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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rte 님의 서재입니다.

배같은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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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rte까르
작품등록일 :
2020.01.17 23:48
최근연재일 :
2021.02.27 22:00
연재수 :
8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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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82
추천수 :
77
글자수 :
487,621

작성
20.11.10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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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64. 가족 망쳐놓기 上 - 4

DUMMY

여름날 저녁은 참으로 이상하다. 서늘한 바람이 부는 듯하면서도 후텁지근한 느낌이 감돌아 날 혼란케 만들었다. 그곳에서 나는 모자챙을 벽에 붙인 채 멀뚱히 서있었다.


잠시 뒤, 나는 휴대폰 채팅창을 통해 상황을 확인해야만 했다. 모자는 조금 벗겨진 채 시선은 아래로 향하고 있었다. 유나가 타이밍을 잴 때마다 하나의 문자가 반복적으로 올라왔다.


'뒤돌아 봐도 돼.'


나는 다시 모자챙을 가다듬으며 유나 침대 쪽으로 몸을 돌렸다. 하 부장님이 어찌나 옷을 많이 싸왔는지 침대에 안 입은 옷들로 한가득이었다. 더글라스 브랜드를 상징하는 선과 브랜드 로고로 이루어진 트랙탑과 재킷, 후드는 통상적인 형태부터 저지 형태에 크롭 형태까지 다양 각색했다. 국내 전시회가 가을에 열리는 걸 염두에 두고 가져왔을 것이다. 유나는 그중 하나인 빨간색 크롭 후드티와 검은색 민무늬 조거 팬츠를 입고 있었다. 후드티 소매는 검은색 선들이 줄을 지었고 조거 팬츠는 측면 중앙에 작게 브랜드 로고를 박아 포인트를 주었다.


잠시 동안의 감상 후 유나는 휴대폰을 만지작 대며 내게 문자를 보냈다. 덕분에 나는 잠깐의 감상에 집중한 뒤 간단하게 평가를 내려야만 했다. 더글라스 옷들은 지겹도록 봐왔기 때문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바지가 쫌 밋밋한데. 침대판 근처에 있는 트랙 바지 입어보는 건 어때?'


'ㅇㅋ'


답장은 간단하나 다소 긴장한 채 인상을 찌푸리는 유나의 모습은 제법 우스워 보였다. 얼마 뒤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조심히 뒷걸음질 쳐 벽에 몸을 붙였고, 유나는 문 앞으로 다가가 토라진 표정을 지었다.


"유나야, 아빠한테도 좀 보여주면 안 되겠니?"


"SNS에 올릴 거니까 그걸로 보면 되잖아. 좀 가만히 있어."


"매정하긴. 뭐 알겠어. 우리 딸 좋아하는 카레집 갈 거니까 가볍게만 꾸미고 나오면 돼!"


"뭘 꾸며? 알아서 할 거니까 신경 쓰지 마!"


"알겠어! 아빠는 면도 좀 하고 있을게."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었다. 유나가 하 부장님과 같이 밖을 나오면 나는 텀을 둔 뒤 집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비록 유나와 많은 얘기는 나누지 못했지만 말이다.


유나와의 패션 평가는 하 부장님의 간섭 덕분에 일찍이 거둘 수밖에 없었다. 유나는 급히 화장대에 앉아 프라이머를 찾고 있었다. 나는 제자리에서 옴짝달싹 못한 채 유나를 지켜보는 꼴이었다. 하 부장님이 문 너머로 몇 마디 할 때마다 유나가 성을 내며 이를 악물었다. 화장은 소중한 지 좀처럼 얼굴은 찌푸리지 않았다. 나는 화장대 거울 주변 화장품들을 물끄러미 지켜보다 휴대폰 채팅창에 자판을 두들겼다.


'몸에 좋은 화장품 좀 써라. 피부 늙는 게 장기적으로 더 손해다.'


화장대 우측 끝에 유나의 휴대폰이 놓여 있었다. 유나는 화장하며 눈길로 휴대폰을 확인했다. 컨투어링을 마치고 블러셔를 앞에 들여놓은 뒤 유나는 휴대폰을 집어 자판을 두들겼다.


'그러면 색상 예쁜 걸 못쓰잖아 ㅠㅠ'


'화장 본연으로 케어하는 것도 한계가 있어. 살찐 거 빼다 튼살 생기는 거랑 다를 바 없다고.'


'말 심하네 그 정도까진 아닌데'


즉후 유나는 고개를 들어 내게 눈살을 찌푸렸다. 눈 화장이 살짝 번진 것 만으로 유나의 심정이 어떨지 분연히 드러났다. 나는 머쓱한 채 채팅창에다 미안하다는 답글을 올려야만 했다. 방심했던 게 분명하다. 상대는 하유나, 언제 비행을 저지를지 모르는 망할 계집이니 말이다.


예상대로 유나는 준비를 마친 뒤 방 불을 끄려 했다. 잠깐 내 눈치를 보는 듯싶었지만 하 부장님의 요청이 거센 나머지 속행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칠흑 같은 어둠이 드리울 동안 유나는 하 부장님의 만류를 뿌리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도어락 소리가 두 텀으로 나눠 들리는 순간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물론 나가는 건 유나의 신호가 온 뒤에 이뤄져야만 했다.


10여분 뒤, 나는 유나의 신호를 받자마자 방문을 열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저곳 다 어두컴컴할 거란 예상과는 달리 거실 쪽에서 환한 빛이 새들어왔다. 방을 나와 오른쪽으로 몇 발짝 다가가니 거실 쪽 창가가 환하게 쳐진 걸 확인했다. 조금은 지난 보름달이지만 여전히 환한 빛깔을 뽐내며 너머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속전속결로 현관까지 이동해 도어락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휴대폰에 문자 하나가 도착했다.


'오빠 빨리!!!!! 아빠 지금 차키 가지러 갔어'


유나가 흥분한 듯 얼빠진 표정을 짓는 이모티콘을 연속해서 보내왔다. 반면에 나는 버튼을 누르며 여유롭게 집을 나왔다. 주변에 사람이 있지도 않았고 경미한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호들갑은.'


문을 닫고 삐삐 소리가 울리는 걸 끝으로 나는 위층 계단을 반쯤 올라갔다. 이곳에 서 있으면 하 부장님과 겹칠 이유가 없을뿐더러 매 상황을 모니터링할 수 있었다. 나는 창가가 뚫린 곳 근처 벽에 몸을 기대 휴대폰을 만지작댔다.


10여 초 뒤 엘리베이터가 13층에 멈추는 걸 확인했다. 예상대로 나오는 사람은 하 부장님으로 산만해진 채 도어락 버튼을 누르기 바빴다. 잠깐 내 쪽으로 시선을 틀기도 했으나 내가 뚱한 표정으로 휴대폰 만을 시선에 두고 있음에 그대로 하 부장님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났다.


유나에게 간단하게 상황 보고를 올린 뒤 나는 고개를 돌려 창가 너머 야경을 바라보았다. 아파트 중앙에 위치한 장미정원은 여러 조명이 들어와 주변을 환하게 비추었다. 외곽은 정자 속 조명을 이용해 배드민턴을 즐기는 부자의 모습이 보였고, 왼쪽 끝에선 차량 라이트들이 깜빡대며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중이었다. 이곳에서 느낄 수 있는 풍요로움이 가끔은 날 웃게 만들었다. 호수공원에서 둥지를 틀어 쉴 새 없이 못 살게 구는 모기 녀석들만 없었으면 중학생 시절 환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창가 너머로 모기 한 마리가 윙윙 거리며 창문에 여러 번 부딪힐 즈음, 하 부장님이 집 밖을 나오고 있었다. 검은색 바람막이까지 두른 걸 봐선 밖이 제법 선선한 모양이었다.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채팅창 자판을 두들겼다.


"거기 처음 보는 얼굴인데?"


순간 잘못 들었나 싶었다. 나는 설마 싶어 고개를 들렸다. 그리고 하 부장님이 바람막이를 들추며 내게 시선을 향하고 있었다.


"우리 브랜드 애호가인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더글라스 투성이네."


나는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눈치챘다. 다른 브랜드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아버지 직업이 직업인지라 집에 더글라스 옷들로 차고 넘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특별한 경우가 아닐 시 내 사복 패션은 모두 더글라스로 맞춰졌다. 하 부장님과의 면전은 예상치 못한 부분이었다. 유나는 문자로 상황 보고해달라 독촉하고 하 부장님은 반가운 듯 내게 손을 흔드는 모습이 나를 잠시 혼란케 만들었다. 그러나 이 상황이 결코 나쁘지 않단 사실을 깨달았다. 애초부터 나와 하 부장님은 면식이 있던 사이니 말이다.


"오랜만이네요. 하 부장님."


하 부장님이 놀란 표정을 짓던 것도 잠시 나는 계단을 내려와 하 부장님 앞에 서있었다. 유나가 없었기에 거리낌 없이 모자와 마스크를 벗겨낼 수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를 가다듬고 대면한 순간 하 부장님은 알아챈 듯 눈을 부릅 떴다.


"너 설마, 이 매니저 아들이야?"


"네. 한 번 인사드리려고 왔는데 타이밍이 좋았습니다."


"맞네! 얼마만이냐!"


하 부장님은 가볍게 웃더니 나를 가볍게 안으며 반가운 뜻을 표했다. 마지막으로 얘기를 나눈 지 3년 만에 다시 만난 것이다.


"이 매니저는 잘 지내고?"


"덕분에요. 분주하게 움직이시던데 어디 갔다 오시나요?"


"아, 우리 딸 밥 사주려고 했는데 차키를 깜빡했지 뭐야."


하 부장님은 오른손에 CLS 클래식 차키를 쥐며 실소를 지어댔다.


"그러고 보니까 딸이 있으셨군요. 그때 듣기론 저하고 비슷한 나이라고..."


"올해 중학교 2학년이야. 애가 어찌나 말썽인지 가는 학교마다 난리라니까."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가요?"


내가 말해도 하 부장님께 무척이나 죄송했다. 망할 계집을 아예 모른다는 듯 철벽은 치는 내 모습은 날 속으로 실소 짓게 만들었다.


"그냥, 내가 일만 하니까 비뚤어진 모양이야. 그래서 딸이 좋아하는 걸 최대한 해주고 싶어. 아빠로서 말이지."


하 부장님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다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렸다. 유나에 대한 부담이 있단 걸 눈치챌 수 있었다.


"뭐 자식 키우는 사람들이 다 그런 거지. 나나 이 매니저나 같은 처지였으니까."


"그렇죠."


"아차!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아! 강연이 너도 같이 가서 먹을래? 유명한 카레집 아는데."

이에 나는 가볍게 손을 저었다. 속으로는 절실한 마음이었지만 말이다.


"누나하고 집에서 저녁 먹어야 돼서요. 마음만 받을게요."


"아쉽네. 그럼 먼저 가볼게! 더 늦으면 딸이 다른 데로 새버릴 것 같아서."


"안 그럴 거예요.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그래. 만나서 반가웠어."


나는 하 부장님과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왔다. 하 부장님이 지하로 내려가기 전 내게 가볍게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전했다. 엘리베이터가 닫히고 LED 전광판이 바뀌는 걸 본 순간, 나는 휴대폰을 꺼내 채팅창 자판을 두들겼다.


'아슬아슬했어. 도중에 만나는 바람에 얘기가 좀 길어졌다.'


'뭐? 그럼 안 되잖아!'


'걱정 마세요. 자세한 건 아버님이 대신 말씀해주실 거야. 그럼 가본다.'


'그게 무슨 소리야? 오빠?'


이로써 내가 유나와 연줄이 잡힌 건 확실해 보였다. 별 신경 쓰지 않은 기억으로 이어지니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아무튼 나는 큰 산을 하나 넘은 기분에 다소 홀가분해진 상태였다. 나는 다시 한번 드높이 뜬 달을 바라보았다. 저 달이 모습을 감추는 날, 모든 일들이 끝날 것이다. 나는 이제 다른 산들을 넘어야만 한다. 다가올 열흘이 길게 느껴질 것이다.


시간이 흘러, 나는 내 여가시간을 보장받으면서 민후 형과 가볍게 얘기를 나누는 나날을 이어갔다. 유나도 화가 풀린 듯 SMK 활동을 재개했다는 소식을 미로로부터 전해 들었다. 금요일인 오늘, 나는 아침 일찍 등교해 승준과 함께 오퍼레이터를 둘러보고 있었다. 강당에서 있을 선거 유세를 앞두고 장비들이 제대로 돌아가나 확인해봐야 했다.


"선배 레미 활동하시는 건 오랜만이네요?"


"그러게."


승준은 휴대폰에 띄운 체크박스에 해당 장비에 관한 안전 체크를 이어갔다. 처음 해보는 활동이라 그런지 긴장한 모습이 조금씩 보였다.


" SMK 녀석들, 갑자기 쳐들어오고 그러진 않겠죠?"


"미로가 다 중재하고 있으니까 걱정 마. 회장 누구 뽑아야 할지 생각하는 게 나을 걸?"


"그러네요. 선배님들 얘기 들어보니까 1학년 표가 생각보다 중요하다고 하더군요."


"잘 알고 있네."


나와 승준은 낯선 목소리에 서로 눈을 마주 보다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문 너머로 선거 후보 번호가 적힌 노란색 완장을 찬 남학생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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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69. 가족 망쳐놓기 下 - 1 20.12.07 34 1 12쪽
69 68. 가족 망쳐놓기 上 - 8 20.11.30 26 1 11쪽
68 67. 가족 망쳐놓기 上 - 7 20.11.30 23 1 11쪽
67 66. 가족 망쳐놓기 上 - 6 20.11.24 26 1 13쪽
66 65. 가족 망쳐놓기 上 - 5 20.11.17 24 1 12쪽
» 64. 가족 망쳐놓기 上 - 4 20.11.10 29 1 11쪽
64 63. 가족 망쳐놓기 上 - 3 20.11.03 26 1 11쪽
63 62. 가족 망쳐놓기 上 - 2 20.10.27 39 1 11쪽
62 61. 가족 망쳐놓기 上 - 1 20.10.19 45 0 12쪽
61 60. 메마른 기억 - 7 20.09.18 32 0 12쪽
60 59. 메마른 기억 - 6 20.09.08 28 0 12쪽
59 58. 메마른 기억 - 5 20.08.31 29 0 11쪽
58 57. 메마른 기억 - 4 20.08.24 32 1 11쪽
57 56. 메마른 기억 - 3 20.08.19 28 0 11쪽
56 55. 메마른 기억 - 2 20.08.10 28 0 11쪽
55 54. 메마른 기억 - 1 20.08.03 27 0 11쪽
54 53.빛바랜 거울 - 7 20.07.27 34 0 13쪽
53 52. 빛바랜 거울 - 6 20.07.20 33 1 14쪽
52 51. 빛바랜 거울 - 5 +2 20.07.13 36 1 13쪽
51 50. 빛바랜 거울 - 4 20.07.06 34 0 12쪽
50 49. 빛바랜 거울 - 3 20.06.29 33 0 12쪽
49 48. 빛바랜 거울 - 2 20.06.25 34 0 12쪽
48 47. 빛바랜 거울 - 1 20.06.22 35 0 12쪽
47 46. 어긋난 조각 - 6 20.06.15 31 0 11쪽
46 45. 어긋난 조각 - 5 20.06.09 31 0 11쪽
45 44. 어긋난 조각 - 4 20.06.04 37 0 11쪽
44 43. 어긋난 조각 - 3 20.06.03 44 0 12쪽
43 42. 어긋난 조각 - 2 +1 20.05.20 37 2 11쪽
42 41. 어긋난 조각 - 1 20.05.15 31 0 13쪽
41 40. 마땅한 복수? - 5 20.05.13 3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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