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끌 하나만도 못한 계집
“설마 가죽 하나 값이 이 정도이겠습니까? 제가 몇장 더 가져다 주기로 약속을 하고 받았습니다. 아무튼 요는 그것이 아니고요. 말씀 드렸다시피 그 놈은 밀수꾼일 뿐 아니라 납치범이기도 합니다.”
“너는 가죽을 팔았고, 그 자는 값을 치렀다. 그런데 어찌 얘기가 그리 돌아가누?”
“비록 진귀한 것이기는 하나 저들은 선뜻 이 많은 돈을 한꺼번에 치루고 망설임 없이 구입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게 당부하기를, 가져올 수 있는 모든 가죽을 가져와라, 그것 또한 몽땅 다 사들이겠다 말하였습니다. 그 정도의 규모라면 조선 안에서도 손 꼽히는 상단일 것이온데, 그렇다면 수상쩍지 않습니까?
상단이 범죄 조직도 아니온데, 어찌하여 은밀한 곳에서 그것도 얼굴을 가리고 거래를 맺으려 했을까요?”
“으음···. 수상쩍기는 하다만 그래도 그것이 사라진 도공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것인지 모르겠구나.”
“온갖 것을 다 사들이고 있습니다. 양반들이 쓰는 물건뿐 아니라 일반 백성들이 손쉽게 구해 쓸 수 있는 것까지 사들이니, 저들이 막그릇을 사들였다 해도 이상할 것은 없지요. 헌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그 사라진 도공이 결코 평범한 도공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평범한 도공이 아니면?”
“정확한 사연까지는 알지 못하나 그 도공은 한때 왕실 그릇을 만드는 사옹원 분원의 사기장으로 있었다 합니다.”
“그래? 자넨 알고 있었나?”
“소인도 처음 듣는 얘기입니다.”
“어허! 아깝군, 그런 자가 있는 줄 알았으면 그릇을 좀 주문해 둘 걸 그랬어.”
“그러게나 말씀입니다. 참으로 아깝게 되었습니다.”
이런 정신 없는 인사들을 봤나? 명색이 사또와 이방이란 자가 그런 한가한 얘기들이나 지금 나눌 때야? 머리통을 한대씩 꾹꾹 쥐어박고 싶은 걸 참으며 연이가 말을 이었다.
“그 도공이 만든 막그릇을 경인골 강생원께서 보시고는 겉은 막그릇이로되, 안에는 백자가 숨어있다 그리 말씀하셨다고도 합니다.”
“겉은 막그릇이로되, 안에는 백자가 숨어있다?”
“경인골 강생원이라면 평생을 그림이나 도기에 미쳐 쫓아다니다 가산까지 모두 탕진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틀림이 없는, 물건은 물건이었던 모양입니다.”
생각할수록 아깝다는 듯 사또가 볼품없는 수염을 연신 훑어내리며 눈알을 뒤룩거렸다. 이방 또한 그릇 몇 개 진즉 받아놓지 못한 것이 아쉬운지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대는 것이었다.
“예, 믿을만한 것이지요. 욕심 많은 자라면 그 솜씨를 훔치고 싶었을 것입니다. 사람을 납치해서라도 말입니다. 전례도 있지요. 조선 자기의 아름다움을 탐내어 조선의 도공들을 데려간 왜인들을 기억하십니까?”
이방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인이라니? 왜인 얘기가 왜 여기서 나와?”
“지난 임진난 때 얘기를 모르십니까?”
“모를 리 있겠느냐? 허나 지금 그 얘길 할 때가 아니니 말이지.”
“그 은자를 치른 이는 분명 왜인이었습니다.”
사또와 이방이 자리에서 펄쩍 뛰어 오를 정도로 기함을 하여 쳐다보았다. 사또의 목청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가당치 않다. 왜인들은 초량 왜관을 벗어날 수 없어. 국법으로 정해진 일인데 저들이 어찌 감히 그럴 수 있다는 말이냐?”
“임진난 때 저들이 우리 땅을 침범해 우리 백성들의 피로 강토를 물들였던 게 국법에 적합한 일이어서 한 짓이었겠습니까?”
말문이 막히는 사또였으나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왜인이라는 증좌라도 있기에 네가 그런 말을 입에 담는 것이냐?”
“예. 그 자는 조선의 칼과는 구별되는 왜국의 칼을 소지하고 있었습니다.”
“네가 왜국의 칼을 아느냐?”
“스승님께 들었습니다. 왜인들은 특히 칼을 잘 쓰는데, 그 칼의 길이가 우리 조선의 칼보다 월등히 길어 임진년의 난 때 우리 군사들이 방어하는데 몹시 애를 먹었다 들었습니다.
또한 왜인들의 칼은 양쪽이 아닌 한쪽만 날카롭게 벼리어 쓰는데, 벼리지 않은 다른 쪽 날에 손을 대 힘을 더할 수 있기에 능히 칼로서 사람의 몸뚱이를 둘로 가를 수 있다고도 하셨습니다.”
사또도 이방도 난생 처음 듣는 말들이었다. 그러니 반박을 할 수도, 모른다 말하여 더 설명을 구하기도 창피스러운 일이라 아뭇 소리 없이 그저 잠자코 듣고 있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물론 청국인일 수도 있습니다. 임진년의 난 때 우리를 도우러 왔던 명국의 군사들이 왜인들의 칼 솜씨에 놀라 본국으로 돌아간 후, 왜인들의 칼처럼 긴 칼을 만들어 훈련까지 하였다 들었습니다.
명을 통해 청에도 보급되었고, 간간히 청국인들 중에도 왜인들의 칼과 흡사한 모양을 띤 검을 소지한 자들이 있다고 합니다. 허나 청국인 일리는 없습니다.”
“어째서?”
“우리 조정은 청국에 우리 백성들이 들어가는 것은 엄격히 제한하고 있습니다만 청국의 사정은 다릅니다. 그들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우리 조선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불법도 아닌 조선과의 장사에 굳이 얼굴을 가리고 거래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우리 조선인이라면 더더욱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고요. 허나 왜인들은 다르지요.”
“·······”
“과거 임진년의 난 이후 우리 조정에서는 왜와의 교류를 원천 금지시켰습니다. 그것은 왜 조정으로서는 크나큰 타격이었지요. 우리 조선과의 교류를 통해 선진문물을 받아왔던 그들이었으니 말입니다. 하여 저들은 수차례 우리 조정에 교류를 간청하였고, 결국 우리 조정도 그들의 청을 받아들였습니다.”
“·······”
“그러나 지난 임진년의 난을 기억하는 우리 조정으로서는 저들을 온전히 신뢰할 수 없었습니다. 하여 초량에 왜인들의 거주지를 마련해 주고, 그 안에서만 활동하도록 전제를 두었습니다.
왜인은 절대로 초량 왜관 밖으로는 나올 수 없다, 이를 어길 시에는 당사자를 처벌함은 물론 왜국 또한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렇게 문서화한 것이지요.
전후사정이 그러하니 어젯밤 제가 만난 왜인이 얼굴을 가려 자신의 정체를 숨기려 한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저들을 왜인이라 추정하는 제 근거가 바로 거기에 있고 말씀입니다.”
말을 끝낸 연이의 표정이 자신만만, 기세등등하였다.
보고 또 봐도 신기한 계집이로고! 감탄하는 이방이었다. 양반이 아닌 중인이기에 가능한 자연스럽고 담백한 감정의 발로라 할 수 있었다.
허나 사또의 입 속으로는 쓴 침이 고이고 지끈지끈 머리가 쑤셔오는 것이었다.
아무리 봐도 흉조였다. 오랑캐국인 청국이 유자(儒者)의 본국인 명을 제압하고, 아비가 아들을 죽이고, 아들을 죽인 아비가 백성의 어버이인 세상. 하늘과 땅이 뒤집힌다 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작금의 세상에 저 계집 역시 그 흉한 징조의 하나이리라 생각되었다.
천한 계집 하나 따위 티끌 하나, 흙탕물 한방울 만도 못한 존재이니 무슨 대수랴, 싶기도 하겠지만 그건 상황을 제대로 판단치 못해 하는 경솔한 소리에 지나지 않았다.
역사의 고고한 흐름을 바꾸는 것은 그 한방울의 물, 티끌 하나의 반역으로 시작되는 법이 아닌가. 하여 세상은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낯선 것은 위험한 것으로 낙인 찍어 추방하고 제거하여 왔던 것이다. 그로써 유지돼 온 조선이었고, 사대부가가 주인인 조선이었다.
조선의 질서를 위협할 위험 인자로 선포하고, 조선 팔도 거리 거리마다에서 계집을 조리돌려 세상에 모범을 보이는 것이 어쩌면 필요한 일일지도 몰랐다. 혹여 있을지도 모를 난역(亂逆)을 꿈꾸고 동조하는 자들에게 그로써 엄중한 경고가 되기도 할 터였다.
나라의 중추인 사대부가의 일원으로서, 권력의 핵심이자 독점자이며, 조선을 이끌고 지도하는 막중한 책무를 지닌 자로써 사또는 조선의 질서가 흐트러지는걸 결단코 용납치 않을 생각이었다. 그것은 또한 그의 막중한 임무이기도 하였다.
문제는 이교였다. 이교의 글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만 있다면.... 우리 후손들의 세상을 지옥도로 만들지 않기 위해선 변혁만이 살 길이라던 이교의 글이 머릿속 한귀퉁이에 자리를 잡고 앉아 사또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지옥도를 살아갈 그 후손들 중에는 사또의 금쪽같은 다섯명의 자식들이 또한 있었다.
아아, 이교의 글이 틀렸다는 확신이 선다면 좋으련만.... 어째서 점점 더 그 말이 맞을 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드는 것일까?
사또의 고뇌는 오늘도 그렇게 계속되었다. 연이 저 맹랑한 계집이 말썽이었다, 언제나처럼···. 젠장맞을!
**
“어찌 되었느냐? 사라진 자들이 있더냐?”
정관서의 물음에 부하가 답하였다.
“예. 도성 근처의 고을을 돌았사온데, 최근 서른날 새 사라진 공인(工人)의 수가 도합 셋이 있었습니다.”
“무슨 일을 하던 자들이었더냐?”
“여인네들의 장신구를 만들던 자와 갓을 만들던 자, 그리고 붓을 만들던 자였습니다. 인근 주민들에 의하면 모두 솜씨가 빼어난 자들이었다 합니다.”
“솜씨가 빼어난 자들이라···. 허나 전국에 이름을 날릴 만큼 유명하지는 않고, 그래서 그들이 사라진 것을 관도 특별히 신경을 쓰지는 않는다···?”
“그렇습니다. 같은 자들의 소행이라 보시는 것입니까?”
“글쎄···. 공통점이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이기는 하다만···”
“허나 그 자들을 데려가 무엇을 하겠습니까? 휘하에 두고 그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하기에는 납득키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차라리 그보다는 노임 얼마를 주고 일을 시키는 게 더 낫지 않겠습니까? 굳이 납치라는 범행까지 저지르며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소인은 의문입니다.”
맞는 말이었다. 실력이 좋다고는 하나 전국에 이름을 날리는 자들은 아니니, 몇 푼이면 될 터. 굳이 위험한 범법 행위를 하면서까지 그럴 필요가···
그때였다.
부하 하나가 들어와 서찰을 건네는데, 겉봉에 쓰여져 있는 이름을 보고 정관서는 의아히 여겼다. 뜻밖의 인물이었던 것이다. 다름아닌 진성관이 있는 고을의 현감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안에 적혀있는 내용이었다. 왜인들이 밀무역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조선의 공인을 납치하고 있다고 현감은 적고 있는 것이 아닌가.
!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