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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하는 것 그대로

힘숨찐에 빙의한 고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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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력운동
작품등록일 :
2023.05.10 20:36
최근연재일 :
2023.06.03 19:04
연재수 :
2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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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9
추천수 :
91
글자수 :
145,679

작성
23.05.12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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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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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03. 빙의물의 법칙(3)

DUMMY

던전 변이 사고 수습은 조용하게 이뤄졌다. 사고가 수습된 뒤 구조된 훈련생 전원 세종아카 부설병원 1인 병실에 각각 입원했다.


사실 크게 다친 훈련생이 없는 데도 이런 조치가 이뤄진 건 어디까지나 이번 일을 수습하기 위함.


‘훈련생들 개인 디바이스를 모두 회수한 걸 봐선 비밀로 부칠 생각인가 보지?’


던전 변이 사고 자체는 막을 수 없겠지만, 적어도 변이 던전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은폐하려는 속셈으로 보였다.


‘대체 왜? 헌팅 드론으로 촬영된 영상을 봤다면 내가 킹 크로커 도그를 잡는 모습도 봤을 거야.’


헌팅 드론.

더라헌 세계관에서 국제적인 거대 공룡 기업으로 유명한 E&A 블리츠에서 개발한 던전 장비다.


던전이란 거친 환경 내에서도 쓰기 좋을 정도로 내구성이 좋고 기능도 유용했다.

심지어 던전 안에서 밖으로 통신하는 방법을 최초로 고안해낸 E&A 블리츠 답게 실시간 영상을 던전 밖 중계실로 쏠 수 있었다.


‘물론 단거리 수신이 최대지만. 그게 어디야?’


전파는 던전 게이트를 통과할 수 없다는 전제에 의해 던전 안에서 같은 전파를 공유하는 단거리 무전기를 제외하면 일반적인 통신 장비는 쓸 수 없는 만큼 E&A 블리츠의 다양한 장비는 헌터 업계에서 필수품이나 다름없었다.


‘분명 내가 킹 크로커 도그를 처치하는 영상도 찍혔을 거란 말이지. 그럼 교관의 아까 그 눈빛도 이해돼.’


아마 내가 각성했다고 생각할 거다. 조금 꺼리는 건 내가 발 빠르게 크로시아 나무를 찾은 것과 곧바로 동굴로 이동해 공략까지 진행한 점.


‘성급했나? 하지만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어.’


그 방법뿐이었다.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난 똑같은 선택을 내릴 거다. 당시의 난 똥 나무로 크로커 도그를 처치할 순 있어도 고블린을 나뭇가지 하나로 상대할 힘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제 다르지.’


특수 임무 수행 보상으로 얻은 것이 있으니까.

그보다 이로운의 각성 조건이 설마 약점 극복일 줄이야. 하긴 이상할 건 없다.


더라헌에서 약점은 모든 캐릭터, 심지어 몬스터 개체별로도 존재하는 중요 설정이고 이 약점을 극복해 각성하는 조건은 꽤 흔했다.


‘사람마다 각성 조건은 천차만별, 같거나 다르거나 하니까.’


어쨌든 이로운이란 캐릭터에게 무슨 사정이 있는 건지 몰라도 알면 알수록 베일에 감춰진 것들이 너무 많았다.


특히, 여전히 이름조차 알 수 없는 두 번째 클래스. 아니 히든클래스.


‘대체 저건 뭘까? 무슨 히든클래스가 어쩌고 하면서 운명이 개변되었다고 했는데. 클래스 정보도 안 나오고.’


실제로 운명이 개변되긴 했다. 이로운은 그 던전에서 죽었어야 할 운명이니까. 그 여파로 벌써 미래가 바뀌고 있다.


원래라면 이번 던전 변이 사고로 대대적으로 언론을 타야 한다. 강해성이란 훈련생이 모두를 구해 영웅 데뷔란 칭송을 받으면서.


그런데 이렇게 조용하게 마무리된다?

내가 개입하면서 발생한 변수로 미래가 틀어진 거다. 더라헌이란 게임이 원래 여러 상호작용에 따라 바뀌는 변칙적인 게임이어도 이로운의 죽음처럼 불변하는 것들이 있다.

불변의 설정이라 불리는 것들, 튜토리얼이 끝나고 언론이 시끌벅적한 것까지가 그런 건데, 틀어진 거다.


이런 게 바로 빙의물의 법칙인가?

죽을 운명의 캐릭터에 빙의하여 그 운명을 비틀고 새로운 역사, 새로운 스토리의 시작점을 만들어내는 것.


‘일단 이 클래스에 대해서도 알아내야 해.’


휴대폰도 뺏긴 마당에 이로운에 대해 알아볼 수도 없다. 그 대신 알아낸 건 오른팔에 본래 없었던 문신이 생겨난 것.


‘이로운의 오른팔은 본 게임에서 튜토리얼 때 자주 노출되었어. 소매가 물어뜯기며 두 팔 모두 노출되는 걸로 연출씬이 시작되었지.’


그래서 확신할 수 있다. 당시 영상 속 이로운의 팔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는걸.

하지만 병원에 와서 보니 오른팔에 이상한 문신이 생겼다. 그것도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문신이.


‘분명 간호사들과 의사는 안 보인다고 했지.’


되려 머리를 다친 게 아니냐며 이상한 검사를 추가로 받을 뻔했다.

문신의 생김새는 간단했다. 긴 선을 두고 중심에 맞춰 다섯 개의 눈동자가 새겨진 그림이었다. 그중 맨 위 눈동자만 부릅뜨고 있었고.


‘아마도 이게 단서 같은데······.’


스르륵.


흠칫.


문신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있을 때, 병실 문이 열리며 뜻밖의 인물이 들어왔다.


***


세종 헌터 아카데미 회의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다섯 길드 금강, 신라, 매화, 락소울, 피닉스 길드와 여러 중견 길드, 마지막으로 명문가의 간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 정도로 이번 일은 세종아카 역사상 유례없던 일이다.


“졸업 시험용 던전에서 변이 사고가 발생한 것도 어이가 없는데 그 사고의 핵심 단서인 헌팅 드론 촬영본이 없다고요?”

“아쉽게도 헌팅 드론에 이상이 생겨 전량 폐기되었습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시죠. 아무리 던전 변이가 발생했다 한들, E&A 블리츠 기술로 만든 드론이 그렇게 쉽게 맛 가지는 않을 것 같은데.”


피닉스 길드에서 대표로 나온 부 길드장, 염지혜가 제 붉은 단발을 뒤로 쓸어 넘기며 어이가 없다는 듯 쏘아댔으나 인자한 주름이 인상적인 총장은 껄껄 웃으며 넘어갔다.


“누가 봐도 의도적으로 폐기했다는 소리겠지. 뭘 숨기고 있는 겁니까. 총장님?”


차분하게 입을 연 것은 실내에서 불붙지 않은 담배를 입에 문 중년 남성, 신라 길드 대표 신석현이었다.


그 와중에 계속 입을 열지 않는 이들은 락소울 길드 대표 빅 헤드, 매화 길드 대표 이채연, 그리고 사실상 대한민국 길드 서열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금강 길드의 대표 강만수였다.


“우리 월령술가는 이번 일에 대해 조속한 해명을 원하고 있습니다. 이는 가주의 뜻이니 총장님께선 부디······.”

“창천검가는 이런 일로 다시는 부르지 말라는 가주님의 전언이 있었습니다. 저 또한 이 말만 전하고 즉시 돌아오라 명하시었기에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저 싸가지······. 차라리 잘됐어! 혈족끼리 으쌰으쌰하는 놈들은 가라 하고. 졸업생을 무사히 인계 받아야 하는 우리 길드들은 사정이 다르지. 말 좀 해보라고. 이 망할 영감탱이야!”


화르륵.


염지혜의 붉은 단발 끝이 위로 펄럭거리며 그녀 주변으로 불꽃이 피어올랐다. 일시적으로 그녀가 흥분하며 이능이 반응한 것이다.


“진정하시죠. 여긴 실내입니다. 그리고 신 대표는 그 담배 내려놓으시고요.”


한참 동안 말이 없던 매화 길드장 이채연이 주변을 쓱 둘러보며 말문을 텄다.


“다들 화를 내도 달라지는 건 없을 겁니다. 총장께선 이미 영상을 다 폐기하셨으니까.”

“그러니까 뭘 숨기고 있다는 거잖아. 그걸 지금 말하라고 해야······.”

“뭔가를 대놓고 숨기고 있는 사람에게 까보라 하면 그걸 듣겠습니까? 들을 거면 왜 숨기겠습니까. 생각을 좀 하시죠. 염지혜 씨?”


그녀의 말이 맞았다. 총장은 지금 대놓고 이번 일을 묻고 가겠다고 이 자리를 빌려 선언하고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염지혜도 그걸 알기에 뭐라 반문하지 못한 채 입술을 깨물었다.


“흠. 우리 총장께서 말하기 싫은 것 같으니 내가 한 번 시나리오를 써봤는데 말이야.”


염지혜가 자리에 앉자마자 입을 연 것은 금성 길드 대표, 강만수.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눈에 띄는 전신 황금갑주를 입고 온 젊은 남성이었다.


“무슨 시나리오 말씀이신지?”

“들어봐. 던전 변이는 그렇다 치자고. 정말 재수 없는 우연이었던 거지. 근데 이 던전에 출몰한 게 재밌게도 크로커 도그야. 보통 훈련생 실력으론 잡을 수 없는 상당히 까다로운 놈들.”

“맞아. 그것 때문에 우리 길드와 사전 계약한 몇몇 훈련생들이 크게 다칠 뻔했어. 그런데 그게 뭐가 재밌다는 거야?”


염지혜가 슬쩍 강만수의 눈치를 보며 끼어들었다.


“그런데 여기서 웃긴 건, 우연히 누군가 크로시아 나무를 발견한 거야. 다들 알잖아? 유독 크로커 도그가 냄새에 취약한 거.”

“맞아요. 전해 들은 이야기론 크로커 도그가 무력화된 상태에서 한 방에 죽었다고 했죠.”

“흐음. 바로 그 점이 이상하다는 거지. 우연히 발생한 던전 변이에 하필이면 크로커 도그와 그 취약점인 크로시아 나무가 같이 있었다는 점. 그리고······.”


강만수가 금발 머리에 붉은 눈으로 총장을 응시한 채 말을 이었다.


“그걸 누군가 바로 찾아낸 것도 모자라 곧장 던전 보스 위치까지 찾아냈다? 과연 이게 그저 우연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나름 일리가 있는 말에 몇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입방정 떨기 좋은 훈련생들도 잠잠하고 교관들도 아니고, 그럼 대체 누가 운 좋게 그 똥 나무를 발견해서 바로 운 좋게 던전 보스를 찾아내 죽였을까?”

“허허. 왜 교관들이 아니라 확신하십니까. 설마 지금 우리 세종아카 교관들의 실력을 의심하는 겁니까?”

“아니. 오히려 그 교관들의 실력을 인정하니 아니라고 한 거야. 그놈들이 나선 거라면 현장 상태가 말이 안 되거든.”


맞다. 세종아카 교관들은 한 손으로도 크로커 도그를 잡을 수 있다. 본 게임에서도 죽은 건 비운의 인물, 이로운 캐릭터 단 한 명뿐.

그가 죽고 강해성이 정신적 약점을 극복하면서 던전 변이 사고는 무사히 마무리되는 것이 본 게임의 튜토리얼이었다.


“잠깐만. 지금 근데 당신은 그걸 다 어떻게 알고 있는 거죠? 우리 피닉스 길드도 모르는 사실을······.”

“정보력을 좀 키워. 요즘 세상은 정보전이라고 정보전. 그리고 피닉스 길드? 언제부터 서열 5위권 길드가 내게 말문을 붙였지? 그것도 햇병아리가 같은 새끼가?”


강만수가 차갑게 쏘아붙이자 염지혜도 주먹을 꽉 쥐었으나 더는 나설 수 없었다.


짝!


“자자. 다들 흥분하지 말고. 어차피 답은 나온 것 같은데. 안 그렇소. 총장?”

“그러네요. 이번 일의 답을 알고 있는 상태로 퍼즐 맞추듯 척척 해결한 의문의 존재를 총장께서 적극적으로 숨기고 있다. 이거죠?”


금성 길드의 압도적인 정보력으로 어떻게든 숨기려 했던 사실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총장. 뭘 숨기고 있는 건지는 몰라도. 이거 하나는 확실히 하자고. 헌터 산학협력협약, 설마 이 금기를 어길 생각인가?”

“절대요. 이번 생도도 전원 무사히 사회로 배출할 생각입니다.”

“그럼 말리지 마라. 회의 끝. 난 간다.”


단호히 말한 강만수가 멋대로 회의를 끝내버리고 나가버리자 총장은 아찔한 기분을 느껴야 했다. 그는 알고 있다. 이번 사태를 해결한 주인공을.


그리고 이미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고······.


‘금성을 너무 무시했군. 제길.’


절대 그분을 금성 길드에게 뺏겨선 안 된다. 그분은 감히 어리석은 인간들 선에서 다뤄질 인물이 아니니까.


“뭐 더는 회의할 분위기도 아닌 것 같고 나도 가도 됩니까?”


회의가 진행되는 내내 유일하게 한마디도 하지 않은 락소울 길드장, 빅 헤드가 씩 웃으며 일어섰다.


“후우. 영감······. 아니, 총장님. 미리 말해두는데 우리 피닉스는 이번 일 그냥 안 넘어가요.”

“알겠습니다.”

“흥.”


염지혜가 나가자 뒤이어 신석현과 이채연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채연은 조용히 총장에게 인사를 한 뒤 나갔고 신석현만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어?, 라이터 놓고 왔는데. 그새 가버렸냐. 저 반딧불한테 불 좀 빌리려 했더니만.”


그러면서 떡진 뒷머리를 긁으며 회의실을 나갔다. 빅5 길드 대표들이 모두 나가자 한마디도 못 한 몇몇 중견 길드 대표들도 슬그머니 빠져나갔고.


“하아. 술가와 검가는······벌써 갔구만?”


명문가 대표들도 어느 순간 사라지고 없었다.


“후, 일이 꼬였군.”


모두 나간 것을 최종적으로 확인한 총장은 급히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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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024. 두 번째 파편(3) 23.06.02 32 1 12쪽
24 #023. 두 번째 파편(2) 23.06.01 35 1 13쪽
23 #022. 두 번째 파편(1) 23.05.31 41 1 13쪽
22 #021. 창천검가 막내아들(3) 23.05.30 41 1 12쪽
21 #020. 창천검가 막내아들(2) 23.05.29 45 1 12쪽
20 #019. 창천검가 막내아들(1) 23.05.28 51 2 12쪽
19 #018. 예견된 만남(3) 23.05.27 57 2 12쪽
18 #017. 예견된 만남(2) 23.05.26 46 2 11쪽
17 #016. 예견된 만남(1) 23.05.25 48 2 11쪽
16 #015. 예견된 변화(3) 23.05.24 50 2 12쪽
15 #014. 예견된 변화(2) 23.05.23 58 3 13쪽
14 #013. 예견된 변화(1) 23.05.22 59 3 12쪽
13 #012. 예견된 습격(3) 23.05.21 77 3 12쪽
12 #011. 예견된 습격(2) 23.05.20 74 3 12쪽
11 #010. 예견된 습격(1) 23.05.19 102 3 13쪽
10 #009. 고인물의 법칙(3) +1 23.05.18 84 3 13쪽
9 #008. 고인물의 법칙(2) 23.05.17 82 3 12쪽
8 #007. 고인물의 법칙(1) +1 23.05.16 94 5 13쪽
7 #006. 힘숨찐의 법칙(3) +1 23.05.15 113 7 14쪽
6 #005. 힘숨찐의 법칙(2) 23.05.14 113 7 15쪽
5 #004. 힘숨찐의 법칙(1) 23.05.13 137 5 12쪽
» #003. 빙의물의 법칙(3) 23.05.12 151 7 12쪽
3 #002. 빙의물의 법칙(2) 23.05.11 175 6 13쪽
2 #001. 빙의물의 법칙(1) 23.05.10 221 9 14쪽
1 #000. Prologue. +1 23.05.10 267 8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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