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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rte 님의 서재입니다.

배같은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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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rte까르
작품등록일 :
2020.01.17 23:48
최근연재일 :
2021.02.27 22:00
연재수 :
8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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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94
추천수 :
77
글자수 :
487,621

작성
20.08.31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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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58. 메마른 기억 - 5

DUMMY

약속 당일, 나는 아점 거리를 식탁에 세팅한 뒤 급급히 집을 나와야만 했다. 아파트 홀에 잠시 멈춰 휴대폰으로 어제의 채팅창을 재차 확인했지만 꿈도 착각도 아니란 걸 알아챌 뿐이었다.


현재 시각 10시 30분, 내가 약속 장소로 부리나케 도착할 즈음 이미 우려했던 상황이 눈앞에 펼쳐졌다. 하얀색 배경에 네이비 색상을 갖춘 서클 체크 블라우스와 네이비 색상이 짙은 투피스 치마, 밝은 은색을 띠는 하이힐과 목에 가느다란 은빛 목걸이를 차던 나미 선배가 날 보자마자 반색을 표하며 내게 손을 흔들었다. 나미 선배와 가까워져 주변을 둘러보니 아직 선유와 하련은 보이지 않았다.


"죄송해요 선배. 많이 기다렸죠?"


"막 오던 참이야. 오늘 드디어 이 코디를 보게 되네?"


"뭐 그렇죠."


머쓱해진 나는 내 옷가지를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민후 형과 전면전을 치렀을 당시 코디 그대로 이번 약속 때 보여주겠다고 말해둔 터였다. 여러 사람들과 만나는 거라 너무 캐주얼하게 보일까 걱정했지만 오늘 날씨가 제법 더운 탓에 집에 있는 검은 옷들을 입는 것보단 나을 거라 생각했다.


물론 지금 내 앞에 놓인 문제는 나미 선배가 이번 약속 때 합류했다는 것이다. 그젯밤, 하련이 나미 선배와 무대 퍼레이드에 관해 논의하던 중 나미 선배가 하련과 같이 동행해 해당 물품들을 구매하자고 제안했던 게 화근의 시작이었다. 하련은 끝까지 혼자서도 괜찮다며 모면하려다 되레 나미 선배에게 의심을 받았고, 나미 선배가 나나 선유는 물론 미로와 승준까지 가담해 얘기를 나누려 시도하자 하련은 비밀이 있다 실토한 채 내막이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민후 형과의 비밀을 나미 선배까지 확장한 셈이었다.


약속 시간까지 나와 나미 선배는 이번 일들에 관해 가볍게 대화를 나누었다. 나미 선배는 이내 팔짱을 낀 채 뾰로통한 표정을 짓더니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그 작가라는 사람 너무 무책임한 거 아니야? 어떻게 가족 일에 남을 끌어들일 생각을 해?"


"전 괜찮아요. SMK와 연관된 일이기도 하니까요."


"아니지! 미로도 아니고 왜 네가 민아를 상대로 인관 관계를 맞추려는 거야? 걔는 널 SMK에서 내쫓으려 난리 친 적도 있잖아."


"제가 매사에 신중하지 못한 탓이에요. 선배까지 심려를 끼치고 정말 면목없습니다."


나는 이 일을 더 이상 크게 벌리고 싶지 않았다. 더 복잡한 생각을 할 것만 같아 벌써부터 해방감에서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때 선유가 횡단보도 너머로 우리에게 손을 흔들며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덩달아 손을 흔들다 선유의 패션을 보고 말을 잇지 못했다. 나미 선배도 나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우주 속 은하와 별들의 자취를 그린 듯한 다양 각색한 녹색 패턴의 검은색 남방과 아이보리와 하얀색을 섞은 듯한 롱 슬랙스 바지로 구성은 단순하지만 남방만으로 그동안 봐왔던 선유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이질감을 주었다.


"엘프다."


나미 선배의 단순한 빈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교복이라는 표면적 조건에 방심해왔던 걸까? 지난번 축제와 달리 긴 앞머리를 뒤로 넘겨 3대 7 정도의 가르마를 형성했고 날렵하면서 선명한 눈썹 라인이 선유의 외모를 한층 끌어올렸다.


선유는 나미 선배와 대면해 머쓱한 듯 머리를 가볍게 정리해갔다. 이에 반해 나는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 별로 표가 안 났는지 늘상 보이던 모습을 드러낼 뿐이었다. 약속한 코디로 온 덕분인지 선유는 나를 보자마자 미소 지으며 내 주변을 둘러보기 바빴다.


"그냥 이대로 코디 바꿔보는 건 어때?"


"평소 땐 검정 세트로 다닐 거야. 내 목적은 어디까지나 은신이니까."


얼마 안 가 하련은 우리 쪽으로 소리치며 헐레벌떡 다가와 바로 앞에 멈춰 숨을 헐떡였다. 단정히 접어 넣은 하얀색 오버핏 반팔티에 3부 진청바지로 어디에서나 볼법한 흔한 여름 코디였다. 하련이 이성을 차려 앞을 보는 순간 나는 이미 하련을 맹렬히 노려본 채 모자챙을 하련의 머리에 갖다 댔다.


"김하련. 내가 분명히 입조심하라고 신신당부했을 텐데?"


" 미, 미안! 하지만 나미 선배니까 오히려 다행 아닐까? 교지편집부 관련 일들도 해결해야 하잖아."


"같잖은 핑계다. 여기서 더 퍼지면 넌 학교 다닐 동안 내 오프라인 화장 샘플이다. 알겠어?"


"네..."


솔직히 오늘 만나는 것만으로도 분위기는 썩 좋지 못한 상황이었다. 어제 올린 민후 형의 웹툰 최신화가 절정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보지 못한 화부터 잇자면 민후 형은 민아네 가족과의 만남을 웹툰에서 화해의 자리로 각색해 표현했지만 크게 대화를 나누지 못한 채 서로에게 불편함만 주다 떠나는 전개를 그려냈다. 이후 교전이 잠시 멈추나 싶었지만 며칠 뒤 동생이 어머니와 대판 싸우더니 주인공과 어머니 각도로 확대되면서 다툼의 정도가 극에 달하고 말았다. 주인공이 어머니가 저질렀던 사치적인 행위에 더 이상 참지 않겠다는 장면을 끝으로 나는 다가올 시나리오가 얼마 남지 않았다 실감할 수 있었다.


다행히도 나와 나미 선배가 나눴던 대화를 끝으로 우리 일행은 아웃렛에 들어와 본래 목적에 관해 얘기를 주고받았다. 하련은 벌써부터 어렴풋이 엉큼한 표정을 지으며 주변 옷들을 살펴보았고 나와 선유는 그 뒤를 밟은 채 하련의 행동에 질색을 표했다.


"강연아, 어떻게 생각해?"


"모르겠어. 얘기 들어보니까 졸업 사진에 박아놓겠다 그러던데."


"맙소사..."


하련이 생각한 컨셉은 코스프레로 내가 봤던 초기 컨셉은 그렇게 튀는 것도 아니고 무대를 재밌게 이끌 수 있을 것 같아 괜찮을 줄만 알았다. 그러나 이 변태 계집은 밑도 끝도 없이 초고를 수정했고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제안을 나미 선배에게 어필하라 독촉한 꼴이 되었다.


만나기 전, 나는 아웃렛에서 의상을 구하긴 힘들거라 생각해 안심했으나 하련의 아버지가 게임 캐릭터 의상 실사 디자이너란 소식에 충격과 함께 깊은 체념에 빠지고 말았다. 선유는 엘프 궁수, 미로는 마법사, 나는 흑기사를 지명받은 상태였다.


오늘 아웃렛에서 할 일은 가벼운 액세서리와 각종 화장품들을 구매하는 등 사실상 하련의 생각 따라 움직이는 꼴이었다. 나와 선유는 벌써부터 진이 빠져 낙담한 상태였지만 의외로 나미 선배는 하련과 자주 얘기를 나누며 쇼핑에 열심이었다. 하련은 여자들이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쇼핑을 즐겼고 나미 선배와 동행하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모습이 나름 볼 만한 구경거리였다. 그저 옥에 티라면 많은 걸음을 오간 탓에 나미 선배가 힐을 조금씩 절뚝거리는 듯한 모습이 보였던 것이다.


선유가 나미 선배와 1층 벤치에 자리 잡을 동안 나는 하련과 지하 1층에 위치한 드럭스토어로 들어와 화장품들을 둘러보았다. 하련은 들뜬 듯 싱글벙글한 채 프라이머 매대로 향했고 나는 고개를 절절대며 하련의 뒤를 따랐다.


"아주 신이 나셨어. 우리가 왜 모였는지 알고는 있는 거지?"


"왜 모르겠냐? 나도 얘기 꺼낼까 감보고 있었는데 이번 내용 어두운 거 알고 절제하고 있었다고."


"절제한다는 애가 돈은 절제할 줄 모르는 거냐."


이전까지 하련은 양쪽마다 두 개 이상의 쇼핑백을 들고 다니다 드럭스토어 바구니를 한쪽 팔에 걸치고 나머지 한쪽에 쇼핑백을 한가득 담아두고 있었다. 하련은 내 짓궂은 시선에 입을 삐죽 내민 채 눈매를 찌푸렸다.


"아빠한테 부탁하는 것도 정도가 있어. 나머지는 스스로 해결할 줄 알아야 돼."


"결국 실리 엔딩이란 소린가."


더 말해봤자 입만 아플 전개였다. 나는 하련이 화장품 고르는 걸 감독하며 나 자신의 피부를 지키는 데 시간을 할애해야만 했다.


내게마저 짐을 지게 한 채, 돌아온 벤치에선 선유와 나미 선배가 서로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듯 보였다. 나는 나미 선배를 보자마자 힐 쪽을 흘깃 쳐다보았다. 아직까지 가려진 부분 주위로 빨갛게 부은 흔적이 가시질 않던 중이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직설적으로 얘기하려 들면 나미 선배의 발을 주시했단 것에 괜한 몰매를 맞을 것만 같았다. 선유가 얘기했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확률의 문제였다.


하련마저 대화에 가담해 모두의 신경이 딴 데로 셀 동안 나는 나미 선배에게 자연스레 접근할 방법을 모색했다. 그리고 주변 시설을 이용하는 것만으로 작전을 구사할 수 있었다. 나는 바로 선유에게 가까이 다가가 손으로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왜 그래?"


"2층에 더글라스 매장 있는데 같이 안 가볼래?"


"더글라스? 뭐 살 거 있어?"


"아니. 이쪽 매장 운영 팀장님이 아버지와 같이 일했던 적이 있어서. 인사 차 방문할 생각이었어."


예상대로 선유는 반색을 표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가봐야지! 요 근래 아버님 관련해서 얘기 더 들어보고 싶었는데."


"그럼 잘 갔다 와."


좋았던 흐름도 잠시 하련이 한 말에 나는 나미 선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린 여기서 무대 일정에 관해 회의하고 있을게. 갔다 오면 문자 줘."


나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으나 막상 생각해보니 이 전개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나미 선배가 더 오랫동안 자리에 앉아 휴식을 취할 수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이번 작전은 불확실한 부분이 있어 실패할 가능성도 존재했다. 나는 곧잘 이성을 차려 선유와 발을 맞추려던 중 나미 선배가 선유를 보더니 와달라며 손짓을 보냈다.

"강연이 아버님도 더글라스 직원이신 거야?"


이에 선유는 오달진 미소를 지으며 손사래를 쳤다.


"강남역 부근에 커다란 더글라스 지점이 있어요. 거기 총괄 매니저신데 진짜 말도 안 되는 엄친아세요."


"진짜?"


나미 선배는 물론 하련마저 놀란 듯 선유를 바라보았다. 선유는 휴대폰을 꺼내 나미 선배 앞에 무언가를 보여주려는 듯 휴대폰을 앞으로 내밀었다. 나도 뭔가 싶어 벤치 뒤쪽으로 돌아가 확인하니 이전에 선유가 아버지와 차에서 같이 찍은 셀카라는 사실을 금방 알아챘다.


"잘 찍었네. 보정 좀 한 것 같은데."


"이거 무보정이야."


"아 진짜?"


나도 조금 놀랐으나 옆을 보니 내 반응은 우스울 뿐이었다. 학생회 대표들은 평소와는 전혀 다른 경외감으로 아예 눈을 떼지 못한 채 선유의 휴대폰을 가로챘다. 선유는 예상한 듯 가볍게 웃었고 나는 얼떨떨한 채 뒷걸음질 치며 거리를 두었다. 그러나 하련과 나미 선배가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조심히 내게 다가왔다. 옆에는 팔짱을 낀 채 유리벽에 기댄 선유가 있었다.


"내가 뭐라고 했어? 여학생들이 보면 눈 돌아갈 거랬지?"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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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67. 가족 망쳐놓기 上 - 7 20.11.30 23 1 11쪽
67 66. 가족 망쳐놓기 上 - 6 20.11.24 28 1 13쪽
66 65. 가족 망쳐놓기 上 - 5 20.11.17 30 1 12쪽
65 64. 가족 망쳐놓기 上 - 4 20.11.10 29 1 11쪽
64 63. 가족 망쳐놓기 上 - 3 20.11.03 30 1 11쪽
63 62. 가족 망쳐놓기 上 - 2 20.10.27 41 1 11쪽
62 61. 가족 망쳐놓기 上 - 1 20.10.19 48 0 12쪽
61 60. 메마른 기억 - 7 20.09.18 36 0 12쪽
60 59. 메마른 기억 - 6 20.09.08 30 0 12쪽
» 58. 메마른 기억 - 5 20.08.31 30 0 11쪽
58 57. 메마른 기억 - 4 20.08.24 36 1 11쪽
57 56. 메마른 기억 - 3 20.08.19 30 0 11쪽
56 55. 메마른 기억 - 2 20.08.10 29 0 11쪽
55 54. 메마른 기억 - 1 20.08.03 30 0 11쪽
54 53.빛바랜 거울 - 7 20.07.27 37 0 13쪽
53 52. 빛바랜 거울 - 6 20.07.20 37 1 14쪽
52 51. 빛바랜 거울 - 5 +2 20.07.13 40 1 13쪽
51 50. 빛바랜 거울 - 4 20.07.06 38 0 12쪽
50 49. 빛바랜 거울 - 3 20.06.29 38 0 12쪽
49 48. 빛바랜 거울 - 2 20.06.25 36 0 12쪽
48 47. 빛바랜 거울 - 1 20.06.22 36 0 12쪽
47 46. 어긋난 조각 - 6 20.06.15 32 0 11쪽
46 45. 어긋난 조각 - 5 20.06.09 35 0 11쪽
45 44. 어긋난 조각 - 4 20.06.04 40 0 11쪽
44 43. 어긋난 조각 - 3 20.06.03 45 0 12쪽
43 42. 어긋난 조각 - 2 +1 20.05.20 39 2 11쪽
42 41. 어긋난 조각 - 1 20.05.15 32 0 13쪽
41 40. 마땅한 복수? - 5 20.05.13 4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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