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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rte 님의 서재입니다.

배같은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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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rte까르
작품등록일 :
2020.01.17 23:48
최근연재일 :
2021.02.27 22:00
연재수 :
8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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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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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글자수 :
487,621

작성
20.07.06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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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0. 빛바랜 거울 - 4

DUMMY

"어떻게 아셨어요?"


"난 항상 민아하고 긴밀한 대화를 나누니까. 네 얘기 듣고 민아 얘기 듣고, 이런 셈이지."


그 순간 나는 민후 형과 했던 대화가 떠올랐다.


"민아와 만날 때는 아버님이 주선하는 거예요?"


"뭐 그렇다고 해야겠지? 망할 여편네가 눈치채지 못하게 만나야 하니까."


"그렇군요."


나는 다시 화면을 응시해 민후 형이 적은 내용들을 재차 훑어갔다. 난처한 상황이 될게 뻔히 보였다. 중재를 해야 하는 나로서 민아와 관한 트러블을 일으키기 딱 좋은 화젯거리였다. 벌써부터 어떤 말로 둘러대야 할지 머리가 지끈해질 즈음 민후 형은 화면에 무언가를 연이어 적어갔다.


"아버지께 부탁하기엔 정보도 적고 너한테 전적으로 맡기기엔 다소 부담스럽잖아. 그래서 대책을 준비해봤어."


민후 형이 펜을 들자 나는 화면을 가득 채운 글들을 가볍게 훑어갔다. 무슨 내용인지 대충 이해하려던 찰나 나는 몇몇 키워드에 눈을 떼지 못했다. 이성을 차려 다시 확인한들 보이는 그대로였다. 나는 경직되어 침을 꼴깍 삼키다 눈을 깜빡이며 손가락으로 키워드가 적힌 쪽을 가리켰다.


"민후 형. 진심이에요?"


민후 형은 오른손으로 펜을 휘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잖아. 상황을 뒤집으려면 전면전도 감수해야 돼."


민후 형 손에서 민아 어머니와 직접 대면한다는 발상이 나올 줄 꿈에도 몰랐다. 민후 형의 진중한 표정을 보니 번복 따윈 없어 보였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민아의 소원으로 민후 형이 얼마나 큰 전환점을 맞이했는지 알고 있지만 결과적인 부분이 탐탁지 못했다. 결국 잘 나가던 웹툰을 접고 다른 웹툰을 연재하는 모험과도 같은 길이 주어지니 말이다. 내가 직접적으로 상관할 문제는 아니었으나 한 명의 조력자로서 민후 형의 신념을 방관해야만 하나 싶은 초조한 감정이 나를 동요했다. 그렇다고 변론할 여지가 남았던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저 묵묵히 감정을 내뱉지 못한 채 민후 형의 작전을 경청했다.


일정은 내일 저녁, 민아네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짧게 식사를 가진다는 전제였다. 사전에 민아 아버지와의 전화 통화로 선약을 끝마친 상태로 식당부터 의자 배치, 자리 구성까지 모두 짜인 계획된 만남이었다. 내가 이래저래 꼬투리를 들기도 전에 이미 결정 난 작전에 승인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잠시 뒤 나는 맥이 빠져 본방 오른쪽 벽에 붙은 수납형 플라스틱 침대에 몸을 기댔다. 민후 형은 테이블을 정리한 뒤 두었던 것들을 제자리에 갖다 놓던 중이었다.


'요즘 너무 복잡하게 돌아가는걸.'


갈등의 늪에 빠져나오질 못한 것 같아 내 눈꺼풀은 점점 무거워졌다. 내 목과 등을 받치고 있던 매트릭스가 포근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이는 일신적인 감정이었고 나는 다시 자세를 꼿꼿이 세우며 민후 형이 본방에 들어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많이 피곤했지? 집까지 차로 데려다줄게."


"아니요! 정신도 차릴 겸 걸어 갈게요."


나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본방 바깥쪽으로 향했다. 민후 형이 따라오려 하자 나는 민후 형과 마주 본 채 손을 저으며 이를 막아섰다.


"정말 괜찮아요. 시험 기간이라 밤을 좀 새서 그래요."


"내 눈은 못 속인다."


민후 형이 검지 손가락으로 내 가슴 중앙을 튕기듯이 누르자 나는 당황할 새도 없이 다리에 힘이 풀려 짧게 뒷걸음질 쳤다. 나는 이에 부끄러워 얼굴을 숙였고 민후 형은 한 손으로 내 어깨를 토닥였다.


"내숭은 한 번이면 충분해. 가자!"


나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베이터를 나와 지하 1층 주차장에 들어서니 멀지 않은 곳에 민후 형의 차가 사인을 받고 헤드라이트를 깜빡였다. 가까이 가서 보니 익숙한 범퍼 모양이 보여 차종이 뭔지 단박에 알아보았다.


"민후 형, 이거 W3 1세대 맞죠?"


"이걸 맞추네. 자동차에 관심 있어?"


"아버지께서 몇 년 전까지 자차로 타고 다니셔서 기억에 남는 차종 중 하나예요."


"호오, 지금 모는 차는 다른 거겠네?"


"네. C220으로 바꾸셨어요."


민후 형이 운전석 문을 열려던 순간 그대로 몸이 얼어붙자 나는 의아한 표정과 함께 민후 형 쪽으로 시선이 갔다. 얼마 안 가 민후 형은 눈을 부릅뜬 채 나와 대면했다.


"C220이라면..."


민후 형은 손가락으로 허공에 무언가를 그려댔다. 나는 상황과 그림이 무엇을 나타내는지 이해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민후 형은 짧고 강렬한 휘파람과 함께 내게 눈을 떼지 못했다.


"유복한 가정이구나."


나는 그제야 대화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했다. 민후 형이 운전석에 들어서자 나는 조수석에 앉아 민후 형에게 보란 듯이 손사래를 쳤다.


"말이 그렇단 거지, 3만 따리에 4세대 가장 앞에 나온 중고차예요. 그것도 비용이 세서 생활비도 줄이고 살 정도였어요.."


내 절실함이 통했는지 민후 형은 시동을 걸자마자 가볍게 웃음을 보였다.


"미안. 잠시 차가 재산을 빗대는 수단처럼 보였어."


"네..."


더 얘기하면 구차하게 보일 것 같아 나는 안전벨트를 착용한 채 정면을 보았다. 민후 형이 주차장 출구 쪽을 향할 동안 나는 중앙에 있던 내비게이션이 어떤지 파악해갔다. 오피스텔을 빠져나와 사거리 신호등에서 차량이 멈추자 나는 민후 형의 허락을 받아 행선지를 적어갔다.


"다 하면 눈 좀 붙이고 있어."


"괜찮아요. 얼마 안 걸려서요."


"이 근처라면 아파트 단지 쪽일 텐데. 어디 아파트야?"


"디이 센트럴타운 아파트요."


"센트럴, 잠깐만!"


내가 세팅을 완료하자마자 민후 형은 내비게이션 경로가 어떤지 살펴보았다.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뀌자 차는 경로를 따라 이동했고 민후 형은 정면만을 바라본 채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무릎 위에 양손을 모으고 있었다.


"어디 알파벳에서 내려야 돼?"


"아니요. 상가 입구 쪽에서 내릴게요."


불현듯 어색해진 분위기에 나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민후 형에게 짧게 인사한 뒤 발 빠르게 아파트 단지로 들어갔다. 이미 일몰이 막바지에 이를 터라 선선한 바람이 주변 곳곳을 지나갔다. 회장 계집만 아니었어도 이곳에서 만큼은 모자와 마스크를 벗을 텐데 말이다.


집에 도착하면 또다시 냉전일 거라 예상하던 중.


'어?'


갑자기 내 머릿속을 꿰뚫는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분명히 저번 주에도 이런 생각을 이어왔다. 그리고 나는 작전을 세워 이를 조율하려 했다. 오늘이 그 날이었다. 나는 분명히 상황에 맞게 조력자인 선유를 초대했다.


거기서부터 내 머릿속 필름이 끊겼던 것이다.


'맞아! 오늘 누나하고 거리 좁힐 생각이었는데, 어째서...'


염두에 두고는 있었다. 선유와 식사를 마치면 그대로 누나에 관해 얘기를 나누려 했었다. 그러나 누나와의 어색한 타이밍과 선유가 망할 아줌마에 연관된 발언을 한 탓에 그대로 상황을 유연하게만 대처하려 들었다. 결국 나는 작전의 본분도 잊은 채 누나와의 본연적인 문제에 수동적이었단 뜻이다.


단지 입구 유리문에 들어설 때까지 나는 온몸에 힘이 빠져 손으로 유리벽을 댄 채 겨우 몸을 지탱했다.


'지금까지 이런 적 없었는데. 목적을 잊고 일탈하다니.'


오늘 하루 농사는 나 자신이 아닌 남에 의해 움직이는 과정의 전부였던 것이다. 누나는 내가 차린 식사 만을 제외하고 주변에 인기척이 될 만한 흔적을 놓지 않았다. 저녁도 눈칫밥으로 두고 나는 방에 틀어박힌 채 누나에게 개인적인 시간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 오늘 일을 만회하고자 늦게나마 선유와 채팅으로 대화를 나눠갔다. 아버지 차에 관해 얘기하니 선유의 답글이 연이어 쏟아졌다.


'좋았던 건 이해하는데 SNS에 공공연히 올린 건 좀 부끄럽네.'


'미안 ㅠㅠ 어떻게든 남기고 싶었어'


'누구 차냐고 물어보면 센스 있게 답해줘. 예감이 안 좋아서.'


'ㅇㅋ'


말하기 앞서 나는 SMK 채팅방이 어떤지 확인했다. 우리 학교 일정이 공표되어 SMK 계집들이 곡소리를 내던 중이었다. 이를 유나가 어렵게 중재하고 있었다.


민아도 나서 활동하는 걸 보면 감정적으로 휘둘리지 않았단 생각이 들어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나는 다시 선유 채팅방으로 들어가 자판을 두들겼다.


'SMK에서 선유파 대표 뽑는 회의한다는 거 알고 있었어?'


'미로한테 대충 들었어'


'이번에는 압박 좀 넣어야 되는 거 아니야? 제2의 규리가 나올 순 없잖아.'


'알고 있어 ㅠㅠ 미로하고 계속 얘기해 볼 생각이야'


'그럼 다행이네.'


잠깐 고민했지만 지금이 찌르기 가장 좋은 타이밍이라 판단했다.


'너는 민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갑자기 그건 왜?'


'그냥. 다른 대표들하고 달리 민아와는 접점이 별로 없었잖아. 괜스레 궁금해졌어.'


잠시 동안 선유에게 답글이 없나 싶었지만 이내 적는 중이란 상태창이 떴다.


『'말 그대로야.'


'민아하고는 별 얘기도 해본 적 없어서 잘 모르겠어.'』


'예전에 하련이가 와서 나한테 쪽지 건넸던 거 기억나? 만화 동아리 부원까지 와서 얘기 나누고 그랬잖아.'


잠깐의 텀이 지나자 상태창이 떴다.


'그랬었지 참 그거 어떻게 된 거야?'


곧바로 내가 자초지종을 답글에 담아두려던 순간.


"잠깐만."


다른 견해가 떠올라 머릿속을 정리하니 내 행동이 경솔하게 느껴졌다. 나는 이 상황을 유려하게 만들고자 선유를 끌어들였는데 정작 작전은 민후 형의 의도대로 흘러가는 루트였다. 이래선 선유를 괜한 곳에 휘말리는 꼴이고 나는 더 복잡해진 관계에 난감해질 것이다.


일단 선유의 호기심에 맞춰 자판을 두들겼다.


'민아의 오빠 분이 나한테 웹툰에 관해 자문을 구했었어.'


'웹툰? 그분 웹툰 작가야?'


'ㅇㅇ. 그런데 나 혼자 판단하고 피드백하기엔 스토리가 좀 어려워서 도움을 청할 사람을 구하고 있었어.'


'그게 나다 이 말이지?'


선유는 뒤이어 오달진 미소와 함께 손으로 턱을 괴는 남자 캐릭터 이모티콘을 연이어 발사했다. 나는 임기응변에 성공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도와줄 수 있어?'


'물론! 네가 부탁하는 건데 뭘 못하겠어?'


'고마워. 비밀리에 나누는 대화니까 남한테 알려주면 안 돼.'


'걱정 마 ㅋㅋ 절대 그럴 일 없을 거야 약속할게'


절실함에서 우러난 극적인 발상이었다. 이 접근은 마치 나 자신의 이야기를 내 친구 이야기인데 라고 속여 말하는 듯한 뉘앙스였다. 이제 민후 형과의 스토리를 웹툰에 빗대어 표현하면 그만이었다. 어차피 민후 형 웹툰은 자신의 실화를 바탕으로 연재하는 작품이니 말이다.


선유에게 말하기 앞서 나는 이 중재에 장애물로 지목될 하련을 다른 채팅방으로 초대했다. 자판에 두들길 문장은 짧고 간결했다.


'선유한테 민후 형 얘기하면 저번처럼 끝나지 않을 거다.'


답글 이후 나는 선유에게 가정을 가장한 사실을 알려줬다. 민후 형이 어떤 웹툰을 쓰는지, 스토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선유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충분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피곤해 금방 뻗을 것 같던 내 몸은 대화의 장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좋은 컨디션을 유지해야 했기에 밤잠을 설칠 순 없었다.


달이 뜨고 지는 하룻밤을 새고 나는 저번보다 한결 가뿐해진 마음으로 일요일 아침을 맞이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s: 조회수 1000 돌파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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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67. 가족 망쳐놓기 上 - 7 20.11.30 23 1 11쪽
67 66. 가족 망쳐놓기 上 - 6 20.11.24 26 1 13쪽
66 65. 가족 망쳐놓기 上 - 5 20.11.17 24 1 12쪽
65 64. 가족 망쳐놓기 上 - 4 20.11.10 29 1 11쪽
64 63. 가족 망쳐놓기 上 - 3 20.11.03 26 1 11쪽
63 62. 가족 망쳐놓기 上 - 2 20.10.27 39 1 11쪽
62 61. 가족 망쳐놓기 上 - 1 20.10.19 46 0 12쪽
61 60. 메마른 기억 - 7 20.09.18 32 0 12쪽
60 59. 메마른 기억 - 6 20.09.08 28 0 12쪽
59 58. 메마른 기억 - 5 20.08.31 29 0 11쪽
58 57. 메마른 기억 - 4 20.08.24 32 1 11쪽
57 56. 메마른 기억 - 3 20.08.19 28 0 11쪽
56 55. 메마른 기억 - 2 20.08.10 28 0 11쪽
55 54. 메마른 기억 - 1 20.08.03 27 0 11쪽
54 53.빛바랜 거울 - 7 20.07.27 34 0 13쪽
53 52. 빛바랜 거울 - 6 20.07.20 33 1 14쪽
52 51. 빛바랜 거울 - 5 +2 20.07.13 36 1 13쪽
» 50. 빛바랜 거울 - 4 20.07.06 35 0 12쪽
50 49. 빛바랜 거울 - 3 20.06.29 34 0 12쪽
49 48. 빛바랜 거울 - 2 20.06.25 34 0 12쪽
48 47. 빛바랜 거울 - 1 20.06.22 35 0 12쪽
47 46. 어긋난 조각 - 6 20.06.15 31 0 11쪽
46 45. 어긋난 조각 - 5 20.06.09 32 0 11쪽
45 44. 어긋난 조각 - 4 20.06.04 38 0 11쪽
44 43. 어긋난 조각 - 3 20.06.03 44 0 12쪽
43 42. 어긋난 조각 - 2 +1 20.05.20 37 2 11쪽
42 41. 어긋난 조각 - 1 20.05.15 31 0 13쪽
41 40. 마땅한 복수? - 5 20.05.13 3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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