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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rte 님의 서재입니다.

배같은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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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rte까르
작품등록일 :
2020.01.17 23:48
최근연재일 :
2021.02.27 22:00
연재수 :
85 회
조회수 :
4,792
추천수 :
77
글자수 :
487,621

작성
20.11.30 23:30
조회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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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1쪽

68. 가족 망쳐놓기 上 - 8

DUMMY

누나는 울먹이며 나를 째려보았다. 그러다 몸을 부르르 떨더니 뒤로 돌아 내게 또다시 등을 보였다. 도움반 선생님은 이리저리 허우적대다 교탁 안에 있던 물티슈 봉투를 통째로 들고 내게 다가왔다.


"강연아 기다려 봐. 선생님이 지워줄게."


도움반 선생님의 손짓에 나는 가까스로 손을 저으며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그 후 나는 책가방 안에서 은색 테두리의 손잡이 거울을 꺼내 얼굴에 비춰보았다. 도움반 선생님은 내 쪽을 잠시 보다 누나 쪽을 보며 불안에 떤 듯 보였다. 누가 봐도 가관인 얼굴, 립스틱 흔적이 이리저리 널브러져 꼬인 실타래처럼 그려진 모습이 내 눈에 생생하게 들어왔다. 모두가 적막한 상황에 어색해질 무렵, 나는 푸흡 소리를 내며 웃어대기 시작했다.


"가, 강연아?"


도움반 선생님의 의아한 표정 조자 내 웃음을 막을 순 없었다. 나는 그저 깔깔 웃으며 누나가 해준 화장을 볼뿐이었다. 누나도 놀란 듯 고개만 돌려 내쪽을 바라보았다.


시간이 제법 지나서야 나는 웃음을 거두고 나온 눈물을 손가락으로 닦아냈다. 손가락에 번진 립스틱 자국이 깍지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옅게 퍼져갔다. 나는 그대로 도움반 선생님과 눈을 마주쳤다.


"핑크 돼지가 따로 없네요. 보면 볼수록 괜찮지 않아요?"


"강연아 너 왜 그래? 일단 정신 차리고 얘기 좀 해보자."


"괜찮아요. 수업이나 계속하죠."


"뭐?"


누나가 눈을 깜빡거리며 의문을 품을 동안 나는 웃는 표정을 손가락으로 가리켜댔다. 한시가 급하다. 도움반 선생님의 센스가 절실히 필요한 순간이었다. 도움반 선생님은 인상을 찡그리다 겨우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보이셨다.


"그래그래! 오늘 다연이만 수업활동 제대로 못한 거 어떻게 알았어?"


그 순간 나는 표정을 풀고 움찔할 뻔했다. 누나는 지운 것이 아닌 애초부터 하지 않았단 뜻이다. 그러나 유려한 전개를 위해 페이스를 바로 잡아야만 했다.


"감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역시 남매지간은 다르다니까. 다연아, 이제 강연이가 화장해줄 시간이야. 이리 오렴."


누나는 당황한 듯 제자리에 쭈뼛댔다. 이에 도움반 선생님은 애써 누나에게 다가가 팔짱을 꼈다.


"치사하게 다연이 너만 동생한테 화장해주기 있어? 다연이도 예쁘게 꽃단장해야지. 가자!"


제아무리 누나도 혼란스러운 상황을 수습할 순 없었다. 도움반 선생님의 도움으로 누나는 의자에 멀뚱히 앉아 내쪽을 바라보았다. 나는 골라둔 화장품들을 다시 정립해 누나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아직 방심하긴 이르다. 누나는 다시 내게 화를 내며 고개를 돌릴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응? 누나?"


자세히 보니 누나의 반응이 이상했다. 눈을 질끈 감은 채 오만상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고개를 돌리거나 그런 낌새는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더 가까이 다가가 확인하려는 순간 누나는 푸흡 소리를 내며 내 얼굴에 침을 분사했다. 나를 비롯한 도움반 선생님은 놀란 나머지 기겁한 채 몸을 움찔거렸다. 그것도 잠시, 전방에서 히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다시 정면을 본 순간 믿기 힘든 광경이 펼쳐졌다.


"누나..."


누나가 새 나오는 웃음을 참으려 애쓰는 모습, 아니 누나가 웃는다는 그 자체만으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한 화장이 어지간히 우스꽝스럽게 보이긴 했던 모양이다. 누나가 고개를 숙여 눈을 감고 있자 나는 오달진 미소를 지으며 누나에게 다가갔다.


"가볍게 감고만 있으면 돼. 고개 들어줄게."


민아 이후로 오랜만에 하는 오프라인 화장이었다. 오래 쉬었음에도 내 손짓은 과거 누나를 위해 해 주던 화장 그대로 자연스럽게 움직여댔다. 기초화장부터 라인 설정까지 누나에게 선보이지 않았던 기술까지 누나의 기호에 맞게 꾸며나갔다. 블러셔 처리를 하던 도중 누나가 실눈을 뜨다 또다시 푸흡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덕분에 내 얼굴에 브러시에 묻은 블러셔 가루가 이리저리 붙고 말았다.


"누나..."


"미안해."


하지만 나와 누나 주변은 웃음꽃으로 바뀐 지 오래였다. 살짝 틀어진 화장을 고치는 것까지 귀찮음보다 즐거움이 넘치니 말이다. 겨우겨우 화장을 마친 나는 얼굴에 맺힌 땀을 손등으로 닦아냈다.


"아 바보!"


이미 늦었다. 번진 립스틱 자국은 이미 손등 전체를 감쌀 터였다. 도움반 선생님은 클렌징 티슈를 몇 장 뽑아 내게 건네주었다. 이에 나는 손을 저은 뒤 받은 클렌징 티슈를 책가방 걸이 끈 위에 올려두었다.


"누나가 쌤 뒤에 있어야 지울 수 있어요. 되레 화장이 지워질 수 있으니까요."


그 후 나와 도움반 선생님은 누나 쪽으로 시선을 모았다.


"강연이가 화장을 진짜 잘하는구나."


머릿속에 그려둔 대로 잘 마무리되었다. 대비를 순하게 다룬 대신 루미나이저에 가까운 피부톤을 맞춘 뒤 멀티 팔레트로 쉬머한 펄감이 살짝 돋아나게 눈 화장을 꾸며보았다. 아이디파이더에 마스카라까지 누나에게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화장품까지 곁들이니 여성 성인 분들이 할 법한 데일리 화장룩으로 바뀌어 있었다. 누나는 내가 쓰던 손잡이 거울로 화장이 어떻게 됐는지 둘러보는 중이었다.


"쌤. 립스틱은 저희 쪽에서 변상할 거니까 염려 말아달라고 얘기해주세요."


"아마 괜찮을 거야. 남는 화장품들로 받아온 거니까 크게 신경 안 쓰실 걸?"


"그럴 수가 없어요. 이 립스틱, 리옹 애딕트 립글로우 엑시코랄이잖아요. 13만 원 내외를 웃도는 고가의 립스틱이에요."


그렇다. 지금 내 얼굴에 칠해진 것만 3,4만 원 치란 뜻이다.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왔으나 누나의 표정을 보고 겉으로 드러낼 수 없었다. 누나가 저렇게 벙찐 표정으로 화장을 둘러보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마음에 들어?"


누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뒤 누나는 거울을 의자에 올려놓은 뒤 나와 대면했다. 아직 인상을 풀지 못한 모습을 보니 화가 덜 풀린 모양이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옆머리를 긁적 대며 누나에게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옛날 생각난다. 중학생 때 누나랑 처음 화장해봤을 때 파운데이션으로 서로 얼굴에 분칠 하면서 놀았었잖아. 덕분에 누나 방은 엉망이 되고 아빠는 인상을 쓰며 낙담해하셨지."


"그랬지..."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Make up with'였..."


나는 이 이상 입에 담아낼 수 없었다. 여기서 단정 지으면 독단적으로 착각하는 셈이니 말이다. 괜히 분위기가 가라앉기 전에 나는 다른 화젯거리를 들어 누나와 대면했다.


"누나 그..."


"메이크업 위드."


누나는 아래쪽을 지그시보다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거, 화해한다라는 뜻 맞지?"


"누나, 어떻게 그걸?"


"기억하고 있어. 그때 강연이가 메이크업 위드라고 말했었잖아. 화장하기 싫었던 내 앞에서 강연이가 화장품으로 같이 놀아줬어. 덕분에 화장을 할 수 있게 되었어."


"그랬었지. 맞아."


누나의 기억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나는 저지른 실수에 머쓱해져 잠깐 시선을 흘긴 채 뒷머리를 긁적였다.


"미안 누나. 들떴는지 좀 경솔했어."


"강연이 마음 알았으니까 괜찮아."


의외의 대답에 내가 놀랄 사이 누나는 내게 다가왔다. 그 후 고개를 숙여 머리를 내 가슴팍에 대더니 양팔로 내 어깨 쪽을 끌어안았다.


"실은, 나 외로웠어. 강연이가 이대로 멀어지면 어쩌나 싶어서 계속 불안했어. 그리고."


누나는 잠깐 울먹이다 겨우 침을 삼키며 나를 향해 올려다보았다.


"강연이가 없으면, 안 돼! 강연이랑 민트초코 먹고 싶고, 강연이랑 학교 가고 싶고, 강연이랑 놀러 다니고 싶어! 내 곁 떠나지 말아 줘! 난!"


누나는 급기야 울음을 터트리려 했다. 눈물이 송골송골 맺힌 모습에 나는 화장품 근처에 뒀던 티슈 갑을 들었다.


"누나, 화장하고 울면 매너가 아니랬지?"


나는 바로 티슈를 몇 장 꺼내 누나의 눈 주변을 티슈로 가볍게 두드렸다. 마스카라가 닿지 않게 티슈 모서리를 시작으로 결로 닦아내야만 했다.


"모처럼 여자다운 화장을 해봤는데 웃어야지. 동생 좋아한다면 앞에서 슬픈 표정 짓기 없기야."


"강연아."


"또 운다. 난 이제 괜찮으니까 함박웃음 한번 지어줘. 내가 누나 마음 아프라고 화장한 건 아니잖아?"


누나는 내 품에서 벗어나 조금씩 마음을 가다듬었다. 도움반 선생님은 나긋한 미소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다연이한테 강연이는 천사 같은 존재구나."


"천사까지는 아니에요."


잠시 뒤 누나는 입가에 미소를 짓더니 내가 보는 앞에서 해맑게 미소를 지어주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누나의 미소였다. 평상시 봐왔던 미소가 이렇게 오랜만에 다가오니 낯설면서도 반가운 느낌이었다. 해가 지기 전 노을빛 하늘이 창가 너머로 보이기 시작했다. 누나와 두 걸음 정도 차이나는 거리에서 누나 그림자는 점점 길어져 내 그림자를 향하고 있었다. 이에 나는 대각선으로 몇 걸음 걸어 누나와 그림자가 겹쳐 보이도록 서보았다. 누나가 그림자를 보자 나를 향해 애틋한 미소를 지었다.


"집에 가자."


"그래."


이제 남은 건 이 립스틱을 지우는 일이었다. 도움반 선생님 뒤에 누나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볼 때, 나는 머리를 넘긴 뒤 모자를 거꾸로 썼다. 머리카락에 클렌저가 안 묻기 위한 조치였다. 무릎 꿇고 위를 올려다본 순간 도움반 선생님은 나를 향해 분무기를 움켜쥐고 있었다.


"정말 괜찮은 거 맞아?"


"성능 확실하니까 빨리 해주세요."


"아니, 강연이 네가 다칠까 봐."


"괜찮아요! 이대로면 생활복도 못 벗는다구요. 가까이 대고 쏴주세요."


오늘 하필이면 하얀색 학교 생활복을 입고 온 날이었다. 반 단추형이라 무조건 화장을 지우고 벗어야만 했다. 도움반 선생님은 잠깐 숨을 고른 뒤 분무기를 내게 가까이 댔다.


"가, 간다!"


"넵!"


눈을 가린 내 얼굴에 분무기가 뿌려지기 시작했다. 구석구석 찌리는 통증에 나는 살짝씩 눈살을 찌푸렸다.


'이 무기를 나한테 쏘게 될 줄이야. 수압 좀 낮출걸!'


내 얼굴 주변으로 무언가 뚝뚝 떨어지는 감촉이 느껴졌다. 아마 립스틱이 클렌저에 녹은 액체일 것이다. 내 너머로 도움반 선생님과 누나가 까르르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클렌져 분사에 이곳저곳 다 막힌 채 어떤 대꾸도 하지 못했다. 가뜩이나 여드름 많이 생겼는데 이번 일을 통해 나는 우스꽝스럽게 보이지 않기 위해 마스크를 착용할 것만 같았다.


이제 해는 질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다가올 달을 당당하게 맞서야만 할 것이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파트는 8부작으로 완필됩니다.

다음은 길고 긴 가족 망쳐놓기 下편으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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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69. 가족 망쳐놓기 下 - 1 20.12.07 34 1 12쪽
» 68. 가족 망쳐놓기 上 - 8 20.11.30 27 1 11쪽
68 67. 가족 망쳐놓기 上 - 7 20.11.30 23 1 11쪽
67 66. 가족 망쳐놓기 上 - 6 20.11.24 26 1 13쪽
66 65. 가족 망쳐놓기 上 - 5 20.11.17 24 1 12쪽
65 64. 가족 망쳐놓기 上 - 4 20.11.10 29 1 11쪽
64 63. 가족 망쳐놓기 上 - 3 20.11.03 26 1 11쪽
63 62. 가족 망쳐놓기 上 - 2 20.10.27 39 1 11쪽
62 61. 가족 망쳐놓기 上 - 1 20.10.19 46 0 12쪽
61 60. 메마른 기억 - 7 20.09.18 32 0 12쪽
60 59. 메마른 기억 - 6 20.09.08 28 0 12쪽
59 58. 메마른 기억 - 5 20.08.31 29 0 11쪽
58 57. 메마른 기억 - 4 20.08.24 32 1 11쪽
57 56. 메마른 기억 - 3 20.08.19 28 0 11쪽
56 55. 메마른 기억 - 2 20.08.10 28 0 11쪽
55 54. 메마른 기억 - 1 20.08.03 27 0 11쪽
54 53.빛바랜 거울 - 7 20.07.27 34 0 13쪽
53 52. 빛바랜 거울 - 6 20.07.20 33 1 14쪽
52 51. 빛바랜 거울 - 5 +2 20.07.13 36 1 13쪽
51 50. 빛바랜 거울 - 4 20.07.06 34 0 12쪽
50 49. 빛바랜 거울 - 3 20.06.29 34 0 12쪽
49 48. 빛바랜 거울 - 2 20.06.25 34 0 12쪽
48 47. 빛바랜 거울 - 1 20.06.22 35 0 12쪽
47 46. 어긋난 조각 - 6 20.06.15 31 0 11쪽
46 45. 어긋난 조각 - 5 20.06.09 32 0 11쪽
45 44. 어긋난 조각 - 4 20.06.04 38 0 11쪽
44 43. 어긋난 조각 - 3 20.06.03 44 0 12쪽
43 42. 어긋난 조각 - 2 +1 20.05.20 37 2 11쪽
42 41. 어긋난 조각 - 1 20.05.15 31 0 13쪽
41 40. 마땅한 복수? - 5 20.05.13 3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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