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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하는 것 그대로

힘숨찐에 빙의한 고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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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력운동
작품등록일 :
2023.05.10 20:36
최근연재일 :
2023.06.03 19:04
연재수 :
26 회
조회수 :
2,303
추천수 :
91
글자수 :
145,679

작성
23.05.10 20:58
조회
267
추천
8
글자
10쪽

#000. Prologue.

DUMMY

위잉. 위이잉.


똥파리가 방 안을 휘저었다.


“브레스 피하고 앞발 공격 피하고······.”


뚝, 뚜욱. 뚝.


싱크대 수도꼭지에서 불규칙하게 떨어지는 물방울이 며칠간 방치된 설거지 그릇 위로 떨어졌다.


“화염 마법 피한 뒤 곧바로 쏟아지는 얼음 마법! 옳지!”


드드드드! 드르르르륵!


인근 건설 현장, 땅을 뚫는 드릴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그 다음 함정까지 피한 뒤!”


털털털털.


무더운 여름철 날씨를 피하기에 부적절한 낡은 선풍기가 골골 거렸다.


“······이제 마지막 앞발 공격만 피하면!”


그 초라한 방구석에서 나 홀로 국가대표가 월드컵 4강 진출을 코앞에 둔 것 마냥 환호성을 지르며 구형 컴퓨터를 조작했다.


역사적인 순간이다.

출시 후 5년, 전 세계 누구도 깨지 못한 게임 ‘더 라스트 헌터’의 엔딩을 세계 최초로 보는 순간이니.


더 라스트 헌터.

무한한 자유도, 방대한 세계관.

게임 속 모든 인물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다채롭고 입체적이며 각자 다른 서사를 지닌 게임.

거기에 플레이 방식에 따라 스토리, 에피소드도 매번 달라지며 곳곳에 숨어있는 히든피스와 이스터에그는 숨은 감초 역할을 하며 게이머의 모험심을 자극했다.


사랑받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단 한 가지만 빼면.


‘극악의 난이도. 그 누구도 깨지 못한 전설의 게임.’


그 때문에 전 세계 게이머의 도전 정신도 함께 자극했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출시 후 5년 동안 아무도 깨지 못했다.

일단 죽으면 끝. 세이브 파일 따윈 없어 죽으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것부터 큰 난관이었다.


게임 플레이 방식에 따라 전체적인 스토리까지 바뀌다 보니 공략법이 정형화되는 것도 어려웠다.

깰 수 없는 것이 당연했고 대부분의 게이머가 포기했다.


하지만 난 포기하지 못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저 이 게임을 포기하면 안 될 것 같은 그런 기분, 단지 그런 이유로······.


‘······5년을 낭비했지.’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다.


두둥.


컴퓨터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온 북 소리.

게임 연출 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


‘좋아. 이제 진짜 끝이구나.’


여기까지는 수도 없이 도달했다.

저 최종보스의 앞까지 와서 번번이 죽었을 뿐.


‘브레스에 죽고 앞발에 밟혀 죽고 불에 타죽고 얼려 죽고 함정에 당하고······.’


끔찍했던 지난날을 뒤로 하고 드디어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게임 연출 씬을 바라봤다.


“어리석은 필멸자여, 결국 여기까지 왔구나.”

“그래. 이제 좀 겁나냐? 아니면 날 진작 죽이지 못해 후회라도 하냐?”

“겁? 그딴 건 내게 없다. 후회? 오래 전, 내 주군을 잃었을 때 빼곤 단 한 번도 그런 감정 따위 느껴본 적이 없지.”


용가리가 조소를 지었다.


“우매한 필멸자들이여. 너희는 절대 모를 것이다. 이 모든 사태의 진실을······.”

“어. 그딴 건 모르겠고. 이거 하나는 알 것 같더라. 넌 오늘 내 손에 뒈진다는 걸.”

“크하하하! 과연 그럴까? 뒤를 봐라! 네놈의 뒤를 지켜주던 그 든든하던 지원군들의 최후를!”


최종 보스, 용가리의 말에 강해성이 무심한 표정으로 뒤를 봤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엔 시체들이 산을 이루고 있었다.


“흥, 상관없다. 애초에 네놈의 목을 베는 건 내 역할이니. 저들은 그저 제 역할을 다하고 죽은 소모품에 불과하다.”

“하하하하! 마음에 드는 말이구나. 하지만 결국 달라지는 건 없다. 네놈은 결코 원하는 걸 이루지 못할 테니까.”

“그건 해봐야 알지.”


강해성의 대답에도 용가리의 조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깊어졌다.


“오늘은 역사적인 순간인 만큼, 내 친히 내 진명을 알려주마.”


진명?

그러고 보니 5년간 몇 번을 대면한 저 최종보스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네.

그저 종족이 용이고 주인공도 용가리, 용대가리라 부르다 보니 나 역시 그렇게만 알고 있었다.


“잘 들어라. 내 진명은 지고하신 혼돈의 첫 번째 하수인. 카이호스다.”

“······카이호스?”


저 보스의 이름이 카이호스였구나.

최종 보스의 이름도 5년이 지나 이제야 알게 되다니. 진짜 이 게임도 어지간히 심각하네.


‘하지만 이제 이것도 끝이겠지. 흐흐.’


의자 등받이에 누워 이어지는 연출 씬을 마저 관람했다.


‘그것보단 성우들이 진짜 연기를 실감나게 한단 말이지. 성우 정보를 알 수 없는 게 아쉽네.’


이 게임은 여러모로 신비주의가 심각했다. 개발 단계에서부터 정보가 하나도 없었으니 당연히 연출 씬을 연기하는 성우 정보도 알 수 없었다.


“그래. 이름 정도는 기억해주마. 용가리.”

“과연, 필멸자의 몸으로 불멸자를 대적하는 운명이라 그런가. 내 진명을 담고도 오래 버티는구나.”

“뭐라······컥.”


벌떡.


갑작스러운 상황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뭐야. 저거? 왜 혼자 저래?

왜 느닷없이 혼자 피 토하며 죽어 가냐고!

어떻게 된 거야! 이제 마지막 일격을 가하고 최종 보스의 목을 베야지!


“그래도 오래 버텼다. 어리석은 필멸자여. 그러니 이제 감히 불멸자의 진명을 입에 담은 최후를 맞이하라.”

“마, 말도 안 되는······.”


진짜 말도 안 된다. 주인공 캐릭터 강해성의 HP가 점점 줄어드는 것이 보였다. 그것도 엄청 빠르게!


“나, 나는 아직 끝이 아니······.”


강해성이 대사를 치던 중, 그의 HP가 0이 되었고 끝내 그가 쓰러지고 말았을 때.


“크하하하! 필멸자 치고 썩 아름다운 결말이구나.”


콰앙!


“뭐가 아름다운 결말이야!”


최종 보스가 호탕하게 웃으며 한 말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키보드를 내려쳤다.

싸늘하게 죽어간 주인공의 시체에 대고 최종 보스가 조용히 대사를 이어갔다.


“······주군이시여. 이제 부디 편히 영면하소서. 주군께서 잠든 이 땅의 참혹한 종말을 바치겠나이다.”


다만, 그 대사는 내 귀에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그보단 모니터 화면 위로 떠오른 저 문구가 더 신경 쓰였다.


[축하합니다. 세계 최초로 더 라스트 헌터의 끝을 보았습니다.]


“하, 이거 실화냐.”


허탈했다. 내 인생 5년을 부정당하는 기분이다.

전 세계 최초로 더라헌의 엔딩을 본다고 좋아했거늘!


저 용가리에게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죽어가며 익힌 놈의 패턴을 달달 숙지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허무한 죽음은 처음이었다.


그것도 게임 엔딩? 게임 오버가 아니고?

지금까진 죽으면 게임 오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게임 엔딩은? 그런 건 없다.


이 게임에는 단 하나의 ‘결말’만 있다고 게임사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했으니.

혹시나 숨겨 놓은 엔딩이 있더라도 너무 허무해서 할 마음이 싹 사라졌다.


어느새 모니터 화면을 가득 채운 –END- 글자가 너무 얄미웠다.

······환불은 당연히 안 되겠지.


“으아아아!”


버럭 소리를 지르며 키보드 샷건을 내려친 뒤 진한 허무감에 빠져있을 때, 갑자기 모니터 화면의 텍스트가 바뀌기 시작했다.


[경이로운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당신은 특별 임무 수행 자격을 획득했습니다.]


‘경이로운 업적? 특별 임무? 이게 다 뭐야.’


뭔가 심상치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5년이란 시간 동안 더라헌을 해오면서 갈고 닦은 그 감각이 말하고 있다.


[특별 임무 : 진정한 결말 이루기.]

[특별 임무를 수행하겠습니까? YES or NO.]


‘그럼 그렇지. 이렇게 끝날 리가 없지! 믿고 있었다고!’


실망도 잠시, 어느새 흥분하여 들뜬 가슴을 진정시키며 마우스를 움직였다.

역시 이렇게 끝날 리가 없다. 히든 스토리를 숨겨두고 있었을 줄이야.


‘좋아. 그게 뭐든 도전해주마. 5년 동안 투자한 내 시간과 노력도 아까우니까.’


묘한 기대감, 흥분, 설렘 등 다양한 감정을 뒤로 하고 YES 버튼을 눌렀다.


“어? 잠깐!”


그러다가 왠지 모른 불안감에 퍼뜩 정신 차렸지만, 이미 내 손은 YES를 누른 직후.


깜빡.


이어 내 방의 등이 귀신들린 것 마냥 깜빡거렸고 모니터 화면에는 노이즈가 끼기 시작했다.

언뜻 어디서 읽은 모 웹소설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아. 제발 아니라고 해줘.”


깜빡깜빡.


홀로 중얼거린 내 말에 반응하듯 방등이 더 빠르게 점멸했고 컴퓨터 화면의 노이즈는 더 심해졌다.


급기야.


“아. 망했다.”


모니터 화면 밖으로 텍스트가 홀로그램처럼 튀어나와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황급히 방문을 열고 도주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어느새 텍스트 홀로그램이 올가미처럼 이어져 내 발목을 휘어 감았고······.


“끄아아아아아악!”


끌려들어 가듯 컴퓨터 속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


아무도 없는 방안, 홀로 켜져 있는 컴퓨터 모니터 화면엔 덜렁 하나의 팝업창이 떠 있었다.


[특별 임무 수행을 시작합니다.]

[특별한 업적을 수행한 당신에게 특별한 보상을 지급합니다. 일정 조건 달성시마다 해금할 수 있습니다.]

[부디 성공적인 임무 완수 부탁드립니다.]


위잉. 위이잉.


주인 없는 빈 방, 홀로 남은 똥파리가 방안을 휘젓고······.


뚝, 뚜욱. 뚝.


싱크대는 여전히 불규칙하게 눈물을 흘리고 있고······.


드드드드드. 드드드드드.


멀리서 들려오는 드릴 소리는 멈출 기미가 없고······.


털털털털.

방치당한 고물 선풍기만이 우두커니 그 자리를 지켰다.


그렇게 그 누구도 이 방의 주인이 사라졌다는 걸 알지 못했다.


작가의말

잘 부탁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 작성자
    Lv.66 겜판소조아
    작성일
    23.05.22 22:05
    No. 1

    으악 수도요금 선풍기 전기요금 우째...! 게임세계 시간이 현실보다 최소 500배쯤 빠르지 않으면 현실세계로 돌아오는 순간 빚쟁이 되겠네... 게임세계에서 1년을 보내더라도 현실세계에선 하루 이내일수 있도록 500배쯤 빨라야 할텐데...

    찬성: 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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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019. 창천검가 막내아들(1) 23.05.28 52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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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016. 예견된 만남(1) 23.05.25 48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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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014. 예견된 변화(2) 23.05.23 58 3 13쪽
14 #013. 예견된 변화(1) 23.05.22 60 3 12쪽
13 #012. 예견된 습격(3) 23.05.21 78 3 12쪽
12 #011. 예견된 습격(2) 23.05.20 74 3 12쪽
11 #010. 예견된 습격(1) 23.05.19 102 3 13쪽
10 #009. 고인물의 법칙(3) +1 23.05.18 84 3 13쪽
9 #008. 고인물의 법칙(2) 23.05.17 82 3 12쪽
8 #007. 고인물의 법칙(1) +1 23.05.16 95 5 13쪽
7 #006. 힘숨찐의 법칙(3) +1 23.05.15 114 7 14쪽
6 #005. 힘숨찐의 법칙(2) 23.05.14 114 7 15쪽
5 #004. 힘숨찐의 법칙(1) 23.05.13 137 5 12쪽
4 #003. 빙의물의 법칙(3) 23.05.12 151 7 12쪽
3 #002. 빙의물의 법칙(2) 23.05.11 176 6 13쪽
2 #001. 빙의물의 법칙(1) 23.05.10 221 9 14쪽
» #000. Prologue. +1 23.05.10 268 8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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