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무지개
“모르십니까? 그 댁에 큰 경사가 생길 모양이던데요?”
“경사?”
“예. 엊그제 그 댁 기와지붕 위로 오색찬란한 쌍무지개가 떴답니다. 그 색깔이 어찌나 선명하고 고운지 무슨 금은보화를 이어 놓은 듯 싶더라나요?
본 사람들 말로는 세상 천지에 그런 장관이 또 없었다고 하니, 쇤네는 그저 운도 지지리도 없다, 그런 공짜 구경을 놓쳤네 하던 참이었습니다요. 나으리께서도 못 보신 것입니까?”
이방이 잠시 어리둥절하였다. 분명 엊그제 새벽에 저 길목에서 방판서댁을 감시하다 잠이 들었었고, 교대를 하러 왔던 포졸놈이 깨워 일어났을 때 하늘에 무지개가 떠 있는 것을 제 두 눈으로 직접 보았었다. 그러나...
“뭔 소리야? 쌍무지개라니? 내가 직접 이 두 눈으로 보았는데. 그냥 무지개였어. 그리고 저쪽에 떴었고. 진성관하고는 정 반대편이었단 말이지.”
이번에는 배달꾼이 어리둥절한 표정이 될 차례였다.
“예? 그렇습니까? 이상하네요. 분명 그렇게 들었었는데.... 진성관 기와 위에 걸치듯 놓여있었다고. 본 사람들이 다들 그렇게 얘기하던뎁쇼?”
“허허. 내가 봤다니까,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대도. 소문이 잘못 났어. 어디서 눈 삔 놈들이 헛 것을 본 모양이지.”
배달꾼이 고개를 갸웃하는데 그 표정이 자못 시무룩하였다.
“나리께서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만···.”
“표정이 어째 그래? 뭐 그 집 이마 위에 무지개가 뜨면 자네한테 좋은 일이라도 생기는가?”
“그걸 말씀이라고 하십니까? 그냥 무지개도 아니고 쌍무지개가 그 댁 기와 위에 얹혀 있었다는 게 뭐를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큰 인물이 그 댁에 날 징조라고 입 있는 사람들이면 다들 같은 말들을 하고 있습니다요.”
“큰 인물?”
“예! 그 정도 징조면 임금님이나 최소 나라를 구할, 왜 그 있잖습니까요? 임진난에 나라를 구하신 이순신 장군님이나 세종대왕님 정도는 나신 것이 아닌가? 다들 그렇게 수군대고 있습지요!”
“하하하하.”
돌연 이방이 크게 웃으니 한창 신이 나 말을 하던 배달꾼이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물었다.
“어찌 그리 웃으십니까?”
“자네 말이 우스워 웃지.”
“제 말이 어디가 우습다는 것인지···?”
“생각을 좀 해 보게. 진성관 주인이 보통의 장사치들과는 달리 도를 알고, 인덕 또한 높이 쌓은 것은 내 인정을 해.
허나 그래 봤자 중인(中人)이야. 물론 지난번 가뭄과 역병 때 백성들을 살린 일로 나라에서 벼슬을 내린 것은 맞지만 그거야 그냥 무늬만 그런 것이고.
아무튼 우리 조선은 신분이 유별하거늘 중인의 신분으로 나라를 구하는 영웅이라니 그것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그리고 뭐라? 하물며 임금?
엣끼, 이 사람. 말도 가려가며 하게. 성질 꼬장한 양반 앞에서 그런 말했다간 치도곤을 당하기 십상이야.”
반론을 펴지는 않았으나 배달꾼의 얼굴에 불만스런 기색이 어른거렸다.
지지난 해 여름에 역병이 들불처럼 번졌었다. 그러자 한약재의 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는데 돈 많이 이들이 사재기를 한 탓이었다. 돈이 없으면 그저 하늘만 쳐다보고 있다 꼼짝없이 죽을 판이었다.
그때 청국에서 약재를 구해 와 인근의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누어 준 것이 바로 진성관 주인댁이었다.
중인 주제에 중뿔나게 나서 백성을 구휼을 한 것이 비위를 건드린 모양이었다. 애써 사재기한 한약재의 값이 떨어질까 염려도 된, 돈 많은 상인들이 여러곳에 진성관 주인을 모략하는 투서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백성들이 들고 일어났다. 진성관 주인댁 덕분으로 자신은 물론 자식들의 목숨까지 살린 배달꾼 역시 그때는 일까지 쉬고 사람들과 몰려다니며 관아로 어디로 항의를 하러 다녔던 기억이 생생하였다.
다행히 일은 무탈하게 해결이 되었다. 힘없는 백성들의 시위따위와는 물론 전혀 무관하게였다.
순전히 진성관 주인의 인맥 덕분이었는데, 고관대작은 물론 왕실가의 사람들까지 진성관 주인과 연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는 게 그때 밝혀져 사람들을 놀라게 했었다.
생명의 은인 댁에 경사가 생긴다는 소식에 제 일처럼 기뻐하였던 배달꾼은 대뜸 초부터 치는 이방을 사납게 흘겨 보았다. 물론 이방이 보지 못하게 뒤에서였다.
배달꾼의 그런 속사정까지는 알지 못하나, 인근 백성들이 진성관을 생각하는 마음이 각별한 것을 아는 이방은 굳이 더 말하지 않고 돌아서 가다 아는 얼굴을 발견하였다.
정관서였다. 다른 곳이 아닌 방판서의 집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어쩐지 수상쩍었다. 마치 주위의 이목을 꺼리는 듯 사방을 주의 깊게 살핀 후, 갓의 앞부분을 살짝 눌러 내리고는 반대편 쪽으로 급히 걸어가는 모양새였다.
이방이 그 뒷모습에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하였음은 물론이었다.
**
장을 보러 나온 연이가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이방을 발견하고는 인사를 하는데, 골똘히 생각에 잠겨 미처 알아보지 못하고 그대로 지나쳐 가는 이방이었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하세요?.... 예?”
연이가 빽 소리를 지르니 이방이 화들짝 놀라 쳐다보았다.
“깜짝이야! 놀랐잖느냐? 소리는 왜 지르고?”
연이가 생글생글 웃으며 말을 하였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신 겁니까? 혹시 마나님 몰래 숨겨둔 정인 생각이라도 하시는 겁니까?”
“떽! 어디서 어른을 놀리려 들어? 고얀 것!”
연이가 까르르 웃고는 꾸벅 인사하고 가려는데 이방이 불러 세웠다.
“연이야.”
“예?”
“그 의금부 도사 나리 말이다.”
“의금부 도사요?”
“그래, 그 지난번 왜인 사건 때 도움 주셨던, 그 후엔 세자궁에 계셨고 말이다.”
정관서를 말함을 깨달은 연이가 못마땅해 입을 삐죽거리며 겨우 답을 했다.
“예···.”
“요즘도 연락을 하느냐?”
“제가요? 제가 왜요?”
“왜라니? 그 어른이 널 잘 보지 않으셨느냐? 왜인의 일로 따로 연통을 주실 만큼 각별히 네 걱정도 하셨고.”
“흥! 퍽이나···. 전 금시초문인데요!”
불량한 연이의 태도에 대뜸 꾸짖는 말이 나왔다.
“어허! 어찌 말마다 그리 삐딱선을 타? 어른이 묻는데 그 무슨 말버릇이고?”
풀 죽은 연이가 고개를 숙였다. 발로는 죄 없는 흙바닥을 툭툭 차대는데 이방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하는 것이었다.
“옳아. 그 왜인 놈을 방면한 것이 못마땅해 그러는 구나? 허나 그것은 그 어른과는 무관한 일이다. 네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야.”
연이가 한양까지 끌려갔던 일에 정관서가 관여되어 있음은 까맣게 모르는 이방이었다.
구구절절 사정을 늘어놓고 싶은 마음은 없어 그저 입을 한자나 내민 채 여전히 발끝으로 애꿎은 땅만 파대는 연이였다.
이방이 그 모습에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똑똑하다 해도 아직 어린애인게 이리 티가 나는 구나. 알았다. 그만 가 보거라. ....아 참. 애비는 잘 있고?”
“울 아부지요?”
“그래. 네 아비 말이다.”
“그냥 저냥, 늘 그렇죠 뭐.”
“그래···.”
말끝을 흐리는 투가 석연치 않았다. 뜬금없이 아비의 안부를 묻는 것도 그렇고.
“뭐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아니다. 그런 건 없고···. 내일 한번 다녀가라 하거라.”
“무슨 일인데요?”
“넌 알 거 없다니까. 다녀가라고만 전하면 되느니. 오전엔 내 관아에 있을 것이라는 말도 전하고.”
“예···. 헌데 내일은 어려울 거 같습니다. 방판서댁에서 필요한 것이 있다 해, 그걸 구하러 갔습니다. 빨라도 모레나 올 겁니다.”
“뭐라 했느냐, 너 방금? 방판서댁이라고 했느냐? 그 방판서댁?”
눈이 왕방울만해져 쳐다보는 이방이었다. 새된 목소리 또한 심상치가 않으니 더럭 불길한 생각이 드는 연이였다.
“예, 그 댁 맞습니다. 헌데 왜 그렇게 놀라십니까?”
“그 댁과 쭉 거래가 있었던 것이더냐, 그 동안?”
“아닙니다. 저번 그 일 이후로는 없었습니다. 그 댁 막내서방님을 잡아들이는데 저희 부녀가 관여한 것이 사실이니 당연하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엊그제 그 댁 하인이 갑자기 찾아와 필요한 것이 있다며 주문을 했고, 그래서 저희도 좀 놀랐던 참이었습니다. 무슨 꿍꿍이가 있나 걱정도 하였는데 그 댁 말로는 다른 약초꾼들에게도 모두 주문을 넣었기에 저희에게도 전하는 것뿐이라 하였고, 또 확인해 보니 그것이 사실인지라.....”
가타부타 말 없이 미간 사이로 주름을 잡은 채 생각에 잠기는 이방이었다.
“왜요? 무슨 일이 있는 것입니까? 어째 그러세요? 예?”
“내 말 똑똑히 네 애비에게 전하거라. 저 댁에서 무엇을 원했든 가기 전에 꼭 나를 먼저 만나야 될 것이라고. 알겠느냐?”
“왜요?”
“왜고 뭐고 내 말대로 해야 한다니까! 안 그랬다간 큰 일을 당하는 수가 있느니. 알겠느냐?”
“모르겠는데요.”
“엥?”
“무슨 말씀이신지 전후 사정은 설명치 않으시고 그리 말씀하시니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닙니까? 무슨 일인지 설명을 해주셔요.”
“······”
“말씀을 안 해 주시면 방법이 달리 없지요. 방판서댁에 가 제가 직접 여쭙는 수밖에요. 이방 나리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데 혹 그 연유를 아시느냐고 묻겠습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방판서 집이 있는 방향으로 몸을 틀어 가는 연이였다. 그런 연이의 팔을 이방이 급한 데로 잡아 세웠다.
“너 지금 어디로 가는 것이냐?”
“어디긴 어디겠습니까? 설명을 안 해주시니 가 물어보겠다 말씀 드리지 않았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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