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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도래하다.

히어로

웹소설 > 일반연재 > 게임, 판타지

Cainless
그림/삽화
용아(龍兒)
작품등록일 :
2012.12.17 22:37
최근연재일 :
2013.10.30 19:22
연재수 :
2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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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9
추천수 :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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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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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2.06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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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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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23쪽

히어로 Chapter2 살수 - 3(5화)

DUMMY

'젠장, 강제라서 거절할 수도 없고 전직퀘라 미룰 수도 없으니 원.'


"자, 가자!"

"네…."


여느 때 보다 활기찬 듀란에 반해 마치 도축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힘없이 따라가던 카인이 마침내 도착한 곳은 지금까지 훈련했던 곳보다 훨씬 넓고, 약간은 어두침침한 곳이었다.


"여긴 어딥니까?"

"우리의 기술을 배우기 위한 장소다. 이전의 훈련장은 좀 좁거든."

"아…."

"일단 살력 쓰는 법을 알려줄 테니 여기에 서 보거라."

"네."


카인이 앞에 서자 몇 걸음 뒤로 물러선 듀란의 몸에서 갑자기 검은색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내 눈을 보거라."


그 말에 카인이 듀란의 눈을 쳐다보는 순간, 카인은 얼어붙고 말았다.


"내게 한 걸음 다가와라."


듀란에게서 피어오른 아지랑이가 더욱 진해졌다.

평소 듀란의 말을 잘 따르던 카인이었지만, 이번만큼은 그 말을 따를 수 없었다.

왜냐하면 지금껏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공포가 카인의 움직임을 제한했기 때문이다.

단 한 걸음이라도 움직이면 곧바로 목이 날아갈 것 같은 오싹한 기분.

카인의 등에서 식은땀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몇 분이 흘렀을까.

듀란의 몸에서 피어오르던 아지랑이가 서서히 연해지며 이윽고 사라지게 되자 그제야 카인을 지배하던 공포감이 사라지며 비로소 숨을 돌릴 수 있었다.


"헉, 헉, 이건 대체 뭡니까?"

"살기다."

"살기요?"

"그래, 살기. 지금 네가 배울 '살기표출'의 단계가 높아지면 이런 것도 가능하다."

"살기표출이요? 그건 어떻게 하는 겁니까?"

"간단하다. 그저 네 앞의 상대를 진심으로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 된다."

"그것뿐입니까?"

"그렇다. 쉬운 방법이지만 누구나 쓸 수 있는 기술은 아니지."

"왜죠?"

"살력을 이용한 기술이기 때문이다."


과연.

살력을 이용한 기술이라면 아무나 막 쓸 수 있는 기술은 아니었다.

자신도 살수 수련생이 되어서야 살력 스텟이 생겼고, 전직 퀘스트를 받고 나서야 살력이 활성화됐다.

그리고 이제서야 생각났지만, 애초에 살기표출이라는 기술을 배우게 된 건 전직 퀘스트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살수가 아닌 이상은 쓸 수 없는 기술인 것이다.


"살력이란 건 우리 인간들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살기를 유형화하고, 강화시켜주는 힘이다. 그리고 이걸 표출하여 상대에게 집중시키면 상대는 강한 살기를 느껴 공포를 느끼게 되지. 마치 몬스터의 피어를 듣는 것처럼 말이다. 한마디로 강화된 살기를 상대에게 집중시키는 것. 이것이 살기표출의 원리다. 알겠느냐?"

"네."

"그럼 나를 향해 살기를 뿜어내 보거라."


그 말에 카인은 하던 생각을 정리한 후, 눈앞의 듀란을 노려보고는 자신의 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스승에서 자신을 죽이려는 살인자로.

얼마나 흘렀을까.

어느새 카인의 몸에서 듀란과 같은 진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벌써부터 저렇게 진한 살기라니. 역시 내가 제대로 봤어. 보통이라면 연한 아지랑이를 피우는 데에만 꼬박 한 시간은 걸렸을 텐데 말이야.'

"그만, 살기표출은 그 정도면 됐다."


5분 여가 흐르자 듀란이 카인을 제지했고, 카인의 아지랑이가 서서히 옅어지며 줄어들기 시작했다.

잠시 후, 카인의 아지랑이가 완전히 사라지자 카인의 귓가에 알림음이 들려왔다.


-스킬 '살기표출'을 배우셨습니다.


'뭐야, 스킬 배우기가 이렇게 쉬운 건가?'


라는 생각을 하는 카인이었지만 사실 히어로에서 스킬을 배운다는 건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기초적인 스킬을 예로 들면 우선 스킬을 구성하는 동작이나 내용을 그대로 따라해야한다.

그렇게 해서 원래 동작이나 내용과의 일치도가 95% 이상을 넘어야만 70%의 숙련도가 쌓이고, 100%가 되면 80%의 숙련도가 쌓이지만 95% 미만이라면 0.01%의 숙련도가 쌓인다.

만 번을 해야 스킬 하나가 생기는 것이다.

물론 이건 기초적인 스킬의 경우이고, 상위의 스킬일 수록 일치도가 100%라고 해도 80%가 아닌 60%나 50% 이하의 수련치만이 채워지는 일도 많다.

그러나 카인은 완벽히 100% 동작을 재현했을 뿐 아니라 '청룡의 가호'의 보너스 효과(+20%)와 NPC의 지도(+10%)라는 보너스를 받아 비교적 쉽게 스킬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살기표출은 전직 퀘스트의 일환으로서 난이도가 최하로 조정되어 기초적인 스킬로 설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배우기가 쉬워졌기에 5분이라는 짧은 시간 만에 배울 수 있었다.


"살력을 이용한 살기는 일반적인 살기와는 다르다. 일반적인 살기는 아무리 강해 봤자 사람을 잠시 움찔하게 하는 정도지만 살력을 이용한다면 살기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물론 살기표출을 마스터하고, 상대가 약한 사람이었을 때의 경우지만."


카인이 순간 생각하기에는 말도 안 되는 말 같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처음에 듀란이 뿜었던 것처럼 농도 짙은 살기라면 정말 사람을 죽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살력을 이용해 살기를 뿜는 살수들과 매일 같이 있으면 자연히 살기에 둔감해지게 되고, 나중에는 평범한 살기는 느끼지도 못하게 된다. 그런 이유로 예전에는 그저 그런 어쌔신들에게 어이없이 암살을 당하거나 하는 일이 많았지. 그래서 우리는 그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언제나 미약한 살기라도 느낄 수 있는 스킬을 만들 수밖에 없게 되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스킬이 '살기감지'다. "


'빡세겠네.'


'살기감지'에 대한 설명을 들은 카인의 첫 생각이었다.

'언제나'라는 말이 들어간 걸로 봐서 패시브 스킬일 게 뻔한데, 게임 메뉴얼 중에 패시브 스킬은 익히기가 액티브 스킬에 비해 많이 어렵다는 말을 읽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 테스트 역시 살기 표출보다 조금 어려운 정도로 난이도는 낮다."

"그래서 이번 테스트는 뭐죠?"

"간단하게 은신한 나를 공격하면 된다. 단 기회는 1분에 한 번뿐이다. 1분이 지나면 나는 다른 곳으로 이동할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 데나 찍어서 휘두르면 수련이 제대로 되지 않으니까 그런 일은 없도록 해라."

"네."


듀란의 말과는 달리 어렵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어차피 안 할 수는 없었기에 카인은 군말 없이 듀란의 말을 따랐다.

잠시 후 듀란이 스킬 이름을 외는 듯 중얼거리자 듀란의 몸이 안개처럼 사라졌다.


'저기군.'


카인은 시작하자마자 곧장 왼쪽으로 10m 정도 떨어진 곳에 목검을 휘둘렀고, 그곳에는 카인의 목검을 손으로 막은 듀란이 나타나 있었다.

듀란이 눈에 보이는 것은 은신의 특성상 공격당하면 풀리는 게 당연했기에 나오는 결과였다.


"감이 좋구나."

"살기가 너무 짙어서요."

"그렇군. 다시 간다."


듀란은 말을 마치고는 다시 사라졌다.

그러나 카인은 점점 약해지는 살기에도 수 십 번이나 듀란을 찾아내었다.

몬스터병으로 인해 일반인의 수준을 한참이나 벗어난 감각 덕분이었다.

한 30번을 조금 넘겼을까, 듀란이 말을 걸어왔다.


"지금부터가 진짜다."


그 말과 함께 듀란은 다시 사라졌다.

지금부터가 진짜라는 듀란의 말대로 카인은 강화된 육감에도 지금까지와는 달리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어디지?'


"좀 더 집중하고, 마음을 비워라."


마치 듀란이 안개가 되어 주위에 퍼져 있는 것처럼 사방에서 듀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집중하자. 분명히 이 방안에서 나를 향해 살기를 뿌리고 있을 거야.'


듀란의 말에 카인은 눈을 감고 마음을 비우고 살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눈을 감고 있었기에 자신으로부터 연한 검은색의 안개가 퍼져 나가는 것은 미처 알지 못했다.

그리고 약 1분 후, 검은 안개가 수련장을 완전히 채웠을 무렵이었다.


'저기다!'


카인은 수련장 왼쪽 벽면을 강하게 후려쳤고. 그곳에는 카인의 목검을 한 손으로 막고 서 있는 듀란이 있었다.


"그래, 그거다. 살력은 살기를 표출하는 것 뿐만 아니라 살기를 감지하는 역할도 한다."


카인은 영문을 알 수 없는 소리에 잠시 갸우뚱했지만 곧 살력을 확인해 보고는 듀란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살기표출로 반 토막 났던 살력이 다시 반 토막이 나 있었던 것이다.


"살력을 안 쓰고는 안되는 겁니까?"


만약 카인이 짐작한 대로 패시브 스킬이 맞는다면 1분도 안 되는 시간에 전체 살력의 1/4에 해당하는 살력이 빠져나가서 살기표출은 물론이고 다른 살력을 필요로 하는 스킬은 사용할 수 없으리라.


"그건 아니다. 처음에야 살력을 필요로 하지만 점점 익숙해지다 보면 더는 살력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는 순간이 온다."

"어느 정도로 익숙해져야 합니까?"

"10%. 마스터까지의 숙련도를 100%로 봤을 때 10% 정도면 된다. 재밌는 건 10% 전까지는 액티브 스킬이지만 그 이후부터는 패시브 스킬이 된다는 거지."


'그거구만. 미르의 전설.'


액티브 스킬이 패시브 스킬로 변한다는 건 약간 생소한 느낌이지만, 카인이 살수라는 에픽 클래스를 만들 때 참고했던 미르의 전설이라는 게임에서는 이런 식의 스킬들도 몇 개 있었다.


'그렇다고 이런 것까지 따올 줄이야. 앞으로 더 귀찮아지겠어.'


어차피 미르의 전설이나 히어로나 더블S에서 만든 게임이기 때문에 저작권에 대해서는 별 문제는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카인이 직업을 따왔다고 이런 것까지 덤(?)으로 붙여줄 줄은 몰랐다.


'이런 게 익히기 얼마나 어려운데.'


전체의 10%.

0레벨부터 시작해서 10레벨을 마스터라고 봤을 때, 1레벨만 올리면 되는 얼핏 보면 쉬워 보이지만 사실 이만저만 힘든 게 아니다.

왜냐하면, 미르의 전설에서 직접 경험해 본 결과, 그 1레벨을 올리는 게 나머지 9레벨을 올리는 것보다 약 2배 정도 힘들기 때문이었다.

물론 미르의 전설 시스템을 그대로 따왔을 경우의 얘기지만.


'100%지 뭐.'


카인이 생각하는 더블S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것 같았다.


"자, 한 번만 더 해보자."

"네."


카인은 벌써부터 지긋지긋한 심정이었지만, 어차피 스킬을 익혔다는 메시지가 아직 안 떴기 때문에 별수 없이 한 번 더 해야만 했다.


"바로 간다."


듀란은 카인이 대답할 틈도 없이 그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이번엔 반대로.'


카인은 좀 전에 듀란의 살기에 집중했던 것과는 달리 자신의 살력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10분여가 흐르고 나서야 카인은 자신의 내면에서 무언가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이건가?'


카인은 내면의 의지로 조심스럽게 그 기운을 건드려보았다.

그러자


'뭐야 이건?!'


그 기운은 카인이 놀랄 새도 없이 폭발하듯 밖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이게 살기인가? 예상보다 조금 더 제멋대로지만 컨트롤만 잘하면 되겠어.'


카인으로부터 미친 듯이 퍼져 나가던 그 기운, 살기는 카인을 중심으로 반경 1m 정도의 거리에서 짙게 머무르고 있었고, 카인도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아까 그렇게 미친 듯이 뛰쳐나갈 땐 언제고 아직 내 주위에 있다니. 그나저나 아까 들은 대로라면 살기로 살기를 감지할 수 있다고 했으니까 결국 이걸 이용하라는 말인가?'


카인은 정신을 집중해서 자신의 살기에 자신의 의지를 전했다.


'퍼져라. 이 공간을 가득 메울 만큼.'


처음에는 살기가 반항하듯 멈칫거렸으나, 카인이 계속해서 의지를 보내자 서서히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5분이 흘렀다.

이윽고 카인의 살기는 방 안을 가득 채웠고, 카인의 살력은 바닥을 기고 있었다.


'그래도 어딨는지는 알았어!'


카인이 곧장 정면을 향해 목검을 휘두르자, 15분간 15번이나 위치를 바꿨던 듀란의 은신이 풀리며 그의 모습이 드러났다.


"좋구나. 앞으로도 그렇게 하면 된다. 처음보다는 오래 걸렸지만, 의식적으로 살력을 사용하고, 그에 따라 소모되는 살력의 양이 상당량 줄었으니 그 정도면 성공한 편이다."


확실히 듀란의 말대로 1분에 1/4이 소모되었던 살력이 방법을 바꾸자 같은 양을 소모했음에도 소모하는 동안 걸린 시간은 그 15배나 되었다.

그리고 그런 듀란의 말이 끝나자 카인의 귓가에 안내음이 들려왔다.


-스킬 '살기감지'를 배우셨습니다.


'됐다!'


"그건 대강 된 것 같으니 우선 이걸 마셔라."


그 말과 함께 듀란은 품 안에서 작은 검은색 약병을 건넸다.


"이게 뭡니까?"

"살기의 정수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의 살력을 조금씩 뽑아내어 만들었지."

"그런 것도 됩니까?"

"그래, 살력이 회복될 테니 마시기나 해라."

"네."


듀란은 귀찮아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카인은 자신을 챙겨주고 있다는 걸 알기에 군말 없이 약병을 받아 마셨다.


-특수 아이템 '살기의 정수'를 마셨습니다. 살력이 최대치로 회복됩니다.

-스텟의 한계를 초과한 회복을 했습니다. 살력의 최대치가 100 증가합니다. 이 효과는 일반적인 포션을 마셨을 때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좋은데? 나도 나중에 한 번 만들어 볼까?'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직접 만들어 볼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 거다."

"네?"


속마음을 들킨 카인이 애써 당혹스러움을 숨기며 반문하자 듀란이 답했다.


"이게 만들기 쉬웠다면 우리도 아무 때나 먹고 힘을 마구 키웠겠지. 그러나 만들기도 어렵고 살기를 응축해서 만든 것이니만큼 만들 때마다 최대 살력이 감소한다. 게다가 지나치게 많이 먹으면 살력이 아예 봉인되는 경우도 생긴다. 따라서 처음에는 효과를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독이 된다는 거지. 처음 마실 때를 제외하고는 안 마시는 게 좋다. 알겠느냐?"

"네."


'그럼 그렇지. 이렇게 좋은 걸 그냥 줄 리가 있나.'


"자, 이제는 다음 스킬이다. 우선 시범을 보여주마. 신속!"


카인과 나란히 선 듀란이 오른발을 앞으로 뻗음과 동시에 스킬 명을 외치자 어느새 듀란은 3m 앞으로 이동해 있었다.


"알겠느냐?"

"모르겠습니다."

"이 스킬의 이름은 '신속'이다. 말 그대로 단거리를 빠르게 이동하는 스킬이지."

"그렇다면 마법사의 블링크와 비슷한 겁니까?"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차이점이 있다면 블링크가 '랜덤'으로 단거리를 '텔레포트'하는 스킬인 반면, 신속은 자신의 '정면'으로 '이동'하는 스킬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장애물이 있다면 당연히 통과하지 못하고 부딪히지만, 원하는 곳으로 이동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 이 차이를 이해할 수 있겠느냐?"

"네. 대강은 이해했습니다."

"흠. 일단은 마나를 발 쪽에 집중시키거라."

"네."

"그다음, 발을 내딛으며 마나를 발바닥 밖으로 폭발시켜라."

"네."


카인은 듀란의 말을 따라 말에 모인 마나를 순간적으로 방출했다.

그러나


"우왁!"


쾅!


"크크크. 조심해야지. 타이밍을 못 맞추면 그렇게 넘어지게 된다."


'진작 좀 말해주던가.'


"미리 말해주면 재미가 없지 않느냐?"


'! 뭐야, 마음을 읽는 건가? 그 녀석도 아니고 여기서까지 마음을 읽히다니 재수 한 번 더럽게 없네. 어째 내 주위엔 이런 사람들 밖에 없냐?'


"그리고 혹시나 해서 말해두는 건데, 내가 하는 건 마음을 읽는 게 아니라 유추하는 거다. 이 상황에선 대충 이렇게 생각하겠구나, 하고 말이다."

"그것도 스킬입니까?"

"스킬? 스킬은 무슨 그냥 오래 살면 알게 된다. 너도 나처럼 오래 살면 알게 될 것이다."

"저기, 실례지만 올해로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카인은 언제나 궁금했던 거였지만 기회를 잡기 힘들어 지금까지 미처 물어보지 못했던 질문을 했다.

듀란은 겉으로 봐선 아무리 봐도 30대 중, 후반인데 하는 말이나 행동은 6, 70대의 노인과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나? 올해로 63살이다만. 내가 원래 좀 젊어 보여서 그렇게 안 보는 사람들이 더 많긴 하지."


'예순셋에 그 정도 힘과 스피드라니. 정말 괴물도 아니고.'

"뭐, 검을 들고 이 정도 살아오면 당연한 거다. 명색이 소드 마스터인데 약간 젊게 사는 것 정도야 문제없지. 이제 세 달밖에 안 된 너도 익스퍼트에 올랐는데 50년 동안 검과 함께 살아온 내가 소드 마스터인건 당연한 결과가 아니겠느냐?"


아니다.

듀란의 말대로 단순히 검을 오래 들었다고 해서 누구나 소드 마스터가 된다면 길에 치이는 게 소드 마스터일것이다.

그러나 제국의 소드 마스터는 약 20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카인이 쉽게 익스퍼트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마나 로드를 통해 움직이고, 막혀 있는 곳들을 아주 힘겹게 뚫어야만 될 수 있는 마나를 다루는 익스퍼트와는 달리 지정된 경로가 없고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쉽게 움직이는 살력 덕분이었다.

살기는 마나와는 다르게 원래부터 사람의 정신에 깃들어 있고, 살수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쉽게 겉으로 내비칠 수 있다.

살수는 그저 살력을 이용해 살기를 유형화하거나 강화할 뿐.

게다가 살기는 순수하게 본인의 것이기 때문에 살력을 이용해서 신체 어디로든 보낼 수 있다.

살기가 검에 집중되면 익스퍼트처럼 보이고 눈앞의 다른 사람에게 집중되면 살기표출이 될 뿐이다.

그리고 듀란을 비롯한 다른 살수들은 이런 특성의 살기와 살력을 이용해 소드 마스터가 된 것이다.


"그렇군요."


물론 그 사실을 제대로 알 리 없는 카인은 대충 수긍해버리고 말았지만.


"언제까지 엎드려 있을 거냐? 어서 일어나거라."

"네."


카인은 듀란이 내밀어 준 손을 잡고 다시 일어났다.


"처음에는 달리면서 해 보는 게 좋을 거다. 균형 잡기가 비교적 쉽고 타이밍 잡는 것도 서서 하는 것보다는 쉬울 거다."

"네."


카인은 달리기 시작하면서 발에서 마나를 뿜어내었다.

2시간여가 흐르고, 카인이 수백 번도 더 넘어졌을 때쯤이 되어서야 카인은 비로소 중심을 잡고 달릴 수 있게 되었다.

다행히 생각보다 소모되는 마나가 극히 적어서 2시간 동안 달렸음에도 자연 회복량의 추가치를 포함해 500 이상의 마나가 남아있었다.

그리고


-스킬 '신속'을 배우셨습니다.


라는 메시지와 함께 듀란의 말이 이어졌다.


"그만. 신속은 그 정도면 대강 따라 하는 정도는 된 것 같구나. 생각보다는 나쁘지 않은 시간이다."

"보통은 얼마나 걸리죠?"

"재능이 있는 녀석들은 하루면 하고, 재능이 없는 녀석들은 몇 개월을 끄는 일도 많다. 완벽히 감을 잡은 이후부터는 쉽지만, 정확한 타이밍을 계산하지 못하면 죽어도 배울 수 없는 스킬이다. 그런 면에서 너는 상당히 운이 좋은 편이라고 봐야겠지."

"네.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 스킬은 뭐죠?"

"용조를 들어라. 일단 우리만의 용조 사용법을 알려주마."

"네."


카인이 잠시 벗어 두었던 용조를 착용하자 듀란이 마저 말을 이었다.


"한쪽 손을 앞으로 내밀고, 그 상태에서 검지를 펴 보아라. 무언가 잡히는 게 있을 것이다."


카인이 용조 안에서 집게손가락을 펴자 듀란의 말대로 손가락 끝에 무언가 고리 같은 것이 걸렸다.


"찾았습니다."

"그럼 정면을 향해 팔을 뻗고 그걸 당겨라."

"네."


촤아악!


어느새 카인의 옆으로 이동한 듀란의 말대로 용조 안의 고리를 당기자, 용조의 발톱이 앞으로 퍼져 나가며 족히 20m는 떨어져 있는 벽 앞에 날아가서 박혔고, 용조의 발톱과 본체는 쇠사슬로 이어져 있었다.


"이게 뭡니까?"

"우리 살수는 원래 비도술에 능했다. 사람 죽이는 게 업인데 많은 무기에 익숙한 건 당연한 일이지. 하지만 원래 비도라는 게 배우기도 어렵고 귀찮지. 그래서 우리는 비도 대신에 우리가 즐겨 사용하는 용조의 발톱을 날리는 쪽을 택했다. 아무래도 비도 보다는 훨씬 쉬우니까 말이야. 그리고 우리는 사슬을 다루는 데도 일가견이 있기에 날리고 회수하는 데에는 사슬을 썼다. 그래서 나온 결과물이 바로 이것이다."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거 회수는 어떻게 하죠?"

"다시 당겨라."

"네."


카인이 고리를 다시금 당기자, 벽에 박혔던 발톱이 잠시 주춤하나 싶더니 무서운 속도로 본체로 돌아왔다.


"이거 잘못하면 위험하겠는데요?"

"위험하지. 잘만 다루면 회수 시 본인이 위험할 일은 없겠지만, 잘 다루지 못해서 문제지."

"그럼에도 이걸 저에게 가르쳐 주신 이유는 뭡니까?"

"너라면 잘 다룰 것 같아서다."

"그냥 비도를 배우면 되지 않을까요?"

"나중에는 비도술도 배우게 될 테니 걱정 마라. 단검술도 가르칠 예정이니까 잘 따라오길 바란다."


'이 양반이 누굴 죽이려고 작정했나. 그걸 다 배우려면 진짜로 죽어나겠구만.'


"대답 안 하나?"


잠시 딴생각을 하던 카인이 듀란의 핀잔에 정신을 차렸다.


"아니요. 잘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지금 이걸 가르쳐 주신 이유는 뭐죠? 저라면 잘 다룰 것 같다고는 하셨지만 그게 진짜 이유는 아닌 것 같은데요? 스킬을 배우는 와중에 이런 기능을 가르쳐 주실 필요는 없잖습니까?"

"거참, 눈치 하나는 알아줘야겠구나. 물론 그건 스킬이 아니지만 그걸 이용한 스킬을 배울 거다. 일단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라."

"네."

"너의 살력을 집중해서 무기에 흘려보내라. 살력은 마나보다 최소 백배는 다루기 쉬우니 지금 네 수준이라면 어렵진 않을 거다."

"네."


카인은 눈을 감고 자신의 살력에 집중했다.

살기감지를 배울 때 와는 달리 살력은 밖으로 퍼져 나가지 않고 순순히 카인의 의지를 따라 카인의 손을 거쳐 용조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이 과정은 아주 천천히 진행되었기에 살력이 용조를 완전히 덮은 건 5시간이 지난 후였다.

다행히 살기감지에서 살력을 다루는 법을 배워둬서 이 과정에서는 살력이 많이 소모되지 않았기 때문에 카인의 살력은 아직 많이 남아있었다.


"사슬에 살력을 집중해라."


카인은 말없이 살력으로 인해 느껴지는 사슬에 살력을 집중했고 마치 아지랑이처럼 용조를 감싸고 있던 검은 기운은 용조 내부로 들어가 사슬을 진하게 감싸며 피어올랐다.

물론 사슬이 용조 내부에 있었기에 용조 밖에까지 흘러나와 눈에 보이는 양은 적었지만.


"중지를 펴라. 그러면 전과 같은 고리가 있을 텐데, 그걸 당겨라."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용조의 발톱이 조금 느슨해졌다.


"사슬은 총 10개가 있다. 그 사슬들이 네 몸을 중심으로 지면 위에 동심원을 그리며 회전한다고 생각해라."


사슬이 풀려 본체 밖으로 살짝 빠져나온 발톱들이 지면으로부터 약간 떠올랐다.


"사슬의 끝에는 용조의 발톱. 즉 칼날이 달려있다. 회전하는 동심원의 범위 안의 적을 회전하던 칼날이 위로 솟아올라 죽인다고 생각해라."


차르르릉.

발톱들이 검은 살기에 휩싸여 곧 용조를 빠져나올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너의 그 생각을 살력에 담아 사슬로 흘려보내라."


발톱들이 더욱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검지 쪽의 고리를 당겨라."


듀란의 말에 카인이 고리를 당기자 발톱들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본체를 빠져나갔다.


작가의말

오늘부터 정식으로 연재 시작합니다.

본격연재 기념 500자 추가. 이후에는 6~8천자 연재입니다.

 

[P.S. 붉은결의 관련 내용은 이전 화에 조금 더 상세히 나와 있어 삭제합니다. 그리고 용조가 붉은결의를 빼다 박긴 했지만 발톱(이라고 칭하겠습니다.)이 하나 더 있고, 날에서 꺾이는 부분이 사진에서처럼 각지지 않고 조금 더 둥글둥글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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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61 ya**
    작성일
    13.03.28 00:09
    No. 1

    무엇보다 글자수에서 과감히 추천을 누르게 되고 내용 읽고 평점달게 되네요.
    건필 부탁드려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6 Cainless
    작성일
    13.03.28 00:22
    No. 2

    덕분에 자신을 채찍질 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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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히어로 Chapter6 황제와의 대면 - 2 +3 13.03.20 573 4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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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히어로 Chapter5 반격 - 3 13.03.09 471 4 15쪽
13 히어로 Chapter5 반격 - 2 +2 13.03.06 476 5 11쪽
12 히어로 Chapter5 반격 - 1 13.03.01 694 7 20쪽
11 히어로 Chapter4 알베르노 - 2 13.02.25 811 7 24쪽
10 히어로 Chapter4 알베르노 - 1 13.02.25 599 5 19쪽
9 히어로 Chapter3 결투 - 3 13.02.22 683 5 14쪽
8 히어로 Chapter3 결투 - 2 13.02.22 751 4 17쪽
7 히어로 Chapter3 결투 - 1 13.02.20 869 8 15쪽
6 히어로 Chapter2 살수 - 4(6화) +2 13.02.13 1,248 7 21쪽
» 히어로 Chapter2 살수 - 3(5화) +2 13.02.06 855 5 23쪽
4 히어로 Chapter2 살수 - 2(4화) +2 12.12.28 993 7 17쪽
3 히어로 Chapter2 살수 - 1(3화) +2 12.12.21 912 7 21쪽
2 히어로 Chapter1 시작 - 2화 +6 12.12.18 1,149 9 17쪽
1 히어로 Chapter1 시작 - 1화 +4 12.12.17 1,862 9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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