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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범 님의 서재입니다.

강철의 종

웹소설 > 자유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지니범
작품등록일 :
2020.04.27 10:05
최근연재일 :
2020.10.05 06:00
연재수 :
6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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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1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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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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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하나가 되지 못한다면...

DUMMY

카를 마르크스가 대한제국에 도착한 날. 세계의 여론은 둘로 나뉘었다.


하나는 저 미개한 아시아 놈들이 자기 스스로 망할 길을 가고 있다는 여론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드디어 이 아시아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난다는 공산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의 열렬한 성화였다.


안타까운 이야기였지만. 두 여론은 모두 틀렸다고 할 수 있었다. 대한제국은 스스로 망할 길을 갈 정도로 멍청한 국가가 아니었으며. 공산주의 혁명은 다른 곳이라면 몰라도 결코 대한제국 안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혁명'이 아닌 '은혜'였다. 황제가 자신을 따르는 신민들에게 내리는 '호의'였던 것이다. 그리고 신민학교에서 교육을 받았거나 받고 있는 대한의 신민들은 결코 호의를 권리로 착각하지 않았다.


지금은 19세기. 강철이 제련되고. 20세기의 이념들과 광신과 광기가 피어나는 시대였다. 어리석은 자는 이 시대를 견뎌내지 못하리라. 다른 세계의 조선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리고 지금의 일본이 그러는 것처럼 말이다.


*


"카를 마르크스. 그대가 유럽 공산주의자들의 정신적 지주라 들었네. 대한 태황제의 이름으로. 대한제국에 온 것을 환영하노라"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극동의 황제시여. 제 동무들이 저를 이곳으로 인도하였으나. 저는 아직 이 극동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야 당연한 것 아닌가. 같이 혁명을 수행할 동료들을 모으고. 혁명을 퍼트리면 되는 것일세. 우리 대한을 위해서."


"대한제국을 위해서. 입니까."


"그렇다. 만약 싫다면. 지금 유럽으로 돌아가도 좋다. 배는 준비해줄테니 말이야."


"후후. 폐하께선 농담을 즐기시는군요. 제가 유럽으로 돌아갈 것 같습니까?"


"그 대답만을 기다렸지."


인천에 위치한 별궁에서 처음으로 만난 두 남자는 음습하게 웃었다.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공생관계가 그 웃음으로부터 맺어진 것이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이상향인 붉은 대지를 만들기 위해 물질적인 도움이 필요했고. 황제는 유럽의 야욕으로부터 제국의 발전을 숨겨줄 혁명이라는 이름의 망토가 필요했다.


마침 황제에게는 막대한 부가 있고. 마르크스에게는 이상을 현실로 바꾸어낼만한 선동 능력이 있었다. 참으로 어울리는 한쌍이 아닌가?


그렇게 1858년 4월 15일. 카를 마르크스는 황제에게 충성을 맹세하였다. 그 어떤 유럽의 군주도. 자본가도 이루지 못한 성과였다.


*


쾅!


"경들은 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이야!"


빅토리아 여왕의 분노가 대신들을 향했다. 늙은 여왕의 눈에는 분노가 서려 있어. 그녀 앞에 무릎을 꿇은 이들로 하여금 전율을 느끼게끔 하였다.


"송구하옵니다 폐하..! 죽여주시옵소서!"


"경을 죽이면 카를 마르크스가 다시 영국으로 돌아올 것이라 생각하시오? 그 많은 경찰을 두고 대체 무엇을 한 것이란 말이오!"


"그것이.."


문책당하는 런던 경시청장이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어떻게든 말을 지어내려 노력하는 모습은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사실 변명거리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이 런던에서 아직도 수백명에 달하는 공산주의자들이. 단 한데 모여. 카를 마르크스를 호위해서 항구로 빠져나갈 것이라고 누가 예상할 수 있었겠는가.


"모두.. 모두.. 신의 불찰이옵나이다."


그러나 그런 변명은 생각할수도. 뱉어낼수도 없었다. 여왕이 원하는 것은 결과였지 원인이 아니었던 탓이다.


게다가. 객관적으로 봐도 400명의 공산주의자들이 위풍당당하게 행진하는 동안 촘촘하게 배치한 감시병들은 패닉에 빠져 사실상 아무것도 못하고 프리패스로 항구로 향하는 길을 열어두지 않았던가. 그것만으로도 경시청장을 향한 여왕의 분노는 정당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이미 다른 국가들이 차례대로 우리 대영제국의 위신이 추락했다고 비웃고 있소! 경은 우리 영국의 국격이 훼손된 것에 대해 어떤 대책을 내놓을 생각인가!"


"아니.. 그게.."


이쯤되면 사실상 경시청장의 미래는 없다고 해도 좋았다. 사태가 이렇게까지 악화된 이상 경시청장이 무슨 지랄을 하든 개인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었다.


하다못해 카를 마르크스같은 인지도나 유명도를 지녔다면 모를까. 경시청장이라는 타이틀이 붙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가던 신사 하나로 보이는 그가 대영제국의 국격 훼손이라는 거창한 사건에 대처할 수 있을리 만무했다.


그렇게. 경시청장은 별다른 변명조차 하지 못한 채 런던의 감옥으로 끌려갔다.


공산주의자들에게 하던 짓을 돌려받은 것이다.


*


흔히 개혁이란 두 가지 종류가 있었다.


하나는 변혁을 원하는 민중들이 주축이 되어 일어나는 이른바 '밑에서부터의 개혁'이고. 하나는 깨어있는 엘리트들이 '안되겠소! 엎읍시다!'하면서 나라를 뜯어고치려 노력하는 것이 '위에서부터의 개혁'이었다.


우선 두가지의 장단점부터 살펴본다면. 일단 밑에서부터의 개혁은 민중들이 주축이 되어 일어난 만큼 최소한 개혁 정책의 호응에서만큼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며. 일단 정권이 성공적으로 민중들의 호응을 얻거나 아예 갈아업혔다면 위에서부터의 개혁에 비해 월등히 안정적이고 빠른 근대화를 이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밑에서부터의 개혁은 심각한 문제점이 있었으니. 예나 지금이나 민중들의 대다수는 개돼지가 더 똑똑해 보일 정도의 저능아들이었다는 것이다. 당장 덧셈 뺄셈은 커녕 제 이름 석자도 쓰지 못하는 자들이 주축이 되어 개혁을 하겠답시고 설치고 있으니. 안정은 커녕 더 말아먹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반면 위에서부터의 개혁을 살펴보자면. 일단 그 나라에서는 배울대로 배운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개혁을 이끄는 것이니만큼 잘만 한다면 밑에서부터의 개혁 못지 않게 빠른 속도로 근대화를 할 수 있었고. 빠른 속도로 근대화를 하는만큼 국력의 신장도도 높아질 수 있었다.


그러나 단점을 살펴보자면. 일단 엘리트라는 것이 어디 단일화된 계층이 아닌 탓에 의견 수렴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당장 누군가는 공화주의를. 누군가는 입헌군주제를. 누군가는 전제군주제를 원하니 화합은 커녕 이해도 힘든 지경인데 어떻게 힘을 합친단 말인가?


그리고 한 가지 개혁의 문제점이라면 어떻게든 타협을 해나갈 수 있겠지만. 만약 두가지 문제가 합쳐진다면 어떨까?


*


"말도 안 되는 소리! 올해만 해도 벌써 1000석이 넘는 쌀을 가져갔으면서. 이제는 더 내놓으라고?! 못 내놔! 죽어도 못 내놔!"


"뭐야!? 너 이 자식! 그렇다면 지금 조카마치에 있는 조닌들이 전부 굶어죽어도 괜찮다는 거야!"


"굶어죽기는 개뿔! 그 잘난 양이한테 빌붙는 주제에 부끄러운 줄이나 알아야지! 우리는 절대 못 내놔! 보나마나 사람이 아니라 새허연 오니들한테 갖다 바치는 걸 우리가 모를 줄 알아!"


"뭐..뭐라고!"


청이 엄청나게 삐걱대면서도 어떻게든 근대화 자체는 조금씩이나마 나아가고 있던 것과 달리. 일본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기존의 기득권층과 피지배계층의 극심한 분열로 인해 제대로 된 근대화의 초석조차 놓지 못한 상황이었다.


청처럼 중앙정부의 상징성이 막강한 것도 아니요. 대한제국처럼 신민들과 관리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움직이는 것도 아니요. 그동안 막번 체제로 대표되는 구시대적인 봉건주의와 극심한 지방 분권으로 인한 국가에 대한 소속감 약화는 일본의 근대화에 있어서 끔찍한 시련을 가져다주었다.


중앙정부는 중앙정부대로 어떻게든 도시. 그러니까 조카마치를 중심으로 상공업을 발전시키고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고. 그것을 실현하려면 조카마치로 대규모의 인원 공급과 그 인구를 지탱할 식량을 대야만 했다.


이른바 이촌향도 현상이라는 것인데. 선진국이건 개발도상국이건 일단 산업화를 시작한 나라에선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사람이야 당연히 잘 살기를 원하고. 할 거라고는 농사밖에 없는 시골을 떠나 젊은이들이 기회가 널려 있는 도시로 향하는 것은 어느 나라건 간에 똑같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방식으로 성공한 유럽과. 시뻘건 방식으로 성공한 대한제국과 달리. 일본 제국은 처참히 이 이촌향도 현상을 제어하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농민들은 정든 땅과 여물고 있는 벼를 포기하고 조카마치로 갈 이유를 찾지 못했고. 조카마치의 조닌들은 배우지 못하고 시골 냄새 풀풀 풍기는 농민들을 천박하다며 텃세를 내세워 차별하기 일쑤였다.


이러니 악감정은 악감정대로 쌓이고. 불신은 증폭되고. 여기에 급격한 중앙집권화로 인한 부작용과 다이묘들의 반발까지 합쳐지면서 일본 제국의 정부는 사실상 수도를 제외한 전국의 통제권을 상실하고 말았다.


당장 근대화의 문제가 아니라. 세금마저 제대로 들어오지 않으니 국가 운영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은 둘째치고. 막번 체제에서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최소한의 질서조차 무너져내린 것이다.


당장 막부를 해체하고 일본 제국이라는 국호를 사용하며. 천황을 앞으로 내세운 명분이 사라지는 것은 물론이고. 목표로 했던 일본의 근대화와 강대국으로의 진입은 머나먼 꿈이 되어버린 것이다.


*


"일본은 자멸했고. 중국은 어떻지?"


"현재로서는 가장 우려해야 할 대상입니다. 대청유신회가 함풍제를 완전하게 꼭두각시화하는데에 성공했습니다."


"허. 그 놈들도 놀고만 있지는 않은 모양이군."


"이미 북경은 물론이고 다른 도시들에서도 근대식 공장이 여럿 올라서고 있습니다.. 저희도 뭔가 대비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겠지. 그건 잘 진행되고 있나?"


"예? 아아.. 예. 서역에서 들여온 기술자들과 우리의 기술자들이 안간힘을 쓰면서 만들고 있습니다. 당연히 기밀은 철저하게 지키고 있고 말입니다."


"좋아. 절대로 중국인들이 기관총에 대해 알게 해선 안 돼. 알겠나?"


"이를 말씀입니까? 안심하고 맡겨주십시오."


중국에는 인구가 있지만. 대한제국에게는 기술력이 있었다. 애초에 원 역사에서도 겨우 2년 정도 차이로 개틀링 건이 나온 것을 생각하면. 개틀링 쇼크가 아시아에서 시작되어도 별 상관은 없지 않겠는가.


뒤에서는 화차와 대포가. 앞에서는 개틀링과 머스킷이 꾸역꾸역 밀려드는 중국의 군대를 육편으로 만들어버릴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소름이 돋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미래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선. 절대로 중국에게 개틀링 관련 기술이 넘어가서는 안 됐다. 예나 지금이나 물량과 화력을 둘 다 갖춘 상대에게는 이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열성조의 군주들이여. 부디 제국을 가호하소서. 만년제국의 성사가 제 손에 달렸나이다..."


그렇기에 황제는 손을 모아쥐고 그의 조상들에게 간절히 빌었다.


제발 도와달라고. 다시는 우리 민족이 핍박받지 않게 도와달라고. 더 이상 지역 강국의 위치에 만족하고 다른 나라보다 뭐가 낫니 하며 자위하지 않고. 세상 위에 우뚝 서서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강대한 제국을 만들 수 있도록..


그것이 초월자에게 한 약속이자. 그의 신민들에게 한 약속이자. 그 자신에게 한 약속이자. 그의 나라에게 한 약속이었다.


때는 1858년 7월 2일.


여름의 바람이 다가와. 벼를 노랗게 물들이는 계절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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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한(韓) 에포크(완) +3 20.10.05 1,115 20 12쪽
59 사후정리 +4 20.09.30 1,022 20 12쪽
58 마지막 결단 +2 20.09.29 952 19 12쪽
57 옴스크를 공략하라 +4 20.09.28 924 20 12쪽
56 타타르의 멍에 +7 20.09.23 1,119 21 12쪽
55 발트 해의 결전 +2 20.09.22 1,061 21 12쪽
54 폭풍전야 +3 20.09.21 1,084 18 12쪽
53 흑귀부대 +3 20.09.09 1,279 20 12쪽
52 漢의 이름으로. +3 20.09.08 1,230 21 12쪽
51 진정한 전쟁의 시작 +2 20.09.07 1,210 16 12쪽
50 원래 전쟁은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는 법이란다. +7 20.09.02 1,239 22 12쪽
49 천명대전. +2 20.09.01 1,248 19 12쪽
48 시산혈해 +3 20.08.31 1,241 21 12쪽
47 우리는 전쟁을 할 것이다. +4 20.08.26 1,341 21 12쪽
46 동해보복 +2 20.08.25 1,361 27 12쪽
45 음지의 전쟁 +3 20.08.24 1,275 17 12쪽
44 어서 와 게릴라전은 처음이지? +3 20.08.12 1,413 23 12쪽
43 남방에서의 개전. +2 20.08.11 1,416 20 12쪽
42 도움! +2 20.08.10 1,381 24 12쪽
41 착한 제국주의 +3 20.08.05 1,520 25 12쪽
40 개화된 아시아. +3 20.08.04 1,564 25 12쪽
» 하나가 되지 못한다면... +1 20.08.03 1,514 24 12쪽
38 천하무산자합일! +3 20.07.22 1,675 18 12쪽
37 인민의 제국 +6 20.07.21 1,709 24 12쪽
36 문명국의 군대. +3 20.07.20 1,654 22 12쪽
35 황제 폐하를 위하여! +5 20.07.15 1,717 23 12쪽
34 1달간의 여정. +1 20.07.14 1,663 22 12쪽
33 구원의 대가. +2 20.07.13 1,642 20 12쪽
32 차이점 +3 20.07.08 1,704 2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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