠다!”


펠릭스가 외쳤다. 엘릭서. 그 생명 연장의 비약을 일컫는 말을 들은 솔레루스도, 올리버와 실비아도, 그리고 노파도, 그 소년이 무슨 짓을 저지르고 말았는지 동시에 깨달아버렸다. 그리고 그걸 무슨 수로도 보상 할 수 없다는 걸 떠올리자 그들 모두는 경악한 얼굴로 그대로 굳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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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80화 21.11.16 30 1 21쪽
79 79화 21.11.16 22 1 22쪽
» 78화 21.11.15 26 1 22쪽
77 77화 21.11.15 28 1 25쪽
76 76화 21.11.14 31 1 20쪽
75 75화 21.11.14 29 1 23쪽
74 74화 21.11.13 31 1 23쪽
73 73화 21.11.13 29 1 20쪽
72 72화 21.11.12 25 1 19쪽
71 71화 21.11.12 24 1 21쪽
70 70화 21.11.11 28 1 19쪽
69 69화 21.11.11 26 1 20쪽
68 68화 21.11.10 23 1 21쪽
67 67화 21.11.10 22 1 20쪽
66 66화 21.11.09 27 1 23쪽
65 65화 21.11.09 24 1 20쪽
64 64화 21.11.08 26 1 22쪽
63 63화 21.11.08 24 1 24쪽
62 62화 21.11.07 22 1 28쪽
61 61화 21.11.07 27 1 21쪽
60 60화 21.11.06 23 1 26쪽
59 59화 21.11.06 26 1 20쪽
58 58화 21.11.05 24 1 22쪽
57 57화 21.11.05 23 1 24쪽
56 56화 21.11.04 26 1 25쪽
55 55화 21.11.04 19 1 24쪽
54 54화 21.11.03 28 1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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