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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rte 님의 서재입니다.

배같은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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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rte까르
작품등록일 :
2020.01.17 23:48
최근연재일 :
2021.02.27 22:00
연재수 :
85 회
조회수 :
4,815
추천수 :
77
글자수 :
487,621

작성
20.11.03 23:30
조회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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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1쪽

63. 가족 망쳐놓기 上 - 3

DUMMY

예전이나 지금이나 이 계집은 같은 질감의 수면바지를 입고 있었다. 조금은 커 보이는 검은색 기능성 상의가 유나 어깨 위에 늘어진 채 하늘거렸다.


유나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나는 벌써부터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나를 때릴까? 막말을 내뱉을까? 아니면 우롱할까? 하나같이 피곤해질 선택지였다. 깊게 숨을 내쉰 뒤 나는 유나의 시선을 피하려 들지 않았다. 매서워진 유나의 눈빛이 내 눈을 자극했다.


"요즘 팔자 좋아 보이네 오빠?"


"또 너한테 짓밟히게 생겼네."


유나와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져 한 뼘 정도가 되었다. 유나와의 키 차이로 머리 쪽이 보이자 나는 무심결에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마스크 안은 조금씩 땀으로 젖고 있었다.


긴장이 오가는 상황, 나는 유나에게 온몸을 안겼다. 베어허그나 백드롭 같은 걸 하려는 걸까? 나는 일찍이 하체에 힘을 빼 체념한 상태였다. 그 순간 가슴 주변으로 축축한 감촉이 느껴졌다.


"바보..."


내가 착각하는 게 아니었다. 유나는 단순히 내 곁에 선 채 흐느끼며 울고 있었다. 안도감보다는 놀람이 앞서는 순간이었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으나 몸이 심하게 굳은 탓에 쭈뼛거리는 게 다였다.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이곳저곳 안 터지는 게 없어서 죽는 줄 알았단 말이야!"


"유나 너..."


겨우 긴장을 풀고 유나를 바라보려던 순간, 나는 알 수 없는 찌린내에 미간을 찌푸렸다. 주변은 텅텅 비어있을 뿐 원인을 제공할 만한 부분들은 보이지 않았다. 설마 싶었던 마음도 잠시 전방을 바라본 순간 또다시 같은 냄새가 난단 걸 알아챘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코를 매섭게 자극하는 냄새에 나는 몸을 돌려 유나네 집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내 예상은 적중했다.


'맙소사!'


더도 말고 나는 유나에게 떨어져 나와 현관 너머로 유나네 집안 실태를 확인했다. 지독한 냄새를 풍길 만한 요소들이 곳곳마다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를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집 상태가 난장판이었던 건 덤이다. 같은 유형의 집을 사는 사람으로서 용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유나는 양손으로 눈물을 걷다 내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오빠 왜 그래?"


"야 망할 계집. 딱 기다리고 있어!"


나는 무심코 화가 나 유나보다도 더 살가운 표정을 짓고 말았다. 그만큼 내 눈앞에 저 말도 안 되는 것들을 치워버리고 싶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유나네 집 속 쓰레기들을 분리수거해 쓰레기봉투로 꽉 묶어놓기에 이르렀다. 실로 역겹고 낙담한 과정들이었다. 다 먹지 못한 배달 음식들은 방 여기저기마다 나타나 특색을 뿜어댔다. 물론 좋은 냄새가 아닌 썩은 냄새로 말이다. 아무 데나 버린 옷들은 냄새들에 찌들어 진국이 된 지 오래였다. 화룡점정은 화장실 속 음식물들로 하수구에선 탕수육 소스 부패한 냄새가 진동을 하고 변기는 먹다만 국물 요리의 기름때가 곳곳이 남아 있었다. 화장실 청소에만 2시간을 넘게 할애한 것 같다.


유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경탄을 이어갔다. 반면에 나는 기진맥진한 채 쓰레기봉투 옆 현관 쪽에서 무릎을 꿇었다. 하늘은 조금씩 어둑해져 오른쪽이 약간 드리워진 하얀 보름달이 보이기 시작했다.


"회장 계집! 집 청소는 하고 다니란 말이야."


유나는 옆머리를 꼬아대며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히히, 귀찮아서."


"그나저나 왜 이렇게 배달 음식이 많은 거야? 파티라도 열었나 봐?"


"얼마 전에 민아랑 밤새 놀아서 그래."


"그러기엔 양이 터무니없어 보이는데."


여하튼 민아가 유나네 집에 잤다는 사실은 확실해졌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풀며 거실을 서성였다. 물걸레로 닦은 테이블에 물때가 조금 남아 있었다. 즉후 유나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오빠 예전에 말했던 거 기억나?"


"뭐?"


"오빠가 알려준 웹툰 있잖아. 그거 다 읽어봤어."


내가 흠칫 놀랄 틈을 타 유나는 휴대폰을 만지작대다 띄운 화면을 내게 보여주었다. 말한 대로 '가족 망쳐놓기'의 최신화까지 모두 읽음 표시가 되어 있었다. 나는 말할 타이밍을 잃은 채 쭈뼛댔다. 그러다 모자챙을 만지작거리며 이성을 바로잡았다.


"그렇게 재밌진 않았을 텐데."


"그래? 난 재밌었는데."


"뭐?"


순간 잘못들은 줄 알았다. 그러나, 유나는 내 앞에서 '가족 망쳐놓기' 에 관한 스토리와 묘사들을 연신 이어갔다. 내가 공감할 수 있단 것은 그만큼 유나가 이 웹툰을 제대로 봤단 뜻이었다. 얘기는 길어져 나는 유나와 소파에 앉아 '가족 망쳐놓기'에 관한 얘기들을 묵묵히 듣고 있었다. 최근 회장 계집답지 않은 해맑은 표정은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았다.


"주인공이 부모님 진열장 깨부순 게 머릿속에 남는 거 있지? 너무 통쾌하더라!"


"어느 정도 스토리에 공감하나 봐?"


"응! 어딜 가나 싫은 부모는 있으니까. 우리 집도 그렇고."


생각해보니 유나의 아버지는 하 부장님으로 오래전에 아내와 별거해 외동딸과 함께 산다는 얘기를 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게 이렇게 맞물릴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왜? 아버님께서 가족에 무심하고 그런 거야?"


"정확해!"


유나는 격한 몸짓과 함께 애절한 표정으로 나와 대면했다.


"아빠는 맨날 일밖에 모른다고. 그래 놓고 나한테 돈만 퍼주면 다 되는 줄 안다니까!"


"그래? 여중생들은 오히려 부모님 간섭이 없는 걸 좋아하지 않나?"


"그것도 정도가 있지. 아빤 맨날 돈으로 해결하려 든다고."


잠시 뒤 유나는 표정이 굳은 채 정면을 바라보았다. 양손은 깍지 낀 채 무릎에 놓았고 다리는 왼쪽으로 꼬았다 오른쪽으로 꼬았다 반복했다.


"착하게 살라고 타이를 때 돈, 사고칠 때 수습하는 것도 돈, 학우들 구슬리는 것도 돈, 방학 때 교정 시설에 박아 넣을 때도 돈. 어떻게 아빠라는 사람이 그렇게 매정하고 몰상식할 수 있어?"


"오..."


뭐랄까 좀 의외의 반응이었다. 우광중학교를 개판으로 만든 주역 중 하나가 이런 고충을 품고 있으니 말이다. 유나는 얼굴을 더욱 찌푸린 채 고개를 내려 바닥을 보고 있었다.


"그럼, 중학교 다닐 때도 아버님이 돈을 쓰신 적이 있단 뜻이야?"


이에 유나는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절대 못하게 막고 있어. 애초부터 학교에선 고소득자 아빠가 있단 사실을 숨기고 있으니까."


"하긴. 전교 부회장에 SMK 회장, 거기에 아버님 백까지 알리면 학교에서 보는 시선이 사뭇 다르겠네. 학교 분위기 자체가 지역 전체로 봐도 좋진 못하니까."


"그렇게 나쁘진 않거든! 그저 인싸 놀이 좋아하는 애들이 많을 뿐이지 나쁜 애들은 아니야."


"다들 그렇게 말해. 섬세하게 보기엔 서로 소통이 지지부진하잖아."


이렇게 화젯거리가 오가니 나는 짓궂은 생각이 떠올랐다. 유나가 과민반응할까 불안했지만 분위기상 괜찮을 거라 판단했다.


"유나 너는 교내에서 술, 담배 해본 적 없어?"


"뭐?"


유나는 어이가 없다는 듯 크게 코웃음 치다 나와 대면했다.


"오빠 나 못 믿는 거야?"


"불문율을 비집어 본 것뿐이야. 규리나 민아 같은 계집들 때문에 우광중 보는 시선이 영 좋지 않아서 말이지."


유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후 오른쪽을 흘깃 보다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볼을 부풀렸다.


"그랬으면 선유 오빠를 좋아했을 리가 없잖아."


'?'


내가 눈을 부릅뜬 사이, 유나는 깍지 낀 손을 풀어 검지 손가락끼리 이리저리 부딪혀댔다.


"애초부터 다 나한테 안 맞는다고. 담배 피면 치아가 누레지니까 다양한 화장을 할 수가 없어. 라미네이트 하고 다니면 학교에서 돈 많다고 들킬 게 뻔하잖아. 술은 아예 손도 대본 적 없고, 아무튼 껄렁대는 놈들과 어울리고 싶진 않아!"


나는 바로 직감했다. 이 이상 얘기를 꺼내면 유나의 내면을 의심하는 꼴이 된다. 나는 가볍게 손부채질을 한 뒤 모자 뒤쪽을 긁적였다.


"그렇다면 한 가지 더 궁금한 게 있어."


"또 뭔데?"


"넌 SMK 회장 계집이면서 우광중 전교 부회장이기도 하잖아. 어떻게 된 거야?"


나는 곧잘 유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유나는 좀처럼 인상을 풀지 못하다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렇게 눈만 깜빡여댈 뿐 제대로 입을 열지 못했다. 나는 그 옆에 팔짱 낀 채 유나의 반응을 진득이 기다렸다.


"설마 여기서 문제가 있는 거야?"


"그런 거 아니야! 그저..."


그 순간 현관 너머로 소리가 들려왔다. 삑삑거리는 걸 봐선 도어락 번호를 누르는 중일 것이다. 이에 유나는 화들짝 놀라더니 내 팔을 있는 힘껏 끌어안았다.


"뭐야?"


"설명은 나중에 할게! 일단 내 방에 들어가 있어!"


"야야 아파! 좀 천천히 해."


얼떨결에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유나에게 이끌려 그대로 방에 갇히고 말았다. 눈 깜짝할 새 일어난 일이라 유나는 방불도 꺼둔 채 날 문 뒤에 대기토록 지시했다. 가운데 창문이 트인 덕분에 칠흑 같은 전망은 아니었으나 주변은 제대로 분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나는 문에 몸을 바싹 기댄 채 유나와 너머로 들리는 발걸음 소리를 들었다. 방 구조가 똑같단 걸 미루어 볼 때 유나는 부엌에서 막 나오는 모습으로 모면하는 중이었다.


"뭐야! 우리 유나가 청소를 다 했다고?"


"왜 지금 와? 늘 새벽에 왔으면서."


"쌀쌀맞게 실이. 아빠 해외출장 갔다 왔잖아. 귀국하자마자 바로 왔지."


목소리를 듣고 나는 바로 하 부장님이란 걸 눈치챘다. 그러고 보니 더글라스는 국대 전시회를 앞두고 먼저 열리는 독일로 사전 답사를 간다는 소식을 아버지께 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 임원 중 한 명이 하 부장님이었던 것이다. 이를 틈타 민아와 유나가 자유로운 분위기로 밤새 놀았다면 퍼즐은 대충 맞춰졌다.


"오늘은 아빨 웃게 만다는 구나. 우리 딸!"


"건들지 마! 신상품은 갖고 왔어?"


"독일 본사에서 갖고 왔지! 몇 벌 입어 보고 아빠랑 외식하러 가자!"


"됐고 옷이나 줘봐."


잠시 뒤 문이 덜컹하자 나는 소스라치다 조심히 문 경첩과 직교한 벽에 몸을 기댔다. 문을 조금만 열어 방을 둘러본 유나는 조심히 방에 들어와 불을 켰다. 유나의 양손에는 더글라스 특유의 선 디자인과 로고가 박힌 옷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내가 멀뚱히 서서 주변을 경계할 동안 유나는 옷들을 침대 위에 냅다 던져뒀다. 그 후 휴대폰을 꺼내더니 재빨리 타자를 두들겨댔다. 얼마 안 가 내 휴대폰 쪽으로 진동이 울렸다. 유나가 곧잘 나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뭐야 참.'


나는 바로 휴대폰 상태창에 뜬 문자 창을 눌러보았다.


'여기서 옷 갈아입을 거니까 잠깐 뒤돌고 있어'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s - 누적 추천 수 20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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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68. 가족 망쳐놓기 上 - 8 20.11.30 28 1 11쪽
68 67. 가족 망쳐놓기 上 - 7 20.11.30 23 1 11쪽
67 66. 가족 망쳐놓기 上 - 6 20.11.24 26 1 13쪽
66 65. 가족 망쳐놓기 上 - 5 20.11.17 26 1 12쪽
65 64. 가족 망쳐놓기 上 - 4 20.11.10 29 1 11쪽
» 63. 가족 망쳐놓기 上 - 3 20.11.03 27 1 11쪽
63 62. 가족 망쳐놓기 上 - 2 20.10.27 39 1 11쪽
62 61. 가족 망쳐놓기 上 - 1 20.10.19 46 0 12쪽
61 60. 메마른 기억 - 7 20.09.18 34 0 12쪽
60 59. 메마른 기억 - 6 20.09.08 28 0 12쪽
59 58. 메마른 기억 - 5 20.08.31 29 0 11쪽
58 57. 메마른 기억 - 4 20.08.24 34 1 11쪽
57 56. 메마른 기억 - 3 20.08.19 28 0 11쪽
56 55. 메마른 기억 - 2 20.08.10 28 0 11쪽
55 54. 메마른 기억 - 1 20.08.03 27 0 11쪽
54 53.빛바랜 거울 - 7 20.07.27 35 0 13쪽
53 52. 빛바랜 거울 - 6 20.07.20 33 1 14쪽
52 51. 빛바랜 거울 - 5 +2 20.07.13 36 1 13쪽
51 50. 빛바랜 거울 - 4 20.07.06 36 0 12쪽
50 49. 빛바랜 거울 - 3 20.06.29 36 0 12쪽
49 48. 빛바랜 거울 - 2 20.06.25 35 0 12쪽
48 47. 빛바랜 거울 - 1 20.06.22 35 0 12쪽
47 46. 어긋난 조각 - 6 20.06.15 31 0 11쪽
46 45. 어긋난 조각 - 5 20.06.09 32 0 11쪽
45 44. 어긋난 조각 - 4 20.06.04 38 0 11쪽
44 43. 어긋난 조각 - 3 20.06.03 45 0 12쪽
43 42. 어긋난 조각 - 2 +1 20.05.20 37 2 11쪽
42 41. 어긋난 조각 - 1 20.05.15 31 0 13쪽
41 40. 마땅한 복수? - 5 20.05.13 3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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