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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rte 님의 서재입니다.

배같은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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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rte까르
작품등록일 :
2020.01.17 23:48
최근연재일 :
2021.02.27 22:00
연재수 :
8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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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94
추천수 :
77
글자수 :
487,621

작성
20.11.17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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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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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2쪽

65. 가족 망쳐놓기 上 - 5

DUMMY

"아침부터 고생이 많아."


노란색 완장을 자세히 보니 숫자 1이 박혀 있었다. 나와 1번 후보 학생끼리 시선을 마주함에 승준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기웃댔다. 후보 1번이 아니어도 태천고 학생이라면 어렴풋이 들어본 적 있는 2학년 수석, 동수는 하복 매무새를 갖추며 오퍼레이터 안으로 들어왔다.


"엄친아께서 여긴 어쩐 일이실까? 유세라도 하러 왔나?"


"그냥. 작년에 레미에서 실수 저질렀다길래 한번 와봤어. 내 유세가 멋대로 끊길 순 없잖아?"


언제 봐도 왕동수의 거만은 여전했다. 왕 씨 성은 아니지만 하도 왕재수같이 구니까 2학년 학생들이 손수 지어준 별칭이었다. 동수는 승준이 쥐던 체크박스를 보더니 고개를 가볍게 끄덕인 뒤 고개를 돌려 나와 대면했다.


"그러고 보니 너 교지 사건은 어떻게 된 거야?"


이에 나는 한숨을 내쉰 뒤 손으로 차고 있던 마스크 라인을 바로잡았다.


"교지편집부가 멋대로 선동했던 거야."


"그래? 난 네 소문들이 진짜인 줄 알고 공약에 넣을까 싶었거든."


"뭔 소문?"


나는 곧잘 어색한 공기가 흐른단 걸 눈치챘다. 나 빼고 다 아는 것 마냥 승준과 동수가 나를 지그시 노려보았다. 이에 괜히 머쓱해져 손가락으로 쓰고 있던 검은색 야구 모자챙을 긁적였다.


"뭔데? 내가 항상 모자랑 마스크 차는 것 때문에 그래?"


"뭐, 그것도 있고. 좀 이상한 소문들이 많아. 본인도 알 줄 알았는데 좀 의외네."


막상 생각해보니 안 생기려야 안 생길 수가 없는 조건이었다. 우리 지역에서 가장 문젯거리인 여중과 그 여중생들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SMK는 일반 학생들에겐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제대로 심문하지 않던 나였기에 나를 표적으로 삼는 소문들이 우후죽순 생겨났을 것이다. 내 예상이 맞은 듯 승준은 겨우 입을 열어 내게 떠도는 소문이 뭔지 말해주었다. 나는 애써 코웃음 치며 소문을 얕보았지만 동수의 시선으로 보아 털털한 대답은 통하지 않을 듯 보였다.


"환장하겠네. 그런 소문들이 사실일 리가 없잖아."


"본인은 그렇게 말하는데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야."


나는 또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인정할 건 인정하면 되는 거지? 그래. 유나랑 같이 만났던 적은 있었어."


이 발언에 주변이 들썩이는 건 시간문제였다. 듣자 하니 내가 유나와 불건전한 관계를 가진다는 소문이 일파만파 퍼진 모양이었다. 동수는 아예 휴대폰을 꺼내 자판을 두들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다음엔!"


"흥분하기는. 아버지끼리 친해서 만나는 건 자연스러운 거 아닌가?"


"뭐?"


"말 그대로야. 우리 아버지는 더글라스 강남점 MD고, SMK 회장 계집 아버지는 더글라스 국내 지사 IT부서 부장님이셔. 어렸을 때부터 서로 면식이 있었는데 SMK 회장인 유나는 듣기만 해 봤지 만나보진 못했다, 그래서 얘기만 해보고 싶어서 만나본 거야."


잠깐 동안 주변에 정적이 이어졌다. 승준은 머리를 긁적이며 자신의 생각과 상이되는 부분을 비교하는 듯 보였다. 동수 또한 비슷한 여파로 휴대폰 앞에 손가락만 버벅거릴 뿐이었다.


"뭔가 이상한데? 너 그 SMK 회장이랑 연인 사이 아니었어?"


"엄연히 말하자면 유나가 짝사랑하는 거지. 그러다가 우연히 아버님과의 사이를 알게 된 거고."


"그렇다면, 본 맥락은 부인한다는 뜻이지?"


뭐랄까, 동수가 교지편집부 부원 같아 조금은 짜증이 났다. 그러나 이럴수록 평정심을 가지고 맞서야만 했다. 내가 여기서 실언을 저지르거나 소문을 계속 묵인할 시 감당 못할 후폭풍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앞선 질문부터 SMK와 함께 비행을 저지른다는 소문, 여중생에게 화장으로 접근해 꼬신다는 소문, 범법자 신분 세탁을 위해 모습을 감춘다는 소문 등 다양한 질문이 나돌았다. 나는 화를 억누른 채 동수에게 하나둘씩 대답했다. 강당에 들어왔다가 얼떨결에 찾아온 난관이었다.


"학교에서 기자하는 짓거리 다 하고 자빠졌네 진짜. 교육위원회에 신고해버릴까 보다!"


나는 순간 화를 참을 수 없어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승준이 가까이 다가와 날 말리려 하자 나는 들고 있던 손을 말아 헛기침을 이어갔다. 동수는 아예 휴대폰을 넣어둔 채 내 얘기에 경청하는 중이었다.


"그럼 왜 굳이 모자랑 마스크를 쓰는 거야? 교내 시선 안 좋게 보는 거 알잖아."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 그래. 적어도 등굣길과 하굣길 때는 착용하고 다녀야 돼."


"그렇게 미꾸라지처럼 빠지려고만 들면 곤란할 텐데? 내가 전교 회장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누구 맘대로 단언하는 거지?"


낯선 여학생의 목소리에 오퍼레이터에 있던 일동은 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엔 오른쪽 팔에 초록색 완장을 단 여학생이 있었다.


"회장이 될 사람이 남의 사생활이나 뒤적이다니, 최악이네?"


여학생이 계단을 타고 내려오자 초록색 완장에 숫자 2가 적힌 걸 알 수 있었다. 동수는 여학생을 보며 코웃음 친 채 허리춤에 손을 대었다.


"윤주이, 너야말로 언제까지 백믿고 나댈래?"


"자격이 있는 학생은 다 밑바탕이 되니까 할 수 있는 거야."


동수는 눈썹을 추켜올리며 주이를 노려보았고 주이는 자신의 검은 생머리에 손을 대 옆머리를 다듬으며 동수를 빤히 쳐다보았다. 전교 회장 유력 후보끼리의 불꽃 튀는 신경전이 시작된 것이다. 덕분에 나와 승준은 오퍼레이터에서 못한 검사를 마무리지을 수 있었다.


오퍼레이터를 비우고 문단속하는 순간까지 회장 후보끼리의 언쟁은 계속되었다. 교내 학생들의 생각을 반영하고 피드백하는 개방형의 동수와 'FLAT' 정책을 이어가려는 현 부회장 후배 친구, 주이는 오래전부터 지지층을 쌓아오며 회장 자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승준이 말하길 현 여론 조사에선 동수가 조금 더 앞선다는 모양이다. 동수는 자신에 찬 듯 가볍게 웃으며 주이에게 여러 손짓을 보내고 있었다.


"네들 때문에 학생들이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알아? 뭐만 하면 마녀사냥, 미투, 성희롱이니. 학생들 포용력 줄이려고 작정한 거 아니냐?"


"하지 말아야 할 짓을 안 하면 되잖아. 네들 때문에 사회적 약자는 항상 피해 보는 거 몰라?"


"아니 학교가 무슨 사회 축소판이야? 언제까지 집행놀이할 생각이지?"


"왜 최소한의 매너라 생각하지 않는 걸까? 지금까지 해온 결과와 자료만 봐도 보일 텐데."


보기만 해도 오늘 오후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눈에 보였다. 나는 일찍이 승준을 꼬드겨 재빨리 강당을 빠져나왔다. 아침부터 복잡하게 돌아가니 잠시 머릿속이 먹먹했다.


"선배 아침부터 저기압이네요."


"그러게. 저것들 무효표 받아봐야 정신 차리려나?"


이에 승준은 눈을 희번덕 뜨며 나를 바라보았다.


"무효표라뇨?"


"아직 못 들었으려나? 우리 학교는 전교생의 66% 이상의 유효표를 받아내지 못하면 재선거하도록 규정되어 있어. 그래서 입후보 학생들은 순수한 1학년과 입시에 방해받고 싶지 않은 3학년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선거 유세를 펼치지. 2학년에서 무효표가 많아봤자 1학년과 3학년의 화력을 맞서진 못할 테니까."


"오, 학교만의 전통이 있었군요."


"재투표한 선례가 1번밖에 없다고 하지만 뭐 그래. 예전부터 2학년 쪽에서 무효표가 많다나 봐."


이미 2학년 쪽에선 무효표를 선언한 학생들이 줄을 짓고 있다. 하련을 비롯한 FLAT 정책에 격한 반감을 표했던 학생들은 동수 쪽에 표를 주는 것이 아닌, 무효표로 맞서겠다고 못을 박은 상태였다. 자신들의 무효표가 많아져야만 다른 학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판단한 것이다.


입후보 학생들이 강당을 나온 뒤, 나는 동수의 말 따라 모자와 마스크를 벗고 교내에 들어섰다. 시험공부에 열중했던 탓에 마스크로 가렸던 부분은 트러블로 박살난 상태였다. 이제는 멋으로 깔 수는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만 것이다. 머리는 실장 아저씨께서 관리해준 덕분에 스포츠 컷으로 무난하게 다닐 수 있었다.


화장실 거울에 비치는 얼굴에 나는 한숨을 내쉬며 세면장에서 손을 닦아댔다. 그때 같은 반 학생들이 화장실에 들어와 내쪽을 바라보았다.


"야! 흑기사다 흑기사!"


"오늘은 마스크 안 쓰고 다니네?"


학생들이 깔깔 웃어대며 나를 보는 건 이미 일상이 되었다. 그래도 중학교 시절에 당했던 거에 비하면 훨씬 나은 처우였다. 작년에 공붓벌레라는 인식을 심어줬던 것이 크지 않았나 싶었다. 학생들은 소변기에 줄지어 얘기를 나누다 다시 내쪽으로 다가오며 히죽히죽 웃어댔다.


"야 흑기사! 시험 잘 봤냐?"


"쌤이 말하길 전교 2등이라는데?"


나는 세면대 옆 건티슈를 뽑아 손을 닦아댔다. 그리고 내 앞에서 놀란 나머지 입을 다물지 못하는 학생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런 반응을 원하진 않았지만 어쩌다 보니 결과가 이렇게 되었다. C형 응시자의 역대급 디플레이션으로 성적 상위 학생들이 너도나도 무너지는 대참극 속에 B형 1등인 나와 A형 1등인 학생이 각각 전교 2등, 전교 5등을 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교무실에서 이 사실을 통보받은 나는 놀란 나머지 입을 열지 못했고 A형 1등이었던 남학생은 뛸 뜻이 기뻐하며 교무실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녔다. 태천고에서 A형 1등이면 20위권 중후반이 보통이니 기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실은 만났던 학생들을 시작으로 이곳저곳 소문이 퍼지고 말았다. 점심시간, 마무리 작업을 위해 스튜디오에 들어섰던 나는 레미 부원들의 괄목 대상이 돼있었다. 선유와 미로는 물론, 나미 선배와 아바카의 효린 선배까지 스튜디오 계단 쪽에 모여 있었다.


"선배, 인기랑 성적 둘 다 몰이하는 건 반칙이잖아요!"


"운이 좋았던 거야. C형 본 애들이 너무 못했어."


선유는 아예 음침한 시선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엘프 검사에게 생각해볼 수 없는 음침하고 거무충충한 느낌이었다.


"나랑 만났을 때 성적 컷 타령했으면서.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간사할 수 있어?"


"몰랐다니까. 선생님들 반응 어떤지 봤잖아."


"몰라. 강연이 실망이야."


선유가 고개를 돌려 외면함에 나는 가까이 다가가 선유를 달래는 꼴이 되었다. 효린 선배는 나미 선배와 대화를 나누나 화장대에 팔을 괸 채 나와 선유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나저나 강연이 쟤는 결국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아무것도 아니야. SMK가 우리 학교 학생들한테 이상한 언플해서 일이 좀 꼬였었어."


효린 선배는 막대사탕을 입에 문 채 입술로 막대기를 이리저리 휘저었다. 미로는 잠깐 내쪽 눈치를 보다 효린 선배 쪽을 향했다.


"다 제 잘못이에요. 제가 조금만 더 신경 썼으면 강연 선배가 쓰러지는 일도 없었을 텐데."


이에 나미 선배는 고개를 저었다.


"미로 너도 열심히 했어. 너 없었으면 레미가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걸?"


"그렇게 말하면 안 돼요. 저는 시험 망했단 말이에요."


미로의 처진 표정에서 나오는 실소는 효린 선배를 웃게 만들었다. 마치 슬라임이 땅바닥에 늘어진 듯한 느낌이었다. 효린 선배는 막대 사탕을 다 먹어치운 뒤 남은 막대기를 좌측 구석에 박힌 쓰레기통에 그대로 던져 넣었다. 나미 선배는 짧게 손뼉을 치며 이에 반응해주었다.


"나미야."


"왜?"


"오늘 선거 유세하는 날이잖아. 근데 왜 SMK 인원을 다 모아놓은 거야?"


"오늘 할 일이 따로 있어서. 한 명 더 와야 돼."


때마침 스튜디오 바깥쪽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모두의 예상대로 승준이 헐레벌떡 들어와 우리를 반겼다.


"늦어서 죄송해요!"


나미 선배는 고개를 저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 후 내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시작해야겠지?"


나는 선유와 함께 계단에 걸터앉은 채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은 외부 경비하는 날이네요. 참 나."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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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68. 가족 망쳐놓기 上 - 8 20.11.30 27 1 11쪽
68 67. 가족 망쳐놓기 上 - 7 20.11.30 23 1 11쪽
67 66. 가족 망쳐놓기 上 - 6 20.11.24 26 1 13쪽
» 65. 가족 망쳐놓기 上 - 5 20.11.17 25 1 12쪽
65 64. 가족 망쳐놓기 上 - 4 20.11.10 29 1 11쪽
64 63. 가족 망쳐놓기 上 - 3 20.11.03 26 1 11쪽
63 62. 가족 망쳐놓기 上 - 2 20.10.27 39 1 11쪽
62 61. 가족 망쳐놓기 上 - 1 20.10.19 46 0 12쪽
61 60. 메마른 기억 - 7 20.09.18 32 0 12쪽
60 59. 메마른 기억 - 6 20.09.08 28 0 12쪽
59 58. 메마른 기억 - 5 20.08.31 29 0 11쪽
58 57. 메마른 기억 - 4 20.08.24 32 1 11쪽
57 56. 메마른 기억 - 3 20.08.19 28 0 11쪽
56 55. 메마른 기억 - 2 20.08.10 28 0 11쪽
55 54. 메마른 기억 - 1 20.08.03 27 0 11쪽
54 53.빛바랜 거울 - 7 20.07.27 34 0 13쪽
53 52. 빛바랜 거울 - 6 20.07.20 33 1 14쪽
52 51. 빛바랜 거울 - 5 +2 20.07.13 36 1 13쪽
51 50. 빛바랜 거울 - 4 20.07.06 35 0 12쪽
50 49. 빛바랜 거울 - 3 20.06.29 34 0 12쪽
49 48. 빛바랜 거울 - 2 20.06.25 34 0 12쪽
48 47. 빛바랜 거울 - 1 20.06.22 35 0 12쪽
47 46. 어긋난 조각 - 6 20.06.15 31 0 11쪽
46 45. 어긋난 조각 - 5 20.06.09 32 0 11쪽
45 44. 어긋난 조각 - 4 20.06.04 38 0 11쪽
44 43. 어긋난 조각 - 3 20.06.03 44 0 12쪽
43 42. 어긋난 조각 - 2 +1 20.05.20 37 2 11쪽
42 41. 어긋난 조각 - 1 20.05.15 31 0 13쪽
41 40. 마땅한 복수? - 5 20.05.13 3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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