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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의 연금술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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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1.10.08 16:53
최근연재일 :
2022.01.13 18: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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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06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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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쪽

60화

DUMMY

도마뱀의 아가리를 피해 뒤로 피하다가, 펠릭스는 실비아에 걸려 뒤로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펠릭스! 살아있어요?” 펠릭스 밑에 깔린 실비아가 버둥거리며 말했다.


“네. 일단은.” 바로 앞에서 멈춘 도마뱀의 턱을 보며, 긴장한 목소리로 펠릭스가 말했다. 다시 도마뱀이 혀를 날름거리자, 혀끝이 그의 몸에 닿을락 말락했다.


“그럼, 좀 비켜줄래요?”


“아, 죄송.” 펠릭스는 도마뱀쪽으로 다가가지 않게 조심조심 자리에서 일어나, 옆으로 슬쩍 비켰다.


“이 도마뱀. 어디 걸렸나본데.” 그리고 먼저 도마뱀의 습격을 받았던 올리버도, 다친곳 없이 멀쩡하게 일어섰다.


“그래요?”


“봐.” 도마뱀은 다시 이쪽으로 달려들려다가, 정말 뒤에서 뭐가 잡아 당기는 것처럼 더이상 이쪽으로 오지 못했다.


“덫에라도 걸렸나보죠.”


“블루 드래곤을 잡을 덫이 어딨어? 거의 곰덫 두 배는 되는 크기어야······.” 나무 막대기로 수풀을 뒤지며 말하다가, 올리버가 굳었다.


“올리버?”


“진짜 있네. 곰 덫 두 배 정도 크기의, 합금으로 만든 덫이.”

올리버는 도마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게 조심조심 하다가, 칼로 냅다 덤불의 한 면을 슥 잘라냈다. 잘린 덤불의 단면으로, 은빛으로 번쩍이는 커다란 합금 곰덫과, 그 덫에 꼬리가 붙잡힌 도마뱀의 꼬리가 얼핏 보였다.


“아니,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 있나? 저 비싸고 좋은 합금을, 이딴데 쓴다고?” 멀리서 보기만 해도 그게 뭔지 알 수 있는 건지, 펠릭스가 말했다.


“저게 뭔데요?”


“거인의 철이라고 부르는 금속이요. 굉장히 만들기 어려워요. 초 고온의 불을 피우는 것도 일이고, 금속 배합도 힘들거든요. 돈이 썩어 넘치는 귀족들의 무구를 만들거나, 국왕이 직접 요구하는 일이 아니면 잘 만들지도 않고요.”


“그런데, 그 대단한 금속으로 이딴 덫을 만들다니.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올리버가 어이없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덫을 내려다보았다.




다시 도마뱀이 아가리를 벌리고 펠릭스를 위협했지만, 더이상 펠릭스는 겁을 먹지는 않았다.


“그래서, 보자. 이걸 어부지리라고 하던가요?”


“풀어줘요.” 실비아가 말했다.


“네?”


“풀어줘요. 불쌍해 보이는데.”


“그러니까, 이걸, 풀어주자?” 펠릭스가 도마뱀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네.”


“왜요?”


“불쌍해 보이잖아요.”


“내 참. 실비아. 당신 말이에요.” 펠릭스가 실비아를 향해 핀잔을 주기 시작했다. “산비둘기 고기도 잘만 먹었고, 양고기도 뜯고, 벌레는 죽이고, 풀을 캘 때는 입 하나 벙긋 안 하면서, 이 도마뱀은 불쌍하다?”


“네.” 실비아가 말했다.


“너무 제멋대로 아닌가요? 좀, 사람이, 일관성이 있어야······.”


“평범한 사람은, 원래 제멋대로에요!” 실비아가 펠릭스에게 말했다. “그렇다고요 다들. 저 도마뱀이 불쌍해 보일 수도 있잖아요. 고기를 맛있게 뜯어 먹었어도, 불쌍하게 생각 할 수 있는것 아닌가요? 벌레 한 마리와 가축으로 키우는 양, 그리고 몇 개체 남지도 않은 희귀한 영물을, 다 똑같이 취급하라는게 더 무리한 부탁 아니에요?”


“같은 생물이잖아요. 같은 동물이라고요.”


“달라요, 펠릭스! 당신은, 아마 이해 못 할 거예요. 아무튼, 저는 저 도마뱀 불쌍해요. 풀어주고 싶어요.”


“저기, 싸우는 와중에 미안한데.” 올리버가 헛기침을 하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뭐죠, 올리버?”


“그런데, 펠릭스. 쟤를 길들여 키우고 싶다면, 우선 덫에서 풀어주기는 해야 할 걸.” 올리버가 말했다. “너같으면, 꼬리에 쇳덩이를 채운 채로 낯선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겠어?”


“아주 합리적인 이유로군요, 올리버.” 펠릭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지만, 무턱대고 덫을 해체하는것도 위험하고, 또 기껏 풀어줬더니 오히려 우릴 공격할 수도 있어.”

올리버는 지금도 어딘가 불길하게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도마뱀을 경계하며 말했다.


“어쩔까요? 잠이라도 재울까요?”


“도마뱀에게 적절한 용량의 수면제를 알아?” 올리버가 조금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모르죠.”


“내 참. 누구, 동물하고 말 통하는 사람 없나? 이놈을 좀 진정시켰으면 하는데.”


터무니없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올리버가 중얼거렸다.


“손수건으로 눈을 가려요.”


펠릭스가 말하자, 올리버는 난색을 표했다.


“자꾸 움직이잖아. 그리고, 저 도마뱀. 앞발이 생각보다 길어서, 그냥 슬쩍 덮어두기만 하면 발로 치워버릴걸.”


“대책이 없네. 아 맞아!” 펠릭스가 손뼉을 쳤다. “올리버. 코튼한테 부탁해요. 마녀의 손길을 탔잖아요. 같은 동물 친구니까, 설득좀 해 달라 그래봐요.”


그 말을 가만히 듣고있던 실비아는, 너무 어이가 없어 펠릭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미쳤어요?”


그러나 펠릭스는 실비아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서, 세 사람은 졸지에 커다랗고 새파란 도마뱀을 눈앞에 두고, 잠시 말없이 멀뚱히 서 있게 되었다. 도마뱀은 처음에는 일행들을 위협하며 혓바닥을 날름거리고, 때때로 물어 뜯을 기세로 아가리를 벌렸지만, 지쳤는지 어땠는지 이제 그냥 가만히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뭐 없나.” 올리버가 도마뱀을 곁눈질하며 말했다.


“밥이라도 줘 보죠. 어쩌면, 꽤 오래 굶었을지도 모르잖아요.” 실비아가 말했다.


“꽤 좋은 생각이군요. 그래서, 뭐 먹일 만 한게 있나요?”


실비아는 가방을 뒤져, 사과 한 알을 꺼냈다.


“왠 거예요?”


“저 먹으려고 챙겨뒀어요.”


“자기 먹을 것 정도는 이제 잘 챙기는군.” 뜬금없이 올리버가 대견하다는듯 중얼거렸지만, 펠릭스도 실비아도 그의 말을 못들은체 했다.


“한번, 먹여봐요 펠릭스.”


펠릭스는 사과를 잡고, 조심조심 아주 느릿하게 도마뱀의 주둥이 근처로 손을 뻗었다. 도마뱀은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다시 입을 확 벌리며 펠릭스를 위협했고, 펠릭스는 전광석화와 같이 손을 뒤로 내뺐다.


“제가 싫은가봐요. 올리버?”


“나는 여기 계속 있는 편이 좋지 않을까.” 덫에 걸린 도마뱀의 꼬리 근처에서 올리버가 말했다. “기회를 봐서, 덫을 풀어야 하니까.”


“그건 그렇네요. 그럼, 실비아.” 영 못미덥다는 얼굴로, 펠릭스가 실비아를 돌아보았다.


“왜요?”


“해 볼래요?”


“제가요?” 실비아는 도마뱀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기이하게 금빛으로 빛나는 커다란 눈알과, 큼직하고 푸른 주둥이. 새파랗다 못해 검게 낼름거리는 혓바닥까지.


“당신말고는 없잖아요. 그리고, 이런 것도 나름대로 낭만이 있지 않나요? 말이 통하지 않는 다른 생물과의 교감이라······.”


실비아는 문득, 펠릭스를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 떠올랐다. 멋대로 그의 작업실로 들어갔다가, 그가 애지중지 하던 불눈나방을 자극하여 공연히 그것에게 상처를 낸 것. 그리고, 펠릭스가 어둠 속에서 그 나방을 어루만지며 상처에 약을 발라주던 것. 그리고, 그 나방을 보며 떠올랐던 어린 시절 키우던 강아지. 그리고, 펠릭스가 했던 무례한 말···


‘잡아 먹으려고 키우던 건가요?’


“펠릭스!” 그 말이 떠올라, 실비아는 다시 괜히 펠릭스에게 짜증을 냈다.


“아니, 왜요?”


실비아는 씩씩거리며 그를 노려보다가, 그의 손에서 사과를 뺏다시피 낚아챘다.


“하여튼, 당신이 이 도마뱀 키우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어요. 그래요, 기억났어요. 당신은, 동물 키우면 안 된다고요!”


“갑자기?” 펠릭스가 의아한 투로 물었다.


“그래요! 당신, 제가 당신한테 제가 어릴때 키우던 소중한 강아지 이야기 했을때, 저한테 뭐라그랬는지 잊었어요?”


펠릭스는 가만히 생각하는가 싶더니 금새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연히 잊었죠. 그런 하찮은 일.”


“그래서 안 된다는 거예요!” 실비아는 다시 펠릭스에게 쏘아붙인 다음, 이제 조금 얼굴을 누그러뜨리며 조심조심 도마뱀과 눈을 마주쳤다.




실비아가 갑자기 용기를 낸 것은, 다른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저 펠릭스의 손에서 이 도마뱀을 탈출하게 하려면, 우선 저 덫을 풀어줘야 했다. 그리고 덫을 풀어주려면, 도마뱀과 최소한의 의사소통은 해야 했다. 그리고 말 안 통하는 짐승과 의사를 주고받는데는, 이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실비아는 사과를 들고, 조심조심 도마뱀에게 다가갔다. 도마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게 주의하며.


어제 도서관에서 읽어뒀던 책들이 도움이 되었다. 그녀는 도마뱀이 보내는 경계 신호나, 위협 태세를 의외로 금새 알아챌 수 있었다. 이리저리, 도마뱀의 근처를 빙빙 돌며 서서히 접근하여, 마침내 실비아는 그 커다란 주둥이 근처에 사과를 톡 내려놓고, 뒤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입으로 물어가긴 좀 먼데요.” 옆에서 펠릭스가 참견했다.


“있어봐요 좀.” 실비아는 그에게 대충 대꾸하고는, 근처 덤불의 가지를 뚝 부러뜨려, 가지 끄트머리로 사과를 도마뱀 쪽으로 슬쩍 밀었다. 그러자 도마뱀은 뒤로 살짝 물러나더니, 그 커다란 눈을 끔뻑이며 실비아를 마주보았다.


“사과를 별로 안 좋아하나 봐요.” 펠릭스가 또 끼어들자, 실비아가 짜증을 냈다.


“아 좀! 조용해 봐요. 집중하고 있는데.”


“네네 알았어요.” 펠릭스가 입을 비죽이며 대답했다.




사과를 사이에 두고 한 오 분이나 흘렀을까, 여전히 도마뱀과 실비아는 서로 눈을 마주치고, 말없이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제대로 되고 있는거 맞아요?”


“저도 몰라요.” 실비아가, 조금 울상이 되어 말했다. “제가 어떻게 알아요? 전, 어릴때 강아지 키워본 것 말고는 동물하고 가까이 지내본 적이 없는데.”


“코튼 있잖아요.”


“코튼은 똑똑하잖아요.”


“쟤도 똑똑해요.” 펠릭스가 도마뱀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서요?”


“그냥, 그렇다고요. 그러니 좀 더 용기를 내 보든가······.”


갑자기, 도마뱀이 펠릭스쪽으로 고개를 휙 돌리자, 그는 다시 두어발 뒤로 잽싸게 물러났다.


“똑똑하네요.”


실비아가 웃으며 말하자, 펠릭스는 입을 비죽였다.




진전이 없자, 결국 실비아는 다시 조심조심 손을 뻗어 사과를 집어들었다. 도마뱀은 혀를 두어번 날름거리며 가만히 실비아를 쳐다보기만 했다. 그녀는, 다시 용기를 내어, 이번에는 손으로 사과를 잡은 채 도마뱀의 입 가에 가까이 가져다 댔다.


“나라면 하지 않았을 행동이야.” 긴장한 목소리로, 올리버가 말했다.


“저도 별로 하고싶진 않거든요?” 도마뱀의 입 가에서 사과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실비아가 말했다. 다행히, 사과를 따라 도마뱀의 눈동자가 움직이는 것을 보면, 적어도 사과에 관심은 있는 것 같았다.


“걱정 마요. 물리면, 새 손을 만들어 줄 테니까.”


“퍽이나 고맙네요.” 다시 조금 울상이 되어 실비아가 말했다. 그러다 갑자기 도마뱀이 입을 슬쩍 열자, 실비아는 깜짝 놀라 손에서 사과를 떨어뜨리고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마침내, 도마뱀이 입을 슬쩍 열더니,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사과을 살짝 핥았다. 그리고 도마뱀은 다시 입을 다물더니, 가만히 있다가, 입을 도로 살짝 벌려 사과를 덥썩 깨문 다음 마침내 우적우적 씹어 삼켜버렸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세 사람이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펠릭스가 말했다.


“그래서, 교감이 된 건가요?”


“모르지.” 올리버도 말했다. 두 사람은, 다시 울상이 된 실비아를 향해 고개를 돌려보았다.


“왜요?”


“뭐 더 없나요?” 입맛을 다시듯, 혀를 낼름거리는 도마뱀을 보며 펠릭스가 말했다.


“제가 어떻게 알아요?”


“노래라도 불러 보든가······.”


“아까, 오카리나 못 불게 막았잖아요.”


“아, 하긴. 아 뭐 없나? 이 말 안 통하는 짐승과 단 한 순간에 친구가 될 만한 그런게······.”


“있네.” 갑자기 올리버가, 칼을 뽑아들고 도마뱀을 피해 크게 돌아오며 말했다.


“뭐가요?” 펠릭스가 의아한 눈으로 올리버를 돌아보았다.


“덫 주인이 온다.” 올리버가, 수풀 속을 노려보며 말했다.


“덫 주인이요?” 실비아가 물었다.


“그래. 누가 저걸 설치했을거 아냐. 설마, 저절로 짠 하고 생겼을 리는 없으니까. 그 덫 주인이 오고 있어.”


“아하! 그러니까, 저 도마뱀이 보는 앞에서 덫의 주인놈들을 혼쭐을 내 주고, 도마뱀과 친구가 되자 이거죠?”


“그래.”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요. 그런데, 저 도마뱀이, 그 사람들이 자기 꼬리를 덥석 깨물고 있는 덫을 놓았다는걸, 알기나 할까요?”


올리버의 칼을 든 손에서, 힘이 조금 빠져나갔다.


“그러게.”


“그러면, 우리가 기껏 그 사람들을 쫓아내 준다고 우리들을 믿어주기나 할까요?”


“몰라. 그래도, 뭐든 해 봐야지. 어쨌든, 짐승들은 냄새를 잘 맡거든. 덫에 묻은 냄새랑 같은 냄새가 나는 놈들을 우리가 쫓아버리면, 우리 친구가 되어줄지도.”


“내참. 일이 이렇게 돌아갈 줄이야.” 펠릭스가 툴툴거리자, 실비아가 그에게 쏘아붙였다.


“당신 때문이잖아요!”


“쉿. 온다.” 올리버가 다시 칼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곧, 수풀이 들썩거리기 시작하더니, 세 명의 젊은 사냥꾼이 떠들며 걸어나왔다.




한창 음탕한 농담을 떠들며 걸어오던 세 사람은, 덫에 걸린 도마뱀과, 그 주변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낯선 세사람을 보고 멈춰섰다.


“덫 주인인가?”


“그런데.” 앞장서서 걸어오던 젊은 사냥꾼이 올리버를 힐끗 보며 말했다. “무슨 볼일이라도?”


“저 도마뱀. 덫에 걸려있던데.”


“옳거니, 드디어 잡았군!” 그가 두 동료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래서, 뭐 훔쳐갈 생각이라도 했나?”


“아뇨, 훔쳐가다니, 당치도 않습니다.” 펠릭스가 슬쩍 앞으로 걸어나오며 말했다.


“넌 또 뭐야?”


“당신들, 저 도마뱀 얼마에 팔 생각이죠?”


“뭐?” 사냥꾼이 눈을 찌푸리며 펠릭스에게 말했다. “뭐라고?”


“모른척 하지 말아요. 나는 이쪽 업계에 대해 잘 알고 있으니까. 블루드래곤은 아무나 취급할 만한 물건이 아니에요. 저걸 손질 할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죠. 당신들이 직접 해체해서 내다 팔고 잡았을 리는 없어요. 덫도, 보통 덫이 아니던데요. 당신들, 누가 고용한거죠? 그래서, 그 사람이 얼마에 사겠다고 하던가요?”


선두에 서 있던 사냥꾼은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글쎄. 난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아하, 그러면 이렇게 할까요? 어차피 당신들은 저걸 잡아봤자 손질도 못 하고 내버릴게 분명합니다. 그리고, 블루드래곤은 죽으면 일 주일 이내에 가죽 내부가 푹 썩어버려서, 끔찍한 독가스를 뿜어내요. 어때요, 위험하죠?”


“그런 말까지는 못 들었는데.” 뒤에 있던 사냥꾼 하나가 말하자, 다른 둘이 그에게 바로 눈치를 주었다.


“오호? 누가 말해주던가요? 누구죠?”


“몰라. 아무튼, 뭐든 간에, 저건 우리 몫이야. 남의 사냥감에 손 대는건 얼빠진 멍청이들이나 할 짓이라고.”


선두에 있던 사냥꾼이 앞으로 걸어나오며 말했다. 그러자, 뒤에서 줄곧 얌전히 있던 도마뱀도, 머리를 치켜들고 다시 혓바닥을 날름거리기 시작했다.


“아, 하긴. 그렇죠.” 펠릭스는 슬쩍 옆으로 비켜, 사냥꾼이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터 주었다. 그리고 그 사냥꾼이 그 바로 앞을 지나갈때, 조용히 중얼거렸다. “하지만, 저 팔팔한 도마뱀을 저대로 들고갈 수는 없을걸요.”


“다 방법이 있어.”


“뻔히 보이는 거짓말은 안 하느니만 못 합니다. 보나마나 야만인처럼 몽둥이로 두들겨 팰 생각이겠죠. 덫에 걸린 멧돼지를 잡을 때처럼. 아니면 죽을 때까지 칼로 찌를 셈인가요? 대단히 가죽이 깨끗하게 남겠군요. 아니면······.”


“하여튼, 생각하는것 하고는. 이래서 천한 사람들이란.” 돌연, 사냥꾼이 펠릭스를 비웃으며 말했다. 실비아는 바로 그에게 뭐라 하려 나서려다가, 펠릭스가 여전히 여유롭게 웃는 것을 보고 가만히 참았다.


“아하, 보나마나 자기가 똑똑한줄 아는 멍청한 사냥꾼이겠군요. 그냥, 저한테 이 도마뱀을 여기서 팔면 될텐데. 굳이 우득부득 ‘나라면 남들과 달라.’ 따위나, ‘나라면 더 잘할 수 있어.’ 따위 헛된 꿈을 품고 직접 도마뱀을 잡아갈 생각이군요.”


“닥쳐! 이게 뭔줄 알아?” 갑자기, 펠릭스의 깐죽거림을 못 참았는지, 사냥꾼이 품에서 뭔가를 불쑥 내밀었다. “누가 만들어 준 건 줄 알아? 너같이 남의 것에 손이나 대는 천한 인간들은 꿈에도 못 꿀꺼다!”


“퍽!”


그리고, 그 소리와 함께 사냥꾼의 손에 들려있던 약병이 박살나, 안에 담겨있던 액체가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져내렸다.


“어?”


사냥꾼은 자기 손바닥 위에서 부서진 병을 보다가, 실비아쪽을 보았다. 실비아는 재빨리 새총을 숨기려다가, 그만 손에서 놓쳐버렸다.


“뭐야. 지금, 우리 상대로 시비거는거야?”


분위기가 험악하게 돌아갔고, 펠릭스는 실비아를 원망스런 눈으로 슬쩍 흘겨보았다.


“뭐야. 얼마짜린줄 알아? 누가 우릴 고용했는데. 젠장. 이래서 서쪽 천것들은 안 된다니까. 전쟁이 끝난지가 언제인데 조금도 문명화가 되지 않은 야만인들······.”


“딱!”


실비아에게 걸어오던 사냥꾼의 머리 근처에서 경쾌한 소리가 나더니, 그는 그대로 바닥에 픽 쓰러졌다. 그의 머리에 자그마한 혹이 하나 솟아오르고 있었고, 이번에는 올리버의 손에 새총이 들려있었다.


“뭐야?”


“어이, 이봐. 뭔가, 좀 착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칼을 뽑아들고 사냥꾼에게 다가오며 올리버가 말했다. “숲에 있는 것들은, 다 주인없는 물건들 뿐이거든. 저건, 우리가 먼저 찾았어. 그러니, 우리 거야.”


“뭐!” 두 사냥꾼도 각자 칼을 뽑아들었다. 올리버는, 숲에서 쓰는 것이 아니라 전장에서나 써먹을 길다랗고 날이 여린 칼을 보고 그들을 비웃었다.


“퍽!”


또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나더니, 하얀 연기 구름이 작게 뭉쳐 피어올라 한 명이 바닥에 쓰러졌다.


“아, 죄송.”


전혀 미안하지 않은 목소리로 펠릭스가 말했고, 어느새 혼자 남은 사냥꾼은 불안한 눈으로 이리저리 칼을 공연히 휘두르며 위협했다.


“어이, 너희들! 뭐야! 누굴 건드렸는지 알아? 우리 고용주가 누군줄 아냐고! 가만 안 둬. 얼굴 기억했······읍읍······!”


올리버가 어느새 그의 뒤로 돌아가, 그의 손을 꺾어 칼을 빼앗은 동시에, 그의 입을 막고 목을 압박하고 있었다. 곧, 그도 그의 두 동료들처럼 힘없이 바닥에 픽 쓰러지고 말았다.




펠릭스는 꼭 시체처럼 세 사람을 나란히 눕혀놓고는, 천에 무슨 약을 묻혀 그들의 코 밑에 올려두었다.


“뭐에요?”


“기억상실약이요. 우리 얼굴 봤다잖아요.”


“세상에, 망각의 약이에요?”


“아니, 그정도로 세진 않고. 걱정마요.” 펠릭스가 나란히 누워 아리송한 표정을 지은채 의식을 잃은 세 사람을 슬쩍 돌아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실비아. 새총, 여전히 잘 쏘더구나.”


“아, 네. 고마워요.”


“고맙긴!” 펠릭스가 말했다. “한창 잘 돌아가던 협상 테이블을, 당신이 엎어버렸잖아요.”


“아, 하지만. 그거, 분명 위험한 약이었을 거라고요!” 실비아도 지지않고 외쳤다.


“퍽이나. 보나마나 수면제나 그 비슷한 것이었을텐데. 그 약만 어떻게든 채왔으면, 저 도마뱀, 진짜 기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고요.”


대단히 아쉬운 투로 펠릭스가 툴툴거렸다. 그 꼴이, 꼭 잔뜩 기대하며 선물상자의 포장을 벗겼는데, 안에서 교과서를 발견한 어린아이 같았다.


“뭐 어쨌든. 그래서, 이 도마뱀이 이제 우리를 자기 친구라고 생각해 줄까?”


“모르죠. 오, 실비아. 한번 도전해 보게요?”


실비아는 다시 용기를 내어, 가방 안에서 이번에는 말린 과일의 조각을 꺼내 도마뱀에게 슬금슬금 내밀었다. 도마뱀은 혀를 날름거리다가, 갑자기 혓바닥으로 그녀의 손에 들린 과일 조각을 낚아채 입 안으로 집어넣었다.


“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실비아는 뒤늦게 자기 오른손에 남아있는 조금 축축한 감각을 느끼고, 도마뱀의 눈을 쳐다보았다.


“오!” 뒤에서 올리버가 말했다. “받아 먹는걸?”


“그래요? 어디, 내가 네 주인이야.” 펠릭스도 실비아에게 말린 과일 조각을 받아 도마뱀에게 내밀었지만, 도마뱀은 고개를 슬쩍 돌려 피해버릴 뿐이었다.


“당신이 싫나봐요.”


“어째서? 맛있는거야. 아까 먹은거랑 같은 거라고.” 펠릭스는 집요하게 도마뱀의 주둥이 끄트머리에 과일 조각을 들이밀다가, 도마뱀이 입을 크게 벌리자마자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진짜 네가 싫은가봐.”


“아니, 짐승들은 왜들 그렇게 나를 싫어하지?”


“몸에 밴 냄새 때문 아니겠어?” 올리버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아, 하긴. 그렇겠죠. 네네 아무렴. 제 몸에는 죽음의 냄새가 아주 깊이, 짙게 배어 있으니까요.” 결국 도마뱀을 포기한듯, 펠릭스가 툴툴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그럼 실비아는 왜 따르는데요?”


“모르죠. 아! 어쩌면, 메를린 한테서 마녀 냄새가 옮았는지도.”


“제가 걔랑 훨씬 더 오래 있었거든요?”


“그럼 진짜 모르죠. 뭐, 누가 알겠어요?”


하지만 정말로, 도마뱀은 실비아를 조금 따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가 자리를 옮기자 도마뱀도 슬금슬금 눈을 돌리기도 했고, 그녀가 살짝 가까이 다가가도 혓바닥을 한두번 날름거리기만 할 뿐, 위협 신호를 보내지도 않았다.


“덫, 풀어볼까?” 그 모습을 가만히 보던 올리버가 말했다.


“그래보죠. 뭐, 여기 계속 묶여있을 수도 없고. 내 참. 하여튼. 대체 이게 뭐람······.”


그리고 툴툴거리던 펠릭스는, 공연히 기절한 세 사람을 짜증스레 내려보며 그들에게 대고 뭐라 욕지기를 뱉었지만, 올리버도 실비아도 그쪽에는 관심을 주지 않았다.




실비아가 도마뱀과 눈을 마주치고 있는 동안, 올리버가 덫의 구조를 파악하고 가방에서 쇠막대를 꺼내 덫의 틈새에 넣고 벌리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어. 도와주려고 하는 거니까.”


꼬리에 이상한 감각이 느껴져서 인지, 도마뱀은 다시 입을 벌리고 조금 위협 신호를 보냈지만, 다행히 올리버가 덫을 망가뜨릴 때까지 도마뱀은 아무도 물지 않았다.


“옳지, 됐다!” 쨍그랑 소리가 나더니, 덫의 스프링이 터졌는지, 덫이 힘없이 턱 열렸고, 도마뱀은 마침내 꼬리를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다. 실수로라도, 그 거대한 근육 덩어리에 얻어맞지 않게, 올리버는 재빨리 자리를 피했다.


“됐군요.”


도마뱀은 꼬리를 잠시 이리저리 움직여 보더니, 슬금슬금 수풀 속으로 기어들어가 사라져버렸다.


“블루드래곤인데.” 허탈한 목소리로, 펠릭스가 말했다. “그걸, 눈앞에서 보고, 놓치다니.”


“뭐 어때.” 그리고 펠릭스의 곁으로 다가와, 그의 어깨 위에 손을 턱 올리며 올리버가 말했다. “덕분에, 평생 안줏거리 하나 생겼잖아.”


“술도 안 마시는데, 그걸 어디 써요.” 펠릭스가 입을 비죽였다. “키워보고 싶었는데.”


“펠릭스! 무슨, 영물을 강아지 보듯 해요? 쟤는 자연 속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거라고요.” 실비아가 의기양양해서 말했다.


“하여튼. 궤변론자 실비아에, 이럴 때만 도움안되는 올리버. 당신들한테 실망이에요.”


“뭐욧!”


실비아가 펠릭스에게 뭐라 할 새도 없이, 느닷없이 올리버가 웃음을 터트려, 두 사람은 올리버를 돌아보았다.


“아니, 그래. 내 참. 미안해 펠릭스. 이럴 때만 도움이 안 돼서. 그래도 나는 네 편이긴 했는데, 일이 이렇게 돌아갈 줄은 몰랐지.”


“아니, 뭐 그거야 그렇다 치고, 왜 갑자기 웃어요?”


“아니. 그냥, 좀 웃기지 않아?” 올리버는 스프링이 터져버린 희귀한 합금 덫과, 나란히 누워 햇살을 쬐며 기절해 있는 세 사람을 돌아보며 말했다.


“확실히, 우스운 꼴이기는 하네요.” 실비아도 그 꼴을 돌아보더니, 갑자기 피식 웃기 시작했다.


“그래요. 또 나만 손해봤군요. 아깝게, 남이 다 잡아 놓은걸 보내주다니. 내 참. 자, 가요 가! 호수뿌리나 찾으러 가자고요. 하여튼. 빨리 실비아 당신 약을 빨리 완성해 주든가 해야지, 항상 손해보는건 나라니까!”


쉴새없이 툴툴거리며 앞장서서 걸어가는 펠릭스의 등을 보며, 두 사람은 계속 실실 웃다가 펠릭스가 짜증을 부리자 그제서야 뒤늦게 그를 따라갔다.




숲에 버려진 세 사람중, 누군가가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다. 그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그의 동료들을 깨웠다.


“뭐야. 우리들이 왜 여깄지?”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남자가 말을 꺼냈다.


“아, 덫 확인하러 왔잖아.” 저쪽에, 부서져 입을 활짝 열리고 있는 커다란 곰덫을 보며 사냥꾼이 중얼거렸다.


“또 놓쳤네.”


“영물이긴 한가봐. 이걸로도 못 잡다니.”


“어떡하지? 이대로 가서 사실대로 말해야하나?”


사냥꾼의 우두머리쯤 되어 보이는 남자는,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거짓말 하다 걸리면 다 모가지야. 귀족 상대로는, 입조심 해야한다고.”


“하긴. 깐깐한 귀족같지는 않았으니까. 씀씀이도 좋고, 우리들 상대로 별 관심도 없는것 같아. 놓쳤다고, 무슨 일이야 있겠어.”


“그래.” 줄곧 조용히 듣고있던 사냥꾼도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공작가는 마음 씀씀이가 다르다니까.”


“맞아. 역시, 무리해가면서 웨일가의 심부름꾼이랑 붙어다니길 잘 했어.”


사냥꾼이 부서진 덫쪽으로 슬금슬금 걸어가며 말했다. 그는 덫을 회수하려다가, 날카로운 곰덫의 날에 그만 손을 조금 베고 말았다.


“아야!”


“호들갑 떨지마. 내 참. 조심 좀 하지.”


“호들갑 안 떨었어. 너희들도 거기 구경하고 서있지 말고 이거나 도와. 아무리 그래도, 공작가에서 빌려준 물건이잖아. 돌려줘야지.”


“부서졌는데?”


“도마뱀이 힘이 센걸, 낸들 어떡해? 그쪽에서도 이해해 주겠지 뭐.”


“그래. 이해해 주겠지. 그 웨일 가문인데 말야.”


세 사람은 껄껄 웃으며 덫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말야. 웨일 가문. 무시무시한 가문이라는데?”


“왜?”


“사람 목숨을 벌레 보듯 한대.”


덫날에 베이지 않게 조심조심 두꺼운 천으로 날을 감싸며 사냥꾼이 말했다.


“그래서?”


“우리, 죽거나 하진 않겠지?”


“에이, 설마! 지금까지 돈이고뭐고 펑펑 밀어줬는데, 이제와서 죽이겠어? 오늘만 실패한것도 아니고.”


남자가, 애써 불안한 눈을 숨기며 웃었다. 그러자, 세 사냥꾼들은 모두 어색하게, 불길함을 쫓기 위해 신경질적으로 웃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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