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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의 연금술 가게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1.10.08 16:53
최근연재일 :
2022.01.13 18:00
연재수 :
17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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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12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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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1쪽

71화

DUMMY

한 밤중의 간이 도서관은 조용했다. 펠릭스를 따라 올리버와 실비아는 숨을 죽여가며 살금살금 간이 도서관 안으로 들어갔지만, 정작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낮에 누군가가 머물던 쓸쓸한 흔적들을 어둠 속에서 잠시 살폈다.


“비었잖아.” 올리버가 속삭였다.


“있어봐요.” 펠릭스는 여전히 등불의 갓을 벗기지 않은 채, 창문으로 들어오는 희미한 별빛과 달빛에 의존하여 도서관 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앗, 무슨 소리 안 났어요?” 실비아가 말했다.


“누가 들어오나본데. 어떡할래, 펠릭스?” 올리버가 말했다.


“어떡하긴요. 인사라도 나눠야죠.” 펠릭스는 전혀 거리낄게 없다는듯 말했다.




등불을 쥐고 있던 펠릭스는, 간이 도서관의 문이 열리자마자 등불의 갓을 벗기고 도서관의 출입문을 향해 불빛을 비췄다.


“아이쿠. 뭡니까?”


도미닉이, 얼굴을 찡그리며 두 손으로 눈을 가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도미닉.” 다시 등불에 갓을 씌우며 펠릭스가 말했다. “이 밤중에, 우연이군요. 당신도 잠이 안 와 밤산책을 나온 길입니까?” 펠릭스가 말했다.


“아니오. 자려고 누워있었는데, 뭔가 계속 부산스러워 영 잠이 못 들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방 안에 저 혼자 뿐이길래 대체 무슨일인가 싶어 나와봤습니다.” 도미닉이 대답했다. “어쨌든, 연금술사 선생님. 한 밤중에 수도원 안을 돌아다니는건 별로 좋은 일은 아닌것 같군요. 여기서 뭘 하고 계셨습니까?”


“아하. 저는, 젊은 수도사들이 왜 유독 이 시기가 되면 아침에 늦잠을 자는지, 그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나왔습니다.”


“그게, 이 한 밤중에 간이 도서관 안을 돌아다닐 이유가 됩니까?”


잠이 조금 덜 깨서인듯, 어이가 없어서인듯, 멍한 얼굴로 도미닉이 물었다.


“물론, 상관있죠. 어디, 지금부터 한번 같이 알아볼까요, 도미닉?”


펠릭스는 기세좋게 대답을 해 주고는, 등불 갓을 슬쩍 열어 가까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등불의 비스듬한 빛을 받아 벽을 향해 그림자는 길게, 커다랗게 늘어뜨리며 펠릭스와 도미닉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마주앉았다.


“앉아요들.” 펠릭스가 말하자, 실비아와 올리버도 대체 무슨 일을 벌이려는건지 짐작이나 해 보며 적당히 자리를 찾아갔다.


“그래서, 연금술사 선생님. 대체, 무엇을 알아내고 싶어서 이 밤중에 여기까지 온 것인지 이제 설명을 해 주시겠습니까?”




“뭐, 사실 단순한 이유죠. 어쩌면 당신도 이미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고.” 펠릭스가 히죽거리며 말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가요? 그럼, 어디 천천히 같이 알아보자고요. 우선, 도미닉. 부엌에 집기가 몇 개 부족하다고 했었죠?”


“그렇습니다.” 도미닉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몇개나 부족하죠? 아, 수저는 빼고요. 수저는 정말 온갖 잡다한 이유로 개수가 모자라곤 하니까요.”


도미닉은 잠시 생각한 다음, 대답했다.


“수프 담는 그릇이 여덟 개가 모자랍니다.”


“그렇군요.” 펠릭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도미닉. 올해, 유독 늦잠으로 고생하는 젊은 수도사들이 몇 명이나 되던가요?”


“여덟 명이군요.” 도미닉은 잠시 침묵하다 대답했다.


“그 둘의 숫자가 똑같네요?”


“우연의 일치일 뿐 아닙니까, 연금술사 선생님. 두 사건은 완전히 별개의 것입니다.”


“좋아요, 도미닉. 사실 술이라는 건, 갓 수확한 포도를 따서 만드는 건 아니죠. 맞죠?”


“지극히 당연한 사실입니다.” 도미닉이 대답했다.


“올해 판매할 포도주를 오크통에서 내려, 병입하기 시작한게 언제쯤입니까?”


“대략, 한달 쯤 전이군요.” 도미닉이, 잠시 생각해 보더니 대답했다.


“젋은 수도사들이 늦잠으로 고생한 것은?”


“대략, 한달 정도 전부터 입니다.”


“오호라, 아주 재미난 우연의 일치로군요, 도미닉.” 펠릭스가 말했다.


“그렇군요.”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이 경우에 쓰는 말은 아닙니다.”


도미닉이, 대체 이 대화에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의심하는 투로 대답했다.


“어쨌든, 술 때문은 아닐 겁니다. 새파란 소년들도 아니고,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수도사들이 설마 까짓 술이 아까워서 한 밤중에 수도원을 돌아다니겠습니까?”


펠릭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도미닉에게 물었다.


“술을 종종 드시나요?”


“안 마십니다!” 도미닉이 말했다. “수도사에게, 조금 실례되는 질문같군요.”


“교리에 어긋납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종종, 식사에 술을 한두 잔 곁들이는 정도는 흔히 있는 일 아닙니까? 교회든, 예배당이든, 수도원이든.”


“그렇기는 합니다. 하지만, 전에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연금술사 선생님. 솔직하게 말하여, 이곳 글레이스 수도원에 모이는 사람들은, 강력한 의지도, 강인한 신앙심도, 확고한 사명감도 부족한 사람들 뿐입니다. 술 한 방울을 입에 대면 한 잔을 마시고 싶어지는 것이고, 한 잔을 마시면 두 잔을 마시고 싶어지는 겁니다. 두 잔을 마시면, 한 병이 통째로 탐이 나고, 그러면 술독에 빠지겠지요.”


“꽤 재미난 말을 하는군요, 도미닉. 그럼, 식사 도중에 술을 곁들이는 다른 수도사들이나 뭐, 그런 사람들은, 모두 아주 강력한 의지와 확고한 신앙심으로 무장한 사람들이겠군요. 그런가요, 올리버?”


“몰라.” 뒤에서 올리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튼 간에!” 도미닉이 말했다. “술 때문은 아닐겁니다. 애도 아니고 무슨······.”


펠릭스는 잠시 도미닉이 혼자 중얼거리도록 내버려 두었다.


“좋아요, 도미닉. 충분히 투덜댔나요?”


도미닉은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서, 펠릭스는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도미닉. 동료 수도사들이, 밤에 몰래 술을 마신다는게 큰 문제라고 생각하나요?”


“물론입니다.” 도미닉이 대답했다. “수도원은, 일과 시간이 정해져 있습니다. 정해진 일과를 따르는 것도 수행의 일종인데, 그것을 어긴 것부터 시작하여······.”


“시작하여?”


“아주, 실망스럽고 화가 날 만한 일입니다. 술독에 빠져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타락했습니까? 먼 과거에, 무수히 많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전설적인 장군조차도 술독에 빠져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으니, 술의 패악을 더 설명할 필요가 있겠습까. 만일,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수도원장님이 절대 가만있지 않으실 겁니다.”


“하지만, 도미닉. 조금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 보자고요. 혹시, 지금껏 수도원에서 과음 때문에 문제를 일으킨 수도사가 한 명이라도 있었습니까?”


“제가 아는 한은, 없었습니다. 애초에, 술을 마실 수도 없었을테니까.”


“음. 그래요, 도미닉. 이렇게 물어볼까요. 양조장에서 포도주를 빚는 수도사들이, 그 결실을 조금정도는 맛볼 수도 있는것 아닐까요?”


“우리의 신념이란 탐욕을 틀어막는 강둑과 같아서, 조그만 구멍이라도 생겨버리면 순식간에 물이 터져나와 둑을 무너뜨려버립니다. 한 방울의 포도주를 허락하면, 한 병을 허락 못할 이유가 어딨겠습니까?”


“아하, 이번 건 꽤 괜찮은 비유였어요. 하지만, 글쎄요. 금주가 교리인것도 아니라면서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펠릭스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수도원장도 술을 그렇게 나쁘게 말하고, 수도사들도 양조장 근처에는 얼씬도 못하는게 조금 이상하지 않나요? 어쨌든, 이 수도원이 망해가기 직전에 되살아난 것이, 그 포도주 덕분인데. 왜 그렇게까지 술을 멀리하려고 애쓸까요?”


“그야, 수행 때문에······.”


“도미닉. 수행 이야기는 그만 둬요. 아까 당신이 역사 이야기를 해서 그런데, 제가 알기로 입에 술을 달고 다니던 수도승도 있었어요. 꽤 이름이 고명한 사람이었는데.”


도미닉은 입을 다물고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사실, 저도 잘은 모릅니다. 다른 건 몰라도, 수도원장님이 포도주를 그렇게 나쁘게 말씀하시는건, 저도 가끔 의외라는 생각이 듭니다.”


“음. 그래요. 그럼, 도미닉. 우리 다시한번 생각해 보죠. 사실, 이 수도원에서 포도주가 패악을 부린 적은 없다는거죠?”


“그렇습니다.” 도미닉이 말했다.


“그리고, 조금 정도 포도주를 먹는다고 무슨 큰 탈이 생기지도 않을 거예요.”


“그렇기야 하겠지만, 나중에······.”


“나중은 나중에 생각하고요. 일단 그렇죠?”


도미닉은 못마땅한듯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래요. 그럼, 도미닉. 좀 더 직접적으로 물어볼게요. 저도 한밤중에 계속 깨어있고 싶지는 않다 보니. 만약에, 동료 수도사들이, 당신 몰래 한밤중에 침대를 빠져나가 술을 홀짝이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용서할 수 있겠나요?”


도미닉은 얼굴을 찌푸리고 생각했다.


“제가 용서하고 자시고 할만한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좋군요. 그럼, 기분이 크게 상하지 않겠어요?”


“연금술사 선생님. 당신이 말 한 대로, 술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니까 술을 마신다고 크게 기분이 상하지는 않겠지만, 솔직히 어떨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요. 그러면, 실제로 어떤지 한번 봅시다.”


갑자기 펠릭스는 간이 도서관의 벽을 두 손으로 힘껏 옆으로 밀어젖혔다.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나며, 간이 도서관의 벽 한 면이 열리더니 그 비좁은 공간에 숨어들어 수프 그릇에 포도주를 찰랑이던 수도사들이, 깜짝 놀란 얼굴로 이쪽을 돌아보았다.




진정으로 사람이 놀라게 되면, 마치 돌처럼 굳어버린다는 사실을, 실비아는 오늘 새삼 깨달았다. 눈조차 끔뻑이지 못하고, 갑자기 새어들어오는 어둠과 그곳에 존재할 리 없는 사람의 시선에, 그들은 그야말로 석상처럼 굳어버렸다. 그리고 그 공간 안에서, 실비아는 한 구석에 포도주 대여섯 병과 같이 앉아있는 그 유령의 모습을 발견했다.


“어머! 펠릭스. 그 때 봤던, 그, 복도의 유령이에요!”


“아하. 수도원장의 말이 사실이었군요.” 펠릭스는 실비아에게 맞장구를 쳐 준 다음, 도미닉을 돌아보았다. “어때요, 도미닉? 직접 보니 감회가 새롭죠? 동료들을 너그러이 용서해 주겠나요?”


“너희들, 지금, 여기서, 대체, 뭘······.”


수도사들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다만 입 가로 가져가던 수프 그릇에 담긴 포도주를 마저 마실지 말지, 어쩔줄 몰라 손만 달달 떨었다.


“수도원장님이 이 모습을 보면, 크게 화를 내실거야!”


도미닉이, 복잡한 심경이 담긴 목소리로 외쳤다.


“아하, 글쎄요. 과연 그럴까요?”


그러더니 펠릭스는 그 좁은 공간 안으로 발을 불쑥 집어넣고 안으로 들어가, 반대편 벽을 붙잡고 옆으로 휙 밀어버렸다.


또다시 열린 그 벽 너머에는, 조그마한 촛불을 벗 삼아 테이블에 조촐한 술상을 차린 채, 막 와인잔을 입가에 가져다 대던 그 모습 그대로 얼어붙은 수도원장의 모습이 보였다. 그도, 이 젊은 수도사들처럼, 눈을 끔뻑이며 그저 이쪽을 쳐다보며 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채 가만히 앉아있을 뿐이었다.


“자, 달 밝은 밤. 이렇게 두 주당들이 우연하게 만나게 되었는데, 이 기회에 서로 인사라도 나누는 것이 어떻습니까?”


펠릭스는 얼빠진 얼굴로 멍하니 서로를 쳐다만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 해 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입을 벌린채,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보다못한 펠릭스가 웃음을 터트리자, 부외자로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올리버와 실비아도 곧 어이가 없어 웃음을 터트렸다. 수도원장 역시, 이 상황이 너무나 어이가 없었는지 웃기 시작했고, 몰래 포도주를 마시려고 방을 빠져나왔던 수도사들도 어색하게 웃기 시작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웃자, 혼자 진지했던 도미닉도, 결국 한숨을 쉬며 어이가 없다는듯 웃음을 터트렸다.




소란스러운 밤이 지나고, 글레이스 수도원에 새 아침이 밝았다. 오늘따라 유난히 젊은 수도사들이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것에 대해서는, 다른 수도사들이 별다른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성실한 도미닉이나, 수도원장까지 늦잠을 잔 것에 대해서는, 그들은 쓸데없는 소문을 서로 나누었다.


“내 참. 그러니 그 꼴이지.”


그리고 펠릭스는, 식당에서 여전히 그 맛없는 스튜를 먹으며 툴툴거렸다.


“뭐가요?”


“늦잠이요. 술이랑 약을 같이 먹었으니, 아주 뻗어버리지. 술과 약을 같이 먹지 않는건 기본중의 기본, 상식중의 상식 아닌가요? 그것도 못 지키니 원.”


펠릭스가 투덜거리는 것을 가만히 보던 실비아는, 그의 말을 대충 흘려듣고 다른 것을 물어보았다.


“수도원장님은 왜 거기 있었을까요?”


“포도주를 그 사이 빈 공간에 저장해 뒀으니까 그렇겠죠. 수도원장도, 벽 반대편에서 술잔치가 벌어지고 있는 줄은 몰랐을걸요.”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겠어?” 올리버가 말했다.


“방음이 잘 되는가보죠. 아니면, 다 듣고 있었으면서 모르는척 했거나.” 펠릭스가 대답했다.


“하지만, 수도원장쯤 되면 좀 더 당당하게 포도주를 마셔도 될 일 아니었겠어요?” 실비아가 말했다.


“글쎄요. 아무리 수도원장이라 하더라도, 상품으로 내다 팔 포도주에는 손 못 대겠죠. 전에 돈이 없어 수도원이 주저앉을 뻔한 것을 직접 본 사람이니. 그러니, 결국 하자품을 마셔야 하는데, 그 하자품을 가지고 있는 것은 양조장을 관리하는 그 유령같은 수도사 혼자 뿐이니까요.”


“아니, 제말은요.” 실비아는 다시 질문했다. “직접 양조장으로 가서 마셔도 되잖아요? 그렇게 어두컴컴한데 볼품없이 촛불 하나 켜놓고 궁상맞게 술을 마실 필요는 없지 않았나 하는 거예요.”


“양조장까지 가는 길이 멀기도 하고, 포도밭을 지나야 해서 밤에는 위험해요. 그리고, 누가 재수없게 창문 밖을 내도보고 있기라도 하면, 수도원장이 혼자 몰래 밤에 술 마시러 나다닌다고 소문이 날 지도 모르고. 위엄이 안 살잖아요.”


“위엄은 무슨. 네가 어젯밤에, 그 위엄이니 뭐니 모조리 박살내버렸잖아.” 옆에서 올리버가 말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까진 없었잖아? 안 그래, 펠릭스?”


“뭐, 그렇긴 하네요.” 펠릭스가 어딘가 불만스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런데요. 그 유령같은 사람은, 뭐가 아쉬워서 몰래 포도주를 챙겨들고 여기까지 찾아왔을까요?”


“심심해서 왔겠죠. 사람 그림자가 그리워서. 봤잖아요? 좁아 터진 방에서, 하루종일 포도주나 빚고 있으면 얼마나 재미없겠어요. 그것도, 지금은 한창 술 빚을 시기라 그렇다 쳐도, 그 시기가 끝나면 그 사람이 어디로 가겠어요?”


“여기로 돌아오겠죠.”


“온다고, 뭐 재미나 있겠어요? 친구도 없고, 이제와서 경전이 손에 잡히겠나요? 줄창 술이나 빚던 사람인데.”


“못할 건 없죠.” 실비아가 말했다.


“그래요. 못할 거야 없겠지만, 사람 그림자가 그립지 않겠어요. 단순한 이유겠죠.”


“그래. 그렇겠지. 그리고, 솔직한 심정으로 말하자면, 그 이외의 이유는 상상도 하고싶지 않군.” 올리버가 말했다.


“달리 무슨 이유가 있겠어요?”


“뭐, 비밀 집회나, 지하 모임이나, 아니면······.” 올리버는 무언가를 말하려다 말고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뭔데요? 왜 말을 하다 말아요?”


“숙녀가 듣기에 적절하지 않은 말을 하려고 그랬나보죠.” 펠릭스는 대충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짐작이 간다는듯 말했다.


“뭐가 적절하지 않아요?”


“있어, 그런게. 아무튼, 쓸데없는 이야기는 적당히 하지.”


그리고 올리버는 헛기침을 하며 먼저 자리를 떴다.


“펠릭스. 무슨 이야긴데요?”


“별거 없어요.”


“또 나한테만 꽁꽁 숨기려고요?”


“당신 마음대로 생각해요, 실비아. 솔직히 나도 내 입으로 말하기는 싫으니까.”


그러고는 펠릭스도 도망치듯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을 빠져나가버려, 실비아는 졸지에 혼자 남아 투덜거리면서 그들의 뒤를 쫓았다.




수도원장의 방 안에서는, 이제는 더이상 강렬한 향내도 나지 않았고, 어두운 조명도 없었다.


“아주 멋진 모습입니다.”


과음의 여파로, 여전히 붉게 일그러진 얼굴을 한 채, 희미한 술냄새를 풍기는 수도원장 앞에서 펠릭스가 말했다.


“이번에는 또 뭔가? 또 뭐가 궁금해서 왔나?” 수도원장이.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 밤의 술자리는 그래도 꽤 즐겁지 않았습니까? 젊은 사람들과 어깨동무하며 의기투합하는 모습은······.”


“그렇게까지는, 안 했네!” 수도원장은 정작 말을 해 놓고서, 머리가 지끈거리는듯 손으로 머리를 짚었다. “자네, 연금술사. 혹시, 숙취에 좋은 약은 없나?”


“숙취에 좋은 약을 만들어 드리면, 마음놓고 술독에 빠지실것 아닙니까? 숙취가 괴로우시다면, 과음을 멀리하십시오.”


“맞는 말이로군.” 한숨을 쉬며, 수도원장이 말했다.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싶어 왔나?”


“이제 떠나려고요. 제 처방은, 도움이 되셨습니까?”


수도원장은 잠시 생각했다.


“자네 약은 소용이 없었네. 여전히 쿨쿨 잠만 자고 있지 않은가.”


“그래보입니다. 술과 약을 같이 먹으면 탈이 나거든요.”


“그래. 그렇군.” 수도원장은. 입맛을 다시며 하품을 했다. “뭐, 그래도, 약값은 지불하겠네. 얼마면 되겠나?”


“포도주나 한 병 주십시오. 제가 별로 한 것도 없으니까.”


“알겠네. 가는 길에 하나 포장해주지.”


“아, 그리고. 마차를 좀 불러주셨으면 합니다만. 갈 길이 멀다보니. 아시지요?”


“알겠네. 그럼, 그만 나가들 보게나.” 수도원장이 말하자, 세 사람은 그의 방에서 쪼르르 나왔다.




그러나 방에서 나오자마자, 펠릭스는 두 사람을 먼저 내려보내고 수도원장의 방으로 돌아왔다.


“또 뭔가?” 노크를 하지도 않고 벌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는 펠릭스를 향해, 수도원장이 말했다.


“원장님. 하나만 여쭤보겠습니다.”


“뭐지?”


“전에 왔던 연금술사가 부린 마술에 대해 여전히 기억하고 계십니까?”


“말 할 만큼은 말 해 준것 같은데.” 수도원장이 말했다.


“좀 더 자세히 알려주시지요.”


“그게 전부일세. 한 오 분도 되지 않아 나무 한 그루를 키워내 기둥으로 만들어 주었고, 우리들에게 포도주 빚는 법을 알려주었고, 포도밭도 원래는 땅이 거칠어 못 써먹을 땅이었는데, 무슨 벌레와 약을 쓰라고 가르쳐 주더군. 속는셈 치고 해 봤는데, 꽤 좋았네.”


“그게 전부입니까?”


“내가 기억하기로는.” 수도원장이 말했다. “왜 자꾸 그걸 묻나? 예전 일인데.”


“아, 뭐. 그냥요. 하나만 더 묻죠. 그 사람과, 지금의 저 중에서, 누가 더 뛰어난 것 같습니까?”


“말해 뭐하겠나. 당연히 그 사람이지.” 수도원장이 말했다. “순식간에 나무를 자라나게 만든 그 약은, 정말이지. 어린 마음에서 그랬는지 어땠는지는 몰라도, 어마어마했거든.”


펠릭스는 조금 실망한 얼굴로 수도원장의 방에서 서성거리다가, 그에게 인사를 하고 방을 나왔다.




수도원장이 불러준 마차를 타고 가는 길에, 펠릭스는 계속 차창 밖으로 한 손을 내밀고 있었다.


“뭐해요? 마차 타고 있으면서, 지나가는 마차를 또 잡게요?” 실비아가 그 맞은편에 앉아 펠릭스에게 놀리듯이 말했다.


“내년 봄이 오면, 이곳 서쪽 사람들은 깜짝 놀랄 겁니다.” 펠릭스가 대답했다.


“무슨 수수께끼같은 말이에요. 내년 봄에 무슨 일이라도 나요?”


“그런게 있어요.” 펠릭스는 손을 거두어 들이더니, 다시 차창 밖으로 두 손을 내밀어 손을 탈탈 털었다.


“아무튼, 꽤 기분좋은 선물인걸.” 나무 상자에 고이 모셔진 포두 병을 만족스럽게 쳐다보며 올리버가 말했다.


“이틀이나 낭비하긴 했지만요.” 펠릭스가 말했다.


“아, 그래요. 펠릭스. 계속 궁금했는데, 뭐 수도원에 불만이라도 있었나요?”


펠릭스는 잠시 실비아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무슨 뜻이죠?”


“아니, 그러니까요. 당신 답지 않게, 뭐랄까. 긴장한 것처럼 보여서요. 얼굴도 계속 어딘가 찡그리고 있고, 얼굴에 불만이 아주 철철 흘러넘치던데요. 거기 누가 시비라도 걸던가요?”


“아니오. 수도사가 무슨 배짱이 있어서 제게 시비를 걸겠어요?”


“그럼요? 수도원에 무슨 문제라도 있던가요? 당신 눈에 거슬릴 만한 큰 문제.”


“딱히요.” 펠릭스가 말했다.


“그래요? 그런가요?” 실비아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알쏭달쏭하다는듯 시선을 돌렸다.




마차가 구릉을 올라갈 즈음에는, 올리버와 실비아는 지난 밤의 불침번을 견디지 못하고 저마다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물론 올리버는 불침번이 아주 익숙한 사람이었으니 그 정도로 졸 사람은 아니었지만, 분위기에 휩쓸려 포도주를 한 잔 마신 것이 생각보다 몸에 무리가 갔는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리고 펠릭스는 차창 밖을 내다보며 바람결에 중얼거렸다.


“대스승님. 당신이 다녀간 곳에, 저도 다녀갑니다.”


바람은 그에게 아무것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대스승님. 저는, 여전히 당신만큼은 못 따라잡겠습니다만.” 그는 침을 꿀꺽 삼키고 다시 말했다. “제 장기인 죽음의 약에 대해서 만큼은, 꼭 당신을 능가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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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74화 21.11.13 28 1 23쪽
73 73화 21.11.13 26 1 20쪽
72 72화 21.11.12 25 1 19쪽
» 71화 21.11.12 24 1 21쪽
70 70화 21.11.11 27 1 19쪽
69 69화 21.11.11 25 1 20쪽
68 68화 21.11.10 22 1 21쪽
67 67화 21.11.10 21 1 20쪽
66 66화 21.11.09 24 1 23쪽
65 65화 21.11.09 24 1 20쪽
64 64화 21.11.08 24 1 22쪽
63 63화 21.11.08 23 1 24쪽
62 62화 21.11.07 22 1 28쪽
61 61화 21.11.07 27 1 21쪽
60 60화 21.11.06 22 1 26쪽
59 59화 21.11.06 24 1 20쪽
58 58화 21.11.05 23 1 22쪽
57 57화 21.11.05 23 1 24쪽
56 56화 21.11.04 25 1 25쪽
55 55화 21.11.04 19 1 24쪽
54 54화 21.11.03 28 1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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