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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rte 님의 서재입니다.

배같은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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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rte까르
작품등록일 :
2020.01.17 23:48
최근연재일 :
2021.02.27 22:00
연재수 :
85 회
조회수 :
4,870
추천수 :
77
글자수 :
487,621

작성
21.01.09 23:30
조회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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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1쪽

75. 가족 망쳐놓기 下 - 7

DUMMY

오후 5시, 나는 윌스트리트 아파트를 거쳐 호수공원 후문 쪽에 다다랐다. 맑은 날씨 덕분인지 공원을 둘러싼 빨간색 도보 레일에 사람들이 붐볐다. 내가 계단에서 내려오던 중 한 여자 아이가 무턱대고 달려오다 내 다리에 가볍게 부딪혔다.


"죄, 죄송합니다!"


아이의 또박한 발음에 나는 가볍게 웃으며 양손을 내저었다. 그 후 아이의 어머니로 보이는 분이 내게 다가와 연이어 고개를 숙이셨다. 나는 괜찮다며 얘기를 대충 마무리 지어야만 했다. 왼쪽 너머 전망대에서 민후 형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숲길과 호수 사이로 좁게 뚫린 도로를 지나 크게 트이는 지점에 다다르는 순간, 짧은 등대 같은 목재 전망대가 눈앞에 들어왔다. 민후 형이 있나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바깥쪽 난간에 사람 인기척은 보이지 않았다. 이는 직접 올라가야만 볼 수 있단 뜻이었다.


호수공원 전망대 구조상 전망대 옥상까지 올라가려면 둥글게 트인 나선형 길을 따라 빙글빙글 돌아야만 했다. 겨우 옥상에 도착한 나는 가쁜 숨을 내쉬며 옥상 안쪽 벽에 손을 댔다.


'체력 부족인가...'


"역시 시간은 칼같이 지킨다니까."


살짝 고개를 들자마자 익숙한 발걸음이 내 눈에 잡혔다.


"하이하이!"


민후 형은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내게 손을 흔들었다. 하얀색 라인의 사각틀에 작은 영어 문장이 새겨진 보라색 반팔 티셔츠와 하얀색 면 반바지, 거기에 하얀색 야구모자까지 거꾸로 쓰고 나와 이전과는 다른 인상을 보여줬다.


"민후 형 그 차림은."


"화려하지? 오늘은 이상하게 보라색 옷을 입고 싶더라고."


자세히 보니 민후 형이 쓴 야구 모자 뒤편에는 불규칙한 문양의 보라색 알파벳 S가 박혀 있었다. 나는 몸을 올곧이 세우고 민후 형과 눈을 마주쳤다. 민후 형은 민아처럼 색감 높은 컬러렌즈를 착용하고 있었다. 역시 렌즈 색도 보라색이었다. 민후 형은 내 모습을 둘러보며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입었던 옷 그대로 입고 왔네."


"아무래도 이게 편하지 않을까 해서요."


민아네 부모님과 식당에서 만났을 때 옷 그대로, 나는 알파벳 C가 박힌 하얀색 야구 볼캡과 하얀색 스트릿 셔츠, 거기에 짙은 색감의 블랙진을 입고 나왔다. 민후 형 옆에 서있으니 서로 비슷한 유형의 옷을 입고 있어 샘플 대비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와 민후 형은 유리 재질의 전망대 난간에 팔을 걸치며 전경을 바라보았다. 아직 해가 지지 않은 여름날 초저녁 속에 넓고 공활한 호수가 일렁이는 흐름 속에 푸른 하늘을 담아댔다. 민후 형은 호숫가를 지그시 내려다보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우러러 바라보았다. 나는 드러그샵에서 구입한 검은색 필터 마스크의 귀 쪽 라인을 바로잡다 조심히 민후 형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민후 형, 최근에 몸이 좋아지신 것 같네요."


민후 형은 눈을 부릅 뜨더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떻게 알았어?"


"그냥요. 예전에 만났을 때는 좀 오버핏으로 몸 라인을 맞추려는 듯 보여서요."


"예리하네 요거."


민후 형은 산뜻한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으로 오른쪽을 가리켰다.


"저기 호수 너머에서 바로 앞에 위치한 주상복합 아파트 보이지? 저기 지하에 있는 헬스장에서 단련하고 있거든. 한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 표가 나나?"


"열심히 하셨나 봐요. 그동안 힘드셨을 텐데."


그렇게 말을 맺으려던 순간 나는 민후 형이 보내줬던 문자 내용들이 떠올랐다. 민후 형이 삼두 라인을 둘러볼 터, 나는 민후 형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민후 형."


"왜?"


"오늘은 왜, 연재 주기가 늦는 거죠?"


흐름이 좋았던 것 같다. 민후 형은 곧잘 하던 행동을 멈추고 유리벽으로 된 난간에 팔을 걸쳤다. 다시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생각 정리가 잘 안 돼서. 독자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마지막 표현인 만큼 좀 세심하게 검토해보고 있어."


"아직 완성 못하신 거예요?"


민후 형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선택지에 놓여 있어. 좀 몰두해서 그리니까 결말이 갈리더라고. 둘 중에서 뭘 올려야 할지 고민 중이야."


그 순간 전망대 아래쪽으로 어린아이의 강렬한 비명이 들려왔다. 나와 민후 형이 난간 밖으로 머리를 들이대자 민후 형 앞으로 빨간색 고무풍선 하나가 두둥실 떠올랐다. 바람이 안쪽으로 불어온 덕분에 풍선은 민후 형 손에 그대로 안겨졌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네다섯 살 정도 되는 남자아이가 어머니로 보이는 분께 손이 잡힌 채 허공을 향해 다른 쪽 손을 뻗어댔다.


"아무래도 저 아이 꺼 같은데요? 제가 내려가서 갖다 주고 올 게요."


내가 행동에 나서려는 순간 민후 형이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럴 필요 없어."


"하지만..."


"밖을 봐봐."


민후 형의 시선 따라 나는 다시 난간 밖을 바라보았다. 아래를 보니 아이와 어머니로 보이는 분이 곳곳을 둘러봐도 보이지 않았다. 민후 형은 손가락에 실을 돌돌 감은 풍선을 흘겨보았다.


"방금 전에 울고불고 난리 치는 아이를 어머니께서 악착같이 말리면서 가는 거 있지? 이렇게 풍선이 멀쩡한데 말이야."


"그럴 리가요, 안쪽으로 들어오시는 거 아닐까요?"


"내가 계속 보고 있었어. 아이는 어머니 옆에 애걸복걸하며 이 풍선에 손을 뻗어댔지. 무력하게도 어머니 품에 그대로 안겨져 저 멀리 도망칠 수밖에 없었지만."


민후 형은 풍선을 매단 실을 조금씩 손으로부터 풀어갔다. 이대로 풍선이 하늘 위로 두둥실 날아오르나 싶었다.


"참으로 애석하지.."


민후 형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잠시 동안 풍선을 바라보았다. 그 후 자신의 야구 모자를 벗더니 크기 조절 후크에 풍선 실을 껴넣기 시작했다.


"민후 형?"


"실 길이가 맞아야 할 텐데."


풍선은 곧 민후 형 야구 모자 후크에 단단히 매듭지어졌다. 그 후 민후 형은 야구 모자를 전망대 유리벽 쪽에 비스듬히 두었다. 잠시 뒤 풍선은 조금씩 떠오르더니 실이 팽팽해질 즈음에는 전망대 유리벽을 살짝 넘길 정도로 균형을 맞춘 상태로 고정되었다. 민후 형은 이 모습을 바라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강연이 너, 이 전망대 특징이 뭔지 알아?"


"특징이요? 시스템적인 부분 말하시는 거예요?"


"좀 어렵게 접근했지만, 맞아. 이 위를 한번 봐봐."


나는 그대로 고개를 꺾어 전망대 천장 쪽을 둘러보았다. 천장 곳곳에는 둥글게 파인 LED 전등 부분이 규칙적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민후 형은 내게 가까이 다가와 천장에 박힌 전등 부분을 검지 손가락으로 가리켜댔다.


"야간에 전망대 보면 이쪽에 불빛 켜진 거 보이지 않아?"


"아, 네! 본 적 있어요."


"이걸 딱 호수공원을 가르는 보도라인 코스로 보면 살짝 빛이 굴절되어 보이거든. 대충 사진으로 찍으면 이렇게 나와."


민후 형이 휴대폰에 해당 화면을 띄울 동안 나는 고개를 내린 뒤 가볍게 목을 풀어갔다. 화면에는 전망대의 야경 전망이 전체적으로 드러나는 사진이 있었다. 보랏빛 LED 전등이 나선 형태의 오르막길을 감싸다가 천장 쪽에 얘기했던 전등들이 형형색색 빛을 내며 전경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했다. 민후 형은 전등이 빛나는 모양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여기서 보니까 마치 전등이 풍선같이 보이지 않아?"


"그러게요. 거꾸로 매달린 것 같아요."


"그래서 이렇게 고안해본 거야."


민후 형이 자리를 비키자 야구 모자에 걸린 풍선이 정면 그대로 내 시선에 잡혔다.


"전등을 보면 이렇게 버건디 계열의 빨간빛을 내는 경우가 없잖아. 거기에 방향이 거꾸로 돼있으니까 찾기도 편하고. 물론, 그 아이가 오기를 품고 찾으려 할 때 성립되는 얘기지."


"모자는 어쩌죠?"


"그 아이가 풍선 찾으러 오면 그냥 가져가게 둘 거야. 끝까지 안 온다면 전망대 관리인에게 부탁하고 받아오겠지만."


민후 형은 의연한 미소와 함께 풍선을 지켜보았다. 풍선은 조금씩 바람에 날려 제자리에서 풍선실이 움츠렸다가 폈다를 반복했다. 모자가 눈에 뜨일 정도로 움직이지는 않았다. 민후 형은 풍선 옆 난간에 몸을 기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까와는 달리 미소를 지으며 여유로운 듯한 느낌을 주었다.


"강연아, 전망대에 오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글쎄요. 바깥 너머로 보이는 전경을 즐기기 위함 아닐까요?"


"그건 너무 가시적인 답변인 것 같아."


민후 형은 몸을 틀어 다시 한번 전망대 너머를 바라보았다.


"이곳에 발을 들이면 사람들은 넓은 광경을 한 번에 볼 수 있을 거라 착각하지. 직관적으로 보는 시야를 캐치하며 그 광경이 전제적으로 그럴 것이라 추상화한다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봐. 뭘 하든 간에 사람의 직관이 이루어지는 범위 외의 광경을 순간적으로 캐치할 순 없으니까."


"철학적인 관점이군요."


"그렇지도 않아. 어디까지나 눈으로 이루어지는 상황들을 감안한 거니까. 내가 보고 있는 게 어쩌면 익숙해서 보지 않는 중일 수도 있단 뜻이지."


이 접근에 나는 자연스레 지난날들을 떠올렸다. 내가 누나를 상대로 지나치게 많은 생각을 한 탓에 보일 수도 있었던 부분을 간과했었으니 말이다. 민후 형의 얘기를 듣고 나는 난간에 붙어 다시 한번 호수공원의 전경을 둘러보았다. 호수를 접하는 커다란 원형 스테이지 구석진 곳에서 조명 공사를 하는 인부를 찾아낼 수 있었다. 나와 민후 형은 그렇게 같은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구름이 호수에 비쳐 데칼코마니를 이루는 모습이 공허하면서도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이제야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그 말에 나는 민후 형 쪽으로 시선을 틀었다. 민후 형은 바람결에 날리는 머리에 아랑곳 않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민후 형?"


"들었지? 왜 내가 이렇게까지 계획을 세웠는지. 결과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너한테 얘기해주고 싶어."


"이미 전자는 충분히 들었던 것 같은데요."


"아니. 아직 못해준 얘기가 있어. 실은..."


그때 전망대 오르막길로 투박한 발걸음이 들려왔다. 발걸음은 점점 간격이 느슨해지더니 그림자가 보일 즈음에야 가볍게 실루엣이 드러났다. 민후 형은 이를 덤덤하게 지켜보았다.


"오빠, 아무리 그래도 여긴 너무 멀잖아..."


'뭐야!'


내가 당황할 사이 민후 형은 날 반겼을 때와 똑같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다.


"송민아! 여기야 여기!"


"나 참. 대체 뭔데 이렇ㄱ...!"


재빨리 회피하려 했으나 소용없는 짓이었다. 내가 모자를 깊게 눌러쓰며 얼굴을 가릴 틈도 없이 민아는 내 모습을 또렷하게 확인했다. 애초부터 모자 때문에 같잖은 뻘짓을 하는 격이었다. 민아는 나와 민후 형을 이리저리 둘러보다 경악한 듯 눈을 부릅뜨며 양손으로 입을 가려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잠시 뒤, 민아는 민후 형과 시선을 마주했다.


"오빠, 아니지?"


민후 형은 가볍게 손뼉을 치며 이 상황을 즐기는 듯 보였다.


"이제야 본격적인 얘기를 나눌 수 있겠는걸?"

다운로드.jpg

p.s. 실제로 모티브로 잡는 호수공원에는 이런 형식의 전망대가 있습니다. 참고 바랍니다 ^^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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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68. 가족 망쳐놓기 上 - 8 20.11.30 29 1 11쪽
68 67. 가족 망쳐놓기 上 - 7 20.11.30 23 1 11쪽
67 66. 가족 망쳐놓기 上 - 6 20.11.24 26 1 13쪽
66 65. 가족 망쳐놓기 上 - 5 20.11.17 27 1 12쪽
65 64. 가족 망쳐놓기 上 - 4 20.11.10 29 1 11쪽
64 63. 가족 망쳐놓기 上 - 3 20.11.03 27 1 11쪽
63 62. 가족 망쳐놓기 上 - 2 20.10.27 40 1 11쪽
62 61. 가족 망쳐놓기 上 - 1 20.10.19 46 0 12쪽
61 60. 메마른 기억 - 7 20.09.18 35 0 12쪽
60 59. 메마른 기억 - 6 20.09.08 29 0 12쪽
59 58. 메마른 기억 - 5 20.08.31 29 0 11쪽
58 57. 메마른 기억 - 4 20.08.24 34 1 11쪽
57 56. 메마른 기억 - 3 20.08.19 28 0 11쪽
56 55. 메마른 기억 - 2 20.08.10 28 0 11쪽
55 54. 메마른 기억 - 1 20.08.03 27 0 11쪽
54 53.빛바랜 거울 - 7 20.07.27 35 0 13쪽
53 52. 빛바랜 거울 - 6 20.07.20 36 1 14쪽
52 51. 빛바랜 거울 - 5 +2 20.07.13 38 1 13쪽
51 50. 빛바랜 거울 - 4 20.07.06 37 0 12쪽
50 49. 빛바랜 거울 - 3 20.06.29 36 0 12쪽
49 48. 빛바랜 거울 - 2 20.06.25 36 0 12쪽
48 47. 빛바랜 거울 - 1 20.06.22 35 0 12쪽
47 46. 어긋난 조각 - 6 20.06.15 32 0 11쪽
46 45. 어긋난 조각 - 5 20.06.09 34 0 11쪽
45 44. 어긋난 조각 - 4 20.06.04 39 0 11쪽
44 43. 어긋난 조각 - 3 20.06.03 45 0 12쪽
43 42. 어긋난 조각 - 2 +1 20.05.20 37 2 11쪽
42 41. 어긋난 조각 - 1 20.05.15 31 0 13쪽
41 40. 마땅한 복수? - 5 20.05.13 3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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