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위대한 발견 - 프로이트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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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프로이트 박사
'이쯤에서 튜브를 내리라고 했는데......’
주말, 단거리 튜브로 약 30분이면 닿았을 거리인 프로이트 박사의 집을 난 꽤 먼 거리를 돌아가야만 했다. 쪽지에 적힌 내용은 간단했다.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장거리 튜브로 이웃도시인 햄프톤 시(市)로 이동하여, 걸어서 삼십분 거리인 잡화점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한 길, 하지만 와트슨 잡화점에 도착한 뒤 상점 주인의 안내로 어느 방으로 안내되어 예기치 못하게 노인으로 변장해야 했고, 단거리 튜브를 열여섯 번이나 갈아탄 후에야 삼십분이면 닿았을 프로이트 박사의 집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장거리 튜브는 탑승자의 기록이 남기에 주말 내내 햄프톤 시에서 여가를 즐긴 것으로 꾸미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여~ 어서 오시게. 바둑이나 두자고 청했네.”
[“오랜 지기처럼 대해주시게나. 모든 대화는 도청되고 있으니.”]
프로이트 박사는 ‘메시지 마법’과 일반 대화를 번갈아가며 사용했기에 나도 눈치껏 따라했다.
“안녕하... 아~ 그래 심심한데 잘 되었구먼.”
오랜만에 만난 프로이트 박사는 여전히 건강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날 반갑게 맞이하며 태연하게 행동하려했지만 눈빛은 어딘가 초조해 보였고 그런 분위기는 집안 곳곳에서 느껴졌다.
[“무슨 일이십니까?”]
[“바쁘니까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바둑 두면서 내말 잘 듣게나. 한 시간 정도 밖에 시간이 없으니.”]
“자 그럼 오늘 이긴 사람 소원 하나 무조건 들어주기로 하고 시작해 보실까나”
“그, 그러지.”
[톡, 톡]
방안 가득 바둑알 놓는 소리가 들리며 둘만의 수담(手談)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렇게 불러서 아마 당황스러울 게야. 부탁할 게 있어 자넬 청했네.”]
[“제자들도 많은데 왜 하필 저를?”]
[“앤드류를 비롯한 내 주위 모든 사람들이 감시당하고 있네. 그래서 나랑 교류가 별로 없지만 무엇보다 마법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고 있는 자네가 가장 적임자라 생각해서 불렀네. 3차원마법도형의 간섭과 효과에 대한 자네의 논문은 관심 있게 읽었네.”]
[“고맙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 때문이신지?”]
서두(序頭)를 자신의 현재 상태에 대한 얘기로 꺼낸 프로이트 박사는 사나야 왕국의 시치리스 섬 마법도형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자네의 논문에도 나와 있듯 3차원 마법도형은 앞으로 연구해야 할 부분이 상당히 많네. 아마도 그 분야에서 자네만큼 이해가 깊은 사람도 드물게야. 그런데 자네 시치리스 섬의 원본을 본적이 있는가?”]
[“원본의 일부야 박물관에서 자주 봤죠. 시치리스 섬은 가보지 못했고요,”]
프로이트 박사는 몇 년 전 시치리스 섬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곳에서 마법진 전체를 보기 위해 항공촬영을 시도했다고 한다.
[“마법진 전체를 해석하시려고요? 지금까지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지 않습니까?”]
[“처음엔 그럴 의도가 아니라 기념으로 가지고 있으려 했던 걸세. 그러다 자네의 논문을 보고 수수께끼를 풀 수 있겠다고 생각한 거지.”]
3차원 마법진에 대한 나의 논문을 본 후 수년 동안 그 사진을 보며 마법진 전체를 해석해 보려 했다고 한다. 시치리스 섬에 그려진 마법진은 다섯 종류의 도형이 어떤 배열을 가지고 수천 개가 그려져 있다. 그걸 해석해 보려는 시도는 수백 년간 계속되었지만 모두가 실패로 결론이 났다. 프로이트 박사는 시치리스 섬에 그려진 마법진이 2차원 평면 마법진이 아닌 3차원 마법진이라는 관점에서 해석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수백 년간 밝히지 못한 걸 내가 할 수 있다고 여기진 않았네. 허나 자네의 논문으로 힌트를 얻어 좀 밝혀낸 게 있다네.”]
그가 밝혀낸 것도 그렇게 많지 않다고 한다. 시치리스 섬 중앙 부분에 그려져 있는 마법진의 일부만 해석했다는 것이다. 그건 공간 계열의 마법도형이 기하학적으로 배치된 마법진이었고, 내 논문에 있던 3차원 마법도형의 간섭이란 주제로 해석한 결과, 무언가를 이송하기 위한 것이란 결론을 얻었다는 것이다.
[“공간이동 마법이라면 어떤 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블링크’라면 기초 마법 아닙니까?”]
[“‘블링크’ 정도가 아니라 장거리 이동 마법이네. ‘워프’나 ‘텔레포트’라고 봐야 할 것 같네.”]
[“정말입니까? ‘워프’란 아직 초보적 연구 분야인데.”]
[“내 나름대로의 결론일 뿐이야. 정답이 아닐 수도 있고.”]
워프나 텔레포트를 암시하는 마법진, 분석결과가 맞는다면 학계에 초미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일이다. 현재 워프나 텔레포트와 같이 장거리 공간이동은 개념만 서 있을 뿐 세계의 석학들이 매달리고 있는 차세대 연구과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프로이트박사는 장거리 이동만이 아니라 더 큰 문제가 있다고 한다.
[“자네 말대로 이건 학계에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일이야. 그런데 어느 정도 분석이 끝날 때쯤 내가 이 모양이 되어 버렸네. 거의 가택연금 수준이야. 제자들도 대부분 감시가 붙어 있고. 그래서 자넬 청한 걸세.”]
이상한 일이다. 마법학자의 새로운 발견 결과가 가택연금이라니. 가택연금의 주체는 왕국이라지만 프로이트 박사의 느낌은 제국의 입김이 통한 것 같다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이유일까? 시치리스 섬의 마법진에 무슨 대단한 비밀이 있는 걸까?
[“일부라도 분석이 마무리 되었다면 학계를 통해 부당함을 변론하면 될 것인데 이런 형편이니......, 그래서 자네가 좀 맡아주었으면 하네.”]
[“제가 맡는다고 도움이 되겠습니까?”]
[“너무 그렇게 자길 낮추진 말게. 자네는 알게 모르게 유명한 사람일세. 직관과 공간지각력에선 유별난 능력을 가졌지. 자네 능력이라면 그 도형 전체를 입체적으로 본 것처럼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을 거라 기대하네.”
[“그래도 3차원 입체 마법진이라면 사진으로만 봐선 해석하기 힘듭니다.”]
[“맞는 말이네. 그래서 자네보고 직접 보고오라 청한 거네. 현재 시치리스 섬 방문이 완전히 금지 된 게 아니니 갈 수는 있을 게야.”]
[“흐음, 가서 볼 수 있다면 무엇이 어떤 식으로 그려져 있든 알아 볼 수는 있을 겁니다. 하지만 알아 볼 수 있다는 거지 기억할 수 있다는 건 아닙니다. 제가 유명한 분야가 또 있죠. 조악한 기억력,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나도 그게 좀 우려되긴 해. 하지만 분명 어떤 규칙에 따라 그려져 있을 테니 그 규칙을 알아낸다면 그것만 기억하면 되지 않을까?”]
[“단순히 생각하면 그렇겠죠. 하지만 그 규칙도 수천 개의 그림이 합쳐진 것이라면 몇 십 개 정도의 패턴으로 그려졌을 겁니다. 고작 수십 개라 해도 저의 기억 용량을 아마 초과하게 될 겁니다.”]
[“하하 맞아. 그런데 그건 걱정 말게. 내가 정해주는 사람을 조수로 채용해서 같이 가면 될 게야. 그 아이의 기억력과 분석력은 자네의 공간지각능력만큼 특별하니까.”]
프로이트 박사의 제안, 학자로서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했다. 이곳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사나야 왕국, 그곳에서도 외따로 떨어져 있는 섬 시치리스, 가고 오는 데만도 한 달이 걸릴 것이다.
[“그럼, 아카데미 방학 때 가보고 오겠습니다. 저도 흥미가 생기는 군요.”]
[“그래, 부탁하네. 그런데 이 대마(大馬) 어떻게 할 텐가. 사망하셨네. 하하”]
[“헉, 그런 말씀 하시는데 제가 어찌 바둑에 집중 할 수 있습니까?”]
[“그래도 내기는 내기니 반드시 내 소원하나는 들어줘야겠어.”]
[“아니 그건 그냥 하신 말씀으로......”]
[“내기는 내기야. 조만간 내 소원이 전달 될 게야. 어쨌든 바둑 잘 두었네. 그리고 빨리 마무리 짓고 어서 가시게나. 시간이 거의 다 되었네. 반드시 명심하게나, 절대 누구에게도 오늘 일을 말해서는 안 되네.”]
“오랜만에 바둑을 뒀더니 기분이 좋군. 하하”
“흐음, 막판에 역전될 줄이야. 흠 흠. 난 이만 가보겠네.”
“이런 벌써 가려고? 더 있다 가지 않고, 자네 혹시 삐쳤는가? 하하”
“일없네. 이만 가보겠네. 흠, 흠.”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이려 삐친 것처럼 건성으로 인사 하고 나왔다. 누군가 본다면 조금 어색하긴 해도 바둑에 진 탓으로 여길 것이란 기대했다. 그렇게 또다시 왔을 때와 같이 여러 번의 단거리 튜브를 갈아타고 햄프톤 시(市)로 돌아간 나는 다음날, 주말의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공식적인 햄프톤 시 관광을 마치고 귀가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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