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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rte 님의 서재입니다.

배같은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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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rte까르
작품등록일 :
2020.01.17 23:48
최근연재일 :
2021.02.27 22:00
연재수 :
8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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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85
추천수 :
77
글자수 :
487,621

작성
20.05.13 11:00
조회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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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40. 마땅한 복수? - 5

DUMMY

"민아가요?"


내가 생각하는 민아와 괴리된 모습이 나올 것 같아 벌써부터 가늠이 가질 않았다. 민후 형은 아메리카노 잔을 비운 뒤 잠시 잔에서 녹아드는 얼음을 지켜봤다. 얼음이 조금씩 달그락 거리다 두세 번 떨어질 즈음 민후는 고개를 들어 나와 대면했다.


"민아가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민아는 다른 방에서 자고 있었고 내가 하는 행동을 그대로 지켜보고 있었어. 민아와 눈을 마주치는 그 순간, 나는 당황을 금치 못했고 민아는 제자리에 소변을 눈 채 겁에 질린 표정이었지."


"그때 민아가 몇 살이었어요?"


"12살. 이맘때 전역했으니까 딱 4년 됐네. 그때는 너무 어려서 민아는 날 보자마자 주먹으로 쿵쿵 쳐대며 울고 불고 난리였지."


'오빠 왜 그랬어? 왜 그랬냐고?'


'미안해. 못난 오빠를 용서해줘.'


'어쩔 거야? 엄마 아빠 오면 난리 난다고!'


"그때 난 하나뿐인 동생한테 돌이킬 수 없는 소원을 제안했어. 동생을 안전한 곳으로 보낸 뒤 그대로 유리 진열장을 힘 있게 당겨 넘어트린 뒤의 이야기였지."


'사랑하는 민아야, 오빠가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어.'


'뭔데?'


'진열장 망가진 거 있잖아. 민아 네가 장난치다가 넘어트렸다고 부모님께 거짓말해줘.'


'왜? 내가 그런 것도 아니잖아!'


'이렇게 부탁할게! 오빠 인생을 건 소원이야!'


"나는 그저 민아를 꽉 안은 채 울먹였지. 그만큼 상황이 절실했고 그 집에 꼭 나가고 싶었어. 결국 난 민아의 나약함을 이용해 소망을 이룬 셈이지만 말이야."


'민아야, 오빠가 말하는 소원 이뤄주면 민아가 클 때 꼭 돌아와서 민아의 소원을 들어줄게!'


'정말?'


'부모님에 관한 소원만 아니면 그 어떤 거든 상관없어. 내 인생을 바꿔줄 만큼 너에게 보답해줄 거야.'


'오빠 언제 오는데?'


'언제라고 말할 순 없어. 하지만 반드시 돌아올게. 그때 오빠, 돈 많이 벌어 올 거니까 맛있는 것도 많이 사 먹자. 알겠지?'


"민아와 새끼손가락으로 약속한 걸 끝으로 난 그 집을 떠났어. 얘기가 잘 풀려서 부모님은 민아가 사고로 그랬다고 생각하고 나는 아무 명분 없이 복수극을 마무리한 채 도망쳤다. 이게 나와 부모 간에 생긴 상처의 시작이었어."


나만 그런 줄 알았지만 이젠 아예 카페에 관련 있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민후 형의 얘기를 경청하고 있었다. 나는 워낙 스케일 있는 내용이라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다 남직원 분이 민후 형을 향해 손을 들었다.


"그럼 지금의 만화가는 어떻게 된 거예요?"


"그 이후로 어렵게 고시원 잡고 알바 세 달한 뒤에야 패드를 구했죠. 집에서 패드로 그리고, 알바도 PC방 알바 잡아서 컴퓨터로도 그렸죠. 한 1년 정도 지나니까 PC방에서 그렸던 웹툰이 점점 입소문이 났고 그 작품이 지금 제가 연재하는 작품이 되었죠."


"제목이 어떻게 돼요?"


"토요일마다 연재되는 '가족 망쳐놓기'라는 웹툰 아세요? 그거 작가가 저예요."


"네엣?"


남직원이 소스라치자 주변 일동은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민후 형은 대충 무슨 상황인지 짐작했는지 미소를 보였고 남직원이 휴대폰을 두들기며 우리쪽 테이블로 다가왔다. 민후 형에게 휴대폰 화면을 보여주자 나도 잠시 자리를 옮겨 뭐 때문인지 확인했다. 헤르직션이라는 포털 사이트가 왼쪽 상단에 보였고 각종 일러스트와 제목들을 보니 연재 사이트라는 걸 대충 짐작했다. 거기에 남직원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부분을 보니 민후 형이 그리는 웹툰 제목이 눈에 잡혔다. 민후 형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남직원이 민후 형의 손을 잡으며 웃음을 보였다.


"작가님을 여기서 뵐 줄 몰랐어요! 내용이 비슷해서 혹시나 했는데."


나는 이에 의문을 표했다. 그 후 카페에는 단체 손님이 찾아와 다들 제자리로 돌아갔다. 민후 형은 나를 보며 실소를 짓다 몸을 풀며 자세를 갖췄다.


"오늘 좀 격정적인 얘기를 들어봤는데 기분이 어때?"


"머릿속이 멍해지네요. 뭐랄까, 너무 많은 장면들이 한꺼번에 다가오니까 혼미스러운 느낌이었어요."


"간단하게 다시 말해주면 부모 꼴이 역겨워서 기지를 부린 끝에 만화가에 성공했다는 거지. 혹시 뒤에 나올 얘기가 어떨지 예상이 갈까?"


"네, 민아한테 소원을 이뤄주겠다고 했잖아요. 그게 저하고 연관이 있는 거겠죠?"


"맞아."


민후 형은 다시 가방을 열어 종이 한 장을 꺼내 내게 밀어줬다. 눈요기로만 볼 때는 평범한 사진이었지만 사진에 찍힌 사람들을 보니 벌써부터 위화감이 들었다. 오른쪽에는 민후 형이, 왼쪽에는 교복을 입은 민아가, 그리고 가운데에는 아버지로 보이는 중년 남성 분이 보였다.


"아버지가 민아와 같이 얘기를 나누자고 제안한 덕분에 아버지와는 조금씩 갈등을 해소하고 있어. 민아와 만날 때도 아버지 주선 하에 만나는 중이야."


"그럼 어머니는요?"


"어머니? 그 망할 여편네를 어머니라고 부르라고?"


민후 형의 높아진 언성만으로 내게 엄청난 중압감을 안겨줬다. 나는 대충 어떤 분위기인지 파악해 사진을 테이블 위에 뒤집어두었다. 민후 형은 아까처럼 평정심을 찾긴커녕 눈살을 찌푸린 채 화난 표정 그대로 나와 대면했다.


"내가 지금 연재하는 웹툰을 꼭 봐줬으면 좋겠어. 그러면 내가 지금 말하는 소원의 이유를 알게 될 거야."


민후 형이 내게 민아의 소원을 말해준 끝으로 카페에서의 짧고 굵은 대화는 막을 내렸다. 기분이 이상했다. 나처럼 엄마라는 존재에 반감을 가지는 사람을 만난 건데 제대로 공감할 수 없었다. 단적인 것과 연쇄적인 것에 차이라 생각하지만 순간 내가 부리는 고집이 장난 같아 보였다.


나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방에 들어와 민후 형의 웹툰을 1화부터 정주행했다. 민후 형이 말했던 것처럼 군 복무 시절보다도 향상된 실력이 이곳저곳 드러난 단정한 그림체에 드러났다. 처음 봤을 땐 갑자기 나타난 남자 주인공이 집안을 누비며 비행을 벌이는 것처럼 보였지만 부분마다 섬세한 묘사가 가미되어 주인공이 아닌 가족 자체가 스스로 가정을 망치고 있단 스토리로 이어졌다. 웹툰에 나오는 주인공의 남동생은 여러 기행을 통해 부모님 멱살을 잡게 만드는 악동 캐릭터로 딱 민아를 빼다 박은 듯한 느낌이 들어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웹툰 최신화까지 완독하니 나는 또다시 정신이 멍해서 길게 숨을 내쉬었다. 남의 가정사를 듣고 민아가 이루고픈 소원의 조력자를 맡는다는 게 영 실감이 가질 않았다. 평소 같으면 미로나 지인들에게 자문을 구했겠지만 민후 형은 이 일을 발설하지 말아 달라 내게 부탁했다.


'과연 이게 마땅한 복수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소원에 순순히 나서긴 찜찜한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민후 형의 인생을 맞바꾼 소원이니 안 해주는 것도 문젯거리였다. 내가 너무 착하게 구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소원 따라 하는 행동들이 영 나쁜 것만 있진 않았다. 결심이 선 나는 바로 채팅 앱으로 들어갔다. 뒤이어 유나에게 방을 초대해 자판을 두들겼다.


'회장 계집 혹시 민아 집주소 알아?'


놀랍게도 유나는 바로 글을 읽고 적는 중이라 상태창이 떴다.


'왜?'


단적인 접근을 막고자 심혈을 기울여 생각해야만 했다.


'민아가 나한테 가지는 반감이 많잖아. 그래서 조금이나마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고 싶어.'


'그럼 무대 행사할 때 만나면 됐잖아'


'무대에서 만나면 스튜디오로 가야 되는데 레미에서 막잖아. 화장 때문에 말해본 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제법 분위기가 넘어온 것 같아 나는 생각해둔 작전대로 자판을 두들겼다.


'민아한테 내 화장 실력이 어떤지 보여주고 싶어. 해보고 만족하면 나와의 거리가 조금씩 좁혀지지 않을까?'


'난 안 해주고?'


이에 나는 실소를 지었다.


'너는 화장 자체를 잘하잖아. 굳이 내 실력이 아니어도 잘만 꾸미면서.'


'남이 해주는 거하고 스스로 하는 건 다르거든?'


흐름을 보니 내가 더 이상 둘러댈 수 없는 분위기로 흘러가는 것 같았다.


'알겠어. 얘기되면 너 먼저 해줄게. 그러니까 민아한테 귀띔이라도 해줘. 이러다간 미로파와 그 외의 파가 으르렁거리며 싸우겠어.'


꽤나 굴욕적인 처신이라 인상을 쓰던 나였지만 소원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오빠가 왜 이렇게 우리한테 고분고분할까? 평소 같으면 오빠들 챙겨주느라 정신없으면서'


'미로파가 하나같이 나 싫어하잖아. 자꾸 신경 쓰이니까 대책을 세운 것뿐이야.'


'말은'


설마 제대로 안 된 걸까 싶어 노심초사했지만 얼마 안 가 작성 중이라는 상태창이 떴다.


『 '일단 알겠어'


'나 화장해주는 거나 잊지 마!'』


'고마워. 부탁할게.'


안도한 심정과 함께 나는 휴대폰을 침대에 던져뒀다. 창가를 보니 달이 조금씩 어둠을 몰고 오던 중이었다. 하루 동안 지친 몸에 안정을 취하고 싶었다. 물론 누나의 꾸지람이 예상되어 자리에서 일어나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난 후의 이야기였다.


민후 형의 이야기를 되돌아보니 망할 아줌마로, 또 거기서 강당에서 마주친 은정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분위기 때문에 사실을 알리지 말아야만 했었다. 은정이 내 동복동생이란 사실을 알게 된 후 나를 대하는 방식이 사뭇 달라졌다. 내게 내키지 않았던 건 그대로지만 애써 나를 피하는 듯한 모습이 두루 보였다. 얘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나와 은정과의 남매 소문은 잘못됐다고 미로가 SMK 채팅방에 공공연히 알린 터라 접근하기 까다로웠다. 거기에 망할 아줌마로 화제가 들어가면 마땅히 할 말이 없어 분위기만 망칠 것 같았다.


최근 들어 망할 아줌마가 내게 간섭하지 않는 걸 봐선 제대로 얘기한 듯 싶었지만 은정의 행동만으로 단정 짓긴 어려웠다. 이전에 채팅창을 이용해 얘기를 나누려 했지만 은정은 내 글들에 일체 잠수를 탈뿐이었다.


'돌겠네.'


침대에서 핸드폰을 집은 뒤 벽에 몸을 기대 채팅 앱을 열었다. 꽤나 오래전에 보냈던 은정과의 채팅방을 보니 점점 시간은 흘러가고 갈등은 벌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 후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오자 나는 잠시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어두었다. 내가 들어와도 된다 말하자 누나가 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무언가에 들뜬 듯 함박미소를 지으며 주위를 서성이는 모습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강연아. 나 내일 아침에 화장 좀 해줘!"


"왜? 어디 나가?"


"응! 엄마 보러 가."


나는 순간 잘못 들은 건가 싶어 눈을 깜빡였다. 요즘 하도 넋이 나갔는지 실소가 나온 채 양손으로 귀를 두들겼다.


"누나 미안. 제대로 못 들었어."


"내일 엄마 보러 갈 거야."


이제야 귀로 확실히 꽂히는 느낌이었다. 나는 곧바로 미간을 찌푸리며 누나를 노려봤다.


"갑자기 그 아줌마는 왜 만나?"


"아는 동생이 엄마랑 만날 수 있게 약속 잡아줬거든."


누나는 휴대폰을 흔들며 싱글벙글 미소를 지었다. 휴대폰을 면밀히 보니 채팅창 화면에 대화를 나눈 것처럼 보였다. 이에 나는 조심히 다가가 누나의 휴대폰을 잽싸게 빼앗았다. 누나가 당황할 사이 나는 채팅창에 무슨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살펴봤다. 내용을 훑자마자 나는 충격과 함께 눈을 부릅떴다.


누나가 내게 달려들어 제지하려 들기 전, 나는 바로 채팅창의 보이스 채팅 버튼을 눌러 귀에 갖다 댔다.


"강연이 너 뭐해? 돌려줘!"


나는 누나에게 손을 내밀며 양해를 구했고 그럴 동안 연락이 닿아 스피커 특유의 소리가 났다.


"언니? 무슨 일이에요?"


목소리만 들어도 어처구니없어 실소가 나올 걸 겨우 참아냈다.


"야 조은정! 지금 뭐 하는 거냐?"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파트는 5부작으로 완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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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68. 가족 망쳐놓기 上 - 8 20.11.30 26 1 11쪽
68 67. 가족 망쳐놓기 上 - 7 20.11.30 23 1 11쪽
67 66. 가족 망쳐놓기 上 - 6 20.11.24 26 1 13쪽
66 65. 가족 망쳐놓기 上 - 5 20.11.17 24 1 12쪽
65 64. 가족 망쳐놓기 上 - 4 20.11.10 29 1 11쪽
64 63. 가족 망쳐놓기 上 - 3 20.11.03 26 1 11쪽
63 62. 가족 망쳐놓기 上 - 2 20.10.27 39 1 11쪽
62 61. 가족 망쳐놓기 上 - 1 20.10.19 46 0 12쪽
61 60. 메마른 기억 - 7 20.09.18 32 0 12쪽
60 59. 메마른 기억 - 6 20.09.08 28 0 12쪽
59 58. 메마른 기억 - 5 20.08.31 29 0 11쪽
58 57. 메마른 기억 - 4 20.08.24 32 1 11쪽
57 56. 메마른 기억 - 3 20.08.19 28 0 11쪽
56 55. 메마른 기억 - 2 20.08.10 28 0 11쪽
55 54. 메마른 기억 - 1 20.08.03 27 0 11쪽
54 53.빛바랜 거울 - 7 20.07.27 34 0 13쪽
53 52. 빛바랜 거울 - 6 20.07.20 33 1 14쪽
52 51. 빛바랜 거울 - 5 +2 20.07.13 36 1 13쪽
51 50. 빛바랜 거울 - 4 20.07.06 34 0 12쪽
50 49. 빛바랜 거울 - 3 20.06.29 33 0 12쪽
49 48. 빛바랜 거울 - 2 20.06.25 34 0 12쪽
48 47. 빛바랜 거울 - 1 20.06.22 35 0 12쪽
47 46. 어긋난 조각 - 6 20.06.15 31 0 11쪽
46 45. 어긋난 조각 - 5 20.06.09 31 0 11쪽
45 44. 어긋난 조각 - 4 20.06.04 38 0 11쪽
44 43. 어긋난 조각 - 3 20.06.03 44 0 12쪽
43 42. 어긋난 조각 - 2 +1 20.05.20 37 2 11쪽
42 41. 어긋난 조각 - 1 20.05.15 31 0 13쪽
» 40. 마땅한 복수? - 5 20.05.13 38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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