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Kairte 님의 서재입니다.

배같은 동생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일반소설

Kairte까르
작품등록일 :
2020.01.17 23:48
최근연재일 :
2021.02.27 22:00
연재수 :
85 회
조회수 :
4,813
추천수 :
77
글자수 :
487,621

작성
20.06.03 23:30
조회
44
추천
0
글자
12쪽

43. 어긋난 조각 - 3

DUMMY

민후 형이 예상한 대로 흘러갔다. 내 얘기를 듣던 민아는 손을 부르르 떨며 심각한 표정과 함께 고개를 숙였다. 멋대로 날뛸 일이 없어지니 나는 내면 속 응어리가 깨지며 후련한 감정이 이어졌다.


할 일을 마친 뒤, 나는 유나의 집을 나와 미로와 민아의 상황을 지켜봤다.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 다다를 즈음 민아는 미로에게 인사를 나눈 뒤 발걸음을 재촉했다. 민아의 소극적인 반응에 미로는 민아를 보여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이렇게 싱겁게 끝난다고?"


이에 나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뭐야? 흐름을 염두에 뒀던 거네."


"선배도 알잖아요! 민아 쟤가 얼마나 독한 앤 데요."


"네가 새침하게 구니까 어색해진 거 아닐까?"


"그럴까요?"


이런들 저런들 미로가 나서 신경 쓸 문제는 아니었다. 나와 미로는 아파트 건물 밖을 나와 오늘 작전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 오랜만에 미로와 작전으로 호흡을 맞추니 왠지 모를 오묘한 기분이 감돌았다. 여하튼 작전은 성공적으로 일단락되었다. 유나와 SNS로 가까워진 건 달갑지 않았지만 말이다.


아파트 건물을 나오자 미로는 내게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전했다. 나는 가만히 선 채 미로에게 손을 흔들었고 미로는 내 시야로부터 점점 멀어졌다.


나는 잠시 숨을 내쉬다 곧바로 오른쪽 수풀 쪽을 돌아봤다. 예상대로 그림자 실루엣이 눈에 잡혔다.


"이제 나와도 돼."


점점 그림자가 뾰족하게 모양을 잡더니 반대쪽 뭉툭한 끝을 맞닿던 상대, 민아가 조심히 내게 다가왔다. 아까 그 싸가지 없는 계집이 맞나 싶었다. 내게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리는 것도 아닌 다소 위축된 채 처진 표정으로 나와 눈을 마주쳤다. 나는 순간 소름이 돋아 입이 턱 막혔지만 상황을 유려하게 대처하기 위해 이성을 갖춰야만 했다.


우리는 주변 시선을 미루어 본 뒤 아파트 단지 중앙 내에 위치한 놀이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고래 모양으로 하나의 벽을 형성한 복합 놀이 기구가 있어 얘기를 나누기엔 안성맞춤이었다. 나는 이동할 동안에도 민후 형에 관한 얘기를 조금씩 털어놨고 민아는 묵묵히 고개만 끄덕였다. 나와 민아가 놀이 기구 내의 나무 의자를 마주 보며 앉자 민아가 조금씩 인상을 쓰며 나와 대면했다.


"너 같은 녀석한테 내 소원이 새 나가다니, 수치야!"


"나도 왜 내가 됐는지 모르겠어."


"오빠가 대체 왜..."


민아는 이리저리 바닥을 차대며 짜증을 냈다. 그 와중에 지속력 좋은 내 화장을 보니 괜스레 웃음이 터져 나왔다. 마스크 덕분에 민아가 눈치챌 정도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말이다.


잠시 적막한 분위기가 이어지자 나는 민후 형의 웹툰을 떠올려 현 상황을 체크했다. 휴대폰으로 민후 형 웹툰 표지를 찾은 뒤, 휴대폰을 뒤집어 민아에게 보여줬다.


"오빠가 쓰는 웹툰 등장인물들, 다 너희 가족들을 모티브로 만든 거지?"


"그게 뭐 어때서?"


"어제 이걸 정주행 하니까 드는 생각들이 있었거든. 뭐랄까? 부모님이 많이 야박하다? 좀 미묘했어."


민아가 말을 아끼는 걸 봐선 결코 틀린 말은 아닌 모양이었다. 어제 들었던 얘기대로 민아와 민아의 아버지는 민후 형이 말해준 것처럼 자연스러운 설정을 보여줘 캐릭터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문제는 민후 형이 망할 여편네라고 부르는 듯한 이 웹툰의 어머니 캐릭터였다.


내 쪽으로 화면을 돌려 캐릭터를 재차 확인해도 컨셉이 확실해 좀처럼 잊히질 않았다. 괴팍한 눈매에 자연스러운 척하는 라인 잡힌 주름, 살짝 펌 처리된 적갈색 머리스타일에 늘 불만이 많아 보이는 듯한 처진 입술까지,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중년 여성의 요건들을 모두 갖추었다. 과거 아들의 순수한 마음을 이용해 어른의 실리에 멋대로 갖다 붙이려 하는 캐릭터로 이를 비집고 비판하는 현재의 아들을 상대로 키워준 돈 달라고 소송 걸겠다는 등 부모의 잣대를 강하게 내세우며 아들과 끝없이 공방을 이어가는 중이었다. 주인공은 동생 캐릭터를 이용해 끝없이 가족의 정보를 캐낸 뒤, 어머니에게 팩트를 꽂아대는 장면들을 연출해 독자들의 호응을 이끌었다.


이것만 봐도 민후 형이 무슨 짓을 꾸미는지 내 머릿속에 그려졌고 망할 여편네라 말하는 민아의 어머니가 얼마나 독종인지 짐작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민아네 집에 들어가 제 3자의 시선으로 이 상황을 파악하는 건데 민아의 반응이 영 달갑지 않았다. 민아는 이내 내게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싫어! 아무리 오빠 부탁 이어도 이건 아니야!"


민아가 바로 놀이 기구를 빠져나오려 하자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민아를 뒤쫓았다. 이에 민아는 고개를 돌려 날 째려보더니 입술을 헐뜯으며 오만상을 지었다.


"내가 분명히 싫다고 말했지!"


"그럼 소원은 물 건너갈 걸?"


"내 쪽 문제야! 신경 쓰지 마."


갑작스러운 태세 전환이었다. 회유해보려 했지만 민아는 성을 내며 나로부터 점점 멀어진 뒤였다. 나는 서두를 것 없이 바로 민후 형의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다. 민후 형 말대로 민아가 도망칠 수도 있단 가능성이 그대로 맞아떨어지는 순간이었다. 어느새 휴대폰에서 지지직거리는 기계음이 났다.


"상황을 보니 실패인가 보네?"


"네."


"그럼 그냥 밀고 가. 바로 집주소 보내줄게."


나는 이러한 전개에 내심 걱정이 들었다.


어찌어찌 가봤자 민아가 집 앞에 대기할 게 뻔해 보였다.


"다짜고짜 그래도 괜찮을까요?"


"내가 잠시 민아를 교란하고 있을게. 그 틈에 집 안까지 들어가면 돼! 알겠지?"


"그래도 돼요?"


"한마디 더 내뱉을 여유도 없어! 빨리 움직이자고!"


"잠깐만요, 민후 형!"


그러나 연락이 끊겨 더 이상 대화할 수 없었다. 민후 형의 저돌적인 계획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망설일 시간이 없어 재빨리 주상복합을 나오는데 급급했다.


민후 형이 보내준 곳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자 나는 더 속도를 내 10분 안에 도착 지점까지 다다르는 데 성공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민아는 보이지 않았고 지점까지 불과 100M를 남겨놓은 상황이었다. 지도를 따라 찾으려 했지만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다. 이 주변이 단독주택이나 원룸으로 도배되어있을 동안 그 안에서 도드라지는 건물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2층 규모의 개인주택으로 적갈색 지붕이 쳐진 진갈색 벽돌집으로 주변에 낀 먼지와 깨진 흠, 푸른색을 띠는 유리 설치물까지 옛날 건물 특유의 복고풍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물론 감상평을 나눌 여유 따윈 없었다. 이제 이 집을 어떻게 들어가야 할지 궁리해야만 했다.


시간은 가고 마땅히 좋은 생각이 안 나던 도중, 오른쪽으로부터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검은색 철제 대문 주위를 에워싸는 벽돌담 때문에 전신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창가를 열어 그대로 건조대 줄에 빨래를 거는 모습들이 내 눈에 잡혔다. 나는 좀 더 확실히 보고 싶어 고개를 갸웃대던 중 상대가 얼굴을 들어 그대로 나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당황했던 나지만 나는 금세 상대가 누구인지 알아봐 자세를 다소곳이 갖추었다.


민후 형이 그린 웹툰이 얼마나 사실적으로 표현하는지 새삼 느껴갔다. 검은색 뿔테 안경에 깊게 파인 팔자주름, 크고 곧은 코에 작은 입술까지 웹툰에 나왔던 아버지 캐릭터와 완전히 일치했다. 체격도 장신에 마른 체형이라 나는 눈높이를 위로 향하고 있었다.


"왜 남의 집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거니?"


나는 곧잘 고개 숙여 인사한 뒤 덤덤한 표정으로 대면해갔다.


"죄송합니다! 민아네 집이 여기라고 해서 찾아왔습니다."


"민아? 우리 민아랑 아는 사이인 거니?"


"네! 오늘 민아랑 만났는데 못한 얘기가 있어서요. 아직 집에 안 들어왔나요?"


그 후 나는 여러 얘기를 이어가며 민아 아버지로부터 출입을 허가받는 데 성공했다. 긴장감이 도는 가운데 민아 아버지가 거실 소파 쪽으로 날 안내했다. 오른쪽에 있던 창가를 보니 상당한 양의 빨랫감들이 보였고 바로 앞에 건조대로 보이는 플라스틱 봉들이 두루 놓여 있었다.


민아 아버지는 곧바로 못 널던 빨래를 처리하러 발걸음을 옮긴 뒤였고 나는 민후 형에게 집에 들어왔다고 메시지를 보낸 뒤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저곳 황갈색 목재 가구들이 보였고 중앙 쪽 유리문 너머로 양주나 향초, 각종 잡동사니들로 가득 차 유리 문이 부피를 이기지 못하고 조금씩 열려 있었다. 주변 시계도 그림도 하나같이 황갈색 목재를 고집한 스타일이었다.


그 순간 무언가 바닥에 쿵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민아 아버지는 소리가 난 쪽으로 이동하더니 금세 어마어마한 양의 빨래가 든 파란색 플라스틱 바구니를 들어 창가에 올려뒀다. 30리터는 족히 보이는 빨래에 혀를 내두른 것도 잠시, 얼마 안가 민아의 아버지는 옆쪽에서 더 큰 사이즈의 하얀색 빨래 바구니를 들고 왔다.


"뭐야?"


하얀 수건만 들어있음에도 60리터를 꽉꽉 채운 듯한 빨래 바구니에 나는 손으로 입을 가릴 뿐이었다. 몸을 옆으로 기울여 보니 건조대 부근에는 말리고 있던 빨래감으로 한가득이었다. 건조대 봉도 이미 옷걸이로 건 빨래 탓에 휘어진 모습이 보여 괜스레 걱정이 들었다. 이를 민아 아버지에게 들키자 나는 바로 딴청을 피우려 했지만 민아의 아버지는 껄껄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우리 집이 빨래를 몰아해서. 이건 나중에 코인세탁방에 가서 말릴 거란다."


"그렇군요."


그때 민아 아버지가 갔던 방향의 반대쪽으로 보이는 방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집에서 빨래 돌리는 사람들이 없으니까 이 꼴이 나지!"


나오는 사람이 누구인지 보는 순간, 나는 눈을 부릅뜨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민후 형이 말한, 아니 접신 수준의 캐릭터성을 가진 민아 어머니의 모습이 형형색색 모습을 드러냈고, 마스크가 없었으면 내 감정 표현에 실례를 범할 뻔했다. 민아 어머니는 잠시 날 째려보더니 부엌으로 들어갔다. 내가 느낀 놀라움은 어느새 긴장감으로 바뀌어 갔고 민아 어머니는 퉁명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내게 포도 주스를 건네줬다.


"네가 그 민아 남친이니?"


"아, 아니요! 민아 화장해주려고 찾아갔었던 겁니다."


"칠칠맞게 실이."


민아 어머니가 잠시 거리를 벌리더니 허리 손 자세를 취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 봐도 표현이 적나라하게 이루어진 케이스라 나는 좀처럼 눈을 떼지 못했다.


"그렇게 남친이다 남친이다 노래를 부르더만, 이렇게 불쑥 데리고 올 줄이야."


"네?"


나는 바로 얘기의 맥락이 어긋난 걸 보고 양손을 저어댔지만 민아 어머니는 내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 후 민아 어머니는 팔짱을 낀 채 주변을 서성였다.


"몇 년 전부터 그랬는지 아니? 어쩔 땐 잘 안 됐는지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다고. 왤캐 우리 딸을 울린 거니?"


민아 어머니가 주는 매서운 시선과 함께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러나 주저했다간 더 큰 일로 꼬일 게 분명했다.


"잠깐만요! 전 민아의 남자친구가 아니에요!"


"이래서 민아가 많이 울었던 거네. 짝사랑 지간인 거야?"


"뭔가 오해가 있었나 봐요! 저하고 민아는 친구의 지인 같은 사이입니다. 오늘 여기 온 건 화장에 미스난 부분이 있나 확인하러 왔어요."


"총각! 아까부터 말 돌리네 어떤 남자가 안 친한 여자애한테 화장을 해주니?"


'아...'


다시 생각해보니 내 접근이 글러먹었단 사실을 깨달았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배같은 동생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70 69. 가족 망쳐놓기 下 - 1 20.12.07 34 1 12쪽
69 68. 가족 망쳐놓기 上 - 8 20.11.30 28 1 11쪽
68 67. 가족 망쳐놓기 上 - 7 20.11.30 23 1 11쪽
67 66. 가족 망쳐놓기 上 - 6 20.11.24 26 1 13쪽
66 65. 가족 망쳐놓기 上 - 5 20.11.17 26 1 12쪽
65 64. 가족 망쳐놓기 上 - 4 20.11.10 29 1 11쪽
64 63. 가족 망쳐놓기 上 - 3 20.11.03 26 1 11쪽
63 62. 가족 망쳐놓기 上 - 2 20.10.27 39 1 11쪽
62 61. 가족 망쳐놓기 上 - 1 20.10.19 46 0 12쪽
61 60. 메마른 기억 - 7 20.09.18 34 0 12쪽
60 59. 메마른 기억 - 6 20.09.08 28 0 12쪽
59 58. 메마른 기억 - 5 20.08.31 29 0 11쪽
58 57. 메마른 기억 - 4 20.08.24 34 1 11쪽
57 56. 메마른 기억 - 3 20.08.19 28 0 11쪽
56 55. 메마른 기억 - 2 20.08.10 28 0 11쪽
55 54. 메마른 기억 - 1 20.08.03 27 0 11쪽
54 53.빛바랜 거울 - 7 20.07.27 35 0 13쪽
53 52. 빛바랜 거울 - 6 20.07.20 33 1 14쪽
52 51. 빛바랜 거울 - 5 +2 20.07.13 36 1 13쪽
51 50. 빛바랜 거울 - 4 20.07.06 36 0 12쪽
50 49. 빛바랜 거울 - 3 20.06.29 35 0 12쪽
49 48. 빛바랜 거울 - 2 20.06.25 35 0 12쪽
48 47. 빛바랜 거울 - 1 20.06.22 35 0 12쪽
47 46. 어긋난 조각 - 6 20.06.15 31 0 11쪽
46 45. 어긋난 조각 - 5 20.06.09 32 0 11쪽
45 44. 어긋난 조각 - 4 20.06.04 38 0 11쪽
» 43. 어긋난 조각 - 3 20.06.03 45 0 12쪽
43 42. 어긋난 조각 - 2 +1 20.05.20 37 2 11쪽
42 41. 어긋난 조각 - 1 20.05.15 31 0 13쪽
41 40. 마땅한 복수? - 5 20.05.13 39 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