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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rte 님의 서재입니다.

배같은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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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rte까르
작품등록일 :
2020.01.17 23:48
최근연재일 :
2021.02.27 22:00
연재수 :
8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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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91
추천수 :
77
글자수 :
487,621

작성
20.06.09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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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45. 어긋난 조각 - 5

DUMMY

결국 어떤 얘기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한 채 집까지 걸어가야만 했다. 민아가 따라온 걸 생각하니 더욱 아쉬운 결정이었다. 그나마 민아 아버지와 면식이 생겼단 것이 좋은 진전이었다.


슬슬 아버지가 퇴근길에 접어들었을 터, 나는 발걸음을 재촉하기 바빴다. 아파트 보안번호 부터 엘리베이터 버튼에 집 앞 비밀번호를 누르는 것까지 한시도 여유 부릴 수 없었다.


집문을 닫고 거실로 들어서니 불은 켜있지만 인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주방 불이 꺼져있고 식탁에 작은 먼지들을 돌아다니는 걸 봐선 누나가 아직 저녁을 먹지 않았으리라 예상했다.


그 순간 누나 방문이 열렸고 뒤이어 누나가 나오다 나와 눈을 마주쳤다. 예상한 대로 누나는 내게 살가운 눈초리를 쐬며 날 경멸하는 듯 보였다. 망할 아줌마가 어떤 얘기를 나눴을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분명히 나와 아버지를 비난하는 말 투성이었을 것이다. 누나는 문쪽에 몸을 기댄 채 날 경계하려 하자 나는 되레 당당하게 보이려 한 손을 허리춤에 얹으며 누나와 대면했다.


"이날이 결국 오고 말았네. 좀 더 시간을 두고 말해주려 했는데."


누나는 문 뒤로 몸을 숨어 인상을 써댔다. 그 후 입술을 오물거리다 위로 반쯤 가려진 동공으로 계속해서 나를 째려봤다. 이래저래 상대하기 난처한 상황이었다. 나는 잠시 입을 곱씹다 짧게 숨을 내쉬며 누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어찌어찌 얘기해봤자 누나는 아버지가 일절 잘못했다고 생각할 거야. 은정이도 아버지가 아줌마 생각 안 해줬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아버지와 이혼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를 가져버린 아줌마의 머릿속부터 문제있다고 생각해지 않아?"


누나는 아무 말 없이 문 뒤로 몸을 더 숨길뿐이었다. 내가 몸을 틀어 누나방 정면을 향하자 누나는 자연히 문을 닫아 그 틈새로 아주 조금의 몸만 내밀고 있었다.


"아버지는 끝없이 가족을 위해 헌신하려 했어. 아줌마가 우리 양육을 맡을 순간에도 아버지는 우리와 아줌마의 행복을 위해 배려해주고 돕기 바쁘셨지. 야근도 제치고 아줌마를 위해 쉬는 시간 보장해주면서까지 야간 양육에 힘써주고, 주말엔 아버지가 우리 양육에 시간을 할애하려 애쓰셨어. 우리가 주말마다 카메라를 달고 다니면서 안에서든 밖에서든 놀고 웃던 거 누나도 앨범을 통해 잘 알잖아. 아버지는 우리에게 더없이 소중한 존재였고, 지금도 그런 분이셔."


이에 누나는 고개를 강하게 저으며 좀처럼 인상을 풀지 못했다. 내 의견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없는 모양이었다.


"거짓말! 엄마는 늘 외로웠다고 했어. 아빠가 엄마 마음 조금도 이해하질 않았다고!"


"진짜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그럼...!"


나는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이 얘기를 누나에게 직설적으로 내뱉어도 될까 싶은 노파심 때문이었다.


어른의 쾌락이란 참으로 지저분한 것이다. 자신의 본능이 남도 똑같을 거라 착각한 채 끝없이 과욕적인 면모를 보이고 만다. 그렇게 사람을 기만할 거면 나도 누나도 낳지 말아야만 했다.


나는 끌어 오르는 분을 가라앉힌 뒤 점점 몸을 숨기는 누나에게 다가갔다. 누나가 당황한 채 문을 닫으려 하자 나는 발을 문틈 사이에 넣어 이를 겨우 막아냈다. 하지만 누나가 힘 있게 닫으려 한 탓에 발로 전해지는 고통은 상당했고 누나도 놀란 나머지 잠시 동안 내 발에 눈을 떼지 못했다.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다. 나는 얼굴을 찡그리며 밀려오는 고통을 호소했지만 누나와의 진실된 대화를 위해 누나의 시선을 피할 수 없었다.


"이렇게! 아버지는 우릴 위해서 고통도 감내하고 우릴 키우셨어. 아줌마는 이런 아버지의 헌신적인 모습에 싫증이 나 다른 사람을 찾았던 거고. 가족을 위한 마음이 조금도 없는 사람이었어."


"강연아, 뭔가 잘못 알고 있어! 엄마도 가족을 위해 애쓰셨다고 하셨는데."


"구차한 변명이야! 아버지에게 큰 슬픔을 안겨줬으면서 잘도 재잘거리네. 망할 아줌마."


"자꾸 아줌마라고 지껄이지 마!"


누나가 양손으로 나를 밀쳐댔고 나는 버티다 못해 그 자리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내가 고통을 감내하던 것도 잠시 누나는 문을 닫아 눈만 보일 정도로 열어둔 채 시선을 내쪽으로 향했다. 내가 다시 임기응변에 나서려 했지만 누나는 조금씩 얼굴색을 붉히며 훌쩍여댔다.


"너무해. 어떻게 엄마한테 그렇게 말할 수 있어? 강연이 실망이야..."


"누나! 잠깐만!"


그러나 이미 문이 닫힌 채 잠금장치를 거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방문을 두들기며 누나와 대화를 청했지만 슬슬 아버지가 돌아올 시간이라 대놓고 티를 낼 수 없었다. 이미 망할 아줌마가 아버지를 한 번 건들었던 탓에 아버지와 직접적인 마찰이 오가는 걸 지양해야만 했다.


나는 결국 이도 저도 해결하지 못한 채 방에 들어갈 뿐이었다. 연이어 대화를 주도하지 못하고 참패한 것이다.


나는 침대에 몸을 던진 채 무슨 실수를 한 건지 이리저리 되짚어갔다. 민아도 누나도 같은 느낌으로 화난 듯 보였고 내게 큰 실망감을 드러냈다. 나 자신의 주장이 거칠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나로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것은 현재, 아니 은정과의 통화부터 꼬인 실정이었다. 누굴 원망할 수도 없었고 내게 큰 자책감을 안길 수도 없었다. 지금은 그저 이 상황을 겸허히 받아들인 채 다음을 생각하는 게 바람직한 시나리오였다.


집 문이 삐리릭 소리를 내며 열렸지만 방문이 삐걱대며 열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침묵으로 모면한 답답한 밤길이었다.


이후 누나는 아버지가 퇴근하고 와도 반기려 하질 않았다. 아버지가 의문을 표하자 나는 사춘기에 다다랐다고 허한 웃음으로 핑계를 댔다. 민아에 관한 사실을 민후 형에게 보고하자 민후 형은 잘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찝찝한 감정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내가 이토록 잘못을 저지른 걸까 싶었다. 사과를 하려 해도 사과를 위한 동기도 제대로 잡히질 않아 가벼운 사과로 무마될까 심히 걱정이 들었다. 이러한 나를 단박에 알아본 건 다름 아닌 하련이었다.


나는 최대한 남에게 감정을 보이지 않으려 스튜디오에 숨어 고뇌하고 있었다. 그 때 하련이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바람에 내 모습을 그대로 보이고 만 것이다. 하련이 끝까지 파고들려 하자 나는 집안 문제라며 개의치 말아달라는 말 뿐이었다.


"대체 뭐길래 여기까지 와서 이런데?"


"개인적인 문제니까 내버려 둬."


민후 형에 관한 내용은 최대한 외부에 새 나가지 않도록 조치하던 나였다.


'잠깐만.'


문득 생각해보니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가 바로 내 앞에 떵떵하게 서있었다. 하지만 어떤 경로로 전해 들었는지 모르기에 하련의 행동을 살펴보는 게 먼저였다. 하련은 화장대 밑 사물함에서 사무용 크기만 한 종이 뭉치를 꺼내들어 그대로 그것들을 훑어보던 중이었다. 뒤이어 하련의 므훗한 미소가 주변에 울려 퍼졌다.


"역시 더미 파일들은 아깝다니까. 3각으로 끈적하게 진행하고 싶었는데."


"변태."


이젠 내가 익숙하기라도 한 듯 하련은 네게 얄궂은 미소를 지으며 검지 손가락을 이리저리 휘저었다.


"강연이 네가 가진 컨셉이 단순한 것도 원인이라고."


"그럼 어떡하나? 회장 계집이 신상 털면 그대로 나가리인데."


그 순간 하련은 눈을 희번덕 뜨더니 손가락을 턱에 붙이며 날 향해 눈을 깜빡였다.


"생각해보니 왜 SMK 회장은 네 정보를 캐묻지 않는 거지?"


"애초부터 유나는 내 얼굴을 제대로 보질 못했어. 날 붙잡았을 때 있던 S&M 계집들이 남아 있을까 봐 빈틈을 주지 않는 거지."


하련은 잠깐 고개를 끄덕이다 미소를 지어갔다.


"그럼 네 신상을 알아도 별로 지장 없다는 거네."


"또 무슨 컨셉을 준비했길래 그러지?"


"눈치가 빠른걸."


하련은 잠시 종이를 몇 장 넘기더니 내게 다가와 종이에 적힌 내용을 가리켰다. 이에 나는 무덤덤한 표정을 보이다 하련과 대면했다.


"이런 거면 굳이 눈치 볼 필요 없잖아."


"엥?"


점심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 나는 교복을 단정하게 갖춘 뒤 안쪽 입구로 향했다. 하련은 내 반응에 요지부동을 보이다 겨우 정신을 차려 내게 눈길을 주었다.


"진짜 써도 돼? 어색하지 않을까?"


"알아서 무대에 맞게 준비하면 되는 거잖아. 가본다."


"잠깐만! 아직 얘기 덜 했잖아. 야!"


뒤이어 따라오는 하련의 모습에 나는 강당 입구에 다다르기 전에 요점을 짚어가는 게 맞다 생각했다. 하련이 다급히 내게 다가오려 하자 나는 발걸음을 늦추며 타이밍 맞게 고개를 반쯤 돌렸다.


"그러고보니, 궁금한 게 있어."


하련이 별말 없이 가만히 서있자 나는 아예 뒤로 돌아 하련과 대면했다.


"저번 주 사연 종이, 대체 누구한테 받은 거야?"


이에 하련은 굳은 표정을 짓다 잠시 내 눈치를 보며 거리를 두었다. 흐름상 무언가 아는 듯한 행동처럼 보였다. 하련의 불규칙한 뒷걸음질에 나는 조심히 앞으로 걸어갔다.이내 도망치려는 하련의 앞으로 몸을 튼 뒤 발로 강당 입구를 닫아냈다. 강당 문이 하나밖에 안 열려 있었던 게 참 다행이었다. 내 살가운 눈초리에 하련은 쥐 죽은 듯 강당 입구 앞 농구 코드 쪽에서 몸을 빌빌 떨어댔다.


"야! 네가 재미 삼아 준 쪽지가 날 얼마나 골치 아프게 만들었는지 알아?"


"미안해. 어떻게 된 건지 얘기해줄 테니까 그만 화 풀어. 어?"


스튜디오에서 기뻐하던 표정은 가신 채 하련은 불안과 공포가 엄습한 창백한 표정으로 내게 양손을 내밀었다. 예전에 하련을 상대로 멋대로 다그친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더 화를 내고 싶었지만 중요한 요점에 괜한 감정을 소비하고 싶지 않았다.


하련에게 하굣길에 만나자는 말을 뒤로 한 채 나는 홀연히 강당을 떠났다. 이제라도 내 감정 때문에 남에게 성질을 부리지 말아야만 했다. 매번 이 생각을 염두에 둔 채 학교 일정을 밟아갔던 공붓벌레 시절이 그리웠다.


시간이 흘러 학교 정문에 향할 즈음 나는 가슴이 쿵쾅거려 답답함을 호소했다. 억지로 상황을 참아내려 한 탓인지 주말에 있던 일들이 나를 죄이는 것만 같았다. 주변 학생들이 알아차리기 전에 나는 겉치레 없는 얼굴로 교문을 빠져나와 길건너 원룸촌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원룸 건물 사이로 트인 좁은 길목을 지나 초록색 철창살을 따라 공원 끝에 자리잡은 나무 정자에 다다랐다. 갑자기 뛴 탓에 후텁지근한 느낌이 더러 들었으나 주변을 둘러싼 가로수 사이로 마파람이 불어와 금방 해소할 수 있었다.


잠시 뒤, 하련은 내가 왔던 길을 그대로 밟아 서서히 내게 다가오는 중이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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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65. 가족 망쳐놓기 上 - 5 20.11.17 24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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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63. 가족 망쳐놓기 上 - 3 20.11.03 26 1 11쪽
63 62. 가족 망쳐놓기 上 - 2 20.10.27 39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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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 어긋난 조각 - 5 20.06.09 32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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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41. 어긋난 조각 - 1 20.05.15 31 0 13쪽
41 40. 마땅한 복수? - 5 20.05.13 3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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