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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련하 님의 서재입니다.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퓨전

완결

설련하
그림/삽화
설련하
작품등록일 :
2021.06.28 08:42
최근연재일 :
2022.10.17 08:20
연재수 :
290 회
조회수 :
379,634
추천수 :
7,321
글자수 :
2,467,752

작성
21.06.29 10:27
조회
1,485
추천
50
글자
18쪽

21화. 새 친구 점박이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DUMMY

모녀를 바로 뒤쫓던 무리가 천 장 낭떠러지로 떨어지며 비명을 질러 대지만, 이미 뒤따르던 무리들까지 힘껏 낭떠러지를 향하여 도약한 뒤였다.


쉬이잉~~


“으아아아악! 절벽이다!”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악마의 숨결이 숨어 있는 저승사자의 목구멍이었다.


상전을 배신한 그들은 그렇게 차례로 지옥행(地獄行) 표를 가지고 천 장 낭떠러지로 떨어져 내렸다.


뒤쫓던 무리가 모두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져 내리니 은모야차(銀毛夜叉) 모녀는 바로 바위 뒤의 틈에서 빠져나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아유~ 정말 죽는 줄 알았네.”


실은 매우 위험한 순간이었다. 딸 미라챠가 조금 세게 뛰어서 낭떠러지로 떨어지려던 것을 엄마 마린챠가 겨우 잡아서 낙아챈 것이다.


이렇게 위험한 순간을 넘긴 모녀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시 뒤쪽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겨우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 * * * *


쥬맥이 홀로 서는 첫날 밤이 지나고 마침내 새벽이 되었다.


하늘에는 이름 모를 큰 새들이 먹이를 찾으려고 아침 일찍부터 깨어나 하늘을 빙빙 돌며 배회하기 시작했다. 굶주린 배를 채우려고 밤새 산야를 헤매던 짐승들은 새끼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가고 있었다.


“으아아~ 벌써 날이 샜구나.”


쥬맥은 아직 어두컴컴한 동굴에서 잠이 깼다. 하룻밤을 편히 자니 몸도 많이 좋아진 것 같았다.


그러나 어제 하룻동안 오랜만에 많이 움직여서 그런지 뻐근한 몸을 일으키니 사지(四肢)가 욱신거렸다.


그렇지만 이제 무언가 목표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고 스스로 홀로 서야 하니까.


둥지 같은 잠자리에서 일어나 뒤쪽에 물이 흐르는 곳으로 가서 목을 축인 뒤, 남겨 둔 육포를 꼭꼭 씹어 먹었다.


그러고 나니 어제 목욕을 했는데도 고름과 진물이 흘러서 또 더러워진 몸을 먼저 씻고 싶었다. 그 뒤에 나무에 숨겨 둔 봇짐도 찾아오고, 앞으로 먹을 식량(食糧)도 모아야 하고······.


조심스럽게 동굴을 내려와서 어제 한 시진을 넘게 내려왔던 낭떠러지의 틈새를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오르기는 내려가기보다 더 어려웠다. 겨우 위에까지 다시 올라오니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완만(緩慢)한 산비탈을 따라서 내려가며 어제 따먹었던 과일들을 몇 개 따서 오물거리며 먹다 보니, 어느새 어제 목욕을 했던 하천가에 다다랐다.


그런데 어제 만났던 우르표범이 또 물고기를 잡아먹고 있지 않은가?


어제 생사의 기로에 서서 깨달은 것이 있는지 이제는 저 무섭게 생긴 짐승이 그다지 두렵지 않았다.


‘죽으면 죽고 살면 사는 것이지 뭐.’


우르표범도 벌써 물고기를 많이 잡아먹었는지 배가 불룩했다. 그러니 쥬맥이 먹잇감으로 보이지 않았다. 어제 만나서 안면도 있고 말이다.


‘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놈이 나를 전혀 무서워하지 않네?’


표범은 쥬맥이 자신을 보고도 놀라지 않고 물가로 터덜터덜 걸어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어이가 없었다.


‘요놈 봐라? 아주 맹랑한 녀석이군.’


일부러 사나운 표정으로 ‘크르르’ 하고 목을 구르며 한 번 위협해 보았다.


그런데 철부지 조그만 녀석이 겁도 없이 손을 흔들며 한 번 씩 웃는다?


‘아니, 뭐야? 내가 지 친구야?’


기가 차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는 체를 해 주니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어제처럼 죽이고 싶은 생각이 싹 가시면서.


생전 처음으로 느끼는 이러한 감정들이 너무 생소하면서도 왠지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 녀석이 이번엔 옆에까지 터덜터덜 걸어오더니 씩 웃으면서 말을 건넨다.


“안녕! 너도 잘 잤니?”


그런데 무슨 뜻인지 전혀 모르겠다. 인사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럼 뭐 심심한데 나도 한마디 하자.'


“크르릉, 크허헝? (이 녀석이 겁도 없구나. 너는 누구냐?)”


“또 만났구나. 나는 쥬맥인데 네 이름은 뭐니?”


뭐라고 또 중얼거리는데 당최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말이 통해야 말이지.


“크르르릉, 크릉크릉! (뭐라고 하는 거야, 이 겁대가리 없는 꼬맹아!)”


“너 이름이 없으면 내가 지어줄까? 점이 많으니까 점박이가 어떠니?”


“으르렁, 으렁 으르릉(이 녀석은 몸뚱이가 상해서 정말 불쌍하네.)”


‘아니, 내가 왜 이 녀석을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이해가 안 되네.’


“나는 쥬맥, 너는 점박이.”


손가락으로 먼저 자신을 가리킨다.


“쥬맥!”


그러더니 이번에는 그 손가락으로 표범인 자기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점박이!”


그 말을 또 반복(反復)해서 말했다.


‘아! 지는 쥬맥이고 나는 점박이라고? 내가 점박이? 좋은 건가?’


그건 모르겠고, 자기는 쥬맥이고 나는 점박이란다. 몇 번 들으니까 그것은 이해가 되었다. 쥬맥과 점박이!


‘허! 이 녀석 봐라? 자기는 쥬맥 나는 점박이? 이제껏 이름도 없이 살아왔는데 내 이름을 다 지어 주네. 쪼금 고맙군그래.’


“으르렁 크렁, 크르르러러렁(알았다 이 녀석아. 너는 쥬맥이고 나는 점박이라고?)”


어린 녀석이 자기와 나를 번갈아 가리켜 가며 또 뭐라고 중얼거렸다.


“너하고 나하고 우리 친구하자 친구. 어때? 친구! 친구! 친~구~!”


“크렁 크러렁 으러러렁(친구라는 말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고 심심한데 놀아는 주마.)”


이렇게 쥬맥과 점박이는 말은 통하지 않아도 같이 어울리는 친구가 되었다.


인연이란 것이 꼭 사람은 사람하고 만 이어지라는 법은 없다.


서로 마음을 열고 가까워지면 바로 인연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혈육 하나 없이 산속에 홀로 버려진 아이에게 운명은 새로운 인연을 맺어 주었다.


우르표범 점박이를 친구로······.


점박이가 지켜보는 가운데 쥬맥은 다시 몸을 깨끗이 씻고 바위 위에서 옷을 입었다. 차가운 물에 정신이 번쩍 들고 기분이 상쾌하다.


해가 벌써 중천에 떴으니 어제 나무그늘에 숨겨 둔 봇짐을 가져와야 한다.


점박이는 친구가 뭐 하나 궁금해서 엎드려 앞발에 턱을 괴고 지켜보았다.


“내 친구 점박아! 또 보자. 잘 지내라, 안녕~”


‘참! 내가 점박이지. 손을 흔드는 것을 보니 가겠다는 것이군. 심심한데 가겠다고 하니 섭섭한 걸. 맹랑한 녀석을 또 볼 수 있을까?’


“크흐엉, 크헝 크렁 (그래 인석아, 쥬맥이랬지? 너도 잘 가라.)”


몸을 씻고 점박이와 헤어진 쥬맥은 봇짐을 찾으러 갔다. 널어 둔 옷과 봇짐은 어제 숨겨 둔 바위와 나무 그늘에 잘 감춰져 있었는데······.


옷을 봇짐에 넣어서 동굴에 갖다 놓고 우선 과일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작은 동물들이 먹거나 열심히 주워서 나르는 열매를 눈여겨보았다가, 그런 열매만 골라서 보자기에 열심히 주워 담았다. 외양만 다른 동물이 아닌가?


과육이 무른 것은 오래 저장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가져다 동굴에 저장하는 것은 과육이 단단한 것과 딱딱한 외피에 싸인 열매들을 모아야 한다. 특히 장기간 두고 먹을 것은 수분이 별로 없는 딱딱한 것들이 최고이고.


‘많은 짐승들이 맛있게 먹으니까 내가 먹어도 죽지는 않겠지.’


그런 심정으로 식량이 될 만한 것들을 열심히 모았다. 사시사철 이런 열매들이 있지는 않을 것이니까.


열매는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법. 있을 때 모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보름이 넘게 식량 비축(食糧備蓄)에 전념했다.


그러다 보니 동굴 안에 우묵하게 들어간 창고 같은 곳 몇 군데가 가져온 열매들로 가득 찼다. 식량이 불어나니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는 어른들의 말이 새삼 실감났다.


“그래, 이렇게 사는 거야. 나는 할 수 있어. 난 용감한 아이니까.”


하나씩 해결해 나가니 그에 따라 조금씩 자신감(自信感)이 생긴다. 그러면서도 틈나는 대로 토납술로 호흡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천천히 세 번을 들이 쉬고, 한 번을 내뱉고······. 천천히 천천히 말이다.


그렇게 좌정하여 무한 반복하니 천지의 모든 기운이 단전(丹田)에 모두 모이는 듯했다. 아직은 그저 느낌이지만.


* * * * *


한편, 천인족 주거지에서는 천단을 맞이할 준비에 바쁘다.


천인족은 새해 일월 일일을 신단이라고 하고, 시월 삼십일을 천단이라고 하는데 종족의 2대 명절이었다.


지금은 한 주거지에 모여서 살고 있지만 아리(峩理)별에 살 때는 드넓은 여러 대륙에 떨어져 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명절 때는 부모 형제와 친인척을 찾아다니며 인사를 했다.


곳곳마다 재미있는 축제가 많았고···.


특히 천단 때는 일 년 동안 농사를 지어서 추수(秋收)한 곡식으로 천신께 감사의 제를 올렸다. 즉 추수 감사절이다.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이웃과 나누어 먹으며 즐겁게 노래하고 춤추었다. 이렇게 어울려 지내는 것이 수천 년 된 천인족의 관습(慣習)이었다.


올해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농사를 지었는데 그래도 환경이 잘 맞았는지 큰 풍년(豊年)이 들어서 전체적으로 매우 들뜬 분위기였다.


비록 도착하면서부터 여러 가지 난관에 봉착하고 전쟁도 치렀으나, 이제 하나씩 자리를 잡아 가고 있었고······.


축제에 쓸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드느라 여자들은 분주했고, 아이들은 그 옆에서 맛있는 음식을 한 입씩 얻어먹는 재미에 입이 귀에 걸렸다.


“아이, 맛있어!”


“그래, 그것만 먹고 가서 놀아라. 어른들께도 드려야 하니까. 알았지?”


“알았어요. 그럼 딱 하나만 더.”


아낙들이 아이들과 실랑이를 벌일 때 남자들은 여러 가지 악기를 만들고, 짚으로 큰 인형들을 만들어서 주거지 이곳저곳에 세우며 분위기를 돋우었다.


여기저기서 가축을 잡는 소리와 떡메를 치는 소리, 인형극 준비에 가을이 무르익는다.


한울은 오랜만에 한가하게 탁자에 앉아서 천사장, 대신녀와 함께 차를 마시며 장만했다고 가져오는 음식들을 맛보고 있었다.


가지고 온 태을미와 선담밀의 씨앗을 불안한 마음으로 이곳에 뿌렸으나 모두 잘 자라서 풍작(豊作)을 이루었다.


선담밀은 이미 여름에 수확을 하였고, 태을미는 얼마 전에 수확을 하여 그것들로 떡을 만들고 먹음직스러운 빵을 구워 내니 냄새만 맡아도 군침이 절로 돌았다.


서로 권하면서 한 입씩 떼어 넣으니 이제야 사람이 사는 세상 같기도 하고.


“참, 천사장님! 태을 선인이 쥬맥이라는 아이에 대해서는 좀 알아보셨나요? 그 산속에 버린 아이.”


“그렇지 않아도 그 말씀을 드리려던 참입니다. 지난번에 지도를 제작할 때 보완할 사항들이 있어서 지금도 부분적으로 수정을 계속하고 있습니다만,


일단 기 작성한 지도에 보시면 우리가 내려온 천둔산 뒤쪽으로 높은 우르산맥이 있고, 그 사이에 여기 긴 대협곡이 보이시지요?”


그러면서 일어나 벽에 걸린 대형 지도로 다가가더니, 손으로 천둔산 뒤쪽의 우르대협곡 한 지점을 가리켰다. 즉, 거기에 쥬맥이 있다는 뜻이다.


“아! 그 깊이가 일천 장이 넘고 길이가 천팔백칠십 리에 이른다는 장대한 대협곡 말씀이지요?”


“그렇습니다. 그 녀석이 희한하게도 대협곡의 이곳에 자리를 잡은 모양입니다. 병은 아직 그대로인데 지난번에 보니 무서운 짐승을 친구 삼아서 놀고 있더랍니다 글쎄.”


그러자 한울이 놀라서 벌떡 일어서며 물었다.


“정말입니까? 아니, 그러다가 잡아 먹히면 어쩌려구요?”


“그렇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혹시 사고가 날까 봐 근처에서 지켜봤더니, 아이가 짐승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고 짐승도 무슨 일인지 같이 장난을 치더랍니다. 비록 짐승이라고 하지만 인연이 닿은 것 아니겠습니까?”


한울이 손으로 가만히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렇다면 천만다행이구요. 정말 무사해야 할 텐데······.”


“대신녀님! 지난번에 그 아이의 점괘가 좋다고 했지요?”


“네, 초반은 고독하고 험난한 역경 속에서 살아갈 운세지만, 중반에 큰 성취를 이루고 업적을 쌓아서 후반에 만인이 받드는 큰 인물이 될 운명입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때 대신녀가 신기(神氣)가 어린 봉목으로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제가 짚어 본 미래상도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 너무 염려하지 마시지요. 아마 별 탈이 없을 겁니다.”


“그래도 어린 것이 혼자 산속에 있는데······. 먹을 것이라도 가져다줘야 어른들의 도리일 텐데······.”


한울은 마음이 아픈지 자꾸 말을 잇지 못하고 중간에 끊었다.


“한 사람의 운명(運命)에 섣불리 간섭하는 것도 그리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비록 가혹한 운명일지라도 스스로 딛고 일어서면 그 시련이 큰 사람을 만들어 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뜨거운 불에 달구어 여러 번 두드릴수록 강하고 좋은 쇠가 되듯이 말입니다. 시련을 이겨 내는 것은 이제 스스로와 천신께 맡기세요. 그러고 보니 제가 주제넘은 말씀을 드렸군요.”


“아닙니다 아닙니다. 천사장님이 아니면 내가 누구와 이런 얘기를 마음을 터놓고 나누겠습니까? 심려치 마세요.”


마주 보고 웃어 가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무척 정겨웠다. 어른들의 마음이 모두 이와 같다면 좀더 나은 세상이 될 텐데······.



드디어 천단의 날이 밝았다.


신단에 천제를 지냈던 자리에 다시 커다란 단이 만들어졌고, 천사장과 대신녀가 눈보다 흰 대례복을 입었다.


제물(祭物)을 바치는 커다란 제단 한쪽에는 벌써 추수한 곡식으로 만든 여러 음식이 커다란 제기마다 정갈하게 가득 차려져 있는데, 이상하게 한쪽은 깨끗하게 비어 있었다.


천제가 시작되자 뒤쪽으로부터 커다란 꽃 두 개가 여러 사람에게 들려서 앞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하나는 나팔꽃처럼 생겼는데 빨간색을 띠었고 크기는 꽃 핀 앞쪽이 열 자(3m) 정도, 길이는 열일곱 자(5.1m)에 가까웠다.


천인족이 ‘샨들라’라고 부르는 꽃으로 천제 때 바치는 음의 상징 암꽃이다.


다른 하나는 마치 몽둥이처럼 아직 피지 않은 꽃망울 같다. 청색을 띠고 있고 크기가 두께 일곱 자(2.1m) 정도에 길이는 스무 자(6m)에 가까웠다.


이 꽃은 수꽃으로 ‘챤들라’라고 불리는 꽃인데, 샨들라가 음으로 여성을 나타낸다면 이것은 양으로 남성을 상징하는 꽃이었다. 모양도 마치 남성의 그것처럼 생겼고 말이다.


천신께 제물로 바치는 이 꽃들은 천지이기(天地二氣)인 양과 음의 조화, 즉 인간의 남녀 간 조화를 뜻한다.


이 조화를 통하여 종족이 번성하기를 기원하는 의미가 서려 있는 것이다.


선인들이 먼저 챤들라를 바치고 이어서 신녀들이 샨들라를 바치니, 비어 있던 제단이 꽉 찬 듯했다.


천사장과 대신녀가 꽃의 뒤를 받치고 따라서 나왔다가 신녀와 선인들이 들어가자 제단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천령수 나뭇가지로 향을 피우니 향긋하고 푸르스름한 연기가 서기(瑞氣)를 머금고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두 사람이 나란히 일어나 큰 절을 세 번 올린 뒤 다시 앉았다.


천사장이 대신녀가 따라 주는 술을 큰 잔에 받아 세 잔을 올리고 나서, 나란히 무릎을 꿇고 천인족의 안녕과 번영을 천신께 기원했다. 그때 한울을 비롯한 모든 대소 신료는 단 아래에서 엎드려 천신께 빌고 있었다.


한참을 빌고 모두 일어나 다시 한 번 제단을 향하여 삼배를 올린 뒤, 제단에 바친 음식들을 내렸다.


이 음식들은 고아나 홀로 살아가는 어른들, 그리고 생활이 궁핍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다. 일종의 빈민 구제책으로······.


모두 서로를 바라보며 기원의 인사를 나누는데, 한쪽에서는 벌써 돗자리를 펴고 술잔을 돌리고 있었다. 아무리 바빠도 사흘은 놀고 마시는 것이 이들의 풍습(風習)이었다.


다른 쪽에서는 악기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천막을 배경으로 인형극이 펼쳐지니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구경하려고 우르르 몰려간다.


하늘은 맑고 푸르며 먹을 것은 풍성하게 널려 있으니 1년이 모두 오늘만 같다면 얼마나 좋으랴.


* * * * *


그런데 쥬맥은 오늘이 천단이라는 것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니 여러 시련을 겪으면서 날짜가 지나는 것 자체를 헤아리지 못했다.


해가 떠서 서산에 지면 또 하루가 가는구나 했다.


단지 기온과 자연의 변화를 살피며 시간의 흐름을 느낄 뿐이다. 날씨가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선선하니 가을도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었구나 하고 생각할 뿐이고······.


그동안 식량을 비축하느라 바빴지만 틈나는 대로 토납술을 익히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제 하단전(下丹田)에서 찌릿찌릿한 감이 오면서 뱀 같은 것이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한 번씩 운공을 하고 나면 전신이 개운하고 피로가 싹 가셨다.


그리고 이제 식량이라는 급한 불을 껐으니 무언가를 시작해야 하지 않겠는가? 마냥 놀 수는 없으니 말이다.


우선 오늘은 큰 맘을 먹고 지금 살고 있는 동굴을 끝까지 들어가 탐색해 보기로 했다.


“저 속에는 무엇이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네. 그래도 이제 내 집이니 살펴봐야 해.”


말을 받아 줄 사람이 없으니 혼자 궁시렁거린다. 그냥 계속 살다가는 혹시 위험한 일이 닥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그동안 부드러우면서도 질기고 잎새가 가늘며 긴 풀들을 모아서 길게 새끼줄을 꼬았다.


그리고 죽은 소나무들을 찾아서 밑동에 송진이 잔뜩 베어 있는 관솔도 모았고···. 가늘게 쪼개어 횃불 대신으로 쓰기 위해서였다.


이제 남은 것은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지 모르는 저 안으로 들어가는 것뿐!


“비록 어리고 혼자지만 나는 어떤 것도 무섭지 않아!”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큰 소리로 외치며 결연한 표정으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21화 쥬맥의 위치 지도.png

21화 쥬맥의 위치 지도




감사합니다. - 설련하(偰輦河)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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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28 철없는사과
    작성일
    21.10.11 23:12
    No. 1

    명절을 떠오르게 하는 모습이네요. 추수를 위해 열심히 일했던
    이들이 이날만큼은 고단한 몸을 쉬어주며 즐기고 싶었던 것도
    즐기고 배불리 먹는 날이라서 쥬맥에게는 하루가 항상 같지만
    시간의 흐름도 익히고 몸의 변화도 조금씩 느끼면서 열심히 채워가는 게
    어쩌면 단단하게 만드는 시간이 아닌가 싶어요. 표범의 이름을
    순박하게 지은 것도 어쩌면 무서운 산짐승이 아닌 혼자이기에
    외로움을 걷어 줄 유일한 벗이길 소망하고자 함이겠지요. 후후
    동굴탐험이 또 하나의 도약을 위한 길이 되길 기대해봅니다.

    찬성: 2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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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46화. 복수 준비와 떠날 준비 21.06.29 1,384 47 20쪽
45 45화. 비월족의 패전 대책 21.06.29 1,388 48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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