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요
거리 큰나무 뒤에 숨어 진성관을 살피는 연이. 머리는 수건을 써 가렸는데, 행여나 수건이 벗겨질까 두려워 턱 밑으로 단단히 묶어맨 매듭을 두 손으로 꽉 잡고 있었다.
드나드는 손님들과 맞이하는 종업원들로 분주한 진성관 문 앞을 주시하던 연이는 샤샤샥! 커다란 짐을 실은 수레 옆에 붙어 진성관 안으로 몰래 숨어드는데 성공하였다.
또다시 샤샤샥! 담과 기둥과 장독대 등을 가림막 삼아 사람들의 눈을 피해 안쪽 본채 가까이에까지 도달한 연이였다.
그러나 더는 가림막 삼을 것이 마땅치 않아 깊이 눌러 쓴 수건을 두 손으로 꼭 붙잡고는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하였다. 그리고는 푹 고개를 수그린 채 넓은 마당을 가로질러 가는데 그 모습을 발견하고 주목한 이들이 있었다.
만수와 천동이었다. 의당 몹시 수상쩍게 여겼다.
“누구래? ···어이, 거기!”
자신을 부르고 있음을 알아 챈 연이가 바삐 걸음을 재촉하는데, 어느새 달려온 만수가 연이의 머리 수건을 낚아채었다.
그러자 짧은 더벅머리가 나타났다. 기겁한 만수가 뒷걸음질을 치며 자신도 모르게 외마디 비명과도 같은 소리를 질러댔다.
“헉! 뭐야, 이거!”
익히 보아 알고 있건만, 다시 봄에도 그저 괴상망칙하고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연이의 머리모양에 뒤에 서 있던 천동이 탄식을 하였다.
"허어!"
“뭐야, 너 연이 아니야?”
둘이 쌍으로 내지르는 호들갑에 어금니를 꽉 깨문 연이가 짓씹듯 나직히 말을 하는 것이었다.
“좋은 말로 할 때 그거 내 놔라!”
“뭐, 뭘?”
귀신이라도 본 양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만수의 손에서 머릿수건을 낚아채며 연이가 쌍욕을 해댔다.
평소 같으면, 본데없이 그게 할 소리냐? 계집아이가 그리 굴어서 시집을 어찌 갈래? 라는 둥 잔소리를 퍼부었을 테지만 그저 해괴망칙한 연이의 머리 모양에 정신이 팔린 만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머리가··· 네 머리··· 아아, 꿈에 볼까 무서워...”
“누가 너보고 꿈에 보래? 빨리 꺼져라, 죽고 싶지 않으면!”
“어어···. 나도 그러고 싶은데 발이 안 떨어져. 너무 놀라고... 심장이 벌렁벌렁 대고 다리는 힘이 하나도 없는 게···.
어쩌다 넌 머리가 그렇게 된 거냐? 설마 너 스님 되려다 마음이 바뀌어서 자르다 만 거야? 야, 그럴 바엔 차라리 그냥 깨끗하게 스님 되는 게 낫지 않겠냐? 진짜 못 봐주겠다. 어떻게 그 꼴로 밖에 나다닐 생각을 했냐? 너 정말 미친 거 아니야? 아으으으으!”
만수가 몸서리를 쳐댔다. 그러면서도 연이의 머리에서 눈을 못 떼는 만수였다.
그 사이 몰려든 진성관 종업원들. 그리고 손님들이 다 함께 놀라고 손가락질 하며 연이를 구경하고 섰다.
“어디 광대판 들어가려고 저리 한 것이야? 미친년 흉내 내려고?”
“그러게. 아니면 저럴 리가 없지. 세상에. 흉측하고 망측해라. 어쩌다···. 쯧쯧쯧.”
“말세다 말세야.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 했거늘 부모도 없는 것이야? 아무리 본데없는 천것이라 해도 제 부모 얼굴에 먹칠을 해도 유분수인 게지.”
밥 먹듯 우는 요즘이었지만, 설움이 목구멍 바로 밑까지 올라오는 걸 연이는 꾹꾹 눌러 삼켰다. 사람들 앞에서 우는 건 더 흉한 구경거리가 됨을 짐작하는 까닭이었다.
“어디 구경 났어? 좋아! 미친년이 미친 짓 하는 꼴을 기어이 보겠다 이거지? 다 죽었어, 씨!”
이럴 때를 대비해 가지고 온 것이 있었다. 뒤에 매고 있던 주머니에서 능구렁이 한마리를 꺼내어 무슨 밧줄이라도 되는 양 휙휙 휘둘러대는 연이였다.
꺄악! 꺅! 깍! 사람들이 혼비백산하여 흩어졌다. 그 모습에 한결 기분이 좋아진 연이가 의기양양하여 말을 하는 것이었다.
”별것도 아닌 것들이 까불고 있어! 야! 주인 나리 계셔?”
본 모습이 나오는군. 저게 미친 것은 확실하지! 라고 생각하며 저만치 멀찍이 떨어져 서서 인상을 쓰고 있던 천동이 연이의 시선에 말을 받았다.
“그 뱀 좀 먼저 집어넣고 얘기하면 안되겠냐?”
진짜 미친 것마냥 연이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대꾸를 했다.
“내 마음이거든! 니네 나리 계시냐고? 왜 꼭 두번 말하게 하는 건데? 너 나한테 무슨 억하심정 있어? 싸울래?”
어디에서 뺨을 맞고 와서 저 야단인 것인지, 천동이 어이가 없어 중얼거렸다.
“하긴 머리가 저 모양이 됐으니 목 매 안 죽은 게 용하기는 하다만.”
“뭐? 너 진짜 죽어볼래? 오늘로 네 묘자리 한번 파줘? 인생 하직하고 싶냐고?”
쿵 쿵. 사납게 발을 구르며 지 허리통만한 능구렁이를 손에 들고 다가오는 연이의 모습에 천동이 기겁을 하는데, 다행히 뒤에서 구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웬 소란이냐?”
진성관 작은 주인이었다.
**
쌓인 연륜에 걸맞게 웬만한 일에는 놀라는 법이 없는 큰 주인이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늙은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져 쳐다보는 것이었다.
“네 머리가···”
“아버님!”
작은 주인이 황급히 하지 말라는 고개 짓을 해 보였다. 이미 그 자신이 같은 질문을 던졌었고, 그 결과 참았던 연이의 울음이 방죽이 터지듯 터져 나와 한차례 곤욕을 치렀던 것이었다.
아니나다를까, 연이의 맑은 눈 속으로 한가득 물기가 차오르는 것이 보였다.
“아버님께 드릴 말씀이 있답니다. ···어여 말씀 올리거라. 울지 말고. 내 잘못했다 하지 않았느냐?”
그 말이 신호인 듯 연이가 흐윽, 짧은 울음을 삼켰다.
“잘못이라니? 설마 네가 이 아이 머릴 이 지경으로 만든 것이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이 지경이라니? 살인을 했냐는 질문을 받은 양 펄쩍 뛰는 저 모습은 또 뭔가? 진성관 주인 부자의 모습에 겨우 멈췄던 연이의 서러운 울음이 다시 터져 나왔다. 으앙-.
“그게 아니면 왜 이리 우는 것이냐? 그리고 머린 어찌 해 이 모양이고? 누구냐? 누가 네 머릴 그 모양으로 만든 것이야? 내 그 놈을 주리를 틀어서라도 그 죄를 물을 것이다.
대명천지에 어찌 젊은 처자의 머리를 저따위로 만들어? 그것이 사람이 할 짓이야? 고얀! 천하의 막돼먹은 놈같으니라구!”
세상 점잖기로는 부처님 다음이라는 소리를 듣는 진성관 큰 주인의 얼굴이 노기로 붉으락푸르락 하였다.
그 모습에 불에 기름이 부어진 듯 연이의 울음소리가 더욱 커졌음은 물론이었다. 으아왕-.
“아버님, 진정하십시오. 너도 그만 울고!”
“그래, 울지 말고 말해 보거라. 누가 네 머릴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지? 네 그 놈을 요절을 내줄 테니 어서! 도대체 그 쳐죽일 놈이 어떤 놈이냐, 응?”
부친의 귀에 바짝 입을 대고 나지막하게 설명을 하는 작은 주인이었다.
“머리 얘기만 하면 저리 서럽게 우니 그만 하시지요. 본인은 오직 수치스럽겠습니까? 그리고··· 제 애비가 그랬다 합니다.”
깜짝 놀라는 와중에도 목소리를 낮춰 아들에게 묻는 큰주인이었다.
“애비? 장 포수 말이냐? 왜? 어찌 해서?”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으나, 성정이 원래 불 같은 데가 있는 사람 아닙니까?”
“쯧쯧. 아무리 그렇다 해도 사내도 아닌 딸자식의 머리를···.”
처음의 용도는 더벅머리 짧은 머리를 가리고자 하는 것이었으나, 어느새 눈물 콧물을 닦아내느라 이미 흠뻑 젖어버린 수건이었다.
그걸로 흘러나오는 물 코를 닦아내는 모양을 딱하게 바라보던 큰 주인이 서랍 속에서 명주 손수건을 꺼내어 건네주었다.
“그만 울거라. 기운 빠진다.”
흥! 벼락 같은 소리를 내며 큰 주인이 건넨 손수건에 힘껏 코를 푸는 연이였다.
**
운 기운이 남아 있어 여전히 훌쩍임을 멈추지 못하는 연이를 보며 큰 주인이 인자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우느라 용썼다. 마시거라, 진정되게.”
연이가 훌쩍이는 와중에도 호호 불어가며 뜨거운 대추차를 맛나게 마셨다. 영락없는 어린 것의 모습에 큰주인이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그래, 다 운 것이냐?”
“···예.”
“내게 할 말이 있다고?”
“예.”
“말해 보거라.”
“아기씨 말입니다. 이 댁 막내 도련님으로 계신.”
큰 주인과 작은 주인이 연이의 말에 순간 긴장해 주목하니, 연이가 다시 한번 훌쩍 물코를 들이마신 후 말을 하는 것이었다.
“한가지 방법이 떠올랐습니다. 임시방편이기는 하나, 또 효과가 있을지 자신할 수도 없기는 하나 그래도 한번 해보는 것은 나쁘지 않겠다 생각이 듭니다.”
“아기씰 지킬 방법이라도 떠올랐다는 것이냐?”
“예.”
“그것이 무엇이냐?”
“노랩니다.”
“노래?”
“예. 그 이야기 아십니까? 백제의 무왕이 신라의 선화공주를 배필로 맞기 위해 불렀다던 노래.”
“서동요 말이냐?”
“예, 서동요. 거기에서 제가 착안한 것인데요···”
**
여기서도 저기서도, 남자아이도 여자아이도, 천것의 아이들도 서당에서 나오는 양반가의 아이들도 온통 같은 노래를 불러댔다. 조선 팔도 거리거리마다 온통 한가지 노랫소리로 가득 찼다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었다.
<아니라오, 아니라오, 내 낭군이 아니라오. 비정하다 무정하다, 그건 내 낭군이 아니라오./ 그렇다오, 그렇다오. 그것이 내 낭군이라오. 여린 속내, 깊은 연심, 그것이 내 낭군이라오./ 축원하오, 축원하오. 천지신명께 축원하오. 우리 네 식구, 다음 생에도 함께 하길 축원하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