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Kairte 님의 서재입니다.

배같은 동생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일반소설

Kairte까르
작품등록일 :
2020.01.17 23:48
최근연재일 :
2021.02.27 22:00
연재수 :
85 회
조회수 :
4,886
추천수 :
77
글자수 :
487,621

작성
21.01.18 06:00
조회
39
추천
1
글자
12쪽

76. 가족 망쳐놓기 下 - 8

DUMMY

"그게 무슨 소리야? 오빠, 저 꼴통이 왜 껴있는 건데!"


민아는 성을 내며 나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나 또한 민아의 등장을 예기치 못해 제자리에서 가만히 경직되었다. 민아는 내게 거리를 두며 민후 형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설명해보라니까? 이 자리에 어째서 왜?"


"진정해 민아야. 강연이도 우리 약속에 필요한 상대니까."


민아는 상황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후 민후 형의 귓가에 입을 대 이런저런 내용을 속삭였다. 민아의 성깔 사나운 모습에 나는 등을 돌려 애써 외면하려 들었다. 잠시 뒤 민아는 말을 더듬으며 민후 형을 상대로 미간을 찌푸렸다.


"오빠 제정신이야?"


"어차피 오늘이 마지막이야. 딱히 감출 필요도 없잖아."


"하지만!"


"맡겨 줘. 내가 알아서 해볼게."


민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민후 형은 손동작으로 내게 와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민후 형의 얼굴엔 아직도 유쾌한 미소로 가득했다.


"마지막인 만큼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보는 게 좋다 판단했거든."


"소원에 관해서, 말씀하시는 거죠?"


민후 형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이루고픈 소원이, 뭐였었지?"


"뭐랄까, 가족을 상대로 비판하는 웹툰을 완결하는 거잖아요."


이에 민아가 불쑥 나타나 혀를 차 댔다. 날 비웃기라도 하는 듯 얄미운 표정으로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똘추, 그걸 믿냐?"


"뭐?"


나는 바로 민후 형에게 시선을 돌렸다. 민후 형은 조금씩 미소를 풀어가며 상황을 부정하지 않는 듯 보였다.


"민후 형, 그게 무슨..."


"미안. 널 이용하고 말았어."


배신감보다도 의문감이 앞서는 순간이었다. 내가 미처 말을 잇지 못할 사이 민후 형은 민아와 대면하기 바빴다.


"애초부터 이 띨띨이를 상대하면 안 됐다니까! 당최 무슨 역할을 하는지 알지도 못하잖아."


"그렇지 않아. 강연이는 충분히 제 역할을 해줬는 걸?"


민후 형은 싱그러운 미소로 자신의 휴대폰을 확인해갔다. 잠깐 텀을 두고 궁리하는 것처럼 보인 것도 잠시, 민후 형은 전망대 너머 밖을 훑어보았다. 정적이 흐른 뒤 민후 형은 나와 민아 쪽으로 시선을 맴돌며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다 모였으니까 이제 본방으로 이동해볼까?"


이에 거세게 반박하며 저항하는 민아, 잠자코 듣기만 하는 내 주변으로 어색한 공기가 나돌았다. 조급할 이유는 없었다. 흐름상 내가 가진 의문 부호를 민후 형이 풀어주려는 의도가 엿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민후 형의 인솔에 따라 전망대를 내려와야만 했다. 덩그러니 남겨진 모자와 풍선을 뒤로한 채 말이다.


본방이라 말한 곳은 아까까지 전망대를 통해 보았던 원형 스테이지였다. 방금 전까지 공사하던 인부들은 철수한 지 오래였고, 원형 가운데 넓게 트인 콘크리트 판에서 아이들이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며 즐거워했다. 나와 민아는 호수에 가장 인접한 북쪽 끝 둘레 벤치에 자리를 잡아갔다.


"야 송민아. 얘기해야 되는데 거리를 그렇게 띄우냐?"


민아는 아예 내 시선도 보지 않고 쿠션 내부 거울로 눈 화장을 고치는 중이었다.


"북극곰이 말이 많아. 손절은 확실하게 해야 되는 걸 모르나 봐?"


'하, 망할 컬러렌즈 계집 같으니라고.'


마음 같으면 저번처럼 로우킥을 날리고 싶었다. 하지만 민후 형이 있어 속으로 감내해야만 했다. 민후 형은 둘레 벤치 앞에 멀뚱히 선 채 조금씩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 때 익숙한 목소리가 내 귓가에 감돌았다. 눈치채기 앞서 민후 형은 재빨리 반응해 다가오는 남성 분을 향해 크게 손을 흔들었다.


"여기예요 여기!"


나는 재빨리 벤치에서 일어나 민후 형 옆으로 다가갔다. 민아는 흘깃 보다 곧바로 누구인지 알아채 하던 화장을 급급히 정리해갔다.


"아, 아빠?"


"다들 삼삼오오 잘 모여있네!"


민아 아버지는 한쪽 손에 커다란 갈색 종이봉투를 들고 우리 쪽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곧잘 민아 아버지께 종이봉투를 받아 앉았던 둘레 벤치 쪽에 살포시 올려놓았다. 봉투 안에는 햄버거 세트 여러 개가 제품에 맞게 분류되어 있었다.


"애들한테 얘긴 했고?"


"아직이요. 슬슬 시작하려던 참이었어요."


"그럼 사놓은 햄버거부터 먹고 보자. 금강산도 식후경이라잖니?"


내가 가까이 다가설 즈음, 민아는 언제부터인지 민후 형 옆에 꼭 붙어 있었다.


"아빠 어디 햄버거 사 왔어?"


"우리 딸 좋아하는 커다란 햄버거 사 오지 아무렴! 식기 전에 꺼내 먹자."


"예이!"


민아는 갑자기 헤벌레 미소를 짓더니 양손을 들어 만세를 외쳤다. 이 상황은 그대로 내 시선에 단적으로 들어왔다. 이를 눈치챈 민아는 자세를 풀더니 나를 손으로 냅다 밀쳐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민아를 가볍게 노려보았다.


"뭘 꼬라봐? 눈 안 깔아?"


"성가시네 참."


이는 민후 형이 와서 중재해준 덕분에 금방 흐지부지될 수 있었다. 모두가 햄버거를 하나씩 받아간 뒤, 나는 빈 종이봉투를 자그맣게 접어 앉던 벤치 자리 허벅지 부분에 깔아 놓았다. 옆쪽에서 민아네 가족이 모여 가볍게 대화를 나누었다. 먼 쪽부터 민아, 민아 아버지, 민후 형이 차례로 벤치에 앉아 있었다. 대화가 끊길 터, 나는 민아 아버지께 인기척을 보였다.


"아버님, 햄버거 잘 먹겠습니다!"


"아, 그래! 맛있게 먹으렴."


민아는 얼굴을 빼꼼 드러내며 오만상을 지었다.


"왜 저 북극곰 분까지 사준 거야? 알아서 사 먹으라고 하지."


"에이 왜 그래? 서로 베풀고 그러는 거지."


"마음에 안 들어."


그러고는 햄버거를 한입 크게 물어 입을 오물거려댔다. 나는 민후 형의 손짓 따라 대화의 장에 가까이 다가갔다. 민아 아버지는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려 내 매무새를 둘러보는 듯 보였다.


"저번이랑 같은 옷 같은데 기분 탓일까?"


"네. 그때랑 똑같은 옷으로 입고 왔습니다."


내가 자세를 깍듯이 잡음에 민아 아버지는 가벼운 미소와 함께 내게 손을 내밀었다.


"강연이라고 했지? 그동안 우리 가족에게 신경 써주느라 고생 참 많이 했어. 많이 힘들었을 텐데."


"아, 아니었, 괜찮았습니다. 뭘 해야 될지 좀 서툴렀던 것만 빼면 별거 아니었습니다."


"민후한테 얘기 들었어. 시험공부와 병행했던 탓에 탈이 났었다고 말이야. 제 컨디션이 아닌데도 너무 열심히 나선 게 아닌가 싶어서 말이지."


"괜찮습니다. 공부야 늘 해오던 루틴 따라 했던 것뿐입니다."


나는 양손을 저으며 민아 아버지께 밝은 표정을 지어갔다. 이를 지켜보던 민후 형은 민아 아버지를 흘깃 보며 눈치를 주는 듯 보였다. 말맞따라 민아 아버지는 방금 전과는 달리 다소 진중해진 표정으로 나와 대면했다.


"유감스럽게도 강연 군에게 소원에 관한 얘기를 제대로 나눌 수가 없었어.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둘러대기엔 우리가 너무 치밀하게 굴었던 것 같아."


"이번 작전에서 아버님이 중요한 역할을 맡으셨으니까요."


나는 민후 형을 힐끗 바라보다 민아 아버지께 다시 시선을 맞춰갔다.


"민아가 원하는 진짜 소원은 뭐였던 거죠?"


그 순간 민아가 벌떡 일어나 성을 부려댔다.주변을 보니 햄버거 세트를 말끔히 해치운 상태였다. 민아 아버지는 민아에게 손길을 주며 가볍게 고개를 저어 댔다.


"아빠!"


"다 너를 위해서야. 잠깐만, 하던 얘기에 잠자코 있어줘."


"하지만!"


"이제 막바지야. 아빠가 부탁할게."


민아 아버지는 민아의 손을 힘 있게 잡아 절절한 표정을 보였다. 짧고 적막한 순간이 지나, 민아는 다시 자리에 앉아 우리 쪽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아예 방임 모드로 돌아선 것처럼 보였다. 민아 아버지는 잠깐 동안 자신을 추스른 뒤 가벼운 날숨과 함께 나와 눈을 마주쳤다.


"말해주기 전에, 배경적인 부분에 대해 얘길 나눠보고 싶구나."


"배경적인 부분이라면 민후 형 웹툰에서 대충 각색된 걸로..."


이에 민아 아버지는 냉담한 모습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게 다가 아니란다."


이는 곧 그동안 있었던 일을 다시 재구성해야 한다는 뜻이 된다. 민후 형과 민아 아버지는 시로의 시선을 확인한 뒤 일제히 내게 시선을 돌렸다.


"강연 군을 보기 앞서 요기 있는 민후가 우리에게 적합자를 발견했다며 연락을 했었지. 덕분에 나와 민아는 와이프 눈을 속여 민후네 오피스텔로 오기 급급했고 말이야."


시기는 나와 민후 형이 만나기 직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민후 형은 저번에 내가 왔었을 때처럼 민아 아버지와 테이블에 앉아 자료들을 둘러보았고, 민아는 침대에 앉아 이를 빤히 지켜보는 전개였다.


'대충 뭔 소리인지 이해하셨죠?'


'그러니까, 한 사람을 더 고용해 연막 작전을 쓰겠단 소리잖니. 그러면 일이 더 복잡해지지 않을까?'


'오히려 이득이에요. 작전이 가지는 방향성을 생각해보면 가시적인 잣대가 더없이 좋은 시너지를 일으켜 줄 거예요.'


"그 때 민아가 민후 뒤에 붙어선 자료를 둘러보며 인상을 썼었지."


'그러니까 그 적합자한테 선동을 하게 만든단 뜻이지?'


'어떻게 보면 그렇다고도 할 수 있지. 좀 수동적인 방향으로 이끈다는 느낌이니까.'


'그게 무슨 뜻이야?'


'쉽게 말하자면 적합자 쪽으로 관심을 유도하게 만들기만 하면 된다 이 말이야. 대놓고 드러내게 꾸미면 되는 거니까.'


"민아는 다시 침대로 돌아가 민후가 한 말들을 이해하려는데 골머리를 앓았지. 그 후로는 나랑 민후와의 얘기가 이어졌어."


"그 적합자가 저였군요."


"작전이 제대로 돌아갔을 때 얘기지만 말이지. 물론 나는 처음부터 이 작전을 낙관적으로 보진 못했어."


'왜요? 애초부터 웹툰으로 승부를 보자고 하신 건 아버지잖아요. 적합자에게 이를 더 부각하게 만들 뿐인 걸요?'


'적합자라는 상대한테 실례잖니? 애초부터 가족 문제인데 남을 끌어들이는 게 여의치 않아.'


'저도 당사자가 거절하다면야 다른 계획을 준비하긴 할 거예요. 하지만 된다면 더없이 좋은 전개가 될 거예요. 제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을 거라 전망하고 있으니까요.'


'과연 그럴까?'


'제가 웹툰을 연재하는 것도 사실이고, 가족 문제에 신경 쓰고 있단 것도 사실이잖아요. 교묘하게 말만 두루뭉술하게 해 주면 적합자를 맹신하도록 유도할 수 있을 거예요.'


'그 적합자가 우리한테 협조할 순 있고?'


"그때 민후 웃는 얼굴을 잊을 수가 없구나."


내가 시선을 틀기도 전에 민후 형은 머리를 긁적이며 내 시선을 피하려 들었다.


'웹툰 작가 촉으로 볼 때 느꼈어요. 적합자는 엔간해선 우리한테 협조해줄 겁니다.'


여기서 나는 수동적인 바보라는 사실이 또다시 입증되었다. 민후 형과 민아 아버지는 내 눈치를 보며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민아는 언제 그랬냐는 둥 대놓고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어딜 가나 내 본능적인 부분을 감출 수 없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니 민후 형이 찾아왔던 시기는 저번 축제 때로, 당시 나는 유순한 면모를 어김없이 보여줬던 호구 그 자체였다. 거기에 하련의 정보망까지 가세했으니 내 성격을 파악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을 것이다. 뭐랄까, 허탈하면서도 후련해지는 순간이었다.


노을에 비친 붉은 구름들이 이곳저곳 넓게 퍼져나가 푸른 하늘과 장단을 칠 동안 나는 민아 아버지가 해주는 얘기를 하나둘씩 기존 경험과 맞춰갔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배같은 동생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70 69. 가족 망쳐놓기 下 - 1 20.12.07 34 1 12쪽
69 68. 가족 망쳐놓기 上 - 8 20.11.30 29 1 11쪽
68 67. 가족 망쳐놓기 上 - 7 20.11.30 23 1 11쪽
67 66. 가족 망쳐놓기 上 - 6 20.11.24 26 1 13쪽
66 65. 가족 망쳐놓기 上 - 5 20.11.17 28 1 12쪽
65 64. 가족 망쳐놓기 上 - 4 20.11.10 29 1 11쪽
64 63. 가족 망쳐놓기 上 - 3 20.11.03 27 1 11쪽
63 62. 가족 망쳐놓기 上 - 2 20.10.27 40 1 11쪽
62 61. 가족 망쳐놓기 上 - 1 20.10.19 46 0 12쪽
61 60. 메마른 기억 - 7 20.09.18 35 0 12쪽
60 59. 메마른 기억 - 6 20.09.08 29 0 12쪽
59 58. 메마른 기억 - 5 20.08.31 29 0 11쪽
58 57. 메마른 기억 - 4 20.08.24 34 1 11쪽
57 56. 메마른 기억 - 3 20.08.19 28 0 11쪽
56 55. 메마른 기억 - 2 20.08.10 28 0 11쪽
55 54. 메마른 기억 - 1 20.08.03 27 0 11쪽
54 53.빛바랜 거울 - 7 20.07.27 36 0 13쪽
53 52. 빛바랜 거울 - 6 20.07.20 36 1 14쪽
52 51. 빛바랜 거울 - 5 +2 20.07.13 38 1 13쪽
51 50. 빛바랜 거울 - 4 20.07.06 37 0 12쪽
50 49. 빛바랜 거울 - 3 20.06.29 37 0 12쪽
49 48. 빛바랜 거울 - 2 20.06.25 36 0 12쪽
48 47. 빛바랜 거울 - 1 20.06.22 35 0 12쪽
47 46. 어긋난 조각 - 6 20.06.15 32 0 11쪽
46 45. 어긋난 조각 - 5 20.06.09 34 0 11쪽
45 44. 어긋난 조각 - 4 20.06.04 39 0 11쪽
44 43. 어긋난 조각 - 3 20.06.03 45 0 12쪽
43 42. 어긋난 조각 - 2 +1 20.05.20 37 2 11쪽
42 41. 어긋난 조각 - 1 20.05.15 31 0 13쪽
41 40. 마땅한 복수? - 5 20.05.13 39 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