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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달

조선타임트래블 Rerun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대체역사

완결

저승달
작품등록일 :
2021.08.03 10:03
최근연재일 :
2021.09.20 19:42
연재수 :
65 회
조회수 :
7,789
추천수 :
105
글자수 :
311,603

작성
21.08.04 20:19
조회
168
추천
3
글자
12쪽

궁녀4 (6)

DUMMY

끼야아아아아아아악





각시가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쓰러진다. 자신을 덮치는 각시의 몸을 경악한 눈으로 보고 있던 소영이 재빨리 옆으로 게걸음치듯 후다닥 비켜선다.

바닥에 쿵 소리를 내며 쓰러진 각시의 깨진 탈과 이미 시체가 된 궁녀의 얼굴을 보면서 소영은 벌떡벌떡 뛰는 마음으로 남자, 정한을 쳐다본다.

정한은 소영이 쳐다보고 있는 동안 숨을 씩씩 몰아쉬며 소영을 내려다본다.

이현보다 더 어린듯한 얼굴이지만 커다란 키의 남자가 시커먼 밤하늘을 등진 채 그런 굉장한 몰골로 서있는 모습은 박력이 넘친다.


"정한!"


이현이 반갑게 소리친다. 정한이 휙 돌아본다.

정한이 돌아서자 소영을 등지고 있어 얼굴이 보이지 않지만 이현의 표정으로 보아 상당히 무시무시한 듯 이현이 움찔 한다. 소영은 갑자기 잘 모르는 정한이란 남자에 대해서 존경심을 느낀다.


"어떻게 한거야?"


정한의 옆으로 다가온 이현이 묻는다. 여전히 씩씩대는 정한이 바닥에 널 부러져 있는 궁인들의 사체를 향해 눈짓한다.


"사람들은 피를 빼앗겨서 죽은게 아니야. 각시들은 피를 얻기위해 사람들을 죽인거지. 하지만 숨이 붙어있는 동안에는 피를 먹지 않았어."


정한이 그런다. 그 말에 이현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각시의 입에서 떨어진 피 웅덩이를 손가락으로 짚는다. 킁킁 하고 냄새를 맡아보고 손가락 끝으로 비비던 이현이 눈을 찌푸린다.


"... 사후의 피라고."


정한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이현과 소영의 옆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는다.


"그게 다가 아니야."


소영과 이현이 보는데 정한이 각시의 탈을 벗긴다. 소영이 손으로 입을 막으며 소리를 지른다.

이현이 정한의 손아래 있는 퍼렇게 질린 얼굴을 내려다본다. 이현이 중얼거린다.


"..... 그럼 피를 먹힌 사람들도 각시로 변한다고."


소영은 부들부들 떨고 있다.


"사람들을 죽여서 피를 얻는다구요?"


이현이 소영을 내려다본다.


"각시들은 시간의 괴물이야."


이현이 사람들의 시체더미들을 돌아본다.


"각시들은 역사가 흘린 피를 먹고살아. ...여러 가지 의미로."


그리고 이현은 정한의 발치에 있는 함을 쳐다본다.


"그리고 지금은 소현세자가 가지고 있던 저 함을 노리고 있었지.“


이현이 정한을 쳐다본다.


"뭐가 들어있는지 알아냈어?"


정한이 고개를 젓는다.


"소현세자만 열 수 있는 장치가 되어있는 것 같아. 그래서 각시들도 열지못한 거겠지."


이현이 고개를 끄덕인다.


"세자가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있는지 알려주는거네. 세자가 열지 않으면 각시들도 소용이 없을테니까."


“.... ....”


두 사람이 잠시 침묵한다. 이현이 정한의 어깨너머를 쳐다보더니 묻는다.


"세손은?"


정한이 한숨을 쉰다.


"세자빈마마께 돌려드리고 왔어. 세손이 개구리한테 납치되었다고 하니까 참 좋아하시더라."


그러자 이현이 슬쩍 시선을 피하며 헛기침을 한다.


"그건 묻어둡시다. 개구리 도깨비가 그렇게 간교할 줄 내가 어떻게 알았겠어?"


그러자 정한이 수상하다는 듯 쳐다본다. 이현은 슬쩍 고개를 돌려 시선을 회피한다.

소영은 두 사람이 얘기하는 사이에 뭔가에 끌리듯 정한이 가져온 붉은 함을 쳐다보고 있다.

아까 지하철역의 거북이벽 앞에서 처음 이현이 말한 '진짜 기억'이라는 것이 돌아왔을 때 소현세자가 보고 있던 바로 그 함이다.

소영은 함의 양쪽에 달려있는 고리를 잡고 들어올리기 시작한다.

함을 들어 올리던 소영이 휘청한다. 그리고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것처럼 함을 내려다본다. 이 느낌은 마치 함안에 들어 있는 것이---


소영이 정한과 눈을 마주친다.

정한은 소영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는 눈빛으로 소영을 내려다본다.

자신의 또래 정도나 되어 보이는데도 그 눈빛은 이현과는 다른 의미에서 압도적이다. 소영은 다시 함으로 시선을 내린다. 그리고 바닥에 서있는 하얀 버선발을 본다.


".. 어?"


소영이 화들짝 고개를 든다. 눈앞에는 아까 궁 쪽으로 사라졌던 과거의 소영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서있다.

이현과 정한, 소영이 서있는 가운데 바깥으로 통하는 문을 등지고 선 소영은 오직 혼자만 질린 얼굴로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소영은 아무생각도 나지 않는다.

과거 소영은 문득 깨어난 것처럼 움찔 하더니 바깥으로 달려 도망치기 시작한다.


"자 잠깐만!"


소영이 저도 모르게 소리친다. 불러서 어쩌려고 했는지는 모르지만 막상 입이 떨어지니 이름을 부를 수가 없다. 과거소영은 움찔 하더니 겁에 질린 눈으로 소영을 홱 돌아본다.

이미 상당한 거리가 떨어져 있지만 소영은 자신의 얼굴의 떨리는 근육하나 긴장한 눈썹 하나하나까지 들여다보듯 가깝게 보인다.

너는 어떻게 살아있는 거야, 라고 묻고 싶은 말이 자신의 뒤통수에 꽂히는 이현과 정한의 시선처럼 목에 콱 막혀 넘어오지 않는다.

소영은 지금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이 밤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는 것보다 그 시선들이 더 두렵다.

과거소영은 그런 소영을 잠시 쳐다보는 듯싶더니 다다닥 하고 시야 밖으로 달려 사라진다. 소영은 가슴이 털썩 주저앉는 것 같다.

지난 몇 시간동안만 심장이 들락날락 하는 것이 제명에 못살 것 같다.

소영이 이현을 돌아본다. 이현은 정한의 옆 소영의 뒤에 서 있다. 이현이 소영을 내려다보면서 손을 내민다.


"가야돼. 이제 이 사람들도 변하기 시작할거야."


정한이 그런다.

소영은 이현의 손을 잡고 일어난다. 궁녀들의 시체들은 은은한 달빛아래 마치 마루위에 떠있는 나뭇잎들처럼 고요하다.

소영은 자꾸 불규칙해지는 숨을 억지로 코로 들이쉰다.

저 모든 사람들이 죽어야 했고 과거의 자신이 어떤 선택으로 인해 혼자 살아남았다면 자신은 그 선택에 대해 알아야 했다.

소영이 벌떡 일어나 방금 소영이 뛰어간 곳을 따라간다.


"소영!"


뒤에서 이현이 소리치는 것이 들리지만 소영은 돌아보지도 않고 뛰기 시작한다.






**



뒷문 밖으로 나오니 차가운 밤공기가 가슴을 훅 밀어젖힌다. 그때 반대편 궁문이 바람에 열린 채 흔들거린다.

소영은 황급히 그쪽으로 달려간다. 궁 문턱에 다다른 소영이 벽 문에 등을 붙이고 숨을 고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안쪽을 살펴본다. 다행히 아까처럼 무참한 피비린내 나는 살육의 현장은 없다.

하지만 여전히 등에 남아있는 오싹한 감각에 다리가 자꾸 풀리려는 것을 무시하고 소영이 천천히 안쪽으로 걸음을 내디딘다.

바닥은 매끄럽고 소리 하나 나지 않는다. 소영은 천천히 방들마다의 문을 조금씩 열며 안쪽을 확인한다.

다섯개째의 방문 앞에 도착했을 때 소영의 손이 멈칫한다. 문 아래틈새 사이로 검은 피 웅덩이가 조금씩 밖으로 번져 나오고 있다.

소영은 잠시 숨을 들이쉬며 자신의 발쪽으로 퍼져나가는 피의 웅덩이를 내려다본다. 그리고 양 손으로 문을 잡고 좌우로 열어젖힌다.


"... ......"


안쪽은 온통 컴컴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소영은 잠시 문 하나를 둔 채로 그 완전한 어둠과 마주한다.

그때 목 뒤쪽이 쭈뼛 솟아오르고 소영은 홱 뒤를 돌아본다.


과거소영이 귀신을 본 듯한 눈으로 소영을 쳐다본다. 소영은 자신의 얼굴을 쳐다보며 숨을 몰아쉰다.


"... 너는 어떻게 살아 있는 거야?"


소영이 중얼거린다. 그 말에 과거소영이 고개를 우뚝 멈춘다.

그러나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안쪽으로 홱 사라진다. 소영은 생각할 새도 없이 소영을 따라 안으로 쫓아 들어간다.

방 안으로 들어가자 소영은 심장이 발로 쿵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과 함께 칠흑 같았던 방안의 어둠의 정체를 깨닫는다.

방 한쪽구석에는 아까 수정 전에서 본 것보다 더 많은 궁녀들과 내관들의 시체들이 무수하게 나뒹구는 가운데 각시들이 하나 둘씩 장승처럼 서있다. 방 한쪽 구석에는 아직 살아있는 내관들과 궁녀들 몇이 머리를 움추린 채 신음소리를 내며 덜덜 떨고 있다.

과거소영은 어느 틈에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지만 소영은 그녀를 찾고 있지 않다.

방 한가운데 서있는 사람의 얼굴을 본 소영이 멈춰선다.


"당신은....."


말을 이으려 하지만 목소리가 막힌 듯 나오지 않는다.


"소현세자지."


이현의 목소리가 대신 소영의 말을 잇는다.

뒤의 문을 열어젖히고 달려 들어온 이현과 정한이 서있고 이현의 눈은 금방이라도 불이 일듯 번쩍거린다. 소현이 이현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하얀 얼굴에 단아한 검은 눈썹과 굳게 다문 얇은 입술이 창백한 빛에 비쳐 더욱 곧은 느낌을 준다. 이현이 안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오면서 말하기 시작한다.


"나라 안에 대의명분을 주장하며 대륙을 갈아치우고 있는 청과의 전쟁을 주장할 때 청나라 고관들과 친분을 맺으며 청 문물을 받아들이는 정치를 펼쳤지."


이현의 발자국은 고요한 어둠속에 묘하게 차갑게 들린다. 이현의 반짝이는 검은 눈이 똑바로 어둠속을 향한다.


"청의 고관에서부터 서양의 선교사와 사신들에 이르기까지 수가 닿지 않는 곳이 없었고 자비로 무역과 둔전을 통해 비축한 돈으로 청에 잡혀있는 백성들을 손수 구해낼 정도의 엄청난 수완가이자 정치가."


이현은 소현세자를 바라본다. 그 단정하고 흰 얼굴이 이현의 검은 눈 위에 비친다.


"사대부정신이라면 골수가 빨려도 따라야하는 관료들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그런 정치적 수를 둘 수 있었던 건 천재적인 정신과 보통사람은 엄두도 못 낼 대담함까지."


이현이 눈을 반짝이며 그런다. 정한이 옆에서 한숨을 쉰다. 이현이 왜 그러냐는 듯 어깨를 으쓱인다.


"소현세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역사인물 중 하나라고."


그리고 이현이 소현과 눈을 마주친다. 웃고 있는 눈이 번쩍번쩍 한다.


"... 그리고 방금 훨씬 더 흥미로워진 인물이지."


정한이 그런다. 이현이 정한을 쳐다보자 정한이 말한다.


"사실 이 함을 열어보지는 못해도 들어볼 수는 있거든. 그리고 함을 들어보면 누구라도 안에 들어 있는게 물체가 아니라 액체인걸 알 수 있어."


정한이 그런다.


"왜냐면 함안에 들어 있었던 건 피였거든."


그러자 소현과 내관을 비롯한 사람들이 모두 정한을 쳐다본다.


정한이 함을 연다. 함 안 가득 출렁이고 있는 것은 검붉은 액체의 피다.

소영의 눈이 크게 떠진다. 처음 기억이 돌아왔을 때 보았던 새벽 밤 궁 안에서 세자가 들여 다 보고 있던 함안의 그것.

소영이 보고 있는 것을 알았을 때 소현은 소영에게 역사가 걸린 일이니 절대 발설하지 말라고 엄령을 내렸었다.

하지만 이미 방안에 진동하고 있었던 냄새는----


소영이 소현을 쳐다본다. 대체 왜 세자가 각시들을 위한 피를 함에 준비하고 있었던 것인가. 그때 소현의 품에서 무언가가 바닥으로 달카당 하고 떨어진다. 그러자 소현이 움찔 한다.

소영은 처음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보고도 알아보지 못한다.


"저게 무슨..."


이현은 그것을 크게 뜬 눈으로 노려보고 있다.


"벼루야."


이현이 그런다. 이현의 말을 듣고도 한참을 바라보던 소영이 그 의미를 깨닫고 움찔한다.

원래 푸른색이었을 청옥으로 만든 벼루에 달라붙어 있는 것은 사람의 살점과 피다.

소영은 동시에 욱하고 목에 올라오는 것을 참는다. 소영도 소현세자와 벼루의 역사는 알고 있다.


... 소현세자가 청에서 돌아왔을 때 청의 문물들을 가지고 돌아와 아버지 인조 앞에 바친다.

인조는 치욕스러운 강화도 땅에 무릎을 꿇은 것이 어제일 처럼 생생한데 완전히 교화되어 돌아온 아들을 용서할 수 없었던 인조는 세자의 머리에 돌벼루를 던지면서 나가라고 고함을 치고 아들은 머리가 피투성이가 된 채로 쓰러진다.

정한이 소현을 쳐다본다.


"세자는 각시들에게 쫓기고 있었던 게 아니야. 각시들이 세자를 쫓았던 건 세자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준비했기 때문이야."


그러자 모두가 세자를 쳐다본다. 하지만 이현은 바닥에 있는 함에 시선을 고정시킨채 중얼거린다.


"잔인하고 잔인한 피."


이현이 중얼거린다. 그리고 소현을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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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천상열차분야보물지도 1 21.08.30 67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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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검은 물 속의 팔만대장경 4 21.08.29 44 1 15쪽
31 검은 물 속의 팔만대장경 3 21.08.28 39 1 12쪽
30 검은 물 속의 팔만대장경 2 21.08.28 30 1 8쪽
29 검은 물 속의 팔만대장경 1 21.08.27 40 1 18쪽
28 바다를 거니는 신선들 8 21.08.27 25 1 9쪽
27 바다를 거니는 신선들 7 21.08.26 29 1 15쪽
26 바다를 거니는 신선들 6 21.08.25 29 1 9쪽
25 바다를 거니는 신선들 5 21.08.24 41 1 13쪽
24 바다를 거니는 신선들 4 21.08.23 36 1 10쪽
23 바다를 거니는 신선들 3 21.08.22 31 1 7쪽
22 바다를 거니는 신선들 2 21.08.22 40 1 12쪽
21 바다를 거니는 신선들 1 21.08.21 43 1 6쪽
20 용산역의 도깨비 12 21.08.20 47 1 7쪽
19 용산역의 도깨비 11 21.08.20 39 3 7쪽
18 용산역의 도깨비 10 21.08.19 43 2 8쪽
17 용산역의 도깨비 9 21.08.18 41 2 10쪽
16 용산역의 도깨비 8 21.08.17 43 2 11쪽
15 용산역의 도깨비 7 21.08.12 40 2 7쪽
14 용산역의 도깨비 6 21.08.12 41 2 11쪽
13 용산역의 도깨비 5 21.08.11 47 1 9쪽
12 용산역의 도깨비 4 21.08.10 51 2 9쪽
11 용산역의 도깨비 3 21.08.09 55 2 9쪽
10 용산역의 도깨비 2 21.08.08 92 3 8쪽
9 용산역의 도깨비 1 21.08.07 146 2 10쪽
8 궁녀4 (8) 21.08.06 132 2 11쪽
7 궁녀4 (7) 21.08.05 131 3 12쪽
» 궁녀4 (6) 21.08.04 169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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