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부분에서 독일이 먼저 핵무기 개발에 성공하는 것은 무리가 아닌가 합니다. 핵 물리학 이론 부분에서도 미국은 독일을 앞서고 있었고, 우라늄 농축 분야에서는 거의 독일이 따라잡을 수 없을만큼 격차가 벌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핵무기 개발 분야에 할당된 예산에서 독일과 미국의 격차는 천배 가깝게 벌어져 있다보니.. 설령 천운이 따라 핵무기 개발의 시행착오없이 진행되어 미국보다 먼저 핵을 보유해도 이미 1943년 8월부터는 주간에도 연합군 폭격기가 독일 상공을 활보할 정도로 제공권을 털린터라.. 런던이나 워싱턴으로 폭격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은가 합니다.
아인슈타인의 E=mc^2이 현실화 된 시기는 마이트너라는 한 위대한 여성이 조카 프리시와 함께 눈덮인 한낮의 산책길에서 원자가 쪼개지는 현상을 계산해 낼때입니다. 그때가 1939년, 중수 문제와 흑연문제로 인해 독일의 실험이 순조로웠다면.... 아마 40, 혹은 41년에 어딘가에 핵폭탄이 떨어졌지 않았을까.... 좀 끔찍하네요. 이때 아인슈타인은 미국으로 망명해 있었는데 이 소식을 듣고 백악관에 편지를 쓰죠. 독일에서 악마의 무기가 개발되고 있다고. 편지는 루스벨트에게 전해졌지만 간곡히 거절합니다. 이후 이 편지는 계속 책상 안에서 잠자고 있게 됩니다. 그리고 겨우 43년에 와서야 맨해튼 프로젝트가 가동되지요.
핵폭탄 관련해서 가장 뜨거웠던 시기는 39년부터 41년 정도인데, 그때 독일의 개발 속도는 무시무시 했었습니다. 평화의 시기라면 몇십년이 걸릴 연구였죠.
맨해튼 프로젝트가 급하게 결성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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