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Kairte 님의 서재입니다.

배같은 동생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일반소설

Kairte까르
작품등록일 :
2020.01.17 23:48
최근연재일 :
2021.02.27 22:00
연재수 :
85 회
조회수 :
4,808
추천수 :
77
글자수 :
487,621

작성
20.01.17 23:55
조회
367
추천
5
글자
11쪽

Prolouge

DUMMY

나는 엄마가 무척이나 싫었다.


세상 물정 모르던 아기 시절, 엄마는 아버지와 누나, 그리고 내가 있는 가정으로부터 도망쳤다. 이후 아버지의 철저한 입막음으로 나는 엄마에 관해 아무것도 모른 채 세상을 살아갔다.


누나는 발달장애로, 3급이지만 중증 장애인으로 분류되어 많은 사람들로부터 손찌검을 받아왔다. 나는 그런 게 무척이나 싫어 누나를 괴롭히는 사람들이 있으면 내가 직접 나서 이를 막아섰다.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태반이었지만, 부당한 폭력을 당한 적도 여럿 있었다. 나는 그런 사회가 너무도 원망스러웠다. 누나가 대체 뭘 잘못했길래 다른 사람들한테 함부로 대해져야만 하는지 당최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엄마에 대해 알게 된 건 아버지의 술주정으로, 우연히 듣게 된 푸념이 그 시초였다. 8년 전 겨울, 그날따라 아버지는 술을 많이 드셨는지 얼굴이 새빨개진 채 몸을 비틀거렸다. 아버지는 우리를 보자마자 크게 소리치더니 이윽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나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눈을 부릅뜬 채 울먹이던 누나를 보듬어주기 바빴다. 우리에게 늘 온화하고 인자한 인상을 보였던 아버지, 술이나 담배를 보인 것이 손에 꼽을 정도였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어째서 저런 행태를 보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누나가 내 다리 품에 새근거리며 잠이 들 즈음, 화장실에서 아버지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누나를 이부자리에 눕힌 뒤, 화장실 문쪽으로 다가가 조심히 귀를 대었다. 문 너머로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흑흑, 아정아! 아정아... 왜 우릴 버린 거야, 왜?"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정, 우리 엄마의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아버지의 푸념에 나는 충격을 금치 못해 뒷걸음질 쳤다. 내 도덕적인 생각이 흐름을 잘 탔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엄마가 다른 남자와 바람피웠다는 걸 들었으니까 말이다.


나는 궁금한 게 있으면 인터넷 Q&A 사이트에 질문하는 습관이 있었다. 다음 날, 나는 학교 도서관 컴퓨터를 이용해 인터넷 질문 게시글에 이 사실을 올려보았다. 아직은 이 얘기에 서툰 나머지 두루뭉술하게 쓰인 내용들 투성이었다. 다행히 사람들의 이해가 빨라 일찍이 답장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더 큰 충격에 휩싸였다.


당시 내 나이는 불과 10살. 다시 답장을 훑어본 나는 눈두덩이 요동치며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았다. 그렇다. 엄마는 가정을 벗어나기 이미 오래전, 다른 남자와 내연해 아이를 가졌던 것이다.


이후로 나는 엄마, 아니 그 망할 아줌마의 뱃속에서 태어났다는 생각만으로 오장육부가 뒤틀려 화를 감출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이래, 아버지를 동정 어린 시선으로 보다, 종종 말벗이 되어 아버지와 가끔 얘기를 나누었다. 아버지가 행복할 수만 있다면 나라도 기꺼이 나서고 싶은 바람이었다.


중학교 졸업식이 끝난 날 밤, 나는 아버지와 호수공원 산책로에서 발을 맞추며 대화를 나누었다. 아버지는 호숫가 너머로 보이는 도심 야경에 미소를 지었다. 동시에,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인적이 드문 상황인지 연신 확인했다. 아버지와 단둘인 이 타이밍에서 반드시 엄마에 관한 얘기를 꺼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산책로 옆 나무그네에 앉을 즈음, 사람들은 하나둘씩 빠져 적적한 분위기를 내었다. 때가 온 것이다. 아버지의 얼굴을 보며 마지막까지 고민이 오갔으나, 결국 엄마에 관해 아는 사실들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그 후 아버지가 보이는 태도는 그야말로 청천벽력. 창백히 굳은 표정으로 날 잠자코 보더니 그대로 고개를 숙여 내게 거리를 두려 했다. 나는 그런 아버지에게 팔짱을 끼며 아버지의 등을 가볍게 두들겼다.


"이제 그만해요. 아버지가 혼자서 짊어질 문제가 아니잖아요."


아버지의 눈가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져 바지 위를 적셨다. 이내, 아버지는 내 곁에 몸을 기대 흐느끼기 시작했다. 덩달아 눈시울이 붉어진 나는 한 손으로 코를 꼬집으며 감정을 다잡았다. 그 후 아버지에게 작게나마 미소를 지었다. 아버지의 우는 모습을 보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었다. 화장실에서 술주정을 벌였던 이후, 약 7년 만이었다.


내 거침없는 행동에 아버지는 감정을 추스른 후 내게 엄마에 관한 것들을 하나둘씩 알려주었다.


"엄마한테 나는 너무나 과분한 남자였어."


"네? 아버지가 얼마나 자상하신 분인데 그걸 싫어한단 말이에요?"


"그게 문제야. 아정이는 좀 더 밀당 있는 가정 라이프를 원했던 거야. 반면에 난 일만 열심히 하는 가장이 되려고만 했지. 그것 때문에 엄마랑 말다툼이 심해졌고, 이후부터 외도가 많아졌던 거란다."


"그때, 내연남을 만났단 뜻이죠?"


"맞아. 알고 보니까 내연남도 지인 지간이었지. 내연하기 전부터 썸이 있던 사이였고."


"그럴 수가."


나는 가벼운 주억거림 뒤로 침울해진 아버지의 어깨를 가볍게 주물렀다. 아버지는 금세 미소를 되찾아 내 얼굴을 쓰다듬었다.


"이런 아들을 둔 것도 몰랐던 무심한 아빠야. 나는 아빠라고 할 자격도 없어."


나는 크게 고개를 저었다.


"그런 소리하지 마세요. 누나하고 절 이렇게 잘 키워주신 건 아버지니까요!"


아버지는 실소를 지으며 내 말을 흘려들었다. 나는 답답한 심정에 손을 가볍게 주먹 쥔 채 가슴을 툭툭 쳤다. 그러나 이대로라면 급진적인 대화로 이어질 것 같아 대화의 맥을 보류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의 재정에 경사가 붙어, 우리 가족은 이리저리 떠다니던 임대 주택에서 좋은 아파트로 이사 갈 수 있었다. 신설된 지 얼마 안 된 주상복합 아파트로, 저번 집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넓어진 방들이 나와 누나를 들뜨게 했다. 아버지는 그런 우리들의 모습을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아버지는 남은 돈으로 누나와 나를 위해 여러 선물을 준비하려 했으나, 학비에 힘써달라는 내 간곡한 요청이 이를 가로막았다. 학교비에 펑고가 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누나가 장애인 특혜로 학비를 대폭 삭감받을 동안, 나는 담임 선생님과 처음 면담을 가질 때부터 학비 지원이 되는 장학금 제도를 수시로 묻고 다녔다. 가장 쉬운 제도는 당연 성적이었다. 나는 1학년부터 온 생각을 공부하는 데 쏟아야만 했다. 비록 친구를 많이 사귀진 못했지만, 빡세게 공부한 덕분에 전교 10등 이내에 노는 수준에 이르렀다. 학비 문제도 어느 정도 개선되어 1학년 내내 집안 재정에 큰 보탬이 되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런 나를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공부만 한 탓에 동아리, 방과 후 활동, 대회나 축제도 뒤로 하며 오직 누나의 상황 환기에만 신경 썼기 때문이다. 담임 선생님도 성적은 흡족히 보셨지만, 그 외의 활동 기록이 봉사활동 외에 전무한 것에 걱정을 표했다. 이후 담임 선생님은 나를 교무실로 불러 생기부에 들어갈 만한 것들을 내게 조언해 주었다. 그중 하나가 동아리 활동이었다.


공부할 시간이 줄어드는 게 영 내키진 않았지만, 밋밋해지는 생활기록부를 외면할 순 없어 보였다. 고심 끝에 나는 동아리 활동에 참석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선생님이 추천해 준 곳은 우리 학교에서 가장 핫하게 돌아가는 방송 동아리, 레미(REMI)였다.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었다. 레미라면 좀 노는 학생들이 즐비한 동아리로 기억했기 때문이다. 처음에 나는 거부 의사를 표했지만 담임 선생님의 적극적인 어필로 인해 면접만 한번 봐보는 걸로 상황을 타결했다. 며칠 뒤, 나는 면접장 근처 의자에 앉아 차례를 기다렸다. 재학생 면접이라 인원은 많지 않았으나, 좀 놀 법한 학생들이 내 주변을 에워싸 희희낙락 대화를 나누었다. 너무도 안 맞는 분위기에 나는 초조한 감정으로 면접장에 들어섰다.


내 앞에는 레미 동아리 학년 부장 대표들이 한 명씩, 총 세 명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자리에 들어서자마자 그들은 내게 좋은 인상을 보내주었다. 가운데 자리에 앉은 2학년 여학생 선배는 짧게 손뼉을 친 뒤 머금은 미소와 함께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면접하기 앞서 우리 레미 동아리에 입부 신청한 것을 환영한다는 의미로 지원자한테 환호의 메시지를 전해주자!"


"와!"


레미 부원들은 활기찬 표정으로 내게 양손을 흔들어 주었다. 갑작스러운 분위기에 나는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그러나, 대면에 실례라는 생각에 금세 정면을 바라볼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면접이 시작되었고, 나는 부원들과 눈을 맞추어 지원 동기나 자신이 동아리에서 이바지하고 싶은 점 등을 성심껏 말해갔다. 짧게 면접이 끝난 뒤, 나는 덤덤하게 보이려 애쓴 채 하굣길에 접어들었다. 너무 딱딱하게 말한 탓에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을 거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나의 경험이라 생각하고 넘어가려던 내게, 얼마 지나지 않아 휴대폰으로 하나의 문자가 도착했다.


'우리 레미에 입부된 걸 진심으로 축하해! 오리엔테이션은 개학식 방과 후에 진행될 예정이니까 빠지기 없기!'


경악도 잠시 나는 입을 가리며 메시지 창을 재차 확인했다. 공지에서 알려준 번호로부터 온 문자, 틀림없는 레미의 합격 통보였다.


'내가 레미에 들어간다고?'


이 사실은 그대로 학교를 통해 일파만파 소문이 퍼져갔다. 누나도 소식을 듣고 집에 돌아와 내게 백허그를 했다. 누나는 헤벌레 웃으며 내 몸을 좌우로 흔들었다.


"강연아, 레미된 거 사실이야?"


"어, 사실이야."


"정말? 강연이 무대에서 볼 수 있겠네."


"아직은 어디에 배정될지 안 정해졌어. 조금만 기다려보자."


누나가 마냥 좋아하며 흔드는 모습에 나는 기분이 좋아져 내 몸을 좌우로 흔들어 누나의 장단에 맞춰갔다. 장애인임에도 이렇게 밝고 건강한 누나의 모습에 감사했다. 한편으로는 우리를 버린 망할 아줌마가 생각나 기분이 역하기도 했다.


이대로만 갔으면 참 좋았을 텐데.. 이 선택이 그런 결과를 불러올 줄 몰랐다. 인지하고는 있었지만 그 상황이 내게 직접적으로 직면하게 될 줄은. 그것은, 배같은 동생과의 만남이었다.

프롤로그.png

LAST CARD

망할 아줌마를 회상하며 바라보는 호수공원의 야경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배같은 동생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소설 외전 삭제 및 3부 작품 연재 계획 안내입니다. 23.02.01 8 0 -
공지 통산 100화 연재까지 봐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21.08.25 16 0 -
공지 연재 조정 안내드립니다. 21.08.09 16 0 -
공지 금일 연재 조정 안내드립니다. 21.06.14 13 0 -
공지 외전 방식 변경 안내 드립니다. 21.05.13 22 0 -
공지 몇 주간의 수정 작업이 있겠습니다. 21.03.04 22 0 -
공지 연재 조정 안내 드립니다. 21.02.15 21 0 -
공지 라스트 카드 작업에 대한 안내입니다. 21.01.30 21 0 -
공지 '배같은 동생' 작품 개시까지 어언 1년이 지났습니다. 21.01.15 25 0 -
공지 조회수 2000 돌파 감사드립니다. 20.12.12 24 0 -
공지 금일 연재 조정 안내드립니다. 20.09.14 25 0 -
공지 금일 연재 조정 안내드립니다. 20.08.17 25 0 -
공지 연재 보류에 관한 안내 드립니다. 20.04.10 37 0 -
공지 연재 차질 안내드립니다. 20.02.22 40 0 -
공지 연재 방식에 대한 안내입니다. 20.01.17 36 0 -
85 84. 가족 망쳐놓기 下 - 16 21.02.27 41 1 22쪽
84 83. 가족 망쳐놓기 下 - 15 21.02.26 29 1 15쪽
83 82. 가족 망쳐놓기 下 - 14 21.02.26 28 1 14쪽
82 81. 가족 망쳐놓기 下 - 13 21.02.21 27 1 17쪽
81 80. 가족 망쳐놓기 下 - 12 21.02.21 37 1 20쪽
80 79. 가족 망쳐놓기 下 - 11 21.02.09 26 1 21쪽
79 78. 가족 망쳐놓기 下 - 10 21.01.31 29 1 14쪽
78 77. 가족 망쳐놓기 下 - 9 21.01.23 33 1 13쪽
77 76. 가족 망쳐놓기 下 - 8 21.01.18 38 1 12쪽
76 75. 가족 망쳐놓기 下 - 7 21.01.09 29 1 11쪽
75 74. 가족 망쳐놓기 下 - 6 21.01.02 36 1 12쪽
74 73. 가족 망쳐놓기 下 - 5 20.12.26 35 1 15쪽
73 72. 가족 망쳐놓기 下 - 4 20.12.20 29 1 12쪽
72 71. 가족 망쳐놓기 下 - 3 20.12.12 39 1 15쪽
71 70. 가족 망쳐놓기 下 - 2 20.12.11 37 1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